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기 Vs 정성진 교수, '좌파 몰락' 놓고 격돌
김주완 부장
입력 200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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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21세기 한국사회구성체 논쟁’
경남대 정성기 교수 “눈뜬 장님 좌파는 몰락했다”
경상대 정성진 교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가 대안”
▲ 역사비평 여름호80년대 학계를 달궜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20여 년 만에 다시 불붙고 있다. 논쟁의 대척점에는 경남대 정성기(경제무역학부) 교수와 경상대 정성진(경제학) 교수가 있다. 또 강원대 이병천(경제학) 교수도 둘 사이의 논쟁을 거들고 있다.계간 <역사비평> 여름호는 ‘다시 사회구성체론을 생각한다’는 특집을 통해 세 교수의 글을 실었다. 세 사람은 모두 80년대 논쟁에서도 당사자로 참여했던 논객들이다.
정성기 교수는 ‘80년대 한국사회구성체논쟁, 또 하나의 성찰적 재론’이란 논문을 통해 80년대 논쟁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반성하면서 (당시의 논쟁 자체에는 승리한 것으로 보였던) 한국의 좌파논객들이 실제 진행된 역사에서는 ‘모두 패배했다’고 단언한다. 즉 안병직 교수의 ‘중진자본주의론’으로 대표되는 우파가 결론적으로 옳았고, 박현채 교수의 ‘민족경제론’과 여타 좌파논객들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등은 틀렸다는 것이다.
정성기 교수는 좌파가 몰락한 이유로 “학문과 실천의 기본도 모르고 엉터리 학문을 하고, 감히 사회변혁을 입에 담은 당연한 결과”라고 잘라 말한다. ‘자문자답(自問自答)’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신랄하다 못해 가혹할 정도의 진단이다.
그는 더 나아가 “눈을 뜨고도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사상의 색안경에 가리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고, 남의 이론 속의 현실을 제 눈으로 보는 현실이라 착각”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터무니없이 편식하고 폭식하여 지적 만성소화불량의 중병이 들어 386세대 후배·학생들도 그렇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이에 따라 그는 “마르크스주의 사회구성체 개념과 정치경제학의 틀 자체를 혁명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 개념과 이론을 재구성”해야만 ‘강 같은 피’를 흘리고도 실패한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넘어선 ‘통일한국 만들기’의 이상을 말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부제로 ‘21세기 한국 사회성격논쟁’을 쓴 정성진 교수는 정성기 교수의 ‘마르크스주의 폐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정성기 교수의 논지를 ‘자본주의 이외 대안부재론’의 일종으로 보면서 “80년대 사회성격논쟁의 ‘합리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체제변혁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80년대 사회성격논쟁에 대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라며 “아직도 진보진영의 골수와 무의식에서 실천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는 스탈린주의의 잔재를 확실히 정리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그는 대안으로 “최근 소련 사회성격논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가자본주의론을 발전시켜 대안사회 프로젝트로 구체화”해야 하며,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지향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대안은 노동자 대중투쟁이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성장 고양되는 조건에서 구현될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두 논자의 중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병천 교수는 정성기 교수가 ‘승리’했다고 평가하는 안병직 교수 ‘중진자본주의론’의 한계를 어느 정도 비판하면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모델에 대한 한국 사회과학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특집을 마련한 <역사비평> 정윤경 편집차장은 “사회구성체론과 같은 거대담론이 과도한 것도 문제지만, 과소한 것도 문제”라며 “이번 특집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대안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80년대 한국사회구성체논쟁, 또 하나의 성찰적 재론(요지)
정성기(경남대 교수, 경제무역학부)
▲ 정성기 교수
필자는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 때 한국자본주의를 '종속적 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는 입장을 표명했던 논쟁의 어중개비 당사자다. 두어 해 전에 '사회구성체논쟁의 부활과 전진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 <탈분단의 정치경제학과 사회구성>(한울, 2002)이라는 책을 통해서, 당시 자신의 입장을 불철저하게나마 재론한 바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80년대 한국의 사회구성체논쟁은 '5.18 민중항쟁의 처절한 패배', 이에 따른 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의 실패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항쟁과 분리불가분인 5.17, 그리고 그 직접적 전사(前史)로서 1979년의 부산 마산민주항쟁과 10.26사태로 인한 유신체제의 종말,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길과 반역적 5공화국의 창출과정, 그리고 그 생생한 현실 역사가 가르쳐주는 이론적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나 연구가 극히 빈약했다. 이는 논쟁의 출발점에서부터 총체적으로 부실한 관념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성격, 모순관계, 변혁주체, 변혁단계 등에 대한 사회구성체론, 변혁론에 대한 운동권 내부의 입장이 정리되어 제시된 것은 84년 4월경 민청련 세미나에서의 이을호씨 발표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CNP논쟁'으로 알려진 이 논쟁은 각 입장을 '시민적 민주변혁(Civil Democratic Revolution : 약칭 CD)', '민족민주변혁(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 : 약칭 ND)', '민중민주변혁(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 약칭 PD)'로 명명했다. 이 논쟁에서 시민적 민주변혁론이 상대적으로 가장 우파적이었으며, 대체로 당시 김대중씨와 함석헌 선생 등을 포함하는 우파적 '민주통일국민회의'의 입장이 이에 해당됐다.
이후 1985년 하반기에 산업사회연구회가 안병직 선생을 초청하여 사회구성체논쟁을 벌였고, 이어 계간 <창작과 비평>이 재야의 박현채 선생과 이대근 교수 사이의 논쟁을 다룸으로써 대중적으로 공론화되었다. 이 논쟁은 기본적으로 진보적 우파와 좌파 간의 논쟁이었는데, 이후에는 좌파 내부논쟁 성격으로 나아갔고, 안병직 선생은 일본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논쟁에 개입하지 않게 됐다.
이런 정세에서 우파적 개혁노선의 식민지 반봉건 사회구성체론이나 주변부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론에 대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완승'한 것으로 평가됐다.
1989년 '돌아온 안병직 선생'이 '중진자본주의로서의 한국경제'를 발표하면서 기존 좌파입장 모두를 비판하자, 즉각 반론이 쏟아졌다. 그러나 바로 그해 동구사회주의는 동독에서부터 지축을 울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련도 해체됐다. 이를 지켜보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에 빠졌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비합법/폭력혁명노선을 포기하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80년대 한국의 사회구성체논쟁은 이렇게 종말을 고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냐, 현존사회주의냐'라는 전망을 놓고 말하자면, 결국은 일관되게 우파 입장에 섰던 안병직 선생이 승리했다. 박현채 선생과 여타 좌파는 모두 패배했다. 사회주의로 가자고 말하면서도, 기존 사회주의가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에 대해선 한번도 논쟁이 이뤄지지 않았다. '부르주아 관념론'을 그렇게 조롱하고 적대하던 한국과 전 세계의 유물론자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환상이 깊고 관념적일 수 있었는가?
한국의 좌파는 왜 몰락했는가. 진정 왜 논쟁에서 실패했을까. 이것은 우선 필자 자신에 대한 물음이다. 자문에 자답을 하자면, 학문과 실천의 기본도 제대로 모르고 엉터리 학문을 하고, 감히 사회변혁을 입에 담은 당연한 결과였다.
눈을 뜨고도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사상의 색안경에 가리어, 있는 그대로의 이 땅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고, 남의 이론 속의 현실을 제눈으로 보는 현실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터무니없이 편식하고 폭식하여 지적 만성소화불량의 중병이 들어 386세대 후배 학생들도 그렇게 만들었다. 제 나라의 역사와 사회현실이라는 '교과서'는 제대로 보지 않고, 남의 나라 '참고서'만 보고서 한국사회 특수성을 논라고 변혁을 하려 했으니, 민주화와 자주의 성과가 없지는 않으나, 그 댓가는 너무 크다.
개인과 사회가 크나큰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우리 인간의 거대한 인식의 거품, 이 거품은 지금도 걷히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사회구성체 개념과 정치경제학의 틀 자체를 혁명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개념과 이론을 재구성하지 않고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당연히 사적유물론, 계급투쟁론과 혁명론, 모순론, 유물변증법, 인간론으로 소급되기에, 이들 이론도 모두 해체,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역사적 과제를 용기있게 정면으로 직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강 같은 피'를 흘리고도 실패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탈근대 프로젝트, '더불어 사는 인간세상 만들기', '지속가능한 세상 만들기'의 이상,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넘어선 통일한국 만들기'의 이상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김주완
21세기 한국 사회성격논쟁-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성진(경상대 교수, 경제학)
▲ 정성진 교수
980년대 진보진영의 이론과 실천의 기본 틀이었던 사회성격논쟁은 1989~91년 소련과 동유럽 블록의 붕괴와 함께 소멸했다.
1990년대 이후 진보진영의 지배적 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포드주의, 노동자운동의 위기론, 각종 신사회운동론,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요컨대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 '비교자본주의론(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등이었다.
이와 같은 담론 지형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21세기를 넘어온 2005년까지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오늘 진보진영의 지배적 담론인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은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에 대한 나름대로의 청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이 공유했던 마르크스주의적 자본주의 분석과 사회주의 혁명의 대안이 현실에서 모두 기각되었다고 전제한다. 즉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이 근거했던 마르크스주의적 자본주의 분석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같은 파국론 혹은 위기론이며, 또 그것이 추구했던 사회주의적 대안체제는 소련과 동유럽 또는 북한형의 사회였기 때문에, 1990년대 들어 소련과 동유럽 사회가 붕괴하고 한국자본주의가 고도성장한 현실은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의 근본 전제 자체를 붕괴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이 진정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것이었는지부터 질문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것이 근거했던 문제설정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또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에서는 이단시되어 주변적이었던 트로츠키주의야말로 오히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발전적 흐름이었다면,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이 소련과 동유럽사회와 같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붕괴와 함께 타당성을 상실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시애틀과 9.11대미 테러 이후 세계적 규모에서 고조된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등 우리나라 진보진영도 재활성화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1989~91년 소련과 동유럽 블록의 붕괴와 함께 소멸한 듯 보였던 사회성격논쟁과 같은 거대담론이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재연되고 있는 사회성격논쟁은 정성기, 이병천에서 보듯이 비교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하거나, 윤소영에서 보듯이 스탈린주의의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과 청산없이 이를 호도하고 은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비교자본주의론이나 은폐된 스탈린주의에서는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의 최소한의 '합리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체제 변혁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스탈린주의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과 청산 없이 21세기 사회성격논쟁의 진정한 재출발은 불가능하다. 21세기 사회성격논쟁의 진정한 재출발은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스탈린주의에 의해 왜곡 억압되었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복원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필자는 1980년대에는 스탈린주의가, 1990년대 이후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부재론'이 왜곡하고 억압해왔던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의 한국자본주의 분석과 대안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본다.
1989~91년 소련과 동유럽 블록의 붕괴는 사회주의가 역사적으로 실패했다고 보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부재론'의 가장 유력한 논거 중 하나인데, 소련과 동유럽 블록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였다면 이 논거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는, 이전부터 이들 체제를 서방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노동자혁명으로 타도되어야 할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해온 필자를 비롯한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는 오히려 스탈린주의의 최종적 청산과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부활의 계기로 간주되었다.
일국적 소련 국가자본주의론, 즉 1917년 이후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입장에 설 경우,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마르크스를 제외하고는 살아남은 것이 없게 된다.
1920년대 소련에서 스탈린의 소련 국가자본주의 반혁명 노선에 대항했던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의 투쟁과 이들이 제출했던 대안의 의의를 정당하게 복권하지 않고서는 21세기에도 사회주의 대안의 실현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국제 마르크스주의 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은 이와 같은 문제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발전에 계속 걸림돌로 작용해온 스탈린주의의 근본적 청산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현상이다. 국가사회주의론 등 각종 소련 노동자국가론은 이제 거의 신용을 상실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의 역사적 승리'라는 문제설정, 즉 '자본주의 이외 대안부재론', 비교자본주의론의 문제설정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오로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나아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관점에서만 최근 박정희 시대에 대한 진보진영 일각에서의 긍정적 평가를 근본적 계급적으로 비판할 수 있으며, 진보진영 일부가 지지했던 김대중 국가와 노무현 국가의 자본주의적 성격, 그 착취적 억압적 반동적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다.
요컨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관점에 설 때만, 자본주의에서 국가란 총자본의 이익의 집행기구일 뿐이며, 따라서 시장보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것이 아니며 시장과 함께 폐지 분쇄되어야 할 대상임을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모순의 격화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주체로서 노동자 대중투쟁의 성장을 가져온다는 마르크스의 계급분석과 계급투쟁의 이론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 대해서도 여전히 타당하다.
21세기 우리나라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지향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대안은 노동자 대중투쟁이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성장 고양되는 조건에서 구현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재개되는 사회성격논쟁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이론작업 방향도,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노동자운동 주체"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투쟁을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성장 고양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리=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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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부장wan@idomin.com다른 기사 보기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이사/출판미디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월간 <피플파워> 간행과 각종 출판사업, 그리고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 업무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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