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0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박노자)...권용득 반론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박노자)...권용득 반론
=======
Vladimir Tikhonov, 13 June 2020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
 
저는 이런 질문을, 제 학생들에게 비교적 자주 받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 기간도 예컨대 영국의 인도 지배보다 약 7배나 짧고, 해방 시기도 세계사적으로 보면 비교적 이르고 (아프리카의 많은 식민지들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 해방됐습니다), 해방의 방식도 원한을 크게 남기는 독립 전쟁이 아닌 제3자들의 '개입'이었는데, 한국의 반일 감정들이 왜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그 어느 옛 식민지의 옛 식민 모국에 대한 감정보다 더 나쁘냐는 질문입니다. 비슷한 일제 식민지 경험을 가진 대만 학생들은 특히 이와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지고,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한 싱가포르 학생들에게도 이 부분은 궁금증을 많이 유발시키는 것 같습니다. ​

이런 질문을 자꾸 받아보니 제가 '옛 식민 모국에 대한 옛 식민지의 부정적인 집단 정서"의 유발 요인들을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대체로는:​
1. 
1) 과거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 그리고 식민지 시대 토착 엘리트의 '교체'가 잘 이루어질 수록
2) 옛 식민 모국에서 옛 식민지 출신에 대한 사회 통합이 잘 될 수록
3) 옛 식민지 시절에 식민 모국이 차별을 완화시켜 사회 통합 정책을 많이 진행할 수록
4) 식민 지배 종식 이후 또 어떤 다른 외부 집단의 폭력을 많이 체험할 수록
식민지 시절에 대한 기억의 지형은 비교적 '덜 나쁜' 쪽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경우에는 결국 식민지 시절의 토착민 관료들이 아닌 독립 운동가들이 정권을 잡았는가 하면 (1),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인도 출신들이 이민 와서 한 때에 비교적 쉽게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영국은 향항의 주민들에게도 이민 와서 영주권, 그리고 궁극적으로 시민권 획득으로의 길을 제시하기도 하지요 (2). 우즈베키스탄 같은 구쏘련 후계 사회로 가면 구쏘련에 대한 감정들이 비교적 좋은 편인데, 역시 구쏘련 시절에 러시아인과의 '차별'을 적어도 '정책' 차원에서 느낄 필요가 없었으며 복지 정책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된 것 같습니다 (3). 그리고 대만 같은 경우에는 일제 식민 시절이 끝난 뒤에 후퇴하는 국민당의 당군에 사실상 점령을 당하고, 그 후로는 대륙 출신의 '외성인'들의 "제2 식민 지배"를 받아온 탓에 일제 식민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상대화된 부분은 있습니다 (4). 그러나 이 네 가지 항목 중에서는 대한민국에 적용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탈식민화 이후 제1공화국의 대부분의 장관과 제3공화국의 대통령까지 다 식민지 토착 관료 출신들이었으며,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인들이 시회 통합이 아닌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됐습니다. 식민지 시절에는 조선인에 대한 노골적인 임금 차별 등이 끝까지 계속 자행됐으며, 식민 지배 종식 이후 남한에 들어온 미국은 적어도 직접 지배 아닌 간접 지배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일본'에 대한 기억의 지형은 대체로 부정 일변도로 잡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1) 피식민자들에게 애당초에 식민지배세력에 의해 '망국'을 폭력적으로 당한 근대형 국가가 있었다면
2) 계속해서 피식민자들의 독립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해야 했다면
보통 탈식민 이후의 기억의 지형은 부정적으로 형성되게 돼 있습니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영국에 의한 식민화 이전에는 말라까의 술탄을 정점으로 하는 왕조 국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해도, 식민지와 그 후 주민들의 대부분을 구성한 화교들은 그 국가와 무관했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를 기지로 하여 무역 등에 종사했던 화교 신흥 부르주아 집단은, '항영 투쟁'한다기보다는 식민 권력과의 일종의 블럭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좌파적 화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의 주된 저항 형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후원금 송금이었고요....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대한제국은 비록 절대 왕권 국가이었지만, 분명히 '근대 국가'를 지향했으며, 이미 1900년대에 근대적 민족주의를 배태했습니다. 그리고 일제에 대한 민심이 하도 좋지 않아 '명분'의 차원에서라도 온건 부르주아 세력마저도 현실적으로 가능했을 때에 적어도 항일 투쟁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1920년대의 좌파가 <동아일보>를 타협적 민족주의로 분류했는데, <동아일보>가 가장 크게 선전하는 '영웅' ('성웅')은 김성수와 한 번 편지 교환까지 한 인도의 간디이었습니다. 김성수-김연수 형제의 본심이야 어떻든간에 '운동'을 떠나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던 데가 바로 그 당시 조선 사회이었습니다. 그 운동에 대한 탄압이 어땠는지 굳이 다시금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요. 일제 때에 익힌 고문의 기술을 한국 보안 경찰들이 그나마 접은 것은 김대중 정권 때쯤의 일입니다. 1990년대 초반 사노맹 사건까지만 해도, 일제 시절과 비슷한 방식의 고문이 자행됐죠. 그러니 기억의 지형은 어떻게 됐겠어요?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 등은 일찍이 2000년대에 '대일 화해' 담론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덮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 화해!"라고, 피해 당사자들의 편에 서지도 않은 고급 '지식인'은 외쳐봐야 화해가 이루어질 리가 만무합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데는 금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본 내의 진보적 시민 사회와 협조해왔기 때문이죠. 한국인들의 대중 의식 속에서 '일제'와 '일본'이 각각 다른 층위를 차지하게 하자면, '일제'와 질적으로 다른 사고를 지니며 '일제'의 유산을 청산하고자하는 "또 하나의 일본", "색다른 일본"의 존재가 더 가시화돼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컨대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의 사회적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호사카 교수는 아무래도 온건 자유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그의 가시적 존재가 진정한 의미의 '한일 화해'에 뉴라이트들의 궤변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극우적 지배자들과 다른 편에 서는 일본 출신들의 존재는 '화해'로 가는 길을 터주는 역할을 크게 하지요. 저는 지금도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의 칼럼을 다 챙겨도 꼼꼼히 읽고 있지만, 앞으로도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기고를 한국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이런 교류야말로 탈식민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
이규순
박노자선생님 정의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은 사람들에게 윤미향 사수의 의미로 글(?)을 올리셨다는데 전 못 보았습니다. 어디서 볼수 있나요? 건강하십시요.
 
 
by author
박노자선생님 정의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은 사람들에게 윤미향 사수의 의미로 글(?)을 올리셨다는
  • Reply
  •  
     
    Author
    아, 네, 여기에 있습니다만, '사수'라기보다는 마녀사냥의 배경을 설명해볼까 싶었습니다: http://www.hani.co.kr/.../cul.../culture_general/947634.html
    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HANI.CO.KR
    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 Reply
  • 박노자 선생님, 너무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데는 금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같은 조직이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씨의 선거 홍보 포스터는 그럼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한 시도였나요?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 Reply
  •  
     
    Author
    권용득 네, 포스터에서 '한일전' 따위의 표현은 아주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민족/국민주의를 이용하려는 자유주의 진영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인듯한데, 좋은 전략은 전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해 한일 갈등의 국면에서 "No Japan"같은 표현들은 아주 유감이었습니다. "No Abe"라면 몰라도 "No Japan"은 미래 지향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표현은 전혀 아닙니다. 이런, 적대감을 부추기는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당선인 본인의 뜻인지 해당 정당의 발상인지 전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과오라고 봐야죠. 그런데 그 전까지의 투쟁 과정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좋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ply
  •  
     
    Author
    권용득 한 가지를 확실하게 하고 싶습니다. 자유주의 진영의 일각에서 이용하는 "토착왜구" 같은 표현을 제가 좋게 생각한 적도 쓴 적도 없습니다. 일본의 통치자도 아닌 '모든' 일본인들을 겨냥해 적대심을 부추기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쇼비니즘 선동이지 '운동'은 아닙니다. 정대협이 반일감정에 특히 1990년대에 기댄 면도 있었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운동상의 오류, 과오를 범함 게 당연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컨대 월남에서 한국 파월병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를 하고, 자국, 즉 한국의 부끄러운 가해국으로서의 면모를 알린 것도 분명히 있었고요. 여태까지 운동의 공과,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을 싸잡아 비난하기보다는 일일이 전문적으로 고찰해 분석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ply
  •  
     
    Author
    권용득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토착왜구'라는 말을 쓴 적은 없습니다. 저속한 쇼비니즘적 표현이고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죠. 그리고 박유하 교수님을 포함해서, 동의를 하지 않았을 수는 있었지만, '매도'를 한 적은 없습니다. 박 교수님의 저서인 <화해를 위하여>나 <제국의 위안부>를 꼼꼼히 읽었는데, 총체적으로 '학술'과 별 관계 없는 저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매도'가 아니고 평가입니다.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린 이유는: 1. 과도 일반화 오류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동지적 관계" 같은 표현들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한 두 개인의 경험을 이런 식으로 과도 일반화하는 게 '학술적' 글쓰기 방법은 아닙니다. 2. 역사학의 방법론의 부재: 전후에 쓰여진 소설을 '사료'로 무비판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사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사실 오류들이 많은 것: 예컨대 일본이 한국 측에 지급한 금액들은 배상도 보상도 아니었지만, '보상했다'고 쓴 것은 사실 오류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근거로 학술 저서 내지 대중적 학술 저서라기보다는 특정한 이념적 견해의 표현 내지 선전의 도구라고 평가를 내렸을 뿐이지, '매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미 누누히 밝힌 바가 있어 저는 더이상의 답변 작성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좌우간, 질문해주신 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 Reply
  •  
     
    Author
    박인식 제 기억으로는 (저는 지금 책을 보고 쓰는 게 아니고, 기억에 의존합니다) 몇 분 피해 당사자들의 일군 병사와의 연애담 등을 근거로 하여 '동지의식' 운운 하셨는데, 당연히 어떤 개인적인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싹틀 수도 있지만 이 개인적 체험을 무한정 일반화시키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똑같이'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도 있었지만 대우가 달랐고 주로 장교를 상대하게 돼 있었습니다. 일본인 남성 병사들은 비록 의무 복무이었다 해도 '제국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의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물론 '익찬 국회'긴 하지만) 총선 투표권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유족에 대한 (초보적인) 복지 혜택도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무교육, 투표권, 복지혜택) 중에서는 조선인에게는 해당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국의 시민'과 피식민자가 "똑깉이 불행한 운을 타고' 동원됐다고는, 사학을 약간이라도 배운 사람이면 도저히 쓸 수 없습니다. 그 어느 제국에서도 본국 병사와 식민병, 그리고 피식민 피동원자들이 "똑같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 자체는, 제국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모욕감밖에는 그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표현을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ply
  •  
     
    Author
    이서윤 Yes, if she feels so the, I guess, we have to respect her feelings....
  • Reply
  •  
     
    Author
    박인식 네, <제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명치학원 정영환 교수의 저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484707)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을 영문으로 간추려 쓴 논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www.ejks.org.uk/.../the-japanese-military.../ 일단 사실오류와 사료비판의 부재, 역사적 맥락에 대한 몰인식, 과도 일반화 등 여러 종류의 문제들이 지적됩니다. 전후에 쓰인 소설을 원자료로 무비판적으로 이용하거나, 피해자 증언 중에서는 몇 가지만 매우 선별적으로 이용한 등등의 사료 이용 및 방법론의 문제들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사항들을, 이 문제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정영환 교수께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ALADIN.CO.KR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Reply
  • 그리고 이왕이면 '박유하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것도 여쭙고 싶네요. 선생님이 그동안 해오신 거는 마녀사냥 아니고 정당한 비판이겠지요? 선생님은 언제나 옳으신 분이니까요.
  • Reply
  •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화해는 전쟁을 통해 가능하다는 건지, 식견이 짧은 저로서는 박노자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들이 너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Reply
  •  
     
    Author
    권용득 네, 포스터에서 '한일전' 따위의 표현은 아주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민족/국민주의를 이용하려는 자유주의 진영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인듯한데, 좋은 전략은 전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해 한일 갈등의 국면에서 "No Japan"같은 표현들은 아주 유감이었습니다. "No Abe"라면 몰라도 "No Japan"은 미래 지향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표현은 전혀 아닙니다. 이런, 적대감을 부추기는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당선인 본인의 뜻인지 해당 정당의 발상인지 전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과오라고 봐야죠. 그런데 그 전까지의 투쟁 과정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좋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ply
  • Vladimir Tikhonov 일본의 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누가 나쁘게 평가하던가요? 그걸 문제 삼는 사람도 있었나요? 다만 정대협-정의연은 그동안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선생님이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하시는 선거 홍보 문구처럼 반일 감정에 기댄 면이 없었나요?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운동은 반일 감정에 기댄 면이 있고, 그로 인해 운동의 목적에 맞지 않는 피해당사자는 배제되기도 했고, 이번 이용수 선생의 공개 발언은 그와 같은 문제를 이참에 바로잡자는 취지로 이해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윤미향과 정의연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만 하시니 매우 혼란스럽군요. 이 사달을 자초한 건 조중동이나 토착왜구 세력이 아니라 애초에 윤미향 씨와 정의연 같은데 말입니다.
  • Reply
  •  
     
    Author
    권용득 한 가지를 확실하게 하고 싶습니다. 자유주의 진영의 일각에서 이용하는 "토착왜구" 같은 표현을 제가 좋게 생각한 적도 쓴 적도 없습니다. 일본의 통치자도 아닌 '모든' 일본인들을 겨냥해 적대심을 부추기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쇼비니즘 선동이지 '운동'은 아닙니다. 정대협이 반일감정에 특히 1990년대에 기댄 면도 있었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운동상의 오류, 과오를 범함 게 당연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컨대 월남에서 한국 파월병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를 하고, 자국, 즉 한국의 부끄러운 가해국으로서의 면모를 알린 것도 분명히 있었고요. 여태까지 운동의 공과,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을 싸잡아 비난하기보다는 일일이 전문적으로 고찰해 분석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ply
  •  
     
    by author
    Vladimir Tikhonov ‘한일전’과 ‘토착왜구’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견해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만, 이렇게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서로 다른 견해가 양립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Reply
  • Edited
  • Vladimir Tikhonov 저도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군요. 그동안의 운동이 대중화 이후 어떤 식으로 외연을 확장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처럼 운동의 공과 과를 싸잡아 비난해서도 안 되겠지요. 과를 부풀리며 공을 뭉개서도 안될 테고요. 그런 식의 마타도어는 되도록 삼가려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점 다시 한 번 일깨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궁금하군요. 이 사달이 나기 전, 그러니까 십수년 전부터 운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대체 왜 고찰의 대상은커녕 매도의 대상이 되었던가요? 어떤 학자의 주장을 '뉴라이트'라고 손쉽게 분류해 사회로부터 매장시키려는 시도와 '토착왜구' 같은 혐오표현으로 피아식별을 확실히 하려는 시도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매사 피아식별이 철저하신 선생님은 혹시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 중 하나 아닌가요?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증만 더 커지는군요.
  • Reply
  •  
     
    Author
    권용득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토착왜구'라는 말을 쓴 적은 없습니다. 저속한 쇼비니즘적 표현이고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죠. 그리고 박유하 교수님을 포함해서, 동의를 하지 않았을 수는 있었지만, '매도'를 한 적은 없습니다. 박 교수님의 저서인 <화해를 위하여>나 <제국의 위안부>를 꼼꼼히 읽었는데, 총체적으로 '학술'과 별 관계 없는 저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매도'가 아니고 평가입니다.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린 이유는: 1. 과도 일반화 오류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동지적 관계" 같은 표현들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한 두 개인의 경험을 이런 식으로 과도 일반화하는 게 '학술적' 글쓰기 방법은 아닙니다. 2. 역사학의 방법론의 부재: 전후에 쓰여진 소설을 '사료'로 무비판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사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사실 오류들이 많은 것: 예컨대 일본이 한국 측에 지급한 금액들은 배상도 보상도 아니었지만, '보상했다'고 쓴 것은 사실 오류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근거로 학술 저서 내지 대중적 학술 저서라기보다는 특정한 이념적 견해의 표현 내지 선전의 도구라고 평가를 내렸을 뿐이지, '매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미 누누히 밝힌 바가 있어 저는 더이상의 답변 작성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좌우간, 질문해주신 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 Reply
  •  
     
    by author
    Vladimir Tikhonov 네. 선생님이 매도한 적 없다면 매도한 적 없는 거겠지요. 공개 석상에서 '박유하는 역사수정주의'라며 박유하의 주장을 싸잡아 뭉뚱그린 것도 매도가 아닐 테지요. 누군가 선생님을 음해하려고 선생님의 '학술적' 표현을 뭉뚱그린 것이겠지요.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같은 표현으로 무엇이든 과도하게 일반화(타자화)하지 않으려는 선생님인데 말입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아 이것이 학술적 글쓰기의 표본이구나, 사실상 똥맛에 가까운 카레맛이 느껴지는 뭐 이런 식으로 써야만 학술적 글쓰기가 완성되는 거구나. 선생님의 섬세한 학술적 표현에 사실상 큰 감명을 받고 돌아갑니다. 댓글 자꾸 달아서 귀한 시간 뺏은 점 사실상 사과드리며,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Reply
  •  
     
    by author
    교수님께서는 박유하 교수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시면서 그 예로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을 들고 계십니다. 제 기억과 달라서 책을 다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동지적 관계’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동원되었다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1부2장에서는 제목을 ‘군수품으로서의 동지’라고 붙였고 본문에서 “일본군을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똑같이 불행한 운을 가진 피해자”로 여긴 것을 ‘동지의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 뿐 아니라 책에서 ‘동지’라는 단어를 검색해 일일이 확인해봤는데 (다행히 pdf 파일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읽은 것일 수 있습니다만. (참고로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동지’라는 단어가 14회 나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표현처럼 판단하는 게 무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저라도 ‘동지의식’이라고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로 보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Reply
  • Edited
  •  
     
    Author
    박인식 제 기억으로는 (저는 지금 책을 보고 쓰는 게 아니고, 기억에 의존합니다) 몇 분 피해 당사자들의 일군 병사와의 연애담 등을 근거로 하여 '동지의식' 운운 하셨는데, 당연히 어떤 개인적인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싹틀 수도 있지만 이 개인적 체험을 무한정 일반화시키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똑같이'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도 있었지만 대우가 달랐고 주로 장교를 상대하게 돼 있었습니다. 일본인 남성 병사들은 비록 의무 복무이었다 해도 '제국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의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물론 '익찬 국회'긴 하지만) 총선 투표권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유족에 대한 (초보적인) 복지 혜택도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무교육, 투표권, 복지혜택) 중에서는 조선인에게는 해당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국의 시민'과 피식민자가 "똑깉이 불행한 운을 타고' 동원됐다고는, 사학을 약간이라도 배운 사람이면 도저히 쓸 수 없습니다. 그 어느 제국에서도 본국 병사와 식민병, 그리고 피식민 피동원자들이 "똑같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 자체는, 제국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모욕감밖에는 그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표현을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Reply
  •  
     
    by author
    Vladimir Tikhonov 답글 고맙습니다. 교수님 말씀 잘 살펴보고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 Reply
  • Vladimir Tikhonov 성노예보다 제국의 위안부가 더 모욕적이란 말씀이신가요?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는 성노예란 말이 모욕적이라며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 Reply
  •  
     
    Author
    이서윤 Yes, if she feels so the, I guess, we have to respect her feelings....
  • Reply
  •  
     
    by author
    과거를 공부하고, 과거를 이해하는 - 때때로. 진짜 세상을 만드는 열쇠. 맞죠?
  • Reply
  • See original (Russian)
  •  
     
    by author
    이웃에게 먹힌 나라는 프랑스 뿐인가요? 4년인가 그렇지요. 우리가 일본을 침략한 것은 단한번 몽골과 함께 잠깐이었습니다. 금방 돌아왔지요. 수백년 간 무수한 노략질을 당한 끝에 40년을 먹혔고 저들이 져야할 분단의 짐을 지금껏 75년 지고 있습니다. 언제 이 짐을 벗을 지 모릅니다. 내전까지 치뤘지요. 어른들은 일본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정 왜놈 왜년이라 했습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원한입니다. 아베와 극우는 일본의 국체입니다. 왕이 없어지지 않고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간다? 일본의 진보, 공산당마저 상상못할 일 일겁니다. 왜 그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천대하고 비하합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끼쳤다구요. 요즘 그들의 신경과민은 두려움으로 보입니다. 자기네들이 한 짓을 잘 알고 있을테니요. 비록 분단되었으나 만만찮은 국력을 이뤄내고 있으니 더욱. 화해? 없습니다. 언제든 그들은 부산에 상륙하려 들겁니다. 아니면 원산이나 함흥에.
    생불귀.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그에 걸맞는 댓가를 치뤄야 할 겁니다.
    위 선생님이 든 예시는 다 틀렸습니다.
  • Reply
  •  
     
    by author
    기억의 지형 이외에 대만 학생들은 조선과 대만에 있어서의 일제 통치의 성격과 그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 Reply
  • Edited
  •  
     
    by author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심한 이유는 한국인들이 적어도 일제 이전에는 일본이 자기들보다 한 수 아래인 경쟁자, 나아가서는 야만인이었다고 생각하는 탓이 클 것 같습니다. '일본놈들 따위가 어딜 감히!'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혐오와, 그 혐오의 대상자들에게 패배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함이 깔려 있는 거죠.
  • Reply
  •  
     
    by author
    감사합니다♡
  • Reply
  • 본인의 발화권력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근거없는 혐오를 생산하는 모습을 몇 년째 보고 있으니 익숙해진건가 이젠 화도 안나네. 세뇌는 이렇게 하는거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 Reply
  • 윤미향의 정대협이 일본의 시민단체와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주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과 별도로 각성한 시민이 직접 나서야 진정성 있는 운동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일제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진보 좌파 인사 중 다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걸로 압니다. 무엇보다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비판은 정당해 보이고, 정대협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계시지만 위안부 피해자 다수가 지금까지 문제 제기해온 윤미향과 정대협의 운동 방식과 회계 문제는 곁가지라기보다는 본질적인 사안입니다.
    호사카 유지 씨가 한국인에게 먹히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을 까기 때문 아닌가요. 그래야만 한국에서 자신의 입지가 서니까요.
    한국인이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호사카 유지 씨 같은 분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Reply
  • Edited
  • 대단하시네 진짜 박노자 선생ㅋㅋㅋㅋ 학자로서 양심은 길바닥에 버리셨나
  • Reply
  • 반일 감정의 유지는 선전과 선동의 효과도 한 몫하지 않나요. 유지될 뿐만 아니라 증폭되지 않습니까. 윤미향의 반일 포스터가 '반일이란 무엇인가' 를 잘 보여주고 있네요. 저렇게 선동들을 해대니 화해란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국내 정치인의 밥줄이니까요. 거기에 부역하는 지식인들의 역할도 상당합니다. 그들은 덮어놓고 '반일' 을 앵무새처럼 외치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존재 자체가 학술적 근거라도 되는 듯 얼굴 마담으로서 이용하는데 서로 윈윈입니다. 신문에 칼럼도 실리고 얼굴도 알리고 여차하면 정치판에 끼워주기도 하고요. 심지어 반일은 돈도 됩니다. 윤미향과 정의연이 잘 보여줘요. 회계 장부를 쓰레기로 만들어놓고도 외부 감사도 안받을거고 돈을 어디다 썼는지 영수증도 공개안할거라면서 기자회견장에서 큰소리로 의심하는 국민들께 호통치는 정의연 인간들의 오만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당한 비판을 '마녀사냥' 이라고 앙념치기 바쁜 일부 지식인들은 둘 중 하나에요. '양심' 이 없거나, '상식' 이 없거나.
  • Reply
  •  
     
    by author
    식민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지금도 대륙으로 진출할 의도를 한시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반일을 조장하는 무리는 왜국의 군국주의자 망령들입니다. 고약한 이웃들이죠.
  • Reply
  • Edited



  • ===========================================================
    권용득
    14 June 2020 ·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박노자)
    https://www.facebook.com/vladimir.tikhonov.5/posts/10223324250717224

    위에 공유한 박노자 선생 글 두 번 읽었다. ‘학술적 글쓰기’ 내공이 워낙 깊으신 분이라 가방끈 짧은 나는 도무지 따라가기 힘든 얘기였다. 그럼에도 감히 내 방식으로 박노자 선생 글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1) 조선 해방은 다른 식민지 해방 사례와 비교하기 어려운 특수한 경우임
    2) 일제는 사회 통합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조선인은 차별 대상에 불과했고, 해방 후 제3공화국까지 주류 교체가 안 된 상태에서 식민지 토착 관료 출신들이 계속 한자리 해먹었고, 그 배경에는 해방 후 미국의 간접 지배가 있었고, 전후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은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었고, 그러므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해방 후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음
    3) 식민지 조선부터 90년대 초반 사노맹 사건까지 운동에 대한 탄압은 계속됐고, 그게 다 일제의 악랄한 고문 기술이 식민지 조선에 뿌리내린 탓임
    4)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생기셨는지 휙 건너뛰더니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 등은 일찍이 2000년대에 ‘대일 화해’ 담론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덮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 화해!’라고, 피해 당사자들의 편에 서지도 않은 고급 ‘지식인’은 외쳐봐야 화해가 이루어질 리가 만무합니다”라며 글의 제목인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의 원인으로 박유하를 에둘러 지목함
    5) 그러면서 “사실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데는 금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본 내의 진보적 시민 사회와 협조해왔기 때문이죠”라며 정대협-정의연을 치켜세움
    6) 호사카 유지는 나랑 정치적 노선 좀 달라도 진정한 의미의 한일 화해에 도움이 되고 박유하보다 훨씬 나음
    7) 호사카 유지뿐만 아니라 후지이 다케시처럼 일본 진보 지식인의 칼럼을 한국 신문에서 더 자주 보면 좋겠고, 이런 교류야 말로 ‘탈식민 치유’에 도움이 됨
    ===
    아래는 박노자 선생 글에 대한 내 어쭙잖은 소감...
     
    일단 박노자 선생의 한국 근현대사 해석은 전반적으로 몹시 시혜적이다. 너네 참 힘들었겠다, 그치? 선량한 너네는 일찌감치 자립할 의지도 있었는데 못돼 처먹은 일제의 영향으로 나쁜 물들어서 고생한 거쟈나, 토닥토닥... 뭐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식으로 기승전...일제 식민 지배 탓인 얘기들, 이건 뭐랄까 ‘아베 개새끼’의 ‘고급 버전’ 같달까. 이와 같은 얘기를 소위 양심적 일본 지식인들도 곧잘 따라하던데, 한국사회가 그렇게 만만한가 싶다. 수차례 얘기했다시피 한국사회는 외부의 영향 없이도 알아서 썩을 때로 썩을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고 본다.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일제 식민 지배 탓으로 돌리는 한 내부의 문제로부터 외부로 눈을 돌리게 만들 뿐이고, 그건 엉뚱한 싸움을 하게 하는 선동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박노자 선생은 이 와중에 ‘공공의 적’ 삼을 만한 표적을 제시하기도 한다. 박유하 교수의 화해론을 ‘고급 지식인’의 배부른 소리쯤으로 취급하며 ‘덮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로 일축하면서 비꼬아 놓았는데(이런 것도 학술적 글쓰기인가?), 박유하 교수는 과연 그런 얘기를 했을까? 아래는 박유하 교수의 최근 인터뷰 중 한 대목.
    “내가 우선적으로 시도한 건 체험을 드러내 말하지 못한, 잊힌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거였다. 그런 할머니들 목소리만 진짜라고 말하려 한 게 아니라 당사자를 제쳐놓고 일이 진행되는 건 문제이며, 만약 당사자들 간에 생각이 다르다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고민해 보자, 오로지 그런 취지였다. 그러면서 기존 연구 담론과는 다른 접근법을 시도하려 했다. 전쟁 범죄로만 다뤄지던 것을 제국주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위안부는 식민 지배가 야기한 문제인데 일본은 그 부분을 제대로 인식한 적이 없다는 것, 이를 명확히 한 뒤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인터뷰 전문: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089701/1)

    박유하 교수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집필 의도를 아무리 해명해봤자 ‘내가 그렇게 읽었어! 내가 그렇게 읽었다고!’ 하시는 박노자 선생에게는 가닿을 리 만무하다.
    그보다 정대협-정의연이 일본 내 진보적 시민 사회와 협조해왔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온 조직이라니, 이것도 일종의 역사왜곡 아닌가 싶다.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되기 전부터 일본 정부의 전후 보상 책임을 촉구하며 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도왔던 활동가 우스키 게이코 씨의 입국 금지를 신청한 것은 정대협이었다. ‘총선은 한일전’이란 슬로건을 동원해서 반일 감정을 무기 삼은 쪽은 윤미향 씨와 여당이었다. 윤미향 씨와 정의연을 향해 문제 제기를 한 건 피해당사자이자 운동의 중심이었던 이용수 선생이었다. 그리고 윤미향 씨와 정의연은 이용수 선생을 향한 2차 가해를 상당 시간 방치했다. 과거 운동의 중심부와 갈등했던 피해당사자들은 기림비에서 이름이 삭제되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을 고의로 누락시킨 것은 정의연이었다. 운동이 그동안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고, 또한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 사회에 얼마나 환기시켰든, 앞서 열거한 문제들은 당사자중심주의도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정보를 왜곡해 한국인 입맛에 맞는 소리를 늘어놓는 편인데*, 박노자 선생은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인이여, ‘내 귀에 캔디’ 하면서 불편한 진실은 끝내 외면하고 달콤한 소리나 귀담아들으라는 건가.

    무엇보다 박노자 선생 글에서는 진영이 확실히 구분된다. 박노자 선생에게 우리 편은 누구인지, 적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얘기다. 이 지긋지긋한 피아식별과 진영논리, 이런 것도 학술적 글쓰기인가. 대체 왜 내 눈에는 박노자 선생의 학술적 글쓰기가 반공이 시대정신이던 시절의 ‘삐라’ 같을까. 이게 다 내 가방끈이 짧아서겠지?

    *호사카 유지 교수는 ‘신친일파’론을 주장하면서 <반일종족주의> 저자들이 도요타 재단의 연구 지원금을 받은 적 있고, 그들의 배후에 일본 극우 기업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도요타 재단의 연구 지원금을 받은 것은 <반일종족주의> 저자들뿐만 아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들과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김부자, 한홍구, 정진성 교수(정대협 전 공동대표) 등도 받았다. 아래는 도요타 재단 연구 지원금 둘러싼 음모론을 반박하는 이승엽 선생의 포스팅이다.
    https://www.facebook.com/sungyup.lee.7/posts/2428924807194851

    **학술적 글쓰기에 ‘식민 모국’이 웬 말인가? 굳이 이런 데까지 여성성 동원해야 하나? 박노자 선생은 ‘성인지 감수성’ 모르나?
    ***박노자 선생은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이라며 한국사회가 해방 후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반일 감정으로부터 불가항력적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반일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사람들을 슬그머니 지우고,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를 과녁처럼 내세웁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글쓰기가 학술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것 또한 박노자 선생이 그토록 반대하던 ‘마녀사냥’과 다름없는 것 같아서 반박 차원으로 한 얘기입니다.

    ======





    박성용
    ·


    어떤분 말마따나
    포스트트루스 시대죠ᆢ

    권용득

    Vladimir Tikhonov 박노자 선생님, 아까 선생님 포스팅에 경우 없이 댓글 너무 많이 달아서 미처 못 물어본 얘기는 따로 정리해서 포스팅했습니다. 독후감쯤으로 여겨주시고, 시간될 때는 지도 편달도 좀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Chee-Kwan Kim
    반일감정이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에 반일장사치는 어용학자들이 있다는 걸 빠트리셨네요.

    임요희
    ·
    용득샘이 수고 많으십니다. 박노자 교수님이 이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Park Yuha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생기셨는지”에 아침을 웃음으로 시작. 고마워요.^^

    Soon Ae Choi

    '화해'의 폭력 이라고 했던 재일 서경식 선생님 글도 이렇게 풀어서 포스팅해 주시길 감히
    바랍니다.부탁해요.

    Kilt Line
    ·
    북한에 귀화하려다 거부당하고 남한에 온 이유가 있지요. 북한애들이 보기에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그런 걸 귀화하게 해주는 남한은 뭔지...

    강준호
    ·
    아니 근데 4)와 같은 주장은 진짜 근거 있나요?ㅋㅋㅋㅋㅋ 제가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최고조로 적대적일 때도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았는데. 근본적으로 국가의 강한 힘을 추종하는 뉴라이트들의 주장이랑 어찌되었든 "국가의 책임"을 언급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랑 같은 선상에 세운다는 것은 완전 무리수인데요ㅋㅋㅋㅋㅋ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