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백석 / 김영한 外 & [에세이] 길상사를 회고하며
후투티
2021. 2. 18
내 사랑 백석
백석, 열렬하고도 슬픈 생애에 신화가 된 사랑 이야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백석의 연인, 김자야 “하마터면 놓쳐버릴 뻔했던, 사랑을 실은 흰 당나귀의 아름다운 이야기”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金子夜, 1916∼1999)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김영한
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자야는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이 지어준 아호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다.
1938년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면서 이별했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 있다. 스승 하규일 명인과 연인 백석을 추모하는 사업에 평생 매진했다. 무소유를 읽은 뒤 법정 스님에게 시가 천억 대의 서울 성북동 길상사 부지를 시주했고,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다.
길상사가 문을 연 지 2년 만인 1999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는 이생진 시인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천억이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백석의 시를 옮겨 쓰다.
백석은 시인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뽑은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해 직접 필사한 공책을 어디나 들고 다녔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기실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에게 어떠한 조건도 없이 자신의 소유인 대원각을 기부하면서, 이 엄청난 액수의 돈이 백석의 시 한 편만도 못하다고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백석은 우리가 사랑해마지 않는 시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라는 「흰 바람벽이 있어」,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로 마무리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이다. 그러나 백석의 절창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다만 토속적인 방언, 특유의 의미 구성, 이야기적 상상력 등으로 말미암아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시를 눈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손으로 옮겨 씀으로써 시의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무소유의 행복
법정 스님은 우리에게 무소유의 삶을 일러주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준 우리 모두의 참 스승이자 진정한 수도자이다. 그가 말한 ‘무소유’는 치열한 삶과는 전혀 다르다. 치열하게 살되 얽매이지 않는 것이며, 의미 있고 선하게 살되 무엇을 남기거나 얻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은 법정 스님의 삶을 회고하고, 그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책이다.
법정 스님은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로 태어나 누구보다 넓고 큰 삶을 살았다. 그의 삶과 죽음은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려 아옹다옹 살아가는 우리네 작은 마음을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스님이 출가하여 스승인 효봉 스님에게 구참 같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청년시절부터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며 겪어온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법정 스님은 1970년대 한 때 민주화 운동에 나선 적도 있지만, 1975년부터 오랜 세월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홀로 지냈으며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속세를 뒤로 한 채 사셨고 한다. 그러면서도 불일암 시절인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불교적 가르침을 풀어 낸 산문집을 내놓아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길상사를 창원한 후 매년 봄과 가을 대중법회를 여는 등 대중과 끊임없이 교감했다.
법정 스님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는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될 정도로 스님의 뛰어난 글솜씨와 맑고 향기로운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보듬어주었다. 스님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났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맑고 깨끗한 무소유의 정신을 남겼다.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이 남겠나. 집, 재산, 자동차, 명예, 다 헛것이다. 이웃과의 나눔, 알게 모르게 쌓은 음덕, 이것만이 내 생애의 잔고로 남는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길상사를 회고하며
길하며 상서로운 절 참 이름이 아름답다.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흘러넘치는 것이 느껴진다. 살아계실 때의 법정스님의 모습과 무소유의 저서가 어른거린다. 무언가 상쾌한 일이라도 터질 것 같은 오월의 어느 날이다. 어제까지 교토에서 핵심 공급 협약회의를 마치고 부사장은 바로 귀국하셨다. 주말에 그녀가 오사카 공항에 도착할 시간이다. 출입국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자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주말에 오사카 만국 꽃박람회에 맞추어 도착했다.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하고 기대가 가득한 모습이다. 꽃박람회장의 수많은 꽃구경과 사진 촬영이 이어지고 날이 저물어 간다.
나라를 거쳐 교토에 갔다. 교토의 가을단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금각사, 은각사를 돌고 마지막으로 산속의 아름다운 청수사에서 마무리를 했다. 동경이다. 다나까 연구소에서 컨설팅 싸인을 하고 소개 받은 근교의 아름다운 길상사에 들렸다. 숲과 호수 잘 가꾸어진 정원 등 아름다운 곳이다. 다나까 사장이 한국에 오신다. 부사장이 서두르신다. 전화를 받으니 부사장이 미팅이 끝나는 대로 리무진으로 삼청동 대원각에 모시란다.다나까는 우리 회사의 까다로운 조건을 대부분 수용하셨다. 성공이다.
산속의 대원각에 왔다. 나도 다나까도 흥분이 된다. 홍등이 즐비하고 사극에서나 보는 차림의 여인들이 입구서부터 즐비하게 안내한다. 술상이 올라오고 나는 부사장의 인사말씀 통역에 바쁘다. 다나까는 행복해 보인다. 계속해서 미인들의 검무와 가야금 그리고 부채춤, 누드쇼가 이어지고 옆에선 향기로운 기녀의 수청이 말초 신경을 자극한다. 다나까는 미리 보아둔 한 여인을 내게 귀 뜸을 해준다. 어리고 참 아름답다.
멋지고 아쉬운 향연이 끝나고 부사장은 코리아나 호텔에 다나까 커플을 내려주면서 멋진 밤 보내라고 통역을 시키신다. 부사장 댁에서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시계를 보니 새벽이다. 박 기사는 여전히 공손하다. 우리 집 아파트 입구의 슈퍼에서 아까 먹은 멜론이 보여 한 바구니를 사서 박 기사한테 들려주고 동병상련의 얘기를 나눈다. 성공할 때까지 우리는 한 몸이다.
대원각은 내가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애인인 김영한이 사서 요정을 만들었다. 그녀의 본명은 자야다. 늘 진향으로 불리며 조선말 권번의 기생이다. 그녀를 사랑한 조선어학회 회원인 신윤국이 사비를 털어 일본에 유학을 보냈으나 신윤국이 투옥된 소식을 듣고 졸업을 포기한 채 귀국해서 그의 감옥이 있는 함흥에서 보낸다. 거기서 귀족집안의 시인 백석을 만나 또 다른 사랑의 세계에 빠져든다. 운명이다. 세월이 지나고 자야는 대원각을 사서
백석과 권빈, 신윤국을 기린다. 죽음이 다가오자 흠모하던 법정에게 그 당시 천억이 넘는 대원각을 고스라니 물려준다. 늘 빈손으로 세상을 살던 법정이 요정을 철거하고 길상사로 모습을 바꾼다.
길상은 맑고 향기롭게라는 불법의 세상이다. 올해가 길상사로 탄생하고 초대 청학 주지스님 이래 꼭 스무 한해다. 계절마다 서울에서 거기만큼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가끔 들리고 싶다. 법정이 계신 곳 무소유의 세상을 설법하시고 다나까의 욕망이 지나갔고, 부사장의 의지가 세워진 곳 거기에 나도 있었다.
항상 김영한이 보이는 곳 그 시절 나라도 그녀를 만났으면 사랑에 올인 한다. 기녀에서 권빈을 모시고
그녀를 알아본 신윤국의 도움으로 일본서 유학을 하고 백석과의 끝없는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의 말년에는 크게 얻은 깨달음을 법정에게 바친 모진 인생 참 아름답다.
계절이 성큼 다가온다. 향기가 난다. 대원각이 보이고 김영한이 보인다.
물론 지금은 길상사 이지만 이 짧은 계절에 대원각과 길상사 논해서 뭣하랴.
이 계절 전국이 천국이고 사랑인데 제발 오면 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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