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0

진일교 - 저를 빨갱이라 부르는 분들의 댓글이 참 거시기 합니다.

진일교 - 저를 빨갱이라 부르는 분들의 댓글이 참 거시기 합니다.| Facebook


진일교
20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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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빨갱이라 부르는 분들의 댓글이 참 거시기 합니다. 
한 번 밝혔는데도 같은 말이 돌아옵니다. 이번에는 제시하시는 근거를 하나씩 짚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공산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정의(定義)가 있는 말입니다.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한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 부르려면 그가 이 셋 중 무엇을 주장했는지를 대야 합니다. 그런데 제게 제시된 일곱 가지 근거 가운데 이 셋을 건드리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역사 인식, 애도, 정당 지지, 복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첫째, 오일팔을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항쟁이라 부르니 빨갱이라는 주장입니다. 대한민국 법은 그것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릅니다. 1995년에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1997년에 국가기념일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대법원은 신군부의 행위를 내란으로 판결했습니다. '항쟁'은 광주에서 오래 써 온 말이고, '민주화운동'은 법이 쓰는 말입니다. 둘 다 같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시민이 국가폭력에 맞섰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말은 '폭동'인데, 그것은 법정에서 이미 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취임 후 세 해 연속 오월 기념식에 참석해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준이라면 그분도 빨갱이가 되어야 합니다. 헌법 전문에 넣는 문제도 이미 국회에 올라왔던 일입니다.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다가 정치적 이유로 미뤄지고 있을 뿐입니다. 
둘째, 세월호 배지 착용에 대해 시비를 거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배지 착용은 주장이 아니라 애도입니다. 그 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슬퍼하는 것이 이념이라면 그 표결에 참여한 국회 전체가 빨갱이입니다. 목사가 죽은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직무입니다. 저는 그 일을 부끄러워할 생각이 없습니다.
셋째, 민주당을 지지하고 특정 의원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합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 논법은 방향만 바꾸면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지지자는 모두 파시스트입니까. 그런 말을 제가 한다면 여러분은 정당하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저도 같은 이유로 화를 냅니다. 덧붙이자면 기본소득도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돈을 나눠 주고 시장에서 각자 쓰게 하는 제도이니, 생산수단은 그대로 사유(私有)로 남습니다. 석유 수익을 주민에게 나눠 주는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주에 속합니다. 찬반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것은 재정 논쟁이지 체제 논쟁이 아닙니다.
넷째, 제가 친북친중이라는 것입니다. 제 글의 어떤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북한이 수만금을 준다 해도 가서 살 곳이 못 된다고 썼고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국은행 추정으로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우리의 28분의 1입니다. 같은 민족이 다른 체제를 택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저는 그 숫자를 근거로 공산주의를 실패로 판정합니다. 친중이라는 말도 묻고 싶습니다. 제가 언제 중국 공산당을 옹호했습니까. 한중 수교는 1992년 노태우 정부가 했고, 중국은 지금 우리 반도체와 자동차의 최대 시장입니다. 중국과 거래하는 것이 친중이라면 대한민국 기업 전체가 친중입니다.
다섯째, 한국은 이미 공산화되었고 나는 변종 공산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하나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 주장의 특징은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공산화의 증거이고, 자유가 있으면 위장의 증거입니다. 어떤 사실을 가져와도 같은 결론으로 돌아오는 주장은 논증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변종'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원래 정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굳이 확인하자면 우리에게는 등기부등본이 있고 주식시장이 있고 상속이 있습니다.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산화된 나라에서는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다음 날 사라집니다. 저를 빨갱이라 부르는 분들이 아무 일 없이 그 말을 계속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나라가 공산화되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여섯째, 제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미화한다는 것입니다. 미화가 아니라 애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국가의 입장입니다. 제주 4·3 특별법은 1999년 말 국회를 통과해 2000년부터 시행되었고, 2003년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으며,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21년 6월 국회를 통과해 2022년 1월 시행되었고, 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총리입니다. 그러니 제가 미화를 하고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했습니다. 다만 구분은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남로당 계열 군인들의 무장 반란을 옹호하는 것과, 그 진압 과정에서 재판도 없이 죽은 민간인을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저는 앞의 것을 하지 않습니다. 뒤의 것만 합니다. 반란군에게 죽은 경찰과 주민도 똑같이 희생자입니다. 그리고 진압 과정에서 그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이 두 사실 중 하나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화하는 쪽은 그쪽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자 돈을 빼앗아 나눠 주는 포퓰리즘이 공산주의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소유의 문제이고 재분배는 세율의 문제입니다. 축이 다릅니다. 세율을 정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정부이고, 정책의 차이입니다. 만약 재분배가 공산주의라면, 1977년 의료보험을 시작한 정부도,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완성한 정부도, 1986년 국민연금법을 만든 정부도 모두 공산주의 정부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분들을 그렇게 부르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헌법은 34조에서 사회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정하고, 119조 2항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말합니다. 저는 무한정 나눠 주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재정은 유한하고 세금은 아픕니다. 그 논쟁은 '얼마나'의 논쟁이어야지 '너는 빨갱이냐'의 논쟁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천 년 동안 구제를 해 온 것을 두고 교회가 공산주의였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제시된 일곱 가지 근거 가운데 공산주의의 정의에 닿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목록이 증명하는 것은 제 사상이 아니라, '빨갱이'라는 말이 이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움 자체를 조롱할 생각은 없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불안은 실제이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안 하나를 드립니다. 저에게 이렇게 물어 주십시오. "생산수단의 국유화에 찬성합니까." "일당독재를 지지합니까." "북한 체제를 지지합니까." 세 질문 모두에 저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그다음에 세금이든 복지든 대북 정책이든 얼마든지 다투십시오. 저는 그 다툼을 피하지 않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말이 너무 쉽게 쓰이면 그 말은 힘을 잃습니다. 아무에게나 붙는 꼬리표는 결국 아무도 가리키지 못합니다. '빨갱이'라는 말이 지금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위험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합니까. 저는 그것이 더 걱정입니다.
그러니 저를 무엇이라 부르지 마시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글의 어느 문장이 잘못되었는지 짚어 주시면 저는 얼마든지 답하겠습니다.
참고로 음모론자는 좌나 우나 다 싫어합니다. 팩트체크 안된 카더라 통신도 마찬가지구요. 
늘감사.
* 저도 이종성 목사님 따라서 대학때 사진 하나 투척합니다. 고등학교 까까머리는 아니지만요.. 벌써 30년 전이네요. ^*^
오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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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시하세요. 어차피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셔도 저들은 무슨말인지 모르고 그냥 싫다는 얘기예요. 차단하시는게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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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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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잡을데 없는 글이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미친놈들은 설득이 아닌 매가 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무조건 빨갱이니 뭐니 하면서 광분하는 무리를 같은 사람으로 보고 정상적으로 대응해주는것 자체가 낭비입니다.
Reply
조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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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타령을 하는자들이 오히려 빨갱이가 아닐까요?
전쟁과 폭력을 추구하는자들이 그들 집단들이지요.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켜내고 민주주의와 평화를추구하는 쪽을 향해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는게 너무 우습지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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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대학교가 2026년 영성수련회 강사로 이호 목사를 초청했습니다. 먼저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호 목사는 제 학부 동기입니다. 총장님은 제 은사이시고, 신학교에는 저와 깊은 인연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편해질 수 있는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사랑하는 모교가 극우의 온상으로, 시대정신에서 뒤떨어진 학교로, 신앙을 정치화하는 학교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침신대 출신 목회자를 모교 강단에 세우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침례신학대를 졸업한 우리 교단의 동문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이호 목사는 현재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이며, 히즈코리아TV 주강사와 뉴데일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표 강의는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고, 『친일청산에 대한 성서적 입장』, 『북한을 자유케 하라』, 『이승만의 토지개혁과 교육혁명』 등을 썼습니다. 2015년 조선일보는 그를 “건국 주역 이승만”을 재조명한 목사로 소개했고, 영화 「건국전쟁」의 제작 과정에도 자문으로 참여했습니다. 국회조찬기도회를 비롯해 전국 애국 집회의 단골 강사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비방이 아니라 본인이 공개한 이력입니다. 다만 그 이력이 특정한 정치적 노선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어떤 분은 그래도 순수하게 학생들에게 도전이 되는 설교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번 수련회의 구성 자체가 그 기대를 뒷받침해 주지 않습니다. 포스터의 주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한반도를 자유케 하라”는 그의 저서 『북한을 자유케 하라』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첫 번째 설교 제목 “있는 그대로의 십자가” 역시 그의 설교집 제목과 같습니다. 세 번째 설교 “1919 필라델피아”는 1919년 4월 이승만·서재필 등이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연 제1차 한인회의를 가리키는데, 이는 그가 오랫동안 이승만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아 온 소재입니다. 네 번째 “북한의 역사와 복음통일”은 그가 즐겨 쓰는 “종북의 영”이라는 언어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혹시 시국 강연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아닙니다. 네 번의 설교 중 최소 세 편이 그의 기존 강연 콘텐츠와 겹치는, 상당히 예측 가능한 구성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영성수련회입니다.
그의 주장은 지나치게 이념적입니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의 패악질을 옹호하기도 하죠. 성경 말씀을 읽지만 결국 정치적 아젠다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추켜올리며 강단에 세운다는 것은 검증을 하지 못했거나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의미겠지요. 그게 아니라 만약 역사와 정치를 다루어야 한다면, 그것은 일방적 선포가 아니라 반론과 질문이 보장된 학술의 형식이어야 합니다.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교가 신중하지 못하면, 학교 자체가 같은 편향을 공유한다고 읽힙니다.
몇 해 전 데이비드 차(차형규)의 일이 겹쳐 떠오릅니다. 그가 표절과 직통계시 논란 이후 침신대 교수들의 지도를 받고 침신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밝히며 침신대의 이름에 기댔던 시기가 있었고, 대학예배 강단에서 학교를 사랑하고 빛내는 학생으로 소개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부적절한 관계와 선교회 재정 유용을 인정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미 문제가 제기되고 있던 사람에게 학교의 신뢰를 빌려주었다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던 경험을, 우리는 배우지 않았습니까.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학교의 강단은 교단의 미래가 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늘감사.
* 이글을 보고 어떤 이들은 저를 빨갱이라고 하겠지요. ㅜㅜ 그럼에도 저는 제발 학교 강단에 말씀 전하는 이를 선정할 때 진보와 보수, 좌우를 떠나 지나치게 치우친 이들은 좀 걸러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파와 부끄러움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좋은 설교가가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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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려거든, 비판받을 각오로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면서 가장 자주 오독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마 7:1)는 말씀인데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어떤 판단도 하지 말라는 침묵의 명령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7:2). 이 말씀은 비판의 금지가 아니라 비판의 조건입니다. 네가 남에게 들이대는 그 자를 그대로 네게도 들이댈 터이니, 그 자를 함부로 만들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판단 자체를 거두라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저울을 바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은 금지된 것이 아니라 값비싼 것입니다. 값을 치를 각오가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 서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 몇 가지를 스스로에게 요구합니다.
첫째, 정제된 언어를 쓸 것. 조롱과 혐오와 모욕의 언어는 그 순간 저를 우쭐하게 하고 감정을 시원하게 하지만 글의 수명을 끊습니다.
둘째,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킬 것. 비판의 대상도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도 언젠가 내 글을 읽습니다.
셋째, 사실을 먼저 확인할 것.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다 하였고(잠 18:13),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옳아 보이나 상대가 와서 밝힌다고 하였습니다(잠 18:17).
넷째, 논리적으로 정연할 것. 감정은 글의 온도이지 근거가 아닙니다.
다섯째, 내 이름으로 쓸 것. 책임지지 않는 말은 비판이 아니라 투척입니다. 그래서 제글른 대부분 전체공개이고 공유도 가능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 이전에 저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언어가 거칠어지는 순간 논지는 사라지고 태도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태도가 무너진 글은, 내용이 옳아도 아무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최근 제 대학동기가 모교 영성수련회 강사로 선정된 것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뒤에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지지하는 몇몇 분들이 제 글의 논지를 반박하는 대신 글쓴 저를 공격했습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겨냥한 것이죠. 처음 보는 이에게 반말을 던지고, 마치 자신이 심판대 위에 앉은 것처럼 사람을 깔보는 말투가 이어졌습니다. 제글을 자신의 피드에 올려 놓고 여럿이 몰려와 에워싸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방법에 저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방식은 그들이 지키려던 것을 지켜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집단으로 조리돌리는 순간 먼저 그 자신이 무너집니다. 논박할 내용이 없어서 사람을 공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그가 지키려던 대상이 무너집니다. 거친 옹호는 옹호가 아니라 짐입니다. 조롱으로 방어된 사람은 그 조롱과 함께 기억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속한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한 사람의 말투는 그 사람의 인격이지만, 여럿의 같은 말투는 그 공동체의 문화로 읽힙니다. 그 공동체가 앞으로 무슨 옳은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때 보았던 태도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퇴고를 거치면서 저부터 다시 살핍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자신을 정죄하게 된다는 말씀 앞에서 그리고 형제의 눈 속 티끌을 말하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빼라는 말씀 앞에서 저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자는 언제나 다음 순서로 비판대에 섭니다. 그것이 이 일의 규칙이고, 저는 그 규칙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에 대한 반박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사실이 틀렸다면 고치겠고, 논리가 성기다면 승복하겠습니다.
다만 오시려거든 논리로 오십시오. 저는 반말과 조롱에는 답하지 않습니다. 답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대화의 형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제된 언어와 최소한의 예의, 확인된 사실과 정연한 논리. 이 네 가지를 갖춘 반박이라면 저는 기꺼이 오래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비판은 힘을 얻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늘감사.
* 캡쳐 설명 : 저는 이분을 잘 몰랐는데 유명 토론배틀에서 우승했던 분이라는군요. 그런데 저에 대한 표현들을 보니 이분은 토론은 사라지고 배틀만 남은 듯 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용혜인의원을 지지했던 이유를 설명해야겠네요. ^*^ 그리고 제가 이호 목사를 질투한다고? 제 자존감이 그렇게 낮지 않아요. 이분의 뜬굼포 멘트에 실소를 ㅎ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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