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5

Sejin Pak [박노자] 박노자는 한일관계에/한국사회에 평화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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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박노자는 한일관계에/한국사회에 평화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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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박노자가 한일관계에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은 원한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일본이 완전히 달라지기 전에는 가능한 평화가 아니다. 수십년 안에는 가능하지 않은 평화라면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후라고 나아질 것도 없다.
- 밑의 글을 보면 박노자의
1] 일본에 대한 이해와 평가와,
2] 책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나온다.
- 나는 이 두가지를 보고 한국사회, 특히 한국의 국가주의, 지배구조등의 훌륭한 비판을 하고 있는 박노자의 상당히 부정적인 면을 보고, 그를 다시 평가한다.
- 우선 밑의 글에서 보는 박노자의 일본 이해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책<제국의 위안부>를 긍적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보수적 주류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숫자적으로 큰 일본의 (진보를 포함한) 리버럴들이 있다. 한국서 언제나 비판의 대상인 소위 "극우"의 <제국의 위안부> 평가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박노자는 한국의 독자를 속이고 있는 편이다.
- 학자 박노자의 학자 박유하의 평가를 보자면, 박노자의 글은읽기가 더럽다. 일본 지식인 들이 보는 <제국의 위안부>는 제처 놓고, 한국 학자들 만의 <제국의 위안부>의 평가를 생각해 보자. 이미 알려지다 싶히,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앞자비라서 그런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바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윤리적인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식인으로서 이 책에 대하여 견해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박노자 같은 박유하 비판은 박유하 만의 비판이 아니라 <제국의 위안부>를 긍적적으로 평가하는 한국의 지식인들 모두에의 독선적인 모독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노자는 그가 흔히 비판하기 좋아하는 이디올로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면 모두 모독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권력을 갖게 되는 날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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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글
[이게 잘못하면 개인 (저자) 위주의 이야기가 되거나 책 위주의 이야기 될 수 있는데, 이건 좀 위험합니다. 사실 여기에서의 문제는 그 저자 자신도 아니고 그 자체로서의 책 (<제국의 위안부>)도 아닙니다. 책이야 그냥 공부에 그다지 취미 없는 학생의 리포트와 비슷할 뿐입니다. 위키페디아를 인용하고 일본 전후 소설들을 "사료" 취급하고 하타 이누히코 등의 일본 보수 학계의 설들을 대충대충 짜깁기하는 수준이죠.
문제는, 이와 같은 "작품"을 필요로 하는 일본의 시장이고, 이런 "작품"을 쓴 저자를 영웅화시킨 일본 언론들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단지 일본 국가/군대의 책임을 상대화시킬 구 식민지 출신의 "발언"이 필요했던 셈인데, 안성맞춤 격으로 이 책은 바로 일본의 보수적 주류가 요청한 이와 같은 노릇을 똑똑히 잘 해낸 것이죠. 그래서 구 식민지 출신으로부터 이런 발언을 받아내 소비하고자 하는 사회야말로 문제지, 그 발언의 내용 그 자체는...뻔합니다.
"업자 책임"도 그렇고 "애국적 동기"도 그렇고, "중국인과 격이 달랐다"는 데에 대한 강조도 그렇고, 여태까지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이 이미 다 해온 진부한 왜곡들일 뿐이죠. 그런 걸 원하는 사회는 정말 문제입니다.
한데 악화가 왕대접 받는 시장은 거기뿐인가요? <일본은 없다> 같은 수준의 저서들이 국내에서 잘 나갔던 걸 기억해보면...독자층의 어떤 콤플렉스에 잘 들어맞기만 하면 책에 내용이 없어도 별 문제는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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