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대 '변선환 학술세미나' 무산 … 학생들 강의실 점거, 3시간 대치
심자득
업데이트 2026.09.19
-탄신 100주년 앞두고 열린 '일아 변선환' 학술행사
-대관 취소 후 명예교수 재신청엔 끝내 회신 없어
-참석자들 "학문적 토론의 장 무너져"
단상을 점거한 학생들이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변선환 박사(1927~1995) 탄신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유경동·이하 감신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학술세미나가 17일 일부 재학생들의 강의실 점거로 무산됐다. 한국信연구소(소장 이은선)와 변선환아키브(소장 최태관)가 공동 주최한 「한국적·복음적·생명적 이어라 — 일아 변선환의 동서 문명 통섭을 위한 고난의 길」 세미나는 이날 오후 6시 감신대 열림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사태는 행사 두 시간 전부터 시작됐다. 오후 4시께 열림홀 앞 복도에는 은퇴한 명예교수들과 세미나를 들으러 온 참석자 10여 명이 서 있었다. 앞선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 15명 안팎이 강의실에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이들은 자신들도 이곳에서 '복음주의 세미나'를 하겠다고 맞섰다. 평창·대구·문경 등지에서 올라온 목회자와 평신도들까지 합류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로비가 붐비기 시작했다.
이날 공동주최자인 변선환 아카이브의 최태관 교수(감신대)가 '일아 변선환의 한국적 종교해방 신학'을, 최범철 선생(전 서울예고)이 '일아 변선환의 화쟁 신학에서 본 복음 이해'를, 신익상 교수(성공회대)가 '기후재난 시대에서 변선환 신학 읽기'를 각각 발제할 예정이었다. 원거리에서 온 감리회 목회자들뿐 아니라 타 교단의 목회자들도 다수 참석했다.
강의실을 점거한 학생들에게 한 참석자가 항의하고 있다.
경찰의 출동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이정배 교수학생들과 주최측의 초동 대치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학술대회를 두고 "총무처 허가 사인을 받아 오라"며 대관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집회이자 무단침입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양측이 고성을 주고받는 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6~7여 명의 사복과 정복경찰은 주최측과 점거 학생들을 모두 강의실에서 내보내고 사태파악에 나섰다. 주최측이 이 학교 명예교수이고 참석자 대부분이 동문 또는 목회자이며 재학생도 포함돼 있다는 점을 확인한 뒤 총무처가 자체 해결 의지를 밝히자 경찰들은 한발 물러서 사태를 관망했다.
이 와중에 학술행사에 참석하려는 목회자들과 학생들이 70여 명으로 불어나 강의실에 자리를 잡아 앉았고 이를 막아서는 학생들도 30여 명으로 늘며 강단을 사이에 두고 대치가 이어졌다. ‘허락받지 못한 강의실 사용은 불법’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참석자들은 ‘동문들이 사용하겠다는 것인데 왜 불법이고 무단침입이냐’고 맞섰다. 그리고 학생들이 무슨 권한으로 선배들의 강의실 사용을 막냐며 ‘지나친 간섭’이라고 나무랐다. 고성이 오가는 실랑이가 또 한 시간 이상 계속됐다. 존중의 언어는 보이지 않았고 비아냥과 일방적 주장만 난무했다. 수십 명의 다른 학생들은 추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중재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현장에 나와 있던 직원들은 어찌할 바 몰라 했고 교수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동주최 교수도 현장에 없었다.
강의실 앞 로비가 붐비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이 와중에 한 학생이 쓰러졌다. 이 학생은 한 여교수와 실랑이를 벌이다 "왜 이 XX 저 XX 하냐"고 항의했다. 이에 여교수가 내가 언제 "이 XX저XX했냐"고 어이없어 하자 갑자기 "언어 폭력쓰지 마세요" 하면서 쓰러졌다. 이내 앰불런스가 왔으나 병원으로 가진 않았고 시간이 조금 지나 이 학생은 강의실에 나타나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앞에서 또 쓰러졌다. 전 과정을 지켜본 기자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석 목회자들과 교수가 나서서 설득해 보지만 ..
자료집을 읽고 답하기로 한 즈음에 학생들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학생들
결국 학교밖으로 나가기로 한 참석자들강의실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주최측이 백주년기념관 로비로 옮겨 진행하겠다고 하자, 학생들은 이번에는 "이 행사가 교리와 장정에 반한다"는 주장을 보태며 진행을 막았다. 이단 신학으로 출교된 변선환을 조명하는 학술제가 교단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이 학교 어디서든 행사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주최측이 "학자들의 발제문이 수록된 자료집을 각자 읽는 것으로 행사를 대신하고 질문을 받겠다"고 대안을 내놓자, 이때부터 학생들은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는 구호를 외치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학생은 강단 앞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주최측은 더 이상의 강행이 무의미하고 우발적 충돌이 우려된다고 판단해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참석자 50여 명이 뒤따랐다. 학술행사를 막아낸 학생들은 남아 "사랑하는 신학교에서 이단 종교다원주의자, 예수 부정자 변선환 학술행사를 막아내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이단 변선환 학술행사가 영원히 거룩한 감신 선지동산에서 이뤄지지 않도록 보혈로 이 선지동산을 덮어 달라"고 기도했다.
대관 취소·무응답 … 엇갈리는 설명
사태의 발단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내 모임 바이블모스는 지난 10일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종교다원주의자를 왜 교단 신학교에서 기념하는가'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하고 행사 즉각 중단, 학교 공간 제공 경위 공개, 총장실의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같은 게시판에는 행사를 멈추라는 요구를 "참으로 서글픈 일"로 규정하며 "우리가 반대하는 신학과도 논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학"이라는 반론도 붙었다.


장소 확보 과정을 두고는 관계자들의 설명이 엇갈린다. 이정배 명예교수에 따르면 최태관 교수를 통해 공간 사용 승인을 받아 행사를 준비했으나 반대 대자보가 붙은 뒤 학교가 장소 사용을 취소했고, 이후 명예교수 명의로 다시 신청했으나 행사일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이 교수는 "명예교수는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공부도 할 수 있다. 공간을 쓸 자격이 있다고 보고 신청했다. 알아보겠다고 해 놓고 대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나온 총무처장의 설명은 달랐다. 행사 포스터 게시 후 학생들이 반대 대자보를 붙였고, 이후 최태관 교수가 이곳에서는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양측 대자보가 내려갔다는 것이다. 학생들도 "취소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대자보를 뗐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정배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한신대에 안병무·서남동·김재준이 있듯이 최병헌·유동식·윤성범·변선환은 우리 감신의 얼굴"이라며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를 잇는 학문적 장을 만들어 놓을 테니 학교가 학생들을 다독여 학문 토론회장으로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학문적 토론의 장이 무너졌다"


카페로 옮긴 자리에서는 책임 공방을 넘어 제도적·사회적 맥락의 비판이 이어졌다. 한인철 목사는 "감신이 많이 보수화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오늘 사태를 보면서 교단이 아닌 학생들에 의해 변 선생님이 밀려나는 게 충격"이라며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막거나 중재할 총장과 교수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이 학교에서 변 선생님 탄신 100주년 행사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우려했다. 총장은 당시 출장중이었다고 한다.
최형근 목사는 "교단에서 버림받은 변 박사님이 그렇게 애착을 가지셨던 학교에서조차 지금 내쫓기고 있는 것"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그는 "제도화되고 교리화된 '교회 밖에서의 구원'을 말씀하신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작은 풀뿌리 교회 10개만이라도 연대해서 박사님을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혜선 박사는 WCC·ACC 관련 활동 과정에서 축적된 압력과 상처를 언급하며 "학교에서의 대화 부재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폐쇄성으로 이어져 더 큰 폭력의 시대로 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표현했다. 한 대학원생은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 "상호 존중과 진심 어린 대화의 부재"를 꼽으면서도, 학술제가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야 하며 상대 주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 대한 인격적 비난이나 왜곡된 표현은 삼가 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재추진 다짐 … "내년 100주년 더 깊이 준비하자"
참석자들은 이번 일이 단순한 행사 차질을 넘어 학문적 토론의 장이 무너진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한 원로는 감신대에서 허용되지 않으면 다른 장소에서라도 조속히 재모임을 추진하자고 제안했고, 다른 원로도 이날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탄신 100주년을 더 깊이 있게 준비하자고 했다. 주최측도 조속히 재추진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한국信연구소가 여는 연속 학술행사의 두 번째 순서로, 지난 5월 6일 한신대에서 1차 행사가 열렸으며 오는 10월 27일 이화여대, 11월 12일 서울기독대에서 다음 순서가 예정돼 있다. 변선환이 몸담았던 감신대에서 예정됐던 행사만 열리지 못한 셈이다. 변선환 박사는 감신대 학장을 지낸 토착화신학·종교신학자로 아시아 종교와의 대화를 주창했으며, 1992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종교재판에서 출교를 선고받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