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중앙시평] 북한 소득감소성장정책의 끝은 - 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 소득감소성장정책의 끝은 - 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 소득감소성장정책의 끝은
[중앙일보] 입력 2021.05.26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보다 훨씬 더 기이한 정책을 실험하고 있다. 주민 소득을 희생시키더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이른바 소득감소성장정책이다. 올 1월에 개최된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천명했지만 정작 주민을 위해서는 평양과 검덕지구에 각각 5만 채, 2만5000 채의 살림집(아파트)을 건설하겠다는 약속밖에 하지 않았다. 반면 화학과 금속공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전력과 석탄을 증산해야 한다는 등 산업 부문에 관해서는 장황하게 언급했다. 정책의 목표를 주민 후생보다 산업생산을 끌어 올리는 데 둔 것이다. 4월에 열린 당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은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함으로써 이를 분명히 했다. 주민에게 극심한 고난을 견디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주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이유는 바로 그 정책 때문이다.

  • 김정은의 소득감소성장정책
  • 한 세기 전 스탈린 정책 닮은 꼴
  • ‘애민정치’에 정작 ‘인민’은 없어
  • 남 아닌 북이 소득주도성장 해야

산업생산을 늘리라고 김정은이 다그치면 부담은 주민에게 떨어진다. 목표 생산량이 증가하면 기관과 기업은 주민을 강제 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한다. 또 돈주 등 부유한 계층뿐 아니라 일반 주민에게도 각종 명목으로 돈이나 현물을 뜯어낸다. 심지어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도 정권은 여러 기관에 사업을 할당할 뿐 필요한 자원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관은 주민의 돈과 노동을 동원해 이 ‘과제’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고, 이권이 개입되며, 착취가 일어나고, 인권이 침해된다. 이같이 북한의 정책은 주민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산업생산만 증가하면 된다는 사이비 경제 논리에 기초해 있다. 그 허구성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됐다.

주민 후생 사업으로 제시된 평양의 살림집 건설은 분배마저 악화시킨다. 남한 연구자의 추정에 따르면, 평양의 1인당 소득은 다른 도의 최대 3배에 달하며, 평균 토지가격은 여타 지역보다 80% 정도 높다. 주택 건설이 필요하다면 평양보다 주거 환경이 더 열악한 지방이 우선 고려됐어야 했다. 이런데도 평양에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이유는 정권의 핵심 지지층인 평양시민의 충성심을 고취하려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지금 같은 위기에서 주택 건설이 최우선인지도 의문이다. 생계를 잇기 어려운 가계를 선별해 지원하는 것이 몇 배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원은 눈에 보이지 않아 선전 효과가 떨어진다. 대신 대형 아파트 단지처럼 뚜렷이 관찰되는 건축물이 김정은의 ‘애민(愛民)정치’를 과시하기에 적격이다. 권력자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취약계층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내팽개쳐진 것이다.

소득감소성장정책의 원조는 스탈린이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소련의 1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 기간인 1928~32년 산업생산은 50% 증가했던 반면 실질임금은 50% 감소했다. 임금을 적게 주면 소비가 줄 것이고 그러면 투자를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판단이 그 배경이었다. 심지어 그 임금으로도 살 수 있는 소비재가 부족했다. 이 문제를 지적하는 부하에게 스탈린은 생필품이 부족하면 노동자는 딴생각을 품지 않고 오직 먹고살 궁리만 한다며 이를 두둔했다. 그러나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라는 압박을 받으면 기업은 양에 집중할 뿐 제품의 질에는 관심이 없다. 장기 성장을 결정짓는 혁신은 꿈도 꿀 수 없다. 소련 초기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사실 극단적인 비효율과 낭비가 만든 신기루였다.

김정은의 스탈린 베끼기는 정책뿐 아니라 경제와 관련된 연설에도 드러난다. 스탈린의 연설은 어떤 기간 동안, 어느 산업의 생산이, 얼마 증가했다는 언급을 가득 담고 있다. 주민의 후생 증진을 정책 목표로 삼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가계 소득이 얼마 증가했는지도 거의 말하지 않았다. 김일성과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회주의 경제관에 따라 생산량을 중시할 뿐 주민 후생은 부차적이거나 희생시켜도 좋다고 판단한다. 인간 소외를 막고 착취를 없애겠다고 공언한 사회주의는 실상 사람보다 물건을 더 중시한 괴물이었다. 지금 김정은의 정책 속에도 인민은 없다.

김정은이 정말 인민을 위한다면 소득감소성장이 아니라 소득주도성장을 해야 한다. 북한처럼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저개발국에서는 임금이 올라가면 근로자의 영양 상태가 좋아져 노동생산성이 상승한다. 열심히 일할 유인도 증가한다. 이같이 소득주도성장을 해야 할 북한은 시간을 한 세기나 거슬러 스탈린의 소득감소성장을 따라 하고, 이미 선진국이 된 한국은 북한이 해야 할 정책을 한다고 난리였다. 이 무지(無知)의 향연이 벌어지는 시공간이 21세기 한반도란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북한의 소득감소성장정책의 끝은 어디일까. 2017년 북한이 국제사회의 극한을 시험했다면 지금은 비핵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내부의 극한을 시험하는 중이 아닐까. 그 극한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하면 2018년과 같은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북한 정권이 그 극한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소득감소성장 덕분(?)에 극한에 더 빨리 다가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북한 소득감소성장정책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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