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평전 |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은이)보리2019-11-25
최명길 평전
정가
33,000원
판매가
29,700원 (10%, 3,300원 할인)
마일리지
1,650원(5%) + 멤버십(3~1%)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원
배송료
신간도서 단 1권도 무료
11
8
양탄자배송
지금 주문하면 5월 17일 (월) 오후 8시 퇴근후 배송
(중구 중림동 기준) 지역변경
Sales Point : 1,734
9.1 100자평(1)리뷰(13)
이 책 어때요?
카드/간편결제 할인무이자 할부소득공제 1,340원
수량
1
장바구니 담기
바로구매
선물하기
보관함 +
전자책 출간알림 신청중고 등록알림 신청중고로 팔기
기본정보
668쪽152*215mm868gISBN : 9791163140979
주제 분류
신간알리미 신청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한국인물사
국내도서 > 추천도서 > 외부/전문기관 추천도서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 > 2019년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시리즈보리 인문학 (총 1권 모두보기)
신간알리미 신청
전체선택
보관함 담기
장바구니 담기
최명길 평전
이벤트
5월 특별 선물! 본투리드/어린왕자/둘리 티셔츠(이벤트 도서 포함, 국내서.외서 5만원 이상)
이 달의 문장 투표
이 달의 적립금 혜택
이 시간, 알라딘 굿즈 총집합!
책소개보리 인문학 시리즈 1권. 전작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깊이 있게 풀어 낸 저자 한명기가 7년 만에 그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올바른 이상주의자였던 문제적 인물, 최명길.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저자는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고는 한다”며 그 까닭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을 들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하여 2018년, 2019년을 지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대한민국을 적대국처럼 대하는 일본에,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명길은 바로 비슷한 혼돈의 시기에 “망국의 위기로 내몰렸던 조선을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보여 준 용기와 유연함, 책임감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더 나아가 새로운 해법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속, 이 위기의 시대에 최명길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5
1장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다
문제적 인물 최명길 21
약골, 과거에 합격하다 29
병약에 발목 잡힌 벼슬살이 39
주역에 통달하고 양명학을 접하다 47
2장 최명길에게 큰 영향을 남긴 사람들
아버지 최기남 65
장인 장만 77
절친 장유 91
3장 인조반정에 가담하다
짧았던 광해군 시절의 벼슬살이 105
재기의 기회가 찾아오다 112
인조반정에 참여하다 119
4장 반정 직후의 활약
최명길을 인정한 김장생의 편지 129
득의의 시절 137
박엽을 구명하려 애쓰다 146
5장 이괄의 난과 최명길의 분투
배금을 표방하되 실천은 유보하다 161
반란을 진압하려 고투하다 168
노출된 정권의 취약성, 높아진 최명길의 존재감 176
6장 개혁과 왕권 강화를 위한 노심초사
정치 개혁을 시도하다 187
사회 경제 개혁을 주도하다 196
원종 추숭에 앞장서다 208
7장 정묘호란과 최명길
‘시한폭탄’ 모문룡, 후금의 침략을 유발하다 225
돌격하는 후금군, 지리멸렬한 조선군 237
최명길, 화친을 주도하다 244
8장 전쟁을 막으려 고군분투하다
제국이 된 후금, 흔들리는 형제 관계 255
홍타이지의 칭제와 강화 파탄 267
홀로 황손무의 충고를 이해하다 279
척화신들과 격렬한 논전을 벌이다 292
최후까지 화친을 위해 부심하다 306
9장 병자호란과 최명길의 고투
목숨을 걸고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들여보내다 319
춥고 배고픈 산성, 참수 대상자로 지목된 최명길 328
최명길은 항복 국서를 쓰고, 김상헌은 그것을 찢다 336
성하의 맹을 주도하여 종사를 지켜 내다 350
10장 전란의 상처를 치유하다
백성들의 고통, 인조의 사과 성명 367
인조를 위로하고 조정을 이끌다 375
‘소년 가장’ 최명길 383
다시 정치 개혁을 시도하다 392
약소국의 신하, 대청 외교의 일선에 서다 403
일본과 우호를 유지하려 부심하다 416
11장 피로인과 속환 여성을 보듬다
피로인의 참상과 속환 원칙 433
귀환 여성들을 보듬으려 했던 최명길 441
12장 명과의 밀통을 책임지다
명에 대한 부담감, 삼학사에 대한 미안함 453
독보를 보내 명과 밀통하다 460
밀통이 발각되어 청으로 소환되다 467
인조의 의심에도 인조를 보호하려 애쓰다 474
13장 김상헌과 화해하다
김상헌을 양주학이라 비판했으나 487
심양에서 김상헌과 화해하다 498
14장 귀환, 냉랭해진 인조, 그리고 죽음
청에서 귀환하다 517
인조와 관계가 다시 냉랭해지다 523
죽음 534
15장 최명길 평가의 우여곡절
진회의 죄인, 또는 매국노 543
‘정강의 변’과 진회 555
남송의 강화와 조선의 강화 차이 561
최명길의 재발견 567
책을 마치며 580
부록
최명길 연보 596
주석 610
참고 문헌 647
찾아보기 654
접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문화일보
- 문화일보 2019년 12월 5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19년 12월 2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19년 11월 30일자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9년 12월 6일자
세계일보
- 세계일보 2019년 11월 30일자
중앙SUNDAY
- 중앙SUNDAY 2019년 11월 3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한명기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 첫 책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로 2014년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접기
최근작 : <원치 않은 오랑캐와의 만남과 전쟁>,<최명길 평전>,<광해군 (리커버 특별판.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총 3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보리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소원을 들어 드립니다, 달떡연구소>,<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2021.5>,<맨날맨날 이런 공부만 하고 싶어요!>등 총 605종
대표분야 : 교육학 11위 (브랜드 지수 95,832점), 청소년 인문/사회 22위 (브랜드 지수 29,69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모두가 그가 연 문을 통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모두가 그를 비난했다.”
세상 사람 모두를 살렸지만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의 비난을 받았던 사람.
하지만 꺾이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
그 한 사람의 이야기, 《최명길 평전》.
사느냐 죽느냐 ― 명분과 실리, 또는 화친과 척화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명분일까, 실리일까?
병자호란은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에게 재앙이었다.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넘어 단숨에 서울로 내달렸고, 놀라 달아난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에 고립되었다. 산성 밖에서는 날마다 백성이 죽어 나갔다. 화친 말고는 살길이 없는데 죽어도 오랑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척화파들 속에서 최명길은 홀로 화친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나라를 구했고 백성을 살렸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최명길은 끝내 화친의 문을 연다. 그리고 모두가 그 문을 통해 살아남았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 역사의 문을 열었을까?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그랬다. 최명길은 종사의 문이 닫히고 백성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온몸을 던져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훗날 박세당은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전한 것이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였으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에 역사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변변찮은 능력을 지닌 필자가 용감하게도 최명길 평전을 쓰겠다고 덤비게 된 동기다. (‘책을 내면서’에서)
최명길, 나라를 구한 외교관이자 백성을 살린 정치가
화친으로 나라를 구한 조선의 정치가 최명길. 그 삶을 오롯이 평전으로 엮었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청과 화친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두가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없다고 외칠 때 홀로 화친을 이끌어 나라를 구했지만, 그 때문에 척화파 김상헌과 내내 비교되면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 진회보다 더한 간신, 삼한을 오랑캐로 만든 자, 소인, 매국노…….
이 책은 그런 통념 너머 진짜 최명길의 모습을 되살린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뛰어난 정치가요, 개혁가요, 외교관인 최명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가 죽음을 외칠 때 찢겨진 삶을 묵묵히 주워 맞추는 올곧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하지만 꼭 알아야 할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이야기, 《최명길 평전》.
김상헌이 화친을 청하는 국서를 찢고 통곡했다. 최명길은 그것을 주워 다시 맞추며 말했다.
“국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최명길은 인조대 조정에서 시종일관 ‘찢어진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이었다. 종이에 쓴 국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흩어져 버린 종이 쪼가리를 다시 맞추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문에서)
저자 한명기, 전쟁 속의 사람을 말한다!
전작 《역사평설 병자호란》에서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깊이 있게 풀어 낸 저자 한명기가 7년 만에 그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 저자는 최명길과 관련된 숱한 사료와 논저, 중국과 일본 자료들까지 훑으며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한 인간의 이야기를 길어 냈다. 최명길 집안에 내려오는 문헌들을 구해 읽고, 직접 최명길의 후손을 만나 선대의 이야기를 듣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바탕 위에서 저자는 최명길의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받았던 스승과 벗, 유연한 사상의 바탕이 된 양명학과의 인연, 인조반정의 공신이 되어 개혁 의지를 다지던 시절을 거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 앞에서 꿋꿋하게 나라와 백성을 지켰던 한 사람의 삶과 고뇌를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체로 적어 나간다.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최명길은 버려라. 그 모습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주화파를 넘어서 용기와 유연함,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지녔던 최명길은 가장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정치가이자, 헛된 명분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한 외교관이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최선의 대안을 찾던 경세가였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올바른 이상주의자였던 문제적 인물, 최명길.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다시 읽는 해법
저자 한명기는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고는 한다”며 그 까닭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을 들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하여 2018년, 2019년을 지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대한민국을 적대국처럼 대하는 일본에,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명길은 바로 비슷한 혼돈의 시기에 “망국의 위기로 내몰렸던 조선을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보여 준 용기와 유연함, 책임감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더 나아가 새로운 해법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다시 돌아오는 역사 속, 이 위기의 시대에 최명길을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바야흐로 다시 시작된 미일과 중러 사이 패권 경쟁의 여파가 한반도로 마구 밀려오고 있다. 우리는 이 격랑을 어떻게, 무엇으로 넘어설 것인가? 오늘 우리는 또다시 최명길을 호출해서 그의 고민과 지혜를 반추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현실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하다. 하지만 17세기 초반,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청 사이의 대결에 휘말려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고투했던 최명길의 생각과 행적들은 여전히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돌아보고 반추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책을 마치며’에서)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이 아직 없습니다.
마니아 읽고 싶어요 (8) 읽고 있어요 (1) 읽었어요 (16)
이 책 어때요?
구매자 분포
0.4% 10대 0%
3.6% 20대 3.2%
3.2% 30대 10.0%
9.3% 40대 18.5%
5.7% 50대 28.8%
1.1% 60대 16.4%
여성 남성
평점 분포
9.1
61.5%
30.8%
7.7%
0%
0%
100자평
등록
카테고리
스포일러 포함 글 작성 유의사항
구매자 (1)
전체 (1)
공감순
임진왜란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병자호란에는 최명길이 있었다. 최명길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 나아가 우리 민족의 진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명길에 관한 책이 드문 상황에서 학자로서 저자는 학계와 국민들에게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필독을 권한다. 구매
삶의_지혜 2021-04-27 공감 (0)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1)
전체 (13)
리뷰쓰기
공감순
척화와 주화 - 오늘에의 교훈 새창으로 보기
명분과 현실, 이상과 실제란 모든 인간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개인은 칭송 받을 수 있지만, 국가가 이상을 위해 온 백성을 거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통쾌하고 선명하지만,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이식이 했던 말이다. 모두 현실에만 치우친다면 짐승들과 다... + 더보기
blueyonder 2020-03-28 공감(13) 댓글(0)
Thanks to
공감
최명길은 어떤 인물인가? 새창으로 보기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그랬다. 최명길은 종사의 문이 닫히고 백성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온몸을 던져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훗날 박세당은 "조선 사람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전한 것이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최명길은 과연 누구였으며,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닫혀 버리기 직전에 역사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변변찮은 능력을 지닌 필자가 용감하게도 최명길 평전을 쓰겠다고 덤비게 된 동기다. - '책을 내면서' 중에서
인간 최명길을 새롭게 조명하다
책의 저자 한명기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 첫 책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로 2014년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17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최명길이, 지금도 역사로부터 수시로 호출되곤 한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이다. 열강의 입김과 외압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이른바 복배수적腹背受敵의 조건 때문이다. '복배수적'이란 배(腹, 정명)와 등(背, 배후) 양쪽에서 적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엔 정면의 중국과 배후의 일본이 조선을 위협하는 강국이자 강적이었다.
동북아에서 강대국끼리 '힘의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한반도가 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은 "그 가운데서도 기존 패권국(명)과 신흥 강국(청)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조선에 미치는 비극적 파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였다.
당시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1636년 2월 16일, 중국 심양에서 홍타이지皇太極가 청靑의 황제위에 오르자, 청은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 '아우의 나라' 조선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묻고자 했다. 용골대를 중심으로 한 사신단은 조선 땅 의주에 도착했다. 그동안 명을 숭상했던 조선의 성균관 유생들은 당연히 반대의 기치를 들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을 오랑캐, 홍타이지를 '오랑캐 추장'이라 불렀고, 심지어 '붉고 큰 돼지'란 뜻을 지닌 '홍타시洪(紅)打豕'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사신단 일행의 목을 치라는 살벌한 분위기를 느낀 용골대龍骨大는 '추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한 채 심양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일은 결국 후환을 불러왔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의 기마군 선봉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진격해왔다. 이들은 약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단 5일 만에 주파, 곧 한양성으로 들어올 조짐을 보인다.
이에 화들짝 놀란 인조는 12월 14일 강화도로 피신길에 나서지만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은 차단되었다는 급보가 날아들고, 청군의 선봉이 현재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일대를 지나 무악재 방면으로 접근 중이라는 보고였다. 제대로 된 접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조만간 한양 도성 한복판에 청군의 선봉이 들이닥칠 상황이 되자 인조와 신료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간 청과 일전을 벌이자던 척화파斥和派들도 아연실색이었다. 이때 "청과 화친하지 않으면 조사와 백성을 보전할 수 없다"는 말을 평소 입에 달고 살았던 이조판서 최명길이 무악재로 나아가 청과 화친을 제안해보겠다고 나섰다. 물론 이는 꼼수였다. 인조가 피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참이었다. 당시는 전시 상황인지라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곧 죽음이었다. 때문에 인조가 특별히 붙여준 경호원 스무 명도 모두 숭례문 밖을 나서자 도주해버리고 말았다. 최명길은 단독으로 무악재를 향했다. 결과적으로 최명길의 책임감과 용기있는 행동으로 인해 인조와 주요 신하들이 남하산성으로 도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최명길(1586~1647년)의 바람과는 달리,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정사를 보면서 척화파들과 함께 청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김상헌(1570~1652년)을 중심으로 한 척화파들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나라가 패망할지라도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햇다. 당시 남한산성의 상황은 처참햇다. 청나라의 군대에 포위되어 1개월 여 지난 1637년 1월 중순 매서운 추위로 병사들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려 쓰러졌고, 군량미는 하루하루 줄어들고 잇엇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외부 구원병이 완전 끊겨 버렸다는 점이다. 홍타이지는 남한산성의 함락은 시간 문제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안다. 그렇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항복함으로써 조선의 국은은 이어갈 수 있엇다.
김상헌의 주장과는 반대로 최명길은 인조가 명과의 의리 대문에 종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며, 도한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인조를 계속 설득했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당시 조선의 관료 사회에서 "청은 오랑캐"라는 인식이 확고했던 때라 최명길의 행보는 외로운 분투였다. 이때 인조가 최명길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최명길의 공적을 조선 중기 문신 이시백(1581~1660년)은 8가지를 꼽았다. 인조반정의 참여, 인조의 부친 정원군을 국왕으로 추숭, 단신으로 무악재에서 협상, 병자호란 때 화의 주도로 나라 보전, 청의 조선군 징발을 막음, 당파에 물들지 않음, 타인의 혈육을 따뜻하게 대함, 명과 밀통한 뒤 책임을 지기 위해 다시 목숨을 걸었던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거나, 엄청난 비난과 매도를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병자호란이 끝난 후 조선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최명길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명분을 내팽개친 소인小人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심지어, '진회秦檜보다 더한 간신'이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참고로, 진회는 남송 시절 여진족인 금나라와 화친을 주도, 명장 악비까지 살해했던 악명 높은 간신이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은 이정도로 최명길을 폄하했던 것이다. 반면에 항복한 인조를 버리고 낙향했던 김상헌은 '조선의 정사正士이자 영원한 사표'가 되었다. 이 얼마나 웃기는 대비인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인 듯 싶다. 2017년 사드 문제를 비롯 일방적으로 북핵을 옹호하는 듯한 중국은 한반도를 놓고 미국과 무역 및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으며, 과거 일제 식민지 치하의 피해보상 문제를 놓고 대치하던 일본은 수출 규제라는 경제 보복에 뛰어들었고, 러시아는 안보 공백을 테스트하듯 독도에 전폭기를 보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북핵이라는 리스크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과 중러,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 병자호란 때나 지금은 비슷한 위기 상황이다. 과거 조선이 직면했던 혼돈의 시기에 최명길은 패망의 위기로 내몰렸던 나라를 극적으로 살려낸 지도자였다. 그가 당시에 보여 주었던 용기와 책임감, 희생정신과 실천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값진 가치가 아닐까 싶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더 진일보한 해법을 우리들에게 던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김상헌이 화친을 청하는 국서를 찢고 통곡했다. 최명길은 그것을 주워 다시 맞추며 말했다.
"국서를 찢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최명길은 인조대 조정에서 시종일관 '찢어진 국서를 주워 맞추는 사람'이었다. 종이에 쓴 국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흩어져 버린 종이 쪼가리를 다시 맞추기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전도의 굴욕 https://youtu.be/eWupsi0tFlM
남한산성에 갇혀 청과의 화친을 주도하는 최명길을 믿고 의지하던 인조는 당시 성밖으로 나가 청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청의 인질로 잡혀가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했을 것이다. 인조의 출성出城은 사실 민감한 부분으로, 오직 인조만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마침내 인조가 출성을 결심, 이후 최명길에게 부여된 임무는 홍타이지로부터 인조의 안전을 확약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명길은 혹 심양으로 연행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인조가 자결할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마침내 홍타이지는 답서로서 최명길의 요청을 수락했다.
삼전도비
사실 청의 전신인 후금後金은 누르하치가 이끌면서 명과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을 키워나갔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국정을 다스리면서 강성해진 후금과 화친이라는 실리 외교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반정으로 광해군이 축출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후금과의 외교책에 다소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이자 후금은 인조5년(1627년) 광해군의 폐위 문제를 구실 삼아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이때 호란은 '형제지국'을 맺으면서 수습될 수 있었다.
한편,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최명길은 반정이후 호패법과 군적법을 시행하는 업무를 주도하면서, 조선의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과 취약한 국방력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후금, 즉 청에 맞서기보다는 화친을 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도 당시 조선의 현실과 후금의 군사력을 견주어볼 때 화친만이 해결책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정묘호란에 참전했던 도원수 장만과 장수 정충신의 증언을 들어봐도 당시 후금의 조선 침략 목적은 명확했다. 즉 그들은 조선의 정복이 아닌 화친 강화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그릇된 판단은 나라와 국민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미리 잘 대응했다면 병자호란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은?
여전히 '끼여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현실은 갈수록 엄혹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볼 때 만약 최명길이 지금 시대에 재림한다면 과연 그는 어떤 처방을 내릴까? 이 책의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 그토록 척화론 앞장 섰던 김상헌도 나중에 최명길의 충정을 높이 평가했음을 전하며 이런 말로 책을 마친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현실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하다. 하지만 17세기 초반,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청 사이의 대결에 휘말려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고투했던 최명길의 생각과 행적들은 여전히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돌아보고 반추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 접기
호시우행 2020-01-02 공감(8) 댓글(0)
Thanks to
공감
최명길 평전 새창으로 보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한찬남이다. 한찬남은 과거 합격 이후 광해군 정권에서 출세 가도를 달려 도승지,대사헌 , 형조판서 같은 관직을 역임했고, 대북파의 핵심 인물로 권력의 정점에 섰다.권신 이이첨 (1560~1623) 의 심복이었던 그는 1613년 (광해군 5) 계축옥사ㅅ가 발생하자 영창대군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한찬남은 이아 '폐모론'까지 주도하면서 조정에서 남인과 서인들을 몰아내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36-)
반정 성공 이후 공신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질 것을 예측했던 것일까? 당시 충청도 연산에 머물던 서인의 원로 김장생이 편지를 보내왔다. 수신인은 이귀, 김류, 장유, 최명길처럼 모두 반정공신들이었다.김장생은 이들 네 명 모두의 스승뻘로 거사가 성공할 경우 반정공신들이 조정으로 가장 먼저 모셔 오려 했던 인물이다. (-131-)
'안민'과 '토적'을 위한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나라 전체의 인민과 토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그를 위해 최명길 뿐 아니라 당시 관인들이 강조했던 것이 바로 호패법,군적법, 양전을 실시하는 것이었다.호패법과 군적은 모두 백성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정책이었다.임진왜란과 광해군 정권의 실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거주지에서 도망한 자들, 또는 죽은 자들로 말미암아 생긴 군대의 부족 인원을 보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폑단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201-)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사 기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전에 강화도에 있을 때 대감이 야간에 습격하는 일을 가지고 논계까지 했으니 정말 가소롭습니다.오늘의 일은 전하께서 심복대신과 더불어 은밀히 의논하여 결정하시되 승지와 내관도 듣지 못하게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300-)
연소한 척화신들이 천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병화를 촉진시킨 잘못은 있지만 청론을 통해 원칙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최명길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오랫동안 유배지에 둘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역시 환도 이후 심하게 분열되었던 조정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조처였다. (-390-)
2020년이 밝았다.경자년 새해에는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다.국회의원이 되려면 그들은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정치적인 협상조건도 분명 필요하다. 법을 만들기 때문에 법과 정치를 함께 알아야 하며, 여기에 덧붙여야 하는 거이 역사에 대한 이해와 통섭이다.남들보다 더 멀리 보되, 먼저 앞서 나아가지 않는 것, 그 과정에서 함께 아우르면서 나아가야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인 그릇을 갖춰 나갈 수 있다.물론 그 과정에서 정적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이들을 가감하게 쳐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그건 지금이나 과거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인조 임금때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역사속의 주요한 사건, 인조임금과 삼전도 굴욕 하면 떠오르는 인물, 최명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작금의 현실로 비추어 볼 때 상당히 고무적인 부분이다.
이 책은 인조의 반정공신 최명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시대에 병약하고, 허약했햇던 최명길은 정치에 입문하여 임금의 곁을 보필하는 것보다는 학자로서 은둔하면서 공무하는 것이 체질상 맞았다.하지만 최명길은 예기치 낞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척화파와 주화파 사이에 끼여서 자신이 해야 할,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는 외교적인 역할을 간과할 수 없었던 거였다.이 책을 읽으면서, 최명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지금의 현실로 비추어 볼 때 병자호란과 같은 큰 전쟁에 일아날 거라고 생각할 때, 미국이 아닌 일본의 손을 잡는다면, 어떤 사단이 벌어질 지 뻔한 시나리오가 보여지게 된다.즉 인조 임금 때 지금의 미국이 명나라였고, 지금의 일본이 청나라였다.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청나라를 오랑캐라 지칭하고 있다. 임금 밑에 있었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청나라를 오랑캐라 생각하였고, 명나라의 힘을 믿고 있었다.하지만 시대는 명나라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고, 최명길은 청나라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그건 20명의 신하중 19명이 명나라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할 때 최명길 혼자만 청나라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허공에 외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나라와 손을 잡고 명분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청나라와 손을 잡고 나라를 살릴 것인가 갈림길에서 최명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청나라와 화친을 맺게 되었고, 삼전도 굴욕이 있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소멸되지 않았고, 인조 임금은 더 큰 치욕을 감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만약'이라는 하나의 가정을 늘어 놓는다. 최명길이 바라보는 역사적인 안목이 틀리고, 명나라가 청나라를 이겼다는 가정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안 봐도 비디오이다.최명길의 역사적인 사실은 소멸될 수 있고, 그들 ,즉 척화파의 말은 정답이 되는 거이다. 주화파에 서서,양명학을 공부했던 최명길의 남다른 안목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최명길의 생각과 외교적인 성과가 맞았고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 나머지 사람들, 즉 주화파가 아닌 척화파의 신하들 척화신이 최명길의 업적을 지우려 했던 것이다. 최명길에 대한 역사적인 편견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만 척화파 자신들의 과오는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는 반복되며,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판 최명길은 또 나타난다는 것이다.그럴 때 최명길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는 말하고 있다.
- 접기
깐도리 2020-01-01 공감(5) 댓글(0)
Thanks to
공감
최명길 평전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의 저자 한명기 교수는 직접 강연을 들은 적도 있고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서도 접한 바 있어 친근한 느낌이 있다.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세와 전쟁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활동하는 분으로 알고있다.
사드사태에 이은 미중 무역갈증 속에서 우리나라의 처지나 향후 택하여야할 입장의 선택을 위한 역사적 교훈으로 병자호란이나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많이 언급되면서 이분의 연구결과나 강연이 무척 인기가 높아지는 것 같다.
영화로도 소개되었지만, 병자호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최명길이다. 국난에서 나라를 구한 중요한 인물이지만 유성룡이나 이순신장군에 비해 잘 알려지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승전하고 침략군을 격퇴한 임진왜란의 경우보다 패전 속에서 나라를 관리한 최명길의 노력이 더 중요하고 연구가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안타운 면이 많았는데,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한명기 교수의 평전이 출간되어 무척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다.
한명기 교수가 상당히 유머스러운 분이고 강연도 재미있지만 최명길 평전은 무척 담담하게 쓰여져 있다. 국난 속에서 홀로 나라를 무너지지 않게 노력한 인물이라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갈 여지도 없지만, 무척이나 외롭고 쓸쓰하면서도 고달픈 한 평생을 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무척 강하다.
영화 남한산성 등으로 척사와 화의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해야했는가에 대한 논쟁이나 두 방식이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각기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이야기 많이 오갔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척사파의 생각은 국제 역학관계나 당시 조선의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몽상적인 사고일 뿐이며,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한 사람은 최명길 한 사람뿐이었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욱 굳건해 졌다.
이 책을 통해 접한 국제정세 및 나라의 현실에 무지하면서 대의명분에 대해 고집하는 척사파의 모습은 2020년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대의명부이라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대의가 아니라 사대주의와 개개인의 이기심의 발로라는 점까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이 척사파들이 오히려 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국가와 백성을 위한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오늘날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무지하여 그릇된 판단을 한다기 보다는 빈약한 자신의 지식만을 믿고 꾸준히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하고 시야가 좁은 전문가나 지식인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울나라는 역사로 부터 교훈을 아직까지 얻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 스스로 대안이나 방향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최명길의 생각이나 국정운영 등에 비판만을 한 위치에 섰다는 점도 오늘날 전혀 바뀌지 않은 점이다. 그 시대의 최명길만큼 현재 국정 운영도 무척 힘들고 외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것은 황손무라는 명나라 사람이다. 결국은 명나라의 이익을 위해 조선이 자주적인 외교를 하고 좁은 시각에서 나온 명나라의 전술에 휘둘리지 말 것을 충고하였는데, 자기 나라만의 이익만이 아닌 국제정세 속 각 나라의 상황을 꿰뚫어 본 날카로운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최명길의 생각이 이와 동일하였다는 점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시 명나라는 이미 국운을 다하고 청나라가 강성하여 대의명분이 아닌 실리만 생각하였다면 판단은 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세는 판단하기 무척 어려워 보다 많은 정보와 연구, 냉철한 판단이 모두 필요할 것이며, 최명길이 먼저 걸었던 그의 생각과 외교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될 것 이다.
- 접기
마키아벨리 2020-01-27 공감(5) 댓글(0)
Thanks to
공감
주화파 최명길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읽기 힘들까 걱정했는데 최명길의 일대기를 그린 일종의 이야기책이라 하루만에 금방 다 읽을 수 있었다.
평전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한 것 같다.
너무 세세하게 주인공의 일대기를 사료에 맞춰 기술하고 또 주인공의 관점에서만 당시 정세를 판단하기 때문인지 냉정한 비판이 결여되어 찬사 일색이 되고 마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이 재밌으면서도 김정희가 동아시아 최고의 예인이 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전작 <병자호란>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최명길의 일생을 평가할 때 병자호란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일텐데, 그래서 약간은 지루했다.
얼마 전에 읽은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는 최명길을 비롯한 조선 측의 주화 노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조선을 굴복시키러 온 청 태종이 급하게 강화를 맺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사정 곧 천연두의 위협을 중요하게 언급해서 대조가 된다.
구범진 교수는 저자가 인용한 나만갑 등의 책이 당시 전쟁 상황을 정확히 기록했다기 보다 과장과 전해 들은 말이 많다고 평가절하했는데 아무래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낀 점은 명분론은 한국인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 심성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패권국에 둘러싸인 오늘날의 한반도 사정을 걱정하면서 최명길처럼 현실적인 외교적 판단을 촉구했으나 여전히 명분론이 우세한 듯해서 안타깝다.
역사책에서 대명의리론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조선 사대부들은 마치 명나라를 우리와 같은 한 나라로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는 점이다.
책에도 김상헌을 비롯한 척화신들의 당시 발언들이 많이 등장한다.
명나라는 부모의 나라이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 줬으니, 지금 오랑캐의 침략에 결사항전 하여 안 되면 모두 옥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 과연 자신들의 옥쇄까지도 염두에 둔 주장이었을까?
삼학사들이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당하긴 했지만 그 외 몇이나 죽었나 모르겠다.
기개로 봐서는 인조가 출성한 이후 전부 자결을 하던지 아니면 명나라로 망명해서 청과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인물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김상헌마저 위선적으로 자결하는 제스처만 취한 후 의리를 지키지 못한 군주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빠져 나간다.
물론 김상헌을 비롯한 안동 김문이 노론의 중심축이 되는 과정은 단순히 비아냥 거릴 수준이 아니라 당대의 성리학 관념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조선 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지 다른 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최명길의 후손은 소론이 되어 그 손자가 숙종 때 영의정까지 역임했으나 결국 주화파라는 비난을 받고 김상헌처럼 받들어지지 못했다.
그 역시 주자학을 익히며 대명의리론을 온 몸으로 받드는 성리학자였음에도 현실 정치에서는 실제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화합하고 협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항복하는 국서를 찢기만 하면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되니 붙이는 굴욕적이면서도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약한 나라가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맞다.
아마도 당시 조선인들로서는 청이 금나라처럼 일시적으로 흥기하다가 곧 망하리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 후 중국 전역을 통일할 뿐더러 중앙 아시아와 티벳까지 점령해 최고의 판도를 만들고 세계 최고의 문화 강대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너무 강력한 상대를 만난 게 불행이었던 셈이다.
- 접기
marine 2020-04-20 공감(3) 댓글(0)
Thanks to
공감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