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

김민철-『기억을 둘러싼 투쟁』 > 아카이브 - 한국역사연구회

나의 책을 말한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 > 아카이브 -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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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
』BoardLang.text_date 2007.05.30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나의 책을 말한다
- 『기억을 둘러싼 투쟁』(2006, 아세아문화사) -
김민철(근대사 2분과)



마침내 항복하고야 말았다. 지루하게 끌던 공방전이 예기치 못했던 웹진 위원장의 마지막 일격으로 끝나 버린 것이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가며 버틴 결과 이제는 포기했거니 하면서 부채감에서 벗어나 다소의 심리적 여유를 가지고 긴장을 풀려던 그 순간이 함정이 될 줄이야. 동학들이여,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어느 분의 원고 청탁 전화를 받으시면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마시길. 거절할 게 아니면 아예 거절에 ‘ㄱ'자를 꺼내지도 마시던가.

자신이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일이 마치 제 자식 자랑하는 것처럼 뭔가 편치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버텼던 것인데(너무 고루하다고 비난하지 마시라), 역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편하게 쓰라는 말을 애초부터 믿은 바는 아니지만 끝내 버티지 못한 내 나약함을 탓하면서 푸념 아닌 푸념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자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내 책을 소개한다. 역시 상투적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글 모음집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임종국선생의 유산과 인연이 닿아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19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개명)를 만들어 친일 문제를 다룬 지 벌써 15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정도의 세월이면 나름대로 대가가 되어 자신의 철학과 논을 세웠을 법도 한데, 공부가 짧고, 재주도 부족하여 아직까지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만 그동안 고민했던 사고의 단편들이 그렇게 무의미하지 않았으며, 그런 고민들이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책을 엮어보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친일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어서 논과 사실 규명이 섞여있고, 저널과 학술, 그리고 실무적인 글이 같이 있어 모음집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첫째는 다소 이론적인 부분이고, 둘째는 친일의 현상을 밝힌 글과 친일 문제와 씨름하면서 벌인 논쟁을 다룬 부분이고, 셋째는 친일 문제를 비롯하여 이른바 ‘과거청산’ 전반에 걸쳐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문제를 다룬 부분이다.

과거청산과 관련해서 특별법을 제정하는 문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였다. 당시만 해도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회단체나 연구자가 거의 없었고,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해 피해자 단체와 사회단체, 그리고 연구자를 얼기설기 모아 시민연대를 만들어 법 제정을 위한 운동에 들어갔다. 곧 이어 친일 진상규명을 위한 법과 민간인 학살과 의문사를 해결하기 위한 법 제정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로서는 어느 쪽이든 특별법이 제정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던 때라 법 내용은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만드는 것 자체에 모든 힘을 기울이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까. 아니면 제정 과정에서 많은 타협과 굴절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 한계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도달한 최대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상규명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간 탓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과거청산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 예컨대 역사적인 진상규명과 가해자든 피해자든 간에 법률적인 판정을 내리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심각한 괴리로 인해 빚어진 문제일 수도 있다. 더구나 예상한 대로 준비가 부족한 데가 학술적인 자원도 그리 많지 않아 현재의 과제를 충족하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턱도 없이 부족한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이런 저런 단편적인 고민들이 갈무리되지 못한 글들이 셋째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만약 이 일을 다시 쓰게 될 날이 있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준비 부족과 불철저함, 그리고 무능으로 인해 참으로 힘들게 주어진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 동안 내가 친일문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장은 「친일 문제-인식, 책임, 기억」 속에 담겨 있다. 이 글은 지금까지 친일문제를 고민하면서 생각했던 내용을 집약함과 더불어 논쟁의 한 중간결산이기도 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인간들의 정치적 선택과 그로 인한 행위와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으며(인식의 문제), 또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한가(윤리ㆍ가치의 문제)를 찾고 싶었다. 지금도 이에 대한 해답은 분명치 않다.

다만 친일문제와 관련해서 끌어낸 한 가지 결론은 친일이라는 역사적인 행위를 이해하는 문제와 평가하는 문제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고, 또 일치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엉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정도이다. 그다지 새로운 것도 심오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하려 함으로써 빚어지는 다소의 혼란스러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역사적 해석과 윤리적 평가 문제가 친일 문제만큼 첨예하게 제기되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전자에 초점을 둔다면 이른바 협력론으로 가게 되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어렵게 되고, 후자에 초점을 두면 윤리적 단죄론으로 빠져 식민지기 일상의 협력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즉 구조의 문제로만 돌리면 윤리와 가치가 설 자리가 없고, 역으로 윤리 문제가 제기되면 인간을 제약ㆍ구속하는 구조가 사라지게 된다. 양자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면서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 긴장관계, 그래서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구조와 주체의 긴장관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여기서 나는 두 번째 과제인 책임의 문제를 제기했다. 즉 야스퍼스의 책임론에서 시사를 받아, 책임의 유형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야스퍼스는 2차대전 후 독일인의 책임을 법적 책임, 정치적 책임, 도덕적 책임,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져야할 형이상적 책임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 구분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주체가 구조와 맺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구조 속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에 따라 책임의 유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종말살을 집행했던 아우슈비츠수용소의 장교로서, 아니면 집행에는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지지했던 독일국민으로서, 그것도 아니면 불의인 것을 알면서도 공포로 인해 묵인해야만 했던 무력한 자연인으로서 져야할 책임의 몫과 크기는 다르다.

책임의 몫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책임을 동일시하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친일‘청산’에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논자들이 공통으로 범한 오류는 바로 ‘책임의 동일시’였다.

반인도적인 군위안부 제도를 결정하고 집행했던 사람과 그것을 이용했던 병사들에게 똑같이 책임을 묻거나, 자식을 지원병으로 내보내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선전하고자 했던 조병상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원병으로 갔던 청년에게 전쟁협력의 책임을 동일하게 묻는 일은 결국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가 무죄다’는 복거일식의 공범론으로 떨어지고 만다.

일상사를 통해서 친일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주장 또한 주관적 의도와는 달리 공범론식의 논리에 빠져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식민지 구조를 말하고, 그로 인해 체제유지를 가능케 한 대다수 조선인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는 일과 소수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법적ㆍ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셋째, 친일 문제를 통해 나는 탈민족ㆍ탈식민 담론과 씨름하고자 했다. 탈민족 담론과 탈식민 담론이 한국 지식계, 특히 한국사학계에 던진 메시지는 매우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성과와 의의를 최대한 수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식민지기 사람들의 삶이란 민족주의 담론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다층적이며 다차원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친일 문제의 경우에도 민족(주의) 담론만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많다. 최정희의 「야국초」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자식을 일본군으로 보내는(군국주의 일본에 의탁하는) 논리는 페미니즘과 민족주의가 전면적으로 충돌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야국초를 단지 민족 담론으로만 해석해버린다면 식민지기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최정희의 비판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친일문제에서 민족담론을 제거한다면, ‘친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식민지기 역사를 민족주의‘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민족주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전혀 다름은 상식일진데, 탈민족 담론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개념은 폭력이다’는 경구처럼 민족주의 또한 제한된 범주틀이고, 그것을 비판하는 탈민족 담론 또한 같은 제한성을 갖는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민족주의로 식민지기를 이해할 때 어떤 한계가 있는가를 자각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정제되지 못한 채 문제제기 수준에서 머무는 글들이지만 지금까지 도달한 중간 결과물이다. 아직 영글지 못한 개념의 조합에 지나지 않고, 밀란 쿤데라가 말한 ‘안개’ 속에서 더듬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자족할 게 있다면 ‘안개’의 한 부분과 그 ‘안개 속에 있는 나 자신’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물이 생각보다 선명하지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예전에 비해서 사물을 더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고 속에서 어줍잖은 타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라 확신한다. 여전히 내가 서 있는 곳은 포연이 자욱한 전장터이기에. 다만 싸움 속에서 빚어질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더 줄여보려는 바람들이 책 속에서 전달되었으면 한다.

마무리를 하는 김에 자랑이나 하나 해야겠다. 부디 애교로 봐주시기를. 여기에 실린 글 중 「이광수의 친일파 변호론 비판」은 「친일파 청산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고등학생이 읽는 우리말ㆍ우리글』(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나라말 펴냄)에, 「‘이완용 땅 찾기’ 또 승소」는 『국어시간에 논리읽기 3단계』(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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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둘러싼 투쟁 
친일문제와 과거청산운동
김민철 (지은이)   아세아문화사   2006-01-31

책소개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는 친일 문제와 과거청산운동에 대해 지은이가 써온 글을 책에 담았다. 친일진상규명법, 친일인명사전 제작, 친일파 후손의 토지 관련 소송 등 최근의 이슈들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를 밝히고, 역사[기억]를 둘러싼 여러 정치적 권력의 불공정한 투쟁을 바라보며 공정한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목차
서문
1. '친일파' 문제와 씨름해 온 10년의 세월
2. 친일파 청산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 <친일인명사전>의 인물 선정과 서술상의 문제들
4. 계륵이 되어버린 친일진상규명법
5. '친일'문제 - 인식, 책임, 기억
6. 총독과?를 드나든 조선인들
7. 일제에 협력했던 조선인 경찰관들
8. 일제하 사회주의자들의 전향 문제
9. 이광수의 친일파 변호론 비판
10. 그래도 우리는 돌을 들어야 한다
11. 이은상의 '친일' 시비
12. 이문열씨의 '위험한 얘기'
13. 강요된 친일행위라고 도덕적, 법적 책임 없나
14. '이완용 땅 찾기' 또 승소
15. 기억을 둘러싼 투쟁
16. '과거청산' 문제와 특별법 제정의 의미
17. 한국의 '과거사 청산'운동
18. 한일협정 문서공개와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문제
19. '과거사' 관련 특별법 제정과 근현대 지방사료의 정리
20. 친일기록의 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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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김민철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기로에 선 촌락>,<기억을 둘러싼 투쟁> … 총 4종 (모두보기)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로 친일문제를 비롯하여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의 역사 왜곡,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등 과거 청산 문제와 씨름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 <기로에 선 촌락>을 썼으며, <친일인명사전>을 비롯하여 <친일파란 무엇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 <일제 식민지 지배의 구조와 성격>, <일제하 전시체제기 정책사료총서>, <청산하지 못한 역사>, <친일파 99인>,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민주주의> 등을 함께 기획하고 썼다. 역사학자로, 시민운동가로, 선생으로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가끔은 빅뱅 이후 138억 년+50여 년의 내력을 가진 우주먼지로 무의미함에 의미를 부여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접기
김민철(지은이)의 말
여기에 실은 글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을 둘러싸고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싸움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세력들이 누렸던 기억의 특권을 해체하기 위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친일행위라는 기억을 통해 반성할 능력조차 상실한 우리 사회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하는 바램이었다.

 로쟈   2006-05-28메뉴
교수신문(06. 05. 27)에 게재된 김학이 교수(동아대)의 문화비평을 옮겨온다. 타이틀이 '자학은 자만보다 진실되다'이고, '과거의 청산과 이해?'과 부제이다. 지젝의 논의를 끌어오고 있기에 '로쟈의 지젝' 카테고리로 분류해 넣었다.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과거청산에 대한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다. 얼마 전 교수신문에서도 학진지원사업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이 문제가 논의된 바 있다. 과거를 대면하는 방식이 거듭해서 논해지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입증해주는 반가운 현상이다. 물론 역사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어느 역사가는 정부가 지원하는 과거청산 작업에 정치성이 개입되는 것을 경계하고, 다른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에 대한 엄밀한 확증과 이에 따른 상징 차원의 조치들을 주장하기도 하며, 또 다른 역사가는 과거 사실의 규명이 과거에 대한 내면적 성찰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청산의 방법에서는 의견이 서로 다른 역사가들이, 과거청산의 목표에서는 똑같은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다. 상처의 치유와 사회적 화해가 그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상처 치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슬라보예 지젝은 영화에서 홀로코스트가 표현되는 양상을 분석한 적이 있다. 두 가지 유형이 구분된다. 하나는 홀로코스트라는 절대악 속에서도 인간적 가치가 견지되는 비극적 양상을 그려내는 영화들이다. 반드시 비극적이지는 않지만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필버그의 <쉰들러의 리스트>이다. 다른 하나는 그 절대악에 희극적으로 접근하는 영화들이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대표적인 경우로, 그 영화에서 아버지는 수용소의 현실을 놀이로 변형시키고, 그렇게 아들을 구한다. 물론 비극이 첨가된다. 아들은 생존하지만 아버지는 죽는다. 지젝은 덧붙인다. 베니니가 일관성을 유지했다면, 다가오는 미군 탱크가 아이를 나치 저격수로 오인하여 사살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지젝이 주목한 것은 그러나 비극과 희극의 피안에 있던 사람들이다. 나치 수용소에는 당시 “무젤만(Muselmann)”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를 죽이겠다는 나치의 협박에 직면하여, 딸을 죽도록 하고 아들을 살린 소피 같은 이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무젤만은 삶의 이유가 남김없이 파괴된, 먹고 마시는 것이 허기와 갈증과 무관하게 그저 맹목적인 습관에서 이루어지는, 사람 아닌 사람, 그야말로 “인간의 영도(零度)”이다.

-무젤만은 미학화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를 희극으로 표현하면 비극이 되어버리고, 비극으로 표현하면 희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듯 미학화가 실패하는 존재는 인간의 상징질서의 피안에 있는 존재다. 언제나 그렇듯 지젝은 여기에서도 라캉의 “실재(the real)”을 발견한다. 실재는 치유의 대상이 아니다. 치유란 과거를 기성의 상징질서에 포섭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재는 오히려 새로운 상징질서를 구성해내기 위한 초석으로 삼아야 할 그런 어떤 것이다. 실재는 사회적 화해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에 난 구멍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어두운 과거에 “무젤만”이 득실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비교와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정한 과거가 현재에 유의미해지기 위해서는 그 과거를 현재의 기성 가치 속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멈추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과거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때 비로소 유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치유와 화해의 통로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치유와 화해는 오히려 과거를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 과정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그 과정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치유와 화해를 과거청산의 목표로 삼는 순간, 기억의 적절한 정도와 가해자와 피해자의 엄격한 구분이 문제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청산을 새로운 갈등의 원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막말로 그렇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가해자인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모두가 가해자는 아니라고? 맞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실재”와 연관된다. 자학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학은 자만보다 얼마나 더 진실된가.(*필자의 주장이 단평이 아닌 책 한권, 적어도 논문 한편 정도의 분량을 얻었으면 좋겠다.)   

06.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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