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2

박찬모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비정치적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교류를”2017

박찬모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비정치적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교류를”

박찬모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비정치적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교류를”
<한겨레> 인터뷰
“북도 트럼프 좀 특이하다는 것은 아는데, 대화 기대도 있어 보인다”
“학생들은 거의 영재학교 출신…언어번역, 인공지능, 게임 개발, 무인자동차 등 연구”
“5·24 대북 제재 조처로 한국 국적 교수 가르칠 수 없어”
“휴대폰으로 국제전화 가능…요금 비싸 주로 카톡 이용”
“외국인 규제 많이 유연해져”…“평양 거리 많이 바뀌고 주민들도 활기”
“차기 한국 정부 남북관계 개선·평화 공존 정책 마련해줬으면”
기자이용인
수정 2019-10-19 11:23
등록 -02-08 19:04



평양과학기술대학(평과대)은 북한에 있는 유일한 ‘국제사립대학’이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며 지난 2009년 평양에 설립된 이 대학은, 주변의 반신반의 속에서도 지난 2010년 처음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학부 200명, 대학원 8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학부 100명, 대학원 20여명이 졸업한다. 박찬모 이 대학 명예총장(82·전 포항공대 총장)은 학기 중엔 평양에 체류하다 미국 매릴랜드주 자택에서 방학을 보낸다. 박 명예총장은 7일(현지시각) 워싱턴 근처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만나 “정치적이 아닌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간 교류가 가능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대한 북한 쪽 분위기는 어떤가?

“기대를 좀 하는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선됐으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비슷한 정책을 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이 좀 특이하다는 것은 아는데,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냐 하는 기대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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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과대가 이렇게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하.(웃음) 기독교 기반 사립대인데다, 영어로만 가르치는 국제학교를 내세웠으니 그랬을 것 같다. 초기엔 북한이 건물을 완공하면 빼앗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주변에 있었다. 나는 그때 북한이 탐내는 것은 교수들과 교육 프로그램이지, 건물이 아닐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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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과대 교수진은 모두 몇명인가?

“의과대학(현재는 치대만 있음) 등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80명정도 되고, 직원과 가족들까지 넣으면 120명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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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명예총장은 대학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일이 굉장히 많다. 우선 강의로 컴퓨터그래픽과 가상현실을 가르친다. 대학원에서 한 학기에 한과목 가르친다. 김진경 총장은 주로 학교 운영에 관한 것을 하고, 나는 학사관계 일 등을 주로 맡는다. 3월부터 6월중순까지, 9월부터 12월 중순까지 강의를 하고, 방학 때는 주로 미국에서 거주한다.”

-대학 운영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교직원은 모두 무보수로 일하는 자원 봉사자다. 다만 숙식은 대학에서 제공해주는데, 한끼에 900여명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비만 해도 상당히 많다. 학생들도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운영비는 모두 후원금으로 충당하는데, 주로 기독교 단체가 하고 있고 의학부는 미국에 있는 교포 의사들이 많이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포항공대 은퇴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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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생들의 학습 수준이나 능력은 어떤가?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제1중고등학교(북한의 영재학교) 출신으로 매우 우수하다. 특히 수학을 잘한다. 언어번역, 인공지능, 게임 개발 등 소프트웨어 쪽은 포항공대 학생에 뒤지지 않는다. 무인자동차 연구도 한다. 농과대학에선 온실에 컴퓨터를 도입해 관리하는 연구도 한다. 다만, 하드웨어 분야는 첨단기기 수입 제재와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뒤떨어지는 편이다.

-평과대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2010년) 5·24 대북 제재 조처로 한국 국적의 교수가 와서 가르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의 제자들이 와서 가르치면 교수 부족 문제를 많이 해소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기술 교류 등 정치적이 아닌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간 교류가 가능하면 좋겠다.”

-가장 큰 보람이라면?

“학생들이 국제학술대회와 해외 유학 및 연수를 통해 국제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이나 브라질로 유학 갔다 온 학생들이 많이 변한 것 같다. 또한, 학생들도 우리가 희생적으로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늘 고마워한다. 리포트 쓸 때도 정말 우리한테 좋은 것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써놓는다.”





-북한에선 어디에 거주하나.

“평과대 캠퍼스 내의 교수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학생들도 모두 대학생 기숙사와 대학원생 기숙사에 살고 있다.”

-시장 같은 곳도 가나

“당연히 간다. 물론 북한 안내원들과 같이 가지만, 우리를 믿을 수 있으니 차에서 보통 기다린다. 평양에 마트도 여러개 생겼다.”

-미국과 전화통화도 가능한가?

“외국인 전용망이 따로 있다. 북한 주민들과의 휴대전화 통화는 못하지만 국제전화는 할 수 있다. 또, 북한 안에 있는 외국인들끼리 통화도 가능하다. 국제전화료는 좀 비싸다. 미국의 경우 1분에 5달러다. 처음엔 미국에 있는 부인과 전화로 하다가, 요새는 주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요새는 ‘나래’라는 이름의 현금카드를 주로 사용한다. 돈을 충전해 놓고 상점같은데서 그것으로 결제하면 된다. 많이 편해졌다.”

-외국인이 북한 원화를 사용할 수도 있나?

“당연히 사용할 수 있다. 북한 돈만 받는 백화점이나 시장에선 원화로 계란 등을 살 수 있다. 공정환율은 100원정도인데, 통일시장이나 백화점 창구에서 바꿔주는 시장환율은 변동이 있지만 1달러에 8천원정도를 준다.”

-외국인도 원화를 쉽게 바꿀 수 있다면, 다 원화로 사는 게 더 싸지 않나.

“그렇지 않다. 외교관들이 가는 고급 백화점에 가면 계란 10개에 1.25달러인데, 시장에서는 10개에 8천원원이다. 환율을 따져보면 시장에서 약간 싼 수준이다. 채소는 통일시장이 훨씬 싸고 싱싱해서 주로 거기서 많이 산다.





-지난해 북한 핵실험으로 두번의 유엔 대북 제재가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나?

”지난해 9월 초에 평양에 들어가 3개월간 생활 하면서 느낀 것은 유엔 제재 영향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여러 생필품이 상점에 없어 북한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땅콩버터나 치즈는 살수가 없었다. 규제품도 아닌데 들어오지가 않았다. 하지만 평양의 일반인들 삶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평과대도 대북 제재로 영향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평과대 대학원생의 논문연구에 필요한 기기는 많은 경우 중국에서 사 오는데 2015년에는 송금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2016년에는 중국 은행이 매우 까다롭게 굴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은 구입은 했다. 또한, 독일 괴팅겐대학 대학원, 이탈리아 브레시아대학 및 사니오 대학원의 대학원에서 입학을 허락 받은 학생들이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의 비자를 받지 못해 유학을 가지 못했다. 유학생을 보내 국제사회 경험을 쌓게 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한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평양에 돈이 돈다는 얘기가 많다. 실제 그렇다고 느끼나?

“평양 국제상품 박람회를 봄과 가을 두번씩 여는데 마지막날엔 ‘떨이’를 한다. 중국에서 가져온 물건은 되갖고 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달러를 한주먹씩 갖고 온다. 외국에 가서 1만달러정도 버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것도 들었다.”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러모로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많이 유연해졌다. 옛날엔 나쁜 거리 모습 안보여주려고 금방 갈 수 있는 곳도 돌아서 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하철에서 비디오 찍는 것도 허용한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선군보다는 경제 쪽에 관심을 많이 두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을 혁신했는데, 미래과학자거리는 가 본 사람들이 ‘평양 맨해튼’이라는 의미에서 ‘평해튼’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금강산에 갔더니 북한 주민들이 와서 먼저 사진 찍자고 하더라. 추석 때는 그냥 북한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도 하고 그랬다. 사람들 표정이 많이 활기차 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하나도 안변했다고 하는데, 자주 안가봐서 그럴 것이다.“

-학생들한테도 변화의 조짐이 있나?

”북한의 젊은이들은 많이 변하는 것 같다. 2010년 대학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학생들은 앞에 가는 교수를 지나가지를 못하고 뒤를 따라왔다. 교수가 바쁠텐데 앞서 가라고 하면 “Sorry Sir, Thank you Sir”(죄송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오는 학생들은 이러한 봉건적 예의를 탈피한 듯 그냥 앞질러 지나간다.(웃음)

-차기 한국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떡하든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와 다르게 대화를 하면서 천안함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해서 기대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많이 변했다. 미 국무부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하고 된 다음에 왜 달라졌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같다. 그들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워싱턴/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이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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