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
Bryan D. Lowe
Series: Kuroda Studies in East Asian Buddhism
Hardback: $68.00
ISBN-13: 9798880703593
Published: September 2026Add to Cart
Additional Information
University of Hawaii Press
376 pages | 24 illustrations, 14 in color; 15 maps
About the Book
Between the late seventh and early ninth centuries, Japan changed from a land largely without Buddhism to a country where Buddhist ideas, images, and practices were everywhere.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transformed the social and intellectual life of the provinces. Regions that once lacked temples suddenly had so many that virtually every village had a place of worship nearby. People began to understand their world in new ways, imagining previously inconceivable possibilities for themselves in this life and the next. This was arguably the most dramatic religious transformation in the history of Japan.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is the first book to tell the story of this religious revolution in the Japanese provinces. Bryan D. Lowe, a leading expert on Japanese religions, argues against the standard view that Buddhism first reached ordinary people in the provinces in the twelfth and thirteenth centuries. This bold study offers a new narrative for the history of Japanese religions, one that dates Buddhism’s spread centuries earlier than standard accounts. Lowe highlights the agency of provincial patrons, mobile monks, female preachers, and rural villagers, who worked together to bring Buddhism to the Japanese countryside.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also introduces new methods for reading archaeological and textual materials in tandem. Drawing upon an archive of hundreds of thousands of pieces of inscribed pottery, roof tiles, and wooden slips, it uses material culture to uncover the religious lives of villagers on the geographic and social margins of Japan. Lowe reads this corpus alongside Buddhist tales and previously untranslated preaching notes to reconstruct the worldview and practices of provincial villagers. He combines archaeological and preaching materials to access this otherwise invisible world. Written in accessible and engaging prose,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undermines long-cherished narratives in the field of Japanese Buddhism and makes a methodological intervention of interest to scholars of classical and medieval studies more broadly.
브라이언 D. 로우(Bryan D. Lowe)의 저서 <일본에서의 불교 전파, 650~850년>(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에 대한 요약과 평론을 전달합니다.
1. 도서 개요 및 핵심 주장
<일본에서의 불교 전파, 650~850년>은 7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사이에 일본 고대 사회가 불교를 어떻게 수용하고 흡수했는지를 추적하는 연구서이다. 저자는 기존 학계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일본 지방에서 불교가 대중화된 시기가 흔히 알려진 12~13세기(가마쿠라 불교 시기)가 아니라 이미 8세기경부터 본격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중앙 조정과 귀족 중심의 종교로 여겨졌던 고대 불교가 어떻게 지방의 농촌과 주변부까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2. 주요 내용 요약
지방 사회로의 불교 확산과 사찰의 급증
7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일본 내 사찰 수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주로 수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지방 곳곳에 수천 곳의 사찰과 예배소가 건립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부산물이 아니라, 지방의 호족, 유행승, 여성 설교자, 그리고 일반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결과물임을 밝힌다.
물증과 텍스트의 결합을 통한 민중 신앙 복원
문헌 기록이 부족한 고대 지방민들의 종교 생활을 복원하기 위해, 이 책은 문자 기호가 새겨진 토기, 기와, 목간(목제 문서) 등 방대한 고고학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물질문화 자료를 불교 설화 및 미공개 설교 노트 등과 교차 분석하여, 사회적·지리적 변방에 살던 사람들이 불교 교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새로운 종교적 상상력과 세계관의 형성
불교의 전파는 단순한 외래 종교의 유입을 넘어 사람들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지방 주민들은 현세의 복지와 내세의 구원을 위해 불교적 의례를 수용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사고방식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3. 평론 및 의의
통념을 깨는 역사적 시각의 전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일본 종교사의 오랜 정설을 과감하게 뒤집었다는 점이다. 가마쿠라 시대의 새로운 불교 운동 이전에는 민중이 불교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는 기존 학계의 시각을 기각하고, 이미 고대 아스카·나라·헤이안 초기부터 지방의 보통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불교 문화를 창조해 나갔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방법론적 혁신
문헌 사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고고학적 유물(기와, 목간, 토기)을 텍스트와 나란히 놓고 독해하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한계점과 아쉬운 부분
방대한 물적 증거와 미시적 사례를 발굴해 낸 것은 경이로우나, 지방의 개별 사례들이 일본 전체의 거시적 종교 변화 과정 속에서 갖는 대표성을 일반화하는 데는 여전히 해석학적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각 지역별 정치·경제적 특수성이 불교 수용 양상에 미친 영향에 대한 분석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다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의 삼국 및 통일신라 시대 불교 전파 양상과 브라이언 D. 로우가 분석한 650~850년 일본의 불교 확산 과정은 고대 동아시아 문명권이라는 거대한 공통분모 속에서 흥미로운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양국 모두 초기에는 국가 권력과 왕권 중심의 수용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지방 사회로 확산되는 양상에서는 각자의 독특한 사회 구조적 특징을 드러낸다.
1. 초기 전파와 국가 주도성
한국: 왕권 강화와 이념적 수용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왕권의 정당성과 사상적 구심점으로 적극 수용했다.
신라의 경우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된 이후, 국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왕법불) 사상이 강하게 작동했다. 왕실과 귀족이 거대한 사찰을 건립하며 불교는 국가 안위와 직결된 종교로 출발했다.
일본: 아스카·나라 시대의 정권 중심 도입
6세기 후반 소마가와 모노노베 가문의 갈등 끝에 수용된 일본 불교 역시 호족과 왕실 중심의 '국가 보호'를 위한 도구(진호국가)로 기능했다.
텐무·지토 천황 시대를 거치며 나라 시대(고코쿠지 체제)까지 불교는 철저히 조정의 통제 아래 놓였으며, 거대한 관영 사찰들이 건립되었다.
2. 지방 확산의 양상과 주체
한국: 지방 호족의 독자적 불교 수용과 석탑·불상 조성
통일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중앙 집권력이 약화되고 지방에서 호족 세력이 성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력과 정치적 독립성을 과시하기 위해 지방 거점에 사찰을 짓고 철불이나 석탑을 조성했다.
선종(禪宗)이 유입되면서 산간 지방을 중심으로 지방 호족 및 선사들과의 결합이 가속화되었고, 불교는 점차 민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일본: 호족, 유행승, 그리고 물질문화를 통한 민중화 (650–850)
브라이언 D. 로우의 연구가 밝히듯, 일본은 8세기경부터 이미 중앙 조정의 통제를 벗어나 지방의 호족, 유행하는 승려, 여성 설교자, 그리고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사찰을 세우고 불교 의례에 동참했다.
기와, 목간, 문자 토기 등 물질문화를 통해 볼 때, 지방민들은 문맹을 극복하고 불교적 주문이나 부적 같은 실천을 통해 일상 속에서 불교를 소비했다.
3. 비교 요약 및 시사점
| 비교 항목 | 한국 (삼국~통일신라) | 일본 (650~850년, 나라~헤이안 초기) |
| 수용의 출발점 | 왕권 강화 및 체제 정비 (왕실 주도) | 호족 세력 간 갈등 속 국가적 도입 |
| 지방 확산의 시기 | 통일신라 중·하대 (선종 및 호족 성장기) | 8세기 전·중반부터 본격화 (로우의 주장) |
| 확산의 매개체 | 선원, 지방 호족의 사원 건립, 석탑·불상 | 소규모 사원, 유행승, 목간·기와 등 물질문화 |
| 주요 특징 | 교종에서 선종으로의 전환과 지방 문화의 자생적 결합 | 중앙 통제를 우회한 풀뿌리 민중 및 지방 호족의 참여 |
두 지역 모두 불교가 단순한 외래 사상에 머물지 않고 현지 사회의 구조 속으로 깊숙이 토착화되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한국은 통일신라 하대 호족과 선종의 결합이라는 정치·사상적 격변을 거치며 확산되었다면, 일본은 8세기라는 이른 시기부터 물질문화의 확산을 통해 지방 보통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불교를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삼국·통일신라와 일본 650–850년의 불교 지방 확산 비교>
브라이언 D. 로우(Bryan D. Lowe)의 <How Buddhism Spread in Japan, 650–850>의 문제의식을 한국에 적용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과 일본 모두 불교가 처음에는 왕실·귀족과 결합한 국가적 종교로 받아들여졌지만, 그것이 지방 주민의 일상적 종교가 되는 과정은 훨씬 복잡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보다 약 150∼200년 먼저 이 과정이 시작되었으므로 일본의 650∼850년과 정확히 같은 연대를 비교하기보다는 한국의 5∼9세기 전체를 대응시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 왕국과 지역사회를 거치며 불교가 비교적 일찍 지방화되었고, 통일신라에 이르면 이미 전국적 종교문화가 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650∼850년 사이에 국가제도와 지방 엘리트, 이동 승려, 주민들의 참여가 결합하면서 이와 비슷한 변화가 압축적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두 나라의 차이는 ‘한국은 국가불교, 일본은 민중불교’가 아니다. 두 경우 모두 국가와 민중, 중앙과 지방이 서로 얽혀 있었다.
<1. 출발 시점부터 약 150∼200년 차이가 난다>
고구려에는 372년, 백제에는 384년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되었으며 신라는 훨씬 늦은 527∼528년에 공식 인정하였다. 신라에서는 공식 승인 이전에도 고구려 계통 승려들이 북부 변경과 일선(현재의 선산 지역) 등에서 포교했다는 전승이 전한다.
반면 일본의 공식적인 불교 전래는 전통적으로 538년 또는 552년 백제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야마토 조정에 전달한 사건을 기준으로 삼는다. 실제로는 그 이전에도 한반도계 이주민과 교류를 통해 불교가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본격적인 제도화는 한국보다 뒤였다.
따라서 일본에서 로우가 주목하는 650∼850년은 한국사로 치면 대략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6세기부터 통일신라 중기까지의 변화가 압축되어 나타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 비교 | 삼국·통일신라 | 일본 |
|---|---|---|
| 공식 전래 | 고구려 372, 백제 384, 신라 527/528 | 538 또는 552 |
| 초기 주도층 | 왕실·귀족·승려 | 왕실·유력 씨족·승려 |
| 지방 확산의 핵심기 | 대체로 5∼8세기 | 대체로 7∼9세기 |
| 국가적 불교망 | 삼국 각각 형성 → 통일신라 전국화 | 나라 율령국가와 지방 사찰망 |
| 민중 참여 | 6∼8세기에 이미 상당히 확대 | 로우는 7∼9세기에 크게 확대되었다고 주장 |
| 9세기의 상황 | 이미 성숙한 불교사회 | 지방사회 불교화가 상당히 진행된 사회 |
<2. 두 나라 모두 처음에는 ‘국가 만들기’와 불교가 결합했다>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순수한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었다. 불교는 왕권 강화, 문자문화, 국제외교, 국가 수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왕실이 사찰을 세우고 승단을 보호했으며, 6세기에는 세 왕국 모두 불교를 국가의 중요한 이념적 자원으로 이용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개관 자료 역시 삼국 왕실이 불교를 정치적 통합 및 왕권 강화와 결합했다고 설명한다.
신라의 황룡사가 대표적이다. 553년에 왕실 주도로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후 거대한 9층탑은 국가를 보호하는 불교적 상징이 되었다. 백제의 대통사나 미륵사 역시 국가와 왕실 권력의 종교적 표현이었다.
일본도 매우 비슷했다. 7∼8세기 율령국가가 성립하면서 불교는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과 함께 성장했다. 나라에는 대형 사찰이 세워지고, 지방에도 국가가 후원하는 사찰과 비구니 사찰이 건설되었다. 쇼무 천황 시대에는 전국적인 국분사·국분니사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 점에서는 오히려 일본이 삼국·통일신라의 선례를 뒤따랐다고 볼 수 있다. 백제가 일본에 불교뿐 아니라 승려·불상·경전·기술자 등을 전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두 나라에서 불교가 어떻게 ‘민중의 종교’가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3. 결정적인 문제는 ‘사찰을 누가 지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사용했는가’이다>
과거 불교사 연구에서는 큰 사찰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황룡사
불국사
도다이지
고후쿠지
같은 사찰들이다.
그런데 로우가 일본사에서 제기하는 질문은 다르다.
“평범한 농촌 주민은 어디에서 불교를 만났는가?”
그가 고고학 자료를 분석한 결과, 624년 일본에는 기록상 46개 정도의 사찰밖에 없었지만, 838년에 일본 승려 엔사이는 중국에서 일본에 약 3,700개의 승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로우는 이 숫자를 그대로 믿지는 않더라도 7∼9세기에 지방의 작은 예배처와 사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9세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주민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불상 앞에 기도하거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는 이와 직접 비교할 만한 전국 사찰 통계가 남아 있지 않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한국 불교사를 보면 왕실 사찰과 유명 고승에 관한 기록이 많기 때문에 자칫 ‘국가불교’만 존재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리처드 맥브라이드(Richard D. McBride II)는 <Domesticating the Dharma: Buddhist Cults and the Hwaom Synthesis in Silla Korea>에서 이런 해석을 비판한다. 그는 신라 불교를 엘리트 불교와 민중불교라는 두 층으로 단순하게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왕족·귀족·고승들이 만들어낸 불교적 숭배와 의례가 다양한 사회관계를 통해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로우의 일본 불교 해석과 매우 가깝다.
<4. 따라서 ‘국가불교 → 민중불교’라는 직선적인 발전도식은 두 나라 모두 맞지 않는다>
옛 설명은 흔히 이렇다.
국가·왕실
↓
귀족
↓
승려
↓
민중
하지만 실제 모습은 훨씬 복잡했다.
왕실 ↔ 지방 귀족
↕ ↕
승려 ↔ 사찰 ↔ 주민
↕
여성·상인·농민·여행자
같은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신라에서는 원효를 비롯한 승려들의 민중 포교가 후대 전승에 강하게 남아 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사찰의 강당과 지방의 포교 거점들이 재가자와 승려의 종교교육에 이용되었다. 신라 말에는 선종도 수도 경주가 아닌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교키(行基, 668–749)와 같은 승려는 민중 사이를 이동하면서 불교를 전파하고 도로·다리·수로 같은 공공사업에도 관여했다. 9세기 초의 <일본영이기(日本霊異記)>를 보면 수도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업·윤회·인과응보와 같은 개념이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양국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에게 불교를 가르쳤다’는 단순한 포교가 아니라, 불교가 주민의 질병·죽음·가족·재난·공덕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5.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방화’가 일본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다>
두 나라 사이의 가장 큰 차이다.
한국에서는 애초부터 단일한 중앙에서 전국으로 불교가 퍼진 것이 아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라는 서로 다른 정치체 안에서 불교가 각각 수용되었다.
즉 한국 불교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다중 중심적’이었다.
백제 수도의 불교와 고구려의 불교, 신라의 불교는 서로 다른 중국 지역과 승려 네트워크를 통해 발전했다. 불교 전파가 곧 하나의 중앙정부가 전국에 종교를 보급하는 과정은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일본의 본격적인 지방 불교화는 야마토 왕권이 전국적인 율령국가를 구축하는 시기와 상당 부분 겹쳤다. 그래서 도로·지방행정·국분사 체제와 불교 확산이 밀접하게 연결된다.
로우의 중요한 발견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국가가 만든 교통과 행정망이 국가가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승려·불교 물품·설교·신앙의 이동까지 촉진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만든 길을 민중의 불교가 이용했다.
<6. 통일신라에서는 반대로 이미 퍼져 있던 불교가 ‘국가 통합’에 사용되었다>
676년 이후 신라는 갑자기 엄청난 영토와 다양한 주민을 지배하게 되었다. 옛 백제·고구려 주민들을 포함해야 했다.
통일신라는 9주5소경 제도를 비롯한 지방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8세기 신라촌락문서에서 보듯 중앙 행정력이 촌락 수준까지 상당히 깊숙이 미쳤다.
이 상황에서 불교는 단순히 왕실의 종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을 묶는 하나의 공통 문화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일본과 방향의 차이가 보인다.
일본:
<중앙국가 형성 → 지방 불교망 확대>
통일신라:
<이미 여러 지역에 존재하던 불교 → 통일국가의 공통 문화로 재조직>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강조점의 차이지 완전히 반대되는 과정이라는 뜻은 아니다.
<7. 토착 종교를 없애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중요하다>
불교가 확산되었다고 해서 기존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 왕실 무덤의 유물 등은 불교가 받아들여진 뒤에도 기존의 샤머니즘적·토착적 종교 요소가 계속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즉 왕과 귀족들은 불교만을 선택하고 이전 종교를 폐기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8세기 이후 신사 주변에 진구지(神宮寺), 즉 신을 위해 불교 의례를 행하는 사찰이 만들어졌고, 하치만(八幡) 같은 가미는 점차 불교적 보살과 연결되었다. 9세기에 이르면 불교와 가미 숭배 사이의 복잡한 융합이 널리 나타난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불교의 성공은 기존 종교를 제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성지·조상·산악·지역신앙과 공존하고 재해석할 수 있었던 능력에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8. 가장 흥미로운 차이: 한국은 일본 불교 확산의 ‘앞선 단계’이자 동시에 전달자였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는 단순 비교 이상의 문제가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먼저 불교화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 불교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6세기에 백제가 일본에 불상과 경전을 전달했고 한국계 승려·기술자들이 일본의 초기 불교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의 아스카시대 불교미술에서도 한국, 특히 백제와 한반도계 장인들의 영향이 확인된다.
따라서 일본의 650∼850년 불교 지방 확산은 완전히 독립된 일본 내부의 발전이 아니다.
보다 긴 동아시아적 흐름으로 보면
인도
→ 중앙아시아·중국
→ 고구려·백제·신라
→ 일본
이라는 이동 속에서 각 사회가 불교를 다시 ‘토착화’했다고 보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일본은 단순히 한국 불교를 복사하지 않았다.
일단 일본에 들어간 불교는 야마토의 정치구조, 가미 신앙, 지방 씨족, 율령제, 일본의 교통망과 결합하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9. 로우와 맥브라이드가 만나는 지점>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사적 비교가 가능하다.
Bryan Lowe의 질문:
“고대 일본 불교를 왜 천황·귀족·대사찰의 역사로만 보아야 하는가?”
Richard McBride의 질문:
“신라 불교를 왜 교학과 고승, 혹은 엘리트 대 민중이라는 이분법으로만 보아야 하는가?”
두 사람의 연구는 사실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불교사를
교리의 역사
→ 실천의 역사
고승의 역사
→ 공동체의 역사
중앙의 역사
→ 지방의 역사
문헌의 역사
→ 문헌 + 고고학 + 물질문화의 역사
로 바꾸려 한다.
이 점에서 <How Buddhism Spread in Japan>은 한국 고대불교 연구에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던진다.
한국에서도 “통일신라의 평범한 촌락 주민은 실제로 어떤 불교를 믿었는가?”를 더 구체적으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10. 두 나라를 비교하면 ‘동아시아 불교의 확산’에 대한 새로운 모형이 보인다>
과거의 모형은 대체로 이랬다.
<전래 → 왕실의 수용 → 국가불교 → 민중불교>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함께 보면 더 적합한 모형은 다음과 같다.
<외래 종교의 유입>
↓
<왕실·귀족의 후원>
↓
<사찰·승려·도로·행정망 형성>
↕
<지방 엘리트·여성·주민의 참여>
↕
<토착 신앙과 결합>
↓
<일상적 세계관의 불교화>
즉 ‘민중불교’는 국가불교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불교가 만들어지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민중의 불교도 함께 생겨났다.
<종합평론>
이 비교를 통해 볼 때 로우의 가장 중요한 문제제기는 일본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통일신라 불교도 오랫동안 원효·의상·원측 같은 위대한 승려, 화엄과 유식 같은 교학, 황룡사·불국사·석굴암 같은 국가적 문화재를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경주의 농부, 지방의 여성, 옛 백제 지역 주민은 불교를 어떻게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바로 여기에서 로우의 방법이 한국사에도 유용하다.
이름 없는 작은 절터, 불상, 기와, 명문, 불교적 이름, 장례 흔적, 경전 조각과 같은 물질자료를 더 적극적으로 읽는다면 ‘왕실의 불교’ 아래에 숨어 있는 ‘생활세계의 불교’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차이도 남는다.
일본의 경우 로우가 650∼850년을 ‘불교가 지방의 일상세계로 들어간 결정적인 200년’으로 그린다면, 한국의 경우 그러한 전환기는 한 시기로 특정하기 어렵다.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다른 속도로 불교화되었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그것들이 다시 하나의 종교문화권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불교화는 여러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통일국가로 모였고, 일본의 불교화는 중앙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두 사회가 도달한 지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9세기 무렵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불교는 더 이상 단순한 외래 사상도, 왕실만의 종교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불교적 언어로 죽음과 질병, 죄와 공덕, 현세와 내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불교는 ‘국가가 받아들인 외래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이 비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Lowe의 일본 연구와 McBride의 신라 연구가 사실상 같은 역사학적 전환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두 책을 직접 나란히 놓고 <Bryan D. Lowe vs. Richard D. McBride — 고대 동아시아의 ‘민중불교’를 어떻게 복원하는가>라는 비교 평론을 해보면 상당히 깊은 논의가 될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