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위안부 배상' 판결… 1월엔 이기고 4월에 진 이유는? - BBC News 코리아
엇갈린 '위안부 배상' 판결… 1월엔 이기고 4월에 진 이유는?
2021년 4월 21일
사진 출처,NEWS1
사진 설명,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도 이날 판결이 피해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21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국가면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앞서 "일본의 불법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재판 관할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던 지난 1월의 1차 소송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법원 '일본, 위안부 피해자에 1억원씩 지급하라' 첫 판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외교부 법적 다툼의 시작은?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
1월엔 승소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 15부(재판장 민성철)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와 유족 20여 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끝낸다는 의미다.
지난 1월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당시 김정곤 부장판사)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1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차 소송의 재판부는 "일본의 불법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재판 관할권을 인정했고, 일본이 무대응 원칙을 고수해 그대로 확정됐다.
국가면제 적용
주권면제로도 불리는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앞서 지난 1월 1차 소송에선 이 국제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일본이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선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가면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1명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동영상 설명,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
그러나 이날 2차 소송에선 1차 소송과 다르게 국가면제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2015년 한일 합의가 현재도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어 합의서 내용에 따라 피해회복이 현실적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국가면제를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며 "(국가면제 인정이) 국제법 존중주의와 국제 평화주의, 균형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면제를 적용해 독일의 손을 들어주었던 이전 판결을 언급하며 "우리 법원이 당연 해석을 통해 국제관습법 일부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ICJ는 201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이탈리아인 루이키 펠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이 독일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국가면제 이론을 들어 독일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재판부는 "현재 국제관습법은 영토 내에서 이뤄진 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했다"며 "1997년 대법원 판결 등에서도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판단도 갈려
이날 재판부는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1차 소송 재판부과는 다른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외교적인 요건을 구비하고 있고 권리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1차 소송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위안부 합의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법적 배상이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등 내용과 절차 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이 같은 사정 만으로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합의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며 "일부 피해자는 화해치유재단에서 현금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국가면제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과 국제법을 준수하는 공익을 비교할 때 후자가 더 크다"며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피해자 240명 중 99명에 대한 현금 지원이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대체적 권리 구제 수단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고 말미에는 "피해자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대한민국이 기울인 노력과 성과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회복하는 데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 회복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은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반응은?
사진 출처,NEWS1
사진 설명,
이용수 할머니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각하되자 취재진에게 "너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선고를 직접 듣기 위해 대리인들과 함께 법원에 출석했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각하되자 취재진에게 "너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할머니는 이날 재판을 빠져나와 눈물을 흘리며 "결과가 좋게 나오건, 나쁘게 나오건 국제사법재판소에 꼭 가겠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밝힌 뒤 법원을 떠났다.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용수 할머니는 부당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판결 항소 등 다음 수순을 고민 중이고, 다른 할머니분들을 위해서도 일본의 위안부 제도 범죄사실 인정, 진정한 사죄, 역사교육, 위안부 왜곡이나 부정 반박 등을 요구하는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도 이날 판결이 피해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고 밝혔다.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오늘 판결은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도중 그들과 같이 잔혹 행위에 시달린 뒤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큰 실망을 안겼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이 지났다. 일본 정부가 더 이상 생존자들의 권리를 빼앗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밝혔다.
양국 정부는 모두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외교부는 "판결 관련 상세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다만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내용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정부 차원의 코멘트를 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더 보기
위안부 판결: '일본, 피해자에 1억원씩 지급하라' 첫 판결...실제 배상 이뤄질까?2021년 1월 8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외교부 법적 다툼의 시작은?2018년 11월 5일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2019년 1월 29일
광복절: 강제징용 피해자 아들이 기록한 '재한일본인 처'2019년 8월 15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