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백석 -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짧고도 영원한 사랑
김자야 (지은이)문학동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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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목차
작가의 말_추억을 위한 변명 5
1부 운명
내 나이 열여섯에 15
마누라! 마누라! 35
기생 진향 51
2부 당신의 ‘자야’
당신만 아는 이름 ‘자야’ 73
‘모던 보이’와 북관의 여인들 82
‘바다’ 같은 사람 98
이별 연습 109
청진동 연가 123
나와 나타샤 137
삼우오三羽烏 151
사랑의 위기 161
방황 177
당신은 가고…… 189
짝 잃은 외기러기 201
3부 흐르는 세월 너머
바람벽에 그려보는 얼굴 219
시인의 절규 225
꿈에 오신 당신 239
시 속에 당신 모습이 249
시전집 품에 안겨 280
여든 살의 청년 285
당신 곁으로 292
발문_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302
백석 시인 연보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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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무료하고 울적할 때면 허전한 심사를 달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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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자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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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자야는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이 지어준 아호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다. 1938년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면서 이별했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 있다.
스승 하규일 명인과 연인 백석을 추모하는 사업에 평생 매진했다. 『무소유』를 읽은 뒤 법정 스님에게 시가 천억 대의 서울 성북동 길상사 부지를 시주했고,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다. 길상사가 문을 연 지 2년 만인 1999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는 이생진 시인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천억이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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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분야 : 일본소설 1위 (브랜드 지수 1,530,212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1위 (브랜드 지수 5,783,551점), 에세이 1위 (브랜드 지수 2,461,35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백석, 열렬하고도 슬픈 생애에 신화가 된 사랑 이야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백석의 연인, 김자야
“하마터면 놓쳐버릴 뻔했던, 사랑을 실은 흰 당나귀의 아름다운 이야기”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金子夜, 1916∼1999)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기생 복색을 입고 수필을 발표하기까지
학업의 꿈 놓은 적 없던 ‘문학 기생’의 삶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부러워하였다. 특히 옷 입은 자태가 두드러진다든가, 절하는 맵시가 일품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말들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고, 오직 내 가슴속에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일념뿐이었다. (34쪽, ‘내 나이 열여섯에’)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의 은인이신 옥중의 해관 선생님을 면회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의 복색을 다시 입고 함흥권번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내가 기생이 되어야 커다란 연회 같은 것에 참석할 수가 있었고, 또 그러한 기회에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를 만나서 신선생님의 특별 면회를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46쪽, ‘마누라! 마누라!’)
1부 <운명>에서는 백석을 만나기 직전 김영한 여사의 성장기와 기생 김진향으로서의 삶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집안 사정, 기생으로의 입문, 일본 유학과 귀국,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까지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김영한은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집안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그녀는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보고자 열여섯의 나이로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으로 입문해 조선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 문하에서 여창가곡, 궁중무 등을 배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는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 기생’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다가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하지만 면회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함흥 땅에 주저앉는다. 1936년 가을, 그는 궁리 끝에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 복색을 입고 함흥권번으로 들어간다. 오로지 은인이던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기생이 되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갈 수 있고, 그러면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다시 들어선 길이었다. 결국 해관 선생은 만나지 못했지만, 바로 그곳에서, 1936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날은 내가 함흥권번에 소속이 되어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함흥관으로 나갔던 바로 첫날이었다. 영생고보의 어느 교사가 이임하는 송별회의 자리인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 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46쪽, ‘마누라! 마누라!’)
말없이 연거푸 기울어지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술상 아래쪽에서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말이 나의 귀를 놀라게 하고, 또 의심케 했다. (47쪽, ‘마누라! 마누라!’)
문학 기생 김진향의 사랑과 삶의 연대기에는 당대의 상황과 풍속, 일본에 대한 인상, 그리고 기생 개개인의 일상과 내면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특히, 기생 사회의 흥망성쇠, 일제하 기생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들은 왜곡된 인식에 근거한 기생상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비록 일제의 말살정책에 의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당시 기생들은 한국의 전통 궁중 가무의 개척자였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일제에 의해 기생 사회의 미풍양속이 깡그리 압살되어버리기까지, 기생 사회와 조선 역사의 명암을 낱낱이 지켜본 그의 충정 어린 외침이 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의 인간적인 면모와
백석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기원
2부 <당신의 ‘자야’>는 백석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기록이다. 백석이 지어준 ‘자야’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청진동 시절 자야를 두고 ‘세 번’이나 새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냉엄한 신분제 시대의 사랑, 거리에서 지인이나 자야의 손님과 마주칠 때마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이 시인과 기생 커플의 고뇌와 갈등, 백석 집안의 극렬한 반대와 자야의 방황, 자야에게 만주 신경으로 도망가자고 제안하는 백석의 사랑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조선생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말을 꺼냈다.
“참 말씀드리기 거북하지만, 백군이 지난해 십이월 이십사일에 집을 나와서 그날 바로 두번째의 장가를 들었다고 하는구려. 그래서 자기는 자야에게 도저히 면목이 없어 집에를 못 들어가겠으니, 나더러 제발 좀 같이 가달라는 것이었어요.”
한마디로 가소로운 웃기는 이야기였다.
조선생은 당신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친구로서 말할 수 없는 실망감도 느끼고, 또한 놀랍고도 괘씸한 마음에
“여보게!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같이 가면 괜히 나까지도
혼이 난다네!”
하고는 겨우 당신을 떼어놓고, 혼자 달려오는 길이란다.
이 말에 내가 심히 충격을 받아서 얼굴이 핼쑥하게 되자, 그는 나를 위로해주기에 여념이 없다. (163쪽, ‘사랑의 위기’)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들의 연애사를 뛰어넘는다. 자야가 복원한 그들의 사랑과 고뇌, 갈등을 통해 백석과 백석 시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시작품 가운데는 꽃답고 영롱한 두 침자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청순한 순정과 격렬한 열정의 너그러운 미소가 변함없이 남아 있습니다"(<작가의 말> 중에서)라는 회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백석의 시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 흐르는 애틋한 정조의 실체는 그들의 애정전선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이처럼 백석에 대한 여러 정보와 인간적인 면모가 자야의 회고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는 억양이 짙은 평안도 말을 썼는데 이는 시집 『사슴』에 그대로 쓰이고 있어서, 자야는 “이 시집을 읽으면 꼭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또 매사에 깔끔한 성격이었던 백석은 육류보다는 나물 반찬을 좋아했고, 심한 결벽증에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한편, 문학에 관한 화제에서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는 백석의 시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젊은 시절과 생사조차 알길 없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자야의 애틋한 정이 고여 있다. 여든 살의 청년 백석을 꿈에서 만났는데, 백석이 자꾸만 허기가 지다고 호소하고 돈을 몇천 원만 꾸어오라고 재촉하더라는 대목은 애절하기 그지없다. 더불어 백석 시를 통해 백석을 그려보는 살뜰한 마음,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 시인’으로 보아야 마땅하다는 것, 제 손으로 백석의 시선집을 펴내겠다는 신념으로 동분서주하다가 뜻밖에도 한 후배 시인에 의해 발간된 『백석시전집』을 가슴에 안고 느꼈던 감격, 그리고 백석의 고희를 맞아 쓴 편지 등은 긴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기는커녕 더욱 짙고 단단해지는 자야의 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꿈을 깨고 나니 비록 꿈일망정 시장하다고 애원하던 표정, 돈을 좀 꾸어오라고 재촉하던 그 처절하고 측은한 모습이 눈에 밟히었다. 그러한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애처롭고 가여운 연민의 정이 끓어올랐다. 내 심정은 그저 뒤숭숭하기만 했다.
이 낭군님은 도대체 어찌하여 밤마다 꿈마다 나의 속을 불로 지지는 듯 시달리게 하는 것인가. 틀림없이 북한에서도 당신의 형편이 좋지 않았을 것이리라.
내 마음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측은한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당신은 아마도 북한에서 실제로 겪은 여러 가지 참혹한 정황을 내 꿈에 나타나서 슬프게 하소연한 것만 같았다. 당신의 몸과 마음은 운명적으로 혈혈단신의 삶이었다.
(163쪽, ‘꿈에 오신 당신’)
못다 한 사랑 위로하는 마지막 필생의 사업
팔순 노구로 복원한 시인 백석의 삶과 사랑
우리가 오늘날 백석과 자야의 내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까지, 책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이동순 시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책 말미에 수록된 이동순 시인의 발문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을 통해 김자야의 원고 집필과 완성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오전 나는 연구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첫 느낌에도 매우 단정하고 기품 있는 할머니의 음성이었다.
그녀는 백석 시인과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언젠가 한번 만나기를 청했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곧 상경하여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자야’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이 이름은 백석 시인이 지어준 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그녀는 백석 시인과 관련된 자신의 생애를 조용히, 그러나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흘러간 20대 초반, 어여쁘던 처녀 시절에 함경도 함흥에서 시인 백석과 처음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3년간 서울 청진동의 한 작은 집에서 혼례를 치르지 않은 부부로서 함께 산 적이 있노라고.
나는 대뜸 모든 내력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함흥 시절에 쓴 백석 시의 애틋함과 고뇌와 갈등 따위가 일시에 정돈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던 한 선배 시인의 풍모와 직접적인 체취를 새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에 나는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버렸다. (이동순 발문,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중에서)
이동순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자야에게 백석과의 사연을 정리해보기를 강력히 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자야는 이미 1930년대 중반 파인 김동환이 발간하던 잡지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한 바 있었고, 한때 기생 신분이긴 했으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인텔리 여성에다가 1953년 만학으로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까지 졸업한 학구파였다. 김자야가 이 원고에 쏟아 부은 공력과 노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원고 집필은 1992년 봄부터 이후 4년간이나 쉬지 않고 틈틈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여 이동순 시인은 200자 원고지 앞뒤에 종서로 빽빽하니 써내려간, 낭군 백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원고를 받아내었다. 그때 김자야는 이미 팔순이 가까운 노구였다. 그는 이 글을 쓰면서 때때로 밤을 새우기가 여러 번, 심지어는 건강에 무리가 왔고, 이로 말미암아 두어 차례 입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 사랑 백석』의 완성은 그야말로 난산(難産)이었다.
백석의 시가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라고 말하는 자야는 이 책을 낸 것이 일생일대의 큰 기쁨이라고 하지만, 시인 백석과 백석 시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얻게 된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이동순 시인은 “김자야의 문체는 1930년대식 어법과 문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당시의 진기한 어휘나 고전적 문투 등의 이채로운 언어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며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를 짚어준다.
책의 종장에서 자야는 노구를 이끌고 백석과 함께 살던 청진동 집 앞으로 간다. 추억마저 희미해져가는 두 사람의 옛집을 되짚어가다가 문득 터져나오는 자야의 슬픔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정신을 수습하고 본즉, 그곳은 이미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오랜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라진 옛 기억을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어디선가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빌딩을 짓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름한 싸구려 보신탕집이 왼편 옆 모퉁이에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었고, 굳게 잠긴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곳은 개발지구로서 머지않아 지금의 윤곽마저 아주 사라져버릴 운명에 놓여 있었다. (…)
쓸쓸히 돌아서는 무거운 발길. 나오다가 멈추어 돌아보고, 또 한참을 걸어나오다간 다시 뒤돌아다본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 그립던 우리들 옛사랑의 맞춤의 둥지가 갑자기 곧 두 사람이 함께 묻혀버린 황막한 무덤으로 보였다. 나는 그 착각이 한없이 서러웠다.
그토록 많은 세월은 모두 흘러서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는지?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고, 나는 왜 여기서 이 옛 추억의 골목을 혼자 헤매고 있는 것일까?
이 허망한 내 가슴속을 그 어떤 말로도 나는 표현할 길이 없다. 가눌 수 없는 상실감과 허탈감으로 털퍼덕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오열을 나는 겨우겨우 억눌러 참았다. (300~301쪽, ‘당신 곁으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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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자야의 기억
1987년 발간된 백석 시전집을 1990년대 후반에 처음 읽었다. '백석 평전'을 읽으며 백석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자야'와의 사랑 이야기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야'가 쓴 책이 1995년에 이미 발간되었다는 것을 2019년에야 알았다. 쇄가 거듭하여 새로 찍어낸 책을 읽었다. 요약된 서사로 둘의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 사랑에 빠진 이의 내밀한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다. 함흥과 경성 청진동집에서의 둘의 에피소드는, 일제 당시 풍경을 덧입혀 상상하게 한다. '자야'의 기억에 따른 이야기가 '내 사랑 백석'이라면, '백석'의 기억에 남은 '자야'와의 사랑 이야기는 어땠을지 자뭇 궁금하다. '자야'가 백석의 대표작 몇 편에 대해 자신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부분은 흥미롭긴 하지만, 과연 그러한지 의심하게 한다. 물론 '자야'와의 사랑 이야기와 관련짓지 않더라도 시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만주에서 돌아온 후 북한에서 살다 죽었기에, 다른 시인들에 비해 재조명이 덜 된 것은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자야'의 눈에 비친 백석 시인의 소소한 면모들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백석이 사랑한 대상으로서의 기생 '자야'가 아니라, 인간 '김진향'의 삶을 좀 더 비중을 두어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불우한 어린 시절, 조선 권번에 들어가 가무를 익힌 기생, 김동환의 권유로 잡지 <신천지>에 수필로 등당한 이력, 일본 유학, 백석 시인과의 사랑, 중국 상해 여행, 만학도로 영문학 공부,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일부를 채록한 책을 펴낸 일, 법정에게 시가 천억 대의 부지를 시주한 일화 등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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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산좀비 2019-11-24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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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내 사랑 백석
백석의 시를 보고 북쪽나라의 겨울을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그의 사랑하는 여인 김자야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내 사랑 백석‘은 도서관에서 빌려두고도 계속 안 읽어지곤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 잘 읽혔다.
백석은 세상에 없고 그녀만 있는 시기에 쓰여진 책이라, 김자야 여사 입장에서만 쓰여진 글이어서 백석의 심중은 알 수 없는 게 아쉽지만, 그들이 살던 시대의 일면, 독립이 되기 전, 6.25 전쟁 후의 모습이 간단하게나마 엿볼 수 있었다.
북한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있던 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적었는데, 김자야 여사의 일기와 같은 이 책으로 백석에 대해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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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 2020-07-0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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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영 백석
할머니 어휴... 저 책 읽고 좀 아니다 싶어 백석 평전과 그 이상은 없다를 구매함 그 이상은 없다 라는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QTRR 2020-03-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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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은이)문학동네199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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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위한 변명 1부 운명내 나이 열여섯에 마누라! 마누라! 기생 진향 2부 당신의 '자야'당신만 아는 이름 '자야' '모던 보이'와 북관의 여인들 '바다'같은 사람 이별 연습 청진동 연가 나와 나타샤 삼우오(三羽烏) 사랑의 위기 방황 당신은 가고…… 짝 잃은 외기러기 3부 흐르는 세월 너머바람벽에 그려보는 얼굴 시인의 절규 꿈에 오신 당신 시 속에 당신 모습이 시전집 품에 안겨 여든살의 청년 당신 곁으로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 이동순 백석 시인 연보
책속에서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오면 어느 꿈에 뵈이리
내가 너무도 감탄 지탄하며 좋아했더니, 춘원선생도 이런 나의 심정을 읽으신 듯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같이 읽고 거듭 읽었다. 그 시조를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아니하고 가끔 외우는데, 그때마다 춘원선생의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하고 마음 한켠이 흐뭇해진다.
사람은 늙어서는 추억에 산다는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이제 늙고 보니 정말 그 말이 실감난다. 늙어서 심신은 쓸쓸해지고 자연히 옛일이나 생각할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있어야 꿈에도 보인다'는 춘원선생의 말은 시구 그대로 사실인 것 같다. -204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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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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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자야는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이 지어준 아호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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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당신이 지어준 자야(子夜)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우리 둘만이 알고, 오직 우리 둘만이 서로 통하는 나의 애칭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분은 오직 백석, 당신뿐이다.
1. 시집『사슴』(1936)의 시인 백석(白石), 그의 연인 김자야가 50여 년 만에 털어놓는 백석의 삶과 사랑
백석은 자야의 노래에 묻혀난다 자야는 백석의 시에 묻혀난다 황토색 짙은 서정으로 30년대 우리 시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시인 백석(白石:1912∼?). 베일 속에 싸인 그의 20대 시절을 회고한 김자야(金子夜:1916∼)여사의 회고록 『내사랑 백석』이 출간되었다. 백석시인과 자야 여사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백석 시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김자야야 여사가, 백석과의 러브 스토리를 애틋한 어조로 복원한 것이다. 현재 팔순 가까운 노구인 자야 여사는 백석시인의 영원한 연인으로서, 시인 백성의 꾸밈없는 인간적인 품성과 자상하고 섬세한 마음씨, 30년대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과 함게 반백년을 넘어서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야 여사의 백석 시인에 대한 긴긴 그리움을 물속처럼 투명하게 보여준다.
2.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백석의 삶 복원!
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시와 산문, 그리고 소설과 번역물을 남긴 백석은 애당초 소설가로 출발하여 시인으로 돌아선 당대 최고(最高) 시인이었다. 오랜 세월 국토분단이라는 수렁 속에 월북작가가 아니면서도 월북작가 이상으로 부당하게 취급되어 오다가 해금된 지 어언 8년, 이미 시중에는 『백석시선집』(1987)을 비롯하여 백석의 일댁를 종합적으로 추적 복원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994)이 간행되어 독자들이 자유롭게 백석의 시를 읽고 백석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sfur 가운데서도 미진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왜 만주로 갔는지, 멋쟁이였던 모던 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당신,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이는 누구인지, 어떤 친구가 있었는지, 함흥 영생고보는 왜 그만두게게 되었는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이 모든 궁금증은 그의 시를 연?는 데 귀중한 단서가 되는 것들인데 지금까지 상당 부분이 미스테리로 남아 있어서 뜻있는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같은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 될, 『내 사랑 백석』은 애틋한 러브 스토리로서 뿐만 아니라 백선 연구의 보조 텍스트로서의 그 의의는 각별하다.
3. 이 책이 집필되기까지 이 책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이동순 시인에 따르면(「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족적」), 원고 집필 경위는 한편의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1987년, 이동순 시인은 『백석시전집』을 펴낸 지 얼마 안 되어 연구실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발신자는 단정하고 기품있는 음성의 할머니이었는데, 자신은 "20대 초반, 어여쁘던 처녀 시절에 함경도 함흥에서 시인 백석과 처음 만나서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3년간 서울 청진동의 한 작은 집에서 혼례를 치르지 않은 부부로서 함께 산 적이 있노라."고 말했다. 대뜸 모든 내력을 알아차린 이 시인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곧 상경하여 그 할머니를 만난다. 자신을, 백석 시인이 지어준 아호 자야(子夜)로 불러달라고 말한 그 할머니는 백석 시인과 관련된 한많은 생애을 조용히,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녀가 구구절절이 쏟아놓는 지난 시절의 반작이는 사연들을 보면서, 그녀의 추억 속에 너무도 큰 부피로 깃들어 있는 백석 시인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며, 이동순 시인은 그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동시에 함흥 시절에 쓴 백석 시의 애틋함과 고뇌와 갈등 따위가 일시에 정돈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던 한 선배시인의 풍모와 채취를 새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에 나는 몹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버렸다." 그는 일차로 자야 여자가 굽이굽이 펼치는 백석 시인과 관련된 생애를 엮어서 『창작과 비평』(통권 59호)에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이 글이 발표된 이후에도 이동순 씨는 미진한 감과 함께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자야 여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 백석의 인간적인 풍모에 관한 기술이 생기를 얻지 못해 미흡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야 여사에게 틈틈이 백석의 3년 동안을 정리해보기를 강권하다시피 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야 여사는 이미 1930년대 중반 파인 김동환이 발간하던 잡지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한 바가 있었고, 한 때 기생의 신분이긴 했으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온 인텔리 여성에다가 1953년 만학으로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까지 졸업한 학구파였다. 자야 여사가 이 원고에 쏟아부은 고공력과 노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1992년 봄부터 이후 4년간이나 쉬지 않고 틈틈이 계속된 집필이었다. 그렇게하여 이동순씨는 200자 원고지 앞뒤에 종서로 빽빽하니 써내려간, 낭군 백석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원고를 받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자야 여사는 이미 팔순이 가까운 노구였다. 그녀는 이 글을 쓰면서 때때로 밤을 새우기가 여러 번, 심지어는 건강에 무리가 왔고, 이로 말미암아 두어 차례 입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 사랑 백석』은 그야말로 난산(難産)이었다.
4. 내용, 그리고 가치
26살 청년 시인 백석을 만났을 때, 자야 여사는 22살이었다. 그로부터 3년간이 사랑의 절정기였다. 그러다가 백석이 돌연 만주 신경으로 떠났고, 자야 여사는 짝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었다. 백석을 향한 순정을 온전히 간직한 채 어느덧 팔순의 눈앞에 둔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었다.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북녘 땅의 낭군을 그리는 이 팔순 소녀의 마음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 순수하고 맑다. 그러나 그녀의 순정은 단순한 순애보로 취급해버릴 수만 없는 애틋한 곡절이 있다. 자야 여사의 삶을 주(主)로 하면서 백석과의 살가운 애정행각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크게 새부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자야 여사의 성장기, 2부 백석과의 행복했던 3년, 3부 팔순에 가까운 현재의 자야 여사가 그것이다. 그리고 말미에는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가 덧붙여져 있다.
1)문학 기생진향 먼저 <1부 운명>에서는 자야 여사 자신의 성장기를 들려준다. 어린시절, 불우한 집안사정, 기생으로의 입문, 일본 유학, 귀국, 함흥에서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까지가 애절한 필치로 그려진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직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그녀의 집안은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되자, 1932년 당시 열여섯살의 나이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으로 입문했다. 기명은 진향(眞香)(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김진향이라고도 함). 그곳에서 조선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 문하에서의 여창가곡, 궁중무 등을 배운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삼천리』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기생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하면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차 서둘러 귀국한다. 하지만 면회가 안된다는 말을 듣고 근는 함흥땅에 주저 앉는다. 1936년 가을, 근는 궁리 끝에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기생복색을 입고 함흥 권번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오로지 은인이신 옥중의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생각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생이 되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갈 수 있고, 그러면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해관 선생은 만나지 못하고, 1936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 사이사이에 당시의 시대상황, 풍속, 일본 인상, 그리고 기생의 ?를 다룬 기생약전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기생 사회의 흥망성쇠, 일제하의 기생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기생약전은 왜곡된 인식에 근거한 우리네 기생상을 바로잡아준다. 비록 일제의 말살정책에 의해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기생은 바로 한국의 전통 궁중 가무의 개척자요, ?자였다고 그녀는 힘중 말한다. 주산월, 이난향, 김수정 등의 명인이 모두 기생이었다. 스승 하규일 선생의 일대기와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출간하기도 했던 그녀 역시 생존해 있는 가무의 명인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일제에 의해 기생 사회의 미풍양속이 깡그리 압살되어버리기까지, 역사의 명암을 낱낱이 지켜본 그녀의 충정어린 외침은 곳곳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2) 백석과의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 <2부 당신의 자야>는 백석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의 슬픈 기록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백석이 지어준 아호 자야에 얽힌 이야기, 백석 제자의 회고를 통해 본 당시 영생고보 영어교사 시절 모던 보이 백석의 풍모, 청진동 시절, 백석의 세 번에 걸친 결혼, 자야 여사의 방황, 영생고보를 그만두게 된 경위, 백석의 세 친구들, 문단풍경, 만주 신경으로 떠나가는 백석, 백석의 시 속에 투영된 그들의 애절한 사연 등이 자야 여사의 고풍 스런 문투에 실려 감칠맛을 더한다. 백석 시 속의 자야 / 시인 백석의 면면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함흥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는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약관 26세인 백석은 일본유학을 다녀온 준재로, 그해 초 『사슴』이라는 시집을 발간한 신진 시인이었다. 한 번 당겨진 그들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함흥에서 서울 청진동으로, 다시 명륜동으로 두 사람은 거처를 옮겨가며 절절한 사랑을 나눈다. 사실 그들은 혼례만 안 치렀지 부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1938년 백석은 부모와의 불화, 봉건제도에의 염증 등으로하여 자야에게 함께 이 땅을 떠나 만주로 가자고 제의한다. 하지만 장는 갈등 끝에 서울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교직을 그만두고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 살림을 차린다. 그런 가운데 백석이 부모의 강권에 의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녀는 방황한다. 자신이 백석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장는 백석으로부터 떠나고자 결심한다. 그녀는 또다시 집을 옮겼고, 1939년 백석은 홀로 만주 신경으로 떠난다. 그러나 이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 스토리 차원을 뛰어넘는다. 독자들은 그들의 사랑과 고뇌와 갈등 따위를 통해, 백석 시에 관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분의 시작품 가운데는 꽃답고 영롱한 두 침자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청순한 순정과 격렬한 정열의 너그러운 미소가 변함없이 남아 있습니다."(「지은이 말」)는 자야 여사의 회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백석의 시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 흐르는 애틋한 정조의 실체는 바로 그들의 애정행각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백석의 자야를 그리는 마음은 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 「바다」에서,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같이 당신을 생각하고 싶구려"나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같은 구절에서의 당신, 「이렇게 외면하고」 중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흔 당신을 사랑한다"에서의 살틀하던 동무, 잠시 자야와 떨어져 지낸 백석의 자야를 향한 심정을 잘 보여주는 시「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중의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라든지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같은 구절에서 의문의 인명 나타샤 등등은 다름아닌 자야 여사를 두고 한 말이다. 또한 마지막 발표시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이런 구절,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에서도 아내는 자야 여사를, 아내와 살던 집은 그들이 동거했던 청진동집을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면하고」의 시구절 중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에서 넥타이는 자야 여사가 사준 넥타이를 말한다. 그리고 그는 억양이 짙은 평안도 말씨를 썼는데, 이러한 그의 말씨는 시집 「사슴」에 그대로 쓰이고 있어서, 자여 여사는 "이 시집을 읽으면 꼭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는 사실이라든지, 매사에 깔끔한 성격이었던 백석이 육류보다는 나물 반찬을 좋아했고, 심한 결벽증에,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반면, 일단 문학에 관한 화제애서만큼은 눈빛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한 자야 여사는 백기행(白夔行)이라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백석의 이름 외에 또하나의 이름을 제시한다. 한동안 시골에 가 있던 백석이 청진동으로 부쳐온 편지의 겉봉에는 늘 백기연(白基衍)으로 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의사이며 수필가인 정근양, 소설가 허준 등의 친구 이야기, 친구 허준을 시화한 시 「허준」에 얽힌 사연,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 관습"을 피해, 그가 만주 신경으로 옮겨간 이유하며, 함흥 영생고보를 그만두게 된 사연이 결국 자야 때문이었다는 것, 예컨대 조선축구학생연맹전 대표선수 인솔교사로 서울에 왔다가 학생들은 여관에 투숙시켜놓고 인솔교사인 그는 정작 청진동 자야 여사의 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일로 학교가 발칵 뒤집혔고, 그는 그해 여름방학을 때맞춰 사직하고 자야가 사는 서울로 옮겨왔다는 등의 진술 역시 흥미를 더한다. 자야(自夜)는 당시선집(唐詩選集)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보고 당시 백석이 그녀에게 지어준 아호.
3) 팔순 소녀의 애절한 순정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는 백석의 시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젊은 시절과 지금 생사조차 알길 없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자야 여사의 애틋한 정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여든살의 청년 백석을 꿈꾼 이야기, 백석의 시를 통해 백석을 그려보는 그녀으 살들한 그리움, 백석은 월북 시인이 아니라 재북시인이라는 것, 제 손으로 백석의 시선집을 펴내겠다는 신념으로 동분서주했다가 뜻밖에도 한 후배 시인에 의해 발간된 『백석시전집』을 가슴에 안고 느꼈던 감격, 그리고 백석의 고희를 맞아 쓴 그녀의 편지는 이제 팔순에 가까운 골?이지만 아직도 영롱한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의 순정을 보여준다. 5.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그리고 백석 연구의 보조자료 한 인간에게 있어서 지난 시절의 추억을 다시금 돌이켜 되새기는 일이란 얼마나 가슴 쓰리고도 아름다운 일인가. 백석의 영원한 연인 자야 여사가 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가 복원한 이 회고록은 자야 여사와 백석 시인과의 살가운 러브 스토리도 자못 흥미롭지만, 자신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이야기도 우리 가슴을 진한 감동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백석 시인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그녀의 관찬을,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의 인간적인 면모와 시 속에 깃든 그들의 사랑을 통해 백석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비밀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이 책은 백석의 시 연구에 필요한 보조자료로서으도 그 가치는 만만찮다. 노년의 시간이 한가롭고 무료해서 그 옛날 정다웠던 백석의 시를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자야 여사, 백석의 시는 자신의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책을 내는 것이 일생일대의 큰 기쁨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자야 여사 자신만의 기쁨이겠는가. 이 책의 출간은 시인 백석과 백석 시에 대한 새로운 연구 자료를 얻게 된 우리 모두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동순 시인은 "자야 여사의 문체는 1930년대식 어법과 문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당시의 진기한 어휘나 고전적 문투 등의 이채로운 언어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며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를 짚어준다. 접기
한겨울 눈 덮인 길상사에 다녀와서 읽었다. 이 고요하고 커다란 절을 시주한 사람의 인생이 궁금했다. 백석을 평생 사랑한 사람이었다. 백석을 평생 못 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석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GoldSoul 2013-04-2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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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로맨티스트, 시인 백석을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자야여사님의 애닯은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네요
kjyoons@hanmail.net 2014-03-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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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닭살스럽고 아름다운 사랑...
정말 닭살 커플이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의 사랑 이야기는 30년대 사회상도 읽을 수 있고,
당시의 신식 사랑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야 여사의 옛날식 말투는 너무나도 재미지다.
멋쟁이 백석 시인의 깍아지른 얼굴과,
시인의 더도 덜도 없는 정삼각형같은 시들의 뒤에는,
자야 여사와의 뽀송뽀송하다 못해 영원히 신혼같은 풋풋한 내음의 사랑이 쉬고 있었다.
백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애절한 노스탤지어(향수)와,
막막한 절망감의 이면에 너무도 알려진 바가 없어 그 절절함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백석의 시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보인다.
자야 여사의 글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순애보,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 언어가 지나치게 통속적인 것 같다.
역시 시의 뒤안길엔 눈물의 순애보가 가득하다.
3년 여에 얽은 사랑과 이별의 눈물이 이 책에 넘쳐 흐른다.
이제 백석의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를 품을 법하다.
자야 여사의 북관 체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적어 둔다.
처음 딸아이를 낳으니 '얼라'라고 합데.
크니 '체네'라고 하지 않슴메?
시집가니 '집난이'라고 하지비.
얼라를 낳으니 날더러 '아어미'라고 합데.
이렇게 늙으니 '아마이'라고 하지 않습메?
이 모습을 보고 웃자, "무스거 그리 웃붐메?"했다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북관의 아낙네.
- 접기
글샘 2006-03-30 공감(19)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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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와 백석의 사랑, 그리고 백석의 시
1942년. 시인 백석은 혼자였다.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전에는 측량보조원, 측량서기를 비롯해서 소작인 생활을 하기도 했단다. 일본의 뛰어난 시인 노리다께 가스오는 시인 백석에게 매료되어 있었던가 보다. 그를 찾아 만주의 안동까지 가서 만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 후 그를 추억하며 쓴 시가 「파[葱]」라는 시다.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
벌써 스무 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벗, 백석이여,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십시오.
백이라는 성과 석이라는 이름의 조선의 시인.
― 노리다께 가스오, 「파[葱]」,『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사회, 1997.
만주에를 찾아가서 만난 백석은 부엌에서 파를 들고 있었던가보다. “有朋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 했으니, 술 한 잔 기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손수 부엌에서 술안주를 준비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순수한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20년이 지난 후에 시인 백석을 그리워하는, 국경을 넘어선 두 시인의 우정은 기릴 만하다. 이렇게 친구가 다녀간 후 1943년에 그에게 준 시 한편이 있다.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나 취했노라 ― 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준 시에서 백석은 쓸쓸하니 푸념을 늘어놓는다. 백석의 시 중에서는 이 시를 제외하고는 이런 유(類)의 시를 볼 수가 없다. 절친한 친구였기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한다. 취할 수밖에 없는 백석. 그는 무엇 때문에 취했던 것일까? 술에 취하고 슬픔에 취하고, 그 인생 허무함에 취하고, 우리의 시인 백석은 그렇게 취해갔다.
백석은 1935년 시「정주성」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6년에는 시집『사슴』을 200부 한정 발간하면서 당시 문단에 충격을 준다. 뛰어난 언어감각, 향토성 짙은 방언으로 시 속에 신화적, 동화적 세계를 펼쳐 놓으면서도,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김기림,「『사슴』을 안고」, 『조선일보』, 1936.1.29; 『내 사랑 백석』에서 재인용)다. 그 『사슴』시편들도 걸작이지만, 오늘날 백석의 절창으로는 북관에서의 시편들이나, 이후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과 같은 “떠돎 과정에서 생산된 이른바 북방 시편들”(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마음산책, 2006.)이 꼽힌다. 『사슴』과 그 이후의 북방 시편들과는 어떤 시적 변화가 있음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왜 백석은 떠돌며 그런 “외롭고 높고 쓸쓸한”(「흰 바람벽이 있어」) 시편들을 써내게 되었을까? 우리로서는 뛰어난 시편들을 가질 수 있었던 더없이 행복한 것일지 모르지만, 백석 시인 자신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었다. 그 키워드를 이 책 『내 사랑 백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야(子夜) 여사. 1936년 스물다섯의 백석은 다니던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그는 일찍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었다. 이때의 백석의 제자들은 그를 멋쟁이 서울 신사로 기억한다. 선생 백석은 선생으로서도 학생을 위하는 좋은 선생이었던가 보다. 무엇보다 함흥에서의 생활은 백석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순간이다. 그것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자야 여사를 그곳, 함흥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자야 여사는 백석이 붙여 준 아호다. 스승 금하선생으로부터 받은 예명은 김진향으로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릴 적 부친을 여의고 홀어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이후 그녀는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한다. 자야 여사의 일생도 그리 수월치 못한 운명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운명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예술적 혼은 기생이 됨으로써 꽃 피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기생이 되어 백석과 만나게 됨으로써 백석의 시적 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으니, 그의 기생됨은 불운한 가족사의 곡절이었으나, 우리에겐 또 다른 행운을 준 일대 사건은 아닐까?
백석과 자야 여사의 첫 만남은 참 흥미롭다. 자야 여사는 주위의 도움으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게 되는데, 귀국 후 스승이 투옥되어 있는 함흥엘 찾아가게 된다. 함흥에 있게 되면서 그곳의 권번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을 때에, 백석은 근무하던 영생고보의 어느 송별회 자리에 참석했다가 자야 여사를 만나게 된다. 자야 여사가 추억하는 첫 만남의 장면은 이렇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말이 나의 귀를 놀라게 하고, 또 의심케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가물가물해지면서 바닥 모를 늪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술기운이 더해감에 따라 당신은 나의 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 마누라! 마누라!
진작부터 자주 불러와서 익숙해진 듯한 말투로 당신은 무슨 애원이라도 하듯 자꾸만 보챘다.”
정말이지 닭살 돋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이에 두고 하는 말일테다. 그런데 그 당시 이렇게 첫 만남에서부터 덥석 “오늘부터 내 마누라야”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야 서슴없이 좋다 싫다 하지만, 그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어쩌면 70년 전의 백석은 오늘날 신세대만큼이나 신세대적 연애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석이 멋있어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진으로 전하는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더라도 꾸밈없고 순수해 보이며, 곱고 흰 피부가 오늘날의 꽃미남에 비견될 정도다. 이런 백석에게 자야가 그날부터 ‘마누라’가 된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으리라.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 없이)
우리에게 이 시는 잘 알려져 있는 백석의 시 중 하나다. 백석과 자야 여사의 사랑은 오늘날에도 이루기 쉬운 사랑은 아닐 것이다. 당시로서는 촉망받는 엘리트 백석과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기생과의 사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회가 그들의 사랑을 축복할 리는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랑은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남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은 자야와의 사랑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안의 강제로 3번이나 혼인을 하기도 한 백석은 매번 첫날밤 신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다음날로 자야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의 편견과 인습은 제도는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을 버리고 둘 만이 오붓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공간으로 떠나고자 한다. 여기서 ‘나타샤’는 분명 자야 여사를 염두에 둔 것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골 눈은 하얗게 내리고,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우는 장면의 어떤 환상처럼 여겨진다. 환상은 현실과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시 속에서 나타샤와의 사랑이 아름답게, 그리고 간절하게 그려질수록, 현실에서의 자야 여사와의 사랑은 힘겨워 지기만 한다.
자야 여사는 몇 번의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별’을 말하기에 백석은 너무나 순전한 사랑을 소유한 시인이었다. 세상의 강제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을 지속하고자 했던 시인 백석은 자야 여사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야 여사도 백석을 사랑하지만은 자신을 택하기에는 백석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염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백석 몰래 짐을 싸 도망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백석은 자야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몇 번의 이별은 ‘연습’이었던 것일까? 결국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헤어짐을 길을 가게 된다.
집안의 강제에 의해 세 번 씩이나 결혼을 하게 된 백석은 그때마다 자야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야 여사 또한 백석의 혼인이 마냥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백석은 더는 견딜 수 없어, 만주의 신경으로 갈 작정을 하고 자야 여사에게 같이 갈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자야 여사는 그런 백석을 따라 나설 수 없었다. 왜일까?
“당신이 만주로 혼자 떠나시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순전히 뛰어넘을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인 관습 때문이었다.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아주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부모님의 강권으로 억지 장가를 몇 번씩이나 들고, 또 그 때문에 집을 뛰쳐나와서 정신적 번민도 무수히 겪었다. 게다가 그 동안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자야마저 한 달 동안이나 온다간다는 말이 없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에 당신은 몹시 큰 충격을 받았던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훌쩍 떠나버리자는 백석을 따라나서기에는 백석이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다.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 몇 번이나 혼인을 치렀던 백석은 효자였다. 그러나 부모를 버리고 떠나버린다는 것은 백석을 불효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유학까지 다녀와 엘리트로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뛰어난 문인으로서도 유명한 그를 따라나서는 것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백석을 떼어 놓는 것을 의미했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자야 여사를 백석을 사랑하기에 백석에게 그것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함께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백석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 남아서 끝끝내 백석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백석은 묵묵히 떠나고 만다.
백석이 떠나고 자야 여사는 수없이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런 백석의 떠낢이 우리에게 백석의 명편들을 남기게 해 주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이 자야를 떠났지만, 백석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자야 여사와의 추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백석은 그런 추억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고 외로운 심사는 다양한 시편들에서 그 시들을 절창이 되게 한다. 어쩌면 이런 백석의 가슴 아픈 이별이 백석이라는 천재 시인이 꽃피기 위한 통과의례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백석의 시편들을 읽을 때에 자야 여사를 떠올리는 것은 그의 시를 더욱 가슴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열쇠가 되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자야 여사의 백석에 대해 추억하며 눈물로 써내려간 이 책 『내 사랑 백석』은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조각달이 서울을 희미히 비추고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섧게 울립니다.
가을바람인들 어찌 무심히 듣겠어요?
다 그리움을 돕는 것뿐입니다.
어느 날에나 오랑캐 무찌르고
임은 옥관에서 돌아올지요.
― 이백, 「子夜吳歌 三」(이원섭 역해, 「자야오가 3―다듬이질」, 『이백시선』, 현암사, 2006.)
서점에 들렀다가 『자야오가』라는 당시선집을 샀는데, 그걸 본 백석이 대뜸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주어 그때부터 자야 여사로 불리게 된 것인데, 위의 시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연작 중에 그 세 번째 수다. 오(吳)나라의 여인들을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멀리 전쟁터로 보내고 남편이 무사 귀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옷을 지어 남편이 있는 전쟁터로 보내겠다는 아내의 마음은 백석을 떠나보내고 못내 그리워하는 자야 여사의 심정과도 통하는 점이 있다. 백석이 붙여 준 이름 ‘자야’는 어쩌면 그들의 사랑의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참(詩讖)이라는 말이 새삼 되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3년간의 자야 여사와의 사랑은 시인 백석의 자상함과 순수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무성영화일 듯한 <클레오파트라>를 보러 가지는 자야 여사의 친구의 말에 자야 여사를 보며 “클레오파트라, 여기 있지 않소?” 했다는 백석은 정말이지 끔찍이도 자야 여사를 사랑했던가 보다. 그런가 하면 시인답게 시집을 펼쳐 맑은 목소리로 읽어 주던 장면을 자야 여사는 추억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런 사랑은 참으로 낭만적이며 열정적이었다. 그런 낭만과 열정은 새삼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 책 『내 사랑 백석』을 읽으면서 백석과 자야 여사와의 순전한 사랑에 깊이 감동하는 한편으로, 이 이야기가 참으로 낭만적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인 백석의 생애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지만(재북(在北) 시인이란 탓에 그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백석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이런 소중한 자료를 토대로 그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한 편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의 삶과 소설이 영화화 된 것이 있지만, 백석의 이런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가 되기에 충분하리라고 본다. 이런 작업들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소중한 시인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귀한 역할을 담당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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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06-07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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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내 사랑 백석』은 자야 여사가 기생 신분으로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백석을 추억하며 써내려간 에세이다.
자야가 백석을 만난 것은 백석이 스물 다섯, 자야 여사가 스물 하나. (1936년)
잠시동안일 줄 알았으나 영원이 되고 만 이별을 한 것은 백석이 스물 여덟, 자야 여사 스물 넷. (1939년)
그리고 두어 차례 입원의 위기를 넘기며 4년여에 걸쳐 틈틈이 그녀가 직접 작성한 원고가『내 사랑 백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것이 자야 여사 나이 팔순 때 일이다. (1995년)
마치 어제 일처럼 소상하게 백석을 추억하는 그녀의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려 6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거짓말 같다. 그러니 자야 여사가 펼쳐놓는 백석 시인과의 사랑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할만 하다. 실제로 두 사람의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로맨스를 좇다보면 '참으로 낭만적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가 그러하다.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유학을 후원한 해관 신윤복 선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자야 여사는 해관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귀국, 무작정 해관 선생이 투옥된 감옥이 있는 함흥으로 향한다. 마침 함흥의 영생고보에는 서울의 조선일보사를 그만 둔 백석이 영어 교사로 부임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흥에서 우연히 만난다. '자야'는 함흥 시절 백석이 직접 지어준 아호.
백석은 굳이 구분하자면 재북작가로 불려야 마땅하지만 해방 직후의 경직되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 여타 월북작가들과 함께 오랫동안 남한 사회에서 이름을 들을 수 없는 문인이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해금되어 뒤늦게 그와 그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되었으니 늦었지만 참 다행한 일이다.
당시 경성에서도 손꼽히는 잘생긴 모던보이 시인이었던 백석은 남아 있는 흑백사진만으로도 굉장히 세련되고 멋진 인물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기껏해야 3년 남짓한 짧은 인연이지만 자야 여사와 사랑에 빠진 그는 참으로 낭만적이고 귀엽기까지 하다.
주위에 사랑에 빠진 친구가 있어본 사람은 다 안다. 그들이 질리는 줄도 모르고 끝도 없이 하고 또 하는 사랑 얘기가 얼마나 유치한지. 자야 여사와 백석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부럽기는 마찬가지다. 기어이 부러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집안의 명령으로 세 번 결혼하였으나 세 번 모두 자야 여사에게로 도망쳐 오는 백석. 신분과 시대의 한계를 실감하며 툭하면 백석에게서 달아나 숨는 자야. 그러면 또 귀신같이 그녀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내는 백석.
한 번은 또 다시 달아나 숨은 자야를 찾아낸 백석이 그녀에게 詩 한 편을 던져주고 가는데 그 詩가 바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비록 자야 여사가 확신하는 것처럼 詩 속의 나타샤가 자야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는 백석 본인만 알겠지만 그러나 나 역시 나타샤가 자야 여사일 거라고 믿고 싶은 것은 그만큼 자야 여사가 추억하는 그들의 사랑이 예쁜 탓이다.
『내 사랑 백석』은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으로 기생이 되지 않았더라면 훌륭한 문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자야 여사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당대의 멋쟁이 모던보이 문학청년과 나누는 예쁜 사랑 얘기 외에도 자야 여사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20세기 초 우리나라 근대의 풍속을 엿보는 재미가 제법 실하다. 또한 책 중간 중간 그리고 책의 말미에 백석의 詩가 실려 있어 백석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의 시를 알리고자 하는 자야 여사의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시인과 시집에 수여하는 백석문학상은 자야 여사가 백석을 기리기 위해 사재를 들여 제정했다.
물론 이들에겐 아직 남아 있는 얘기들이 더 많지만 그러나 자야 여사의 백석으로만 기억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장국영, 매염방 주연의 영화<인지구>는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사랑에 빠진 부잣집 도련님과 기생 여화는 현세에선 그들의 사랑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알고 내세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음독으로 동반자살한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세에서 도련님을 기다리던 여화는 도련님이 오지 않자 인간 세상으로 왔다가 사실은 도련님이 살아 남았으며 뿐만 아니라 칠순의 초라한 노구를 이끌고 지금껏 목숨을 연명해 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인연은 미완인 채로 끝나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 피천득 시인이「인연」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아니 만났으면 더 좋았을 '세번째 만남'도 있는 것이다.
백석을 따라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평생을 연인을 그리워하면서 혼자 살았던 자야 여사. 비록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만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그녀는 한편으로는 행복한 사람이다.
* 다음은 백석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에피소드
- 당시 말 한 필이 오원 이었는데 백석의 시집「사슴」이 이원 하였다 한다. 100부 한정 판매를 하였는데 시인 윤동주는 이 책의 필사본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한다. 백석의 시「흰 바람벽이 있어」와 동주의 시「별 헤는 밤」을 살펴보면 동주가 백석을 얼마나 좋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그리고 흰 당나귀는 백석과 동주 모두 좋아하는 이미지 인데 프란시스 잠이 좋아하는 이미지라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조사의 차이가 주는 감상이 이렇게나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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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3-06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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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에 들어갔던 1,000억 상당의 대원각(당시는 요리집으로 개조)을 법정스님을 통해
기증하여 길상사로 바꾸게 한 김명한 할머니가 시인 백석과 한 때 청진동에서 함께 살며(동거라는 단어를 피하고 싶다)
사랑을 나누었던 김자야 여사이자 이 책의 저자이다. 그녀는 또한 나머지 현금을 백석 문학상 제정에 도움이 되고자
기부하여 실제 문학상의 설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팔순이 되어서도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절절이 끓는 가슴을 부여잡고 애달파 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첫눈 오는날 유골을 길상사의 마당에 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그렇게나 평범함 속으로 녹아들기를 바랐던 사랑의 결실을 꿈꾸며 떠난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만나 보낸 3년 여의 시간은 아름다웠고, 신분의 차를 둘러싼 봉건주의의
한계로 서글펐다. 청진동에서 둘이 보낸 시간들에 대한 회상은 노인이 노인으로 태어났을 것이라는 그 젊은이들의 무지렁이 같은 오해를 한숨에 씻어내고도 남을만치 영롱하고 아름답고 상쾌한 사랑들이다.
이후 그녀가 죽는 그 날까지 이 사랑은 그녀가 회상하는 과거의 시간들의 갈피짬마다 속수무책으로 스며들어 그녀 인생 전체를
관통한다. 과거회상밖에 할 도리가 없다는 그 주어져 넘쳐 버리는 시간들 속을 뚫고 들어오는 기억들은 거기에서 정지하여
수만번 다시 쓰이고 또 다시 쓰여 새로운 결말로 다시 태어나려 몸부림친다. 그녀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백석이 만주 신경으로 떠나던 날 끝내 따라가지 않은 자신의 결정과 그가 쉽게 찾지 못할 거처를 따라 이리저리 헤매인 그 무용의 노력을.
하지만 자야 여사가 죽는 날까지 백석을 그리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덕택이 아닌가 싶다.
진부한 설명이지만 완결되지 못하고 묶여서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 부려놓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기억 속에서
절대적 아름다움의 권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랑이 가족이라는 성과물로 치환되고 노년 서로 등을 긁어주는
안온함으로 변모되었을 때도 우리는 사랑 그 하나로 하루를 온전히 채우며 감정의 후달림에 전율할 수 있을까?
설명되지 않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된다. 개개인에게.
손 한 번 제대로 흔들지 못하고 떠나 보낸 그 아이는 영원히 첫사랑의 눈동자가 되어 나를 흔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순한 사랑의 결정체라고 미화하고 또 기만해도 그건 나의 삶을 그럴 듯한 것으로
격상시키고 싶은 치기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백석시인과 자야 할머니의 사랑은 하나의 화석이 되어 문학사에
스며들어 많은 사람을 흔드는 질료가 되어 버렸다. 이루어졌다면 못들을 얘기들이다.
사랑을 회상하며 떠나가는 사람의 얘기를 백석의 시전집을 간행한 이동순 시인이 다듬고 엮었다.
자야 여사의 삶처럼 처연하면서도 값어치 있는 아름다운 사연들이다.
오버코트 속에 작달만한 그녀를 쏘옥 넣고 마구 줄달음 치는 백석을 상상하며 그들의 웃음소리가 가르는 찬 공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주변 자체가 청명한 차가움으로 상쾌해진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얘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싫증나지 않는 낭만적인 유희이다.
눈이 오는 날 가까운 길상사에 가서 자야 할머니의 흔적들을 도닥거려 주고 싶다.
영롱하지만 가냘펐던 그 사랑과 곡절이 많았지만 사회적 기여로 승화 확대된 삶의 결말이 꽁꽁 얼어 있는 그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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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2-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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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억은 그의 시 한줄보다 못하다.
오늘따라 날씨가 흐리다.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좋을 날씨에 책한 권을 집어들었다. '내 사랑 백석'
프로필을 보니 엣된 얼굴의 아주 오랫됨직한 사진 아래 '김자야'라고 쓰여있다. 자야, 참 특이한 이름이로구나.
백석 시에 대한 읽기 쉬운 평인줄 알고 구입한 책은 막상 들고보니, 백석과 자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다. 커피를 타 놓고 단숨에 읽다보니 백석이라는 남자의 다정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점점 빠져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사랑하던 기생 자야가 그와 결혼할 수 없음을 비관하고 홀로 서울로 도망쳤을때 , 몇달을 헤매 찾아낸 그녀에게 백석이 주었던 시라고 한다.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푹푹 내리고.. 흰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골로 가서 사랑하며 살자는 그의 달콤하고 포근한 시는 이렇게 아름답고 애절한 그들 사랑에서 태어난 것이다. 누군들 그런 말을 듣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쓸쓸하고 아름다운 시인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고 말하면 그 어떤 여자라도 말이다.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흰 당나귀를 타고 펑펑 눈을 맞으며 그의 나타샤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들의 아기자기한 사랑과 함께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이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화신백화점이며, 지식인들이 모이는 분위기 좋은 오뎅집, 커피숍, 나라 잃은 젊은이들의 슬픔,급하게 변하는 세상과 따라가지 못하는 관습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이들... 내가 상상했던 1930년대는 그저 우울한 잿빛 화폭인데 자야여사의 기억속의 그 때는 어려움 속에서도 뜨거운 사랑과 우정이 있던 때였다.
백석의 집에서 자야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그에게 원치 않는 결혼을 요구하여, 그들의 사랑은 결국 파국을 맞는다. 괴로워하던 백석은 자야에게 중국으로 떠나자고 하지만 그녀는 따라가지 않고 그런 결정을 그녀는 평생 후회한다. 그렇게 떠나는 것이 마지막일 줄 몰랐다는 그녀의 말이 안타깝다. 전쟁이 나고 더 이상 갈 수 없이 남북으로 갈라져 남은 평생을 짧은 사랑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그녀를 보니 나도 갑자기 서러워진다. 왜 그를 따라가지 않았냐고, 왜 그녀를 한번 더 붙잡지 않았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들 아름다운 사랑이 애절하게 끝나느 게 너무 아쉬웠다.
그녀는 대원각이라는 유명 요정을 운영하며 거부가 되었지만 법정스님께 기부하여 길상사라는 절이 되어 있다. 천억이 넘는 재산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그의 시 한줄보다 못하다고 했다지. 멋있다. 그들에게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사랑도 돈으로 매겨지는 요즘,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눈이 온다. 저기 아름다운 나타샤가 가난하고 쓸쓸했던 시인과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지나간다.눈이 펑펑오고 흰 당나귀가 좋다고 응앙응앙 운다. 나타샤가 부럽다.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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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2012-03-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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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선생님 덕분에 위로를 받다
나는 공부하는 게 좋아서 교사가 되었다. 그런데 교사는 공부만 좋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아는 것을 좋아하는 것보단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못 외운다. 일부러 외워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외어진다. 학생 이름을 못 외우는 나를 두고 학생들은 질책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졸업생이 수능원서 신청하러 모교에 왔다가 날 찾아와 자기 이름을 모른다고 서운해 한다ㅠ.ㅠ) 그때마다 멍청해서 그러지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변명한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였던 시인 백석은 그렇게 학생들의 이름을 잘 외웠다는데....
“백선생님은 출석부를 옆에 낀 채, 맨 앞줄의 학생부터 차례차례로 50여 명의 학생을 모조리 얼굴만 보며 이름을 불러가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선생님이 부르시는 이름들이 단 하나도 착오가 없이 정확한 호명을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꼭 무엇에 홀린 듯 어리둥절하였다. 선생님의 그 모습은 당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신기라 할 만한 것이었다. 나이 많은 선생님들은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시거나, 부른다 해도 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새로 부임해온 젊은 선생님이 불과 사흘 만에 우리반 학생들의 이름을 모조리 다 외우시다니. 우리는 그날부터 백선생님의 비상한 기억력에 완전히 포로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선생님은 학생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서 명렬표를 갖다놓고서 열심히 외우셨을 것이다. 이것은 교사로서의 그분의 성실한 자세를 말해준다.” - 「내 고보 시절의 은사 백석 선생」 中
그러나 백석 때문에 잃어버린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도로 백석에게서 되찾았다. 26살 백석은 22살 자야에게 홀딱 반해서 학생들 인솔 중에 자야를 만나러 다니다가 급기야....
선생님은 밤에는 다른 곳에서 주무시고, 아침에 오셨다가 시합만 끝나면 아니 계셨다는 이야기까지 실토하고 말았다. 단속교사들은 이 사실을 함흥의 영생보고로 통했다. 영생보고는 미션계열로서 근무수칙이나 학칙이 대단히 엄격했던지라 별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학교의 이사장은 시인이자 촉망받는 영문학도로서의 당신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당신은 바로 같은 영생 계열의 여자고보로 전근발령이 떨어졌다. 당신은 이 결정을 순순히 접수하고 새로운 근무지로 갔다. 그러나 한번 마음이 떠나버렸고, 또 여학생들을 가르치기가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어서 여름방학이 되면 사표를 내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 김자야 「내 사랑 백석」 中
백석뿐만이 아니다. 시인 김수영도 내겐 참 고마운 분이다. 서울대 영어교수였던 그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수업을 일찍 끝내 버린다. 백석이나 김수영이나 모두 사랑을 위해 학생을 포기해 버린 선생님이다. 거기에 비해 수업은 열심히 하되 학생 이름 잘 모르는 건 용서 받지 않을까? **아 용서해줘ㅋㅋ
그러던 어느 날 종로4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전차를 탔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수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수영은 당시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수영은 나를 보더니 수업을 반만 하고 곧 돌아올 테니 벤치에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 마침내 수업을 일찍 끝내고 온 수영이 내 옆에 앉았다.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어색했다기보단 개화 직전의 꽃망울 속 같은 두근거림이 가득한 침묵이었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수영은 “My soul is dark”하고 신음 같은 말을 토해냈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수영의 프로포즈였던 것이다. - 김현경 「김수영의 연인」 中
<밑줄>
나는 함흥 영생고보의 한 영어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날은 내가 함흥 권번에 소속이 되어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함흥관으로 나갔던 바로 첫날이었다. 영생고보의 어느 교사가 이임하는 송별회의 자리인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子夜)라고 합시다
서울에 갔더니 고향 평안도 정주에서 큰아버님 내외분도 오시고, 집안 식구들이 다들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갑자기 색시 선을 보라고 우격다짐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맞선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강제로 장가를 들게 되었는데
그 무렵 당신은 세 번째로 장가를 들고 왔었고, 내 마음은 한바탕 풍파를 겪은 듯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삼세 번이나 장가를 들었으니 무슨 아이들의 장난이기라도 한 것인가? 거의 넌센스에 가까웠다. 물론 자의가 아니었음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신은 그만 혼자서 쓸쓸히 만주의 신경으로 아주 떠나버렸다. 그때 보았던 당신의 초췌한 뒷모습이 내가 보았던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자 우리 둘 사이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일본의 문인들을 화제로 떠올리긴 했지만, 당신은 일본말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일찍이 일본유학도 다녀왔으니 일본말도 썩 잘했을 것이나, 당신은 일본말을 써야 할 때 거기에 대신 바꿔넣을 수 있는 우리말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통 담화 때는 주로 표준말을 썼지만 당신의 억양은 짙은 평안도 말씨였다. 무슨 일로 기분이 상했거나 고향 친구들과 담소를 나눌 때 당신은 야릇한 고향 사투리를 일부러 강하게 쓰는 습관이 있었다.
예컨대 천정을 ‘턴덩’으로, 정거장을 ‘덩거당’으로 정주를 ‘덩두’, 질겁을 ‘디겁’, 아랫목을 구태어 ‘아르궂’ 따위로 쓰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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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 2019-09-0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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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여사의 애틋한 고백, <내 사랑 백석>
당신은 나에게, "영국의 어느 유명한 인사는 자기 부인을 옆에 앉혀놓고서야 명강의를 했다는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서 독서를 할 때 마음이 편안해져. 이젠 그게 습관이 된 것 같아." 하며 그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p, 196
내 사랑 백석작가김영한출판문학동네발매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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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봤던 백석 시인의 시, 시를 잘 모르시는 분이더라도 '여승'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백석 시인의 시를 기억하실거에요.
저는 과제를 하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백석 시인을 사랑했던 '자야 여사'가 써내려간 에세이입니다. 기생 신분이었던 자야 여사와 교사였던 백석 시인은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장면이 없었습니다. 자야 여사도 문학 공부를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이 책에 쓰인 문체가 청초했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는 내 삶의 은인이신 해관선생을 만나기 위해 타관 객지에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처지였고, 당신 역시 서울에서 그 바람 센 함흥땅으로 부임해와 있는 멋쟁이 시인총각이었다.
어쩌다 우리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그렇게도 어이없이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단 한번 부딪힌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 p, 40-41
자야 여사는 이 책을 '내 나이 열여섯에'라는 목차로 시작해 '당신 곁으로'라는 목차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녀의 60여년의 삶이 그려져 있는 이 책엔 사실, 그녀가 백석 시인과 함께 했던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대부분이고 그 이후의 삶도 백석 시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가 함께 한 건 겨우 3년 남짓한 시간이었고, 그 이후 60년 정도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그리워만 하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인 백석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소중한 러브스토리를 책으로 펴낸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거에요.
이 둘의 사랑엔 안타깝게도 장애물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이 둘은 1930년대의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이라는 시대적인 피해를 크게 입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야 여사가 기생이 되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기생이었기 때문에 백석 시인과 혼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봉건적인 부모님 때문에 세 번이나 장가를 들어야 했던 백석 시인을 보며 자야 여사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생각하니 제 마음도 좋지 않았어요.
이 책을 통해 본 백석 시인은 아주 매력적인 남자입니다. 실제로 굉장히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시인이어서 그런지 여자의 마음이 설렐만한 말과 행동을 많이 보였어요.
사진관에 진열되어 있는 여자 사진을 외면하며 "나는 당신 말고 다른 여자는 아예 눈도 주기 싫어!" 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자야오가』라는 책을 보고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라고 합시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설렜네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였답니다.^^
어느덧 팔순이 가까운 내가 만상이 고요히 잠든 깊은 야심경에 혼자 등불을 밝혀놓고
당신과의 애틋했던 기억의 사금파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동안 줄곧 이 글을 써내려왔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올 양이면 나의 두 볼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적시어지고, 급기야 눈물은 원고지 위로 뚝뚝 떨어진다.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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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 2013-06-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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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오늘 봉사활동가서.....
자투리 시간에 그동안 읽고 싶었는데 근처 도서관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책을 읽었습니다.
백석 시인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는데요... 그분의 연인! 김자야(김진향)선생님께서 쓰신 책이예요.
내 사랑 백석.
시인 백석님의 시인으로서의 얘기보다..
백석 선생님 26세. 김자야선생님 22세에 만나 3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정적으로 사랑하신 이야기랍니다.
우리 모두 스무살 초반에 겪었을 만한 열정적인 풋사랑이 생각나기도 하고
시대를 잘못 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같기도 했습니다.
슬픈 소설같은 이 사랑이 실화라는 것이.
시가 천억대의 대원각부지와 건물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시면서 그 터에 절을 세워달라 하셨던 김자야선생님.
그 절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길상사랍니다.
천억대의 재산이 아깝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재산은 백석시인의 시 한줄 값어치도 안 된다 하셨던 분.
책을 덮고 그분들의 인생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두분도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나신게.. 참 한스러우셨을것 같아요.
격변의 시대에 인생을 빼앗겼던 그 시절 그분들.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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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나무 2015-05-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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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내 사랑 백석
알라딘가정/여행/좋은부모MD조현정 2009-06-2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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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살던 한 소녀가 가난을 벗어나 효도도 하고 공부도 하려고 김수정의 도움으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에게 여창 가곡, 궁중무 등을 지도 받아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하였다. 조선어학회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 감옥으로 면회를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서러히 돌아와 그 곳에 머문다. 당시 함흥에 있는 영생고보 영어 교사로 있던 청년 시인 백석이 그녀를 보고 첫 눈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하고 이내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당시 기생은 결혼을 할 수 없기에 혼인은 하지 않고 서울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려 3년간 달콤한 부부생활을 한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과 가족의 결혼 독촉에 세 번이나 결혼을 하게 되며 그런 일로 둘은 심각한 고뇌에 빠진다. 자야는 백석이 지어준 슬픈 사연의 이름인데 이름처럼 슬픈 사연의 주인공이 된다. 친구를 따라 중국으로 자살 여행을 떠났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한 자야는 백석의 세 번째 결혼을 보며 이 세상에 대한 도전으로 잠시 떨어져 살겠다는 각오를 하고 만주로 떠나자는 백석을 차갑게 떠나보낸다. 그러나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된다. 만주에서 고향 정주로 돌아온 백석은 남과 북이 갈리는 민족 분열 때문에 남한으로 오지 못하고 재북작가가 된다. 국가에선 백석을 월북작가라 하여 작품도 보지 못하게 했으나 해금되곤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소월의 다음 가는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백석 전집을 간행한 이동순의 권유로 이 에세이집을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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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땅쇠 2013-01-1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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