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못한 것 하나 없는 사람의 죄책감 - 경향신문
작은 것이 아름답다
못한 것 하나 없는 사람의 죄책감
전희식 | 농부·‘땅살림 시골살이’ 저자
2016.01.11 21: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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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이지만 하늘은 맑고 볕이 따뜻하다. 모든 것들이 숨도 안 쉬는 듯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산촌 마을이 거울처럼 고요하다.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던 햇살은 샛노란 커튼이 차르르 흘러내리듯 산허리를 휘감더니 이제는 앞마당까지 내려왔다. 까뭉이와 복실이도 기지개를 쭉 켜면서 개집에서 나와 양지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큰 담장을 등지고 북동쪽으로 나 있는 그의 잠자리에도 볕이 들었을까. 햇살 비치는 곳을 따라서 앉은 자리를 옮기고 있을까. 이미 도시의 분주함이 그를 삼켰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해가 떴는지 햇살이 비치는지 느낄 겨를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심은 대기의 온도다. 한겨울에 텐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근 한 달째 노숙생활을 하는 그 역시 날이 흐리건 맑건 그보다는 기온이 얼마인지에 가장 관심이 갈 것이다. 연말연시에 그와 열흘간 지냈던 나 역시 그랬으니까.
문자를 했더니 전화가 왔다.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다. 그의 씩씩한 목소리는 때로 걱정스럽다. 지치지는 않을지, 무쇠가 아닌 담에야 그의 몸도 저러다가 탈이 나지는 않을지, 넘치는 열의와 씩씩함이 남을 원망하게 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지.
그의 노숙생활 시작은 특이하다. 딱 하루만. 인사치레 삼아 백남기 농부님 농성장에 들렀다가 주저앉게 된 농부다. 마흔셋의 그는 작년 11월 그날. 백남기 농부님이 쓰러지시던 그날 집에서 고객들에게 택배 보낼 마늘을 접고, 고추를 빻고, 나락방아를 찧었었다. 무척 죄스러웠다고 한다. 사지 멀쩡한 젊은 농부는 집에서 돈 벌고, 칠순 가까운 늙은 농부가 쓰러져서 괴로웠다고 한다. 그 죄스러움. 그 괴로움. 아무 잘못 한 게 없는데도 미안해하는 마음. 그게 잠시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면 그는 여전히 충청도 단양의 어느 마을에서 초등생 아들과 오토바이 뒤에 눈썰매를 달고 놀든지 아니면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며 유기농사하는 농부의 특권인 농한기의 한가로움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때의 감정은 값싼 동정을 넘어 그의 60킬로그램 체구를 움직여 서울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그날의 매출 총액을 백만원 봉투에 담아 그렇게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을 찾은 것이 노숙생활의 시작이다.
녹색당 당원인 그는 농업먹거리특별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대학생활을 서울대병원이 있는 혜화동에서 했다는 그는 지금껏 농성장에 들러 본 적은 있지만 농성장 텐트에서 잠을 자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백남기 농부님이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농성텐트 안에서 가톨릭농민회 가입신청서를 쓰기도 했다.
농성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내걸고 시위하는 것이지만 그는 텐트에서는 페이스북뿐 아니라 블로그나 카톡 채팅방 등 SNS로 백남기 농부님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다. 페이스북에는 ‘유기농민’이라는 필명을 쓴다. 거리에 나서서 피켓도 든다. 지난 1월3일에는 시민번개팅을 조직하기도 했다. 마음뿐이고 쉽게 농성장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한 배려다. 원정도 다닌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을 격려하러 가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늘 즐겁다. 기타를 메고 농성장 앞에서 농민가를 부르기도 한다. 대학로 농성장에서 보낸 한 달여 기간에 1억짜리 공부를 했다고 도리어 감사해한다. 선배 농부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무수한 ‘살아 있는 백남기’를 발견했단다. 찾아오는 시민들한테서 도리어 격려를 받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다들 미래 미래 하지만 자기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는 미래를 향하는 나침반이라는 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의 하루가 여전히 안타깝고 걱정된다.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 농성자는 먹고 마시는 것이 다 자비다.
대한민국의 농부는 땅 농사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 농사를 겸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의 아스팔트 농사가 봄이 오기 전에 잘 마무리되기를 빈다. 봄에는 홀가분하게 다시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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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날이지만 하늘은 맑고 볕이 따뜻하다. 모든 것들이 숨도 안 쉬는 듯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산촌 마을이 거울처럼 고요하다.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던 햇살은 샛노란 커튼이 차르르 흘러내리듯 산허리를 휘감더니 이제는 앞마당까지 내려왔다. 까뭉이와 복실이도 기지개를 쭉 켜면서 개집에서 나와 양지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큰 담장을 등지고 북동쪽으로 나 있는 그의 잠자리에도 볕이 들었을까. 햇살 비치는 곳을 따라서 앉은 자리를 옮기고 있을까. 이미 도시의 분주함이 그를 삼켰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해가 떴는지 햇살이 비치는지 느낄 겨를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심은 대기의 온도다. 한겨울에 텐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근 한 달째 노숙생활을 하는 그 역시 날이 흐리건 맑건 그보다는 기온이 얼마인지에 가장 관심이 갈 것이다. 연말연시에 그와 열흘간 지냈던 나 역시 그랬으니까.
문자를 했더니 전화가 왔다.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다. 그의 씩씩한 목소리는 때로 걱정스럽다. 지치지는 않을지, 무쇠가 아닌 담에야 그의 몸도 저러다가 탈이 나지는 않을지, 넘치는 열의와 씩씩함이 남을 원망하게 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지.
그의 노숙생활 시작은 특이하다. 딱 하루만. 인사치레 삼아 백남기 농부님 농성장에 들렀다가 주저앉게 된 농부다. 마흔셋의 그는 작년 11월 그날. 백남기 농부님이 쓰러지시던 그날 집에서 고객들에게 택배 보낼 마늘을 접고, 고추를 빻고, 나락방아를 찧었었다. 무척 죄스러웠다고 한다. 사지 멀쩡한 젊은 농부는 집에서 돈 벌고, 칠순 가까운 늙은 농부가 쓰러져서 괴로웠다고 한다. 그 죄스러움. 그 괴로움. 아무 잘못 한 게 없는데도 미안해하는 마음. 그게 잠시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면 그는 여전히 충청도 단양의 어느 마을에서 초등생 아들과 오토바이 뒤에 눈썰매를 달고 놀든지 아니면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며 유기농사하는 농부의 특권인 농한기의 한가로움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때의 감정은 값싼 동정을 넘어 그의 60킬로그램 체구를 움직여 서울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그날의 매출 총액을 백만원 봉투에 담아 그렇게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을 찾은 것이 노숙생활의 시작이다.
녹색당 당원인 그는 농업먹거리특별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대학생활을 서울대병원이 있는 혜화동에서 했다는 그는 지금껏 농성장에 들러 본 적은 있지만 농성장 텐트에서 잠을 자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백남기 농부님이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농성텐트 안에서 가톨릭농민회 가입신청서를 쓰기도 했다.
농성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내걸고 시위하는 것이지만 그는 텐트에서는 페이스북뿐 아니라 블로그나 카톡 채팅방 등 SNS로 백남기 농부님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다. 페이스북에는 ‘유기농민’이라는 필명을 쓴다. 거리에 나서서 피켓도 든다. 지난 1월3일에는 시민번개팅을 조직하기도 했다. 마음뿐이고 쉽게 농성장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한 배려다. 원정도 다닌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을 격려하러 가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늘 즐겁다. 기타를 메고 농성장 앞에서 농민가를 부르기도 한다. 대학로 농성장에서 보낸 한 달여 기간에 1억짜리 공부를 했다고 도리어 감사해한다. 선배 농부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무수한 ‘살아 있는 백남기’를 발견했단다. 찾아오는 시민들한테서 도리어 격려를 받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다들 미래 미래 하지만 자기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는 미래를 향하는 나침반이라는 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의 하루가 여전히 안타깝고 걱정된다.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 농성자는 먹고 마시는 것이 다 자비다.
대한민국의 농부는 땅 농사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 농사를 겸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의 아스팔트 농사가 봄이 오기 전에 잘 마무리되기를 빈다. 봄에는 홀가분하게 다시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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