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평화: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 평화 세상
이재봉 2021. 4. 28. 10:41http://blog.daum.net/pbpm21/553
종교와 평화: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초고)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1. 종교의 평화성
2018년 11월 1일부터 7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 (2018 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에 참가했다. 회의 주제가 통합 (inclusion), 사랑 (love), 이해 (understanding), 화해 (reconciliation), 변화 (change) 등이었다.
수천 명의 종교인과 종교학자들이 모인 토론토 컨벤션센터 복도에 대형 게시판들이 걸려 있었다. 각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을 홍보했다. 그 가운데 ‘평화’와 ‘비폭력’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는 없었다. 종교 전체를 홍보하는 첫 번째 게시판엔 폭력은 남들과의 차이를 조정하거나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살생하지 말고 생명을 존중하라는 문구도 있었다.
유대교 게시판엔 살생 금지를 포함한 모세의 ‘십계명 (The Ten Commandments)’,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제19장 제18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고 따르라는 <시편> 제34장 제14절 등이 담겼다.
기독교 게시판은 예수의 ‘산상설교’ 가운데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축복 받을 것이라는 <마태복음> 제5장 제9절, 오른 뺨을 치면 왼 뺨도 치게 하고 저고리를 원하면 외투도 주라는 <마태복음> 제5장 제40절,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태복음> 제5장 제44절 등을 담고 있었다.
이슬람 게시판은 신의 이름으로 자비와 동정을 강조하는 경전 코란 및 ‘회교도 의무사항 (The Muslim Code of Duties)’을 내세웠다.
불교 게시판은 남을 해치지 않으려는 등 바른 의지를 갖고, 거친 말을 삼가는 등 바른 말을 하며, 생물을 살생하지 않는 등 바른 행동을 하라는 지침을 포함한 ‘8정도 (八正道, The Eightfold Path)>’를 앞세웠다. 맨 앞에 생물의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5계 (五戒, The Five Precepts of Buddhism)’도 내세웠다.
힌두교 게시판은 ‘요가의 길 (The Yoga Way)’ 첫 번째 덕목으로 비폭력 (a-himsa)을 강조했다.
이렇듯 이 세상 모든 종교는 평화와 비폭력을 지향하고 추구한다. 경전에서 폭력과 전쟁을 부추기는 종교는 없다.
2. 종교 간 폭력: ‘거룩한 전쟁 (holy war)’ 또는 종교 전쟁 (religious war)
인류 역사상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민족과 종교에 있다. 핏줄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끔찍한 살상을 저질러온 것이다.
세계엔 대략 2,000종의 민족이 있다고 한다. 국가는 200개가 좀 넘는다. 이 가운데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20개 정도. 평균 10종의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모든 민족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려면 국가의 수가 민족의 수만큼 2,000개 정도로 늘어나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으로 분리 독립했다. 50종 이상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에서는 티베트나 신장위구르가 분리 독립을 추구해오고 있다. 그런데 독립하는 과정에서 대개 전쟁이 일어났다. 세계 모든 민족이 저마다 국가를 세우려면 적어도 1,800번 정도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민족주의의 가장 부정적 측면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두 가지 핵심 요인 가운데 민족보다 심각한 게 종교다. 전쟁의 70-80%가 종교 때문에 일어나고, 주로 종교 간의 불화가 전쟁을 불러왔다. 지난날 ‘성전 (聖戰: holy war)’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얼마나 숱하게 저질러졌는가. 종교분쟁은 다른 분쟁보다 더 격렬한 충돌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종교가 목표로서의 평화는 중시하면서도 과정으로서의 평화는 소홀히 해왔다는 뜻이다.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성취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용인하거나 선호해온 것이다.
세계 5대종교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차지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는 서양에서 일어나 200여개 국가에 퍼져있고, 힌두교와 불교는 동양에서 일어나 120개 안팎의 국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특히 호전적이다. 역사적으로 큰 전쟁은 대부분 이들 유일신 종교에서 시작되었다. 예수와 무하마드 둘 다 사랑과 평화를 앞세우고 촉구했지만, 이슬람이 일어난 7세기부터 21세기 ‘문명의 충돌’까지 두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특히 11-14세기 공격적 십자군전쟁이든 14-16세기 수세적 십자군전쟁이든 얼마나 참혹했는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서로 싸운다. 기독교 안에서는 천주교도와 개신교도가 같은 예수를 따르며 서로 다툰다. 개신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마저 둘로 나누어, 한쪽은 개인 구원을 중시하는 예수복음으로 예수교 장로회를 만들고 다른 쪽은 사회 구원을 중시하는 그리스도복음으로 기독교 장로회를 세워 갈등을 빚는다. 이슬람교 안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같은 알라를 섬기면서 원수처럼 서로 죽이기도 한다. 이들은 다른 종교나 교파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과 편협성을 보이며 다른 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하거나 죽여 없애려고까지 한다. 모든 종교와 교파가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증오와 살육을 저지르고 있으니 지독하게 역설적이요 모순이다.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3. 종교 내 폭력 사례: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은 인구의 절반이다. 절반의 인구가 상습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에 관계없이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은 동서고금을 통해 나타난 현상이다. 절반의 인구가 차별을 당하는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는 사회의 발전과 평화를 불러오기 어렵다.
종교는 대체로 인간 평등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오래 전부터 남녀 불평등의 교리와 성차별주의적 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도들에게 직접 ‘말씀’을 전달하며 인도하는 교역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기독교에서는 성서의 하나님을 남성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남편 아담에게 아내 하와가 복종해야한다고 말한다. 고대 유대사회에서 여성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고, 성전 활동에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족보 계승은 남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지금까지도 여성에게는 성직을 제한하며 보조적 또는 이차적 역할만 맡게 하는 등 교회를 가부장적 체제와 질서로 운영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 (Quran/Koran)은 3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했지만, 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
불교에서는 여성이 부처가 될 수 없다거나 성불하더라도 남성의 몸으로 변해 부처가 된다는 사상을 전파시킨다. 나이가 적은 비구 (남자) 에게도 비구니 (여자)가 먼저 예를 올려야 한다든지 무슨 이유로든 비구를 비판하지 말라는 등의 출가 여성에 대한 계율을 일컫는 팔경법 (八敬法) 또는 팔불가월법 (八不可越法)으로 여성을 차별해 왔다.
한국 4대종교에 속하는 원불교는 남녀평등 문제와 관련해 매우 주목할 만하다. 교리에서 평등과 화합을 중시하며, 삼종지도 (三從之道)에 따른 남녀차별을 불합리하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 정전 (正典) 교의편 (敎義編) 사요 (四要)에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지하였으며, 또는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이 교육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자기의 심신이지마는 일동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니라”고 지적하고, “과거 불합리한 차별제도의 조목” 가운데 “남녀의 차별”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교무들과는 달리 여자교무들은 제복 또는 ‘검정치마 흰 저고리’로 상징되는 정복 (貞服)을 입게 하는 한편, 실질적으로는 결혼을 못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억압하는 모순을 드러냈는데, 2020년부터야 여자교무의 ‘정녀서약’ 관행을 폐지했다.
4. 종교와 비폭력저항: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평화는 평화적으로 추구하고 성취해야 한다. 평화라는 목표를 이루는 수단과 방법도 평화적이어야 한다. 내가 인터넷에서 즐겨 쓰는 아이디 ‘pbpm’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peace by peaceful means)’를 뜻한다. 지금까지 비폭력운동은 주로 종교경전을 바탕으로 종교인들이 주도해왔다.
1) 퀘이커교도들의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
한국에서 ‘종교 친우회’로 불리는 퀘이커교도들 (Quakers)은 18세기부터 미국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과 우호적 관계, 노예제도 반대, 전쟁 반대 등을 주장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폭력과 칼이라는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악에 대한 무저항, 온유, 온건, 평화 애호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평화와 조화와 사랑의 모범을 보여 세상에 전파될 수 있다”고 했다.
2) 톨스토이의 ‘악에 대한 무저항’
톨스토이는 1884년 발표한 My Religion (나의 종교) 및 1905년 출판된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등의 저서를 통해 그가 믿는 종교의 본질을 설명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기독교를 내세우며 악에 대한 무저항을 주장했다. 산상설교라 일컬어지는 마태복음 5장 39절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전쟁을 불법적인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이와 아울러 기독교인을 “이웃과 다투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거나 공격하지 않으며, 그와 반대로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고난을 당하며..... 세계를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교회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흔히 기독교라 불리는 교회의 신앙을 가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무저항의 선구자들인 퀘이커 (Quaker) 교도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인용하며 무저항의 당위성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무저항’이란 말은 사전에서 정의하듯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악에 대해 무조건 저항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악에 대해 악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약성경 (Hebrew Bible)과 하무라비 법전 (Code of Hammurabi)에 기록되어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해를 당한 만큼 앙갚음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오히려 선으로 물리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무저항주의는 침략적이든 방어적이든 모든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을 위한 준비도 반대하는 것이다. 자신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무기를 들어서도 안 되고 정당방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행하는 사람의 생명을 해치거나 빼앗을 수 없다고 했다. 평화에 대한 사랑과 인류에 대한 선을 가르치는 종교와 전쟁이 병행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가 군복무를 강요할지라도 단호하게 그러나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군복무를 거절하는 게 기독교인의 명예롭고 엄숙한 임무라고 여겼다.
3) 간디의 ‘적극적 비폭력저항’
간디는 힌두교도로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저항 이론을 다듬고 실천에 옮겼다. 톨스토이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기독교 경전을 공부하며 가르침을 받은 기독교인이라면, 간디는 힌두사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힌두교 경전을 즐겨 읽은 힌두교도였다. 간디가 영국에서 법을 공부할 때, 스무 살이 되도록 읽지 못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며 읽었던 힌두교 경전이 『바가바드 기타』다. ‘신의 노래 (the song of God)’ 또는 ‘하느님의 노래 (the song of Heaven)’라는 뜻을 지닌 이 경전은 간디의 ‘정신적 참고서 (spiritual reference book)’ 또는 ‘일상 지침 (daily guide)’이었다. 그가 1,000번 이상 읽었으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간디의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작일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 간디, 킹 (Martin Luther King)에게 영향을 준 쏘로우 (Henry David Thoreau)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저작이며, ‘한국의 간디’로 불린 기독교인 함석헌도 번역했던 『바가바드 기타』의 가장 큰 가르침이 바로 비폭력이다.
간디는 자서전에서 톨스토이가 1905년 발표한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읽고 감동에 휩싸이며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에 평생 잊지 못할 깊은 감명을 받고 이를 비폭력주의로 발전시켰다. 특히 마태복음 5장 39-40절을 “아주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한없이 기뻐하며” 이 산상설교를 『바가바드 기타』와 비교해보았다. 나아가 양쪽의 가르침을 하나로 엮어보려 시도하며, “주요한 종교에는 모두 통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 초기에 무저항을 ‘소극적 저항’이라고 불렀지만, 이 말은 약자의 무기인 것처럼 오해될 염려가 있어 ‘진리파악 (satyagraha)’ 또는 ‘비폭력 (ahimsa)’이라고 고쳐 불렀다. 무저항이란 말은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소극적 저항이란 말은 수동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비폭력저항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간디에 따르면, 무저항이나 수동적 저항은 약자의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이나 비겁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이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해치려는 노력이며, 어떤 경우엔 남몰래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직접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비폭력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차라리 복수와 죽음을 무릅쓴 폭력적 저항이 차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와 간디의 비폭력주의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악에는 악으로 대적하지 말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서도 안 되며 정당방위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간디는 불의에 대항할 줄 알아야 하고 비폭력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을 때는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비겁할 뿐만 아니라 무능하고 약한 자의 ‘엉터리 비폭력’은 세상에서 가장 비도덕적이라며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 폭력은 필요하고 고상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4) 킹의 ‘투쟁적 비폭력 저항’
킹은 1950년대 초 신학대학에 다니면서 간디의 비폭력 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앨라배마에서 목사직을 맡은 지 1년 남짓 후 다음과 같은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사건을 맞았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 몽고메리 (Montgomery)에서 로자 파크스 (Rosa Parks)라는 흑인 여성재봉사가 퇴근 후 버스에 올라 백인 지정석 뒤 첫줄에 앉았다. 좌석이 찬 뒤 백인들이 오르자 버스기사가 그녀에게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거부했고 체포됐다. 이 소식에 흑인들은 버스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졌고 킹이 대표로 뽑혔다. 그는 첫 대중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종차별 폭력조직 (KKK)을 비롯한 백인들은 불의를 영속화하려고 시위하지만, 우리는 정의의 탄생을 위해 시위한다..... 우리의 시위엔 백인 폭력조직처럼 십자가를 불태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백인도 두건을 쓴 흑인폭도들에 의해 집밖으로 끌려 나와 야만적으로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과 협박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강요가 아니라 설득의 방법을 택할 것이다..... 우리는 ‘너의 원수들을 사랑하라. 너를 저주하는 그들을 축복하라. 너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외쳤던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어지는 집회들에서는 간디의 철학을 소개하며 얘기했다. 사회에서의 갈등과 긴장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정의와 불의 사이에 있는 것이라며, 정의롭지 못한 백인들을 물리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를 물리치기위해 나아가자고 했다. 이렇게 비폭력저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킹은 체포되기도 하고, 전화나 편지와 엽서를 통해 협박도 받았으며, 집이 폭파당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흑인들이 킹을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들었지만 킹은 무기를 버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폭력에도 비폭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백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1년 동안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적으로 이끌며 마침내 1956년 12월 백인-흑인 격리법 철폐의 승리를 거두었다.
1963년 8월 그는 워싱턴 디시에서 대규모 평화행진을 이끌었다. 수십만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킹은 ‘미국 민권운동의 가장 유명한 연설’을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1년 후 1964년 7월 미국의회는 결국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Civil Rights Act)을 통과시켰다. 이와 아울러 킹은 비폭력저항을 이끈 공로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86년 미국의회는 킹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과 가까운 1월 셋째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다. 미국에서 개인의 생일을 연방 공휴일로 정한 것은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대통령과 비폭력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써 킹뿐이다.
5) 함석헌의 ‘비폭력 혁명’
함석헌의 비폭력 사상은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와 간디의 비폭력 저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톨스토이의 종교관과 무저항 정신은 간디와 류영모에게 영향을 미치고 간디와 류영모는 함석헌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스승 류영모를 만남으로써 ‘정신적으로 단층을 이루며 비약’했다고 했는데, 스승이 기본을 세우고 자신이 발전시킨 씨알사상은 백성 (民)이 역사와 사회의 바탕이며 주체라는 사고와 인식으로, 여기엔 생명, 사랑, 민주, 평등, 비폭력, 평화 등의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1919년 3.1운동 무렵 간디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뒤, 1924-25년 무렵엔 간디에 관한 책을 읽고 간디를 흠모하며 그의 사상과 투쟁방법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함석헌이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은 간디를 배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밝힌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간디는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잘 조화시켜 정치문제를 종교적으로 잘 해결했다. 어느 시대에든 역사는 결국 정치와 종교의 싸움인데, 오늘날 인류가 당하는 고민은 종교를 무시하고 사회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데서 온다. 종교가 국가의 공인을 얻은 대신 모든 문제를 정치에 넘겨주고 현실을 피하며 순전히 저 세상만을 위하는 종교로 바뀌어, 인생관이 천박해지고 마침내 대규모의 전쟁이나 학살까지 마음대로 저지르는 세상이 돼버렸다. 이런 터에 간디는 몇 백 년 동안 식민통치를 통해 산송장이 되어버린 2억의 인도인들을 단순한 종교심으로 불러일으켜 대영제국의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로운 나라의 기초를 닦았으니 인류역사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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