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독재자 최후에 북 간부들 예민”
2024.12.17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악명 높은 중동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김정은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는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받아들이며 간담이 서늘해졌을 텐데요.”
전 세계의 독재 정권이 무너질 때마다 북한 최고 지도자와 간부들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럴수록 김씨 일가는 더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를 만들려 애썼는데요.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씨 정권에 계속 충성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겁니다. 말하자면 독재자와 엘리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앞날을 불안해하는 간부들은 겉으로는 충성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이 살아남을 대비책을 세운다고 하는데, 지금 김정은 총비서 주변의 고위 간부일수록 독재자들의 최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사드 정권 붕괴가 김정은과 엘리트 사이 균열 초래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중동의 독재 국가인 시리아(수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지난 8일 붕괴했습니다. 반군에게 권력을 빼앗긴 아사드 대통령은 황급히 러시아로 망명했는데요. 이를 지켜본 김정은 북한 총비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리정호] 악명 높은 중동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김정은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는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받아들이며 간담이 서늘해졌을 텐데요.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는 1971년에 집권해 2000년에 사망했고요. 이후 바샤르가 권력을 세습했는데, 이 가문은 53년간 독재와 폭압 통치로 권력을 유지하다 몰락했습니다. 김정은도 아사드처럼 권력을 3대 세습한 독재자이죠. 김씨 가문은 80여 년간 폭압 통치로 인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 왔는데, 독재자 아사드의 몰락은 ‘폭정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역사의 진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아사드의 몰락을 보면서 보다 더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를 만들려 할 것이고,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씨 정권에 계속 충성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겁니다. 말하자면, 독재자와 엘리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기자] 북한은 과거에도 여러 독재정권이 무너진 것을 봤습니다.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등 여러 독재자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김씨 정권이 가장 충격을 받았던 사례가 있을까요. 그리고 김씨 정권이 취했던 조치는 무엇이었습니까?
[리정호] 네. 중앙당에 있던 제 지인은 1989년 12월, 루마니아의 대통령이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군중에 의해 체포돼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고 김정일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줬습니다. 루마니아는 사회주의 형제 국가이고, 차우셰스쿠는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기에 남의 일이 아니었던 거죠. 이는 독재자인 김정일의 운명을 암시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던 국제적 격변기에 오히려 나라의 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그고,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그는 “내가 있는 한 개혁과 개방은 절대 없다”라고 선포했는데, 이러한 고립 정책은 결국,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졌고, 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는 대량 아사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2007년에는 북한 노동당의 한 최고위 간부가 중국 출장을 다녀온 제게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몰락과 최후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2003년에 후세인이 도피 중 군중에 의해 체포됐고, 2006년 12월에 사형이 집행됐다는, 한국 뉴스에서 보고 들은 것을 설명했죠. 제 말을 들은 그의 표정에서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0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반군에 붙잡혀 사망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는데요. 노동당의 한 고위 간부가 김정일의 배려로 싱가포르에서 치료를 받던 중 카다피의 처형 장면을 보고, 중국에 있던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당시 그는 “우리가 내부 통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외부에서 개입하면 속수무책일 것 같다”라며 장시간 우려를 토로했습니다. 이처럼 김정은 주변의 고위 간부일수록, 독재자들의 최후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독재 정권 붕괴할 때마다 북 엘리트 계층은 살 궁리
[기자] 이렇게 다른 국가의 독재 정권이 무너질 때마다 당시 일부 고위 관리의 반응을 전해주셨는데요. 이 소식을 들은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동요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리정호] 당연히 동요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북한 간부들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큰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연히 걱정하게 되죠. 그래서 간부들은 겉으로는 충성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들이 살아남을 대비책을 세우곤 합니다. 저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히려 북한의 엘리트들이 김정은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독재 정권의 붕괴 사례는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간부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정권에 대한 충성심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김정은 정권은 이를 막기 위해 더욱 철저히 통제하지만, 자신을 보존하려는 간부들의 생각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기자] 이렇게 독재정권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최근에는 혈맹 관계인 쿠바도 한국과 수교를 맺는 등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오직 북한만 바뀌지 않고, 세상의 변화와 교훈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과거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리비아 사태를 본 후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과연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북한 문제 해법에 통할까요?
[리정호] 김정일은 2003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핵을 포기하고, 8년 후에 서방과 미국의 공습으로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김정은도 2013년에 3월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을 포기한 뒤 침략을 당한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죠. 그는 ‘하늘이 무너져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다른 나라와 달리 체제 안정을 위해 잔혹한 ‘공포 정치’와 ‘핵 무력’을 결합한 이중적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또 김정은은 철저한 감시와 통제, 무자비한 숙청을 통해 절대 충성을 강요하고, 핵무기를 통해 외부의 침략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치 방식이 과연 김정은 체제의 영구적인 집권을 가능하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에서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폐쇄된 체제를 유지할수록 시대에 뒤처질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격차는 더욱 심화할 겁니다. 과거 냉전 시대에 ‘혈맹 관계’였던 중국과 베트남(윁남)이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고, 이번에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몰락한 것은 김정은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또한 김정은 정권은 역설적으로 과도한 핵 무력 증강 때문에 경제가 쇠퇴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는 핵 강대국이었던 소련처럼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죠. 그 시기를 앞당기고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동시에, 국제 사회의 정교하고 인내심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은 확실한 ‘체제 안정’인데요. 진정한 체제 안정은 북한 주민의 인권과 번영,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 함께 보장될 때만 가능한 것이지요. 김정은이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유도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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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탄핵 정보, 북 내부 변화의 씨앗 될 수 있어
[기자] 마지막 질문으로요. 한국에서는 지난 14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을 일으킨 혐의로 탄핵됐습니다. 한국 국민의 약 80%가 탄핵을 찬성했고요.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고,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소식도 북한에 전해졌을 텐데 어떤 영향을 있을 거라고 보시는지요. 특히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해 국민이 심판을 명령했고, 이를 외면할 수 없는 국회의원들이 탄핵 표결에 찬성한 건데요. 이런 민주 사회에 대해 북한 간부들이나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리정호] 북한 주민이 한국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접하면 우선 상당한 혼란과 충격을 느낄 겁니다.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권력이 절대적이며, 그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한 주민은 ‘탄핵’이 뭔지 잘 모르고, 그 개념을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북한의 간부들은 냉소적으로 “그게 무슨 대통령이냐”라며 비웃었습니다. 그들에게 지도자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무고한 사람들을 총살하거나 감옥에 가두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지도자를 심판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또 북한 당국은 오히려 이 소식을 체제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보라, 한국 대통령이란 자는 부패로 가득하다. 한국 정치는 썩었다”라는 왜곡된 메시지로 북한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지요. 대부분 주민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있는 소수의 간부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탄핵 사태를 통해 ‘지도자도 법 위에 있지 않으며, 잘못을 저지르면 국민이 합법적으로 심판할 수 있다’라는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겁니다. 또 이 사례를 북한 주민에게 명확히 인식시킨다면, 내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 세계가 북한 주민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유입하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계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53년 만에 무너진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북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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