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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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가는 그런 노래가 아니다
: 인간의, 인간에 의한 혐오야말로 인류사 앞에서 수치스런 일이다.
요즘 윤석열의 대일 외교를 옹호하며 민주당 정권 때대일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있는 말이 '그럼 이 시대에 다시 죽창가를 부르며 항일투쟁을 해야 하느냐?'라는 말이다.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이야 나도 지금껏 하는 일이다. 하지만 '죽창가'는 조국이 가져와서 국가주도 애국주의의 미끼에 사용할 노래도, 국가폭력에 희생된 피해자의 정당한 분노를 반일로 비아냥 거리자고 가지고 올 그런 노래도 아니다.
김남주 시인이 인간의, 인간에 의한 혐오(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쓴 시다.
'노래해주마 당신들의 죽음을 / 시인인 내가 기억해주마 /...../ 피는 피로써 씻겨져야 하나니 / 노래해주마 시인인 내가' - 김남주 시전집 '달' 중에서
시인 김남주는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자기시대와 사회에 대한 모독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일본군 장교가 해방된 나라에서 대통령 행세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거기에 쿠테타로 정권을 강탈했다. 그리고 사회가 안정되면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해놓고 그마저 깨뜨렸으며, 계속해서 정권의 부당성과 정치의 잘못에 대해 야당이나 학생들이 항의하거나 저항의 기치를 올리면 위수령, 비상사태 선포를 밥 먹듯이 했다. 또 오만 가지 사건을 조작하여 진보 인사들을 투옥시키고 죽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민족의 반역자였고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꾼, 협잡꾼, 정치 폭력배의 두목이었다.
시인 김남주는 그런 박정희를 용인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의 문제였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부정하고 멸시하는 권력자에게 가차 없이 대응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김남주는 그때 전봉준 진군로를 답사했는데 놀랍게도 노인들이 황토현을 찾아와 시국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고 역사가 허무하게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노래)라는 시를 섰다.
이것이 나중에 화가 김경주가 작곡한 일명 '죽창가'라는 민중가요가 되어 1980년대 투쟁을 이끌었다.
김남주 시인은 그때 서울로 잠행했다가 친구의 자취방에서 검거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 <잿더미>, <전혼가>에 실린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문에 그는 정신과 육신이 참혹하게 무너진다. 시인을 고문한 경찰인지 비밀정보원이지 모를 괴물들이 시인은 물론 그의 동생 김덕종까지 끌고와 열 개의 손톱을 망치로 깨뜨리는 고문을 했다. 그가 느꼈을 고통이 어떠했으리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김남주 시인은 그때 서울로 잠행했다가 친구의 자취방에서 검거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 <잿더미>, <전혼가>에 실린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문에 그는 정신과 육신이 참혹하게 무너진다. 시인을 고문한 경찰인지 비밀정보원이지 모를 괴물들이 시인은 물론 그의 동생 김덕종까지 끌고와 열 개의 손톱을 망치로 깨뜨리는 고문을 했다. 그가 느꼈을 고통이 어떠했으리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렇듯 '죽창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이것은 반일을 위한 노래가 아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계급적 수모를 당했을 때 절대 참아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결기가 담긴 피빛 절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혐오야말로 인류사 앞에서 수치스런 일이다. 해서 시인은 노래한다. 이런 혐오를 사르는 '들불'이 되자고, 인간이 인간을 고문하고 죽이는 모든 권력의 가슴에 꽃히는 '죽창'이 되자고.
김남주의 시가 짧으면서도 서슬이 퍼른 낫날을 보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이런 실존적 수치에서 나온 피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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