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
한국노인VS일본노인
김대중 이전에는 일본문화 개방이 좀 심들었던게 .......적지 않은 한국의 노인들이 사실 원래 일본인으로 자라 컸던 사람들이라는것을 무시할 수 없었어. 그 때는 해방전 태어나신 분들이 노인들이었으니
모국어는 부모 형제가 쓰는 말이 아니여. 핵교에서 담임선생이 쓰는 말이지. 집에서 엄마가 아빠가 할아버지가 조선어 쓴다고 모국어인가? 학교에서 일본어로 평가하고 시험보고 숙제냈는디 .......그리고 라디오와 티비 틀면 들리는 노래와 연속극의 언어가 모국어지
김대중이 80년대에 정권 잡았다면 일본문화 개방 쉽사리 단행할 수 있었을까 일본어가 모국어였던 분들이 많이들 살아 계시는디 팔팔하게. 그분들이 갑자기 엔카를 듣고 일본 영화를 보게 된다면 과거의 향수가 이는 정도가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이 엄습해올텐데.......
98,99년즈음에 일본문화 개방한것도 어느정도는 일본어가 모국어인 조선계 일본인 노인들이 반도에서 많이들 돌아가시고 쇠약해졌기에 가능한게 아니었나 싶은디........
인간이란게 누구든 그래. 10대 때 들은 노래 평생 흥얼거리면서 사는거지. 노래방 가면 각자가 각자의 시대시절 가요 부르는거고. 일본식 보통 교육 받았고 십대때 일본노래 부르시던 분들이 팔팔하고 정정하게 적지 않게들 살아계시는데 일본대중문화 개방하는것은 여러가지로 모험이었어. 하지만 김대중 정권 들어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또 이야기가 달랐지 당시에는 칠순즈음에서 많이들 돌아가셨으니 요새처럼 칠순넘은 어른이 사람 패는거 상상도 못하던 시절.
일본 사정도 좀 보자, 문화란게 일방적인게 아니니
한국에는 90년대만해도 일본문화에 향수가진 노인들이 꽤 존재혔는디 일본에는 반대의 경우가 없었을까 . 왜 없어. 문화란게 일방적인게 아닌디
"서울 살 때는 이렇게 푹푹 찌지 않았는디 일본은 여름이 참 지랄맞다"
일제 패망후 안좋게 매우 안좋게 반도에서 쫒겨났지만 서울에서 살던 일본인들 중에 적지 않게 한국생활, 반도시절의 유년의 기억,청소년기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사람들 많지. 당연하지 그 사람들 일본이어도 고향은 조선이잖여.
우리가 왜X, 쪽XX라고 비하들 했지만 ..........사람은 다 똑같아, 누구든 유년시절의 기억은 아름다운거고, 청소년기 추억은 평생가는건데 죽을날 가까워울수록 고향이 사무치게 그립고. 그분들이라고 일제 시대 반도에서의 기억중에 소중한게 없을까, 아 고향인디
자 근데
그때만해도 양국 노인들의 수명과 건강수준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섰고 노인들의 경제력은 비교불가
같은 환갑, 칠순이라고 해도 일본 노인들이 훨씬 정정하고 문화에 쓸 돈이 많은
한류의 기원이 그래 시작이 누구냐면
서울생활에 추억이 강한 일본의 노인들, 특히 여자노인들이었어.
서울살때는 겨울에는 추웠어도 여름에는 도쿄처럼 오사카처럼 덥지 않았다던 사람들, 몇마디라도 조선어를 기억하는 어르신들.
그분들이 겨울연가를 비롯해 이제 들어온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면서 돈쓴건디 별거 없지 어린시절 추억, 향수가 귀환해서 그런것. 한국은 이미 적지 않게들 돌아가셨고 쓸돈도 없었지만 일본은 아직 건강들 하시고 쓸돈도 충분하고.
98년 이전에 서로 개방들 했더라면 굉장히 재밌는 장면 보았을텐데 양국의 노인들 모두 갑자기 귀환한 향수때문에 서로를 향해 경쟁적으로 호감을 표시했을지도.
사실 내가 가진 반일감정이 누그러진게
이연걸의 정무문에서 너무도 선량하게 나온 일본인사범과 일본인아가씨(나꺄아마 시노부)도 있지만 , 그 영화 메시지는 일본인이 나쁘다가 아니고 일본군부가 나쁘다는거였지
양국문화 상호개방후 일본노인들이 반도에 가진 향수에서 시작된 한류현상을 보면서 마음 고쳐먹었지. 저들도 그냥 어린시절의 기억이 마냥 소중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
시기가 참 절묘했네 98.99년 한국의 노인들은 [65-75] 아프고 죽고 일본의 노인들은 아직 쌩쌩했고 그러니 문화개방후 우리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수지 맞는 장사를 했나 모르겠는데 좀 아쉽기도 하다. 5년정도 일찍해서 한국의 노인들도 과거의 향수를 즐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정신적으로 미쳐가면서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땐 사실 우리가 아직도 우리체제에 자신감이 없었던걸지도.
이런 이야기, 한국에 살다가 일본으로 컴백한 일본인들 이야기는 서울시립대 역사강사 이연식이 많이 파고 이야기했음. 그분에게 수업도 그분의 책도 많이 봤음
문화는 절대 일방적이지가 않아.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만 가는게 아녀. 쌍뱡향이지 뭐. 그리고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거고. 당시 우리가 일본에게 동화만 되고, 일제시절에 향수를 가진 조선인 노인들만 있었을까 일본도 우리에게 동화되고 반도에 거주하던 시절에 향수를 가진 일본인들도 많았어. 둘다 그것을 밖으로 표현못한채 살아야했는데 남의 이목이 무서워서 죽을때까지. 그나마 일본노인들은 말년에 소원성취하고 돌아가신거지 뭐.
난 원래 일본인이었다는 말을 술주정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던 반도의 노인들도 그렇고 서울, 평양, 원산, 천안과 아산에 가지고 있는 뼈가 사무치는 그리움을 말할 수 없었던 일본 노인들도 그렇고 다 인간적 연민이 일지. 그리운 원산, 원산앞바다를 평생 잊지 못한채 죽었다는 일본 노인들도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원산 앞바다가 아름다웠다고. 너무 가보고 싶은데 못가봐서 한이라고. 아니 고향이 그립다는거 아녀 근디 왜 말을 못하나 일본인이어도 고향은 반도고 조선인이어도 일본인이었던게 뭐가 부끄럽고 죽을 죄를 지은건지. 본인들이 선택한것도 아닌디 참나, 그게 본인들 책임이냐고. 아니 태어나보니 나라가 일본이고 태어나보니 고향이 서울이고 원산인디 워칙허라고???
사람 사는데가 다 똑같다고 통치는것은 정말 싫어하는디
국적, 인종, 이런거 초월해서 서로가 가진 비슷한 면을 보고 찾는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 외적인 모습과 양태보다는 비슷한 심리와 감정, 정념, 회한등 말이지. 그럴려고 역사와 철학 인문학을 공부하는걸수도 있지. 그러면서 나만 아닌, 우리만 아닌 타자와 타인들의 삶이 가진 존엄성에 대해 자극받는건디 진짜 왜 아녀 그럴려고 공부하는걸지도. 값싼 동정 말고. 제대로 남들을 근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힘 말이여. 그러기 위해서 쉽사리 한가지 기준으로 재단하거나 한두가지 프레임으로 우겨넣으려고 하면 안뎌. 그런걸 멀리해야지. 최대한 양면성과 복잡성을 껴안으려고 해야한다고.
그걸 철저히 거부하는게 좌익놈들 사고와 프로파간다라 경멸하는거고. 툭하면 친일 어쩌고 하면서 매장하려고 하는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인간 지성을 죽이는 짓인디. 니들이야 말로 진짜 극우
자 일본은 그래도 우리보다는 반도시절이 그립다는 노인들 회고와 실토를 모아놓은거 같은디 책등에서 보이기도하고. 우리는 엄두도 못냈지.
평양에 살 때는 , 서울에 살 때는 이렇게 여름이 덥지 않았다는 일본인 할머니의 푸념이 단순히 일본의 여름에 대한 불만이 아닌디. 기후말한게 아녀. 돌려서 말한건디. 나도 사람인데 말이여 반도에서 살던 유년기, 청소년기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는 것을 돌려서 말한거지. 일제 시절에 가진 향수를 말못했던 반도의 어르신이나 반도시절 추억을 말못한 열도의 어르신이나 모두 인간적 연민을 가질 수 있어야. 그런게 철드는거지 뭐. 내 고향이 그립다는 말도 맘대로 못하고 참 딱하네 딱했어, 딱했다고.
함부로 딱잘라 존나 쉽게 남운 재단하고 타인을 단죄하는 놈들 그리고 세상일과 인간심리의 양면성과 복잡성을 어떻게든 살핀채 모두 껴안으려는 사람을 매도하는 인간들.
얼마나 건방진새끼들인가. 한국은 그런 건방지고 지성이 타락하다 못해 존재조차도 안하는 놈들이 민족이니 민주주의니 진보니 하는 언사를 팔아먹으면서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음
멍청한 놈들은 우익에 많지만 인간 되기 틀린 새끼들은 좌익에 훨씬많음
중국땅에 버림 받은채 남겨진 일본인 고아들도 있었지, 중국인 시골 가정에 입양되어 길러졌고 80년대가 되면서 귀향을 시작했던. 히키아게샤라고 후뤠쉬맨이 히키아게샤를 모티프로
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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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지만 임샘 오늘 글에서 정말 많이 배웁니다. 그렇죠 사람이란거 다 똑 같고 유년시절 기억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죠.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공유할게요.~!!!
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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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황의관 네 참 딱한 일이었죠. 어린시절, 유년기가 그립다고 말도 못하다니
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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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서울고는 해마다 일본인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이 왔고 그것을 생계곤란 학생들에게 줬는데 아니 세상에 장학금을 기탁하신 한국인 선배 졸업생들은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일본인 선배들 이름은 밝히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럼 애초에 받지를 말든가
3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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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그래도 참 뭐랄까 국적은 달라도 내 후배라고 한국의 서울고에 장학금 보내주시는 일본인 분들 얼마나 훌륭하신가요
3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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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석
반도에 대한 향수라는 게 있었군요 그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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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이한석 사람인데 고향이 그리운건 당연한거죠. 그분들께서 일본내 한류부흥의 씨드머니 역할하신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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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이한석 그런데도 우리가 덮어놓고 일본 미워해야할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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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함부로 딱잘라 존나 쉽게 남운 재단하고 타인을 단죄하는 놈들 그리고 세상일과 인간심리의 양면성과 복잡성을 어떻게든 살핀채 모두 껴안으려는 사람을 매도하는 인간들.
얼마나 건방진새끼들인가. 한국은 그런 건방지고 지성이 타락하다 못해 존재조차도 안하는 놈들이 민족이니 민주주의니 진보니 하는 언사를 팔아먹으면서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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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멍청한 놈들은 우익에 많지만 인간 되기 틀린 새끼들은 좌익에 훨씬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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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중국땅에 버림 받은채 남겨진 일본인 고아들도 있었지, 중국인 시골 가정에 입양되어 길러졌고 80년대가 되면서 귀향을 시작했던. 히키아게샤라고 후뤠쉬맨이 히키아게샤를 모티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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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관
항상 그렇지만 임샘 오늘 글에서 정말 많이 배웁니다. 그렇죠 사람이란거 다 똑 같고 유년시절 기억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죠.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공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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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관 네 참 딱한 일이었죠. 어린시절, 유년기가 그립다고 말도 못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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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는 해마다 일본인 졸업생들에게 장학금이 왔고 그것을 생계곤란 학생들에게 줬는데 아니 세상에 장학금을 기탁하신 한국인 선배 졸업생들은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일본인 선배들 이름은 밝히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럼 애초에 받지를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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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참 뭐랄까 국적은 달라도 내 후배라고 한국의 서울고에 장학금 보내주시는 일본인 분들 얼마나 훌륭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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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 대한 향수라는 게 있었군요 그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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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석 사람인데 고향이 그리운건 당연한거죠. 그분들께서 일본내 한류부흥의 씨드머니 역할하신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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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이한석 그런데도 우리가 덮어놓고 일본 미워해야할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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