#민경우#경우있는 밤#더리더 #여덟 번째 밤#스파이외전2#주사파#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지령방송#운동권#청산
시민단체 길_길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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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경우있는 밤의 민경우와 함께 목요일 밤 10시 함께 하세요. '경우있는밤 더리더'는 귀에게 양보하셔도 좋습니다.
여덟 번 째 밤에서는 주사파 운동권 청산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한민전'에 대한 이야기로 스파이외전2와 함께 합니다.
Transcript
[음악]
안녕하세요 경호 있는밤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음악]
경 있는
밤은 쓴
두 번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
녹화하는 오늘이 초복인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한가운데서
경우 있는 밤 더 리더를 리더 여덟
번째 밤을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한민전
얘기를 집중적으로 해 볼까합니다
한민전 주사파 간첩 공안 뭐 운동권
이야기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전을 이해하면이 모든
것들을 한 90%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 크게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남로당이 있었죠 남조선
노동당 이고요 이건 넘어가겠습니다
그다음에
60부터 80년까지 통혁당 있었죠
통일혁명당 있니다 통일혁명당의
가장중요한인 중에 하나는
신입니다 80년부터 2000년까지
민혁당 있었죠 인종
민주혁명당이고이 민혁당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김영환 있니다 그다음에
2000년 이후에 군자산의 약속이
있죠 군자산의 약속에은 민노 민노당
민주노동당이 민노당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석기 자 오늘 통역단 기부터 얘기를
할 텐데요 역당 사건이 있었습니다
68년도
통역이 일망 타진 되는데 북한에서
이상한 짓을 합니다 통역이 만약 민
통역이
붕괴되었다 통역을 재건하거나 그다음에
통당 말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되는데
68년에 와해된
통일혁명당이 마치 그대로 살아 있는
것처럼 해주에서 방송도 내보내고
통일혁명당의 중앙당이 있는 것처럼 럼
포장합니다
허위적 사기죠 그렇게 해서 약
15년간을 쭉 그대로 유지를 하고
의지를 하다가 80년대
초반에 김정일이 참가한 가운데 대남
정책에 대한 전체적인 회의가 다시
열립니다 어 그 이전까지는 주로 어
월북했던 남한의 남한 출신의 월북자
중심으로 지하당 만들었습니다 그렇겠죠
북한에서 태어난 북한 출신들을 갖고
남한 지하당 만들 수 없으니까 남노당
출신 중에서 북한에 월북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어 지하당 만드는데 그
사람들이 80년 정도가 되면 다
사망하거나 너무 나이가 들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자
김정일이 직접 시를 통해서 북한에서
태어난 신세대
간첩과의 자생 주사파들이 결합을 해서
무가 새로운 거를 만들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만의 주사파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전략을
구사하는데이 과정에서
통일혁명당의 한국 민족 민주선 선지란
이름으로 바꿉니다 이름하여 한민전
있니다 그리고 한민전 그러니까
한민전이란 조직은 없는 겁니다 위장
조직이죠 그리고이 한민전 주로 북한의
해주에서 방송을 하던 조직입니다
어 자 여기까지가 한민전 기원입니다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통일혁명당의
와해 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통일혁명당의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위장 조직을 10여년간 유지해 오다가
80년도 초반에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대남 정책을 신세대 간첩
위주로 적극적으로 개화될 것에 대해서
방침을 전환을 하고 그것에 한으로
한민전이라는 조직을 위장 조직을
만듭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이야기고요 두 번째를
소개하면 북한의 남한에 있던 학생들이
87년 6월 6월 민주항쟁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남한 학생운동의 일부가
북한의 방송을 듣고 북한의 방송에
호응하기 시작합니다 북한 방송은 주로
과격한 투쟁을 지향하고 대중노선을
견제하자 주장을 하는데 이거이 북한
방송이
남한의 남한 학생들과 호해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주사입니다
그리고이
주사파 주체 주사파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 학생들이 만든 조직이 이른바
전대협 있니다
학생들은 어 한민전 방송을 저도 많이
들었는데요 86년부터 서울대 연고대를
중심으로 해서 북한 방송을 듣기 위한
단파 라디오들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저도 그중의 원인데요 저는
집안에 부모님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단파 라디오가 아니라 1번째 좀 좋은
라디오를 갖고 86년 87년 88년
89년 90년 등 한 4 5년간을
한민전 방송을 들으면서 운동을
했습니다 한민전
방송은 아까 북한의 해주에 있으면서
한국 한국 사람들로 구성된 중앙당이
있는 것처럼 속이기 때문에 깨끗한
서울말로 방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막판에는
한민전 잠깐 방송을 소개하면 한민전
중앙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했
518 30주년을 맞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쭉 얘기를 하고 어
이상은 한민전 중앙위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었던 실체를 숨겼 그런데 이거에
학생들이 넘어갔습니다 아 그래서 당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한국의 대학생 운동의
상당수는 한민전 방송의 영향을 받아
진행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민전
권위 권위가 어느 정도였냐면
이거는 하태경 의원회 증언인 하태경
의원이 전대업 조통 참가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전대업
조통위원장 방송을 한민전 방송 문건을
갖다 놓고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한민전 문서의 권위가 있었죠
그럼 그럼 왜 북한은 어 통역이
붕괴되는 통역단 대신 다른 조직을
만들기보다 한민 보다 통역이 마침
살아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80년대 중반에는 그것을 한민전
개칭하면서 아지 그 위장 조직을 어
위장 조직을 운영하려고 했느냐 하면
이게
어 북한 대남 전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남 전략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 남아는 굉장히 공안 기관 국가
보법 체제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이 말이 랄지 조선
노동당과 내가 연루되어 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많이 위축되거나
어 두려움을 갖게 되기 때문에 조선
노동당을 전년에 내세우면서 운동을
하게 되면 운동의 규모나 대중성이
크게 약화됩니다 그것을 북한이 간파를
하고 간파를
하고 조선 노동당 대신 마치 한국
민중들 구성되어 있고 그다음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거와 같은 위장
도구를 둬서 조선노동당 이 아니라
한민전 충성하도록 유도한 겁니다 어
이런 경우가 많이 있죠 그러니까 조선
노동당이 본질이지 조선 노동당이 너무
무섭고 두렵고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대신 한민전이라는 위장 조직을 두어서
한민전 충성을 하게끔 해서 운동의
규모나 투쟁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조선
노동당을 지지한다 라는 학생들은
80년대 후반 기준으로 본다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반면에 나는 한민전
믿고 따른다고 하면 조선 노동당을
믿고 따른 다에 적어도 배에서 한
100배 정도 됩니다 만약에 북한이
한민전이라는 위장 도구를 둬서 어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위축 경계심
두려움 같은 것들을 해소하는 전략을
수립하지 않
투쟁의 규모는 격하게 줄어들었을
겁니다 자 이것이 조선동 한민전이라는
위장 도구를 둔
것
목표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더 사례를 들면 제가
이제 공기 공안 기관에 있는 분들하고
만나보면 공안 기관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어 제가 마치 김일성
김정란 충성 맹세를 하고 그 조선
노동당에 소속 돼서 활동한 것처럼
얘기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범인역 남축 법부 사무처장으로 간차
혐의로 두 번이나 구속됐기 때문에
주사파는 그래도 상당한 서열이 있는
편인데도 어 김일성 김정일의 충성
맹세를 하거나 그다음에 조선 노동당에
복속 돼서 활동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한국의
학생운동은 한국의 지식인 운동은 전혀
다른 를 걸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에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을
회고하면 우리는 늘
한민전이라는 위장 허상의 어떤 도구를
만들어서 그 충성의 대상을 그쪽으로
돌린 거죠 또 다른 예를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태영호 의원이 이인영
이인영 의원에게 청문의 과정에서
전대업
성원들은 어 아침 김정일 김일성에게
예를
갖추지 않느냐 당신도 그렇지
않느냐라고 질문을 했는데 이거는
북한의 대남 전수를 전혀 잘못
이해하는 겁니다 이형과 같은 이형이
전대 무장이었을 주사파 맞습니다
그런데
주사파들이 주사파들이 또는 전대업
의장이 아침에 일어나서 모임을
가지면서 묵념을 하거나 해를 갖추거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게 한국 주사파
운동의 특징을 잘못 이해한 거죠 대신
무엇을
하냐면 대신 한민전 이랄지 통일
조국이라지 전대업 이랄지 자주민주통일
할지 그런 대체물을 만들어서 그
대체에 대한 충성을 충성을 맹세함
인해서 그거를 대체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해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라는게 있습니다 그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있습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장백산
피어린 자국 이렇게 가는 노래가
있는데요 저는 지금까지이 노래를 한
열 번 정도 불러봤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상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그것을
갖고 어떤 충성 맹세를 하고 이러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다음에 김정일
장군의 노래라는게 있습니다 김정일
장군의 노래도 어 저는 2000년대
초반에 남북 화해 무두가
본격화되면서 방송을 통해서 처음
들었고 지금까지 한 뭐 열 번 정도
불러봤습니다 그러니까
주사들도 또
주사들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나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일상적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노래들은 남한과 같은
주사파 아 국가법 체제하에서는
공기관에 바로 노출이 되기 때문에
위험한 거죠 만약에 그런 걸 하는
집이 있다면 그걸 말려야 되는 거죠
대신 뭐를 하냐면 그거에 대체물을
만듭니다 동지의 노래 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북한 노래들이 있습니다 동지의
노래는 가는 길 험난하다 해 이런
노래가 있고 뒤에 한 별이라는 그니까
김정희를 상징하는 은어 같은 것들이
나오는 가사들이 있습니다 요런 노래를
부 이런 노래를 대체함으로써
그 북한 김정일 그다음에 통일 조국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그런 대체물로
바꿔 바꿔치기 하는 거죠 그래야만
운동이 대중성이 있고 운동의 규모가
커집니다 자
오늘은 한민전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어 강조하자면 한민전 어
제가 만약에 주사파 그다음에
운동권 이런 얘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입니다 어
보통은 이제 간첩 이런 얘기를 할
텐데요 한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얘기할 수 있고 두 번째는 한민전
통해서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주사파 운동은 그렇게 직접적으로 나는
김일성을 존경한다 김일성을 충성을
맹세했다 주사파 주체사상이 옳다 이런
식으로
노골적이고 모두가 드러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습니다 공안 기관이나
그다음에 그다음에 보수 우파 쪽에서
그런 식으로 주사파 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주사파를 잘못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전 통해 봤듯이 주사파
운동은 매우 간접적이고 교묘하고
그다음에 위장된 형태로 발전을 했기
때문에 발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성격들을 잘 이해해야만 어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섬세하고 부드럽게
주사파 운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오늘은 한민전 대해서
얘기를
해봤습니다 경우 있는 밤 더리더 여덟
번째 밤 이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읽어 드린 내용 어떠셨나요 다음
주는 한 주 쉬고 그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거 무더운 여름 건강관리
잘하시고 경 있는 밤 리더 여덟번째
밤을 이상 마치겠습니다 굿나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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