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난 북한·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 신동아
2004년 11월호
특별 기고
식량난 북한·환경난 남한, 쿠바 유기농업 벤치마킹 하라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제언
글: 김성훈 중앙대 교수·농업경제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기사입력 | 2004.10.27 14:38
----------------------
환경보호와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이룬 농법으로 식량 자급의 꿈을 실현한 나라가 있다.
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그 주인공이다. 서방세계의 경제 봉쇄와 사회주의권 몰락의 틈바구니에서 쿠바는 어떻게 자력갱생의 활로를 개척했을까.
쿠바의 한 농장에서 담뱃잎을 거두는 농민들.지난해 5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유기농대회에 참가한 27개국 600여명의 친환경 유기농업 전문가는 식량자급도 이루고 환경생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을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아바나 세계유기농대회는 화학비료와 맹독성 농약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믿어온 이제까지의 ‘관행농법’에 마침표를 찍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여는 축제와도 같았다.
1990년 초부터 미국 등 서방세계의 경제봉쇄 조치가 강화되고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연쇄적으로 몰락해 동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 쿠바와 북한은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그중 한 국가는 준비된 친자연적 유기농업의 활로를 개척했고, 다른 한 국가는 주체농업의 주술(呪術)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유기농업 대표자들은 올해까지 두 차례 쿠바 현지 연수를 다녀왔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는 쿠바가 당면한 특수한 정치경제 상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류 사회가 ‘자원낭비형’ 농법(農法)에 의존해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쿠바의 성공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대규모 생산체제와 대량유통구조는 생태계에 각종 재앙을 불러왔다. 특히 국제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대규모 다국적기업이 세계 식량시장을 과점하면서 지구촌 곳곳의 식량주권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농촌 지역사회와 자연생태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인류의 생명과 생존권을 지키면서 지구촌 환경생태계와 공존공영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친환경적 생산 양식은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을 쿠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친환경 유기농업이다.
지속가능한 대안농업
화학·기계화 농법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관행(慣行)농법은 한국을 비롯, 세계농업계에 뿌리내린 지 고작 5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믿게 된 기간도 기껏해야 40년이 될까말까다. 그러나 화학농업은 최근에 이르러 급격한 산업화·도시화 추세와 함께 자연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사람의 건강과 동식물 종(種)의 다양성, 그리고 환경생태계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부각된 것이다.
마침내 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는 제8차 위원회에서 ‘우리들의 공동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를 세계 각국의 공동의제로 채택했다. ‘경제도 살리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이 인류의 살길’이라는 메시지가 정식으로 제기된 것이다.
경제발전 문제를 생태학적인 자연보전 문제와 통합하여 관리해야 한다는 이 선언은 인류문명사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나라가 쿠바다. 북유럽의 생태농업, 캐나다와 북미지역, 그리고 일본의 유기농업 운동에도 이 선언의 취지가 반영돼 있다.
뒤이어 미국정부도 친환경농업의 세계적 추세를 인정하고 2010년까지 순수 유기농업의 비중을 1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한국도 1998년 11월11일 ‘농업인의 날’을 기해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하고 직접지불제를 시행하는 등 다각도로 유기농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유기농업은 자연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사회·경제적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 운동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가족농(family farming)과 지역사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인다. 이제까지의 기계 및 화학농법 위주의 대형기업농 또는 초대형 다국적기업 중심의 생태파괴적인 대량생산체제로는 더 이상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지속가능한 생태유기농업의 필요성이 대두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고 있는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유기농업 운동’이라든지, EU 각국이 생태환경과 자연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생태 바이오 농업’이 대표적인 대안운동이다.
일본의 경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한국에서는 농협 주도로 신토불이(身土不二), 도농불이(都農不二)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운동도 지속가능한 대안농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1/5
쿠바는 1991년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유기농업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공산체제하의 대형 국영관행농업을 소규모 가족농이나 협동농 중심의 유기농업 체제로 전환시켰다. 미국의 경제봉쇄에 이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화학비료 화학농약 그리고 수입석유를 원료로 하는 합성물질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가 ‘평화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유기농업을 진작하기 훨씬 이전인 1967년, 카스트로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레이철 카슨 여사의 명저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을 선물한 바 있다. 쿠바가 이미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
쿠바는 친환경적인 유기농법을 전면 시행하기에 앞서 경제 사회 기술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개혁조치를 단행하고 농정기반을 닦았다. 국가 비상사태를 계기로 과감히 근대 화학농법의 사슬을 벗고 친환경 유기농법에 도전했다. 그 시도는 기적처럼 성공했다. 대규모 국영농장을 사적 경영형태의 개별 가족농과 인센티브제에 입각한 협동경영체제로 개편하고 지역자원을 재활용하는 순환농법을 권장했다.
한편으로 조상 대대로 전해온 전통 농업기술을 현대 과학기술에 접목시키는 데도 주력했다. 이른바 21세기형 신(新) 유기농 운동을 적극 전개한 것이다. 도회지의 유휴공지엔 토상(土床) 농법을 도입하고 전국적으로 지렁이 분변토와 퇴비로 흙을 만들었다. 가가호호마다 유축(有畜)농업, 상호 부산물과 각종 미생물 및 천적을 활용하는 자연순환형 생태농법을 보급했다.
여성이 유기농 핵심요원
쿠바는 유기농 운동에서 여성을 핵심요원으로 동원했다. 심지어 중학교 이상 교과과정에 친자연적 영농체험활동(연 45일)이 포함됐다. 그 결과 2004년 현재 쿠바 유기농업 총책임자인 농업부 차관, 중앙 유기농업연구소장, 유기농 관련 각종 연구소와 실행기관의 요직을 온통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건강한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젖줄과 같이 대지(大地)의 식량농업 역시 여성이 앞장서야 건강한 국민을 키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쿠바의 교수 교사 연구원들은 반세기전, 관행 화학농법이 도입되기 이전에 조상 대대로 사용해왔던 친환경적 생태농업 기술과 자재를 발굴, 현대의 생물학적 과학기술에 접목시켰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유기농 기술이 농가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농가에서 실제 써보고 효험이 있다고 하면 신기술 개발자에게 특별한 상을 내리는 인센티브 제도도 실시했다.
쿠바의 유기농 실험은 예상을 뒤엎고 크게 성공했다. 식량자급률은 유기농업 운동 시작 이전의 43%(1990년)보다 훨씬 높은 95%(2002년) 수준을 달성했다. 초기 2년간은 총생산성이 약간 떨어졌으나 1994년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일반 관행농업 생산실적과 비슷해졌고, 1997년 부터는 오히려 더 높아지는 추세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매진한 결과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에서 200여만명이 기아로 숨진 데 비해, 쿠바에서는 아사자(餓死者)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육류 위주의 식생활 패턴이 유기농산물 중심으로 바뀌며 국민건강 수준도 현저히 좋아졌다.
병원 출입 환자 수가 30%나 줄어들고 영아사망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미국 등 서구사회의 고질적 현대병인 비만증 환자를 쿠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도 특기할 만한 변화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림 등 녹색지대 면적이 현저히 늘어나고 도시환경 생태계가 다시 살아났다.
1992년 미국의 스탠퍼드대 조사단은 쿠바의 이런 시도에 대해 그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며 ‘인류 역사 최대의 실험’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열대지방인 쿠바에서 유기농법으로 환경생태 보전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세계 전문가와 정책집행자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지금까지 생태보전형 유기농업을 추진할 경우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반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관행농법을 쓰면 생태계가 오염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다.
10여년의 시험기간이 지난 오늘날 쿠바의 유기농업운동은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그동안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無)농약’ ‘무(無)화학비료’라는 소극적 영농 개념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환경의 지속적 순환을 가능케 하는, 한 단계 높은 현대적 생태문명체제를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생산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생태계의 지속성(sustainability)을 확보하고 농업생산성 향상 및 생활양식의 전환을 동시에 이룬 ‘늘 푸른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2/5
기사입력 | 2004.10.27 14:38
북한 해금강 부근 들녘의 가을걷이 풍경.사실 쿠바에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봉쇄조치로 인해 생필품조차 조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 전반의 식생활 문화, 그리고 환경생태계와 조화를 이룬 생태적 문명수준만큼은 확실히 현대 인류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로 쓰는 관행농법이 범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을 이끌었지만 그 폐해가 점차 두드러지면서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범지구적인 관행농법의 성행이 비록 식량증산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으나 실제로는 인류의 건강과 환경생태계를 파괴한 ‘검은(black) 혁명’이 되고 말았다”는 쿠바의 주장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증산(增産)도 이루고 생태계도 보전한 쿠바의 유기농업운동은 그래서 ‘푸른 혁명(Blue Revolution)’이라 불릴 만하다.
그 성공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직거래 유통 중심의 시장개혁을 들 수 있다. 흙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지렁이 분변토와 토상 농법, 각종 토착 미생물과 생약(生藥) 및 천적을 획기적으로 개발·보급한 것도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 농가 현장에서는 분뇨 등 부산물 자원을 재활용하고 윤작 간작 휴경작 등 순환농법이 정착됐다. 이에 더해 전통농업 기술 및 자재와 생물학적인 현대과학 기술이 성공적으로 접목됐다. 농민이 참여한 현장 연구와 농가 적응시험을 중시한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각종 연구시험 과정과 결과에 일선 농민의 참여를 강조한 것도 특기할 점이다. 더불어 국민의 의식주 생활패턴을 친환경적으로 개편하고 환경생태계를 살리면서 농업 총생산량과 농가소득 향상을 동시에 도모한 과감한 정책전환은, 비록 외부적 요인에 의한 급격한 변화였다고는 하나 주의 깊게 학습할 가치가 있다.
특히 쿠바가 다음과 같은 농업생태학적 접근방법을 유기농업 혁명의 기본원칙으로 삼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불필요한 장거리 수송과 농작업에 따른 화학에너지의 낭비를 줄이고 도시생태계의 환경개선과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 간편한 도시 유기농업 방식을 시도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친환경 유기농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범국민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지도력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운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바로 ‘국가적 리더십의 결여’다.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
쿠바는 이제 세계 친환경 지속가능 농업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학술조사단은 2002년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을 확인하면서 새 보고서를 통해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극찬했다. 보고서는 그 비결이 전국가적인 치밀한 사전준비와 연구, 그리고 관련 사회경제 개혁을 동시에 추진한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중에서도 온고지신의 연구·개발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쿠바는 화학농법이 보편화되기 이전 4000~5000년간 조상 대대로 개발·이용해오던 각종 친자연적 농업기술과 자재를 재발굴하고 이를 현대 과학기술에 접목시켰다. 새롭게 개발된 기술과 자재는 농민들의 시험재배를 통해 검증됐다.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사례는 화학농법에 찌들어 생태계 파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에 커다란 교훈과 희망을 준다. 특히나 아직도 ‘우리식’이라는 주체농법 관리체제 아래 매년 수백만 굶어죽는 북한의 식량난과 농업 문제를 극복할 한 방도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북한 정책결정자들에게 달려있다. 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길이 있다.
‘주체농법’의 몰락
북한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식량자급률 65%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질적으로 북한 내정을 책임진 1994년 이후 자급률이 급속도로 악화돼 지금은 50%대를 밑돌고 있다. 물론 남한의 27%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1인당 소비량이나 품질수준을 고려할 때 비교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나마 부족분을 외국에서 사들여올 외화마저 고갈된 지 오래다.
이른바 ‘경제 3난(식량난, 물자난, 에너지난)’과 외화 고갈로 고통받는 와중에 자연재해까지 연거푸 겪은 북한은 만성적·구조적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부족한 식량을 정상적으로 수입할 수 없게 되자 북한은 해외로부터의 식량원조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량원조는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기관과 중국 미국 한국 일본의 도움 없이는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3/5
북한의 식량부족량 추계는 1인당 식량수요량을 국제기준에 맞추느냐, 생존유지를 위한 최저수준에 맞추느냐에 따라 그 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생존차원의 최저수준 양곡 총수요량(560만t)을 기준으로 삼으면 해마다 약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 북한의 현단계 식량생산 기술수준으로는 최저 수준의 생존권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던 국제식량농업기구(FAO)마저 “최근 북한이 외부의 지원 없이는 식량난을 자력으로 해결하기 곤란하며 해마다 보릿고개, 피고개를 넘기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먼저 기상이변 등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생산기반 붕괴와 농지감소 현상을 들 수 있다. 북한에선 에너지난이 겹쳐 전국적으로 연료채취행위가 극성을 부렸고 산지가 난개발되었다. 산림황폐화는 자연재해를 더욱 증폭시켰다. 이로 인한 생산력 감퇴는 1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종자, 종묘 품종의 불량과 결핍 그리고 비료 농약 석유 등 원자재난, 게다가 각종 농기계의 노후화로 인해 식량생산력이 해마다 20%이상 감소됐다. 한때 70%를 넘어 우리나라를 앞섰던 농업 기계화율도 사회주의권 경제의 몰락과 대외경제 차단으로 부품 조달이 여의치 않아 현재는 2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달라진 국제경제 여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북한의 경직된 농업경영 체제와 기술체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고수하는 중앙통제식 계획생산체제와 구태의연한 ‘주체농법’ 그리고 구소련의 ‘콜호스’식 집단주의 협동농장제엔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개별 생산농가에 생산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주의 집단 생산방식과 주체농법만으로는 북한 농업의 생산력 향상과 발전에 한계가 있음이 이미 드러난 상태다.
북한의 농업 부진과 식량 부족은 국제정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체제 변화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보다 10년 남짓 앞서 개발·보급한 천리마28호 등 농업용 트랙터의 벨트가 나가고 타이어나 베어링이 마모돼도 부품을 구할 수 없어 농기계는 멈춰선 지 오래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중단됐을 때도 쿠바처럼 신속하게 생산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새벽별 보기’ ‘천리마 운동’ 등 전인민적인 노력동원 방식으로는 불충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인센티브가 없는 구호와 채찍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제한적 개방은 허용하되 한사코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거부해온 북한이 최근 ‘7·1조치’를 통해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원칙을 도입한 것은 늦었지만 큰 변화다. 농업부문만 보더라도, 1996년 말부터 궁여책으로 시행하던 소단위의 ‘분조(分組)관리제’를 최소 5~20 농가단위까지 허용하고 있다. 국가가 할당한 생산량을 납부하고 남은 농산물은 자유가격으로 농민시장에 내다팔게 하는 등 시장경제 인센티브 제도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실시 영역과 방식이 제한돼 있고 조건이 까다로워 그 성과는 미지수다.
“언제라도 북한 돕겠다”
필자가 캐나다 UBC대학 초청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2002~03년에 북한 농업과학원 및 평양 농과대학 대표 일행 4명이 UBC대 초청으로 캐나다의 유기농법을 연수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북한 농학자와 농업 최고행정가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북한농업을 친환경 농업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쿠바와 여러모로 정치·경제 환경이 비슷한 북한으로서는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환경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법에 기대를 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유기농업을 도입하려 해도 이를 뒷받침할 유기질 자재와 유기농 기술의 지속적인 확보가 쉽지 않은 게 북한의 현실이다.
그래서 남북이 협력해 친환경적인 유기농업을 추진해 물질적 기술적 뒷받침이 보장된다면 북한으로서는 유기농법을 거국적으로 시행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외국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할 처지이다. 친환경적인 대안농법이 북한이 택할 수 있는 최선임에 틀림없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방문단’은 평양의 농업과학원이 상당 수준의 미생물제제를 개발했음을 현지 확인한 바 있다.
4/5
필자 일행은 2003년 쿠바의 최고 농림공직자와 유기농 보급 고위책임자를 만난 자리에서 “왜 지구상의 유일한 사회주의 동맹국가인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돕지 않는가. 북한에 유기농법과 기술, 자재를 지원할 용의가 없는가” 하고 물은 바 있다. 이에 쿠바 당국자는 “우리는 흔쾌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문제는 북한의 의지다”라고 답했다. “쿠바 정부가 ‘캘리포니아 레드웜’이라는, 분변토 생산효과가 탁월한 지렁이 한 상자를 북측에 선물하면서 지원의지를 넌지시 전했지만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는 것.
캐나다의 UBC 농과대학 당국자도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유기농 기술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단체들도 재정능력은 여의치 않으나 언제든지 기술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한 정부당국자의 선견지명과 획기적인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공동 프로젝트는 북한에 유기질 비료(퇴비)를 공급하는 일이다. 지금 남한에는 축산분뇨가 과잉 방출돼 산천이 오염되고 가축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토질엔 유기성분이 부족해 생산력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 축산이 미미하고 산림이 헐벗었으며 생활연료마저 태부족인 형편에서 농림 부산물을 제대로 퇴비화해 땅에 되돌려주지 못하는 상태인 것.
이럴 때 우리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축산 분뇨를 공동으로 수거하고 남한의 산야에 넘쳐나는 농업 부산물(‘숲 가꾸기’ 사업에서 파생된 톱밥과 이파리, 농작물 부산물 등)을 부식시켜 국제 규격의 유기질 비료를 만든다면 우리나라 환경도 살리고 국내 유기농업도 지원하며, 이를 북쪽에 보낼 경우 북한 농업의 획기적인 생산력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축산분뇨에 남아 있는 항생제 등 화학물질을 적절히 제거·완화하는 기술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국제규격의 유기질 비료 및 퇴비와 각종 미생물제제 목초액 천적 배양기술도 북쪽에 지원해야 한다. 증산도 도모하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친환경 농업은 어느 한 쪽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5/5
환경보호와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이룬 농법으로 식량 자급의 꿈을 실현한 나라가 있다.
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그 주인공이다. 서방세계의 경제 봉쇄와 사회주의권 몰락의 틈바구니에서 쿠바는 어떻게 자력갱생의 활로를 개척했을까.
쿠바의 한 농장에서 담뱃잎을 거두는 농민들.지난해 5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유기농대회에 참가한 27개국 600여명의 친환경 유기농업 전문가는 식량자급도 이루고 환경생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을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아바나 세계유기농대회는 화학비료와 맹독성 농약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믿어온 이제까지의 ‘관행농법’에 마침표를 찍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여는 축제와도 같았다.
1990년 초부터 미국 등 서방세계의 경제봉쇄 조치가 강화되고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연쇄적으로 몰락해 동서양의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 쿠바와 북한은 자력갱생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그중 한 국가는 준비된 친자연적 유기농업의 활로를 개척했고, 다른 한 국가는 주체농업의 주술(呪術)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유기농업 대표자들은 올해까지 두 차례 쿠바 현지 연수를 다녀왔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는 쿠바가 당면한 특수한 정치경제 상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탈출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류 사회가 ‘자원낭비형’ 농법(農法)에 의존해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쿠바의 성공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대규모 생산체제와 대량유통구조는 생태계에 각종 재앙을 불러왔다. 특히 국제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대규모 다국적기업이 세계 식량시장을 과점하면서 지구촌 곳곳의 식량주권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농촌 지역사회와 자연생태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인류의 생명과 생존권을 지키면서 지구촌 환경생태계와 공존공영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친환경적 생산 양식은 과연 무엇인가.
그 해답을 쿠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친환경 유기농업이다.
지속가능한 대안농업
화학·기계화 농법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관행(慣行)농법은 한국을 비롯, 세계농업계에 뿌리내린 지 고작 5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믿게 된 기간도 기껏해야 40년이 될까말까다. 그러나 화학농업은 최근에 이르러 급격한 산업화·도시화 추세와 함께 자연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사람의 건강과 동식물 종(種)의 다양성, 그리고 환경생태계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부각된 것이다.
마침내 1987년 유엔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는 제8차 위원회에서 ‘우리들의 공동 미래’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를 세계 각국의 공동의제로 채택했다. ‘경제도 살리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이 인류의 살길’이라는 메시지가 정식으로 제기된 것이다.
경제발전 문제를 생태학적인 자연보전 문제와 통합하여 관리해야 한다는 이 선언은 인류문명사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나라가 쿠바다. 북유럽의 생태농업, 캐나다와 북미지역, 그리고 일본의 유기농업 운동에도 이 선언의 취지가 반영돼 있다.
뒤이어 미국정부도 친환경농업의 세계적 추세를 인정하고 2010년까지 순수 유기농업의 비중을 1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한국도 1998년 11월11일 ‘농업인의 날’을 기해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하고 직접지불제를 시행하는 등 다각도로 유기농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유기농업은 자연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사회·경제적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 운동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가족농(family farming)과 지역사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인다. 이제까지의 기계 및 화학농법 위주의 대형기업농 또는 초대형 다국적기업 중심의 생태파괴적인 대량생산체제로는 더 이상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지속가능한 생태유기농업의 필요성이 대두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고 있는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유기농업 운동’이라든지, EU 각국이 생태환경과 자연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생태 바이오 농업’이 대표적인 대안운동이다.
일본의 경우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한국에서는 농협 주도로 신토불이(身土不二), 도농불이(都農不二)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운동도 지속가능한 대안농업을 염두에 둔 것이다.
1/5
쿠바는 1991년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유기농업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공산체제하의 대형 국영관행농업을 소규모 가족농이나 협동농 중심의 유기농업 체제로 전환시켰다. 미국의 경제봉쇄에 이어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화학비료 화학농약 그리고 수입석유를 원료로 하는 합성물질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가 ‘평화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유기농업을 진작하기 훨씬 이전인 1967년, 카스트로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레이철 카슨 여사의 명저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을 선물한 바 있다. 쿠바가 이미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례다.
쿠바는 친환경적인 유기농법을 전면 시행하기에 앞서 경제 사회 기술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개혁조치를 단행하고 농정기반을 닦았다. 국가 비상사태를 계기로 과감히 근대 화학농법의 사슬을 벗고 친환경 유기농법에 도전했다. 그 시도는 기적처럼 성공했다. 대규모 국영농장을 사적 경영형태의 개별 가족농과 인센티브제에 입각한 협동경영체제로 개편하고 지역자원을 재활용하는 순환농법을 권장했다.
한편으로 조상 대대로 전해온 전통 농업기술을 현대 과학기술에 접목시키는 데도 주력했다. 이른바 21세기형 신(新) 유기농 운동을 적극 전개한 것이다. 도회지의 유휴공지엔 토상(土床) 농법을 도입하고 전국적으로 지렁이 분변토와 퇴비로 흙을 만들었다. 가가호호마다 유축(有畜)농업, 상호 부산물과 각종 미생물 및 천적을 활용하는 자연순환형 생태농법을 보급했다.
여성이 유기농 핵심요원
쿠바는 유기농 운동에서 여성을 핵심요원으로 동원했다. 심지어 중학교 이상 교과과정에 친자연적 영농체험활동(연 45일)이 포함됐다. 그 결과 2004년 현재 쿠바 유기농업 총책임자인 농업부 차관, 중앙 유기농업연구소장, 유기농 관련 각종 연구소와 실행기관의 요직을 온통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건강한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젖줄과 같이 대지(大地)의 식량농업 역시 여성이 앞장서야 건강한 국민을 키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쿠바의 교수 교사 연구원들은 반세기전, 관행 화학농법이 도입되기 이전에 조상 대대로 사용해왔던 친환경적 생태농업 기술과 자재를 발굴, 현대의 생물학적 과학기술에 접목시켰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유기농 기술이 농가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농가에서 실제 써보고 효험이 있다고 하면 신기술 개발자에게 특별한 상을 내리는 인센티브 제도도 실시했다.
쿠바의 유기농 실험은 예상을 뒤엎고 크게 성공했다. 식량자급률은 유기농업 운동 시작 이전의 43%(1990년)보다 훨씬 높은 95%(2002년) 수준을 달성했다. 초기 2년간은 총생산성이 약간 떨어졌으나 1994년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일반 관행농업 생산실적과 비슷해졌고, 1997년 부터는 오히려 더 높아지는 추세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매진한 결과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에서 200여만명이 기아로 숨진 데 비해, 쿠바에서는 아사자(餓死者)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육류 위주의 식생활 패턴이 유기농산물 중심으로 바뀌며 국민건강 수준도 현저히 좋아졌다.
병원 출입 환자 수가 30%나 줄어들고 영아사망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미국 등 서구사회의 고질적 현대병인 비만증 환자를 쿠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도 특기할 만한 변화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림 등 녹색지대 면적이 현저히 늘어나고 도시환경 생태계가 다시 살아났다.
1992년 미국의 스탠퍼드대 조사단은 쿠바의 이런 시도에 대해 그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며 ‘인류 역사 최대의 실험’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열대지방인 쿠바에서 유기농법으로 환경생태 보전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세계 전문가와 정책집행자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지금까지 생태보전형 유기농업을 추진할 경우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반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관행농법을 쓰면 생태계가 오염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다.
10여년의 시험기간이 지난 오늘날 쿠바의 유기농업운동은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그동안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無)농약’ ‘무(無)화학비료’라는 소극적 영농 개념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환경의 지속적 순환을 가능케 하는, 한 단계 높은 현대적 생태문명체제를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생산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생태계의 지속성(sustainability)을 확보하고 농업생산성 향상 및 생활양식의 전환을 동시에 이룬 ‘늘 푸른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2/5
기사입력 | 2004.10.27 14:38
북한 해금강 부근 들녘의 가을걷이 풍경.사실 쿠바에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봉쇄조치로 인해 생필품조차 조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 전반의 식생활 문화, 그리고 환경생태계와 조화를 이룬 생태적 문명수준만큼은 확실히 현대 인류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로 쓰는 관행농법이 범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을 이끌었지만 그 폐해가 점차 두드러지면서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범지구적인 관행농법의 성행이 비록 식량증산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으나 실제로는 인류의 건강과 환경생태계를 파괴한 ‘검은(black) 혁명’이 되고 말았다”는 쿠바의 주장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증산(增産)도 이루고 생태계도 보전한 쿠바의 유기농업운동은 그래서 ‘푸른 혁명(Blue Revolution)’이라 불릴 만하다.
그 성공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직거래 유통 중심의 시장개혁을 들 수 있다. 흙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지렁이 분변토와 토상 농법, 각종 토착 미생물과 생약(生藥) 및 천적을 획기적으로 개발·보급한 것도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 농가 현장에서는 분뇨 등 부산물 자원을 재활용하고 윤작 간작 휴경작 등 순환농법이 정착됐다. 이에 더해 전통농업 기술 및 자재와 생물학적인 현대과학 기술이 성공적으로 접목됐다. 농민이 참여한 현장 연구와 농가 적응시험을 중시한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각종 연구시험 과정과 결과에 일선 농민의 참여를 강조한 것도 특기할 점이다. 더불어 국민의 의식주 생활패턴을 친환경적으로 개편하고 환경생태계를 살리면서 농업 총생산량과 농가소득 향상을 동시에 도모한 과감한 정책전환은, 비록 외부적 요인에 의한 급격한 변화였다고는 하나 주의 깊게 학습할 가치가 있다.
특히 쿠바가 다음과 같은 농업생태학적 접근방법을 유기농업 혁명의 기본원칙으로 삼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불필요한 장거리 수송과 농작업에 따른 화학에너지의 낭비를 줄이고 도시생태계의 환경개선과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 간편한 도시 유기농업 방식을 시도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친환경 유기농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범국민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지도력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운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바로 ‘국가적 리더십의 결여’다.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
쿠바는 이제 세계 친환경 지속가능 농업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학술조사단은 2002년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을 확인하면서 새 보고서를 통해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극찬했다. 보고서는 그 비결이 전국가적인 치밀한 사전준비와 연구, 그리고 관련 사회경제 개혁을 동시에 추진한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중에서도 온고지신의 연구·개발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쿠바는 화학농법이 보편화되기 이전 4000~5000년간 조상 대대로 개발·이용해오던 각종 친자연적 농업기술과 자재를 재발굴하고 이를 현대 과학기술에 접목시켰다. 새롭게 개발된 기술과 자재는 농민들의 시험재배를 통해 검증됐다.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사례는 화학농법에 찌들어 생태계 파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에 커다란 교훈과 희망을 준다. 특히나 아직도 ‘우리식’이라는 주체농법 관리체제 아래 매년 수백만 굶어죽는 북한의 식량난과 농업 문제를 극복할 한 방도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북한 정책결정자들에게 달려있다. 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길이 있다.
‘주체농법’의 몰락
북한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식량자급률 65%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질적으로 북한 내정을 책임진 1994년 이후 자급률이 급속도로 악화돼 지금은 50%대를 밑돌고 있다. 물론 남한의 27%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1인당 소비량이나 품질수준을 고려할 때 비교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나마 부족분을 외국에서 사들여올 외화마저 고갈된 지 오래다.
이른바 ‘경제 3난(식량난, 물자난, 에너지난)’과 외화 고갈로 고통받는 와중에 자연재해까지 연거푸 겪은 북한은 만성적·구조적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부족한 식량을 정상적으로 수입할 수 없게 되자 북한은 해외로부터의 식량원조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량원조는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기관과 중국 미국 한국 일본의 도움 없이는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3/5
북한의 식량부족량 추계는 1인당 식량수요량을 국제기준에 맞추느냐, 생존유지를 위한 최저수준에 맞추느냐에 따라 그 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생존차원의 최저수준 양곡 총수요량(560만t)을 기준으로 삼으면 해마다 약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 북한의 현단계 식량생산 기술수준으로는 최저 수준의 생존권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던 국제식량농업기구(FAO)마저 “최근 북한이 외부의 지원 없이는 식량난을 자력으로 해결하기 곤란하며 해마다 보릿고개, 피고개를 넘기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먼저 기상이변 등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생산기반 붕괴와 농지감소 현상을 들 수 있다. 북한에선 에너지난이 겹쳐 전국적으로 연료채취행위가 극성을 부렸고 산지가 난개발되었다. 산림황폐화는 자연재해를 더욱 증폭시켰다. 이로 인한 생산력 감퇴는 1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종자, 종묘 품종의 불량과 결핍 그리고 비료 농약 석유 등 원자재난, 게다가 각종 농기계의 노후화로 인해 식량생산력이 해마다 20%이상 감소됐다. 한때 70%를 넘어 우리나라를 앞섰던 농업 기계화율도 사회주의권 경제의 몰락과 대외경제 차단으로 부품 조달이 여의치 않아 현재는 2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달라진 국제경제 여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북한의 경직된 농업경영 체제와 기술체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고수하는 중앙통제식 계획생산체제와 구태의연한 ‘주체농법’ 그리고 구소련의 ‘콜호스’식 집단주의 협동농장제엔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개별 생산농가에 생산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주의 집단 생산방식과 주체농법만으로는 북한 농업의 생산력 향상과 발전에 한계가 있음이 이미 드러난 상태다.
북한의 농업 부진과 식량 부족은 국제정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체제 변화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한국보다 10년 남짓 앞서 개발·보급한 천리마28호 등 농업용 트랙터의 벨트가 나가고 타이어나 베어링이 마모돼도 부품을 구할 수 없어 농기계는 멈춰선 지 오래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중단됐을 때도 쿠바처럼 신속하게 생산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새벽별 보기’ ‘천리마 운동’ 등 전인민적인 노력동원 방식으로는 불충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인센티브가 없는 구호와 채찍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제한적 개방은 허용하되 한사코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거부해온 북한이 최근 ‘7·1조치’를 통해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원칙을 도입한 것은 늦었지만 큰 변화다. 농업부문만 보더라도, 1996년 말부터 궁여책으로 시행하던 소단위의 ‘분조(分組)관리제’를 최소 5~20 농가단위까지 허용하고 있다. 국가가 할당한 생산량을 납부하고 남은 농산물은 자유가격으로 농민시장에 내다팔게 하는 등 시장경제 인센티브 제도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실시 영역과 방식이 제한돼 있고 조건이 까다로워 그 성과는 미지수다.
“언제라도 북한 돕겠다”
필자가 캐나다 UBC대학 초청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에 머물고 있던 2002~03년에 북한 농업과학원 및 평양 농과대학 대표 일행 4명이 UBC대 초청으로 캐나다의 유기농법을 연수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북한 농학자와 농업 최고행정가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조달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북한농업을 친환경 농업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쿠바와 여러모로 정치·경제 환경이 비슷한 북한으로서는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환경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법에 기대를 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유기농업을 도입하려 해도 이를 뒷받침할 유기질 자재와 유기농 기술의 지속적인 확보가 쉽지 않은 게 북한의 현실이다.
그래서 남북이 협력해 친환경적인 유기농업을 추진해 물질적 기술적 뒷받침이 보장된다면 북한으로서는 유기농법을 거국적으로 시행하고 싶을 것이다. 북한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외국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할 처지이다. 친환경적인 대안농법이 북한이 택할 수 있는 최선임에 틀림없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방문단’은 평양의 농업과학원이 상당 수준의 미생물제제를 개발했음을 현지 확인한 바 있다.
4/5
필자 일행은 2003년 쿠바의 최고 농림공직자와 유기농 보급 고위책임자를 만난 자리에서 “왜 지구상의 유일한 사회주의 동맹국가인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돕지 않는가. 북한에 유기농법과 기술, 자재를 지원할 용의가 없는가” 하고 물은 바 있다. 이에 쿠바 당국자는 “우리는 흔쾌히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문제는 북한의 의지다”라고 답했다. “쿠바 정부가 ‘캘리포니아 레드웜’이라는, 분변토 생산효과가 탁월한 지렁이 한 상자를 북측에 선물하면서 지원의지를 넌지시 전했지만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는 것.
캐나다의 UBC 농과대학 당국자도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유기농 기술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단체들도 재정능력은 여의치 않으나 언제든지 기술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한 정부당국자의 선견지명과 획기적인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공동 프로젝트는 북한에 유기질 비료(퇴비)를 공급하는 일이다. 지금 남한에는 축산분뇨가 과잉 방출돼 산천이 오염되고 가축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토질엔 유기성분이 부족해 생산력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 축산이 미미하고 산림이 헐벗었으며 생활연료마저 태부족인 형편에서 농림 부산물을 제대로 퇴비화해 땅에 되돌려주지 못하는 상태인 것.
이럴 때 우리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축산 분뇨를 공동으로 수거하고 남한의 산야에 넘쳐나는 농업 부산물(‘숲 가꾸기’ 사업에서 파생된 톱밥과 이파리, 농작물 부산물 등)을 부식시켜 국제 규격의 유기질 비료를 만든다면 우리나라 환경도 살리고 국내 유기농업도 지원하며, 이를 북쪽에 보낼 경우 북한 농업의 획기적인 생산력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축산분뇨에 남아 있는 항생제 등 화학물질을 적절히 제거·완화하는 기술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국제규격의 유기질 비료 및 퇴비와 각종 미생물제제 목초액 천적 배양기술도 북쪽에 지원해야 한다. 증산도 도모하고 환경생태계도 보전하는 친환경 농업은 어느 한 쪽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5/5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