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기억으로 복원한 6·25전쟁의 상흔…유종호 '회상기' | 연합뉴스

기억으로 복원한 6·25전쟁의 상흔…유종호 '회상기' | 연합뉴스

기억으로 복원한 6·25전쟁의 상흔…유종호 '회상기'

송고시간2016-05-04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세번째 책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삶과 역사의 비극적 인식을 통해서 후속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 없는 부정 일변도의 사고에서 창조적인 삶과 사회는 구상될 수 없을 것이다." ('책머리에')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연세대 특임교수가 에세이 '회상기-나의 1950년'(현대문학)을 펴냈다.

'회상기-나의 1950년'은 유 전 교수가 '나의 해방 전후'와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에 이어 펴낸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세 번째 책이다. 책은 작년 1년 동안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된 글들을 모았다.
그는 1950년 전쟁발발 당시 뒤숭숭한 분위기와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린다
. 당

유 전 교수가 살았던 충북 충주읍 용산리에 전쟁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전쟁 발발 다음 날인 6월 26일이었다.

큰 동요 없이 일상을 이어나가던 마을은 1주일이 지나서야 급박한 전황을 전해듣고 한두 가정씩 피난길에 오른다. 그의 가족들도 먼 인척뻘이 사는 욕각골로 피난하고, 거기서 가족들은 불안하고 불편한 일상과 마주치게 된다.

용산리집과 욕각골을 오가던 유 전 교수는 제트기 공습과 인민군, 시체 등 생각지 못한 공포를 계속해서 마주한다.

그는 눈병을 치료받지 못해 실명의 공포에 시달리고, 겨울을 나려고 나뭇집을 져 나르다 산 주인에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또 의용군에 자원한 친구와 선배, 학생에게 죽임을 당한 교사 등을 묘사하며 전쟁이 남긴 상처들을 꼼꼼하게 훑는다.

유 전 교수가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도 책에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전란의 상황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모를 당하고, 이를 지켜보던 그도 알 수 없는 비애감을 느낀다. "전쟁의 상흔이 규격화된 상투어로 일괄 처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그의 목적의식은 자신의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상처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내가 겪은 일은 수많은 개인 경험의 하나일 뿐이다"라며 "하지만 이를 사실에 맞게 적음으로써 시대를 상상하는데 조그만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경험자의 생생한 증언은 많으면 많을수록 역사적 진실의 참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리라 믿는다"고 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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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교수의 1950년대 ‘기억 투쟁’
기자석진희
수정 2019-10-20 17:20
등록 2016-05-05 20:31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742722.html


회상기
유종호 지음/현대문학·1만5000원

역사가 ‘절판된 책들의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재밌다. 괜히 더 애틋하고.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81) 전 연세대 교수가 1950년의 기억을 써냈다. 1940~49년 기록인 <나의 해방 전후>, 51년 기록인 <그 겨울 그리고 가을>에 이은 세 번째 ‘역사물’이다.

지은이가 15살이던 해 여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국전쟁이 난 바로 그때다. “전쟁의 상흔이란 규격화된 상투어로 일괄 처리되는 개개 인간의 불행과 고뇌가 얼마나 모질고 다양한 것인가를 재확인”시키는 게 이 책의 보람이라고 지은이는 쓴다. 매 시대, 곧 현재는 ‘기억’으로 과거를 갱신한다. 그리고 기억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형태는 문학이다. 지은이는 문학가로서 과거를 진술해 망각을 깨운다. 현재와, 현재의 연장이자 분신인 미래를 위한 작업이다. “삶과 역사의 비극적 인식을 통해 후속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은 노학자의 뜻을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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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는 성인뿐 아니라 학생용 자술서도 있었다. 상급반 우익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최근 3개월 동안 한 일을 몽땅 적어 내도록 했다. 
  • 서울 수복 이전 좌파 조직에 가담하거나 야간시위에 참석한 학생을 “가두어두고 심문하고 구타”하는 ‘국민학교 지하실’의 존재는 공공연했다. 
  • 좌익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우익 학생에게 피살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새 밥을 주고 “쉰 꽁보리밥을 냉수로 씻어 드”셨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역을 했다. 
서울 수복 뒤 부친은 “관대한 처분을 비”는 자수서를 여러 번 썼다.
 “그까짓 석 달을 못 참아 부역을 한단 말이오?” 
부친을 비난하는 한 어른에게 어린 유종호는 속으로 “격하게 항변”했다.
 ‘석 달일지 30년이 될지 어떻게 압니까?’ 
당시 부친을 비난한 목소리는, 서울로 돌아온 이들이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가진 대체적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에서 유통된, 부역자를 대하는 공식 태도가 이런 방식이었음을 지은이는 에둘러 보여준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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