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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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의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를 읽는데 결국 요약하자면 박훈의 주장은
일본 봉건사회 -> 서구의 충격(페리 사관) -> 근대화라는 기존 서사를
일본 봉건사회 ->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침투로 인한 봉건사회의 와해 -> 서구의 충격(이건 변하지 않는듯하다) -> 근대화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성향의 학자들은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헌법 조문에 대단히 부정적이다.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표현이 민주주의를 '반공적 자유민주주의'로 협소화시키며 사실상 보수 우위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근거가 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나도 한때 동의했지만 정치사상사를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데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그 이전에 자유주의를 전제로 해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인데, 18세기 이후에 본격화된 자유주의적 사조와 대비시켜서 그냥 '개인의 자유'라고 통칭하고 말을 하자면 민주주의는 "개인"이라는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자유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제도 또는 사조이다. 즉 근대의 헌법적 정치체제는 정치적 주권을 '인민', 그것도 "평등한" 인민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파악한다. 실학 등의 유교 사조로부터 아무리 근대성을 끄집어내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속에 내재한 '신분제적 사고'를 타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근세는 근대로 이행할 수 없었다.
이처럼 근대적 정치체제로의 이행 과정에서는 각각의 '평등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루소가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건 이 평등한 개인들이 각각의 고유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는 근대적 정체가 기능할 수 없고 그것들을 하나로, 하나의 정치체가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의지로 존재해야 비로소 그 의지의 구현으로서의 "(헌)법"을 제정하여 근대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나는 단 한번도 의회의 입법과정에 동의한 적이 없지만 일반의지의 담당자로서의 나는 언제나, 항상 일반의지에 동의하고 있다. 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정직하군? 이 일반의지 개념이 볼셰비키적 독재를 뒷받침한다고 비판했던 카를 슈미트조차도 개별적 의견들이 경합하는 과정을 거쳐 무언가를 도출하는 대의제적 정치과정보다도 차라리 만민의 "박수갈채"가 더 민주적이라 일갈했던 것은 파편화된 인간군중의 '집합'이 아닌 단 하나의 의지, 그것이 수령님의 의지일지라도, 가 대의제 - 헌법적 체제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이 하나로 통일된 의지, 다시 말해서 주권이 없다면 (헌)법적 질서는 송두리째 부정된다.
문제는 이 파편화된, 개별적 인간들의 집합인 군중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인민'으로 조직해낼 것인가? 앞에서 말한 "전통"이란 바로 이 지점에서만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화의 실패는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이 개별적 소농들을 하나의 시민, 인민으로 묶어내지 못했다는 데서 그 정치적 기원을 찾아야 한다. 무슨 고종의 경제개혁 등의 실패보다도 이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원인이라 본다. 식민지기를 거치면서도 한국인은 인민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노동자, 농민을 의미하는 사회주의적 정치주체 혹은 일본제국주의의 신민 등으로 양분되어 있었으며 이 양분의 결과가 현대사 속에서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원인이었다. 결국 한국은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군사화 과정 속에서 강제적으로 내셔널리즘을 주입하여 인민을 창출해낼 수 있었고, 그 반발작용이 바로 지금 집권한 민주당 정부이다. 일본은 이 문제를 "천황", 즉 존황도막이라는 문제로 손쉽게 해소할 수 있었다. 유교적 정치문화 속에서 왕이 하나의 민족공동체의 상징보다는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천황을 하나의 민족상징으로 삼을 수 있었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정치적 논리로 존황도막 등의 유교적 용어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훈은 이런 존황도막 등의 유교적 용어를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일부로 고찰한다. 내가 볼 때 중요한 지점은 봉건사회 ->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침입이라는 과정 속에서 사무라이들이 공론장을 형성하고 주도하면서 하나의 인민을 창출해나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문서 형태로 나타난 제국헌법은 한참 뒤의 일이지만 적어도 봉건질서를 타도하고 개별화된, 원자화된 개인, 즉 정치적 주체로서의 개인들이 공론장 속에서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모시자고 했을 때 이미 거기에는 근대적 정치질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뒤에 보다 구체화시켜 문서로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무라이들이 정부에 의해 타도되었든 어떻든지와 상관없이 봉건적 질서 속에서 전근대적 비非주체로 존재하던 이들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인식하고 논의하는 것을 넘어서서 천황을 내세우고 하나의 정치적 행동에 돌입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냈을 때, 이미 그때 근대적 질서가 도래했다.
이 단절적 지점이 그의 인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사대부적 정치문화 속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지점을 계기로 근대로 이행한 단절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 박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서구화가 유교화와 함께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유교화 - 서구화를 연속적인 측면에서 관찰한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서구적 근대와 유교적 근세 간의 질적 차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어 논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혼란을 준다. 저자 자신의 입장 자체가 근대주의적 해석을 부정하려는 목적이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다보니 연속성만 돋보이게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가 유교화 - 서구화를 연속적으로 보았다면 나는 유교화 자체가 유교의 탈을 쓴 서구화? 근대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끝까지 가보지 않아서 좀더 읽어보아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생각.
덧붙여서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박훈은 의식했든 안 했든 유교적 정치문화를 서구식 문치주의와 연결시켜 사고한다. 그가 1930년대 이후의 군국주의를 유교화, 서구화로부터의 이탈로 파악하며 병학의 승리라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군국주의야말로 유교화가 아닌가? 만주국의 이데올로기만 보더라도 오족협화 등의 언어는 분명히 유교적인 언어였다. 유교적 언어가 군부 - 천황제 파시즘을 뒷받침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김정일 집권 이후의 북조선을 "신新유교" 체제로 이해하는 김성보 등의 북조선 연구와 연결시키면 파시즘과 유교화 간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지점을 고찰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유럽의 민족적 - 반半사회주의적 파시즘과 대비되는 아시아의 유교적 파시즘이랄까? 나는 그렇게 보는 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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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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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 블라인드 달고 싶어서 가져왔는데 연결고리 하나가 없다.. 아 진짜.. =ㅅ=.. 이거 사러 이케아까지 가야돼? 광명 그 먼 거리까지 가야 합니까 정녕.. 진짜 너무 짜증나. 잠이 부족한데 새벽 5시부터 햇빛이 진짜 눈으로 내리 꽂혀서 더 잘 수가 없어. 미쳐 진짜 오늘도 6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져서 진짜 짜증났어. 나 어제 새벽 2시 반에 잤는데.. 억지로 이불 덮고 자려고 했는데.. 침대에 아무리 궁둥이 비비고 있어도 잠을 못 자겠더라고 결국.. 일어나서 운동하고 그랬다. 강제로 일찍 일어나니까 스트레스 너무 받고.. 조낸 열받는거지.. 태양을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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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호
수면안대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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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YetoSpfsteefriddaumony austs 0oeSadr0e:3lrdfScg7 ·
처음 보는거라 뭐지? 하고 궁금해서 샀는데 맛있어! 앞으로 유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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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c3hmf Meatoyd SpodatnS 1sor3deS:derd5dl4 ·
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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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하기로는 정치적 영역의 포섭 범위가 쇼군 등의 상층부 사무라이 -> 하층 사무라이 -> 자유민권 운동 등의 일반시민 순으로 점차 확대되어 가는 과정 속에 유교화를 가교로 설정해놓는 것 같다.
정치문화적 차원에서 유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역사상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연구라고 생각된다.
일견 저자의 관점은 역사의 연속성을 대단히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충격이라는 단절적 사건으로 일본사를 바라보기보다 병영국가로서의 막부 체제가 유교화 속에서 점차로 와해되어 가다가 서구화의 충격 속에서 재편되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 특히나 유교화는 기존 사회의 언어로 서구화를 소개하여 정착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직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궁금해지는 지점은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전통이 근대화, 서구화라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 연속성을 강조하다가 정작 단절적인 지점을 놓치지는 않았나 하는 부분이다.
아직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궁금해지는 지점은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전통이 근대화, 서구화라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 연속성을 강조하다가 정작 단절적인 지점을 놓치지는 않았나 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박훈의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 정치의 '근대'는 어느 지점에서 시작됐는가? 왜 그렇게 보는가? 특히 내가 궁금한 지점은 "헌법"의 탄생과 관련된 지점이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저자가 본인이 명명한 "근대주의"에 대한 반감하고도 연결되는 지점인데 근대의 개념이 명료해져야 비로소 그에 대비되는 전근대가 더 명료해질 수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비판요강>에서 시도했던 역사연구의 방법론이 그러했듯이 근대에 대한 개념이 명료하지 않으면 전근대를 명료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의 진보 성향의 학자들은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헌법 조문에 대단히 부정적이다.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표현이 민주주의를 '반공적 자유민주주의'로 협소화시키며 사실상 보수 우위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근거가 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나도 한때 동의했지만 정치사상사를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데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그 이전에 자유주의를 전제로 해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인데, 18세기 이후에 본격화된 자유주의적 사조와 대비시켜서 그냥 '개인의 자유'라고 통칭하고 말을 하자면 민주주의는 "개인"이라는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자유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제도 또는 사조이다. 즉 근대의 헌법적 정치체제는 정치적 주권을 '인민', 그것도 "평등한" 인민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파악한다. 실학 등의 유교 사조로부터 아무리 근대성을 끄집어내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속에 내재한 '신분제적 사고'를 타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근세는 근대로 이행할 수 없었다.
이처럼 근대적 정치체제로의 이행 과정에서는 각각의 '평등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루소가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건 이 평등한 개인들이 각각의 고유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는 근대적 정체가 기능할 수 없고 그것들을 하나로, 하나의 정치체가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의지로 존재해야 비로소 그 의지의 구현으로서의 "(헌)법"을 제정하여 근대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나는 단 한번도 의회의 입법과정에 동의한 적이 없지만 일반의지의 담당자로서의 나는 언제나, 항상 일반의지에 동의하고 있다. 입은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정직하군? 이 일반의지 개념이 볼셰비키적 독재를 뒷받침한다고 비판했던 카를 슈미트조차도 개별적 의견들이 경합하는 과정을 거쳐 무언가를 도출하는 대의제적 정치과정보다도 차라리 만민의 "박수갈채"가 더 민주적이라 일갈했던 것은 파편화된 인간군중의 '집합'이 아닌 단 하나의 의지, 그것이 수령님의 의지일지라도, 가 대의제 - 헌법적 체제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이 하나로 통일된 의지, 다시 말해서 주권이 없다면 (헌)법적 질서는 송두리째 부정된다.
문제는 이 파편화된, 개별적 인간들의 집합인 군중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인민'으로 조직해낼 것인가? 앞에서 말한 "전통"이란 바로 이 지점에서만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화의 실패는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이 개별적 소농들을 하나의 시민, 인민으로 묶어내지 못했다는 데서 그 정치적 기원을 찾아야 한다. 무슨 고종의 경제개혁 등의 실패보다도 이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원인이라 본다. 식민지기를 거치면서도 한국인은 인민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노동자, 농민을 의미하는 사회주의적 정치주체 혹은 일본제국주의의 신민 등으로 양분되어 있었으며 이 양분의 결과가 현대사 속에서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원인이었다. 결국 한국은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군사화 과정 속에서 강제적으로 내셔널리즘을 주입하여 인민을 창출해낼 수 있었고, 그 반발작용이 바로 지금 집권한 민주당 정부이다. 일본은 이 문제를 "천황", 즉 존황도막이라는 문제로 손쉽게 해소할 수 있었다. 유교적 정치문화 속에서 왕이 하나의 민족공동체의 상징보다는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천황을 하나의 민족상징으로 삼을 수 있었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정치적 논리로 존황도막 등의 유교적 용어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훈은 이런 존황도막 등의 유교적 용어를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일부로 고찰한다. 내가 볼 때 중요한 지점은 봉건사회 ->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침입이라는 과정 속에서 사무라이들이 공론장을 형성하고 주도하면서 하나의 인민을 창출해나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문서 형태로 나타난 제국헌법은 한참 뒤의 일이지만 적어도 봉건질서를 타도하고 개별화된, 원자화된 개인, 즉 정치적 주체로서의 개인들이 공론장 속에서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모시자고 했을 때 이미 거기에는 근대적 정치질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뒤에 보다 구체화시켜 문서로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무라이들이 정부에 의해 타도되었든 어떻든지와 상관없이 봉건적 질서 속에서 전근대적 비非주체로 존재하던 이들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인식하고 논의하는 것을 넘어서서 천황을 내세우고 하나의 정치적 행동에 돌입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냈을 때, 이미 그때 근대적 질서가 도래했다.
이 단절적 지점이 그의 인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사대부적 정치문화 속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지점을 계기로 근대로 이행한 단절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 박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서구화가 유교화와 함께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유교화 - 서구화를 연속적인 측면에서 관찰한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서구적 근대와 유교적 근세 간의 질적 차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어 논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혼란을 준다. 저자 자신의 입장 자체가 근대주의적 해석을 부정하려는 목적이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다보니 연속성만 돋보이게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가 유교화 - 서구화를 연속적으로 보았다면 나는 유교화 자체가 유교의 탈을 쓴 서구화? 근대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끝까지 가보지 않아서 좀더 읽어보아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생각.
덧붙여서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박훈은 의식했든 안 했든 유교적 정치문화를 서구식 문치주의와 연결시켜 사고한다. 그가 1930년대 이후의 군국주의를 유교화, 서구화로부터의 이탈로 파악하며 병학의 승리라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군국주의야말로 유교화가 아닌가? 만주국의 이데올로기만 보더라도 오족협화 등의 언어는 분명히 유교적인 언어였다. 유교적 언어가 군부 - 천황제 파시즘을 뒷받침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김정일 집권 이후의 북조선을 "신新유교" 체제로 이해하는 김성보 등의 북조선 연구와 연결시키면 파시즘과 유교화 간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지점을 고찰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유럽의 민족적 - 반半사회주의적 파시즘과 대비되는 아시아의 유교적 파시즘이랄까? 나는 그렇게 보는 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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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Rak Park
종종 민석님 글 읽을 때마다 갖고 계신 문제의식이 뚜렷해 보여요. "이 파편화된, 개별적 인간들의 집합인 군중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인민'으로 조직해낼 것인가?" 라는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할 설명, 이 부분에 대한 아시아-특히 한국내 특수성을 찾으시려는 걸로 보여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국에 제대로 된 근대적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생각하시는 거라면 민석님같은 문제의식 갖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아지길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말씀하셨듯 한국이 내셔널리즘의 국가폭력 속에 억지로 인민을 창출한 채 이런 '한국의 근대'에 대한 세계관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이 현대 한국의 거의 모든 갈등의 원흉이라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다. 저는 이 답을 탈근대에서 찾긴 어려울 거란 느낌을 많이 받았기에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 Reply · 16 h
손민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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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StSp8gofnsoredhh ·
침실에 블라인드 달고 싶어서 가져왔는데 연결고리 하나가 없다.. 아 진짜.. =ㅅ=.. 이거 사러 이케아까지 가야돼? 광명 그 먼 거리까지 가야 합니까 정녕.. 진짜 너무 짜증나. 잠이 부족한데 새벽 5시부터 햇빛이 진짜 눈으로 내리 꽂혀서 더 잘 수가 없어. 미쳐 진짜 오늘도 6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져서 진짜 짜증났어. 나 어제 새벽 2시 반에 잤는데.. 억지로 이불 덮고 자려고 했는데.. 침대에 아무리 궁둥이 비비고 있어도 잠을 못 자겠더라고 결국.. 일어나서 운동하고 그랬다. 강제로 일찍 일어나니까 스트레스 너무 받고.. 조낸 열받는거지.. 태양을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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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호
수면안대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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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h
함경호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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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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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거라 뭐지? 하고 궁금해서 샀는데 맛있어! 앞으로 유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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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c3hmf Meatoyd SpodatnS 1sor3deS:derd5dl4 ·
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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