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

당신이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할 이유 | 한국일보

당신이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할 이유 | 한국일보

당신이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할 이유
라제기 기자
입력 2020.10.30 09:00 수정 2020.10.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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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는 1970년 페미니즘을 반대하며 극우진영에서 맹활약한 필리스 슐래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왓챠 제공








미국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는 국내 OTT 왓챠에서 볼 수 있는 화제작입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결혼한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미국 극우 여성 활동가 필리스 슐래플리(1924~2016)가 중심인물입니다. 슐래플리는 전통적 가족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남녀평등을 반대했던 실존 인물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고, 트럼프 당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은 1970년대입니다. 당시 미국은 남녀평등에 대한 헌법 수정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진보 진영은 남녀평등을 헌법에 명시하려 했고, 보수 진영은 이에 반대를 했는데요. ‘미세스 아메리카’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싸움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진보적 여성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들은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수정안은 미 의회에서 통과를 했고, 각 주별로 비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워싱턴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비준은 무난해 보였습니다. 한데 슐래플리가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 비준이 어려워집니다.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 하는 첫 번째 이유,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내용은 단순하게 보면 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의 대결로 볼 수 있습니다. 슐래플리와 유명 페미니스트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종종 부딪히는데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 잡지 ‘미즈’를 창간해 ‘미즈’라를 호칭을 유행시킨 사람입니다. ‘미즈’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미스라 부르고, 결혼한 여자를 미세스라 부르는 것 자체가 가부장제 사회의 소산물이라고 보고, 미스터처럼 하나의 호칭으로 여자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미세스와 미즈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는 남녀평등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성과 여성이 싸우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역사는 흔히 남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미세스 아메리카’를 보면 적어도 1970년대 미국 역사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자들이 만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 하는 두 번째 이유,

진정한 남녀평등,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주인공 슐래플리의 삶이 매우 역설적입니다. 슐래플리는 똑똑하고 혜안을 지녔으나 정작 정치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에서죠. 드라마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베티 프리던 등 유명 페미니스트들이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여성 해방과 남녀평등을 외치는 이들의 활약상과 갈등을 볼 수 있는데요. 안티 페미니스트 슐래플리는 여성이 가정 안에서 남편 보호 아래 있어야 행복하다면서도 정작 외부 활동이 페미니스트 못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는 발끈 화를 내기도 합니다. 뒤늦게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고 싶은데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영화는 역설적인 이런 장면들을 통해 남녀평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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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아메리카'에서는 1970년대 활약했던 여성 운동가들의 면면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왓챠 제공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 하는 세 번째 이유

미국 현대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미세스 아메리카’를 보면 지금 미국 사회와 정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분열과 진영 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 미국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50년 전 역사라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저희들에게 고민거리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예를 들면 드라마에서 낙태는 중요한 이슈로 등장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낙태법을 놓고 갈등이 불거졌는데요. ‘미세스 아메리카’를 보면 찬반 양측의 중요한 논리를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 하는 네 번째 이유

싱크로율 99.99%인 배우들의 명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슐래플리를 연기한 배우는 케이트 블란쳇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아는 유명 배우입니다. 호주 출신인 케이트 블란쳇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출연을 자청했습니다. 책임프로듀서로 드라마 제작을 이끌었고, 극본 작업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블란쳇은 슐래플리와 달리 페미니스트입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역할을 맡은 배우 로즈 번도 주목할 만합니다. 커다란 잠자리테 안경을 쓴 모습이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닮았습니다. 슐래플리를 추종하는 주부 애비를 연기한 배우 사라 폴슨의 연기도 눈 여겨봐야 합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거의 유일한 정신적 성장을 하는 인물로 숨은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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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아메리카'의 케이트 블란체는 연기뿐 아니라 책임프로듀서로 일하며 드라마 제작을 이끌었다. 왓챠 제공






‘미세스 아메리카’를 봐야 하는 다섯 번째 이유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드라마입니다.

애너 보든과 라이언 플렉 감독이 연출을 주로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 ‘캡틴 마블’을 공동 연출해 화제가 됐던 커플입니다. ‘미세스 아메리카’ 에피소드 9편 중 4편을 이들이 연출했습니다. 나머지 5편도 아마 아산테 등 여성 감독들이 연출했습니다. 앞에서 줄거리를 말씀드렸듯이, 주연은 모두 여성이고, 남성은 조연급 정도로만 출연합니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들끼리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라면 꼭 봐야 할 드라마가 아닐까요.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그리고 여성문제에 대해 평소 문제제기를 해왔던 이들이라면 여성 운동과 반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현유리 PD yulsslu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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