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3

현충일에 전쟁 가해자 毛澤東 다큐 내보낸 KBS

하남 Times

현충일에 전쟁 가해자 毛澤東 다큐 내보낸 KBS

nlpdr타도 2026-07-05 | 조회: 1185

현충일에 전쟁 가해자 毛澤東 다큐 내보낸 KBS

손학규의 운동권 증언



[ ..... 운동권 ....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毛澤東의 「모순론」, 「실천론」, 「新민주주의론」이 새로운 교재가 됐어요. ....... ]


06 2003 MAGAZINE


[인물연구] 孫鶴圭 경기도지사의「한국 現代史와의 화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正義만 正義. 한국을 東北亞의 네덜란드로 만들자』



김연광

인구 1000만의 巨大 道政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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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때 시위를 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고 강원도 함백의 탄광에서 일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탄광으로 간 계기가 있습니까.


『무기 정학은 기한이 없으니까,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 지도를 펴놓고 탄광지대가 어딘가 찾다가 함백으로 무작정 찾아갔어요. 「인생의 막장이라는 탄광의 막장에서 일해 보자」고 비장한 각오로 갔는데 현실을 전혀 모른 거예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어요. 막장은 보수가 제일 높아서, 나 같은 초보는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이틀쯤 기다리다가 「보다 가시」라고 選炭(선탄)하고 나오는 버럭을 버리는 일을 했어요. 기술이 전혀 필요 없고, 임금이 제일 낮은 일이었어요. 산비탈에서 貨車(화차)를 휙 돌려 쏟는 일인데 잘못하면 사람까지 같이 돌아가요』


―시위에 단순히 참여한 것 하고, 「基層(기층) 민중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식을 갖게 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학 2학년 때부터 「앞으로 직업 혁명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까.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어요. 韓日회담 반대로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3학년이 되고서는 직업이 학생 운동가가 됐어요. 학교 시험을 우습게 알았고, 고시 보는 친구들, ROTC 하는 친구들을 의식이 없다고 비웃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직업 혁명가를 꿈꾸는 생활을 계속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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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면서 金芝河(시인), 金道鉉(前 문화체육부 차관), 玄勝一(한나라당 국회의원), 金正男(前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같은 문리대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의식화된 거죠. 저는 순진한 아이가 이데올로기적인 학생 운동권에 엉뚱하게 接木(접목)된 케이스예요』


「또박이」기질 때문에 학생운동 리더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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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와 1970년대 학생운동의 이념적 기반도 민족주의와 反美, 사회주의라고 봐야죠.


『그렇죠. 그때 우리가 부르던 노래가 「미국 대사관에 불이 붙었다. 잘 탄다」였으니까. 反日 민족주의가 슬쩍 反美로 돌았어요. 거기에 反매판, 反재벌이 더해졌죠.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초년병들의 필독서가 김성두의 「재벌과 빈곤」, 라이트 밀즈의 「들어라 양키들아」였어요』


―당시 운동권이 毛澤東(모택동)의 중국과 胡志明(호지명)의 월맹에 상당히 경도됐었죠.


『1960년대 중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左翼 역사책,이른바 「마분지 이론서」를 교본으로 했습니다. 「세계사 교정」, 「조선사 교정」, 「조선사회 사상사」를 읽었어요. 그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毛澤東의 「모순론」, 「실천론」, 「新민주주의론」이 새로운 교재가 됐어요. 「구체적인 현실에 맞는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큰 모순과 작은 모순이 있는데, 작은 모순은 보류해 두고 큰 모순을 주된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毛의 논리에 매혹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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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黃晳暎씨와 의기투합해서 둘이서 구로공단에 조그마한 자취방을 얻어 놓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어요. 그때는 기업체들이 「중학 졸업」 학력을 요구했어요. 경기중학 졸업 증명서를 가지고 취업이 되겠어요? 黃晳暎씨는 명문인 경복중학에 들어갔지만, 퇴학 맞고 제적당하고 해서 중·고등학교를 여러 군데 다녔어요. 그래서 취직이 쉽게 됐어요.

黃晳暎씨가 「너는 형편없는 학교를 나와서 취직도 못한다」고 놀렸어요. 그래서 국졸 학력만 요구하는 목공장에 취직했어요. 몇 달 다녔는데 그 회사 간부가 제 동창이었어요. 維新 후라 서슬이 퍼런 시절이었어요. 다른 직장을 찾겠다고 구로공단에서 뒹굴었죠』


그 무렵 그는 朴炯圭 목사를 만난다. 朴목사는 『노동운동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게 빈민선교』라면서 孫鶴圭를 기독교 사회운동에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는 權晧景(권호경·前 기독교 방송 사장), 金東完(김동완·現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공동대표) 전도사와 함께 청계천의 판자촌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들어갔다. 1973년부터 1970년대가 끝날 때까지 그는 기독교 사회운동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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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306100041









박현채 --- 《해방전후사의 인식》



[ ...... 박현채 ..... 식민지반봉건사회 .......


우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민주주의적인 토지개혁을 ...... 정권을 확실히 장악한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


바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 ..... 위와 같은 2단계 혁명을 신민주주의혁명 ....... ]



(1) 빗나간 역사의식


이영훈

200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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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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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비판의 표적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1979~1989, 이하 《인식》으로 약칭)이란 여섯 권의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인식》은 해방전후사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한 결정판입니다. 이 책은 1980~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읽지 않은 대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여섯 권 합하여 100만 권 가까이나 팔려 나갔다고 하는군요. 재야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도 이 책을 탐독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 집권세력의 요처에 포진한 이른바 386세대라는 젊은 정치가들의 현대사 인식은 이 책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현 정부가 20세기 한국사 전체를 대상으로, 심지어는 1894년의 동학농민봉기까지를 대상으로 해서, 무려 16개에 달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이른바 ‘과거사청산’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식》의 각 권에는 총론이 있습니다. 총론은 책의 성격과 내용을 대변합니다. 그 총론을 중심으로 《인식》 각 권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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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2권의 총론이 역사인식이라면 제3권의 총론에서는 사회경제의 분석과 그에 기초한 혁명이론이 제시됩니다. 제3권의 총론자는 박현채 선생입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습니다만, 박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전남 백아산에서 소년 빨치산으로 활동한 분입니다. 박 선생에 의하면 식민지기와 미군정기는 식민지반봉건사회(植民地半封建社會)입니다. 세계사적으로 크게 보면 자본주의사회이지만, 아직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 지주제를 중심으로 한 봉건적 부문이 강하게 남아 있어 사회경제적 변혁이 반(反)제국주의와 반(反)봉건적 토지개혁을 주요 과제로 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좀 더 풀이하면 아직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가 미약하여 공산당이 당장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객관적 여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민주주의적인 토지개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농민의 지지를 확보하여 정권을 확실히 장악한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가자는 주장이지요.



아시아의 정치사에서 이러한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을 개발하고 실천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이지요. 그는 위와 같은 2단계 혁명을 신민주주의혁명이라 불렀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마오의 이 같은 혁명이론을 수용하고 실천했습니다. 박현채 선생도 그러한 사상을 계승 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위와 같은 혁명이론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그러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가 중진 단계로 발전한 1980년대 중반부터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다시 마오의 혁명이론으로 해방전후사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것이 제3권의 총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제4권의 총론은 최장집과 정해구 두 교수가 함께 쓴 것인데 《인식》 여섯 권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논문입니다. 두 교수는 앞의 세 권까지의 도덕심판과 역사인식과 혁명이론을 전제한 위에 한국전쟁의 기원과 성격에 관해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해방, 분단, 건국, 전쟁에 이르는 전 역사 과정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큰 논문입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에 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주장을 들어보면 북한은 혁명적인 소련국의 지원하에 혁명적인 공산주의자와 혁명적인 민중이 연합한 정권으로서 미제와 반민족·반혁명 세력의 지배하에 있는 남한을 해방시킬 ‘민주기지’였습니다.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그러한 성격 차이 때문에 거의 불가피했던 내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이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남한의 해방과 혁명은 좌절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대한민국 내부에서, 그것도 제도권에 속한 대학사회에서, 최초로 제기된 아슬아슬한 대목이 바로 제4권의 총론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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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인식》은 마오의 신민주주의혁명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사를 비판한 다음, 북한의 주체사상에 기대어 민족통일을 전망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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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식》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제시된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한 비판과 그 바탕을 이루는 민족주의 역사의식만큼은 여전히 오늘날 한국의 사회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힘으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서술체계로까지 공식화하여 다음 세대의 역사의식까지 지배하는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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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극단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식》과 그에 입각한 현행 역사교과서를 그냥 두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념적이고 후진적인 역사의식으로는 선진국 진입에 요청되는 정신문화 영역에서의 도약을 기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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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9/05/12/2009051200032.html








리영희 --- 모택동 --- 문화대혁명



[ ..... 리영희는 『毛澤東은 레닌과 스탈린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인간의 평등사회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올바른 노선 .........


.... 『毛澤東이 사회주의 혁명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마르크스·레닌·스탈린 세 사람을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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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는 지난 3월에 발간된 「대화」라는 책에서 소년 시절 社會主義 사상에 경도되어 있던 외삼촌 최모린을 존경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은 巨富였던 외조부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사라진 뒤 독립군의 일원이 되어 세 번에 걸쳐 외조부의 재산을 털고 끝내 외조부를 총으로 죽인 머슴 문학빈(그후 일본군에 협조한 것으로 밝혀짐)을 憧憬(동경)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리영희는 미군 통역관으로서의 軍생활과 외신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軍의 불합리와 부패, 그리고 당시 기자 사회에서 나타난 부조리와 연줄관계에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리영희는 「그 代案으로서 중국혁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는 중국 毛澤東(모택동)의 중국 사회주의 혁명과 1965년에 일어났던 文化革命(문화혁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의 사상적 기조를 형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그후 일관되게 親北 논조를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사회주의국가에 대해서는 동경하는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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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는 『문화대혁명은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만들어진 인간을 개조하여 사회주의적 인간을 만드는 것과, 계급분화의 제 조건을 근본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평등한 인간사회를 보장·발전시키는 사회구조를 창조하자는 두 가지의 목적을 지닌 운동』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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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毛澤東을 극찬하고 있다. 그는 한 서방의 평자의 말이라고 하면서 『레닌은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은 하였으나 공업화는 못 했다. 스탈린은 공업화는 했으나 인간혁명은 못 했다. 毛澤東은 공업화와 인간혁명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최대의 극찬을 늘어 놓았다.


리영희는 한마디 더 덧붙인다. 『문화혁명이라는 급격하고 웅장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미국 기자들만 모를 뿐 全세계에 널리 알려진 지 오래다』 리영희는 『毛澤東은 레닌과 스탈린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인간의 평등사회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올바른 노선에 있다』고 했다. 그 노선의 실현이 문화대혁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리영희는 1977년 발간된 「우상과 이성」에서 문화혁명 당시의 「下放(하방 지식인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노동을 시키는 운동)」을 「인간우선주의」의 실천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화혁명의 과정이 (스탈린의 경우처럼) 무시무시한 내부 숙청이 아니라 이론정립과 토론, 자기비판, 설득 등 매우 인간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찬양했다.

그 예로 『가장 극심한 비판을 받았던 劉少奇도 北京 교외에서 현재 再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리영희의 毛澤東 숭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毛澤東은 인간적으로 그릇이 매우 큰 영웅의 풍모를 지녔고 동시에 사상가·교육가·정치가·전략가·詩人 등 다양한 자질을 한몸에 지닌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리영희는 더 나아가 『毛澤東이 사회주의 혁명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마르크스·레닌·스탈린 세 사람을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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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는 1945년 이래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美 제국주의의 남한에 대한 식민지적 지배와 이에 결탁한 李承晩과 朴正熙를 비롯한 독재정권과 그들의 계급적 기반인 親日세력에 의한 오욕의 역사」로 보고 있다.


반면 그는 얼마 전 발간된 「대화」에서 북한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웠던 애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된 나라이며, 새나라 건설과 사회혁명의 열기가 충천하고, 일제시대의 親日派를 비롯한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누렸던 자들이 깡그리 청소된 이상적인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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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64336

[한 386의 고백]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
毛澤東과 문화혁명 일방 美化
反美·대한민국 현대사 왜곡
386을 사상적 혼돈으로 인도

이동호









1982 부림 사건



[ ..... 반민족, 반민주적 팟쇼체제 .... 모든 분야에서 제국주의, 식민주의 사회로 전락 ....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 ......


..... 대중봉기로서 자유민주주의 현체제를 뒤엎어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 ......


.....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가 당간부 교육을 위하여 발간한 사상방법론, 조선노동당규약 등을 교재로 ....... ]



대법원 1982. 10. 26. 선고 82도1861 판결



[국가보안법위반,반공법위반,계엄법위반,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범인은닉,범인도피][집30(3)형,186;공1982.1.1.(69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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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고인 1, 6, 7, 11의 각 상고이유 제4점 피고인 4, 8, 10, 15의 각 상고이유 제3점, 피고인 3, 9의 각 상고이유 제2점 및 위 동 변호인의 상고 이유 제1점에 관하여,


이른바 집회라는 것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특정한 공동목적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하므로 특정한 공동목적없이 우연히 만나는 것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모이는 사람의 다과에 아무소장이 있을 수 없고, 한편 계엄법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었을 때,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실내의 집회에 허가를 받게 하거나 일체의 정치목적의 옥내 외 집회를 금지하고 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헌법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해산된 정당 또는 예속단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재판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거나 미치게 하기 위한 집회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에 관한 단속법규에 위반하거나 위반할 우려가 있는 집회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등을 금지하고 있는 터이므로


원심판결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그 거시증거를 종합하여 피고인등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민족, 반민주적 팟쇼체제로서 노동자. 농민 등 노동대중을 수탈 착취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사회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제국주의, 식민주의 사회로 전락되었다고 분석 평가하고 이러한 모순과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는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서로의 의견일치를 보아


부마사태, 광주사태의 실패에 비추어 대중봉기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면 의식화된 대중조직을 강화하여 결정적 시기인 대중의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현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졌을때, 현체제의 모순이 첨예화하여 합법적 수단으로는 통치가 불가능해졌을때 대중이 의식화되고 그 조직이 강화되었을 때 등의 시기를 포착하여 대중봉기로서 자유민주주의 현체제를 뒤엎어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여야 하고


이러한 사회주의 혁명에 필요한 여건조성방안으로 대중조직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식화 과정 즉 현실분석, 비판 반정부 비판의식 강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의식고양 등을 거쳐 단계적으로 대중을 의식화시키고 이를 조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생, 고등학교학생, 노조원, 여공, 사북탄광 광부, 양서조합등 협동조합운동원 등을 상대로 소그룹활동 프로그램 또는 후라이데이. 세터데이 등에 따라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소위 의식화교육을 위한 모임을 되풀이하여


혹은 노동경제학, 사회계급론, 금일의 철학, 현대철학의 설계, 소외론 등 주로 맑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많은 서적과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가 당간부 교육을 위하여 발간한 사상방법론, 조선노동당규약 등을 교재로 반국가단체나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여 이를 이롭게 하는 의식화교육을 하고, 혹은 학원데모를 모의하거나 그 평가와 사후 수습책을 토의하고 혹은 위와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작성 살포하는 등 원심판시 피고인등의 범죄사실을 확정하고


이를 계엄법상의 계엄당국이 금지하는 집회 및 정치목적의 집회 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라고 판시하였음은 정당하고 이에 이르는 과정에 채증법칙위반이나 법리오해 또는 심리미진의 위법을 가려낼 수 없고


소위 정치목적의 집회는 계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예를 들어 정당의 창당 등 정치적 결사를 위한 집회라던가 또는 대통령을 추대하기 위한 집회등 구체적이고 뚜렷한 정치목적을 위한 집회에 한한다고 해석할 근거도 없으므로 소론 논지는 독자적 견해에 불과하여 채용할 것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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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law.scourt.go.krwsjopanresjo100.docontId=2079910








2014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부림 사건 피고인들이 판사 앞에서 당당하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장했다는 ....... ]



[사설] ‘부림’ ‘유서 대필’ 무죄, 진영논리로 재단할 일 아니다


2014-02-14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 사건과 강기훈 씨의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부림 사건은 수사기관의 증거가 불법으로 수집됐고, 강 씨의 유서 대필 사건은 필적 감정의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합리적으로 수집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만이 유죄를 만든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다.



부림 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등 19명을 적발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는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 자백을 했지만 진술서가 자백이 이뤄진 지 상당 시간 경과한 뒤에 작성된 데다 불법 구금 기간이 오래돼 진술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부림 사건 피고인들이 판사 앞에서 당당하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번 무죄 선고는 부림 사건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불법 수집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피고인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재판부는 고문의 존재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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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40213608452021









[ .....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 ......

노무현 대통령은 수기에서 피의자들이 변호인인 자신을 의식화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했고, 결국 자신도 그들 때문에 ....... ]



[ ..... 청와대나 정부 요직 중에서 부산인맥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부림사건 인맥들 ......

보복을 당한 셈이죠. 좌천 인사를 ....... ]



[ ..... 남북한 어디쪽에 정통성이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 ....... ]



[조선pub] 영화 변호인 엉터리다

부림사건 당시 수사검사 고영주 변호사



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2014.01.12.



12월 18일 개봉한 영화 이 누적관객 800만명을 넘어서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 영화는 1981년 일어난 속칭 ‘부림사건(釜林事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부림사건을 검색하면 ‘1981년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 사건’이라고 나온다. 다른 백과사전의 내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백과사전에는 이 사건의 변론은 부산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김광일, 문재인 등이 무료로 변론을 맡았으며, 노무현은 이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김광일, 문재인 등은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수기(手記)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고 밝혔다. 그는 수기에서 피의자들은 부림사건 와중에도 노동착취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으며, 그들에게 감명받아 그들의 관심사에 차츰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림사건은 노 대통령을 좌경 의식화(意識化) 시켰으며, 이후 그가 정치의 길로 들어는 분기점이 되었기 때문에 친노(親盧) 세력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건이다.


부림사건은 부산지방검찰청의 공안(公安) 검사 3명이 수사를 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고영주(高永宙ㆍ65ㆍ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변호사다.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



지난 1월 7일 종로구의 케이씨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고 변호사는 최근 영화 을 통해 부각된 ‘부림사건’의 경우도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명백한 의식화 교육 사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부림사건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전히 유죄(有罪)로 남아 있는 사건이다. 2009년 부산지법 형사 항소 3부는 이 사건의 재심판결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지난 1월 9일 부산지법에서 또다시 재심 공판이 열렸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주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진상규명위와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에서 진짜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도 민주화 인사로 만든 판에 그들 주장대로 부림사건이 정말 고문으로 조작된 용공사건이었다면 재심에서 어떻게 유죄가 유지됐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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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림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80년대 초 대학가에 반미 좌경(左傾) 의식화 학습을 위한 스터디 그룹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학림(學林)사건’ 즉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사건입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서너명 혹은 10명 정도의 인원을 조직화하여 공산주의 혁명 노선을 공부하는 의식화 모임이 많았는데 학림이 그중에 가장 큰 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은 전국적인 조직결성을 시도하였지만, 부림사건 관련자들은 자신들의 의식수준이 학림보다 못하지 않다며, 부산지역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학림조직에의 편입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학림과 부림사건 등 이런 의식화 사건으로 뿌리내린 좌경사상이 결국 전 대학가를 점령하였고, 오늘날 종북(從北) 세력의 뿌리도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부림사건이 경찰과 검찰의 고문 수사로 조작된 것이라고 나오는데요.


“제가 부림사건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것이 이 사건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수사 중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의자였던 이XX 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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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원시공산사회에서 고대노예제 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공산사회가 된다는 ‘설교’를 한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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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이XX 씨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


고 변호사는 “‘나는 공산주의 세상이 오면 살고 싶지도 않지만, 만일 불가피하게 살아있게 된다면 자네들한테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 그렇지만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이고, 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공안 검사이기 때문에 당신들을 조사하여 기소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기에서 피의자들이 변호인인 자신을 의식화시키려고 상당한 노력을 했고, 결국 자신도 그들 때문에 점점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의식화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검사와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하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이것이 고문을 받고 겁에 질린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겠습니까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도저히 고문을 받았거나, 강압적 경찰 조사에 주눅이 든 피의자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림사건 인맥들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나 기타 요직에 많이 진출했습니까


“이호철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들어갔고, 당시에 문재인씨도 부림사건 변호를 맡았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청와대나 정부 요직 중에서 부산인맥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부림사건 인맥들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과거 국보법 위반으로 나에게 수사를 받았던 세력들에게 보복을 당한 셈이죠. 좌천 인사를 당하면서 ‘저들이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저들에게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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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을 맡은 대법원은 이들 피의자가 노동경제학, 사회계급론, 현대철학의 설계 등 마르크스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서적과 기타 중국이나 북한이 사상교육을 위해 펴낸 서적을 통해 의식화 교육을 하고, 학원 데모를 모의하거나 각종 반정부 유인물을 작성해서 배포하는 등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이적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모든 증거는 적법한 방법으로 수집됐다


-당시 법정에서 피의자들이 장기 구속을 당한 상태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피고인들의 진술이 임의성이 없는 진술이라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하였고, 증거 채증에 있어서도 위반이나 위법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즉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기타 소송기록 송부가 늦어져 피고인들이 방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심리에 지장을 받았다고 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고, 원심에서 충분한 사실심리와 증거조사를 다하여 심리절차에 아무런 위법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부당한 송부지연으로 충분한 심리를 다하지 못하여 위법이라는 피의자들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조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다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만일 경찰에서의 진술이 고문에 의한 임의성 없는 진술이었다고 인정되면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죄입니다.”



-영화에는 재판 중 변론하는 변호사를 판사가 윽박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판사는 경찰이나 검찰과 한 통속인 것처럼 그려놨더군요.


“이를테면 법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검찰과 경찰, 판사까지 가세해서 사건을 조작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경찰이나 검사는 사건을 처리하는 사람들이지 무슨 공훈을 바라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사람을 고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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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 전 포승줄에 묶여 있는 것을 노무현 역할을 맡은 변호사가 판사에게 항의해서 풀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재판 당시 노무현 변호인의 역할에 대해 혹시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까.


“규정상 피의자를 호송할 때는 포승줄에 묶지만 재판을 받을 때는 풀어줍니다. 변호사가 항의해서 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런 변호사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이 부림사건 변호를 했다니까 그런 줄 아는 것이죠.


또 그가 당시 변호인에 포함되었다고 해도 명망이 있는 선배 변호사들이 있는데 법정에서 나서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겁니다. 시국사건 변호를 처음 한 사람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호를 했을지도 의문이고요.”



피의자들이 한 달 간 고문을 당했다고


-영화에서 대학생(국밥집 아들)이 체포당해서 끌려간 곳이 여관(혹은 민가를 개조한 곳)이고, 이곳에서 감금된 채 한 달간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오는데요. 당시에 피의자를 외부에서 수사하는 관행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왜곡 조작이죠. 또 한 달간 피의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면 경찰이나 검찰청에 신고가 들어왔을 텐데 당시에 전혀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던 사람들입니다. 저한테 조사받을 때에는 고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고문 이야기는 나중에 재판받을 때 거론된 것입니다.


공안검찰의 경우 정치사범이나 공안사범을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위 ‘칙사대접’해가면서 조사합니다. 그들이 정말로 경찰에서 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면 그들이 하지 않았던 사실이 진술서에 나왔어야죠. 그런데 그들이 하지 않거나 없었던 이야기가 진술된 것은 전혀 없었거든요.”



검찰이 아니라, 피의자들이 방청객을 동원했다


-영화에서 가족과 일반 방청객이 법정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대신 검찰이 동원한 방청객이 방청석을 점령하여 변호하는 변호사에게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하. 할 말이 없습니다. 실상은 정확하게 그 반대입니다. 공안사건을 십수년간 맡아봤지만, 공판 때는 항상 피의자 쪽 사람들로 꽉꽉 찼습니다. 검찰이 도대체 누구를 동원해서 방청객을 채웁니까. 막말로 공안검사는 법정에 들어가는 게 끔찍할 정도로, 법정은 언제나 저쪽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변호인 아들을 국가기관이 전화로 신변을 협박하는 장면도 있던데요.

“변호사가 그런 협박을 받고 가만있을 사람이 있나요. 특히 노무현처럼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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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법정에서 큰소리쳤다간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


-고문을 한 경찰이 증인으로 나와 변호인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내가 아니라 국가가 한다’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법정에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방청객이 있는데 경찰이 소리를 쳐요 판사가 그 장면을 보면, 저 경찰이 진짜 고문을 했다고 판단하거나, 미쳤다고 하겠죠. 그리고 법률 위반은 판사가 법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이지 어떻게 국가가 한다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하는지 한 번도 안보고 시나리오를 썼나….”


-영화를 보면, 재판 초반에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 측을 만나서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고, 재판 후반부에는 변호인들이 판사가 가석방을 해주는 조건으로 형량을 받아들였다는 등의 대화가 나옵니다.

“가석방은 판사가 하는 게 아니에요. 수감도중 행형 성적이 우수하면 교도소에서 법무부에 품신하는 것이지 판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죠. 법원과 경찰, 검사가 짜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야죠.”


-영화에서는 고문 현장에 군의관이 참관해서 고문이 끝날 때마다 피의자들의 신체 상태를 살핍니다. 혹시 이런 비슷한 사건이라도 있었나요

“군의관이 왜 민간인 조사에 나옵니까 민간에도 의사가 있는데…. 그리고 고문을 한다면서 의사를 불러놓고 합니까. 무슨 소리인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라가 발칵 뒤집어 졌겠죠. 여기저기에서 아무 사건이나 모자이크 해서 갖다 붙인 모양이네요.”


제작진이 철저히 고증했다고··· 아무도 검찰측을 찾지 않았다


- 제작측은 영화고증을 철저하게 했다고 하는데 혹시 고증을 위해서 변호사님이나 검찰쪽에 자료 조사를 요청한 적이 있나요

“그런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용공조작이라는 단어 자체도 부림사건 직후인 1982년 초에 발생한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 후에 나왔어요. 솔직히 부림사건은 조사를 끝내고도 우리가 제대로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던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김일성을 존경하고, 공산주의를 동경한다고 하면 북한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건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고, 비밀처럼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이 나면서 국민의 충격이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부림사건 같은 좌경의식 학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김일성이가 기뻐할 일이라 진짜 알리기 싫었지만 할 수 없이 한 겁니다.


그랬는데 전혀 예상밖으로 국민 사이에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어떻게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말이냐. 이는 틀림없이 공안검찰이 용공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온 겁니다. 당시만 해도 6ㆍ25를 겪은 사람이 많았는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공산주의를 지지하거나 동경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 변호사는 “그러다가 1986년 쯤 되니 전 대학가가 빨갛게 되고, 이른바 ‘건국대사건’도 터지고, 노사분규도 격렬해지니까 사람들이 그제야 우리나라 대학과 노동계의 좌경화 실태에 대해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면 어떻게 그 후 전 대학이 주체사상으로 붉게 물들 수 있었게냐며 오늘날 종북세력이 하늘에서 떨어졌겠냐, 땅에서 솟아났겠냐”고 반문했다.



형량이 아니라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이었다


-검찰 측이 '국가보안법은 유무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형량을 다투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야말로 바보 같은 소리죠. 보안법이야말로 형량보다는 유무죄(有無罪) 여부가 중요합니다. 오히려 형량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금은 국보법 위반자가 국회의원도 되고 공직에도 진출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보법 위반 사범은 사람 취급을 못 받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국보법이 적용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야당 정치인인 모 의원을 제가 당시에 국가모독죄(현재는 삭제된 형법 조항)로 구속한 적이 있는데 이분은 자기가 구속되면서도 오히려 ‘검사님이 국가보안법을 적용을 막아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럴 정도였는데 국보법이 유무죄가 아니라 형량 다툼이라는 건 당시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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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은 이번에 영화 이후에 처음으로 문제가 되었나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부림사건이 사건이 친노들의 정통성을 빛내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서 과거사진상위원회 등을 통해 무죄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제가 당시 김승규 법무부 장관한테 말했습니다. ‘부림사건은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다. 부림사건을 과거사진상규명 대상 사건으로 하면 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이 밝혀지게 되므로 대통령에게 크게 누가 될 것이다.’ 그랬더니 김 장관이 그 말을 노 대통령에게 전했나 봐요. 그래서 노 대통령 시절 이 문제를 더는 공론화하지 못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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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보시나요.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친노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목적이겠죠.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 아무리 비리를 저지른 경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나중에는 올바른 경찰이 이를 바로 잡는 등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영화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정말 악랄하죠.”


사법부의 좌경화도 심각한 문제


고영주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사법부 정상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판사의 꿈이 대법관이 되는 것인데 노무현 정부 때 공안사범에 대해 무죄를 내리지 않거나, 영장을 기각하지 않으면 대법관 자격이 없는 것처럼 인사를 했고, 그런 잘못된 관행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판결을 좌편향적으로 하는 판사라야 대법관에 임용될 수 있는 것처럼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법부의 좌편향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학가와 전교조의 의식화 교육이 20~30년이 넘게 진행되어 왔고, 특히 전교조의 영향을 받은 학생 중에 고시에 합격해서 지금 부장급 판사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좌경화 문제가 일부 젊은 판사들의 문제였는데, 점점 가면서 전 사법부로 문제가 번지고 있습니다. 최근 지방법원 부장급 판사들이 통합진보당과 전교조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법과 상식에 벗어난 황당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걱정입니다.”



고 변호사는 2002년경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시절 사법시험 3차 면접시험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3차 시험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건전한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해서 도저히 법조인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인데, 1,000명 중 1~2명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합니다.


저는 첫번째 수험생에게 ‘한반도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다고 보냐’고 물었습니다. 국가관을 물어본 거죠. 저는 당연히 ‘한반도의 정통성은 우리 대한민국에 있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뜬금없이 ‘외형상은 남한에 정통성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건국 세력이 친일파이기 때문에 남북한 어디쪽에 정통성이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3차에서 떨어지면 너무 아깝기 때문에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 다음 질문으로 ‘주한미군 철수주장’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하는 말이 ‘당연히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당연히 나가야 되느냐’하니, 자기들 멋대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해봤느냐’고 물으니, ‘왜 남침을 합니까 남과 북이 사이좋게 지내야죠’라고 하는 겁니다. 골수 운동권 학생이 그런 대답을 하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평범한 학생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를 반드시 떨어 뜨려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면접을 본 10명 중의 8명이 그런 식의 대답을 해서 떨어뜨리지 못하고, 그날 밤에는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며 끙끙 앓은 적이 있습니다.”



-판사로 임용되고 나서는 국가관이나 역사관을 교정받을 기회가 없습니까.


“그게 사법부의 문제입니다. 그나마 검사들은 검찰 조직에 온 이상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 교정될 기회라도 있지만, 법원으로 바로 가는 판사들은 아무도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판사들이 자기 소신이라고 믿고, 좌편향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대법관이 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계산적으로 그런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나오는 거죠. 통진당 해산 청구나 전교조 법외노조 추진 문제 등 나라가 점점 정상화되어가고 있지만, 사법부는 정상화 시킬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지만, 만약 사법부의 결정이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데까지 미치면 과연 이를 존중해 주는 것만이 능사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식에 어긋나는 좌 편향적 판결이 나올 경우 대법원 주변에서 일인시위 등으로 항의하고 있지만, 결국은 올바른 인사를 통해 바로 바로잡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느끼신 점은.

“특히 지난 1년을 가장 보람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퇴직한 이후 7년이 넘도록 추진했던 통진당 해산문제와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 현대사 왜곡 교과서 수정문제 등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정식으로 우리말을 들어주어 추진 중이잖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일을 해오다가 작년부터는 서서히 마무리가 되는 것을 보니까 보람을 느끼고, 저의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회의 종북문제나 교육계의 좌편향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쉽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도무지 정권교체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도실용을 내걸고 종북세력도 포용한다는 명분아래, 이들을 방치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이라도 종북척결에 힘을 기울여 왔으면 지금쯤 사회가 훨씬 안정화되었을 텐데 많이 아쉽죠.”



이런 좌편향 교과서라면 역사교육 안하는 것이 낫다


-좌편향 일색의 역사 교과서를 바로 잡자고 교학사 교과서를 냈더니, 그마저 채택을 못 하게 방해받는 실정입니다.

“이런 식이면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던지 그렇게 못할 거면 차라리 국사 교육을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자유경쟁을 하자고 검정교과서 제도를 도입했는데 자유경쟁이 전혀 안 되잖아요. ”



-공안검사를 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가에서 의식화 학습이 처음 시작될 무렵에 공안검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온갖 불온 압수물과 증거물을 다 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민중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 똑같은 이적이념이라는 것을 처음 밝혀냈습니다.


또한 전교조가 표방하는 ‘참교육’이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을 추종하는 이적이념이라는 것을 최초로 밝힌 것도 바로 접니다.


1987년 공판 과정에서 압수한 노트를 보다가 ‘ 민중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초·중·고등학생을 의식화시켜야 한다. 이들을 어떻게 의식화 시키느냐. 교원노조를 결성해서 학생들을 주도적으로 의식화 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갑자기 선생님들이 전교조를 만든다고 하기에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교육부처는 전교조 문제에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제가 쓴 라는 글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전교조 가입자가 90% 이상 탈퇴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교조가 교학사 교과서 사용을 극력 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민중민주주의 혁명역량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학생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대한민국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도록 교육을 받으면 민중혁명의식이 고양될 수 없지요. 그러면 전교조의 존립의미가 없어지니까 제대로 된 교과서 채택을 기를 쓰고 막는 것입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1980년대 초 대학가의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의 산하 조직인 삼민투(三民鬪)를 이적(利敵) 단체로 기소했고, 한총련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변호사는 2006년 1월 서울 남부지검 검사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자 기존의 공안 검사들을 공안조직에서 배제하고, 이른바 신(新)공안으로 물갈이를 했다. 고 변호사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속칭 '검찰 내 거대상 10걸'로 분류되었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는 유일한 청와대 비토(Veto) 대상 검사였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나를 내보내려고 개인비리나 인권침해 조사 사례를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는 게 없으니까 아내지는 못했지만 결국 인사상 불이익으로 공직을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영전을 해야 할 차례에 광주고검 차장에서 대구고검 차장으로 좌천 발령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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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위원회 등이 간첩들을 민주화 인사로 둔갑시키면서 과거 공안 수사기관에 있었던 사람들을 반민주인사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심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안수사관들은 자부심과 사명감 하나로 평생 국가를 위해 어려운 공안업무를 수행 온 전문가들인데, 지난 시절 이들이 이루었던 명예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종북척결과 국가정상화 운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12/2014011200637.html












1990. 8.15. 「범민족대회」 남측대표 황석영



[ ...... 『광범위한 민족전선을 형성, 미제침략자를 타도해야 한다』 ....... ]



황석영씨 정부 비난 「북측 범민족」 연설



【도쿄=박영희특파원】 15일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열린 「범민족대회」에 남측대표를 자칭하며 참석한 황석영씨(소설가)가 이날 대회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서 미국과 남한 군사독재정권이 통일의 장애요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에서 청취된 라디오 프레스에 따르면 평양의 방송들로 중계된 「범민족대회」에서 황씨는 『미제국주의자들은 역대 군사독재정권과 매국적 자본가들을 앞세워 분단현상 고착화 책동을 꾸며왔다』며 『광범위한 민족전선을 형성, 미제침략자를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1. 6. 범민련 `반전.반핵 평화의 달'


[ ..... `반전.반핵 평화의 달'로 선포, 적극적인 반미. 조국통일 투쟁을 ...... ]


범민련, `반전.반핵.평화 선포식' 가져


1991. 06.25.


(서울=聯合)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위원장 文益煥목사.수감중)는 25일 하오 5시 30분께 연세대 도서관앞 광장에서 지선스님등 재야인사,학생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쟁 희생자 위령제 및 반전.반핵.평화 월간 선포식'를 갖고 이날 부터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일)까지를 `반전.반핵 평화의 달'로 선포, 적극적인 반미.조국통일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준비위는 또 이 기간동안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불가침 선언 채택을 위한 서명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하고 7월 27일에는 반전.반핵. 평화옹호를 위한 범민족 걷기대회를 갖기로 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집회를 마친뒤 교문밖으로 몰려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북한의 '6.25-7.27 反美공동투쟁월간' ]



焦點> 北韓의 6월 - 反美.反韓 '증오의 달'


1997. 05.31.


(서울=聯合) 李相民 기자 = 北韓에서 6월은 美國과 韓國과 국제 반공세력이 북침전쟁을 도발한 달이다.


북한에서는 왜곡된 선전.선동과 세뇌교육으로 어린이부터 청년, 어른에 이르기까지 6.25전쟁을 북침전쟁으로 대부분 믿고 있으며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민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미국놈은 철천지 원수'이며 어린이들 사이에는 '미국놈 때리기' 놀음도 있다. 金日成은 북침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민족의 영웅으로 왜곡되고 체제수호를 위해 한국 등 적으로부터의 침략 위협은 끊임없이 강조된다.


反美.反韓 감정은 6월 들어 극도로 고조되고 해마다 수도 平壤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펼쳐지는 '6.25-7.27 反美공동투쟁월간'때는 절정을 이룬다.

이 기간중 북한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규탄하는 군중집회와 성토대회, 사상학습과 계급교양, 전쟁영화 상영과 문학작품 창작, 사진전시회 등이 열려 증오감과 적대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북한의 6월은 1일이 '국제아동절'이고, 6일이 '조선소년단' 결성일이어서 겉으로는 '청소년의 달'이라는 한국의 5월과 비슷하다.

그러나 北의 6월은 우리의 5월과는 전혀 달리 학생들에 대한 사상교육과 군사훈련으로 왜곡된 역사적 사실과 체제우월 선전이 주입하는 '증오의 달'이다.

국제아동절 기념일에는 "어린이들의 진정한 행복은 사회주의 조국에서만 꽃피워 나갈 수 있다"는 선전과 함께 상투적인 김일성.김정일의 '은덕'과 '치적' 선전이 주류를 이룬다.

'조선소년단' 창립일에는 조선소년단이 "항일아동단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주체의 혁명적 소년조직임"을 강조하며 전체 소년단원들이 "3백만의 총폭탄, 6백만개의 수류탄이 되어 당과 김정일을 결사옹호 보위하는 전투예비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촉구한다.

북한의 '조선소년단'은 1946년 6월 6일 만7세부터 13세까지의 소년소녀들을 대상으로,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1∼3학년 학생들로 조직된 '청년동맹'의 하부 기관이다. 현재 단원수는 약 3백만명.

국제아동절.조선소년단 결성 기념일에 이어 6월25일∼7월27일까지가 한달여간의 '反美공동투쟁월간'으로 이때 북한 전역에서 각종 反美 궐기집회와 모임과 전시회가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북한은 최근 3백만명의 소년단원들과 청년동맹 소속의 고등중학생(4학년이상)들에게 '공산주의 후비대가 되기 위해 항상 배우며 투쟁하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전쟁학습과 군사훈련을 더욱 강도 높게 실시하고 있다.


북한이 소년단원 및 고등중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전쟁학습은 ▲조선반도에서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과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철의 명장' 김정일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쟁에 이기기 위한 실전과 같은 군사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4학년 이상의 고등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과외로 2시간씩 각종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전체학생들에게 수령 결사옹위정신으로 무장, '육탄영웅, 자폭영웅'이 될 것을 독려하는 등 사상교육과 군사훈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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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219595?sid=100









2004. 6.11. 정율성 "선생" 국제학술대회



[ ..... 정율성 선생을 기리는 국제학술대회를 ........

..... 허징즈(前 중국문화부장관) ... 최삼용(중국 정율성 회의 조직자) ... 등이 참석 ....... ]



[ ..... 정기적으로 북경과 연변에서 추모음악회가 개최 .......

..... 영화는 1992년 북한에서 처음 제작된 뒤 2002년 중국에서는 태양을 향해서란 제목으로 제작 ........ ]


[ ..... 음악이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정율성........

`팔로군 행진곡’은 인민해방군가로 ....... ]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정율성

양림동 출신 '중국 최고 음악가'
남구청 오는 11일 학술대회 열어



정현주

2004-06-01



잊혀진 한 음악가의 생애와 음악을 가까이 불러오는 자리가 마련된다

남구청이 중국 최고 음악인으로 꼽히는 광주 양림동 출신 정율성 선생을 기리는 국제학술대회를 오는 11일 프라도호텔에서 연다.


고 정율성 선생(1914∼1976)은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국가 작곡가인 니에얼을 비롯, 샌싱하이 등과 함께 중국 최고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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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의 음악과 독립운동 그리고 한·중 현대사’를 주제로 한 이번 `한·중 문화교류 촉진을 위한 음악가 정율성 기념 국제학술대회’에는 허징즈(前 중국문화부장관), 양회석(전남대 교수), 최삼용(중국 정율성 회의 조직자), 박준희(중국 영화감독), 신정호(전남대 문화예술연구원 교수)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현대사를 통해 정율성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한다.


정율성 선생의 부인 딩시에쑹씨와 딸 쩡샤오티씨도 초청된 상태이다.

이번 학술대회와 관련 신정호 연구교수는 “학문적 접근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을 중국 음악인이 직접 공연하는 시간을 갖는 등 의미있는 한·중 문화교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정율성. 군가, 가사, 대합창, 가극, 영화 삽입곡, 동요 등 300여 곡을 작곡했는데, 대륙적 기질이 돋보이는 `팔로군 행진곡’은 인민해방군가로 88년 중국정부의 비준을 받았고,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때 연주됐다.



그가 죽은 이듬해에 북경에서 정율성 기념 음악회가 열렸으며 그후 정기적으로 북경과 연변에서 추모음악회가 개최되고 있다. 정율성 관련 영화는 1992년 북한에서 처음 제작된 뒤 2002년 중국에서는 태양을 향해서란 제목으로 제작됐다.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남구청 관계자는 “중국 최고 음악가이자 항일 운동가였던 정율성 선생의 고향이 광주라는 점은 상당히 뜻깊은 일이다. 기념관 건립 및 생가 복원사업을 통해 한·중 문화교류가 더욱 활성화됐으면 한다.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처럼 그를 추모하는 아시아국제음악제 등도 기획할 생각이다”고 사업의지를 밝혔다.

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news_type=207&code_M=2&mode=view&uid=325511







[ .....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등 팔로군대합창을 창작 ....... ]


[ ..... 조선인민군 행진곡(조선인민군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군가) 두만강 대합창 등을 창작 .......

..... 12월 중국 인민지원군 창작조로 북한에 .......

..... 1951년 1월께 서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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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성은 섬북공학을 졸업한 뒤 1938년 3월 노신예술학원이 창립됨에 따라 노신학원에 입학해 음악학부에서 작곡과 성악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이 무렵 그가 작곡한 곡이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음악이자 혁명가인 연안송이었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고
연하강 물결위에 달빛 흐르네
봄바람 들판으로 솔솔 불어치고
산과산 철벽 이뤘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도시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1937년 중.일 전쟁에서 부터 1945년 일본 항복 때까지 8년간의 항일 전쟁 기간 중 이 노래가 정식으로 출판된 적은 없었지만, 마치 노래가 날개가 돋친 듯 연안에서, 전선으로, 해방구에서 국민당 통치구로 퍼져나갔다.

정율성은 연안송 창작 이후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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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송은 지금도 중국 대륙에 울려 퍼지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 CCTV 4에서 내보내는 중국혁명 드라마 제목이 바로 연안송이며, 주제곡 또한 그의 노래다.

이 다큐드라마는 수 백만개의 테이프로 제작돼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 베이징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의 안내 모니터를 보면 대표적인 항일가요로 연안송이 흘러 나온다.

그 뿐 아니라 대도시 공원에서 노래를 배우는 합창단의 악보에는 어김없이 연안송이 들어있다.



1938년 7월말 노신예술학원을 졸업한 율성은 8월께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 부임했고, 39년 1월 군정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등 팔로군대합창을 창작한다.


1990년 9월22일 제11회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혁개방의 기치 속에서 비상을 위해 날개를 펼쳐든 13억 중국대륙의 자존심이 듬뿍 담긴 국가적인 메가 이벤트였다.

이를 상징하듯 중국은 경쾌하고 씩씩하면서도 장중한 중국인민해방군가의 대연주로 아시안게임 개막 테이프를 끊었다.

수 백명의 마칭 밴드가 연주한 중국인민해방군가는 다름아닌 정율성이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이였다.



또한 우리네 독립기념관과 유사한 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에는 노래 동판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현재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니에얼 작곡)과 팔로군 군가 단 둘 뿐이다.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과 항일기념관의 팔로군 군가는 정율성의 팔로군 대합창가운데 한 곡이다.


그의 군가에는 화약냄새가 풍겼으며, 최전선에 선 전사의 기백이 담겨 있었고, 서정송가에는 절절한 항일의 혼이 스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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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조선혁명군정학교 대원 400여명은 1945년 9월, 드디어 독립된 내 땅을 찾아 옌안을 떠난다. 1933년 중국에 건너왔으니, 어언 12년만에 내 나라 내 겨레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장가구(張家口), 금주(錦州)를 걸쳐 기차로 선양까지 도착했다. 해방 당시 2000명 가량이던 조선의용군을 석 달이 지난 11월 중순에 약8만 명으로 증가했다. 중국에 살던 조선 청년들과 특히 일본군으로 중국에 끌려와 있던 한인 병사들이 조선의용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북으로 갈 수가 없었다. 1944년 조선의용군이 편제상 중공 팔로군 예하 부대로 편입돼 팔로군 명령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며, 특히 소련군이 의용군의 무장 입국을 불허한데서 비롯됐다.


정율성은 의용군 사령관 무정, 김두봉, 최창익, 한빈 등 소수의 노 혁명가에 포함돼 1945년 12월 평양으로 들어가 해주에 음악전문학교를 개교, 북한에 음악의 씨앗을 퍼뜨렸고 인민군 협주단을 창설해 전국 순회 공연을 했으며 조선인민군 행진곡(조선인민군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군가) 두만강 대합창 등을 창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간 뒤 12월 중국 인민지원군 창작조로 북한에 들어가서 활동 한 뒤 1951년 4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북경인민예술극장에서 활동했다.


1951년 1월께 서울에 내려왔을 때 그는 거리에서 귀중한 책자를 발견한다. 바로 조선궁정악보였다. 이 때 그가 챙긴 궁정악보집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유가족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6년 부인 띵쉬에쑹은 문체부를 방문,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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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6. 현충일



[ ....... KBS가 현충일에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 .......

..... 노무현 ....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평소의 지론인 ‘부끄러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발언을 반복 ....... ]



[사설] 현충일에 전쟁 가해자 毛澤東 다큐 내보낸 KBS



동아일보

2006-06-10



KBS가 현충일에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마오쩌둥은 6·25전쟁에서 북한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중공군을 대규모로 투입해 우리의 통일 기회를 무산시키고 수많은 전쟁 희생자를 만든 장본인이다. 왜 하필이면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에 ‘전쟁 가해자’ 마오쩌둥의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는가. KBS가 어떤 역사 인식과 이념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지를 거듭 묻게 한다.


KBS 담당 팀장은 “날짜를 고려하지 못한 실수”라고 했다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2004년 북한 혁명가인 ‘적기가(赤旗歌)’를 내보내 사과했을 때도 “담당자가 ‘적기가’인지 몰랐다”고 했다. 2003년 다큐멘터리 ‘인물현대사’의 편향적 인물 선정에 대한 비판이 거셌을 때도 정연주 사장은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올해 2월 베네수엘라의 좌파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다룬 특집이 그의 부정적 측면을 의도적으로 비켜 간 편향 방송이라는 지적이 나왔을 때도 담당 PD는 오히려 “문제없다”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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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다큐멘터리가 나가던 날, 노무현 대통령은 국립묘지에서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평소의 지론인 ‘부끄러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발언을 반복했다. 다시는 불행한 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게 요지였다. 피로써 나라를 지킨 선열들 앞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강조한 대통령이다.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가 번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는 것도 노 정권 ‘이념 코드’에 사로잡힌 탓 아닌가.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httpnews.donga.com3all2006061083165281










* 2004. 9.17. 전대협 동우회 가장 호감이 가는 나라




북한(39.1%), 중국(20.85), 미국(6.9%)




[ ..... 350여 명의 청와대 직원 중 80여 명 가까이가 전대협 출신이라고 .......

...... 전대협 출신들은 북한을 가장 호감이 가는 나라(39.1%)로 꼽았고 그 뒤로 중국(20.85), 미국(6.9%), ...... ]



[ .... 金日成원전을 읽으며, 북한 주도 통일 실현을 목표로 활동했다 ...... ]




추적) 盧정권 내 主思派 출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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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출신들 청와대 등 대거 포진



주사파에 장악됐던 전대협 출신들은 現정권 실세로 부상했다. 열린당 내에는 12명의 국회의원(1기 이인영·우상호·김태년·이철우 前 의원. 2기 오영식·백원우·정청래·최재성. 3기 임종석·복기왕·이기우·한병도)이 배출됐다.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은 2004년 11월18일 350여 명의 청와대 직원 중 80여 명 가까이가 전대협 출신이라고 보도했었다. 기존 언론 등을 통해 확인된 대통령 측근의 전대협 출신들은 아래와 같다.



《김은경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 비서관, 서양호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위 자문위원, 최인호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 김성환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송인배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김만수 前 청와대 대변인, 여택수 前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한주형 前 청와대 국민제안비서관실 행정관, 유송화 前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실 행정관, 이승 前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강현우 국회의장 기획총괄비서관, 이재경 열린당 원내공보실장.》



최인호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은 국보법철폐-미군철수-연방제 등 북한의 대남노선을 주장해 온 전국연합 내 부산연합 조직국장(93~95)을 지냈으며, 김창수 통일부 사회문화교류본부 협력기획관(3급. 내정) 역시 전국연합 정책실장, 민화협 정책실장 등을 지냈다.



전대협 출신들은 과거의 이념적 세례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2004년 9월17일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 의뢰해 전대협동우회 회원 202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대협 출신들은 북한을 가장 호감이 가는 나라(39.1%)로 꼽았고 그 뒤로 중국(20.85), 미국(6.9%), 러시아(4.5.%), 일본(1.0%)을 들었다. 일반 국민이 미국(38.3%), 중국(23.8%), 북한(10.6%). 일본(9.7%), 러시아(4.9%)를 들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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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page=0&C_IDX=14992&C_CC=BJ

2006-10-07









1986



[ ...... 해방운동의 정통성은 NK(북한)에 있다.

NK가 밀고 내려 오면 우리는 게릴라로 나서야 한다 ....... ]



1986. 10.29. 경향신문



좌경을 직시하자


어설픈 관용이 '급진' 양산시킨다

다수는 왜 침묵하는가


북이 밀고 오면 게릴라로 맞이하자

'오염확산' 차단 자위 서둘러야 할 때


눈 앞에 다가 온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는 체재전반을 뿌리부터 무너뜨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개량의 환상'이야말로 그 어떠한 총칼보다도 무서운 적들의 반혁명 무기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서울대 지하간행물인 민족민주선언 10월 20일자에 실린 노골적인 '붉은 선언'의 한 대목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고유한 가치관인 점진적인 역사발전을 '개량의 환상'으로 몰아 붙이고 일체의 기존체재를 전면부정하는 극렬한 좌경논리가 최소한의 여과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대학, 사상계, 그리고 생산 현장에 휘몰아치던 좌익 열풍이 40년이 지난 오늘 난데 없이 되살아 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지난 60년대 안보투쟁으로 불 붙기 시작, 동경대 1년 휴교사태까지 몰고 왔던 일본의 학원소요 혼돈은 70년대의 눈부신 경제성장 및 사회안정과 함께 사그러 들고 말았지요. 다수의 외면을 받고 근거를 잃은 운동권이 마침내 적군파 등 극소수 테러분자의 마지막 불씨를 끝으로 종언을 보았던 일본의 경험이 그대로 이 땅에 적용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분단상황과 정치적 불안이란 특수조건 아래 자생적인 좌경의 뿌리가 날로 뻗어가고 있다는데 지난 날의 일본이나 구미의 일과성 스튜던트 파워와는 다른 심각성이 있읍니다.


서울대 ㅅ교수의 분석이다. 확실히 80년대 들어 대학, 노동현장, 재야 등 이른바 운동권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좌경 암세포'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해방운동의 정통성은 NK(북한)에 있다. NK가 밀고 내려 오면 우리는 게릴라로 나서야 한다 는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위 선동문귀가 최근 서울대 등 소위 '메이저 대학'(시위 명문대학)의 교정에 버젓이 나붙는 것이 일상화 되다시피 했다.


관계 당국의 분석대로 이것이 외부 불순세력의 소행이 아닌 자생적인 학내 지하단체의 투쟁헐동이라면 대학내 도처에 자리잡은 '좌경의 수렁'은 이제 다수 학생의 통행이 위험할 정도의 넓고 깊은 늪으로 확대 됐음에 틀림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건 급진논리는 있겠지만 사회유기체에는 이를 걸러내고 순화시키는 자체치유능력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대학은 소수과격으로부터 명백하게 학문연구 및 건전한 과와활동 등 기본적인 대학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는 이를 제어하는 내적기능을 상실한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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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갑석은 ... “김일성 ... 정정한 모습에 흐믓함을 느낀다. ....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 ......... ]



[ ..... 미대사관폐지, 미군철수 ...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

..... 주사파(主思派)지하조직에 의해 장악, 조종 ........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

.....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장군님과 한민전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이다. ....... ]



“전대협 의장들 모두 주사파조직원”


written by. 김성욱


92년 안기부 수사 발표..386의원들은 否認 일관


송갑석 “北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 등 수사과정서도 주사파 발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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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반미청년회 등 주사파 지하조직이 장악


우선 대법원은 92도1244, 92도1211, 93도1730 등의 판례를 통해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인민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친미예속파쇼정권으로 규정하는 전제 하에, 반전과 반핵, 미대사관폐지, 미군철수, 팀스피리트 훈련의 영구폐기,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利敵團體)’로 판시한 바 있다.


당시 안기부수사발표에서도, 전대협의 각 조직들은 지난 87년부터 88년까지는 ‘반미청년회’, 89년 이후는‘자주민주통일(자민통)’ ‘관악자주파’ ‘조통그룹’ ‘반제청년동맹’ 등 주사파(主思派)지하조직에 의해 장악, 조종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주사파조직원 임종석 등 전대협의장으로


안기부가 91년 발간한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 등 공안문건들은 ‘87년 전대협 제1기 결성 이후 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주사파 지하조직에서 파견한 핵심조직원’이었다며 이들 조직의 전대협 장악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의 경우, 86년 고려대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결성한 ‘전국사상 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87년 8월 출범한 전대협 제1기 의장에 당선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안기부는 또 수사를 통해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88년 1월20일 ... 전국대학생 72명을 규합, 결성한 주사파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출신임을 밝혀냈다.


전대협 제3기, 4기, 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석, 김종식 역시 주사파 지하조직 ‘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다.


예컨대 제4기 전대협 의장선거의 경우, ‘자민통’은 조직원 송갑석과 윤XX를 후보에 출마케 하고 윤XX가 중도에서 자진사퇴하는 방법으로 송갑석을 당선시켰다.


또 다른 예로 제5기 정책위원회의 경우 ... 전원이 주사파지하조직인 ‘자민통’ ‘관악자주’ ‘조통그룹’에서 파견된 자들이었다.


“김일성수령님 만세, 김정일지도자동지 만세” 충성결의와 맹세

전대협을 장악한 주사파지하조직들의 이념성향은 강령과 결의문, 맹세문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주사파지하조직 ‘자민통’ 기관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향도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오늘 한민전의 지위와 역할을 비상히 높아지고...’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90년 8월 이뤄졌던 ‘자민통’의 가입결성식에서는 ‘한민전’의 강령을 받아들이는 선서와 “김일성 수령님 만세! 김정일 지도자 동지 만세! 한국민족민주전선 만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만세!”등을 부른 후 아래와 같은 결의문와 맹세문을 선언했다.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

‘주체의 깃발 따라 계속 혁신, 계속 전진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 하겠습니다’



주사파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의 강령은 아래와 같다.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장군님과 한민전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이다. 동맹은 미(美)제국주의 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를 몰아내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전대협 의장 송갑석 “나는 김일성을 존경한다” 반복


91년 전대협에 대한 수사 당시 전대협 간부들은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강한 충성을 수사과정에서도 나타냈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제4기 전대협의장 송갑석은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김일성이 TV화면에 비칠 때면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에 흐믓함을 느낀다. 북한은 정의와 자주권이 보장되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이며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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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출신 제1기, 제2기, 제3기 의장들은 이번 17대 국회에 모두 당선됐다. 4기 이하 기수 의장출신들은 현재 열린우리당과 연계돼 정치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들어간 전대협 150여 명” 데일리안 보도


지난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전대협 간부출신들은 12명에 달한다. 1기 출신이 김태년우상호이인영이철우, 2기 출신이 백원우오영식정청래최재성, 3기 출신이 임종석복기왕이기우한병도씨 등이다.


그러나 전대협 출신은 국회의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은 최근 ‘한국최대 기득권집단 전대협동우회’라는 기사를 통해 국회의원 이외에도 보좌관, 사무처직원 등으로 국회에 들어가 있는 전대협 출신들이 15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 측근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 등 350여 명에 달하는 청와대 직원 중 80여 명 가까이가 전대협 출신이라고 이 매체는 덧 붙였다.


2004-12-08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5476
2024-06-25 18









2024. 12.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 북중러



[ .....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 ]


'尹 탄핵' 추진한 野의 속내, '탄핵소추안 결론'에 숨어 있었다


전경웅 기자 2024. 12.05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
2026-07-05 21:36:09
121.xxx.xx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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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pdr타도 | 2026-07-05 21:37:25삭제
2024. 12.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 북중러



[ .....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 ]


'尹 탄핵' 추진한 野의 속내, '탄핵소추안 결론'에 숨어 있었다


전경웅 기자 2024. 12.05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및 해제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필두로 야 6당이 탄핵 소추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헌법과 계엄법에 따라 진행한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이라 규정하며 탄핵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왜 지난 2년 6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 힘을 썼는지 그 속내가 지난 4일 국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에서 우연히 드러났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민주당·조국당·개혁신당 등 야권이 국회 의안과에 제출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전문은 현재 언론에 공개된 상태다. A4용지 12쪽에 이르는 탄핵소추안의 대부분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불법적으로 선포하고, 여기에 따라 군 병력을 동원하고 국회에 투입한 것이 불법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결론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소위 가치외교라는 미명 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 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된 인사를 정부 주요직위에 임명하는 등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의 위기를 촉발시켜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 의무를 내팽개쳐 왔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다. 김정은은 2018년 6월 미북 정상회담 이후로도 우리나라를 향한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은 물론 꾸준히 핵공격 위협을 해 왔다. 특히 문재인 정권 때는 핵탄두를 장착한 각종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우리나라를 위협했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 위협의 강도가 더 심해졌다. 최근에는 오물풍선을 살포하며 우리나라 민간인에까지 무차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주한미군의 사드(THAAD·종말고고도요격체계) 배치 결정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국익을 훼손하려 시도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 때부터는 대놓고 내정간섭적인 행태를 취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두고 사사건건 비판을 하며 한중 관계를 냉각화했고, 중국 당국자들은 그 책임을 무조건 우리나라에게로 돌렸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협박성 발언을 계속 해 왔다. 게다가 지난해 9월부터는 북한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한다며 무기를 수입하고 대가로 식량과 연료, 기술을 지원했다. 올해 6월에는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유사시 서로 참전할 수 있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어 북한이 군 병력을 대거 파병했다.


이런 나라들을 명시적으로 ‘적대’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적대시’했다는 게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라고 야권은 주장했다. 민주당·조국당·개혁신당 등 야권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중국·러시아에는 우호적이어야 한다. 또한 유엔사령부 후방지원기지가 있고, 북한에 함께 대응하는 우방국 일본과는 적대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북·중·러에 강경 대응하는 미국과의 관계 즉 한미동맹도 깨버려야 ‘야권에게 인정받는 대통령’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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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991







2026. 6.


"6·25전쟁 교육에 '항미원조'가 웬 말이냐"… 전쟁기념관 홍보물 논란


성민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2026. 06.10



[파이낸셜뉴스]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전쟁기념관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준비한 6·25 전쟁 교육 프로그램에 중국의 선전 용어인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국군과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고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기관이다.


9일 전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사업회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오는 13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6·25 전쟁, 서로 다른 해석'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사업회는 홍보물에 한국 교복과 중국 오성홍기 체육복을 입은 어린이 일러스트와 함께 '6·25 전쟁'과 '항미원조'라는 문구를 나란히 배치했다. 개요에는 "한국과 중국의 시각을 비교해 다양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에 '6·25전쟁 서로 다른 해석', '압록강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라는 소개와 함께 태극기 배경의 '6·25전쟁' 문구와 중국 오성홍기 배경의 '항미원조' 주장이 병렬로 배치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불법 남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6·25전쟁'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한다. 반면 '항미원조'는 중국이 참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선전 용어다. 중공군은 1950년 10월 전쟁에 대거 개입해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가로막았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하고 분단이 고착화됐다.


이를 두고 대한민국 법통을 모독하고 중공군의 불법 개입을 정당화하는 중국 측 역사 왜곡 논리를 국가 안보 교육 기관이 그대로 수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중국 측 주장을 초등학생을 포함한 한국인에게 교육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이 확산하자 사업회 측은 이날 오전 해당 홍보물을 삭제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6·25 전쟁이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역사적 사실을 보다 분명히 설명하려는 취지였으나, 홍보물 표현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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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nnews.com/news/202606100818118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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