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청년의 증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원인"['쉬는 청년', 그 현실을 보다③] 건국대 최윤식 교수, 청년유니온 김지현 사무처장 인터뷰
24.12.11
장예지(yeji3525)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쉬는 청년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다만 통계청은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으나, 막연히 쉬고 싶어 하는 사람’을 ‘쉬었음’ 인구로 분류하고 있다. 과연 청년들은 정말 ‘막연히’ 쉬고 싶어 쉬고 있을까.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갈 시기에 많은 청년이 쉬는 청년으로 전락한 원인을 살펴보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기자말]
▲최근 한국 청년 세대에서는 일도,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 pixabay관련사진보기
지난 8월, 청년층(15~29세) '쉬었음' 인구가 46만 명에 달하며 쉬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2월(49만 명) 이후 최대치다. 같은 기간(24년 8월) 30~39세 '쉬었음' 인구는 30만 명으로 조사됐다.
청년 세대에선 취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최근 정부는 '최고 고용률, 최저 실업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 속 지난 10월 건국대 경제학과 최윤식 교수와 청년유니온(청년세대 노동조합) 김지현 사무처장을 각각 인터뷰했다. 쉬는 청년이 증가한 사회구조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다음은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지난 8월 청년층(15~29세)에서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많은 청년이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쉬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지현(아래 김) :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적정한 임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좋은 조직문화 등을 갖춘 직장을 양질의 일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좋은 일자리'가 소수 대기업에 몰려있다.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규모와 임금 격차가 클뿐더러, 대기업 대비 연 매출이 적은 중소기업은 사내 복지와 조직문화 수준이 비교적 낮다.
이 가운데, 한국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대폭 이동하는 구조가 쉽지 않아서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그 자리가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청년들은 소수 대기업 중심으로 포진된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개인마다 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해 결국 취업을 포기해 버리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건국대 경제학과 최윤식 교수가 한국의 최고 고용률 이면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장예지관련사진보기
- 최근 정부와 언론에서는 고용률이 역대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최윤식(아래 최) : "정부와 언론에서 고용률이 좋아졌다고 하는 이유는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고용률이 높아진 것이지, 실제로 고용 시장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역대 최고 고용률의 이면에는 주로 노인 세대에서 발생하는 단기적이고 낮은 임금의 공공근로 일자리가 있다."
- 쉬는 청년이 증가한 본질적인 원인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거론된다.
최 :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주된 원인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평생직장' 개념은 생산에 유리하지 않은 비생산적인 고용 구조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언제든 필요할 때 노동력을 끌어다 쓰고 해고할 수 있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본격화됐고, 그때부터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실업률(실업자/경제활동인구 × 100)과 고용보조지표 실업률의 격차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시장의 열악한 곳에 있는 '쉬었음 인구, 장기 실업자,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은 실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들 인구를 실업률 통계에 포함한 고용보조지표 통계치를 발표한다. 미국의 경우 실업률과 고용보조지표 상의 실업률 격차는 약 4%이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약 8%의 격차가 발생한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 격차가 8%까지 증가했던 반면, 한국은 일상적으로 그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한국 노동시장이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매우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김 :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문제지만, 고용률에 포함되지 않는 일을 하는 청년들이 증가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사업장에 취직하지 않고 개인 사업자로 활동하거나, 사업자를 내지 않고 3.3%의 세금을 떼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고 일하는 청년들이 증가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 20대 청년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1%의 청년들은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 쉬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최 :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취업이 어려워졌다는 상황을 알면서도, 청년들은 그로 인한 어려움과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긴다.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강화하면서, 자책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노동시장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공통의 해결 방안이 도출되는데,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면 청년들은 결국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 본 현상의 핵심 원인이었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어떻게 개선될 수 있나.
최 : "먼저 사회복지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복지 정책을 확대하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충돌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적인 환경이 노동자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향상한다고 줄곧 믿어왔다. 이 가운데 사회보장(복지) 정책은 이러한 경제 환경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충돌하는 지점이 있어,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는 고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또 한국은 대기업 위주로 경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산업구조가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저임금 일자리로 대체하는 '노동시장 개혁'을 일삼아왔다. 이러한 노동시장 개혁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도록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 안정적이고 양질의 일자리에 적절한 보상이 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뒷받침해야 한다."
- 쉬는 청년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 : "현재 정부가 쉬는 청년을 위해 내놓는 지원 정책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쉬는 청년 인구가 여전히 많다는 것은 기존 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지원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쉬는 청년 증가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회구조에 있지만, 정부는 개별 지원에만 집중한다. 현재 정책들은 취업이 어려운 문제를 청년 개인의 문제로 보고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해 준다는 방향으로 짜여있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 대한 지원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김 : "청년들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하길 바란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즉 첫 직장에 다니는 시점이 늦어질수록 개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저임금만을 받고는 안정적이고 충분한 삶을 살 수 없다. 청년들이 여가생활이라도 즐길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임금을 보완하는 정책이 빨리 시행돼야 한다."
▲김지현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 본인 제공관련사진보기
- 기업과 청년 개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김 : "기업의 역할은 명확하다. 일하고 싶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노동 상담을 해보면, 임금체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노동자가 정말 많다.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직장에서 누가 일하고 싶겠나. 조직문화를 관리하는 담당자, 인사담당자, 팀장급의 관리자들은 조직문화를 배우는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고용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왜 우리 회사에 지원자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그들이 쉬는 청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개인에게서 찾기보다 정책과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그 원인에 대해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역할을 청년들이 해줬으면 한다."
-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 :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한 향후 10년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청년들은 자기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설정한 서열의 기준에서 찾으면 안 된다. 일자리를 구할 때도 '남들이 어떻게 보는 직장인지'가 기준이 돼선 안 된다.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처럼 사회적인 의미를 발견한다면 서열과 관련된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임금 격차, 고용 불안정성 등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개인이 서열의 굴레에 매달려 있는 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삶 속에서 '나의 것'을 만들고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를 찾아 사회적 역할을 한다면 삶이 이렇게까지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취재 지원: 응웬밍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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