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한국' 가장 큰 문제는 교육…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인 양산
[김윤덕이 만난 사람] '이미륵賞'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
김윤덕 기자
입력 2024.12.09
베르너 사세 교수는 자신의 한자 이름이 ‘세상을 생각한다’는 뜻의 ‘思世(사세)’라며 웃었다. 헌책방이 많아 70년대부터 드나들었다는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김지호 기자
반세기 한국학 연구자로 살아온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를 만난 건 그가 올해 ‘이미륵상’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전생에 한국인이었고, 현생은 독일로 유배온 것”이라고 했을 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그는 69세였던 2010년 무용가 홍신자와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상식을 위해 전남 담양에서 온 사세 교수를 인사동에서 만난 게 지난 3일. 그날 밤 늦게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해제되는 통에 사흘 뒤 다시 만난 사세는 “한국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논어’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 尹은 마음이 아픈 사람
-’이미륵상’을 받은 날 계엄령이 선포됐다.
“누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웃음). 처음엔 놀랐지만 몇 시간 만에 여야 의원들이 모여 계엄을 해제시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국회도 국민도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따르지 않았다.”
-일반 국민은 패닉에 빠졌다.
“한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스트롱맨들이 장악한 전 세계에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대통령이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그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
-이재명의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삭감해 국정을 마비시킨 탓도 크다.
“대통령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타협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반대 혹은 비판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심각한 문제다.”
-배려, 양보, 타협이 없는 경쟁사회라는 뜻인가?
“한국 사회에는 철학이 없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도 없다.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의 교육이 돈과 권력만 좇는 지식인, 정치인을 낳았다. 그들이 학벌 좋고 지식은 많은 엘리트인지는 몰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가슴(마음)은 없다. 나치도 전부 지식인들이었다.”
-’논어’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고 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 철학이며 윤리다. 공자의 사상은 17세기부터 라이프니츠, 칸트, 볼테르 등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선 유교를 구시대의 산물로 여기는 풍토가 있지만, 논어는 21세기에도 읽어야 할 통치 철학이다. 거기엔 현대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 호혜, 다름에 대한 존중이 모두 포함돼 있다.”
-현재의 정치 풍토에 어떤 메시지를 줄까?
“일례로 공자는 임금 섬기는 법을 묻는 자로에게 ‘비판적 충성’을 강조했다. ‘임금이 잘못된 길로 가면 기만하지 말고 굳세게 꾸짖고 경고하라’고 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직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논어의 가르침이다.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막지 못한 국무위원들이 명심했어야 할 ‘신하의 도리’ 아니었을까.”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원적 문제일까?
“제도의 문제이기 전에 정치인 개개인의 양심과 행동이 그나라 정치의 수준과 미래를 좌우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국의 계엄 사태를 보며 ‘민주주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란 한번 시작했다고 해서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 날마다 싸우며 지켜나가야 한다. 끝이 아니라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지난 3일 주한독일문화원에서 열린 이미륵상 시상식에서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가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한독협회
◇ 월인천강지곡을 아십니까?
-’이미륵상’을 받았다.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인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에서 크게 유행했다. 한국이 어떤 나라냐고 묻는 독일인들에게 나는 항상 그 책을 선물한다. 이미륵은 매우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독일어를 사용했다. 괴테,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등 대문호의 책을 읽으면서 독일어를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단편소설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수상 소감에서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대해 너무 모르고 관심이 없다고 했더라.
“절에 가면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다같이 바보가 된다. 심지어 그곳에 적힌 한문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1500년 동안 한국의 문화이자 언어였던 한문을 한국인이 모른다. 한국의 단편시 ‘시조’는 정말 아름다운 문학인데 한국인 스스로 고리타분하다며 외면한다.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유럽 시인들에게 영감을 준 일본 하이쿠와 대비된다.”
-그래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은 책 안 읽기로도 유명한데 노벨상을 받았다고 하니 갑자기 앞다퉈 읽는 것 아닌가?(웃음) 현대 문학도 좋지만 한국의 가사 문학 등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 많다.”
-K팝 등 한류가 융성하다.
“미안하지만,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한류는 갑자기 부자가 된 한국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집중적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오락’으로 인식된다. 한류가 오락이 아니라 문화가 되려면 한국인이 자신의 오랜 역사와 문화부터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한글 배우려는 세계인이 급증하는데.
“한글만 가르칠 게 아니라 세종대왕을 알려야 한다. 세종은 갈릴레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에 뒤지지 않는 르네상스인이었다. 세종을 ‘대왕’으로만 알리지 말고, 그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세계에 알려야 한다.”
-’민낯이 예쁜 코리안’이란 책에서 한국인의 국수주의적 성향을 지적했다.
“자기 문화를 그리 좋아하지도, 깊이 관심 갖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한국이 최고’라고 우기기 때문이다(웃음). 이를테면 한글이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한국어의 발음만 제대로 표기할 수 있다.”
-한옥에 살고 개량 한복을 즐겨 입더라.
“한옥은 불편해서 좋고 한복은 편해서 좋다. 한국에선 개량 한복을 입으면 운동권이라고 하던데 한 외국인이라 그런지 입고 나가면 다들 칭찬한다(웃음).”
-서울 북촌은 놀이공원 같다고 했다.
“그곳의 한옥은 진짜 한옥이 아니다. 광택까지 내는 바람에 더욱 기괴해졌다. 미키 마우스 같다고 할까. 나는 현대 건축가들이 전통 한옥의 원리를 아파트 설계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를테면 모든 방의 층고를 용도에 따라 다르게 하는 것부터 시도해볼 수 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라고도 했다.
“한국에 ‘교육’은 없다. 시험 통과하는 방법만 가르칠 뿐이다. 학문의 기본 태도는 호기심과 의심인데, 한국 학생들은 교수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는다. ‘월인천강지곡’이 뭔지는 알지만 세종이 쓴 이 아름다운 시를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비상계엄 사태로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베르너 사세 교수는 "이번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를 더욱더 도약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덕 기자
◇ 조선의 선비처럼, 보헤미안처럼
-1966년부터 4년간 나주와 서울에서 살았다.
“호남 나주 비료공장 기술자로 파견된 장인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세웠는데, 그곳 교사로 와 달라고 해서 처음 한국에 오게 됐다. 기술뿐 아니라 문학도 가르치는 학교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수업하는 장면을 보고 더 많은 아이가 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셨다.”
-가난한 시절이었을 텐데.
“달빛 아래 촛불을 켜고 살았지만 이웃 간에 믿음과 정이 돈독했다. 대문을 늘 열고 살았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현대 한국 사회엔 그런 정이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가치의 중심이 돈이 되어서 이웃보다 좋은 자동차, 좋은 집을 사기 위해 살벌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됐다.”
-1970년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더라.
“샤머니즘, 풍습, 언어 등 한국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나이 서른에 보훔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엔 한국학과가 없어 일본학과 교수 밑에서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으로 한국학을 연구했다.”
◇ 홍신자와 산다는 것
-정년퇴임 후 아예 한국으로 들어왔더라. 서울, 안성, 제주를 거쳐 담양에 정착했다.
“첫정을 들인 곳이 나주여서 그런지 호남의 음식, 풍경, 방언을 사랑한다. 특히 담양엔 소쇄원과 식영정이 있고, 대나무가 많아서 좋다.”
-묵은지를 ‘김치 샴페인’이라고 했더라.
“서울 김치는 배추 샐러드(겉절이) 같은데, 오래 숙성돼 깊은 맛이 우러나는 전라도 김치는 정말 환상적이다. 옛사람들이 달걀 꾸러미 들고 마실 가듯 친구들이 저마다 담근 김치를 갖다 줘서 호강하고 있다(웃음).”
-’아침이슬’, ‘가을편지’ 등 김민기 노래를 기타 치며 부르더라.
“한국학 자료를 수집하러 매년 여름 드나들 때 ‘술 친구’로 가끔 만났다.”
-술을 좋아하시나?
“한식엔 막걸리를 꼭 곁들여 먹지만 인삼주, 매실주도 좋아한다. 독일에선 술을 많이 마시되 취하지 않아야 영웅으로 친다(웃음).”
-수묵화가로 전시도 하던데.
“어릴 때 유화를 그렸는데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러하듯 밥벌이가 안 된다며 반대하셨다. 한국학을 공부하면서 수묵화에 매료됐다. 나와 한지와 먹이 서로 스며들며 대화하는 시간이다.”
-조선의 선비를 보헤미안이라고 표현했더라.
“공부할 땐 열심히 읽고, 놀 때는 열심히 노는 사람들이 선비였다. 송강 정철의 작품을 읽어보라. 얼마나 지적이고도 풍류가 넘치는지.”
-홍신자와 사는 건 심심하지 않다고 했던데.
“홍 선생 자체가 심심할 틈이 없는 사람이다(웃음).”
-지금도 홍 선생을 보면 설레나?
“우리는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이고,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기 때문에 매일매일 스릴이 넘친다.”
69세에 현대무용가 홍신자와 결혼한 베르너 사세 교수. 그는 평소에도 한복을 즐겨 입는다고 했다.
☞베르너 사세
194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 1966년부터 2년간 호남 비료 공장의 기술학교 교사로 일했다. 1970년 독일 보훔대에 입학,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방언’으로 한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훔대와 함부르크대에 한국학과를 개설했고, 유럽한국학회장을 지냈다. ‘월인천강지곡’을 독일어로, ‘동국세시기’를 영어로 번역 출간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김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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