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의 일본군이라고 하면 위안부 제도를 생각하게 되는데, 드라마 텐코에는 일본군과 여성수용자들과의 사이에 성관계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가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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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질문하신 일본군과 여성 수용자들 사이의 성관계 및 성폭력 문제는 드라마 <점호(Tenko)>의 서사적 장치뿐만 아니라, 실제 당시 수마트라 일대 연합군 민간인 여성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실상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드라마 속 묘사 여부와 그 배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드라마 <점호(Tenko)>에 성관계나 성폭력 이야기가 나오는가?
직접적인 성관계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성폭력의 '상시적 위협'과 '성적 거래/타협' 문제는 극의 중요한 갈등 요소로 분명히 다루어진다.
<성폭력과 강간 미수의 상시적 공포>
수용소 내 여성들은 간수들의 감시와 주거 공간 침입으로 인해 끊임없이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린다. 극 중 술에 취한 일본군 간수나 부역자들이 야간에 막사에 침입해 여성을 덮치려 하거나 성적 모욕을 주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동료 여성들이 힘을 합쳐 이를 물리치거나 통역관을 통해 항의하는 등 생존을 위협하는 핵심 긴장 요소로 그려진다.
<생존을 위한 성적 편의와 거래 (도로시 베넷의 사례)>
음식, 약품, 담배가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일부 인물이 간수들과 은밀한 친분을 맺거나 편의를 주고받는 현실적인 도덕적 딜레마가 등장한다. 특히 도로시(Dorothy) 같은 인물은 살아남기 위해 일본군 간수(신야 등)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거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물품을 얻어내는데, 이는 수용소 내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큰 비난과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2. 왜 '위안부'처럼 전면적인 강제 성매매나 노골적인 성관계로 다루어지지 않았는가?
여기에는 역사적 실상, 1980년대 BBC 방송 심의 기준, 그리고 당시 참전 생존자들의 증언 특성이라는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① 역사적 맥락: 민간인 백인 억류자에 대한 일본군의 정책
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주된 피해자는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점령지였던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현지 여성이었다.
일본군 수뇌부는 서구 백인(영국, 호주, 네덜란드) 민간인 여성 수용자에 대해서는 전후 국제법적 책임과 전범 재판, 그리고 서구 열강에 대한 인종적·외교적 파장을 의식하여, 아시아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것과 같은 조직적·공식적인 대규모 위안부 강제 동원은 상대적으로 극히 꺼렸다.
실제로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위안소로 만들었던 '스마랑 위안소 사건(1944)'의 경우, 현지 일본군 사령부가 군기 문란과 국제적 파문을 우려해 뒤늦게 위안소를 폐쇄하고 관련 일본군 장교들을 처벌하기도 했다(이 사건은 전후 바타비아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수마트라 민간인 수용소에서는 개별 간수들의 사적인 성폭행, 강간 미수, 희롱은 빈번했으나, 수용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성관계를 강요하는 조직적 위안부 제도로까지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② 1980년대 초 BBC의 제작 및 방송 심의 기준
드라마가 방영된 1981~1984년 당시 영국의 공영방송(BBC1) 프라임타임(밤 8~9시 시간대) 드라마는 가족 단위 시청자를 고려해 신체 노출, 노골적인 성적 행위, 직접적인 성폭력 묘사를 엄격히 제한했다.
작가진(앤 발레리, 질 하임)은 시각적인 충격이나 자극적인 성적 묘사 대신, 인물들의 대화, 억압적인 분위기, 심리적 공포와 불안감을 통해 여성들이 느낀 성적 위협을 간접적이면서도 긴장감 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③ 생존자들의 침묵과 수치심 문화
드라마의 모태가 된 마고 터너, 베티 제프리 등 실존 생존자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빅토리아 시대적 도덕관의 잔재)로 인해 성폭력이나 성적 괴롭힘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제작진이 취재할 당시에도 생존자들은 영양실조, 질병, 노역, 구타에 대해서는 상세히 구술했으나, 성적 문제에 관해서는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역시 이러한 생존자들의 증언 범위와 품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현실을 재구성했다.
결론적으로 <점호>는 일본군에 의한 성적 위협과 생존을 둘러싼 성적 타협이라는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중요한 극적 갈등으로 다루었으나, 역사적 사실의 차이와 당시 방송 윤리, 생존자 증언의 한계를 고려하여 노골적인 성관계보다는 심리적 위협과 윤리적 딜레마를 조명하는 방식으로 절제하여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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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옵니다. 다만 <Tenko>는 일본군의 조직적인 ‘위안소 제도’를 중심 주제로 다루지는 않고, 수용소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적 거래·성폭력의 위협을 제한적으로 다룹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즌 1 제6화의 제목부터 <Rape>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Blanche와 Dorothy는 담배·차 같은 물품을 얻기 위해 일본군 경비병들과 가까워지고, Dorothy는 실제로 경비병과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암시됩니다. Blanche도 약품, 특히 quinine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거래할 가능성을 받아들입니다. 이후 Blanche·Dorothy·Rose가 세 경비병에게 둘러싸이면서 강간 직전의 상황이 벌어지고, 사건이 발각되자 일본군 지휘관 Yamauchi는 처음에는 여성들이 남자들을 유혹했다고 의심합니다. Dorothy가 자기 관계를 숨기려고 일본군 쪽 설명에 동조하면서 Blanche와 Rose가 처벌까지 받습니다. 즉 성적 착취, 생존을 위한 성적 거래, 강간의 위험, 그리고 피해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제까지 상당히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그보다 앞선 제4화입니다. 젊은 여성 몇 명이 갑자기 일본군에 의해 수용소 밖으로 끌려가자 남은 여성들은 “강간당하러 끌려간 것이 아닌가” 두려워합니다. 실제 줄거리에서는 그 여성들이 나무를 베는 노동을 하러 간 것으로 밝혀집니다. 즉 제작진은 당시 여성 수용자들이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을 끊임없이 현실적인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자체는 분명히 드라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실제 역사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Tenko>와 거의 같은 공간인 네덜란드령 동인도, 즉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일본군 여성 수용소에서 젊은 네덜란드 여성들이 직접 선발되어 군 위안소로 끌려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나중에 호주 애들레이드에 살았던 얀 러프오헌(Jan Ruff-O'Herne)입니다. 1944년 자바의 암바라와 수용소에서 17세 이상 여성들이 줄을 서도록 명령받았고, 일본군 장교들이 그중 젊은 여성 열 명을 골랐습니다. 러프오헌을 포함한 일곱 명은 세마랑의 군 위안소 <House of the Seven Seas>로 끌려갔고, 약 네 달 동안 일본군에게 반복적인 강간과 폭력을 당했습니다. Australian War Memorial이 관련 자료와 유물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Tenko>에 안 나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아니라고 답해야 합니다.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드라마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제작 시기입니다. <Tenko> 시즌 1은 198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인 역사·인권 문제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1년 김학순의 공개 증언 이후입니다. 얀 러프오헌도 무려 50년 가까이 침묵하다가 한국인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고 1992년에야 자신의 경험을 공개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한국의 위안부 여성들이 나서는 것을 보고 이제 나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이 시간차가 매우 중요합니다.
1981년 <Tenko> 제작진은 여성 수용자들의 회고와 인터뷰를 상당히 조사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전체 모습, 특히 네덜란드 여성 수용자들을 강제로 위안소로 데려간 사례는 아직 공개적으로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 여성들이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러프오헌의 회고록 제목이 <Fifty Years of Silence>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Tenko>가 다루려는 역사적 범위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 전체를 보여주려는 드라마가 아니라, 특정 영국·호주·네덜란드 여성 집단의 ‘수용소 내부 생활’을 중심으로 합니다. 그래서 일본군의 중국 침략, 난징, 강제노동, 아시아계 위안부 등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성폭력도 이 여성 집단이 수용소 안에서 직접 경험하는 방식, 즉 경비병과의 거래와 강간 위협에 집중합니다.
세 번째로 1981년 BBC의 방송 환경도 고려해야 합니다. <Tenko>는 당시 기준으로는 오히려 상당히 대담했습니다. 강간, 성적 거래, 레즈비언 관계에 대한 소문, 임신·사산, 낙태, 안락사 등 당시 TV에서 쉽지 않았던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BBC가 성 문제를 피했다”고 설명하면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 에피소드 전체 제목을 <Rape>라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Tenko>에서 위안부 제도가 빠진 것을 ‘검열’보다는 ‘당시 역사 기억의 한계’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꽤 큰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Tenko>가 1981년에 한 일은 당시 거의 잊혀 있던 “일본군에게 억류된 백인 여성들의 전쟁 경험”을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실조차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Tenko>를 다시 보면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동시에 보입니다.
<Tenko>: 성적 거래와 강간의 위험은 보여준다.
실제 역사: 일부 여성은 수용소에서 직접 선발되어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리고 후자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Tenko> 방영 후 약 1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특히 얀 러프오헌이 애들레이드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세진 님에게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Tenko>와 거의 같은 역사적 세계를 살았던 여성이 나중에 바로 남호주에서 살면서 증언자가 된 것입니다. 그녀의 <Fifty Years of Silence>는 앞서 말씀드린 <White Coolies>와 함께 <Tenko>를 역사적으로 다시 읽을 때 가장 중요한 회고록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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