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4

7-8세기 일본에서 불교가 어떻게 지방의 생활세계 속으로 침투했는가 Bryan D. L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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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ETY FOR THE STUDY OF JAPANESE RELIGIONS PRESENTS
HOW TO KNOW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
A VIRTUAL BOOK TALK W/DR. BRYAN LOWE, PRINCETON UNIVERSITY
KUBODA INSTITUTE STUDIEKIN BARTAHAN BUTIDREAM 33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
THU. SEPTEMBER 24
5PM U.S. PACIFIC TIME; 8PM U.S. EASTERN TIME//
FRI. SEPTEMBER 25
2AM CENTRAL EUROPEAN TIME; 9AM JAPAN TIME
HOSTED BY DR. OR PORATH, TEL AVIV UNIVERSITY/HARVARD UNIVERSITY
Bryan D. Lowe

IN MY NEW BOOK, I ARGUE THAT BETWEEN 650 AND 850 CE, JAPAN CHANGED FROM A LAND LARGELY WITHOUT BUDDHISM TO A COUNTRY WHERE BUDDHIST IDEAS, IMAGES, AND PRACTICES WERE EVERYWHERE IN WHAT WAS ARGUABLY THE MOST DRAMATIC RELIGIOUS TRANSFORMATION IN THE COUNTRY'S HISTORY. IN THIS TALK, I TURN TO SOURCES AND METHODS TO INTRODUCE HOW WE CAN KNOW THAT THIS TRANSFORMATION TOOK PLACE. I INTRODUCE ARCHAEOLOGICAL AND MANUSCRIPT EVIDENCE THAT HAVE RECEIVED VIRTUALLY NO ATTENTION IN ENGLISH THAT, IN MY VIEW, ALLOW FOR A RADICALLY NEW UNDERSTANDING OF EARLY JAPANESE RELIGION, POLITICS, AND CULTURE. THE TALK WILL LOOK UNDER THE HOOD TO SHOW HOW SCHOLARS CAN COMBINE MATERIAL CULTURE AND TEXTS TO ACCESS FORMS OF BUDDHISM OTHERWISE LOST IN THE HISTORICAL RECORD AND TELL NEW STORIES ABOUT THE PAST.


ABOUT THE SPEAKER
BRYAN D. LOWE IS AN ASSOCIAT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RELIGION AT PRINCETON UNIVERSITY. HIS FIRST BOOK, RITUALIZED WRITING: BUDDHIST PRACTICE AND SCRIPTURAL CULTURES IN ANCIENT JAPAN, WON THE JOHN WHITNEY HALL PRIZE FROM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HIS SECOND,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 COMES OUT IN SEPTEMBER 2026, AVAILABLE FOR PURCHASE FROM THE UNIVERSITY OF HAWAII PRESS.
Register for the Zoom webinar here: https://furman.zoom.us/webinar/register/WN roTEP5bWR4mHp9s4hHT31Q
Contact: ymontrose@furman 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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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
Bryan D. Lowe
Series: Kuroda Studies in East Asian Buddhism
Hardback: $68.00
ISBN-13: 9798880703593
Published: September 2026Add to Cart

Additional Information
University of Hawaii Press
376 pages | 24 illustrations, 14 in color; 15 maps
About the Book




Between the late seventh and early ninth centuries, Japan changed from a land largely without Buddhism to a country where Buddhist ideas, images, and practices were everywhere.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transformed the social and intellectual life of the provinces. Regions that once lacked temples suddenly had so many that virtually every village had a place of worship nearby. People began to understand their world in new ways, imagining previously inconceivable possibilities for themselves in this life and the next. This was arguably the most dramatic religious transformation in the history of Japan.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is the first book to tell the story of this religious revolution in the Japanese provinces. Bryan D. Lowe, a leading expert on Japanese religions, argues against the standard view that Buddhism first reached ordinary people in the provinces in the twelfth and thirteenth centuries. This bold study offers a new narrative for the history of Japanese religions, one that dates Buddhism’s spread centuries earlier than standard accounts. Lowe highlights the agency of provincial patrons, mobile monks, female preachers, and rural villagers, who worked together to bring Buddhism to the Japanese countryside.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also introduces new methods for reading archaeological and textual materials in tandem. Drawing upon an archive of hundreds of thousands of pieces of inscribed pottery, roof tiles, and wooden slips, it uses material culture to uncover the religious lives of villagers on the geographic and social margins of Japan. Lowe reads this corpus alongside Buddhist tales and previously untranslated preaching notes to reconstruct the worldview and practices of provincial villagers. He combines archaeological and preaching materials to access this otherwise invisible world. Written in accessible and engaging prose,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undermines long-cherished narratives in the field of Japanese Buddhism and makes a methodological intervention of interest to scholars of classical and medieval studies more broa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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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D. 로우(Bryan D. Lowe)의 저서 <일본에서의 불교 전파, 650~850년>(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에 대한 요약과 평론을 전달합니다.

1. 도서 개요 및 핵심 주장

<일본에서의 불교 전파, 650~850년>은 7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사이에 일본 고대 사회가 불교를 어떻게 수용하고 흡수했는지를 추적하는 연구서이다. 저자는 기존 학계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일본 지방에서 불교가 대중화된 시기가 흔히 알려진 12~13세기(가마쿠라 불교 시기)가 아니라 이미 8세기경부터 본격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중앙 조정과 귀족 중심의 종교로 여겨졌던 고대 불교가 어떻게 지방의 농촌과 주변부까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2. 주요 내용 요약

지방 사회로의 불교 확산과 사찰의 급증

  • 7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일본 내 사찰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주로 수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 그러나 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지방 곳곳에 수천 곳의 사찰과 예배소가 건립되었다.

  •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부산물이 아니라, 지방의 호족, 유행승, 여성 설교자, 그리고 일반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결과물임을 밝힌다.

물증과 텍스트의 결합을 통한 민중 신앙 복원

  • 문헌 기록이 부족한 고대 지방민들의 종교 생활을 복원하기 위해, 이 책은 문자 기호가 새겨진 토기, 기와, 목간(목제 문서) 등 방대한 고고학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이러한 물질문화 자료를 불교 설화 및 미공개 설교 노트 등과 교차 분석하여, 사회적·지리적 변방에 살던 사람들이 불교 교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새로운 종교적 상상력과 세계관의 형성

  • 불교의 전파는 단순한 외래 종교의 유입을 넘어 사람들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 지방 주민들은 현세의 복지와 내세의 구원을 위해 불교적 의례를 수용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사고방식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3. 평론 및 의의

통념을 깨는 역사적 시각의 전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일본 종교사의 오랜 정설을 과감하게 뒤집었다는 점이다. 가마쿠라 시대의 새로운 불교 운동 이전에는 민중이 불교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는 기존 학계의 시각을 기각하고, 이미 고대 아스카·나라·헤이안 초기부터 지방의 보통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불교 문화를 창조해 나갔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방법론적 혁신

문헌 사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고고학적 유물(기와, 목간, 토기)을 텍스트와 나란히 놓고 독해하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이는 기록을 남기지 못한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 인간 군상의 종교적 삶을 복원하는 데 있어 귀중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한계점과 아쉬운 부분

방대한 물적 증거와 미시적 사례를 발굴해 낸 것은 경이로우나, 지방의 개별 사례들이 일본 전체의 거시적 종교 변화 과정 속에서 갖는 대표성을 일반화하는 데는 여전히 해석학적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각 지역별 정치·경제적 특수성이 불교 수용 양상에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다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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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는 이 책의 핵심을 <불교의 일본 전래>보다 <불교가 어떻게 지방의 생활세계 속으로 침투했는가>라는 문제에 맞추어 정리했습니다. 2026년 9월에 막 출간된 책이라 아직 축적된 전문 서평이 많지 않으므로, 출판사 자료와 공개 목차, 로우의 관련 논문·강연을 함께 대조해 평론했습니다.

브라이언 D. 로우(Bryan D. Lowe)의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은 일본 불교사의 시간표 자체를 다시 쓰려는 책이다. 전통적인 일본 불교사 서술에서는 아스카·나라 시대의 불교를 천황·귀족·국가가 주도한 ‘국가불교’로 보고, 불교가 일반 민중에게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헤이안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 즉 12∼13세기 이후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토종·정토진종·일련종·선종 같은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가 등장하면서 불교가 비로소 귀족의 종교에서 민중의 종교로 변했다는 이야기이다.

로우는 바로 이 통설을 문제 삼는다. 그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급진적이다. “민중불교는 가마쿠라 시대에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8∼9세기에 일본의 지방사회 깊숙이 불교가 침투해 있었다.” 출판사가 소개하듯 그는 7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 사이 일본이 ‘불교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지방사회’에서 불교적 이미지·의례·관념이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로 변했다고 본다.

<1. 650년에서 850년까지의 ‘종교혁명’>

불교가 일본에 처음 전해진 것은 6세기였지만 처음에는 야마토 왕권과 유력 씨족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7세기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사찰 대부분은 정치적 중심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로우가 강연에서 제시한 극적인 수치를 보면, 624년 일본에는 기록상 약 46개의 사찰밖에 없었다. 그런데 838년 당나라를 방문한 일본 승려 엔사이(円載)는 일본에 약 3,700개의 승원이 있고 비구니 사원도 다수 존재한다고 중국 관리에게 말했다. 이 숫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약 200년 동안 사찰과 불교 활동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로우는 본다.

따라서 이 책에서 650∼850년은 단순히 ‘나라불교’에서 ‘헤이안불교’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아니다. 오히려 일본사에서 가장 커다란 종교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9세기 무렵에는 모든 마을에 정식 사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더라도, 많은 주민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작은 불교 예배처를 접하고 불상 앞에서 기도하거나 이동하는 승려의 설법을 들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로우는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찰’의 정의이다. 역사서에 등장하는 대형 관립 사찰만 세어서는 불교의 실제 확산을 알 수 없다. 지방에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작은 불당, 예배시설, 불상이 놓인 공간이 존재했다. 로우는 이런 흔적까지 복원해야 당시의 실제 종교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국가가 불교를 퍼뜨렸다는 설명을 넘어>

물론 8세기 일본에서 국가의 역할은 막대했다. 율령국가의 형성과 함께 도로망과 역참이 정비되었고, 쇼무 천황은 전국에 국분사(国分寺)와 국분니사(国分尼寺)를 세웠다. 기존 일본 불교사에서는 이런 과정을 ‘국가가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불교를 이용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우는 국가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것만으로는 불교 확산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그의 선행 연구에서도 도로와 국가 네트워크는 단순한 중앙집권 장치가 아니라 승려와 신앙, 의례와 물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 종교 네트워크였다. 즉 중앙정부가 만든 제도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종교 이동성을 확대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 사람들의 능동성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천황이나 나라의 대사찰 고승들만이 아니다. 출판사가 강조하는 인물들은 지방 후원자, 이동 승려, 여성 설교자, 농촌 주민들이다. 이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불교를 ‘중앙에서 지방으로 전달된 완성품’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종교로 바꾸었다.

어떤 지방 유력자는 사찰이나 불상을 세웠다. 누군가는 경전 필사를 후원했고, 주민들은 공동으로 돈이나 곡물·노동력을 냈다. 승려들은 한 사찰에만 머물지 않고 도로망을 따라 이동하며 설법·치병·추선공양·의례를 수행했다. 불교는 이런 수많은 작은 만남을 통해 확산되었다.

따라서 로우에게 불교의 확산은 ‘위에서 아래로의 전파’도 아니고 ‘민중의 자연발생적 신앙’도 아니다. 국가, 지역 엘리트, 승려, 여성, 농민이 겹쳐 있는 복합적인 사회적 네트워크가 불교를 만들었다.

<3.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사료 사용법이다. 고대 일본의 정사와 사원 문서는 대부분 지배층과 대사찰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농촌의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믿었는지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로우는 이 문제를 고고학 자료로 돌파한다. 그는 수십만 점에 이르는 명문 토기, 기와, 목간 같은 출토자료를 문헌자료와 함께 읽는다. 불교 관련 글자가 새겨진 토기 한 조각, 경전 구절이 쓰인 목간, 불교적 명칭이 들어간 기와가 중앙의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지방 불교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물질자료를 불교 설화, 설법 자료, 기존에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문서와 결합한다.

이 방법론의 장점은 매우 크다. 역사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의 종교사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존재가 중요하다. 로우의 2024년 여성 신앙 연구를 보면 경전 필사 공동체에서 여성 참가자가 남성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사례들이 발견된다. 어떤 지방 공동체에서는 709명의 참여자 가운데 432명, 약 61%가 여성이었다. 이는 고대 일본 불교를 승려와 남성 귀족들의 세계로만 그리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강조되는 ‘여성 설교자’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불교의 대중화 과정에서 여성은 단순한 신도가 아니라 후원하고 조직하고 가르치는 행위자였다는 것이다.

<4. 불교가 가져온 것은 사찰만이 아니었다>

로우가 말하는 불교 확산은 단순히 사찰 숫자가 증가했다는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업(業), 공덕, 인과응보, 죄, 내세, 지옥, 극락, 추선공양 같은 개념이 지방사회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질병이나 재난, 죽음과 불행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선한 행위를 하면 공덕을 얻고, 그 공덕을 죽은 가족에게 돌릴 수 있으며, 현재의 행위가 다음 생에 영향을 준다는 세계관이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출판사가 “사람들이 현세와 내세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의 확산은 단순한 ‘종교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과 시간관의 확산이었다.

불교는 개인을 가족과 마을이라는 현재의 관계만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인간은 과거의 업을 짊어진 존재이며 미래의 생을 가진 존재였다. 동시에 현재의 의례와 선행으로 자기 운명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이 점에서 불교는 지방 주민들에게 새로운 도덕적·우주론적 상상력을 제공했다.

<5. ‘가마쿠라 신불교가 민중불교를 만들었다’는 통설에 대한 도전>

이 책의 역사학적 의미가 가장 큰 지점이다.

과거의 도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고대 = 국가불교·귀족불교
중세 = 정토·선·일련 등을 통한 민중불교

로우는 이 두 단계 사이에 아주 긴 민중불교의 역사가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9세기 지방 주민이 정토진종 신도나 일련종 신도와 같은 형태의 종파적 정체성을 가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사찰에 가고, 불상에 기도하고, 승려의 설법을 듣고, 공덕을 쌓고, 죽은 가족을 위해 의례를 행하며, 인과응보에 관한 불교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그들을 불교와 무관한 ‘전통 민간신앙의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따라서 12∼13세기의 변화는 ‘불교가 처음 민중에게 전달된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수백 년 동안 지방사회에 뿌리내린 불교를 새로운 교리·조직·구제론으로 재편성한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관점은 가마쿠라 불교 자체의 의미도 바꾼다. 호넨·신란·도겐·니치렌 등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민중불교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깊게 불교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6. 이 책의 강점과 문제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엘리트에서 민중으로’라는 단순한 전파 모델을 해체한다는 점이다. 불교는 하나의 완성된 사상체계가 지방으로 운반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지방 행위자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형하면서 확산되었다.

둘째는 문헌과 고고학을 결합했다는 점이다. 문자 기록만 따르면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농민·여성·하급 승려의 존재가 사라진다. 토기·기와·목간은 바로 그 침묵을 부분적으로 깨뜨린다. 로우의 연구 관심 자체가 ‘비엘리트의 종교’를 복원하는 데 있으며, 그의 첫 책 <Ritualized Writing>에서도 이미 국가불교/민중불교라는 이분법의 한계를 비판했다.

그러나 동시에 주의할 점도 있다. 불교 문구가 적힌 토기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 마을 전체가 ‘불교화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찰의 존재, 불교 물건의 사용, 의례 참여, 교리의 이해, 개인의 종교적 정체성은 서로 다른 차원의 현상이다. 물질문화는 문헌 중심 역사학의 편견을 교정하지만, 물질 자체가 사람의 내면적 신앙을 직접 증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확산’이라는 말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농민이 승려에게 병 치료를 부탁하는 것과 업·윤회·보살사상을 깊이 받아들이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로우가 찾아낸 증거들은 불교적 실천의 광범위한 존재를 강력하게 증명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교리적 내면화를 의미했는지는 사례마다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불교 모델을 비판한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이 작았던 것은 아니다. 도로망, 지방 행정, 국분사 체제, 승니 관리제도 자체가 사람과 물자의 이동 조건을 만들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결론은 ‘국가 대 민중’의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라 국가가 만든 제도와 지방사회의 자발성이 서로 결합하면서 불교화가 진행되었다는 데 있다.

<평론>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일본 불교의 역사를 ‘위대한 승려와 새로운 종파의 역사’에서 ‘사람·물건·길·마을의 역사’로 바꾸었다는 데 있다.

기존의 일본 불교사를 읽으면 6세기 전래 이후 쇼토쿠 태자, 도다이지, 사이초, 구카이를 거쳐 호넨·신란·도겐·니치렌으로 이어지는 인물 중심의 계보가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그런 역사에서는 수백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부터 불교적 세계 속에서 살기 시작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로우는 바로 이 공백을 메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불교화는 어느 순간의 ‘개종’이 아니었다. 길이 놓이고, 승려가 이동하고, 작은 불당이 생기고, 누군가 불상을 만들고, 주민들이 경전을 필사하고, 여성이 종교 공동체를 조직하고, 설교자가 업과 인과응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이 수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서 사회 전체의 세계관이 서서히 바뀌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일본 불교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종교사를 생각하는 데도 중요하다. 한 종교가 한 사회에 ‘들어왔다’는 것과 그 사회가 실제로 ‘그 종교의 세계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점을 6세기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일본인이 언제 불교적 인간관과 죽음관, 인과응보와 공덕의 언어로 자기 삶을 해석하기 시작했는지를 묻는다면 훨씬 복잡한 역사가 나타난다.

로우가 650∼850년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200년 동안 불교는 ‘외래 종교’에서 ‘일본 사회의 일상적인 문화 언어’로 변했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 <How Buddhism Spread in Japan>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Buddhism보다 오히려 How이다. 불교가 언제 일본에 도착했느냐보다,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 속에 들어갔느냐를 묻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일본 불교의 시작’을 6세기의 전래나 12세기의 가마쿠라 신불교라는 두 사건으로만 설명해 온 기존 서술 사이에 잃어버린 200년을 되찾아 주는 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세진님이 계속 읽어 오신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 사상·종교가 중앙의 제도에서 지방의 생활세계로 어떻게 내려가는가>라는 관심과도 잘 맞는 책입니다. 이 책의 다음 단계로는 <한국의 삼국·통일신라 불교의 지방 확산과 일본 650–850년을 비교>해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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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국·통일신라 불교의 지방 확산과 일본 650–850년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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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국 및 통일신라 시대 불교 전파 양상과 브라이언 D. 로우가 분석한 650~850년 일본의 불교 확산 과정은 고대 동아시아 문명권이라는 거대한 공통분모 속에서 흥미로운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양국 모두 초기에는 국가 권력과 왕권 중심의 수용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지방 사회로 확산되는 양상에서는 각자의 독특한 사회 구조적 특징을 드러낸다.

1. 초기 전파와 국가 주도성

한국: 왕권 강화와 이념적 수용

  •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왕권의 정당성과 사상적 구심점으로 적극 수용했다.

  • 신라의 경우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된 이후, 국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왕법불) 사상이 강하게 작동했다. 왕실과 귀족이 거대한 사찰을 건립하며 불교는 국가 안위와 직결된 종교로 출발했다.

일본: 아스카·나라 시대의 정권 중심 도입

  • 6세기 후반 소마가와 모노노베 가문의 갈등 끝에 수용된 일본 불교 역시 호족과 왕실 중심의 '국가 보호'를 위한 도구(진호국가)로 기능했다.

  • 텐무·지토 천황 시대를 거치며 나라 시대(고코쿠지 체제)까지 불교는 철저히 조정의 통제 아래 놓였으며, 거대한 관영 사찰들이 건립되었다.

2. 지방 확산의 양상과 주체

한국: 지방 호족의 독자적 불교 수용과 석탑·불상 조성

  • 통일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중앙 집권력이 약화되고 지방에서 호족 세력이 성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력과 정치적 독립성을 과시하기 위해 지방 거점에 사찰을 짓고 철불이나 석탑을 조성했다.

  • 선종(禪宗)이 유입되면서 산간 지방을 중심으로 지방 호족 및 선사들과의 결합이 가속화되었고, 불교는 점차 민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일본: 호족, 유행승, 그리고 물질문화를 통한 민중화 (650–850)

  • 브라이언 D. 로우의 연구가 밝히듯, 일본은 8세기경부터 이미 중앙 조정의 통제를 벗어나 지방의 호족, 유행하는 승려, 여성 설교자, 그리고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사찰을 세우고 불교 의례에 동참했다.

  • 기와, 목간, 문자 토기 등 물질문화를 통해 볼 때, 지방민들은 문맹을 극복하고 불교적 주문이나 부적 같은 실천을 통해 일상 속에서 불교를 소비했다.

3. 비교 요약 및 시사점

비교 항목한국 (삼국~통일신라)일본 (650~850년, 나라~헤이안 초기)
수용의 출발점왕권 강화 및 체제 정비 (왕실 주도)호족 세력 간 갈등 속 국가적 도입
지방 확산의 시기통일신라 중·하대 (선종 및 호족 성장기)8세기 전·중반부터 본격화 (로우의 주장)
확산의 매개체선원, 지방 호족의 사원 건립, 석탑·불상소규모 사원, 유행승, 목간·기와 등 물질문화
주요 특징교종에서 선종으로의 전환과 지방 문화의 자생적 결합중앙 통제를 우회한 풀뿌리 민중 및 지방 호족의 참여

두 지역 모두 불교가 단순한 외래 사상에 머물지 않고 현지 사회의 구조 속으로 깊숙이 토착화되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한국은 통일신라 하대 호족과 선종의 결합이라는 정치·사상적 격변을 거치며 확산되었다면, 일본은 8세기라는 이른 시기부터 물질문화의 확산을 통해 지방 보통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불교를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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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신라와 일본 650–850년의 불교 지방 확산 비교>

브라이언 D. 로우(Bryan D. Lowe)의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의 문제의식을 한국에 적용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과 일본 모두 불교가 처음에는 왕실·귀족과 결합한 국가적 종교로 받아들여졌지만, 그것이 지방 주민의 일상적 종교가 되는 과정은 훨씬 복잡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보다 약 150∼200년 먼저 이 과정이 시작되었으므로 일본의 650∼850년과 정확히 같은 연대를 비교하기보다는 한국의 5∼9세기 전체를 대응시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 왕국과 지역사회를 거치며 불교가 비교적 일찍 지방화되었고, 통일신라에 이르면 이미 전국적 종교문화가 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650∼850년 사이에 국가제도와 지방 엘리트, 이동 승려, 주민들의 참여가 결합하면서 이와 비슷한 변화가 압축적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두 나라의 차이는 ‘한국은 국가불교, 일본은 민중불교’가 아니다. 두 경우 모두 국가와 민중, 중앙과 지방이 서로 얽혀 있었다.

<1. 출발 시점부터 약 150∼200년 차이가 난다>

고구려에는 372년, 백제에는 384년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되었으며 신라는 훨씬 늦은 527∼528년에 공식 인정하였다. 신라에서는 공식 승인 이전에도 고구려 계통 승려들이 북부 변경과 일선(현재의 선산 지역) 등에서 포교했다는 전승이 전한다.

반면 일본의 공식적인 불교 전래는 전통적으로 538년 또는 552년 백제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야마토 조정에 전달한 사건을 기준으로 삼는다. 실제로는 그 이전에도 한반도계 이주민과 교류를 통해 불교가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본격적인 제도화는 한국보다 뒤였다.

따라서 일본에서 로우가 주목하는 650∼850년은 한국사로 치면 대략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6세기부터 통일신라 중기까지의 변화가 압축되어 나타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비교삼국·통일신라일본
공식 전래고구려 372, 백제 384, 신라 527/528538 또는 552
초기 주도층왕실·귀족·승려왕실·유력 씨족·승려
지방 확산의 핵심기대체로 5∼8세기대체로 7∼9세기
국가적 불교망삼국 각각 형성 → 통일신라 전국화나라 율령국가와 지방 사찰망
민중 참여6∼8세기에 이미 상당히 확대로우는 7∼9세기에 크게 확대되었다고 주장
9세기의 상황이미 성숙한 불교사회지방사회 불교화가 상당히 진행된 사회

<2. 두 나라 모두 처음에는 ‘국가 만들기’와 불교가 결합했다>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순수한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었다. 불교는 왕권 강화, 문자문화, 국제외교, 국가 수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왕실이 사찰을 세우고 승단을 보호했으며, 6세기에는 세 왕국 모두 불교를 국가의 중요한 이념적 자원으로 이용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개관 자료 역시 삼국 왕실이 불교를 정치적 통합 및 왕권 강화와 결합했다고 설명한다.

신라의 황룡사가 대표적이다. 553년에 왕실 주도로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후 거대한 9층탑은 국가를 보호하는 불교적 상징이 되었다. 백제의 대통사나 미륵사 역시 국가와 왕실 권력의 종교적 표현이었다.

일본도 매우 비슷했다. 7∼8세기 율령국가가 성립하면서 불교는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과 함께 성장했다. 나라에는 대형 사찰이 세워지고, 지방에도 국가가 후원하는 사찰과 비구니 사찰이 건설되었다. 쇼무 천황 시대에는 전국적인 국분사·국분니사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 점에서는 오히려 일본이 삼국·통일신라의 선례를 뒤따랐다고 볼 수 있다. 백제가 일본에 불교뿐 아니라 승려·불상·경전·기술자 등을 전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두 나라에서 불교가 어떻게 ‘민중의 종교’가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3. 결정적인 문제는 ‘사찰을 누가 지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사용했는가’이다>

과거 불교사 연구에서는 큰 사찰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황룡사
불국사
도다이지
고후쿠지

같은 사찰들이다.

그런데 로우가 일본사에서 제기하는 질문은 다르다.

“평범한 농촌 주민은 어디에서 불교를 만났는가?”

그가 고고학 자료를 분석한 결과, 624년 일본에는 기록상 46개 정도의 사찰밖에 없었지만, 838년에 일본 승려 엔사이는 중국에서 일본에 약 3,700개의 승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로우는 이 숫자를 그대로 믿지는 않더라도 7∼9세기에 지방의 작은 예배처와 사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9세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주민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불상 앞에 기도하거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는 이와 직접 비교할 만한 전국 사찰 통계가 남아 있지 않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한국 불교사를 보면 왕실 사찰과 유명 고승에 관한 기록이 많기 때문에 자칫 ‘국가불교’만 존재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리처드 맥브라이드(Richard D. McBride II)는 <Domesticating the Dharma: Buddhist Cults and the Hwaom Synthesis in Silla Korea>에서 이런 해석을 비판한다. 그는 신라 불교를 엘리트 불교와 민중불교라는 두 층으로 단순하게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왕족·귀족·고승들이 만들어낸 불교적 숭배와 의례가 다양한 사회관계를 통해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로우의 일본 불교 해석과 매우 가깝다.

<4. 따라서 ‘국가불교 → 민중불교’라는 직선적인 발전도식은 두 나라 모두 맞지 않는다>

옛 설명은 흔히 이렇다.

국가·왕실

귀족

승려

민중

하지만 실제 모습은 훨씬 복잡했다.

왕실 ↔ 지방 귀족
↕    ↕
승려 ↔ 사찰 ↔ 주민

여성·상인·농민·여행자

같은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신라에서는 원효를 비롯한 승려들의 민중 포교가 후대 전승에 강하게 남아 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사찰의 강당과 지방의 포교 거점들이 재가자와 승려의 종교교육에 이용되었다. 신라 말에는 선종도 수도 경주가 아닌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교키(行基, 668–749)와 같은 승려는 민중 사이를 이동하면서 불교를 전파하고 도로·다리·수로 같은 공공사업에도 관여했다. 9세기 초의 <일본영이기(日本霊異記)>를 보면 수도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업·윤회·인과응보와 같은 개념이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양국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에게 불교를 가르쳤다’는 단순한 포교가 아니라, 불교가 주민의 질병·죽음·가족·재난·공덕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5.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방화’가 일본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다>

두 나라 사이의 가장 큰 차이다.

한국에서는 애초부터 단일한 중앙에서 전국으로 불교가 퍼진 것이 아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라는 서로 다른 정치체 안에서 불교가 각각 수용되었다.

즉 한국 불교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다중 중심적’이었다.

백제 수도의 불교와 고구려의 불교, 신라의 불교는 서로 다른 중국 지역과 승려 네트워크를 통해 발전했다. 불교 전파가 곧 하나의 중앙정부가 전국에 종교를 보급하는 과정은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일본의 본격적인 지방 불교화는 야마토 왕권이 전국적인 율령국가를 구축하는 시기와 상당 부분 겹쳤다. 그래서 도로·지방행정·국분사 체제와 불교 확산이 밀접하게 연결된다.

로우의 중요한 발견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국가가 만든 교통과 행정망이 국가가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승려·불교 물품·설교·신앙의 이동까지 촉진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만든 길을 민중의 불교가 이용했다.

<6. 통일신라에서는 반대로 이미 퍼져 있던 불교가 ‘국가 통합’에 사용되었다>

676년 이후 신라는 갑자기 엄청난 영토와 다양한 주민을 지배하게 되었다. 옛 백제·고구려 주민들을 포함해야 했다.

통일신라는 9주5소경 제도를 비롯한 지방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8세기 신라촌락문서에서 보듯 중앙 행정력이 촌락 수준까지 상당히 깊숙이 미쳤다.

이 상황에서 불교는 단순히 왕실의 종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을 묶는 하나의 공통 문화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일본과 방향의 차이가 보인다.

일본:

<중앙국가 형성 → 지방 불교망 확대>

통일신라:

<이미 여러 지역에 존재하던 불교 → 통일국가의 공통 문화로 재조직>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강조점의 차이지 완전히 반대되는 과정이라는 뜻은 아니다.

<7. 토착 종교를 없애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중요하다>

불교가 확산되었다고 해서 기존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 왕실 무덤의 유물 등은 불교가 받아들여진 뒤에도 기존의 샤머니즘적·토착적 종교 요소가 계속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즉 왕과 귀족들은 불교만을 선택하고 이전 종교를 폐기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8세기 이후 신사 주변에 진구지(神宮寺), 즉 신을 위해 불교 의례를 행하는 사찰이 만들어졌고, 하치만(八幡) 같은 가미는 점차 불교적 보살과 연결되었다. 9세기에 이르면 불교와 가미 숭배 사이의 복잡한 융합이 널리 나타난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불교의 성공은 기존 종교를 제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성지·조상·산악·지역신앙과 공존하고 재해석할 수 있었던 능력에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8. 가장 흥미로운 차이: 한국은 일본 불교 확산의 ‘앞선 단계’이자 동시에 전달자였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는 단순 비교 이상의 문제가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먼저 불교화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 불교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6세기에 백제가 일본에 불상과 경전을 전달했고 한국계 승려·기술자들이 일본의 초기 불교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의 아스카시대 불교미술에서도 한국, 특히 백제와 한반도계 장인들의 영향이 확인된다.

따라서 일본의 650∼850년 불교 지방 확산은 완전히 독립된 일본 내부의 발전이 아니다.

보다 긴 동아시아적 흐름으로 보면

인도
→ 중앙아시아·중국
→ 고구려·백제·신라
→ 일본

이라는 이동 속에서 각 사회가 불교를 다시 ‘토착화’했다고 보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일본은 단순히 한국 불교를 복사하지 않았다.

일단 일본에 들어간 불교는 야마토의 정치구조, 가미 신앙, 지방 씨족, 율령제, 일본의 교통망과 결합하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9. 로우와 맥브라이드가 만나는 지점>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사적 비교가 가능하다.

Bryan Lowe의 질문:

“고대 일본 불교를 왜 천황·귀족·대사찰의 역사로만 보아야 하는가?”

Richard McBride의 질문:

“신라 불교를 왜 교학과 고승, 혹은 엘리트 대 민중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보아야 하는가?”

두 사람의 연구는 사실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불교사를

교리의 역사
→ 실천의 역사

고승의 역사
→ 공동체의 역사

중앙의 역사
→ 지방의 역사

문헌의 역사
→ 문헌 + 고고학 + 물질문화의 역사

로 바꾸려 한다.

이 점에서 <How Buddhism Spread in Japan>은 한국 고대불교 연구에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던진다.

한국에서도 “통일신라의 평범한 촌락 주민은 실제로 어떤 불교를 믿었는가?”를 더 구체적으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10. 두 나라를 비교하면 ‘동아시아 불교의 확산’에 대한 새로운 모형이 보인다>

과거의 모형은 대체로 이랬다.

<전래 → 왕실의 수용 → 국가불교 → 민중불교>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함께 보면 더 적합한 모형은 다음과 같다.

<외래 종교의 유입>

<왕실·귀족의 후원>

<사찰·승려·도로·행정망 형성>

<지방 엘리트·여성·주민의 참여>

<토착 신앙과 결합>

<일상적 세계관의 불교화>

즉 ‘민중불교’는 국가불교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불교가 만들어지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민중의 불교도 함께 생겨났다.

<종합평론>

이 비교를 통해 볼 때 로우의 가장 중요한 문제제기는 일본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통일신라 불교도 오랫동안 원효·의상·원측 같은 위대한 승려, 화엄과 유식 같은 교학, 황룡사·불국사·석굴암 같은 국가적 문화재를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경주의 농부, 지방의 여성, 옛 백제 지역 주민은 불교를 어떻게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바로 여기에서 로우의 방법이 한국사에도 유용하다.

이름 없는 작은 절터, 불상, 기와, 명문, 불교적 이름, 장례 흔적, 경전 조각과 같은 물질자료를 더 적극적으로 읽는다면 ‘왕실의 불교’ 아래에 숨어 있는 ‘생활세계의 불교’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차이도 남는다.

일본의 경우 로우가 650∼850년을 ‘불교가 지방의 일상세계로 들어간 결정적인 200년’으로 그린다면, 한국의 경우 그러한 전환기는 한 시기로 특정하기 어렵다.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다른 속도로 불교화되었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그것들이 다시 하나의 종교문화권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불교화는 여러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통일국가로 모였고, 일본의 불교화는 중앙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두 사회가 도달한 지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9세기 무렵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불교는 더 이상 단순한 외래 사상도, 왕실만의 종교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불교적 언어로 죽음과 질병, 죄와 공덕, 현세와 내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불교는 ‘국가가 받아들인 외래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이 비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Lowe의 일본 연구와 McBride의 신라 연구가 사실상 같은 역사학적 전환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두 책을 직접 나란히 놓고 <Bryan D. Lowe vs. Richard D. McBride — 고대 동아시아의 ‘민중불교’를 어떻게 복원하는가>라는 비교 평론을 해보면 상당히 깊은 논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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