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350여 명, "3대 메가 프로젝트 즉각 중단하라"
안디도입력 2026.09.19
'9·19 기후 정의 행진' 앞서 에큐메니컬·복음주의 단체 연합 예배
"국가 발전·경제 성장이라는 우상 아래 생명 소모품처럼 여긴 교만 회개하자"
2026 기후 정의 연합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뉴스앤조이-안디도 기자]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중단을 촉구하는 그리스도인 350여 명이 9월 19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 모였다. '9·19 기후 정의 행진'에 앞서 열린 '2026 기후 정의 연합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은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탐욕을 내려놓고 땅의 탄식을 듣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9·27 기후 정의 행진'을 앞두고 에큐메니컬·복음주의권 단체들은 각각 연합 예배를 개최했다. 올해는 다양한 교계 단체가 뜻을 모아 함께 '2026기후정의연합예배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예배를 준비했다. 위원회에는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생태정의위원회·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기후위기기독인연대·성서한국·NCCK기후정의위원회 등이 참여했다.
이날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 황준의 목사, 기후위기기독인연대 윤은성 활동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김신영 부소장은 무대로 나와 순서대로 기도문을 읽었다. 각 기도자가 기도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우리는 예수를 바라봅니다'라는 노랫말이 담긴 떼제 찬양으로 화답했다.
목회자상담
황준의 목사 / 성장, 발전, 추월, 선점이라는 말이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몰아붙입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내달리며 더 빨리 날아가야 한다 외치고 있는데 나만 홀로 멈춰 설 수 있겠냐며 스스로를 다그치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구별 생명들의 재난 경보 사이렌을 외면하고 고개 돌려 버렸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소망의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며 생명 전환과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하소서. 주변 이웃, 생명들을 돌아보며 신음하는 이들의 손을 잡게 하소서. 힘과 자본에 맞서 정의의 목소리를 내게 하소서.

이번 예배 기도는 세 명이 순서대로 기도문을 낭독하는 '연결됨의 기도'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안디도윤은성 활동가 / 생명의 하나님. 오늘 우리는 기후 재난 그늘에 놓인 생명들을 기억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특별히 지난 8월, 거대한 물과 얼음이 삶의 터전을 덮친 네팔을 기억합니다. 무너진 마을에서 삶의 흔적을 찾는 이들과 함께해 주십시오.
재난을 먼 나라의 불행으로만 여기지 않게 하시고, 한 지역의 죽음이 화석 연료를 태우며 성장해 온 세계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더 많이 소비하고 배출해 온 국가와 기업과 사회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하시며 재난의 책임을 힘없는 이들에게 떠넘기지 않게 하십시오.
김신영 부소장 /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이라는 우상 아래 무수한 생명과 연약한 이들을 소모품처럼 여기고 밀어냈던 우리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주적 진리를 외면한 채 우리가 쌓아 올린 탐욕의 바벨탑이 결국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라는 폭력이 되어 돌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 안에 잠든 예언자적 영성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김은득 목사는 교회가 먼저 무분별한 소비를 멈추고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들어라 땅의 탄식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이사 김은득 목사(낮은자리교회)는 기후 재난이 하나님의 심판이자 피조 세계의 탄식이라며, 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가난과 나눔, 저항의 삶으로 돌아서자고 촉구했다. 김 목사는 "자본주의라는 맘몬은 과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거기에 물들어 있다. 정부에 개발 중단을 촉구하려면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가난한 자의 마음을 지니고 가난을 추구해야 정부에 저항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해 보자. 교인은 선각자이고 교회는 세상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목회자상담
김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기후 정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말자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이 '돌아오라,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해 주겠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하신다"면서 "우리부터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고쳐 주실지 모른다. (간절한) 마음으로 가난을 추구하고 대체 용품을 사용하고, 저항하고 기도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이헌석 정책위원은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우리나라의 생태적 한계를 뛰어넘는 에너지를 쓸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3대메가프로젝트규탄공동행동 이헌석 정책위원은 AI와 반도체 산업에 쓰일 전력과 물의 양이 엄청나다며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생태적 한계를 뛰어넘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AI와 반도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과연 지구에 주어진 생태적 용량 안에서 산업 계획을 짜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세대와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서 어떻게 반도체를 생산하고 AI를 쓸지 한 번쯤 고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기후 정의 행진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 또한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정책위원은 "이 자리에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분도, 삼성전자 주식을 가진 분도 있어 마음이 복잡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정의 행진에 모인 오늘만큼은 기후 위기와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함께 이야기하고 3대 메가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곁에 있는 이들과 나눠 보자"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박스를 활용해 직접 만든 손피켓을 가져오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예배에 참석한 한민교회 교인 김유진 씨는 그리스도인들이 3대 메가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일단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창조 세계를 지켜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우리가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배를 마친 참석자들은 '땅의 탄식을 듣고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라', '3대 메가 프로젝트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9·19 기후 정의 행진'이 열리는 숭례문 인근까지 함께 걸었다.



예배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구호를 외치며 기후 정의 행진에 합류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기사 내용 요약 및 쟁점 분석
2026년 9월 19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에큐메니컬 및 복음주의권 기독교 단체들이 연합하여 <2026 기후 정의 연합 예배>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경제 성장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우상 아래 자연과 취약 계층의 삶이 소모품처럼 취급받는 구조를 비판했다
기사 및 대중 댓글에 대한 평론
1. 대중적 반발의 배경: 누적된 종교 혐오와 정파적 피로감
기사에 달린 댓글 대다수는 행사의 구체적인 취지(기후 위기, 생태적 한계)에 주목하기보다 극심한 반발과 조롱을 쏟아낸다
2. 생태 신학의 실천과 현실주의적 산업 논리의 충돌
집회 측이 제기한 반도체 및 AI 산업의 막대한 전력·용수 소비 문제는 전 지구적으로도 매우 실질적인 환경 쟁점이다
3. 단절된 소통의 언어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땅의 탄식>, <바벨탑의 교만>, <예언자적 영성> 같은 성서적 언어로 환경 문제를 정의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수사는 세속 영역으로 나오는 순간 설득력을 잃는다
이 기사는 단순한 ‘기독교인들의 환경 시위’라기보다, 한국 개신교 안에서 신앙과 정치·경제·생태 문제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한꺼번에 드러난 사례로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에큐메니컬 계열뿐 아니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성서한국 등 복음주의권 단체들도 참여해 약 350명이 연합 예배를 드리고,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예배에서는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을 우상화해 생명을 소모품처럼 다뤄 왔다는 회개, 과잉 소비와 탐욕, 기후 재난의 불평등한 피해가 중심 주제로 등장합니다.
먼저 이들이 문제 삼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결합한 대규모 산업전략입니다. 정부는 이를 첨단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서남권을 비롯한 지역에 새로운 산업 거점을 만드는 균형발전 정책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정부 발표 자체가 이 사업에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재생에너지·용수·토지를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을 거점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단순히 ‘개발 대 환경’이라는 구도로만 설명하면 정부가 제시하는 산업·지역정책의 논리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나 기후운동 쪽에서 제기하는 문제 역시 실제적인 것입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생산이 전력과 물을 많이 소비한다는 것은 단순한 선동적 주장은 아닙니다. 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5년 약 485TWh에서 2030년 약 950TWh로 거의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증가속도는 더욱 빠르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도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 맞춰 전력망과 산업용수 인프라 확충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사에서 “우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전력과 물의 양을 생각해야 한다”고 한 문제 제기는 정책 논의에서 실제로 검토해야 할 쟁점입니다.
다만 기사만 놓고 보면 한 가지 중요한 간격도 보입니다. ‘막대한 전력과 물을 쓰기 때문에 환경적 한계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과 ‘따라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상당한 정책 논증이 더 필요합니다. 기사에는 세 사업별 예상 전력량, 물 사용량, 탄소배출량, 재생에너지 공급 가능량, 입지별 생태 영향, 에너지 효율 향상 가능성, 규모 축소나 규제 강화 같은 대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환경문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 특정 산업정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서로 다른 단계입니다. 반대로 ‘AI와 반도체는 국가 경쟁력에 필요하니 환경 문제는 감수해야 한다’고 바로 결론짓는 것 역시 같은 논리적 비약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기사에서 오히려 신학적으로 더 흥미로운 부분이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도 되는가”라는 문제라고 봅니다. 뒤에 붙은 댓글에는 “신앙이랑 관계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정치투쟁을 하지 않았다”, “교회가 먼저 정신 차려야 한다” 같은 비판이 반복됩니다. 일부는 노골적인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정치·경제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기독교 역사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왕과 부자와 국가의 불의를 비판했고, 예수의 선포에도 가난한 사람, 부, 권력, 억압의 문제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노예제 폐지, 민권운동, 반아파르트헤이트, 한국 민주화운동 등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공적 행동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핵심 문제는 ‘정치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라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 집회의 신학적 긴장도 생깁니다.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비판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오직 생산성과 성장의 수단으로 보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창조 신학, 청지기론, 생태신학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특정 산업정책의 ‘즉각 중단’까지 곧바로 ‘하나님의 정의’라고 표현하게 되면, 하나의 정책적 판단에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창조세계를 보전하라’는 신앙적 원칙과 ‘이 사업을 어느 규모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전력원으로 추진할 것인가’라는 정책 판단은 구별하는 편이 논의를 더 정확하게 만듭니다.
김은득 목사가 말한 “가난한 자의 마음을 지니고 가난을 추구해야 한다”는 표현도 같은 이유에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자발적 단순성’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일관된 기독교적 생태윤리가 됩니다. 그러나 실제 빈곤 자체를 이상화하면 전기요금·주거비·일자리 문제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현실을 놓칠 수 있습니다. 기후정의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의 부담이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기사를 저는 ‘기독교가 왜 정치에 끼어드느냐’라는 댓글들의 질문보다 한 단계 더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사건은 한국 기독교 안에서 두 종류의 위험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는 신앙을 개인 구원에만 한정하여 경제·생태·사회적 책임을 신앙 밖의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특정한 사회·정책적 판단을 곧바로 ‘하나님의 정의’라고 절대화하는 경향입니다. 그 사이에는 훨씬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신앙에서 출발하여 성장과 소비, 생태적 한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되,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자료와 반론, 대안까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집회에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 계열이 함께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공적 목소리가 한 방향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이 기사 뒤에 붙은 격렬한 댓글까지 포함해 보면, 이 사건의 더 큰 주제는 ‘기독교가 좌파냐 우파냐’보다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경제성장·기술·기후위기 앞에서 무엇을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질문 자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피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