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2

[인터뷰] 朴贊謨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 : 월간조선 2012

[인터뷰] 朴贊謨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 : 월간조선
2012 MAGAZINE전체기사

인터뷰
朴贊謨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
“평양과기대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은 포스텍과 비슷”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지금 당장 통일되면 안 돼요. 준비 없이 됐다가는 오히려 큰일 나요. 남과 북이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시급합니다”

⊙ 평양과기대는 북한 사회의 국제화에 큰 역할 할 것
⊙ “從北·親北 세력은 북한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 北, 수학 교육 시간 남한보다 두 배 많아

朴贊謨
⊙ 77세. 서울대 화공과, 미국 메릴린대 공학 박사.
⊙ 포스텍 총장,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 한국연구재단 초대 이사장 역임. 現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대한민국 IT 분야의 원로학자인 박찬모(朴贊謨) 포스텍(포항공대) 전 총장이 2005년 평양과학기술대학(이하 평양과기대ㆍPUST) 설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다고 했을 때, 학계는 물론 기독교계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평양과기대가 북한의 체제 유지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450억원에 달하는 대학 설립 비용도 국내 기독교 단체들이 대기로 한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9월 1단계 공사를 완료했고, 1년 뒤인 2010년 10월 첫 수업을 시작했다.

그 무렵 한국연구재단(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개발사업 총괄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던 박찬모 전 총장은 평양과기대 명예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국적(國籍)이 미국이라 가능했다. 박 총장은 “몇몇 동료들로부터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박 총장은 현재 평양과기대에서 시스템 시뮬레이션 과목 등을 직접 강의한다. 베이징을 통해 평양으로 가기 직전인 지난 3월 초, 서울 강남역 근처 ‘사랑의 교회’ 별관에서 그를 만났다.


“北 도우려면 北 제대로 알아야”

―친북ㆍ종북 인사라는 얘기를 들으면서까지 평양과기대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뭡니까.

“오래된 친구들까지 그런 말을 하더군요. 그냥 웃어버려요.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요. 저는 2007년 대선(大選) 때 이명박(李明博)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후에는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습니다. 2009년에는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등 교과부 산하 3개 재단을 통합해 만든 ‘한국연구재단’ 초대 이사장도 지냈어요. 제가 북한 체제를 추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제가 김진경(金鎭慶) 총장과 함께 평양과기대 설립을 주도한 것은 민족 화해와 통일, 경제 번영을 위해서입니다.”


―평화의 탈을 쓴 친북ㆍ종북 세력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우리 사회에 이른바 친북ㆍ종북 세력들은 북한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북한을 제대로 알면 지금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예요. 남한에서 태어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북한을 도우려면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그래야 남북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평양과기대 내에 김일성(金日成) 영생탑과 주체사상연구센터는 왜 세웠습니까. 그런 것 때문에 오해를 받는 건 아닌가요.

“그 시설물은 저희와 상관없어요. 주체사상연구센터의 정식 이름은 ‘김일성주의 연구실’인데 학생들과 북한 직원들이 토요일에 주로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생탑은 북한 내 모든 교육시설에 세워져 있어요. 평양과기대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세웠는데 그들의 돈으로, 그들이 직접 지은 겁니다. 저희 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보수진영의 한 인사는 ‘박찬모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특별보좌관 자격으로 50명의 교수를 북에 데려가 IT기술을 집중 훈련시켰고, 이것이 북한의 해커 양산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 사이버테러 부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습니다. 박 총장께서 그동안 북한에 전수한 IT기술이 대남(對南) 사이버테러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제 전공 분야는 해킹과 관련이 없어요. 저는 컴퓨터그래픽, 3D 가상현실, 그리고 시뮬레이션 쪽입니다. 언론에 공개된 디도스 테러는 대단한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쉽게 할 수 있어요.”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농협전산망 마비사태의 경우, 사건 초기에 IBM 등 서버관리업체 직원과 농협 내부직원이 공모해 고의로 ‘사이버테러’를 감행했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물론 검찰 조사 결과, 북한 노동당 정찰총국의 ‘사이버테러’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북한 소프트웨어는 선진국 수준



평양과학기술대학 조감도.
―교수 출신의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사이버테러 부대를 두 곳 이상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북한에는 컴퓨터 관련 기술대학이 평양과 함흥에 각각 1개씩 있다고 합니다. 함흥 소재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군(軍)에 간다고 해요. 그 학생들은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그들이 군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현재 북한의 소프트웨어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 북한 두둔하느냐’고 비판할 것 같군요. 과학자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소프트웨어 수준은 선진국 수준입니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의 수준도 우리의 포스텍 학생들에 비해 뒤지지 않아요. ‘은별바둑’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은별바둑이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북한의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다. 은별바둑은 1998년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연속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 그에 앞서 2002년에는 일본바둑협회가 프로그램의 수준을 아마추어 초단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비결이 뭐죠. 개발 여건이 열악했을 텐데요.

“창의적인 두뇌와 노력이 합쳐지면 얼마든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요. 제가 북한을 드나들며 놀란 것은 북한 당국이 초등학생 때부터 수학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의 경우 초등학교가 4년제인데 수학과목 수업시간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6년)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많아요. 북한 학생들은 수학적 사고가 상당히 발달돼 있어요. 노력도 엄청나게 합니다. 실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요.”

―하드웨어 쪽은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제한 조건으로 개발 환경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사실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남측의 하드웨어 기술을 합친다면 좋은 윈윈 모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어서….”

―10년 넘게 북을 오가며 북한에 과학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성과가 있었습니까.

“저는 군사기술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 자체의 과학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젊은 과학도들로 하여금 과학기술의 상업화, 산업화를 통해 북한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아직은 멀었지만요.”


특별대우 받는 평양과기대



박찬모 총장이 평양과학기술대에서 북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저는 대학원생만 가르칩니다. 시스템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서 연속체계, 이산체계 시뮬레이션을 가르치죠.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열의가 대단해요. 남한 학생들에 비해 북한 학생들은 장유유서(長幼有序) 정신이 강한 것 같아요. 예의가 바릅니다.”

박찬모 명예총장은 작년 10월 평양과기대가 주최한 ‘제1회 국제과학기술학술대회’의 의미와 성과 설명에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맬컴 길리스(Malcolm Gillis) 전 라이스대학(미국 텍사스주 소재) 총장은 물론 미국의 피터 아그레(Peter Agre) 노벨상 수상자와 영국의 데이비드 알턴(David Alton) 상원의원 등 세계적인 석학 3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어본 적이 없는 북한 당국은 대회 폐막 후 평양과기대의 개최 능력에 아주 놀랐다.

―성공을 예상했습니까.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개교한 지 1년밖에 안 된 대학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저명인사까지 초청한다고 하니 북한 정부는 믿지 않았습니다. 평양과기대의 북한 측 인사인 허광일 총장도 ‘과연 잘 되겠느냐’며 걱정을 많이 했어요. 대회가 끝난 후 북한 고위 인사들이 ‘역시 평양과기대는 다르다’며 축하해 줬어요. 학술대회를 통해 평양과기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게 돼 저 자신도 기뻤지요. 교내 북한 측 인사들이 대회 후 많은 자신감을 얻고 세계적인 석학과 인적 유대(Human Network)를 형성하게 된 것도 큰 성과로 볼 수 있지요.”

평양과기대는 김일성이 구상했던 실용,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합작대학인 옌볜과기대의 첫 졸업생(1993년)이 지린성 지방정부로 진출하는 것을 본 김일성은 곧바로 김진경 옌볜과기대 총장을 극비리에 평양으로 초청했다. 김 총장은 김일성으로부터 “북한 내에 옌볜과기대 ‘자매학교’를 세워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김진경 총장은 “함경북도 나진ㆍ선봉에 학교를 세울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듬해 1994년 7월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나진ㆍ선봉 과기대’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고 한다.

그러다 2000~2001년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해 중국의 발전을 목격한 김정일(金正日)이 북한 교육성 관계자들을 불러 김진경 총장과의 협력을 지시했다. 김정일은 ‘나진ㆍ선봉’ 지역 대신 ‘평양’에 대학교를 설립하도록 했다고 한다. 2003년 시작된 설립 공사는 6년 뒤인 2009년 9월에 마무리됐고 이듬해 10월 학생을 선발해 첫 수업이 이뤄졌다.




평양과기대 수업은 영어로 진행

현재 평양과기대는 북한 내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생전의 김정일이 공개적인 석상에서 “평양과기대를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특별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작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평양 만수대지구 재개발과 주택 10만 호 건설을 위해 전국 대학에 수업 취소령을 내렸는데 평양과기대는 제외했다.

박찬모 총장의 설명이다.

“김일성종합대, 김책공대 등 다른 대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건설현장에 동원됐어요. 우리 학교는 수업을 계속 했는데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어요. 다행히 어떤 제재도 없었습니다.”

―학생 선발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조금 특이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바로 뽑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등 우수 학교에 2년 이상 다닌 학생을 대상으로 추천과 소정의 시험을 통해 뽑습니다. 우리가 우수한 학생을 요구하니까요. 그리고 영어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어야 해요. 평양과기대는 영어로 수업을 하거든요. 원산경제대학, 원산농업대학, 함흥공업대학, 회천공업대학 등 지방 명문대 학생들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영어를 어디서 배웁니까.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시험을 대비해 특별히 준비한다고 해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토플시험을 봤는데 최고점수가 550점이었고 학생 평균이 450점이었어요. 놀라운 점수죠. 물론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영어실력이 다소 낮아요. 그런 학생들을 위해 특별반을 운영해요.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고 나면 상위권 학생들과 비슷해져요.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요. 영어를 물 먹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요.”

―재학생은 얼마나 됩니까.

“대학원생까지 포함해 270여 명 정도입니다.”

―학생들 가정환경은 어떤가요.

“집안 내력은 잘 몰라요. 아버지가 뭐 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다만 집안이 괜찮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평양과기대는 북한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평양과기대생들은 고기와 쌀밥을 실컷 먹는다”는 소문이 나 있어 서로 입학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박 총장은 “학비는 물론 먹는 것과 자는 것 모두가 무료로 제공된다”며 “평양 사람들도 쉽게 먹지 못하는 돼지고기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나온다”고 했다.

현재 평양과기대에는 여학생이 없다. 여학생을 위한 시설(강의실, 화장실, 기숙사)을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고 한다. 박 총장의 설명이다.

“북한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은 건물에서 생활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여학생을 받아들이면 여자 기숙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여학생이 없는 게 불만인가 봐요. 우스갯소리지만 작년 봄 교내에서 스피치 콘테스트(Speech Contest)를 열었는데 1등을 차지한 학생의 주제가 ‘우리 학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학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건이 되면 여학생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한국 교수들도 평양과기대에서 가르쳐야

―교수진은 어떤가요.

“40여 명의 교수진이 있어요. 대부분 외국인이지요. 미국,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호주, 중국, 독일 등 국적이 다양해요. 한국계 중국인, 한국계 미국인도 있습니다.”

―북한 현지인 교수는 없습니까.

“학사 관계를 담당하는 분은 있지만 강의하지는 않습니다. 영어 강의가 안 돼서요. 요즘 북한 교수들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북한당국은 대한민국 국적의 교수가 원한다면 평양과기대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북한 측 고위 인사에게 직접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실력 있는 남한 교수들이 와서 가르친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하더군요. 남한 교수가 북한 학생을 가르치면 남북 과학기술교류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한국 정부도 이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북한당국은 ‘국제화’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지 않습니까. 북한 지도층은 개혁ㆍ개방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데요.

“개혁ㆍ개방이라는 말은 금기시돼 있지만 ‘국제화’라는 말은 용인됩니다. 이 점을 대한민국 당국자들이 잘 알았으면 합니다. 사실 국제화나 개혁ㆍ개방이나 같은 개념입니다. 북한이 싫어하는 말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어요.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는 김정일의 명제 판이 걸려 있어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돼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바로 국제화죠.”




인터넷은 제한적으로 사용



평양과학기술대 교수진은 미국, 영국, 중국, 독일,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됐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의 인터넷 사용 빈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제한적으로 사용해요. 과제와 연구에 관련해서만 사용할 수 있지요. 현재 교내 인터넷실에는 30여 대의 컴퓨터가 있어요. 외국 사이트에 접속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남한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봐요.”

―학교를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현재로서는 돈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힘들어요. 교육환경과 관련해 전기 부족도 들 수 있어요. 컴퓨터 등 연구 기자재의 북한 내 유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애로사항입니다. 개인적으로 개성을 통해 평양으로 직접 들어갈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해요.”

―평양과기대가 남북관계 개선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까.

“평양과기대는 북한의 심장부에 있어요. 과기대 내는 평화구역 역할을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억제하고, 통일을 향한 교류협력의 터전이 될 겁니다.”

―통일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지금 당장 통일되면 안 돼요. 준비 없이 됐다가는 오히려 큰일 나요. 남과 북이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 신뢰를 쌓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시급합니다.”⊙

이승률 옌볜과기대ㆍ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

“옌볜과기대는 중국 땅에 꽃피운 동북아의 희망”

1992년 7월 15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김일성이 머물고 있던 연풍호반의 별장을 찾아 한중 수교를 공식 추진하고 있다는 장쩌민(江澤民) 당시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구두메시지를 전했다.

김일성은 “이미 결정됐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우리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합니다”라고 짤막하게 중국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냈다. 중국 대표단은 그날로 장 주석과 리펑(李鵬) 총리 등에게 결과를 보고했고, 50여 일 뒤인 8월 24일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발표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중국과의 수교가 이뤄진 직후인 9월 16일 옌지시 북산가 언덕 위 삼십만 평의 땅 위에는 2년제 대학인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현 옌볜과학기술대학)이 개교(開校)했다.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은 중국의 교육 개혁ㆍ개방 정신에 따라 설립된 중국 최초의 중외(中外) 합작대학이다.

한중 수교가 맺어진 지 올해로 20년이다. 같은 시기 문을 연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도 20년간 조선족 인재 양성이라는 ‘외길’을 달려왔다.

옌볜과기대와 평양과기대 건설에 참여한 이승률(李承律) 대외부총장의 말이다.

“옌볜과학기술대학은 1992년 9월 2년제 대학으로 시작됐지만 그 다음 해 4년제로 승격하면서 교명(校名)을 옌볜과학기술대학으로 개칭(改稱)했습니다. 빠르게 4년제로 바뀔 수 있었던 데에는 한중 수교의 도움이 컸죠. 옌볜과기대가 대한민국과의 창구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은 것 같습니다.”

―옌볜과기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뭡니까.

“저희 학생들은 캠퍼스 공용어인 중국어,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하고 컴퓨터 능력까지 갖췄어요.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들이 우리 학생들을 매우 선호해요.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베이징, 상하이, 장쑤, 톈진 등에 총 7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모비스에서 우수직원 표창을 하는데 상을 받은 학생들이 옌볜과기대 출신이었습니다. 표창을 하던 정몽구 회장께서 깜짝 놀라며 앞으로 옌볜과기대 출신 학생들을 더 많이 고용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더군요.”

―무감독 시험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처음 무감독시험제가 실시됐을 때는 학생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습니다. 많은 학생이 정직하게 시험을 치렀지만 일부 학생들은 커닝을 한 후 양심에 가책을 느껴 고통스러워했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훈련이 되고 습득이 되니까 학생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정직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성과 지식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것이죠.”

―학생들 중에 조선족이 많습니까.

“조선족 80%, 한족 17%, 고려인 및 기타 소수민족 3%로 구성돼 있습니다. 중국 교육부에서 국가고시를 실시해 학생들을 뽑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베이징대 수준의 엘리트들도 많습니다. 옌볜과기대에 오면 해외 유학 기회가 많아 학생들이 몰리죠.”

―한국 학생들은 없습니까.

“3년 전부터는 매 학기 20~30명가량 한국 유학생들을 선발합니다. 학교 홍보가 잘돼 한국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요.”

현재 옌볜과기대는 8개 학부(생물화공학부ㆍ재료기계자동화공학부ㆍ컴퓨터전자통신공학부ㆍ건축예술학부ㆍ상경학부ㆍ서양어학부ㆍ동양어학부ㆍ간호학부)를 운영 중이다. 재학생은 1800여 명이고, 미국, 유럽 등 13개국의 교수 250여 명이 재직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시행하는 100대(大) 중점대학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상경학부라고 한다.

―캠퍼스 공용어가 중국어와 한국어라고 하는데 한국어는 우리나라 표준어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북한 언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대한민국 표준어죠.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다들 서울말을 씁니다. 한국의 위상을 실감하고 있지요.”

―애로 사항은 없나요.

“한국 교회와 미국 교민 사회에서 보내온 기부금으로 학교 운영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재정이 열악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취업 및 해외유학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성공했지만, 석ㆍ박사 과정이 없다 보니 R&D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어요. 연구원이 없으니까요. 이 점이 아쉽습니다.”

―북한의 평양과기대는 옌볜과기대의 ‘동생’ 격인 대학입니다. 북한 교수들은 옌볜과기대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관심이 아주 많아요. 오래전부터 북한 교수들이 왔다 갔고, 북한 학생들이 옌볜과기대에서 수업을 받기도 해요.”

―북한이 옌볜과기대의 성공을 눈으로 확인한 후 평양과기대 설립을 허락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북한은 옌볜과기대를 암암리에 모니터링 해왔어요. 그런 와중에 북측이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하게 됐고 국제무역과 기술산업의 발전을 위해 인재양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지요.”

―김정일 시대가 가고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지금의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봅니까.

“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입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남북이 새로운 공동체 정신을 갖고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서 남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 같이 공생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되어야 우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리라는 점입니다. 김진경 총장님은 “평화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그 대가를 짊어지자”라고 늘 말씀했어요. 경제력이나 국가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참고 인내하면서 먼저 손을 내밀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그들이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돕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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