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30

알라딘: 갓포기와 몸뻬, 전쟁 - 일본 국방부인회와 국가총동원체제 후이지 다다토시 ,이종구 (옮긴이) 2008

알라딘: 갓포기와 몸뻬, 전쟁


갓포기와 몸뻬, 전쟁 - 일본 국방부인회와 국가총동원체제 
후이지 다다토시 (지은이),이종구 (옮긴이)일조각2008-06-25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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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국방부인회를 그린다. 국방부인회의 여성들은 전쟁 속에서 가족을 보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군대위문, 환송, 환영 등 각종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가정을 벗어나 자유공간에서 해방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군부는 국방부인회를 통해 여성을 조직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로 국방부인회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천만 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으로 발전했고 국가는 이를 기반으로 총동원체제하에서 모든 여성단체를 통합, 도나리구미隣組라는 반관 반민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민중의 역할과 태도, 특히 여성이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활동해 일본 최대의 여성단체가 되었던 국방부인회의 사례를 고찰해 일본의 민중 역시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중일 전면전쟁으로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국가는 기존의 민간단체들을 행정기관이나 군부의 하부 계통의 조직으로 재편, 전 국민을 단일 통제체제하에 두었다. 결국은 민중적 성격을 띠었던 많은 단체들이 군국주의자들의 전위로서 역할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파시즘의 대중운동적 성격을 볼 수 있다.


목차


옮긴이의 말

Ⅰ    헌금 현상과 군비확장 - 만주사변
Ⅱ  갓포기 차림으로 부엌에서 나오다 - 국방부인회 현상
Ⅲ 국방부인회의 진가 - 비상시국의 관점
Ⅳ 군사, 생활, 권리의 우선순위 - 일상의 관점
Ⅴ  원점에서 - 이별과 배웅(중일 전면전쟁)
Ⅵ 후방체제와 생활 - 국민정신 총동원에서 도나미구미로

저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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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만주사변’ 발발 이후에 나타난 민중의 반응을 ‘헌금 현상’이라고 총괄했다. 헌금 현상은 약 1년 동안 계속되었다. 처음엔 민중의 동정심에서 출발했지만 국가는 이를 교묘하게 비행기 헌금으로 유도해 군사비를 증대시켰고, 지방에서는 국방연구회 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헌금 현상의 뒤를 이어 나타난 민중의 반응은 ‘국방부인회 현상’ 또는 ‘갓포기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헌금운동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 때문에 국방부인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로 확산되었다. 국방부인회는 부엌에서 나온 주부들이 병사를 전송하고 환영하며 몸소 돌보았다. 이 같은 국방부인회의 확산 현상을 가리켜 ‘국방부인회 현상’, ‘갓포기 현상’이라 한다.
그렇지만 국방부인회가 자체적으로 이 같은 활동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오사카 방공헌금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국방부인회는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떠맡겠다고 나서며 하부조직을 자처하는 의식을 가졌다. 이는 헌금 현상이 횡행하던 시기에 흔히 나타났던 민중의 반응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조직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헌금운동을 실시하는 방법에는 이미 후일의 ‘국방부인회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질적으로 다른 행동이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다. -53~54쪽 접기

오사카 국방부인회가 앞치마를 두르고 모이기로 한 기발한 생각은 탁견이기도 했다. 앞치마는 당시의 표현으로는 갓포기라고 불렀다. 갓포기는 국방부인회의 상징이자 그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애초에 그녀들은 출정이나 입영하는 병사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 갓포기를 입은 채 주전자를 들고 항구로 갔던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방부인회가 출범하고 나자 어깨띠와 갓포기는 회원임을 증명하는 표시가 되었다. 이런 모습으로 처음 거리에 나선 것은 방공헌금을 모집할 때였다. 그 당시 신사 앞에서 찍은 회원들의 기념사진을 보면 갓포기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정식 복장으로 착용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갓포기 차림으로 봉사하는 모습은 시민들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회원들은 봉사할 때가 아니라도 갓포기를 걸친 채 그대로 당당하게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대일본국방부인회로 발전하고 나서는 육군 당국도 ‘갓포기야말로 국방부인회의 정신’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갓포기는 정식으로 국방부인회의 복장이 되었다.
갓포기는 부엌에서 입는 노동복이다. 제복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를 구태여 제복으로 삼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갓포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84쪽 접기
‘거리인가?’, ‘부엌인가?’는 국방부인회가 ‘국방은 부엌으로부터’를 내세우고 결성된 이래 안고 온 주제였다. 오사카 국방부인회의 여성들은 그것을 ‘부엌에서 나와 병사를 전송’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육군은 부엌으로 표상된 ‘집을 가꾸고 지키자’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전송 집단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국방부인회에 대해 다른 여성단체들은 집을 등한시하는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이제부터 소비경제에 대한 통제가 국가의 주요정책이 되었으므로 주부의 경제적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기회를 포착한 1920년대의 여성운동가들이 국민정신 총동원운동을 발판으로 되돌아왔다. 국방부인회는 국민정신 총동원운동의 하부 실행단체가 되었다. 1932년 이래 여성운동이 서로 대항해가며 계열화되었다가 다시 이와 같은 형태로 통합된 것을 보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202~203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후이지 다다토시 (藤井忠俊) (지은이)

1931년 야마구치山口 시에서 출생했다. 1955년 와세다早稻田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전공은 일본근현대사이다. 『계간현대사季刊現代史』 창간 이후 2008년 현재 ‘현대사연구회現代史の會’의 좌장으로 있으면서 이바라키茨城대학교에서 강의한다. 주요 저서로는 『전쟁과 민중戰いと民衆』, 『재향군인회사론在鄕軍人會史論』 등이 있다.

최근작 : <갓포기와 몸뻬, 전쟁> … 총 5종 (모두보기)

이종구 (옮긴이)

195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81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도쿄東京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산업사회학회 회장,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을 거쳐 2008년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학으로 풀어본 현대일본』(공저), 『일본의 도시사회』(공저),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한국사회』(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1950년대 한국 노동자의 생활세계>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쟁과 여성의 상관관계는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전쟁 속의 여성은 가족을 전장에 보내고, 혹은 전쟁의 피해자로서 눈물을 흘리는 대상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 속 국방부인회의 여성들은 군대위문, 환송, 환영 등 각종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가정을 벗어나 자유공간에서 해방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평범한 여성들이 군대를 위해 봉사하던 이 단체가 일본 최대의 조직이 된 비결은 바로 갓포기로 상징되는 평범한 주부라는 이미지와 저렴한 회비 때문이었다.

군부는 국방부인회를 통해 여성을 조직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로 국방부인회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천만 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으로 발전했고 국가는 이를 기반으로 총동원체제하에서 모든 여성단체를 통합, 도나리구미隣組라는 반관 반민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군부를 이 도나리구미를 통해 일본 국내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통제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국방부인회의 하얀 갓포기는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전쟁이 본격화되자 하얀 갓포기는 방공 연습에도 노력봉사에도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이제 노동복인 몸뻬가 갓포기를 대신했다. 갓포기의 효용이 떨어지는 만큼 국방부인회의 활동도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져만 갔고 여성은 몸뻬를 입고 가족의 생계와 전쟁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다. 한편으로 국가는 부덕婦德을 강조하면서 여성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군인들의 자상한 아주머니’ 역할을 하던 국방부인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이유도 없었다. 이 시기 군부에게 여성은 가장이 떠난 가정을 지키고 새로운 전사를 만들어내는 어머니로서 순종적인 여성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국방부인회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소위 일본 파시즘의 형성 과정에서 이 단체가 유일하게 밑에서부터 만들어졌고 서민적인 성격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가진 조직이었며 민중이 전쟁에 개입한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화와 침략전쟁

메이지유신이 일어났던 1868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1945년까지 일본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통한 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이외에도 소위 출병出兵이나 사변事變이라는 이름으로 대만, 조선, 중국, 시베리아 등지에서 수많은 교전을 벌였다. 일본의 근대화는 어쩌면 대외 침략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거의 80년 가까이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전쟁은 군국주의자들의 책동이고 일본 국민은 그저 수동적으로 군국주의자들이 벌이는 전쟁에 내몰리기만 했던 것일까? 바로 그 지점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출발한다. 저자는 <전쟁에서 민중의 역할과 태도, 특히 여성이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활동함으로써 일본 최대의 여성단체가 되었던 국방부인회의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일본의 민중 역시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중일 전면전쟁으로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국가는 기존의 민간단체들을 행정기관이나 군부의 하부 계통의 조직으로 재편, 전 국민을 단일 통제체제하에 두었다. 결국은 민중적 성격을 띠었던 많은 단체들이 군국주의자들의 전위로서 역할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파시즘의 대중운동적 성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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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리뷰
종이책sa***** | 2008.07.06


갓포기도 몸뻬도 아닌 언론을 보다.  이책의 의미는 서두의 머릿말에서 거의 백퍼센트를 알려준다. 좀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의미에선 그 머릿말의 설명이 과연 그러한가내지는 그 내용이 타당한 주장인가를 오히려 검증하듯이 책을 줄곧 읽는게 어찌보면 바람직해보인다.
이렇듯 자신없는듯한 표현은 아마도 내가 일본사에 객관적인 지식이나 뭘더아는게 특히 일본이 전쟁시기에 관한 지식 특히 사회적인 교양이 부족한 탓이다.

갓포기도 몸뻬도 아닌 언론이 오히려 눈에 들어온다. 그당시까지 사회참여라곤 어느구석에서도 찾아볼수없었던 갇혀진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게된 이유, 그리고 그져 허리굽혀 논밭을 일구던 촌여성들이 푼돈을 꺼내게된것들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새삼스럽게 주목한다. 

배후가 있다없다. 그 배후가 누구냐하는 우스게 소리는 21세기를 살아가며 게다가 그 전반 10년가까이를 지냈음에도 아직도 20세기의 중반에나 볼수있는 위대하고 몰지각하고 상식업고 무대뽀인 사상을 지닌 돌아이정권세력의 공로인것을 깨닫는다. 지금 그러나 정권의 배경과 지식을 만들어낸것은 언론이다. 그들 지금의 정치권력을 잡고 국민을 불온시하며 자신들이 철지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을 한줄도 깨치지 못한것은 기득권과 친일에 맹종한 언론이 그렇게 한것이다.

솔직히 묻고싶다. 일개 소시민이 읽은 책과 그들 잘나간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읽은 책의 무게를 달아보고싶다. 게다가 자신의 실용적 목적 부동산 투기나 경제관련 레포트적 책을 제외하고 정말 몇권의 책을 읽었는지 묻고 싶다. 내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내세우는게 아니라, 그져 책을 통해 세계관과 가치관을 끓임없이 닦고 갈았는지를 묻고싶은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겐 신문 몇장이 몇권몇백권의 책을 대신했을것이며, 그것이 온통세상의 지침서이고 가르침인냥 알고 살았을것이다.
그러나 그 신문이 오염된것인지도 모른채 그져 그게 맞다고주장하고 그것을 앵무새처럼 다시 리플레이하는 그들의 무뇌한 머릿속을 어찌해볼수없다는것은 예전부터 알고있다. 여기이책에서 보여주는 언론의 언론플레이(언론이언론답지 못하게 선동이나 다른 목적의 도구로이용당하는)는 결국 국민의 눈과 생각을 잘못이끄는 것의 처음이자 파국의 마지막을 가져오는 검은 악마인셈이다.
그들 일본인 개개인 어느누구도 자기자식과 남편과 아들을 먼 만주같은 타국의 전쟁터에 서길 바라지않을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들일본 청년들을 그곳에서 죽게하였는가하는 것을 생각하면, 전범들이 가진 잘못을 열에 하나쯤이라면, 전범들의 생각들 사회에 만연시키고 국민들을 추동한 언론이 십에 아홉이상의 책임이있다. 전쟁 특히 남의나라를 집어먹는 침략에 정당성을 만들어내고 국민들을 동의하게하고, 심지어 전쟁의 피해가 현실화되는 상황(사상자 발생, 급증)에 조차 오히려 애국심을 선동하고 미화하고 그래서 끝내 파국으로 가는 검은 열차의 뇌관을 준것이 바로 인쇄잉크나는 신문이며 잡지이며 언론이라 불리는것들이다.

오늘 한국의 언론행태는 일본의 전쟁전후의 언론보다 더 사악한것들임을 조금이나 책을 대하는 독자라면 익히알수있다. 그러나 한국의 그러한 언론에 대한 개혁을 만들만한 조그만 동기와 동력이 부족한 사회라는 인식을 깨우치는 순간에 이르면 절망스런 고통이 가슴부터 차밀어 오른다. 어찌해볼수없는 언론이 그 하나만이라면 그나마 눈감을수있지만, 언론다음이 되어야할 교육도 정말 최후의 보루인 종교도 바름에 따르기 보다는 이득과 권력에 눈을 맞추니 이제 앉자서 쇠망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지...,
일본의 패망이 왜 우리의 앞선모습처럼 보이는지
기가막힌 멍한 눈으로
이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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