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s post
잘 가시게 엠마, 아니 정아은 작가
자랑처럼 아들 둘이 잘 컸드만. 남편은 흉봤던 거랑 다르게 아재 같지 않았고. 영정 속의 당신은 예의 그대로 환히 웃는데, 영정 아래 남자 넷은 당신을 말하며 눈물을 훔쳤네. 정아은 작가를 아는 중앙일보 기자입니다라고 처음 말하고, 아니 사실은 대학시절 알았던 친구라고 다시 말하고, 저에게는 정아은 작가보다 세례명 엠마로 기억되는 친구라고 거듭 소개하니까 당신 남편이 확 울음을 터뜨렸네. 길고 깊게 목례를 드리고 나왔네.
문학기자 끈도 끊어져 더이상 나에게 소설책이 배달되지 않던 10년쯤 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이 계속 책을 보내는 게 나는 영 이상했었다네. 담백한 문장이 나쁘지 않았고 가벼운 듯하면서도 세태를 붙들고 있어 좋은 작가라고만 생각했었네. 사인 아래에 꼬박꼬박 핸드폰 번호를 적은 것도 나중에야 알아챘었네.
어느 책에선가 ‘정아은’이 아니라 ‘엠마 정아은’이라고 써서 보낸 걸 보고서야 오래전, 그러니까 우리가 눈부시게 푸르던 시절 그 엠마의 본명이 정아은이었다는 걸 알아챘네. 그런데 그 엠마가 소설가가 됐다고? 그 잘 놀던 엠마가 리얼리즘 작가가 됐다고?
그렇게 해서 만난 게 벌써 5년 전이네. 당신은 예전처럼 술을 잘 마시지 못했고, 예전처럼 활달한 청춘도 아니었네. 그날의 당신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소설가였네. 당신에게서 작가로서의 자의식? 무게감? 같은 걸 느끼며 옛날처럼 잘 줄지 않는 술을 마셨네.
당신을 만나고 돌아와 책장을 뒤졌네. 가장 최근에 보내준 책이 작년 3월에 부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었네. 엠마가 이런 책을 썼다니 놀라며 단번에 읽었던 책이네.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부끄러웠네. 아니 당신이 책을 낼 때마다, 당신이 쓴 책을 보내줄 때마다 부끄러웠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당신은 뭐하고 있느냐’ 질책하는 것 같았네. 당신은 언제부터 그렇게 치열해진 겐가.
자주 못 만나고 보낸 게 마음에 걸리네. 그래도 우리 푸르렀던 그때처럼 당신이 환히 웃고 있어 반가웠네. 그런데 왜 이리 서둘러 가셨나. 옛날처럼 짐빔 같이 마시며 출판기념회 하기로 하셨지 않은가. 당신을 생각하니 아주 오래전 먼 나라의 그 파랬던 하늘이 먼저 떠오르네. 그렇게 푸르고 파랗게 당신을 기억하겠네. 먼저 마시고 계시게. 당신 먼저 가신 그곳에서 우리, 옛날처럼 쨍하게 마셔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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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박정미, 정승국 and 797 others6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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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던하트' 한겨레문학상 작가 정아은 별세
송고시간2024-12-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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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현기자
정아은 작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2013년 소설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정아은(49)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19일 출판계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17일 저녁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우리 마름모 출판사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유족을 통해 사고사라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197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정 작가는 은행원, 컨설턴트, 외국계 회사 통번역, 헤드헌터 등으로 일하다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통해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등의 장편소설과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등 에세이를 출간했다.
주로 소설과 에세이로 독자를 만났던 정 작가는 지난해 전두환의 영광과 모순, 몰락을 다룬 '전두환이라는 마지막 33년'을 발간해 논픽션 작가로서의 역량도 보여줬다.
유족은 남편과 자녀 둘이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20일 낮 12시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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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던하트' 한겨레문학상 작가 정아은 별세
송고시간2024-12-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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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현기자
정아은 작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2013년 소설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정아은(49)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19일 출판계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17일 저녁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우리 마름모 출판사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유족을 통해 사고사라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197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정 작가는 은행원, 컨설턴트, 외국계 회사 통번역, 헤드헌터 등으로 일하다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통해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등의 장편소설과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등 에세이를 출간했다.
주로 소설과 에세이로 독자를 만났던 정 작가는 지난해 전두환의 영광과 모순, 몰락을 다룬 '전두환이라는 마지막 33년'을 발간해 논픽션 작가로서의 역량도 보여줬다.
유족은 남편과 자녀 둘이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20일 낮 12시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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