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알라딘: 머튼의 평화론

알라딘: 머튼의 평화론

머튼의 평화론  
토마스 머튼 (지은이),조효제 (옮긴이)분도출판사2006-12-01원제 : Peace In The Post-christian Era (2004년)



머튼의 평화론

정가
9,000원
판매가
8,100원 (10%, 900원 할인)
마일리지

기본정보
288쪽

책소개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취하고 있는 대테러 전략과 그에 편승하여 일부 보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십자군 전쟁론과 문명 충돌론을 은근히 비호하고 비추기는 경향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야 할지를 예언자처럼 가르친다.

지은이는 특히 수도자.성직자들이 현세의 일에 대해 예민하게 귀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고, 세상의 쇄신을 위해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수도자가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전반적 쇄신은 위험에 처할 것이요 완전히 불모의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고 호소한다.


목차
서문 - 짐 포리스트
편집자 주

1. 평화는 종교의 책임
2. 우리가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가?
3. 죽음의 무도
4. 그리스도인의 평화를 가꾸는 사람들
5.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이 전쟁론
6. 마키아벨리의 유산
7. 현대전의 정의
8. 냉전의 종교적 문제
9. 신학자와 국방
10. 평화를 위한 행동
11. 동과 서를 넘어서
12. 도덕적 수동성과 악마적 능동성
13. 과학자와 핵전쟁
14. 빨갱이냐 죽음이냐?
15. 세계적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관점
16.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국방
17. 그리스도인의 선택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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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그리스도교적 외양은 거의 속빈 강정과 같은 것이며, 과거에 '그리스도교 사회'라고 불리던 사회조차 오늘날에는 무늬만 그리스도교이고 사실은 완전히 유물론적 이교도의 영향하게 놓여 있다. 또한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무늬를 벗겨 내면 도덕성도, 정체성도, 자비도, 감각도 없는 공허한 대중 정신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미신으로 가득 찬 종족 사회로 퇴행한 상태가 드러난다. 영성의 종교가 원시 부족들의 전체주의적 전쟁과 기계의 우상숭배 앞에 무릎을 꿇었다. - 본문 144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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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스물네 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컬럼비아 대학 문학박사로서 화려한 작가 생활을 했으나 스물여섯 살에 켄터키 주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 1968년 방콕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수사ㆍ영성 작가ㆍ사회정의의 수호자로 살았다. 1948년 자전적 일기 「칠층산」을 시작으로 70여 권의 책을 출간하여 20세기 가톨릭 영성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1963년 종교와 관상 기도 연구에 대한 기여로 ‘평화상’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았다.
최근작 : <고독 속의 명상>,<토머스 머튼의 단상>,<마음의 기도> … 총 337종 (모두보기)
조효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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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 교수이자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이다. 런던대학 정치외교학 학사, 옥스퍼드대학 비교사회학 석사,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 박사이다. 한국인권학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 하버드대학 인권펠로, 코스타리카대학 초빙교수,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유엔 본부 학술대회 기조 강연자 등을 지냈다.
저서로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의 지평》, 《인권의 문법》, 《인권을 찾아서》, 《Human Rights and Civic Activism in Korea》 등이 있다. 역서로 《인권사회학의 도전》, 《인... 더보기
최근작 : <10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과서, 한걸음씩 시리즈 1~10 세트 - 전10권>,<탄소 사회의 종말>,<인권의 최전선> … 총 4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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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토마스 머튼의 수행과 만남>,<나의 태양은 어디에>,<고해 사제의 밤>등 총 517종
대표분야 : 가톨릭 2위 (브랜드 지수 279,89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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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의 평화론> :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새창으로 보기 구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p44)... 공산주의자들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우리는 핵무기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핵무기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련에게 사용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할 말이 남았는가? (p46) <머튼의 평화론> 中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 ~ 1968)은 저서 <머튼의 평화론 Peace in the Post Christian Era>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상되는 답은  강력한 핵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수호 정도겠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머튼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핵 억지력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윤리 원칙을 악용하는 작태에 우리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핵 억지력에 수반된 역설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역설의 한 변형이다. 즉, 우리가 살기 위해서 기꺼이 남을 죽이고 나 자신도 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오도된 관점이다.(p52) <머튼의 평화론> 中 



 오늘날 이 나라에서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수중에 떨어지느니 모두 함께 자멸하는 게 낫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모두 포기한 패배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똑같은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다.(p227) <머튼의 평화론> 中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민간인과 군인, 적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해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머튼의 이야기는 다른 반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의 사용은 괜찮은가? 이에 대한 머튼의 반론 역시 명확하다. 전쟁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머튼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령 어떤 전쟁이 '정당한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전쟁 도중 명백하게 정당하지 않은 수단에 의지하게 되거나 병사들과 전략가들이 한없이 비인도적인 잔혹성에 사로잡히게 될 경우 '불의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p122) <머튼의 평화론> 中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인가? 우리의 종교인가 우리의 물질적 부인가? 아니면 종교와 돈을 우리가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어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 도저히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p147)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1960년대 냉전(冷戰)상황이 윤리(倫理)의 붕괴, 가치관의 상실에서 온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윤리와 가치가 붕괴된 현실에서 개인은 물질적 풍요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가 작금의 긴박한 전쟁 직전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근본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피상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적 신조를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핵전쟁, 그리고 꼭 핵무기가 아니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와 인간과 국가와 문화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것은 극히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정상적인 도덕률에 의해서도 금지되는 행위다... 우리에게는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중심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자제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도와주는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p61)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자가 최선(最善)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공론화(公論化)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군비감축 등 구체적인 평화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최선의 인간 가치를 옹호하고 북돋우어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와 자신의 도덕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자기 삶을 발전시킬 권리가 바로 그러한 최선의 인간 가치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보유한 거대한 파괴력이 범죄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인류를 지켜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문제의 핵심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된 군비 철폐안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잘 연구하여 희망의 분위기와 협상의 자신감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결적인 과제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인 것이다.(p185) <머튼의 평화론> 中



 국가의 논리적 행동을 자극하기 위하여 여론의 압력이 반드시 한몫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개명된 양심이라면 반드시 준수할 도덕정 한계를 명백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원칙을 공표하고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대외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그런 원칙이 정책의 향방에 결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p20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내적 의도와 외적 행위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함을 의미한다.(p238)  <머튼의 평화론> 中



 이렇게 바라본다면, 머튼의 평화론은 다른 평화론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일반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머튼의 평화론이 다른 이유는 행동의 주체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 주변이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문제를 알려주기에,  독자들은 반성(反省)하게 된다. 



 전체주의와 관련해 우리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파시즘적 경향 또는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그러므로 만일 평화의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더 이상 확신에 차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일치와 사랑의 생생한 모범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p232)<머튼의 평화론> 中



 군비 철폐를 내걸고 회의를 개최하여 선전 목적의 제안을 내놓았다가 상대방이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황급히 그 제안을 거두어들이는 식의 행태를 부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이런 점에 있어 공산주의자들이 부정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서방 역시 허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p42) <머튼의 평화론> 中 



 많은 이들이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tic for tac strategy'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비롯된 듯하다. 대표적으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도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  TFT(Tic For Tac) 전략을 통해 유전자의 진화해 왔음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보복전략이 우수한 전략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2017년 국가예산 중 국방비 비중 약 10%(출처 : http://hansang1006.tistory.com/146)



 이 책은 핵무기를 대규모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공격용이건 보복용이건 간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한다.(p39)... 제한된 전쟁을 추구하기보다 온전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고 더욱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p40) <머튼의 평화론> 





[그림]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출처 : 국민일보)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 ~ 2012) 박사에 의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함 - 긴급함'의 Matrix를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국방과 관련해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보다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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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7-24 공감(36)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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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머튼의 오래된 미래 새창으로 보기
 지난 해 시월, 북한의 핵무기 실험 성공에 대한 전가(傳家)의 보도가 잇따르면서 국제사회는 심각한 고민에 처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일단의 조처들이 지속적으로 이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 북한의 행보는 이미 위협의 수순을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이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었고, 이어서 대북 제재를 필두로 한 일단의 조처들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한편 국내의 정치적 공방 속에서는 대북 압박론과 지속적 협상론이라는 두 정치적 입장들이 충돌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논의들이 복잡한 형국을 띠고 있었다. 물론 흡수통일론을 주장하는 일각의 수구주의자들은 전쟁 불사론을 주장하는 등의 극단적 대응책들을 내놓았고, 이처럼 각기 다른 입장들로 인해 남한 내의 정치적 갈등 또한 고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들이 ‘평화’를 지향해야한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관심을 근본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단지 북한의 핵실험 성공에 대한 우려 속에서 파생된 한정적이고 국소적인 고육지책이었을 뿐 ‘평화’ 자체에 대한 근본 담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내에서의 생존 문제라는 급박한 현실인식과 관련하여서는 ‘평화’에 대한 근본 담론 운운하는 것이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 문제에 대한 관심이 결여된 여하한의 현실적 해결책들은 단지 미봉책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컨대 어찌어찌 북핵 위기를 타계해 나간다고 해서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의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리 없으며, 점령과 지배, 착취의 오만한 전쟁이 만무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 위기를 극복한다고 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식의 피상적인 사고는 오히려 더 한가롭다. 그것은 단지 눈에 찬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수순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의 ‘평화’는 모든 인류를 위해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비평화의 상태를 연기하는 선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이처럼 참된 평화의 성취와 또 이를 위한 정치적 노력들이 답보된 상황 속에서 평화에 관한 토마스 머튼의 글을 만나게 된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20세기 최고의 그리스도교 영성가이다. 이러한 그가 쓴 이 책은 그가 추구하였던 ‘참여영성’, 즉 ‘명상과 활동의 통일’이라는 대명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책의 전편에서 펼쳐지는 그의 사상은 세상을 초월하는 식의 종교적 나르시시즘을 뛰어넘어 세상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참 종교 영성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현세와 현세의 문제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인간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저버린 채 하느님과 관계된 일에만 온전히 자신을 바치겠다고 하는 사이비 관상적 영성은 오늘날 분명 필요치 않”(236쪽)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60년대 미국의 현실 속에서 집필되었다. 토마스 머튼은 이 책의 탈고 당시(1962년)가 ‘포스트 그리스도교’적 세상, 즉 현대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적 이상과 태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임을 직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핵무기 개발 등의 무기증강과 전쟁 준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핵무기의 사용, 즉 전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은 어느 지점에 정위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머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연코 전쟁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군왕’으로 오셨던 예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평화를 가꾸는 사람’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사회 속에서 많은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은 ‘정당한 전쟁론’을 통해 미국의 전쟁 준비를 공공연히 옹호하고 있던 터였고, 대다수의 인민들은 ‘정당한 전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주장에 이론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정당한 전쟁론에서 제안하는 원칙들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의 전쟁 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이론이었다. 특히 현대전의 맥락에 있어서는 정교하고 제한적인 방어 전쟁이 성립될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인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되는바 정당한 전쟁론이란 결국 허위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머튼은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정당한 전쟁론의 원칙들마저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잘 지켜질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인, 비폭력 평화주의에 투신해야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성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머튼의 주장이 자신의 종교적 이상과 그 가르침으로부터 나온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오직’ 자신이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서만 부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평화가 모든 종교(인)의 책임임을 분명히 한다.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한 대목-“모든 사회의 핵심은 인류 공통의 목표를 위해 보편적 사랑 속에서 일치하는 것”(91쪽)-에서 보여 지듯이 모든 사회를 이루는 개별적 인간 하나 하나는 ‘평화’를 지향해야하는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인류는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생산되는 현실에 대해 무관심할 수가 없다. 다만 전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이 자살행위에 반대하고, 지금 당장 자신의 행동 방향을 오직 양심의 법대로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야만 모든 인간이 보편적 사랑 속에서 일치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오늘날, 이러한 ‘평화주의자’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위안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반면에 그 보다 더 많은 이들이 ‘평화’보다는-폭력과 전쟁이라는-‘죽임’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울하다. 이 책의 발간 당시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왔지만 전쟁은 그치지 않았고, 현실은 더욱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이미 40여 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의 중요성은 그만큼 부각된다. 대니얼 엘스버그의 평처럼 말 그대로 “내일 신문 헤드라인보다 더 시의적절하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모든 인류의 구원을 갈망하는 한 명의 종교인으로서 머튼의 빛나는 예지에 경의를 표한다. 더불어 진작에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바로 “오래된 미래”이며, 모든 인류가 걸어가야 할 거의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 이 책에 이 못난 글을 헌사로 바친다.

(추기: 최근 핵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입장 표명은 그나마 큰 위안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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