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6

백제정치사 | 노중국 2018

백제정치사 | 노중국 | 알라딘


백제정치사
노중국 (지은이)일조각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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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백제사 연구의 대가인 노중국교수가 <백제정치사연구>(일조각, 1988)를 출간한 지 30여 년 만에 그사이 나온 많은 연구 성과들을 비롯해 새로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들로 인해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여 백제정치사를 재정리했다.


목차


책을 펴내며

머리글
Ⅰ. 기본 자료를 보는 시각
Ⅱ. 백제의 주민 구성과 백제인의 형성

제1부 건국과 성장
제1장 십제국의 건국
Ⅰ. 한강 유역의 선주 세력: 진국
Ⅱ. 온조의 십제국 건국과 지배조직
제2장 지역연맹체 형성과 하남위례성 천도
Ⅰ. 비류의 미추홀국 건국
Ⅱ. 지역연맹체의 결성과 주도권 장악
Ⅲ. 국호의 개칭과 중심지 이동
제3장 부여씨 왕실의 확립
Ⅰ. 초기 왕계보
Ⅱ. 왕실 교체와 부여씨 왕실의 확립
Ⅲ. 부여씨 왕실의 출자

제2부 집권력 강화와 부체제
제1장 부여씨 왕실의 집권력 강화
Ⅰ. 직계 초고왕계와 방계 고이왕계
Ⅱ. 고이왕의 지배 세력 재편
제2장 백제의 마한 병합
Ⅰ. 마한의 성립·성장과 목지국
Ⅱ. 백제와 마한의 관계와 마한 병합
제3장 부체제의 성립과 운영
Ⅰ. 부체제의 성립
Ⅱ. 부체제의 운영과 제솔회의

제3부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권 확립과 중앙집권체제 정비
제1장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권 확립
Ⅰ. 초고왕계의 재등장
Ⅱ. 비류왕의 왕권 강화 추진
Ⅲ. 왕위 계승권 확립과 부의 해체
제2장 근초고왕의 중앙집권체제 정비와 정복 활동
Ⅰ. 통치조직의 정비
Ⅱ. 유교정치이념의 수용
Ⅲ. 군사동원체제의 개편과 영역 확대
Ⅳ. 평양성 전투의 승리와 동진과의 교섭

제4부 한성도읍기 지배 세력의 변천
제1장 부여씨 왕실과 진씨 왕비족 중심 체제
Ⅰ. 왕비족 진씨의 등장과 그 활동
Ⅱ. 불교 공인을 둘러싼 왕실의 갈등과 진씨 세력
Ⅲ. 고구려와의 대결과 진씨 세력
Ⅳ. 부여씨 왕실과 진씨 왕비족 중심의 정치 운영의 특징
제2장 진씨와 해씨의 세력 교체
Ⅰ. 전지왕의 즉위
Ⅱ. 지배 세력의 교체
제3장 목만치의 천권과 해씨 세력의 재부상
Ⅰ. 구이신왕의 즉위와 목만치의 천권
Ⅱ. 비유왕의 즉위와 해씨 세력의 재부상
제4장 개로왕의 왕권 강화 추진과 실패
Ⅰ. 개로왕 초기 실권귀족 중심의 정치 운영
Ⅱ. 개로왕의 왕권 강화 추진과 문주의 등용
Ⅲ. 개로왕의 정책 실패와 한성 함락

제5부 웅진 천도와 신진 세력의 등장
제1장 웅진 천도와 남래 귀족의 동향
Ⅰ. 문주왕의 즉위와 웅진 천도
Ⅱ. 남래 귀족의 분열과 반란
제2장 신진 세력의 등장
Ⅰ. 동성왕의 즉위와 진씨 세력의 재부상
Ⅱ. 동성왕의 왕권 강화 추진과 신진 세력의 등용
제3장 왕권의 안정과 갱위강국 선언
Ⅰ. 무령왕의 출계와 즉위
Ⅱ. 왕권 강화와 국제적 위상 고양
Ⅲ. 웅진도읍기의 역사적 의미

제6부 사비 천도와 대성팔족
제1장 사비 천도와 22부 중심 체제
Ⅰ. 사비 천도와 국호 개칭
Ⅱ. 통치조직의 정비와 22부 중심의 정치 운영
Ⅲ. 국가 제의 체계와 불교 교단의 정비
제2장 한강 유역의 상실과 관산성 대회전
Ⅰ. 삼국 연합군의 형성과 한강 유역의 회복
Ⅱ.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과 관산성 대회전
제3장 대성팔족의 대두와 6좌평 중심의 정치 운영
Ⅰ. 위덕왕의 즉위와 대성팔족의 대두
Ⅱ. 6좌평 중심의 정치 운영
Ⅲ. 위덕왕과 법왕의 개혁 정치

제7부 익산 경영과 미륵사
제1장 무왕의 즉위와 왕비들
Ⅰ. 무왕의 즉위
Ⅱ. 무왕의 왕비들
제2장 무왕의 익산 경영과 사탁씨 왕후의 ‘무육만민’
Ⅰ. 익산 경영
Ⅱ. 전륜성왕 추구와 미륵사 창건
Ⅲ. 무왕의 정치적 한계
제8부 백제의 멸망과 부흥백제국
제1장 의자왕 대의 정치
Ⅰ. 의자왕의 즉위와 친위정변의 단행
Ⅱ. 왕권 강화 추진과 대외정책
Ⅲ. 정치의 혼란과 황음탐락
제2장 백제의 멸망
Ⅰ. 동아시아의 정세와 나당동맹의 결성
Ⅱ. 멸망의 징후와 백제의 멸망
제3장 부흥백제국
Ⅰ. 백제국의 부활
Ⅱ. 부흥백제국의 멸망과 역사적 의미

맺는 글
1. 대왕과 폐하
2. 천하관
3. 9층·7층 목탑의 건립과 일통삼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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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69 온조의 건국 시기는 국가 발전 단계와 연동해서 보아야 한다. 한국고대사회에서 국가 발전 단계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읍락 단계-국 단계-국 연맹 단계-부체제 단계-중앙집권국가 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발전 단계론에 입각해 보면 국 단계부터 건국으로 볼 수 있다. 국이 성립하기 이전에는 방국邦國의 칭호도 없고 군신의 칭호도 없이 추장만 있었지만 국이 성립하면서부터 왕과 신하와 백성이 있고 일정한 범위를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십제국의 건국 시기는 『삼국사기』의 기사처럼 기원 전후한 시기로 보고,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축조된 3세기 중후반은 부체제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 ‘제1부 건국과 성장’ 중에서 접기
P. 90~92 이후 백제는 국호를 십제국에서 백제국伯濟國으로 고쳤다. 국호 개칭 시기로 주목되는 것이 2세기 중반경이다. 이 시기에 십제국은 미추홀 세력을 대신하여 지역연맹체의 맹주국이 되었으며, 중국 군현에 맞설 정도로 국력이 성장하였다. 이에 십제국은 성장한 국력에 걸맞게 국호를 십제국에서 백제국으로 개칭한 것 같다. 그 시기는 초고왕 대(166~214)에 해당된다.
백제국伯濟國으로 국호가 개칭되면서 국호의 의미도 새로 부여되었다. 새롭게 부여된 의미가 ‘백성들이 즐거이 따른다는 백성낙종[百姓樂從]’이다. 이 국호에는 ‘백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민에 대한 지배권이 국왕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중략)
백제국百濟國으로 국호 표기를 확정하면서 이 국호에 새롭게 부여된 의미가 ‘백가제해百家濟海’이다. 백가百家는 지배층을 구성한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주변 세력을 정복하거나 흡수하여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해濟海’는 바다를 잘 이용한다는 의미이다. 백제는 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의 강조는 백제의 해양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 ‘제1부 건국과 성장’ 중에서 접기
P. 160~163 백제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역연맹체를 구성하였던 국들은 독자성을 잃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국의 수장의 일부는 중앙귀족으로 편제되었다. 중앙귀족의 수는 영역이 확대되면 될수록 늘어났다. 이렇게 늘어난 중앙귀족들을 편제한 것이 지배자 집단으로서의 부部이다. 이 부가 중심이 되어 국가가 운영된 체제를 부체제라고 한다. (중략)
저자는 부체제의 성립 시기와 관련하여 일련의 국가체제 정비가 이루어진 고이왕 후반경을 주목하고자 한다. 고이왕은 목지국을 멸망시키고 주변의 여러 국들을 통합한 후 통합된 지역의 국의 수장들을 중앙귀족으로 전화轉化시켜 집권력을 강화였다. 그리고 중앙귀족으로 전화된 세력들을 편제하기 위해 고이왕은 27년(260)과 28년(261)에 좌평과 솔계, 덕계 관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조직을 새로이 설치하였다. 이 토대 위에서 고이왕은 부체제를 성립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 ‘제2부 집권력 강화와 부체제’ 중에서 접기
P. 207 지방통치조직을 만듦으로써 종래 부의 유력자의 관할하에 있던 반공지 半公地와 반공민半公民은 이제 국왕의 직접 지배를 받는 공지公地와 공민公民이 되었다. 근초고왕은 이곳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조세를 거두고, 노동력을 동원하고, 군사를 징집하고, 사법권을 일정하게 행사하도록 하였다. 소출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토지대장도 만들고 인구도 파악하여 호적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근초고왕은 전국을 일원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근초고왕이 371년에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할 때 정병 3만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조직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 ‘제3부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권 확립과 중앙집권체제 정비’ 중에서 접기
P. 271 이처럼 전지왕의 즉위를 분기점으로 하여 구이신왕과 비유왕 대에 이르기까지 백제 지배층 내에서는 진씨 세력의 퇴조와 해씨 세력의 부상, 목씨 세력의 전횡 등과 같은 집권귀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근초고왕에서 아신왕 대에 이르기까지 진씨가 대대로 왕비를 배출하여 왕권을 뒷받침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 상좌평에게 군국정사를 위임하였다든가, 목만치가 왕모와 상음하였다고 한 것 등은 종래 보이지 않던 현상이다. 이는 이 시기에 왕권이 실권귀족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한성도읍기 후기는 왕권이 미약한 속에서 해씨 및 목씨 세력이 최고의 실권귀족으로 정치를 운영해 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 ‘제4부 한성도읍기 지배 세력의 변천’ 중에서 접기
P. 338~339 즉위 후 무령왕은 집권 기반을 확대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왕족 중심의 정치 운영을 도모하였다. 그래서 왕족을 중용하고 왕족의 위상을 높이려 하였다. 이를 보여 주는 것이 무령왕이 505년에 마나군麻那君을 왜에 파견하였다가 506년에 골족인 사아군斯我君으로 교체한 사실이다. 교체 이유는 마나군이 골족骨族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골족 여부를 따졌다는 것이다. 골족은 혈연적으로 동고조 8촌 범위 내의 친족 집단을 말하며 상복제, 연좌제, 혼인제 등의 기초가 된다. (중략) 무령왕은 즉위 후 왕권 강화를 위해 이성 귀족들의 힘을 억제하려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족들을 울타리로 삼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에 무령왕은 골족을 강조하면서 요소요소에 왕족을 배치하였다. 골족인 사아군을 대왜 외교에 투입한 것과 지방통치조직인 담로에 자제종족을 파견한 것이 이를 보여 준다. ― ‘제5부 웅진 천도와 신진 세력의 등장’ 중에서 접기
P. 384~385 성왕은 사씨 세력과 목씨 세력의 지지를 받아 천도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왕권 확립에 방해가 되는 세력들의 정치적 비중을 약화시키고 대신 자신을 지지한 세력들을 다수 등용하여 지지 기반을 넓혔다. 이를 통해 성왕은 국왕 중심의 정치를 지향해 나갔다.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내관의 수가 외관의 수보다 많은 것이 이를 보여 준다.
사비도읍기의 정치 운영에서 중심축은 16관등제와 22부제였다. 16관등제에서 5명과 30명으로 정원이 정해진 좌평과 달솔이 핵심 관등이었다. 5명의 좌평은 최고귀족회의체를 구성하여 중요 국사를 논의하고 결정하였다. 이를 ‘5좌평제’라 한다.
5좌평제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5좌평과 왕도 5부와의 관계이다. 왕도 5부는 행정구역이면서 지배층들의 거주지 표시이기도 하였다. 성왕은 사비로 천도하면서 이 5부에 여러 귀족 세력들을 배치하였다. 이리하여 귀족들의 인명 표기에 부명이 관칭冠稱되었다. 성왕은 이들을 정치 운영에 참여시켜 체제 안정을 도모하였다. 이렇게 보았을 때 천도 초기의 5좌평은 각 부의 대표 세력이 임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5좌평의 명칭도 5부의 명칭을 따서 상좌평, 중좌평, 하좌평, 전좌평, 후좌평으로 하지 않았을까 한다. ― ‘제6부 사비 천도와 대성팔족’ 중에서 접기
P. 454~456 무왕이 왕권 중심의 정치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실권귀족들의 권력 기반과 경제 기반을 축소시키면서 자신의 세력 기반을 확대해야 하였다. 그러나 귀족들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법왕의 단명에서 보듯이 상당한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에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무왕은 그 방법의 하나로 자신이 생장하였던 익산을 새로운 세력 기반으로 키우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추진된 것이 익산 경영益山經營이다. (중략)
이처럼 무왕은 자신과 인연이 깊은 익산 경영을 통해 세력 기반을 확대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국정을 쇄신하여 부강한 백제를 만들려고 하였다. 익산 경영을 통해 무왕이 추진한 핵심적인 사업이 왕궁 건설, 제석사 조영, 미륵사 창건 등이다. ― ‘제7부 익산 경영과 미륵사’ 중에서 접기
P. 519 두량윤성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복신과 도침은 중심지를 임존성에서 주류성(전북 부안 위금암산성)으로 옮겼다. 당군도 격파하고 신라군도 격파하여 기세가 오른 복신과 도침은 백제국을 부활시키려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을 옹립하여야 하였다. 의자왕의 왕자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 당으로 끌려간 상황에서 이들은 왜에 있는 부여풍을 주목하였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모시면 왕위의 정통성도 확보할 뿐만 아니라 왜의 지원을 얻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복신과 도침은 661년 9월 왜에 가 있던 부여풍을 모셔 와 왕으로 옹립하고 국가 통치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맡겼다. 이로써 새로운 왕국이 탄생하였다. 이 왕국이 바로 부흥백제국이다.
― ‘제8부 백제의 멸망과 부흥백제국’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노중국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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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및 경력>
1971.2.: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졸업(문학사)
1977.8.: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 석사과정 졸업(문학석사)
1986.8.: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1979.9.~2014.8.: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1993.9.~1995.8.: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2014.9.~현재: 계명대학교 인문국제학대학 사학과 명예교수

※ 2013년 9월 동아일보·한국연구재단: “한국 역사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연구인 20인” 중에서 제1위 연구인으로 선정

<학회 및 교외 주요 활동>
1987.2.~1991.2.: 한국고대사학회 1·2·3·4대 회장
2007.1.~2008.12.: 대구사학회 회장
2010.1.~2011.12.: 백제학회 회장
2011.5.~2013.4.: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사적분과위원장
2011.11.~2016.12.: 경상북도 “신라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집위원장
2012.5.~2016.5.: 공주·부여·익산·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 위원장
2014.5.~2017.12.: 경상북도·군위군 삼국유사 목판사업 자문위원회 위원장
2024.5.~2025.7.: 군위군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사업 자문위원
2021.7.~현재: 국가유산청 역사문화권정비위원회 위원장

<주요저술>
2010, 『백제사회사상사』, 지식산업사
2012, 『백제의 대외 교섭과 교류』, 지식산업사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Ⅰ·Ⅱ·Ⅲ·Ⅳ·Ⅴ,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백제정치사』, 일조각
2020, 『역사의 맞수①-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 지식산업사
2022, 『백제의 정치제도와 운영』, 일조각
2025, 『역사의 맞수②-고구려 고국원왕과 백제 근초고왕』, 지식산업사 접기

최근작 : <삼국유사, 천년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전하는 말>,<역사의 맞수 2>,<백제의 정치제도와 운영> … 총 2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백제사 연구의 대가인 노중국교수가 『백제정치사연구』(일조각, 1988)를 출간한 지 30여 년 만에 그사이 나온 많은 연구 성과들을 비롯해 새로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들로 인해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여 백제정치사를 재정리한 것이다.

저자의 첫 저서이자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연구자가 쓴 최초의 백제사 관련 단행본인 『백제정치사연구』는 백제사 연구의 필독서로 여겨졌다. 그러나 출간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데다 그사이 연구자들이 늘어 많은 연구 성과들이 나왔고 다수의 고고학적 자료들이 발굴됨에 따라 이러한 사실들을 반영한 개정판이 절실하였다. 『백제정치사연구』는 백제정치사의 전개 과정을 개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나 설명도 상대적으로 간략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나옴에 따라 새로운 견해들이 나오면서 사건들을 보다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하였고 이 견해들에 대한 비판과 검토 작업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거치다 보니 저자의 부지런함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백제정치사』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백제정치사』는 『백제정치사연구』의 개정 증보의 성격을 지니지만, 서술 순서를 바꾸고 많은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완전히 새 글이 되었다. 다만 정치사의 전개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서술하려다 보니 분량이 많이 늘어나서 이전 책에 있던 통치조직 부분을 담아낼 수 없었다.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통치조직과 향촌 사회와 관련한 부분은 율령제, 군사조직, 신분제 등을 보완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백제정치제도사』(가제)로 출간할 예정이다.

국가 발전 과정과 지배 세력의 변천을 중심으로 백제사를 서술
이 책은 많은 내용을 추가하다 보니 구성도 새로 정리되었다. 연구사 부분은 본문 속에 적절히 안배하는 대신 백제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자료를 보는 시각을 먼저 제시하였다. 역사 연구는 자료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국사기』 초기기록과 『삼국지』 동이전의 내용을 서로 보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분해론’과 『삼국지』 동이전의 ‘단계화론’을 먼저 내세웠다. 그리고 삼국사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일본서기』는 해당되는 기사에서 왜곡되거나 윤색된 부분만 제거하고 사실로 확인되는 부분만 이용하였다.
백제사의 전개 과정은 읍락 단계-국 단계-국 연맹 단계-부체제 단계-중앙집권국가 단계라고 하는 국가 발전 단계에 따라 서술하였다. 그리고 이를 수도의 변화와 연관 지었다. 한성도읍기의 경우, 읍락 단계에서부터 부체제 단계까지로 나누어 정리하고 중앙집권국가를 이룬 이후부터는 지배 세력의 변천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웅진도읍기는 동성왕 대까지는 한성도읍기의 연장선상에서, 무령왕에서 성왕 16년까지는 사비도읍기의 개시기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후, 이 시기가 가지는 정치적·문화적 의미를 살폈다. 사비도읍기는 천도 이후 554년 관산성 전투 이전까지는 왕권 중심의 정치 운영이 이루어진 시기, 위덕왕 이후 무왕 법왕 대까지는 대성팔족을 중심으로 하는 실권귀족 중심의 정치 운영이 이루어진 시기, 무왕 대에는 익산을 중심으로 한 경영이 이루어진 시기, 의자왕 대는 백제의 멸망기로 구분지어 정리하였다. 그리고 부흥군이 세운 부흥백제국도 다루었는데, 왕조 멸망 이후 점령군이 주둔한 상황에서 새 왕조를 연 것은 한국사에서 부흥백제국이 처음으로 그 정치적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국가 발전 과정은 중앙 지배 세력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 책에서는 백제의 국가 발전 과정과 더불어 지배 세력의 변천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한성도읍기에는 왕족인 부여씨 세력과 진씨 세력, 해씨 세력, 목씨 세력이 길항 관계를 이루었고, 웅진도읍기에는 금강 유역에 기반을 둔 사씨 세력을 비롯한 신진 세력의 등장에 따라 지배 세력이 교체되었으며, 사비도읍기에는 관산성 전투 패전 이후 미약해진 왕권 대신 대성팔족이 정치 운영을 좌지우지하였다. 이와 함께 왕의 질병이 정치사의 전개에 미치는 영향도 일정하게 다루었다.
지배 세력의 토대는 경제적 기반이다. 경제적 기반은 생산력의 증대와 연관되는데, 생산력 증대는 자연촌의 성장을 가져왔다. 기층사회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지방통치조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한성도읍기에서 웅진도읍기에 이르기까지 광역의 지방통치조직인 담로제가 사비도읍기에 와서 5방-37군-200성(현)이라는 보다 체계적인 지방통치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이러한 자연촌의 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래서 민에 대한 지배 방식도 연맹 단계의 공납적 지배, 부체제 단계의 반공지(半公地)·반공민(半公民)에 대한 간접 지배, 중앙집권국가 단계에서의 공지·공민에 대한 직접 지배 방식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러한 구도에서 서술하다 보니 저자의 이전 견해와 달라진 부분도 있다. 이 경우 해당 내용에 따로 표기하여 저자의 연구 궤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유적이나 유물 사진 자료들도 삽입하였다. 우리나라 백제사 연구의 기틀을 다진 저자의 평생의 연구와 현재의 견해를 담은 이 책은 백제정치사를 탐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는 동시에 백제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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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이 된 초판 『백제정치사연구』와 마찬가지로 한강 유역에서 온조가 세운 십제국이 비류가 인천 지역에 세운 미추홀국과 지역 연맹체를 이루고, 부 체제를 거쳐서 중앙 집권 체제의 기틀을 다진 백제가 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면서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해 완성도를 높였다.
解明 2021-09-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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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정치사





저자의 백제정치사연구를 개정한 것으로 1988년도에 초판이 나왔다 하니 30년만에 개정되어 나온 셈이다. 몇년 전에 이 책의 초판보을 읽고 난 이후로 저자도 퇴임을 하였고 이후 책을 더는 못 보겠다 싶어 중고로 구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개정증보판이 나오니 기쁘면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료를 대하는 방법론으로는 변함이 없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이 졸본부여에서 출자하여 한반도 남쪽의 땅을 얻어 십제를 세우고, 형이 세운 미추홀국이 귀부해옴에 따라 백제라 하고 마한을 병합했다 하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당대의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백제는 마한연맹체의 구성원이었다.



이렇듯 나라를 세운 시조에 압축적으로 그 업적을 넣었는데, 이것을 분해하여 국가 발전 단계와 연관하여 재정리 하는 것이 분해론이며,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고구려, 부여, 옥저등의 국이 국가 발전 단계가 동일하지 않은 것을 단계화 하여 백제사를 구성하다는 것이 주요 방법론이다. 삼국지 동이전으로 뼈대를 만들고, 삼국사기 초기기록 내용을 분해하여 살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조 온조왕에 일어 났던 것으로 기록 된 것을 부체제의 성립은 고이왕대에, 마한 병합은 근초고왕대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이와 같은 방법론을 통해서다. 거기다 백제사에 있어 중요한 참고를 할 수 있는 일본서기에 경우는 익히 알려진 악명과 같이 윤색된 바가 커서 조심스러게 활용한다 하였다. 그런데, 오랜 세월 공부해온 학자가 못 미더운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자의적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백제에 대하여는 학창시절 부터 세련된 고대국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받은 인상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 편이라 지금도 여전하다. 고구려는 강성하고 호전적이며, 문화적으로는 그렇게 볼품이 없는 나라. 신라는 단재선생이 끌어온 프레임에 같혀, 민족의 반역자 쯤은 아니나 괘나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첫 인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신라는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결국에는 해낸 것일 뿐 단재 선생이 짠 인식의 틀처럼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둘 다 시대의 소산일 뿐이다.



다시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면, 왕의 계보를 살필 때가 너무 머리 아팠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온조 집단은 남쪽으로 내려와 당시 마한연챙체의 맹주국이었던 목지국으로 부터 100리 땅을 얻어 십제를 건국하였다. 그러다 형인 비류가 세운 미추훌국의 귀부를 받아 백제라 국호를 정했다고 하는데, 이를 마한연맹체 내의 지역연맹체로서 비류의 미추훌국의 영도를(?) 받다 여러모로 국력이 우월해지며 지역연명체의 연맹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사실을 왕계를 일원화할 요령으로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이라는 계보를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루'자로 끝나는 왕이 당시 지역연맹체에서 미추홀국이 우세했던 시기를, 즉 연맹장을 맡았던 시기를 반영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등에 백제 초기의 왕성이 부여씨와 해씨로 상이하게 언급되는 것도 상기와 동일한 이유에서라고 본다(거기다 누구의 왕이 전왕의 아들이고 혹은 동생이고 조카이고를 따지는데 흥미로운 지점인 것도 있지만 항상 마지막은 지루하다).



책에서 다룬 내용중 재미있는 것 하나는 의자왕을 해동증자로 불린 사실이 당시 왕의 후계자로 선정이 되고,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어려움 때문에 그런 것이란 점이다. 그럴만한 상황과 여력이 안되는데 효도를 한다. 어렸을 적에는 생뚱맞게 무슨 해동증자... 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는 그런 어려움에 있던 의자왕의 처세였던 것이고, 즉위하며 친위정변을 단행하며 비로소 해소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리봉영기>가 발견됨에 따라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의심 받게 된 것을 두고 무리 없게 이와 같은 사실을 재구성한 것 역시 좋았다. 후손의 나이를 역순하여 의자왕의 출생년도를 추측하여 무왕이 의자왕을 낳은것은 선화공주도, 사택왕후도 아닌 빈천한 시절의 서동때라고 보며, 선화공주의 경우에는 당시 국제정세에 필요로 정략적인 필요로 결혼을 한것으로 보며, 그 이후 사리봉영기에 나오는 것처럼 사택왕후가 마지막 왕후로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노학자의 추측이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설화에 당시 신라 왕실을 모독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모독적인 이야기를 아예 뺄수는 있겠지만, 없는 모독적인 사실을 일부러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겠다. 그러면 선화공주의 존재를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선화공주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서동요를 비롯하여 미륵사지 창건을 청하였다는 문헌적 사실에서 굳이 청한 주체인 선화공주만 부정한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발굴결과와 미륵사지 창건에 관한 문헌 내용에서 일치한다고 한다).



어렸을때 읽언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인상 깊어 눈에 띈 대목이었는데, 이후라도 이와 같은 사실이 진실에 가깝게 구성이 될 수 있는 단서가 나온다면 좋겠다.



백제는 타의로 자의로 총 두 번의 수도 이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면서 왕을 제외한 지배세력의 교체가 큰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백제 지배세력 연구>라는 학술서도 따로 있어 읽어보려고 한다.



+사실 한국고대사 관련 학술서나 교양서를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이 절의 창건이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떻게 왕권강화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냐는 것이다. 고대의 지배자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여러 신이함에 의탁한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어떤식으로 구체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안되어 항상 궁금하다. 종교학과 인류학의 책을 구해 읽어 참고 해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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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9-08-25 공감(1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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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백제사



지루하고 어려워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생각보다 쉽고 재밌게, 마치 소설책 읽듯 쭉 읽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역사는 사람들 사는 이야기라 그런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백제의 기원을 밝히는 초반부가 복잡해 다소 어려웠다.

저자는 기원전 3세기 무렵 한인과 예인이 한강 유역에 정착해 초기 철기문화를 만들었고 이들이 바로 백제 주민의 원류라고 본다.

한인은 고조선과 삼한 사람들이고 예맥은 부여와 고구려 사람들인데 이들이 웅진과 사비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기존 선주민들까지 합해져 하나의 백제인으로 융합됐다는 것이다.

다른 책에서는 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이 무리를 이끌고 익산으로 온 것을 하나의 전승에 불과하고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 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역사적 사실로 추정한다.

연나라 유민인 위만이 고조선으로 넘어와 결국 기자 조선을 무너뜨린 것처럼, 고조선 왕실의 유민들이 마한으로 내려와 기존에 존재하던 진국을 해체시키고 다시 연맹체가 성립됐다는 것이다.

또 고조선이 역계경이 2000호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진국이 멸망했다고도 한다.

진국 세력은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로 진출해 거기 있던 선주민들과 합해져 국을 형성하고 그들이 이룬 게 바로 진한연맹체라고 본다.

진한을 옛 진국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 기록 외에 고고학적 증거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기술이 없어 아쉽다.

저자는 백제 선조들이 부여 왕실의 후예라고 했는데, 다른 책에서는 백제가 한강 유역의 토착민들이 세운 나라이고 대외적으로 오래된 선조를 끌어 들이기 위해 부여를 조상이라고 선전했다는 주장도 들었다.

마치 신라가 김일제를 조상으로 내세운 것처럼 일종의 숭조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풍납토성의 고고학적 유물들이 3세기 무렵이기 때문에 삼국사기 기록처럼 기원전 1세기에 백제가 건국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시작은 작은 읍에서 비롯됐고 국가 형태를 갖춘 것이 3세기일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역사서의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이 합쳐져야 입증이 될 것 같다.

신라가 왜 박석김이 돌아가면서 왕위를 이었나 신기했는데, 저자는 이것이 연맹체적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수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제에서도 초기 왕들은 4대 기루왕까지 해씨였고, 온조의 형제인 비류계였다고 본다.

그 후 온조계인 초고왕으로 계통이 이어지면서 부여씨가 왕권을 독점했다고 한다.

형제 설화는 이 두 세력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경우도 태조왕 앞까지는 해씨였고 태조왕부터 고씨로 왕실 세력이 바뀌었다고 한다.

단순한 추론인지 물적 증거가 있는 주장인지 궁금하다.




저자의 주장들

1) 구이신왕의 어머니 팔수부인은 왜계 귀족일 것이다.

2) 목만치와 목협만치는 동명이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목만치의 아버지 목라근자의 정복활동은 4세기 근초고왕 때 이루어진 것이 맞다. 영산강 유역을 이 때 정복했을 것이다. (백제의 영산강 정복이 언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논쟁에서 옹관묘의 존재나, 목만치와 목협만치가 동일인일 것이라는 주장을 들어 사비 천도 후에나 이루어졌을 거란 반대 주장도 있었다)

일본서기에는 천황이 목라근자에게 출정을 명하고 임나가라 지역을 정복한 후 식읍으로 내렸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 주체를 근초고왕으로 해석한다. 특별한 물적 증거 없이 주체를 바꿔도 되는 것일까?

3) 문주왕은 개로왕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다.

4) 무왕은 법왕이 아들이 아니고 익산에 살던 방계 왕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자왕의 모후가 되는 첫 아내는 신분이 낮았을 것이고, 두 번째 왕비가 선화공주이며, 사리봉영기에 나오는 사택 왕비는 세 번째 왕후일 것이다. (저자의 단순 추론이라 수긍이 안 간다)




<오류>

331p

신라 신덕왕은 아달라왕의 원손으로서 신라 하대에 와서 석씨로서 왕이 된 첫 임금이다.

-> 신덕왕은 석씨가 아니라 박씨다.

470p

양원왕 말년에 중부인의 소생을 지지하는 추군 세력과 소부인의 소생을 지지하는 세군 세력이

-> 양원왕이 아니라 안원왕 말년의 일이다.

535p

효명제는 낙양으로 천도 후 518년에 북위 최대의 황실사찰인 영녕사를 다시 조영하면서

-> 효명제가 아니라 효문제 때 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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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21-07-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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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정치사



몇년 전에 <백제정치사연구>를 읽고 소장하고 싶어서 중고로 이리저리 알아 보던 중에 작년에서야 겨우 구했는데 얼마전에 그의 개정판이 거의 30년만에 <백제정치사>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몇년 전에 정년퇴임을 한 직후라 새로 개정판이 나올 것은 짐작을 못했는데 기쁜 마음이면서도 작년에 구판을 구하려고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책은 구판의 출간이후 연구결과를 반영하여 대폭 개정이 된 것 같다. 어제 구입을 해서 오늘 쯤에는 도착할 것으로 알았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못 받을 듯. 받자마자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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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9-03-12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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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평

노중국 저, 《백제정치사연구》 서평 by 원한의 거리  2015. 5. 20. 

백제정치사 연구 노중국
출판일조각발매1988.01.01리뷰보기
https://m.blog.naver.com/superman2208/220364748156






1.
노중국 선생은 오늘날 백제사 연구계의 대가 중 하나로, 한국사학계에서 최초로 백제사를 전공으로 하여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딴 이른바 백제사 제 1호 전공자로 유명한 학자입니다. 이후로도 오늘날 백제사 연구의 기틀을 다지는 업적을 남겼고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은 상당한 편입니다. 노중국 선생의 이후로도 양기석 선생, 이도학 선생, 유원재 선생, 김영심 선생, 김주성 선생, 문동석 선생, 정재윤 선생 등 실로 쟁쟁한 백제사 연구자들이 족족 배출되었으니, 노중국 선생은 이와 같이 막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백제사 연구의 열풍의 첫장을 장식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노중국 선생이 처음으로 펴낸 단행본으로, 1986년에 발표하였던 박사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하여 1988년에 일조각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그 내용은 책의 부제인 "국가형성과 지배체제의 변천을 중심으로"에서 드러나듯이, 크게 나누어서 백제가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해나가는 과정과 그 이후 등장하는 유력한 귀족 가문 및 왕권의 변천 과정을 위주로 하여 백제의 정치사를 건국 시기로부터 의자왕 말기까지 서술해나가고 있습니다,


책의 구성은 기존의 연구성과와 연구방법론을 담은 서론, 백제의 국가형성을 다룬 1장, 백제 지배세력의 변천을 다룬 2장, 백제의 통치조직을 다룬 3장,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된 백제사의 정치사적 전개과정을 정리하며 백제의 시기구분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 결론 부분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바와 같이, 책의 내용은 연구성과로부터 시작해서 백제의 국가형성 및 정치사적 전개과정, 그리고 통치조직의 구성과 시기구분론에 이르기까지 백제사의 다양한 부분을 광범위하게 커버하고 있는 편입니다.




2.
책의 서론에서는 백제사에 관련된 기존의 연구성과를 논하면서 해방 이후로부터 80년대 당시까지의 백제사 연구 성과까지는 물론이거니와 실학자들의 백제사 연구에 관련된 자료도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여기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과거의 문헌사료를 검토하여 마한의 위치를 충청과 전라 일대로, 백제의 초기 중심지를 한강 유역으로 비정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고고학적 연구성과와도 부합되는 면이 분명 있고,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백제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과거 최치원 등이 주장했던 왜곡된 삼한관념을 비판하고 마한-백제, 진한-신라, 변한-가야의 삼한 관념을 비정하여 한국 고대 국가의 형성과정의 연구에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는 점 등이 주목할만한 점이었습니다.


1장에서는 백제의 국가형성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삼국지』 동이전의 기사를 절충적인 시각으로 검토하여 이를 "읍락 - 소국 - 소국 연맹 - 5부체제 연맹왕국 -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5단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한강 유역에 선주집단인 비류세력과 후발집단인 온조세력이 각자 주변의 읍락을 통합하고 소국을 이루었고, 이 두개의 소국이 연맹을 맺은 이후로 점차 한강유역의 온조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해나가며 부여씨 왕실이 성립되었으며, 고이왕 대에 이르러 5부를 중심으로 하는 연맹왕국이 형성되었고,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영역이 확장되고 지방통치의 기반이 마련되는 등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2장에서는 고대국가 성립 이후의 백제사를 수도의 변천에 따라 "한성 - 웅진 - 사비" 시기로 구분하고 그에 따른 백제 지배세력의 변천과 정치사의 전개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성시대에는 특히 진씨와 해씨의 세력이 강성하였다면 웅진시대에는 천도 이후로 점차 금강 유역의 토착 세력들이 점차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사비시대에 이르러서는 관산성 전투의 패전과 성왕의 전사를 계기로 왕권을 견제하는 강력한 대귀족 세력인 대성팔족이 형성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무왕과 의자왕 대에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던 국왕과 이에 저항하려던 귀족 세력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장에서는 백제의 관등과 관직체계의 변천과정 및 지방통치제도와 향촌지배 등 백제의 국가통치조직을 통괄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대체로 사비시기에 이르러 16관등과 6좌평 등의 정교한 관등제가 형성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성시대와 웅진시대에 성촌체제와 담로체제가 성립되었으며 이것이 사비시대에 이르러서는 22부사와 같은 중앙행정기구와 5부-5항의 수도 행정 단위 및 방-군-성(현) 체제라는 정교한 지방 행정 체제로 발전하였다는 것이 주된 논지입니다. 더불어 향촌을 통제하기 위해 형성된 향촌공동체인 두레와 여기에 불교 신앙이 더해진 이른바 향도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백제가 어떤 식으로 중앙에서 떨어져있는 향촌민들을 통제하려 하였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론에서는 기존의 백제사의 시기구분론을 검토하면서 종국에는 백제의 국가형성과정과 중앙집권국가 형성 이후의 천도와 그에 따른 정치체제 및 지배세력의 변천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시기구분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이 책은 백제사를 전공으로 하는 한국사학계 사상 최초의 박사논문이자 전문연구서적이라는 점, 그리고 국내 최초로 백제의 정치사를 통사적인 관점으로 정리한 서적이라는 점에 있어서 실로 연구사적 가치가 크며, 이후로도 백제사 연구의 기본적인 틀과 방향을 제시하며 후대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 합니다. 여러모로 보건데 이 책이 오늘날의 한국고대사학계에 있어서 백제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책이라는 점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이후로도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쯤은 거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더불어서 연구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논지 전개과정에 있어서 당대에 축적된 고고학적 연구성과와 더불어 『삼국사기』를 비롯한 국내의 사서를 제외하더라도 중국의 정사와 일본의 문헌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헌 사료를 정리하여 이를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좋았지만, 특히 백제사 연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기록상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고구려사와 신라사의 국가형성 과정에 있었던 몇가지 사례와 그에 관련된 연구성과 및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과감하고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백제사의 연구사, 정치사적 전개과정, 지배세력, 통치조직, 시기구분론 등을 아울러 한 권으로 정리해내고 있다는 점에 있어 백제사 개설서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전문연구서적이고 상당히 오래된 책인 만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읽는 난이도에 있어서도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야겠습니다.


물론 이 책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최초의 백제사 박사 논문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그만큼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의 백제사 연구의 수준이 이제 막 발걸음을 시작한 단계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에 실린 여러 논지는 그 자체가 초기의 주장이거니와, 이미 책이 나온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만큼 그 내용을 비판없이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서 다루는 내용이 넓다 보니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에 개별적인 연구가 깊고 자세하지는 못한 측면도 있고, 또한 실제로 책에 노중국 선생이 제시한 여러 이론은 후대의 연구성과에 의해 끊임없이 인용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책 자체는 백제사 연구서적 중에서도 그 내용이 풍부하고 또 백제 정치사의 전개과정을 건국시기로부터 멸망직전까지 통괄적으로 정리하고 있어 입문서로 권할 만 하나, 그 외에 다른 연구자들의 다양한 논저를 참고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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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국 저 백제정치사 서평

프로파일
 호태왕 ・ 2024. 8. 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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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정치사
저자
노중국
출판
일조각
발매
2018.12.31.
백제정치사는 아주 오래전에 출간된 백제정치사 연구의 개정판이다. 저자 노중국 선생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것인데 오래전에 출간해서 구하기도 힘들고, 한자도 많아 읽기 힘든 책이다. 그럼에도 백제사의 바이블로 칭송 받으며 재출판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2018년에 개정판인 백제정치사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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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백제사에는 많이 무지하다. 고구려사에 비해 관심이 더 적기도 했지만  주변인중에 백제사가 가장 알기 힘들다고 자주 말하는 분도 계셔서 지레 겁먹기 일수였다. 공부하려고 논문을 봐도 주장에 주장을 쌓이기만 해 답답한 경우가 많다는 말을 자주 들어 굳이 애 쓰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졸업이 점점 다가오며 마음 편하게 역사공부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걸 깨닫자 이번 방학안에 완독하기로 결심했고 다행히도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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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8부로 구성 되어 있다.  1부는 백제의 건국과 성장:위치와 왕실의 확립, 2부는 부체제의 성립.3부는 초고왕계의 왕위 계승 확립과 중앙집권화. 4부는 한성 백제의 지배세력 변천,5부는 웅진천도, 6부는 사비천도, 7부는 무왕의 익산경영, 8부는 의자왕 치세와 백제부흥운동을 다룬다. 백제사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기에 아주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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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1부와 8부가 유난히 잘읽혔다. 백제의 건국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온조가 세운 나라로 알고 있다. 중국 사서등에서는 구태 라는 인물이 대방고지에 건국했다 나오고 일본서기에는 도모 대왕이라는 인물이 건국했다 나온다.  이런 점이 당혹스러워 대체 백제의 건국에 대해 의문을 품은 상태였고, 전공 수업에서는 근초고왕대에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교수때매 저건 아닐텐데 라고 생각을 할지언정 지식이 부족했었다. 이런 상태에서 1부는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대방고지에 건국했다는 기록에 대해 백제 건국의 시기가 너무 늦어진다는 점, 대방군 소멸후 그 땅은 고구려 영역이 된 점을 가지고 비판했다.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해 신뢰성을 따지는 부분을 공부할때도 이 파트는 상당히 유효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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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에서는 의자왕 치세와 백제부흥운동을 다루는데, “부흥백제국”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백제부흥군 세력이 강성한 것은 알았지만 부흥백제국으로 까지 지칭한 점이 지금까지 읽어온 한국고대사 서적과 차이가 났다. 다만 책에서도 밝혔듯 저자의 다른 저서 다른 저서인 백제부흥운동사를 요약한 셈이라 자세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 학기중 여유가 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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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라딘에 팔아버린 살아있는 백제사가 이전에 읽은 유일한 백제사 통사 책이었다. 꽤나 무리수가 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 반면 백제정치사 연구는 그러한 점이 전혀 없었다. 예전에 고구려사 연구를 읽은거 마냥 내용이 정말 충실해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 신라사도 이런 책이 나와줬으면 하는데 양이 너무 방대해 나오지 않은 것같아 아쉽다. 
[출처] 노중국 저 백제정치사 서평|작성자 호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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