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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으로 '친일 공세' 반격, 성공 못 한다
[김민하 칼럼]
기자명김민하 저술가
입력 2024.08.26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지난주 조선일보는 여당에 두 가지를 사실상 주문했다. 첫째, 머뭇거리지 말고 야당과 싸우라. 둘째, ‘반일공세’는 ‘괴담’으로 받아치라. 22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가 방류된 지 1년 정도 지났다”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괴담 정치를 반드시 종식시켜야 한다”고 했다. 23일 대통령실도 “야당의 황당한 괴담 선동 아니었으면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6000억원이 이 과정에 투입됐다”며 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일본’과 ‘괴담’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 앞에 오랜만에 다들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정권에 의해 장악된 KBS는 이제 ‘오염 처리수’라고 보도한다. 일부 언론은 “자취 감춘 '세슘우럭' 괴담…일본산 수산물 수입 늘어” 등과 같은 제목을 달아 당정의 기류에 발을 맞추고 있다. ‘세슘우럭’은 괴담인가? ‘괴담’이라고 하면, 아예 없는 사실을 지어내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있는 사실을 기본으로 하더라도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일 테다. 그게 맞는지 따져보자.
24일 KBS 뉴스9 '오염처리수 대응 1조 6천억여 원 투입…일본산 수입은 늘어' 보도화면 캡처
일단 ‘세슘 우럭’은, 존재했다. 후쿠시마 원전 앞 항만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 180배를 넘는 세슘이 검출됐다. 도쿄전력은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들이 항만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슘은 생물농축의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그물로 가두지 못하는 작은 생물들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도쿄전력의 이러한 ‘그물 대책’은 실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책이 실효적이지 않다면 일본 어업은 물론이고 국내 수산물 업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애초 ‘세슘 우럭’이 등장한 당시는 이런 얘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탈원전’을 악마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일군의 전문가란 사람들이 등장해 반론을 시작했다. 첫째, ‘우려’는 우럭이 후쿠시마 원전 앞 항만에서 잡힌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앞서 봤듯 이는 애초 논의의 전제였다.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바보 취급한 거다. 둘째, ‘세슘 우럭’이 있다 해도 우리 밥상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우려의 초점은 앞서도 짚었듯 우럭을 실제 먹게 되느냐가 아니었다. 셋째, 인생에 한 번 정도라면 ‘세슘 우럭’은 먹어도 된다. 그러나, 가령 임산부의 경우 어느 정도 안전하다는 게 입증이 됐다 해도 CT촬영 등은 자제한다. 하물며 기준치 180배의 ‘세슘 우럭’이라면? 결론적으로 이런 ‘반론’은 ‘괴담’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것에 가깝다. 지금 언론의 ‘괴담’ 타령은 이 허수아비를 다시 꺼내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1년이 지났으나 아무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용산, 여당, 보수언론 등의 지적인데, 1년이 지난 시점에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애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30년 간 이뤄지는 게 기본 계획이다.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다. 내부에 일본인들이 ‘데브리(debris)’라고 부르는, 핵물질과 잔해가 엉겨 붙은 폐기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데브리’를 꺼내지 못하면 현재 일본 정부 방침의 전제인 2051년 폐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13년이 지났는데 이 작업은 사실상 시작도 안 된 상태다. 최근에도 시도하다 실패했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은 오염수 방류가 일본 정부가 상정한 기간보다도 훨씬 오래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탈원전’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 말하는 ‘좌파의 괴담’이 아니다. 보수언론인 동아일보 23일 횡설수설 코너에도 이렇게 써있다. “데브리를 꺼내지 못하면 오염수가 계속 발생한다. 데브리는 지금도 붕괴열을 내기에 임시방편으로 격납 용기에 냉각수를 주입해 식히고 있다. 지하수도 유입된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염된 물을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설비로 처리한 뒤 1년 전부터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폐로를 2051년까지 마친다는 게 목표지만 일본 내에서도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10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 1년 지나고 ‘문제 없었으니 사과하라’는 게 합리적 태도인가?
용산이 ‘1조 6000억원’을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이라고 말한 것은 충격적이다. 야당의 ‘괴담’이 없었더라도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한국 정부가 검역을 강화하고 위험성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용산 대통령실은 야당의 ‘괴담’이 없었으면 마치 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본심을 드러낸 것인가?
후쿠시마 제1원전(연합뉴스)
이러한 새삼스러운 태도에는 나름의 전략이 깔려있다고 본다. 첫째는 최근의 광복절, 뉴라이트 논란 등을 ‘반일 선동’ 코드로 맥락화 하면서 쪼개진 보수 유권자층을 ‘반(反)민주당’으로 다시 조직화 하는 것이다. 둘째는 앞으로도 이어질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야당의 여러 의혹 제기를 ‘상습적 괴담 선동’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컸던 정권 초기면 모를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의문이 커져 있는 지금 시점에 이런 전략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상당한 의문이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한일관계에 있어 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이를 정당화 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방한을 하는 게 그렇다. 기시다 총리는 이를 통해 대내적으로 ‘대외정책의 연속성’을 고리로 하여 ‘후계 구도’에 개입할 수 있게 될 거다. 기시다 총리와 궤를 같이 하는 새로운 총리가 탄생하면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에 한일 간 새로운 시대를 가리키는 어떤 ‘선언’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경제·문화적으로 더 밀착된 관계를 그리면서 한미일 군사 협력의 획기적 강화를 목표로 하는 내용일 거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과거사나 영토 분쟁과 같은 문제에 대한 정리가 필수다. 우리가 크게 양보하거나 있는 갈등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논란을 이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령 1965년 한일수교 때는 6.3 항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을 우려해 지금부터 ‘한일 갈등’을 연상하게 하는 요소를 다 국민의 눈 앞에서 치우려고 하는 게 아닌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타령도 그 연장선상이 아닌가? 기우이길 바라지만 그런 거라면 꿈 깨라고 하고 싶다. 권위주의 시절의 해법이 통하는 그런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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