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동물과 괴물 < 1950년대 전후(戰後)문학의 대표작가 손창섭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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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괴물
기자명김병길 주필
입력 2015.07






1950년대 전후(戰後)문학의 대표작가 손창섭의 행방이 묘연했다. 최근 그가 일본에서 쓸쓸히 작고 한 것으로 밝혀져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1955년 감옥의 풍경을 통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며 전후의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 ‘인간동물원초( 人間動物園抄)’를 발표했다. 소설에서 감옥의 죄수들은 동물원에서 처럼 동물적인 본능으로 위계질서를 형성하면서 생존을 이어간다.

죄수들은 때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발광하기도 한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자행하는 폭력, 옛 권력과 새 권력의 신경전, 더 큰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광경이 날것 그대로 최근 연극(김수정 각색·연출) 무대에서도 펼쳐졌다. 무대에서 죄수 통역관은 “약자끼리의 싸움이란 언제나 강자를 위한 자멸”이라며 원작 소설의 대사를 통해 틀에 갇혀 사는 인간들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하기전 ‘배신의 정치’를 꾸짖자 ‘동물의 왕국’이 회자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하니까요”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거구의 물소와 일대일로 붙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물소처럼 덩치가 큰 사냥감은 사자도 떼를 지어 공격한다. 그리고 물소에게 당한 수사자도 늙고 쇠약해지면 젊은 수사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무리에서 쫓겨난다. 북극곰은 굶주리거나 번식기가 되면 새끼곰을 먹어치운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 동시에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것이 동물학자들의 얘기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배신의 정치’라는 말 한마디를 놓고 떼를 지어 사냥감을 물어뜯듯 달려든 야당의원들을 보니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 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들과 야수들끼리도 공포와 고통, 희열이 그들을 동요시키면 잡다하고 상이한 음성을 들려준다.
하지만 동물은 인간보다 더 나을때도 있다. 그들은 질문도 하지 않거니와 비판도 하지 않는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처럼 동물원의 짐승들이나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인간이나 그들의 운명(運命)은 다르지 않다.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괴물의 왕국'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정치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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