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7

알라딘: 권력과 교회 |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김진호,강남순,박노자,한홍구,김응교 2018

알라딘: 권력과 교회


권력과 교회  |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김진호,강남순,박노자,한홍구,김응교 (지은이)창비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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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247쪽
139*210mm
370g
ISBN : 9788936486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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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비평


편집장의 선택
"신도와 시민의 구분을 넘어 사회적 영성으로"
오늘날 종교와 세속, 그러니까 종교와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는 진작 끝났고, 사회가 종교를 억압하던 시절도 훌쩍 지났으니, 각자 제 영역에서 자기 할 몫을 해나갈 뿐일까.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명박 정부 초기 ‘소망교회’, 박근혜 정부 초기 ‘사랑의교회’가 정권의 실세라 불리던 때를 떠올려보면, 둘 사이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논의를 구체화시켜 사회를 한국사회로 바꾸면, 그에 응하는 종교는 역시 교회일 것이다. 이 책에 대담자로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교회는 네트워크 자본, 연줄 자본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장소다.”, “교회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형성과 한국사회의 보수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광기의 중요한 행위자다.” 그리하여 “교회는 한국사회가 지난 지독한 문제들이 집약된,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일방적 비난이라고 평하며 지나치기는 어렵다. 그간 교회 내부에서도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었고, 사회의 기준과 흐름에 어긋나는 부분들에 대한 조정도 시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피해가며, 시민으로서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신도라는 이름으로 옭아매는 교회 권력이다. 이들은 종교와 사회를 함께 사유하지 않으며, 둘이 만날 수 있는 상상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도와 시민의 구분을 넘어서는, 치열하고 온당한 새로운 사유와 상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종교적 경계를 해체하고 자민족중심주의나 이성애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소수자에게 열린", "독과점과 대물림을 정당화하는 권력화된 제도에 반대하며, 권력의 효과를 모두가 공정하게 나누는" 사회적 영성이 그것이다. 이 정도면 어긋난 종교와 사회를 제자리에 올려두고, 비로소 미래를 그려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 사회과학 MD 박태근 (20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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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총 7권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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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권력과 검찰 - 괴물의 탄생과 진화
[큰글자도서] 권력과 교회
[큰글자도서] 권력과 언론 -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
권력과 교회
[세트]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 전3권 - 권력과 검찰 + 권력과 언론 + 권력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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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 전3권 - 권력과 검찰 + 권력과 언론 + 권력과 교회


책소개
‘적폐의 성역’이라 불리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신앙과 양심의 목소리를 저버리지 않고 교회개혁에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온 신학자 김진호를 비롯해 한국 교회를 안팎에서 통찰해온 전문가들이 교회 재정과 종교인 과세, 목회자 세습, 여성혐오와 반동성애, 태극기 집회에서 발견되는 광신도 현상의 근원, 구호개발형 선교 등 핵심 쟁점을 파고들며 교회개혁이 과연 가능할지, 개신교 집단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영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나아가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마는 사회적 약자를 공동체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 사려 깊게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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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펴내며 한국의 파워엘리트를 만드는 교회

1장 기독교인은 왜 보수적인가: 후퇴한 민주주의의 표상 대담 | 대담/강남순

2장 대형교회, 그들만의 세상: 대체 불가능한 인맥 네트워크 | 대담/박노자

3장 예수천국 불신지옥: 반지성주의의 근원을 묻다 | 대담/한홍구

4장 욕망의 하나님 나라: 교회 공동체의 신뢰 회복을 위하여 | 대담/김응교

에필로그 권력의 대물림, 대형교회 패러다임을 넘어



책속에서


첫문장
김진호 : 선생님께서는 국제적인 기독교 네트워크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다가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더 집중하시는 듯합니다.



P. 19저는 우선 교회를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 한국사회가 지난 지독한 문제들이 교회 안에 집약되어 있죠. 교회 안의 교인들은 외딴 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교회 내 권력세습이 가능하게 된 풍토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8년 3월 29일자 '잠깐 독서'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8년 3월 31일자 '책의 향기/150자 맛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진호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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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로 살아온 지 30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글과 개인 저작을 남겼고, 집단 저작에 참여했다. 집단 저작 중에는 기획자로 참여해 만든 것도 많다. 일간지와 주간지 등에서 객원 칼럼리스트로 칼럼을 쓴 것도 모두 합하면 기간이 10년 정도 된다.
주요 저작으로 『반신학의 미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새로운 우파의 탄생』 『예수 역사학』 『리부팅 바울』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등이 있다.
현재는 ‘역사의 예수’와 ‘역사의 바울’에 관한 책을 쓰고 있고, 간간이 차마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다른 글을 쓰고 있다.
목회자였던 적도 있다. 한백교회 담임 목회자로 10년 정도, 소위 목회를 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연구실장으로 일한 기간도 10여 년 된다.
또 《당대비평》의 편집위원과 주간을 지냈고, 현재는 《가톨릭평론》의 편집위원이다. 접기

최근작 : <극우주의와 기독교>,<전쟁 넘어 평화>,<길 없는 길 위에서> … 총 54종 (모두보기)

강남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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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의 브라이트 신학대학원(Brite Divinity School, Texas Christian University)에서 석사·박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 나라(한국, 독일,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미국 드류 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철학 석사(M.Phil)와 박사(Ph.D)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 나라(한국, 영국, 미국)에서 교수로서 가르친 경험을 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적 경험들은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을 구성하게 했다. 첫째, 학문 세계와 일상 세계, 그리고 이론과 실천이 분리 불가의 의미로 자리 잡아야 할 것, 그리고 둘째, 모든 학문적 이론은 궁극적으로 ‘나’와 ‘너’가 ‘함께-잘-살아감’을 확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대학원에서 자크 데리다,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 그리고 종교 관련 세미나를 하고 있으며, 이 모든 주제는 바로 ‘함께 살아감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angnamsoon 접기

최근작 : <철학자 예수>,<함께 비를 맞는 평화로운 화요일>,<[큰글자책] 데리다와의 데이트> … 총 43종 (모두보기)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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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코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대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대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주목받았으며, 《당신이 몰랐던 K》 《미아로 산다는 것》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동아시아 포스트자본주의 대안: 평가와 전망>,<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큰글자도서] 전쟁 이후의 세계> … 총 104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한홍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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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한국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고,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와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대한민국사』(전4권)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사법부』 『역사와 책임』 『유신』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와 함께 걷다』 『특강』 등이 있다.

최근작 : <유신>,<절반의 한국사>,<민주주의 역사 공부 2 : 5.18민주화운동> … 총 84종 (모두보기)

김응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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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학평론가
고개 숙인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그는 『일본적 마음』 『일본의 이단아-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 新幹社,2007) 등을 내며 한일 간의 관계를 기록해왔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어둠의 아이들』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아키공역, 東京: 藤原書店, 2007) 등이 있다.
이외에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씨앗/통조림』과 세 권의 윤동주 이야기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 『나무가 있다-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 『서른세 번의 만남 - 백석과 동주』 를 냈고, 평론집 『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 『좋은 언어로 - 신동엽 평전』 『그늘 - 문학과 숨은 신』 『곁으로- 문학의 공간』 『시네마 에피파니』를 냈다.
2017년 《동아일보》에 <동주의 길>, 2018년 《서울신문》에 <작가의 탄생>을 연재했고, 2023년 《중앙일보》에 <김응교의 가장자리>를 연재하고 있다.
1996년부터 도쿄외대,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에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 동안 강의하다가 귀국하여, 현재 숙명여대 교수로 있다. 가끔 유튜브 <김응교TV>에 영상을 올린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백년 동안의 증언>,<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 총 8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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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대온실 수리 보고서>,<잠든 사람과의 통화>,<불량한 자전거 여행 4>등 총 3,866종
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1위 (브랜드 지수 272,099점), 국내창작동화 1위 (브랜드 지수 3,011,876점), 청소년 소설 1위 (브랜드 지수 1,361,57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왜 성조기를 드는가?
목사 세습이 가능하고, 종교인 과세가 어려운 이유는?
대형교회는 어떻게 특권층의 안식처가 되었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교회는 왜 혐오를 부추기나?

개신교에 대한 비아냥의 말, ‘개독’이 널리 퍼진 데서 알 수 있듯, 오늘날 한국 교회는 한국사회의 적폐가 축약된 장소로 여겨진다. 국내 ‘신자 수 1위’(2015 인구주택총조사)임에도 ‘신뢰도 꼴찌’(2017 기독교윤리실천운동)를 기록한 종교가 바로 개신교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교회는 정치·경제 지배권력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적폐의 성역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1987년 이후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가 진행된 와중에도 일부 교회에는 목회자 세습을 비롯한 전근대적 시스템이 굳건하다. 혈통세습을 하지 않는 교회라 해도 국가의 세무 담당 공무원조차 열람할 수 없는 재정장부, 여성·성소수자·무슬림을 향한 목사의 혐오발언에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소통구조는 교회를 더욱더 폐쇄적인 공동체로 만든다. 더욱이 최근 대형교회는 결혼·취업을 위한 인맥시장으로 기능하며 중상류층의 배타적인 ‘웰빙’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사회의 평균 수준보다 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양극화된, 후퇴한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교회를 꼽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는 교인들조차 자신의 종교를 신뢰하지 못해 교회를 떠나게 하는 주요인이다.
이 책 『권력과 교회』는 ‘적폐의 성역’이라 불리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신앙과 양심의 목소리를 저버리지 않고 교회개혁에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온 신학자 김진호를 비롯해 한국 교회를 안팎에서 통찰해온 전문가들이 교회 재정과 종교인 과세, 목회자 세습, 여성혐오와 반동성애, 태극기 집회에서 발견되는 광신도 현상의 근원, 구호개발형 선교 등 핵심 쟁점을 파고들며 교회개혁이 과연 가능할지, 개신교 집단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영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나아가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마는 사회적 약자를 공동체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 사려 깊게 전망한다.


한국의 파워엘리트를 만드는 교회,
‘신도’만이 아닌 ‘시민’의 문제가 된 교회

#장면 1) 2017년 11월 12일, 국내 초대형교회에서 40년 가까이 최고 지도력을 행사해온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었다. 이 일로 교회 내 부자세습을 비롯한 세습 문제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해당 교회가 속한 교단에서는 2013년 제정한 교단 내 ‘세습금지법’에 따라 새 담임목사 위임이 무효인지에 관한 재판이 진행 중이며, 이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장면 2)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때 영부인이 ‘한복’을 입지 않고 대통령과 나란히 양장을 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이 특별할 것 없는 일이 왜 화제가 됐을까. 여성의 한복은 활동적이지 않은데, 왜 그전까지 대통령의 배우자는 공식석상에서 한복을 ‘즐겨’ 입었던 것일까.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한 행사 때마다 여성 신도가 한복을 입고 입구 밖에서 분주하게 안내하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먼저 첫번째 장면에서와 같은 세습은 한국 교회에서 흔한 일일까? 수치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혈통적 세습이 일어난 교회는 350개 정도로, 전체 교회의 0.4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세습은 극소수 교회에 국한된 문제일까? 그 또한 아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교회에서 목사직의 승계 과정이 불투명하다. 일반 교인은 배제된 채 일부 특권적 신자와 목사만 아는 상태로 승계가 이루어지는 게 다반사이며, 특히 여성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곤 한다(19면 참조). 두번째 장면에서처럼 가부장제적 가족 모델로 구상된 교회 안에서 여성은 지도자의 위치를 쉽게 허락받지 못한다(49면 참조). 따라서 교회의 세습 문제는 권력의 세습이라는 더 큰 그림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세습 문제가 불거지는 곳은 담임목사라는 위치가 교회 안팎으로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곳, 즉 대형교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형교회에는 오늘날 한국의 ‘파워엘리트’가 밀집해 있다. 이명박정권 시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정권 시기 ‘사미자’(사랑의교회·미래를경영하는연구모임)라는 말이 돌았듯 몇몇 대형교회에 정재계를 주름잡는 핵심 인맥이 포진해왔다. 대한민국 역사에는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이라는 세명의 ‘장로 대통령’이 존재했다. 이는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무렵, 한국의 파워엘리트 3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개신교 신자가 40.5퍼센트에 달한 사실과도 관계가 깊다. 우리 사회 권력의 중추에 개신교가 오랫동안 자리해왔으며, 신자가 아닌 시민들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개신교 출신 파워엘리트 혹은 개신교라는 종교 자체는 사회에 좋은 존재인가?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에 한표를 던질 것이다.”(6면) 이 책의 저자인 민중신학자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는 권력화된 교회의 양상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끈질기게 추적해왔다. 그렇게 해서 손에 쥔 단서는, 지금 한국 사회를 과잉 대표하는 대형교회 패러다임에 균열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교회의 뼈아픈 성찰이 없다면 검찰·언론·재벌 등에 보이는 나쁜 권력의 주역들처럼 개신교 역시 나쁜 권력이라는 사회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244면)
이 책에서 저자는 강남순(신학/철학), 박노자(한국학), 한홍구(한국근대사학), 김응교(문학)와 대담을 통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단순히 개신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해방 이래 한국사회의 지배권력과 다층적으로 얽힌 역사적이고 본원적인 문제임을 밝혀낸다.

실천하는 기독교인 김진호와 강남순·박노자·한홍구·김응교,
한국 교회의 ‘가장 아픈 곳’을 이야기하다

1장 「기독교인은 왜 보수적인가」에서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파워라이터이자 페미니스트 신학·철학자인 강남순과 시민사회 안팎의 시선을 통해 ‘후퇴한 민주주의’의 표상으로서 한국 교회를 들여다본다. 목사 세습 문제를 비롯해 교회 내 권력세습이 어떻게 가능한지, 개신교의 신망을 깎아먹는 일순위 요인인 재정 불투명성을 과연 ‘종교인 과세’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여성 신자들로 하여금 ‘한복’을 입게 하는 데 여성혐오의 혐의가 깔려 있지 않은지, 또 개신교 내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반동성애 운동이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 한국 교회의 뿌리 깊은 보수성을 낱낱이 파헤친다.

2장 「대형교회,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탈경계의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읽어온 박노자와 ‘특권층의 안식처’로 자리 잡은 대형교회의 현주소를 짚는다. 한국은 대형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인 미국보다도 압도적으로 대형교회의 비율이 높다(한국 1.7% 이상, 미국 0.5% 추정). 주로 강남·강동·분당권에 위치한 이들 대형교회는 1990년대 강남으로 이주한 베이비붐 세대를 유인하며 팽창해갔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결혼과 취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맥공장으로 기능하는 한편, 부유한 자본가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고 바깥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교회는 이런 신자들을 위해 맞춤형 ‘웰빙’ 상품을 제공하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왔으며, 담임목사는 기업의 CEO를 자처한다. 노르웨이 중상류층에게 헬스클럽과 명상센터가 있다면, 한국에는 ‘웰빙교회’가 있다.

3장 「예수천국 불신지옥」에서는 근현대 역사에 숨은 폭력성을 파헤쳐온 한홍구와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찾는다. 2012년 대선 국면 당시 폭발한 ‘박근혜 메시아니즘’은 종교적 광기 혹은 광신도 현상과 맥을 공유한다. 이는 멀게는 한국전쟁 전후 ‘반공’을 앞세운 서북청년단의 극우 행동주의, 좀더 가깝게는 산업화시대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을 포섭한 ‘산기도원’의 부흥회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국가도 가족도 책임지지 못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몰려든 곳이 바로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시설, 그리고 산기도원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기도원마저 경영난으로 속속 문을 닫으면서 이곳에 있던 이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반공·반동성애를 기치로 보수 결집을 꿈꾼 극우적 목사·엘리트 집단에 포착된 이들 상당수가 태극기 집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4장 「욕망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개신교 내부에서 가장 날카로운 내부 비판가로 활약해온 김응교와 ‘보스적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시스템의 문제, 나아가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교회를 떠나는 이른바 가나안 신도가 늘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교회가 택한 돌파구는 성소수자·이민자·타종교에 대한 증오의 정치였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던 교회가 바깥의 적을 만들어 분노와 혐오를 설파함으로써, 신자들이 교회 안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다. 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는 배고프고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였지만, 과거 빈민의 사도는 이제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이념의 사도로 변신했다. 개신교가 부패한 개신교, ‘개독’으로 외면받는 지금, 교회는 사회에서 제몫을 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권력을 정의롭게 나누는 공동체를 위하여

권력은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문제는 권력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 권력의 효과가 공정하게 분배되느냐다. 소수자를 배제하고 혐오발언을 일삼으며, 권력의 독과점과 대물림을 정당화하고, 온갖 연줄을 통해 자본을 축적해 건물과 부동산에 집착하는 ‘일부’ 교회의 폐단은 권력이 기형적으로 작동해 쌓여온 것이다.
박근혜정권 탄핵 국면에서 차기 정부의 우선 개혁과제로 꼽힌 것이 검찰과 언론 개혁이었다. 개혁의 완수란 먼 길이지만, 검찰 수사권을 분산하고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으며, ‘촛불’을 경험한 시민사회 역시 그 과정을 꾸준히 견제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교회개혁에도 그런 성찰과 비판, 전문가와 시민 공동의 개입이 중요하다. 한국 개신교는 역사적으로 반지성주의가 사회의 그 어느 영역에서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좋게든 나쁘게든 사회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형교회의 쇄신은 특히 절실하다. 대형교회는 전체 교회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대형교회가 아닌 교회들 대부분이 대형교회를 성장모델로 삼는 점을 고려하면 대형교회의 자정노력이 파급할 효과는 그만큼 더 크다. 나아가 대형교회의 신자이자 사회의 파워엘리트이기도 한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만큼, 사회적 혜택에서 소외되거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상기해야 한다. 책임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넘치게 가진 자가 궁핍한 자의 하나 남은 소박한 것까지 빼앗는 것은 결코 신이 주려는 복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215면), “누구는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누구는 ‘나이스’한 존재로 만드”는 시스템 자체를 의문시하며 이를 바꿔나가고자 할 때(236면), 비로소 교회는 권력의 효과가 모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 공동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한국사회가 지닌 지독한 문제들이 집약된,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 강남순

교회는 네트워크 자본, 연줄 자본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장소다. - 박노자

교회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형성과 한국사회의 보수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광기의 중요한 행위자다. - 한홍구

교회 바깥으로 분노의 정치를 실행할 투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명 한명의 신자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할 일 아닐까. - 김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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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개신교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한국 개신교를 '미움과 배타성을 설파하는 종교' '분노의 종교'라 여깁니다. 또 '너무 상업적이다' '욕망을 제어하기는커녕 부추긴다' '욕망을 성찰하지 않는 종교다'라는 목소리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면 수동적이게 된다'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나쁜 성직주의를 관용하는 것은 사실 수동적인 신앙인과 관계가 있잖아요. 이 세 가지가 한국 개신교의 현재 문제인 것 같아요. 증오의 종교, 수용의 종교, 욕망의 종교라는 것말이에요.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56/196




권력 3부작의 마지막. 김진호의 <권력과 교회>에서는 한국 개신교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다룬다. 우리나라 종교인구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엘리트 집단의 개신교비율은 40%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한국사회에서 개신교회가 미치는 영향을 절대적이다. 이러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가 가지는 문제를 <권력과 교회>의 저자는 증오, 수용, 욕망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서북청년단 가운데는 교육받은 사람이 많았어요.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있었기에 테러를 해도 처벌받지 않았고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북한을 해방해야 한다는 정치적, 종교적 사명감까지 갖고 있었죠... 서북지역 내에서의 기독교는 융통성도 있고 다채로웠지만, 남한에 내려온 이들의 특정한 경험에 의해 재구성된 서북주의 신앙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극우 반공주의적이며 분노가 중심이 되는 행동주의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죠.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15/196




미움이라는 마음작용이 적대적 테러 행위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남한의 경찰기구나 미군정 정보기관이 그 장치를 마련해준 거죠. 이렇게 해서 테러 행위에 참여하게 되면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지고요. 그런 점에서 이는 '수행적 적대'라고 할 수 있어요.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13/196




한국 개신교회가 증오의 종교가 된 것은 서북청년단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서북지역에서 탄압받고 남하한 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을 가졌으며, 이들 중 일부는 제주로 들어가 제주양민을 학살하는 4.3사건을 일으켰고, 일부는 18연대(백골부대) 창설의 주역이 되는 등 해방 후 한국사회 여러 곳에 영향력을 미치는데, 이들의 공통분모는 '철저한 반공(反共)주의'에 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한으로 쫒겨내려온 이들에게 떠나온 고향땅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믿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구약 중심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성서 해석이 아닐까요. 구약에서 권력과 건물숭상주의에 관한 부분만 부분절취(切取)해온 거죠. 성경에서 다윗 정권을 만드는 배경에 선지자 나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목사들이 중세 이전의 세계관에 머물러 나단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거에요(p150)... '정복하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바시(kabash)'는 착취하고 파괴하라는 뜻이 아니라 풍요롭게 되도록 돌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를 오독해 4대강 사업을 벌이는 등 폭력적이고 그릇된 복의 개념이 이 사회를 지배해왔어요. 이런 복을 받으려면 '우리 교회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해요. 밖에는 적뿐이니까.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63/196




'증오'로 시작된 남한의 개신교회에게 외부는 '정복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했고, 지금의 어려움과 시련은 창대한 나중을 위한 미약한 시작이었다. 자연히 이웃사랑의 <신약>보다 계약의 <구약>이 강조되었으며, 구약시대의 판관(判官)들인 기드온이나 삼손처럼 목사들은 성도를 이끌고 외부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개신교회는 위계의 종교 그리고 이러한 질서 수용의 종교가 되버렸다.





보스적 목회자는 영적 리더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 같아요. 보스와 성도의 관계는 시간일 갈수록 더욱 종속화되고,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증오가 쌓여요. 또 이런 보스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들을 양산해야 하죠. 신도들을 단독자로서의 자유인이 아니라, 적들과 싸워야 하는 '분노의 전사'로 만들어내기 위해 교회 밖으로 적을 계속 만들어내요. 교회 안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도록, 분노를 교회 밖으로 향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반공, 반동성애 프로파간다가 이루어지고요.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50/196




교회 공동체의 배타성은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이 있어요. 저는 그들끼리 나누는 문화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 배타성을 우려합니다. 그 배타성은 전형적인 '부드러운 야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도 노골적인 배타성으로 보이지 않고 집단 구성원들도 스스로 배타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상 배타성이 작동하는 문화가 있죠. 그 구성원들은 모임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편견을 은연중 갖게 되요.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91/196




수용의 종교로서 개신교회는 외부적으로는 배타성을, 내부적으로는 긴밀한 연계를 맺게 된다. 같은 교회 안에서 생겨나는 '형제애'는 주중에는 사회에서 연계되어 하나의 계층구조를 형성하고 네트워크로 작용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교회에서 맺어진 이러한 연결망이 하느님의 축복이며, 이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과 이어진다.





굉장히 많은 집회에 참여하면서 '미팅'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미팅은 대개 끼리끼리 이루어져요. 특정 지역에 속한 사람들, 자산 상태도 양호하고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그들끼리 사적 모임을 만들죠. 문화도 비슷하고 교류할 때 비용 분담도 용이하고, 이질적인 사람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고요. 이렇게 계층화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교회가 되어버렸고,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특징인 듯합니다.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83/196




어느 교회에 속함으로써 갖게 되는 연줄망을 특혜가 아니라 신앙의 열매라고 보는 거예요. 신앙이 주는 '복'이라고 믿는 거죠. 그것이 오랜 기간 수많은 모임을 통해 몸에 각인돼버려요. 이런 신앙은 특권에 안주하고 시스템의 부조리함에 무감각하게 하죠. 그러면서 개개인은 도덕적으로 엄격한 삶을 살곤 해요.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68/196




<권력과 교회>에서는 이러한 교회의 구조안에서 영육(靈肉)간의 건강, well-being을 추구하는 욕망에 대해 지적한다. 이러한 욕망에 편승하여 개신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참혹함 대신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승에서도 영적으로, 물질적으로도 풍족함을 추구하는 종교로 점차 벗어나며 오늘날 개신교의 모습이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천주교로 개종한다고도 하니 씁쓸한 웃음과 함께 이러한 문제가 개신교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북주의자들이 '파괴적 증오의 정치'를 통해 부상했다면, 조용기로 표상되는 부흥사들은 '생산적 증오의 전략'을 구사했다고 할 수 있어요. 적에 대한 증오를 성공에 대한 욕구의 자양분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생산적 증오의 전략에서 유용한 도구가 혼합주의였어요. 사람들이 가진 모든 종교심을 활용하고 그것을 기독교적 종교성으로 덮어버리는 거죠.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25/196




교회를 만들지 않고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이끌었던 나운몽과는 달리 조용기는 자기 부흥운동의 센터를 구축했고, 그곳을 거점 삼아 팽창을 거듭함으로써 권력화된 종교성을 발전시켰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결합한 혼합주의적 신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운몽이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영혼의 구원에, 몸의 구원(건강)과 물질의 구원(풍요)을 결합한 '1+2'의 복음, 그것이 조용기의 저 유명한 '3박자 구원론'이에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동시에 결합한 기복적 신앙 양식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 신앙의 한 전형으로 발전했어요.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24/196




정확히 말하면 '분노와 복의 목회'라고 할 수 있어요. 바깥으로는 적을 만들어 분노하게 하고, 안으로는 복이라는 개념을 왜곡해 신자들이 목사의 종이 되게 하는 구조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50/196




<권력과 교회>에서는 이처럼 한국 개신교회의 문제점을 증오, 수용, 욕망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방향 제시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증오, 수용, 욕망을 막무가내로 추구하는 이보다 신앙의 본질에 가까이가려고 노력하려는 다수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권력과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과 교회>의 권력 3부작은 한국사회의 권력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덕적으로 교회에 의해 낙인 찍히고, 법적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의해 세상 끝까지 보도된다면 어느 누가 긴밀한 이들의 카르텔에 대항할 수 있을까. 책이 출판된 2017년에는 이들 기득권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으나, 5년이 지나 실패한 개혁에 대한 반동이 시작되는 시점에 다시 읽은 권력 3부작은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성과가 있다면, 이들의 실체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까. 이제는 더 어려워진 시점에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보다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요. 대표적인 것이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기독교민주화 운동이죠. 또 노동운동 쪽에서도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학생운동에서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보면 KSCF(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계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독교 민주화운동의 물결이 상당히 거세게 올라오고 있을 때 최태민을 내세워서 반공과 친유신적 힘을 끄집어낸 것이죠... 거기서 놀라운 부분은 최태민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뻔히 알았을 텐데도 한국의 개신교가 그를 내세워 구국선교단이나 봉사단으로 세를 떨쳤다는 점이에요. 그 부분이 한국 개신교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31/196




교회 바깥으로 분노의 정치를 실행할 투사를 키우고, 이들을 가짜 뉴스에 속아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명 한명의 신자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예수가 말하는 '바실레이아(basileia), 즉 하나님의 나라이자 진정한 교회의 할 일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회는 영혼의 안식을 주는 데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p177)... 예수는 옆사람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에게 간장이 찢어지듯이 아픔을 느끼는 것, 그것이 이웃이라고 했어요.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가 시스템에 대해 말한 것 같아요. 저는 교회 자체의 구제와 기부를 완전히 시스템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_ 김진호, <권력과 교회> , p182/196
겨울호랑이 2022-05-24 공감 (43) 댓글 (6)









지금까지의 언론개혁은 부패한 권력과 싸워 독립성을 쟁취하는 것, 왜곡된 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언론개혁에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바로 언론인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내던지고 시민과 소통하는 과제 말이다. 자성과 소통을 거부하는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에 의해 도태되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언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세상이 달라졌다.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207/209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중 2부 <권력과 언론>. 저자는 여기에서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현실과 문제점을 비판한다. '책임지지 않는 저널리즘', 인과관계나 이해관계에 대한 검증없이 언론사의 이해관계에 따른 보도가 여론을 만들고, 여론을 보도하며 목소리를 키우는 순환구조는 한국 재벌기업들의 순환출자의 또다른 변용이다.





출입처 시스템에 언론과 기자들이 동화되어 있어요. 한 출입처에 오래 출입하다보면 편향이 생깁니다. 여당에 출입하는 기자와 야당에 출입하는 기자가 싸워요, 정말로... 저는 출입처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사안이 불거지면 사실인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우리 출입처 시스템에서는 정당, 정부부처에서 보도자료나 성명이 나오면 일단 무조건 써요. 거기에 대한 비판이나 반박이 있으면 그걸 또 쓰고요. 쓰고 또 쓰고, 나중에 '공방'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서 내버려요.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25/209




프랑스의 경우 마크롱(Emmanuel Macron)과 관련된 문서가 해킹당한 일이 있어요. 해킹되어 유표된 것 가운데 진짜 문서도 있고 가짜 문서도 있어서 판별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대선은 목전에 있고요. 그래서 르몽드(Le Monde) 등 유럽 언론은 이것을 다루지 않았어요. 저는 언론이 그래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한국 언론은 위험한 게, SNS 등에서 유통되는 말에 대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이러이러한 내용이 돌고 있다, 당사자는 부인했다'라고 써버리고 자기 역할을 끝내는 것예요. 이게 가짜 뉴스가 횡행하게 된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32/209




이러한 언론의 보도 행태와 함께 지배구조 문제와 이사진 구성문제와 방송심의위원회 문제 등 제도적 측면의 문제는 한국 언론의 또다른 문제임을 <권력과 언론>은 보여준다. 또한, 시장경제의 장점인 '경쟁' 요소를 도입한 '종편'은 본래 취지와는 무색하게 독점적 지위를 갖는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문제 또한 지적된다.





공영방송 개혁은 지배구조 개혁이 첫순위고, MBC는 그것에 직결되는데 KBS는 중간에 수신료라는 게 끼어 있어요. 그래서 지배구조 개혁과 함께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사장 선출 시스템과 편성위원회, 공정한 보도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 맞춰 언론인들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단계까지 가야 수신료 문제는 첫발을 떨 수 있는 거죠. 어렵네요.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101/209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언론을 장악하지 말아야 하고, 그 욕구를 버려야 해요. '나를 비판하는 언론의 존재가 국정운영에 도움이 된다'라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는 정부는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봐요. 연합뉴스든 공영방송이든 그걸 장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독립성을 가지고 정상적으로 취재해서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141/209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언론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 누구나 알고 있는 지향점을 향한 방법은 본문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하자. 다만, 분명한 것은 언론시장 역시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거대화된 공룡들은 화석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얼마 전 토론회 때문에 만난 방송학회 교수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종편제도를 바궈야 하는데, 아주 간단하다. 종편을 아무나 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자. 대신 채널 순번 등에서 혜택을 주지 말자.'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121/209




시장으로 따지면 정확하게는 전통경제에서 작동했던, 즉 아날로그에서 작동했던 방송 시장과 뉴스 시장이 존재하고, 이것과 다르게 별도의 규칙과 시장원리와 시장 참여자로 구성된 디지털 시장이 존재하는 거예요(p160)... 콘텐츠가 소비되는 방식과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이 다 변화하고 있어요. 모바일 소비자와 만나려면 모바일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데스크탑에는 데스크탑에 맞는 상품이 있어야 하고, 지상파는 지상파의 상품이 필요해요. 보도하려는 대상은 같을 수 있지만, 각각의 플랫폼마다 문법과 포맷이 다른데 모두 동일하게 하나만 제작해서 뿌릴 수는 없다는 거죠.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162/209




다른 한 편으로, <권력과 언론>에서 팬덤 현상을 짚은 부분은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불고 있는 팬덤 현상이 얼마나 더 가속화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불과 몇 개월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 급격한 변화를 지켜본 지금 팬덤 현상이 언론 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갖게 된다.





팬덤 현상을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조직하려고 하는 이유는 팬들은 어디로 오라고 하면 오고, 방송이 끝났다고 해서 방송을 끄지 않거든요. 반드시 이것을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요. 그게 팬의 기본자격이죠. 그래서 팬덤 비즈니스는 디지털 경제에서 굉장히 잘 작동하는 편입니다. 각각의 프로그램과 기자들에게 팬덤 현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브랜드화하기 위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등의 작업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185/209




또한, <권력과 언론>에서는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의 차이점에 대해 말한다. 검찰 개혁이 법(法)에 근거한 제도의 문제라면, 언론 개혁의 문제는 '정의(正義)'라는 가치의 문제이며 때문에 언론 기관 구성원의 문제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의 압력과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자정(自淨)의 문제. <권력과 언론>은 이 점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권력과 언론>은 언론 수용자의 비판이 필요함을 말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중요성과 관련해서는 비판3부작의 마지막 편 <권력과 교회>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제 마지막 3편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검찰개혁의 줄기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공수처를 설립해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며, 최종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 제도와 시스템은 검찰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굳은 의지와 강한 실천력이 있다면 재정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개혁은 검사가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 맡아야 한다. 검사에게 개혁을 맡긴들 가능할 리 없고 맡겨놓아도 안 된다. 반면 방송개혁은 정부나 정치원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민영방송과 종편은 모두 사기업이다. 국민의 재산인 공영방송 역시 소속 언론인들에게 대통령이 직접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방송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제도를 정부가 만들 수는 있겠지만 특정 방송사의 논조를 일일이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방송개혁은 언론인 스스로의 자성과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이야기다. 언론인들 스스로 싸워야 한다.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203/209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성역 없이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비판할 자유인 것은 맞지만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독자나 시청자들로부터의 비판에 어색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언론의 자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그 시국을 거치면서 굉장히 선명하게 느꼈어요. 저는 독자들 그리고 뉴스 수용자들이 끊임없이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멈추지 않고 계속 감시하고 비판할 때 언론이 각성하고 자기가 해야 할 역할과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도 수용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_ 박성제, <권력과 언론> , p191/209








PS. 1993년 즈음에 나왔던 015B의 <제4부 第四府>의 가사와 달라지지 않은, 1998년의 <트루먼쇼 The Truman Show>의 드라마 속 광고 장면이 현실화된 오늘날의 종편의 모습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상류사회들 뿐이고

씨에프를 보면 항상 행복한 사람들

강한자에겐 무릎 굽히고 약한자에겐 고개를 세우고

그걸 공정하다고 하지




어제는 악인을 만들고 오늘은 영웅이라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잘도 얘기들을 하지

모든것을 비판해버리곤 그걸 자유라 부르지




우 녹슬어진 펜을 놓고서 우 이젠 모든말에 책임을 져

방향 잃고 헤메는 가엾은 무관의 제왕

약속을 어긴 무책임뒤엔 차가운 비웃음뿐




세상에 오렌지족이니 뭐니 하는건 있지도 않아

신문과 사회와 어른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지

우리나라 코메디를 보고 저질이라고 한탄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어

외국에서 꼬부랑 말을 하는 코메디를 보면

그렇게도 고상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지를

하지만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아

그들도 비난하는 것만이 유식한 것처럼 인정되는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니까




우 녹슬어진 펜을 놓고서

우 이젠 모든말에 책임을 져

방향잃고 헤메는 가엾은 무관의 제왕

약속을 어긴 무책임뒤엔 차가운 비 웃음뿐
겨울호랑이 2022-05-01 공감 (39) 댓글 (0)









사마광의 <자치통감> 294권을 마치며 간략하게나마 이를 정리한다. 전국시대부터 5대 10국까지의 1300여년 시기동안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끊임없이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온 중국의 역사에는 일관되는 사람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를 바라보는 수많은 평론가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사가가 처한 현실이 과거와 같지 않기에 다른 인과의 끈으로 구슬을 엮고, 목걸이를 만든다는 교훈.




역사를 과거에 대한 현재의 재해석으로 바라보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E.H. 카의 저서 속에서 이미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번 <자치통감>을 읽으며 우리가 만나는 과거가 하나의 과거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독자가 살아가는 현대사가 아닌 다음에야 저자의 사관(史觀)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통역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양자는 한비자를 군자로 보고 있어서 그가 뜻을 가지고 있으면 되었지 받아들여지고 아니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광은 한(韓)나라 사람으로 진(秦)을 위해 정책을 제시한 점을 몹시 나쁘게 보고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한비자와 몽념에 대한 평가에서 사마광은 한비자는 충성심이 없다고 비판하고, 몽념은 의롭다고 칭찬한데 대해 양자는 한비자는 능력있는 사람이고, 몽념은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평론하여 각기 보는 시각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마광이 역사를 보는 시각은 도덕적 시각, 특히 유가적(儒家的)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_ 권중달, <자치통감전> , p375/957





<자치통감>의 저술은 사마광이 역사를 좋아했다는 사실 말고도 정치적 목표와 황제를 교육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p407)...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하려는 이유는 철저하게 '제왕을 위한 책'을 만들려는 것이다. 제왕은 시간이 없어 긴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제왕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하는데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싣겠다는 것이다. _ 권중달, <자치통감전> , p410/957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돈 그 두 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a contin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p50)







여기에 더해 독자가 처한 현실 역시 유동적이기에 '역사적 현실 - 해석된 과거 - 읽는 현재'라는 3개의 역사축(軸)은 끊임없이 회전하며 또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자치통감> 마지막 글을 읽으며, 어제 대통령 인수위의 소상공인 손실보상 공약 파기 뉴스가 떠오른다. 이와함께, 파기된 손실보상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함께 느낀다...





회남에 기근이 들어서 황상이 쌀을 그들에게 대여하라고 명령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백성들은 가난하여 아마도 갚을 수 없을까 걱적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백성은 나의 자식인데 어찌 아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아버지가 그들을 위하여 풀어주지 않겠는가? 어찌 그들에게 반드시 갚으라고 책임 지우려는데 있겠는가? _ 사마광, <자치통감 294>, 中

관련기사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40849.html






PS. 역사서를 거치지 않고 현실의 역사를 체감하는 상황이 우리가 진실을 접한다는 사실을 보장할 수 있을까. 사실의 왜곡과 편향된 사실의 조명 그리고 이를 천명(天命)으로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기제들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깝다'가 '진실과 맞닿아 있다'와는 다름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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