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기시 게이코 [중동 분쟁, 이란과 아프리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ChatGPT -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중동 분쟁, 이란과 아프리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어느 글에서 어떻게 썼는지 정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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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게이코가 저작과 인터뷰 등에서 다룬 중동, 이란, 아프리카,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기록과 서술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관심과 탐구의 계기: 프랑스 생활과 지적 충격>

  • <서구 지성계와의 조우와 종교적 탐구>: 프랑스인 영화감독 이브 시암피와 결혼하여 그의 가족과 생활하던 초기, 유대인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자신의 역사·종교적 지식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 <경전 탐독을 통한 원인 규명>: 문화와 종교 간 분쟁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성서, 신약성서뿐만 아니라 코란까지 직접 탐독하며 이슬람과 유대·기독교 문명의 충돌 배경을 지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2. 주요 저작과 현장 취재를 통한 서술 방식>

<벨라루스의 사과> (르포르타주,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작)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실 관찰>: 파리에서의 일상적 삶과 함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발트 3국을 직접 발로 걸으며 현장을 취재했다.

  • <관찰자로서의 시선>: 한쪽의 이념이나 프로파간다에 치우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분쟁의 현장 속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목소리와 현실을 냉철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모래의 나라로>

  • <이슬람 세계와 아프리카로의 시야 확장>: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을 넘어 이슬람 세계 전반과 아프리카 대륙으로 취재 영역을 넓혔다.

  • <문명 간 갈등에 대한 심층적 응시>: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이나 단순한 호기심에서 벗어나, 척박한 땅과 역사적 상흔 속에서 이어지는 인간의 삶과 국제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직시했다.

<기시 게이코 자전: 달걀을 깨지 않으면 오믈렛은 먹을 수 없다>

  • <혁명 직후의 이란 단독 잠입>: 1980년대 초반 이슬람 혁명 직후 극도의 정치적 혼란과 반미·반서구 열기가 들끓던 이란 테헤란에 홀로 날아가 현장을 취재했다.

  • <현장의 공기와 인간 실존 서술>: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 혁명 정부의 엄격한 규율과 서슬 퍼런 긴장감이 감도는 테헤란 광장의 차가운 공기를 직접 목격하며,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고 변형시키는지를 생생한 르포 문학 형식으로 증언했다.

<91세 5개월: 지금 생각하는 그 사람, 그 일> 및 만년의 구술

  • <평화와 반전에 대한 확고한 입장>: 20세기 격변기 속에서 직접 목격한 분쟁지 경험을 바탕으로, 이시하라 신타로에게 출연 영화가 전쟁 찬양물이 되지 않도록 담판을 짓는 등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해 타협 없는 태도를 견지했다.

  • <생애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기록 의지>: 90세를 넘긴 초고령의 나이에도 안주하지 않고, 아프리카와 중동 여행에서 만났던 역사의 격변과 그곳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끝까지 글로 남겨 증언하겠다는 강한 집념을 표출했다.

<3. 서술의 본질적 특징: 카메라 앞의 인형에서 '독립된 관찰자'로> 

기시 게이코는 중동과 아프리카 분쟁을 결코 '자극적인 외신 뉴스'나 '스타 여배우의 교양 과시용'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물려받은 탐구열과 현장주의를 바탕으로, 직접 분쟁의 심장부로 뛰어들어 종교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껍질 아래 고통받는 인간의 얼굴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순종적인 일본 여성상이나 카메라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모순을 직시하고 고발하는 독립된 한 명의 '지적 시민'이자 르포라이터로서 기록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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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조금 더 정확히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올려주신 추모문은 기시 게이코가 “이란·아프리카·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국제현장을 취재했다”고 압축해서 말할 뿐, 구체적인 글의 제목과 내용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찾아보면 관련 글은 크게 <砂の界へ>(1986)와 <ベラルーシの林檎>(1993)에 집중되어 있고, 2021년 <岸惠子自伝>에서 이 경험들을 다시 회고합니다.

1. 이란 — <砂の界へ>(모래의 나라로, 1986)

이 책은 사실 두 개의 큰 르포르타주를 묶은 책입니다. 첫째가 이란이고 둘째가 나일강·아프리카입니다. 이란 부분의 제목은 <土漠に揺れる黒衣の女たち―戦火のイランをゆく>, 대략 <황량한 땅에서 흔들리는 검은 옷의 여인들―전쟁 중인 이란을 가다>입니다. 초판은 문예춘추에서 1986년에 나왔습니다.

기시가 이란에 관심을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파리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란 장군 암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이란·이라크전쟁(1980~1988)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전문 중동기자가 아니었지만 혼자 이란으로 들어가 “전쟁 중인 이슬람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자기 눈으로 보려고 했습니다. 출판사도 이 책을 “전시 이란에서 ‘이슬람의 어머니’를 만나고 전쟁의 상처를 직접 목격한 르포르타주”라고 설명합니다.

가장 강렬한 부분은 ‘순교’의 문화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집을 찾아갑니다. 방에는 죽은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부터 마지막 사진까지 놓여 있고, 젊은 아들의 얼굴이 총탄에 훼손된 사진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테헤란 남쪽 베헤슈테 자흐라(Behesht-e Zahra) 순교자 묘지를 방문합니다. 막 묻히려는 젊은 전사, 시신에 매달려 흙을 뒤집어쓰는 가족, 순교자를 기리는 광경을 보면서 일본인인 자신에게는 낯선 시아파의 죽음·순교·종교적 열정을 체험합니다.

거기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기시가 몰래 사진을 찍다가 무장요원들에게 둘러싸여 거의 수갑을 찰 뻔합니다. 그는 2021년 인터뷰에서도 당시 묘지에서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분수까지 촬영하다 문제가 생겼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는 편이다. 나중에 생각하면 경솔했고 분석과 숙고가 부족했다.”

이 말은 <砂の界へ>를 읽는 좋은 열쇠입니다. 기시는 이란 전문가의 입장에서 ‘이란 혁명과 시아파 정치’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낯선 문화에 충격을 받은 외부인의 기록입니다. 차도르를 쓰는 여성, 순교를 찬양하는 사회, 전쟁으로 아들을 잃고도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는 이해하려 하지만 끝까지 완전히 이해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오히려 “이란에 와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이슬람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동시에 거리감이 함께 존재합니다.

2021년 <岸惠子自伝>에서는 이 경험을 제34장 <イラン「天国の墓場」>(이란―‘천국의 묘지’), 제36장 <『砂の界へ』と日本の知識人>(<모래의 나라로>와 일본의 지식인들)에서 다시 다룹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시가 후년에 자기 르포의 한계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문기자의 글과는 다른 기시 게이코의 특징입니다.

2. 아프리카 — <砂の界へ―ナイル河遡行紀>

같은 책의 후반부가 아프리카입니다. 원래 <文藝春秋>에 <岸恵子アフリカをゆく>(기시 게이코, 아프리카를 가다)라는 이름으로 1985년부터 연재했습니다. 국립국회도서관에는 1985년 11월호의 제2회 <ネフェルティティとクレオパトラ>(네페르티티와 클레오파트라)가 확인됩니다.

단행본의 구성은

  • <旅のはざまの死熱>, 
  • <黒い河に投げ矢は飛んだ>, 
  • <ネフェルティティとクレオパトラ>, 
  • <カンパラ小次郎>, 
  • <ナイル源流に立つ>, 
  • <アフリカの男たち>, 
  • <ヌビア砂漠に日が沈む> 등입니다. 

즉 아프리카 전체를 분석한 책이라기보다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난 북동·동아프리카의 자연과 사람들을 기록한 여행 르포입니다.

여기서는 이란 편보다 정치·종교 문제의 비중이 작습니다.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자연, 사막, 여행 중의 고난, 현지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심입니다. 특히 딸 델핀과 함께 여행하면서 나눈 대화가 많이 들어갑니다. 출판사는 이를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만난 인간 군상을 딸과의 대화를 섞어 솔직하게 기록한 르포”라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앞서 제가 ‘아프리카 문제에 대해 썼다’고 표현한 것은 조금 넓은 말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아프리카 정치에 대한 분석’을 쓴 것이 아니라 <나일강을 따라간 아프리카 여행·현장 르포>를 썼다고 해야 합니다.

2021년 자서전에서는 제35장 제목 자체가 <ナイル河遡行>(나일강 소행·遡行)입니다.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 <ベラルーシの林檎>(벨라루스의 사과, 1993)

이것이 기시 게이코의 국제문제 글 가운데 제가 가장 흥미롭다고 보는 부분입니다.

책 제목은 벨라루스를 말하지만, 내용은 벨라루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은 크게 <祖国なき人びと>(조국 없는 사람들), <ワルシャワ発、聖ペテルブルク行き>, <遠い日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출판사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발트 3국에서 조국을 잃은 사람과 독립을 맞은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개인사와 겹쳐 쓴 르포르타주”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부분의 출발점은 기시의 프랑스 생활입니다.

파리에서 그는 반유대주의를 직접 목격합니다. 자신을 모욕한 상점 주인에게 프랑스인 친구가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욕설을 내뱉자, 함께 있던 다른 여성이 자신도 이스라엘인이라고 밝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기시는 “유대인이란 누구인가, 이스라엘인이란 무엇인가”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드레퓌스 사건, 디아스포라, 유대교와 시오니즘, 마사다 등으로 관심을 확장시키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88년, 이스라엘 건국 40주년을 맞아 NHK 위성방송 <ウィークエンド・パリ>의 취재로 직접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들어갑니다. 당시에는 1987년 말 시작된 제1차 인티파다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기시는 이츠하크 샤미르 총리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을 인터뷰했습니다. 샤미르는 유대인의 역사적 권리를 강조하며 이 땅은 ‘약속된 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시는 그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유대 민족이 수천 년간 박해·디아스포라·홀로코스트를 견디고 국가를 재건한 강인함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가자에 들어가자 시각이 달라집니다.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는 현장에 있었고, 그 돌 하나가 기시 자신의 다리에 맞았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촬영을 문제 삼아 필름을 빼앗았습니다. 한 소년은 기시에게 자신들의 나라와 집을 빼앗겼다는 취지로 말합니다.

여기서 기시는 아주 중요한 역설을 발견합니다.

유대인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이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어 유대인이 국가를 얻었다.
그 순간 팔레스타인인이 ‘나라 없는 민족’의 처지가 되었다.

기시는 이를 거의 “유대인이 국가를 얻은 순간,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무국적의 불행을 떠맡았다”는 방식으로 정리합니다. 동시에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아랍과 유대 양쪽에 서로 충돌하는 약속을 한 역사도 이 비극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이 점에서 기시는 명백한 친이스라엘이나 친팔레스타인 어느 한쪽에 서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역사적 공포와 국가에 대한 갈망을 이해합니다. 동시에 가자에 들어가 팔레스타인의 난민화와 점령 현실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해방이 왜 다른 민족의 박탈을 낳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양면성이 <ベラルーシの林檎>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1993년 9월 13일 워싱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츠하크 라빈이 악수하는 장면을 TV로 본 기시는 파리의 집에서 혼자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고 씁니다. 그는 이것을 양쪽이 내부의 과격파를 안고 있으면서도 내디딘 ‘용기 있는 평화의 첫걸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대목은 기시의 입장을 상당히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누가 역사적으로 이 땅의 진짜 주인인가”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민족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국가와 안전을 함께 얻을 수 있느냐는 문제였습니다.

4. <岸惠子自伝>에서는 어떻게 다시 돌아보는가

2021년 자서전 제4부 제목 자체가 <離婚、そして国際ジャーナリストとして>(이혼, 그리고 국제 저널리스트로서)입니다. 그리고 제34~38장이 거의 연속해서 이 문제를 다룹니다.

  • 제34장 <イラン「天国の墓場」>
  • 제35장 <ナイル河遡行>
  • 제36장 <『砂の界へ』と日本の知識人>
  • 제37장 <NHK・BSのパリキャスター>
  • 제38장 <イスラエル過激派の襲撃>

따라서 기시 자신도 이란→아프리카→NHK 국제방송→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경험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즉 “여배우가 우연히 몇 번 해외여행을 했다”가 아니라, 이 시기에 자신이 배우에서 작가·현장 관찰자·국제 저널리스트로 변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5. 기시 게이코의 중동 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서는 약간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시는 에드워드 사이드나 중동사 연구자처럼 식민주의, 시오니즘, 아랍 민족주의, 이슬람 정치사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모르므로 현장에 가서 직접 보겠다”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는 88세 때 자신의 이란 취재를 되돌아보며 “경솔했고, 분석과 숙고가 부족했다”고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이론보다 ‘장면’입니다. 순교한 아들의 사진 앞에 앉은 이란 어머니, 테헤란 묘지의 가족, 나일강을 따라 만난 사람들, 가자의 돌을 던지는 소년, 샤미르와의 대화, 아라파트와 라빈의 악수를 보며 우는 자신을 기록합니다.

반대로 약점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때때로 유대교·이슬람·아랍인을 너무 큰 문화적 단위로 이해하고, 성서의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 같은 것을 현대 중동분쟁 설명의 틀로 가져옵니다. 오늘날의 전문적인 중동사 연구라면 훨씬 더 식민주의, 영국 위임통치, 1948년 나크바, 1967년 점령, 난민 문제, 정착촌, 국제법 등을 중심에 놓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시 게이코의 중동 글은 <중동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한 일본 여성이 전후 유럽에서 살면서 유대인·아랍인·이슬람 세계를 처음 만나고, 자신의 무지를 깨뜨려가는 기록>으로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권 가운데 이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는 읽는 순서를 <砂の界へ> → <ベラルーシの林檎>로 권하고 싶습니다. 전자는 “낯선 이슬람 세계를 본 기시”, 후자는 훨씬 성숙해져 “두 민족의 상충하는 역사적 기억을 동시에 보려는 기시”를 보여줍니다. 두 책 사이의 약 7년 동안 그의 국제정치에 대한 시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해 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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