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유종호 교수의 1950년대 ‘기억 투쟁’

유종호 교수의 1950년대 ‘기억 투쟁’


문화책과 생각
유종호 교수의 1950년대 ‘기억 투쟁’
기자석진희수정 2019-10-20 



회상기
유종호 지음/현대문학·1만5000원

역사가 ‘절판된 책들의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재밌다. 괜히 더 애틋하고.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81) 전 연세대 교수가 1950년의 기억을 써냈다. 1940~49년 기록인 <나의 해방 전후>, 51년 기록인 <그 겨울 그리고 가을>에 이은 세 번째 ‘역사물’이다.

지은이가 15살이던 해 여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국전쟁이 난 바로 그때다. “전쟁의 상흔이란 규격화된 상투어로 일괄 처리되는 개개 인간의 불행과 고뇌가 얼마나 모질고 다양한 것인가를 재확인”시키는 게 이 책의 보람이라고 지은이는 쓴다. 매 시대, 곧 현재는 ‘기억’으로 과거를 갱신한다. 그리고 기억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형태는 문학이다. 지은이는 문학가로서 과거를 진술해 망각을 깨운다. 현재와, 현재의 연장이자 분신인 미래를 위한 작업이다. “삶과 역사의 비극적 인식을 통해 후속 세대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은 노학자의 뜻을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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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성인뿐 아니라 학생용 자술서도 있었다. 상급반 우익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최근 3개월 동안 한 일을 몽땅 적어 내도록 했다. 서울 수복 이전 좌파 조직에 가담하거나 야간시위에 참석한 학생을 “가두어두고 심문하고 구타”하는 ‘국민학교 지하실’의 존재는 공공연했다. 좌익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우익 학생에게 피살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새 밥을 주고 “쉰 꽁보리밥을 냉수로 씻어 드”셨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역을 했다. 서울 수복 뒤 부친은 “관대한 처분을 비”는 자수서를 여러 번 썼다. “그까짓 석 달을 못 참아 부역을 한단 말이오?” 부친을 비난하는 한 어른에게 어린 유종호는 속으로 “격하게 항변”했다. ‘석 달일지 30년이 될지 어떻게 압니까?’ 당시 부친을 비난한 목소리는, 서울로 돌아온 이들이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가진 대체적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에서 유통된, 부역자를 대하는 공식 태도가 이런 방식이었음을 지은이는 에둘러 보여준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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