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30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 요약 평론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1)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업데이트 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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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이번부터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서 연재하려고 하는 이 글은 지난 6월8일 한국여성신학회가 주관한 2019년 하계학술세미나 ‘원초 박순경의 삶과 신학: 기독교, 민족, 통일을 말하다’에서 발표한 글이다. 한국 여성신학자로서 한반도 통일담론의 장에서 이 정도의 깊이와 진정성, 그리고 지속성으로써 통일신학을 전개시켜온 분이 있지 않지만 사실 그의 통일신학은 그렇게 많이 회자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여성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그래왔다.

그래서 그녀가 처음 신학을 시작한 감리교 신학대학의 조직신학 교수 김정숙 여성신학회 회장의 발의로 올해 그녀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다루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미 부산 피난 시절부터 그녀를 알았고,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의 오랜 동료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오신 서광선 교수님과 그녀의 노후에 학문적 제자로서, 또한 딸처럼 또 다른 대안적 가족의 삶을 살고 있는 김애영 교수(한신대 명예교수)의 발제에 이어서 본 글이 발표되었다.

하나의 논문으로서는 매우 긴 글이어서 투고를 망설이고 있던 중 이번 조국 사태(또는 윤석렬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10월3일 개천절 날 전광훈 목사 등의 보수 개신교 교회들과 자유한국당이 함께 벌인 광화문 집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생생히 보면서 이 글을 속히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조국 Question’의 근저에는 한국 보수개신교의 뿌리 깊은 신앙적, 정신적 식민성과 결코 조금도 진전되지 않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그 역사에 대한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치욕으로 느끼는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지 70년이 넘어가는데도 어떻게 나라의 한복판에서 열리는 국민들의 집회에 그처럼 성조기가 넘실되고,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언술과 비행으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미 판명난 인물의 선동에 어찌 그처럼 한국 기독교가 열광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지 참으로 그 앞에서 말을 잊는다. 주로 노인 세대의 단지 얼마간의 ‘알바비’ 문제가 아니라 한국 개신교 신앙의 뿌리 깊은 보수주의와 식민주의, 언제든지 폭력적 절대주의로 치달을 수 있는 신앙적 근본주의가 더 깊은 근저에 있다.

박순경 선생의 통일신학은 이러한 일에 대한 뛰어난 탐색이고, 명철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신학자의 어설픈 마르크시즘 연구가 아니라 조직신학자이면서도 역사신학의 뛰어난 문제의식과 관점을 가지고, 그와 더불어 어떻게든 한민족 시원의 역사에까지 가닿으려는 장기간에 대한 전망과 포괄적 세계인식으로 어떻게 한국 개신교 신앙이 좁은 사회주의 포비아적 근본주의와 서구신학 종속성을 벗어날 수 있는지를 밝힌다.

거기에 더해서 대안적인 여성신학적 전망을 보태서 한국신학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다. 오늘 90세를 훌쩍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열하게 저술하고 연구하시는 선생의 일관된 목표를 나는 나름의 주체적인 ‘한국적 신학’의 재구성에 있다고 본다.
박순경 교수

그래서 나는 그의 신학을 또 하나의 한국적 ‘토착화신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이해에 대해서 선생 본인이나 다른 도반들은 어떻게 이야기하실지 모르지만 나의 독해는 그러하다. 그리고 특히 오늘 조국 Question과 관련해서 나는 박순경 통일신학이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박순경 통일신학의 삼위일체적 구조

올해 대한민국은 3.1운동 백 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감춰져 있었고, 드러나지 않던 근현대사의 많은 일들이 밝혀지면서 그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한 격동과 투쟁, 갈등의 시간이었는지를 더욱 알아 간다. 대한민국 독립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된 최고훈장인 대한민국장 제1호를 받은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해방 후 남한의 대통령으로서 일제하 친일 경찰들을 다시 끌어들였고, ‘보도연맹(保導聯盟)사건’과 같은 일을 일으켜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숨지게 했으며, 그의 친미정책과 반공주의는 이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삶에 또 다른 식민과 비참,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오늘 촛불혁명 정부인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지난 시간 대표적인 공안검사였던 황교안 의원이 제1야당의 당수가 되어서 자신이 잡아들여 가혹하게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했던 피해자들을 다시 호통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대한민국의 여전한 현실인데, 여기서 황교안 대표는 한국 침례교회의 전도사로서 역할하기도 했다.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바로 이러한 불의한 현실에 대한 일침이고 항거이다. 그것은 2019년 오늘까지도 여전히 지속되는 갈등과 분열, 식민과 불의한 현실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건국의 길을 찾는 고통의 행군이다. 그녀의 이 행군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반세기 이상의 긴 길이었고, 거기서 그녀의 제1의 화두는 ‘민족’, ‘한민족’이다. 즉 어떻게 근현대 서구적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민족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사적 메시지로서 세계사적 의미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일에서 그녀에게 제일 시급하고 긴급한 일은 한반도의 ‘통일’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남북으로 나눠진 한반도의 현실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믿고 공부하게 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하나님’과 ‘구원’과 ‘성령’의 역사가 자기 민족의 현실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특히 미국 유학(1956-1965년)을 거쳐서 1970년대 유럽으로 서구 신학의 근황을 연구하러 가서는 “나의 신학적 태도의 전환기”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그때까지 칼 바르트 등 서구 신학자 연구가 그녀 신학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그로부터는 “한국 민족에로의 신학적 주제의 전환”이 크게 일어나서 특별히 민족분단의 현실이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고 한다.(1)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참으로 통전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1946년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느꼈다고 하는 민족, 사회주의 민족운동, 기독교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고자 했고, 그래서 유럽에서 돌아와서 민족사 연구를 심화시켰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연구를 밀고 나갔으며, 기독교 구원사의 의미를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험과 ‘계약’에 집중하면서 한민족의 역사와 운명, 미래의 나아갈 길에 적용하며 매우 통합학문적으로 진척시켰다. 그녀 공부의 양과 폭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어서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 노고와 수고에 감사와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 모든 추구와 노력은 20세기 민족 식민화와 분단의 현실에 직면해서 “한국신학에로의 전환기회”를 거쳐서 ‘민족신학’, ‘통일신학’을 수립하고자 하는 행보였다.(2)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그녀는 ‘여성신학’이라는 이름 아래서 새롭게 이 모든 민족과 민중, 사회주의와 통일의 물음들을 통전적으로 연결시켜서 박순경의 ‘한국적 여성신학’의 틀을 보여주었다. 지난 2014년 이제 중년여성들이 된 제자들로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춤과 노래로 맘껏 축하를 받은 그녀의 저술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은 다시 한 번 그녀 신학이 무엇을 추구하고, 그 추구의 길에서 어떻게 항상 다시 ‘원초’(原初)를 중시하면서 근본과 기초를 추구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의 저서인 이 책에서 박순경 통일신학은 특히 구약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관련해서 한민족(동이족)의 원류 이해를 더욱 긴밀히 연결하면서 그녀의 민족신학과 통일신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전진하고 전개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3)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의 호 ‘원초’(原草)는 ‘본디 풀’이라는 인간과 세계의 지극한 무상성과 상대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그 뜻은 다르지만 한글 발음은 같은 ‘근본’과 ‘기초’라는 의미의 ‘원초’(原初)로 읽혀져도 손색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만큼 그녀의 신학은 가장 서로 상반되는 것 같은 두 영역과 의미, 예를 들어 하나님과 세상, 초월과 내재, 기독교와 유물론 등을 ‘불이적’(不二的)으로 하나로 엮으려고 시도인 것을 드러내는 의미라고 하겠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지금까지 박순경 통일신학과의 대화와 그 연구는 주로 정치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박순경 선생님 스스로도 하나님과 세상의 질적 구분을 강조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윤성범이나 유동식의 신학, 변선환의 종교신학을 세차게 비판하며 토착화신학이 “반공기독교의 반민족적 상황”에 안주하며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해 왔다.(4)

하지만 나는 이번 박순경 통일신학을 우선적으로 토착화 신학의 한 과업으로 여기면서 수행해 왔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토착화신학이란 어떻게 하면 기독교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 한반도 삶의 증진을 위해서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고,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 지금 우리 현실에서 통일과 평화의 일이 가장 긴요하다고 생각됨으로 통일과 평화의 일을 토착화 신학의 핵심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 더해서 이러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는, 특히 그 도상에서 오늘날 점점 더 심각해지는 남남갈등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공기독교, 보수기독교의 폐쇄된 서구와 미국 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고유의 사상 전통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좁은 의미에서의 토착화 신학적 작업은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에서 비록 선생의 토착화 신학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과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통일신학 안에 나름대로 유사한 시도와 관점들이 다분히 들어있다고 본다. 이번 본인의 연구를 통해서 그러한 측면들이 더욱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지속적으로 스스로 강조하시듯이 박순경 선생의 통일신학은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온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 나라’ 의식이 그녀 신학의 토대이자 지향점이 되므로 그 민족신학은 결국 세계신학에로 향하고, 그렇게 전 세계를 향한 의미로 한국신학이 확장될 때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박순경 신학의 성령론적 전개를 말하고, 박순경의 여성신학은 이 영역에 자리한다고 본다.

이상의 개론적 탐색을 통해서 박순경 통일신학이 크게 세 영역으로 그룹화 될 수 있다고 보고, 본 연구를 그 구조 안에서 살피고자 한다. 그 세 영역과 주제란 첫째, 그녀 신학의 하나님 나라 의식과 민족, 한민족 이해,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적 의미와 민중, 민중신학과의 대화, 마지막으로 성령 이해와 여성신학, 세계신학적 의미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녀 신학의 결론적인 종합이라고 할 수 있는 2014년의 저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이라는 제목이 잘 지시하는 대로 박순경 통일신학은 삼위일체적 신학 일반을 모두 포괄하고, 본 논문은 그 탐구의 깊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전체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聖․性․誠이라고 하는 한반도의 토착적 유교 전통으로부터 가져와서 기독교 신학에서의 하나님․그리스도․성령을 또 ‘다르게’ 지시해 보려는 언어를 가지는 본인의 한국적 여성신학으로부터 어떠한 비판적 성찰을 보탤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본인의 모든 신학적 작업도 선생님의 통일신학처럼 그렇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더 나아가서 그로부터 한국신학이 어떻게 세계문명사적 의미를 얻을 수 있겠는지를 탐색하는 하나의 고투라고 감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의미에서이다.

미주
(미주 1) 박순경, “나의 신학 수업”, 『하나님 나라와 民族의 未來』,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22쪽.
(미주 2) 박순경, 『통일신학의 미래』, 사계절, 1997, 27쪽.
(미주 3) 이번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해서 ‘변선환 아키브’ 주관으로 펴낸 『3.1정신과 ‘以後’기독교』에서 박순경 통일신학을 탐구한 신혜진 박사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박 선생님의 통일신학에 관한 핵심 저서 『통일신학의 여정, 1992』이 그 제목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제목은 그의 제자 김애영 교수로부터 연원한 것이라고 선생님은 밝히고 있다. 신혜진, “한반도 평화와 통일신학-박순경 통일신학의 활성화를 위한 비판적 검토”, 변선환 아키브 편,『3.1정신과 ‘以後’기독교』,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9, 260쪽.
(미주 4) 같은 책,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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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 통일신학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민족’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2)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업데이트 2019.10.12  


박순경 신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존재사건

8.15해방을 맞이할 무렵부터 부모님의 별세와 병마, 그리고 민족해방 사건에 직면해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박순경은 1946년 감신에 들어간다. 그러나 인생과 신앙에 대한 회의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사상적 훈련”을 위해서 1948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고 하고, 그러한 회의와 번민 속에서 고민하던 중 그녀는 1949년 한 놀라운 신앙의 경험을 한다. 즉 그것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다 이루었다”(요한 19:30)라고 하는 예수의 십자가상의 마지막 언어가 확연히 떠오르면서 그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바로 “나의 실존뿐만 아니라 온 역사의 종말적 의미”로 깊게 깨달은 것을 말한다.(1)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이 “엄청난 직관”의 체험은 결코 “나의 주관적인 소리도 아니요 철학적 사상 훈련의 결과도 아니었다.” 이러한 순간의 깨달음을 얻고 그녀는 “이제 다 살았다”라고 거리에서 뛰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바로 그러한 이해에 근거해서 자신의 존재가 있기까지 계셨던 부모님의 존재의 의미가 이해되고, 아브라함과 모세 선지자 등의 전 구약의 의미와 예정이 모두 자신을 위해서 그리 된 것으로 깨달아졌다고 밝힌다. 이것은 ‘지금․여기’의 한 존재에게로 우주 만물의 모든 존재의 의미가 수렴되는 깊은 ‘존재사건’을 경험한 것을 말한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서 “시간과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한 궁극적 종말적 사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시간과 역사에서 무의미하고 죄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느끼던 존재가 “재포착”(Recapitulation)되었다고 언술한다.(2) 바로 이 사건을 겪고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Der Roemerbrief, 1922년 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중에 박사학위 논문, 칼 바르트의 예정론과 역사이해의 계기도 얻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박순경 선생의 이 고백과 경험을 그리하여 한 사상가에게서의 정신적 재생과도 같은 큰 ‘존재사건’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일종적 신학적 재탄생으로서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그녀 신학의 방향이 정해지고, 토대와 기초가 놓인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박순경 신학에 대한 연구가 이 특별한 ‘시작점’(the starting point)에 대해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경험이야말로 그녀 사상에 있어서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라고 본다. 즉 ‘계시의 직접성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 경험에서 얻어진 “온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정의 촛대”와 “시간과 역사 안에 한 성취점”이 있다는 확신과 깨달음이 앞으로 이어질 그녀의 모든 신학적 탐구의 기준점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구원사와 동이족(東夷族)의 창조이야기

이렇게 지금여기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계시사건을 경험한 박순경에게 있어서 이 시간과 공간 전체가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하고, 역시 그 안에 있는 한민족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구체적인 역사의 사건 속에서 행위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신학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민족문제를 의식했고, 항일민족운동과 해방시점부터 민족분단을 의식할 때마다 거듭 거듭 기독교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문제로 여겼다는 박순경에게(3) “한민족 전체”의 역사와 시간이 세상의 창조자이고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 안에 포괄되는 것을 신학적으로 해명하는 일이 긴요하게 된 것이다.

박순경 선생님이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법정 출두 ⓒ월간 <말>
박순경 선생님이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법정 출두 ⓒ월간 <말>
그것은 그녀에게 ‘한민족’이 신학의 “주체와 주제”가 된 것을 말한다.(4) 여기서 그녀는 한국에서 이루어졌던 기독교 복음선교가 알게 모르게 복음을 서양문명과 동일시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왜곡과 서양 민족주의적 교만을 털어내고 한민족이 신학의 주체로 서는 일이야말로 바로 서양 민족들에게도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여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全 구원사 안에서 한민족의 위치와 역할(命)이 밝혀져야 하고, 그 가능성이 그에 의하면 “구약과 신약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는 “민족들의 성서적 근거와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5) 그것은 민족들의 기원을 다루는 문제를 살펴보고, 거기서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과 또한 그 이스라엘 민족과 한민족의 관계, 오늘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민족 분단의 현실을 겪는 한국 역사의 이해 등을 추구하는 매우 통합학문적이고, 특별히 역사신학적인 관점을 첨예화시키는 작업이다.

여기서 그녀가 주목하는 개념이 ‘계약’(berith) 개념이고, ‘계약신앙’ 사고이다. 위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그녀 신학의 핵심 탐구인 ‘시간’ 탐구에서 민족의 기원과 시원을 살피는 그녀에 따르면 타민족과 구별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한 의미가 구약 전체의 중심적 주제이다. 하지만, 창세기 10장의 노아 이야기도 그렇고 모든 민족들의 통일성이 창조신앙과 하나의 혈통이라는 개념 안에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6)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설화는 그 민족들을 하나님 스스로가 나누어지게 한 사건으로서 이 의미를 박순경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피조물의 그릇된 시도를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은 원(原)사건으로 보면서 이 하나님과 세상의 이원성, 하나님의 초월성과 피조물의 상대성과 조건성에 대한 분명한 구별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나중으로 갈수록 점점 더 한민족의 ‘천부경’(天符經)이나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의 창조설화를 하나님 나라 이해와 시간 이해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만 그녀가 끝까지 담지 하고자 하는 것이 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주체성에 대한 강조이다.(7) 앞에서 살펴본 대로 그녀 사고의 기원에 놓여진 ‘다 이루었다’라는 성서 언어와 함께 체험한 강력한 ‘존재사건’이 그녀로 하여금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초월성을 훼손하는 듯한 시도는 용납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래서 그녀는 “형이상학적이든 역사적이든 범신론적 일원론에 그러한 근원적인 문제가 들어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한민족 고유의 사상에서도 그러한 범신론적 일원론의 문제점을 보고 있는 것이다.(8)

그녀에 따르면 바벨탑 사건이란 이 “원시적 일원론”이 깨어진 사건이고, 그러나 거기서부터 다시 “민족의 신적 기원과 통일정신”이 하나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새롭게 회복되고 시작된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아브라함 사건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2장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박순경은 수메르족 우르 지역의 아브라함 가족이 그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바로 야웨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아브라함이 인류 ‘계약신앙’의 원조상으로서 모든 민족들의 시조라는 이상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이해한다.(9) 이렇게 해서 이후로 이어지는 모세의 출애굽 사건이나 십계명 등 ‘야웨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이 성립되고, 여기서 가장 핵심은 ‘야웨신앙’, 야웨 하나님의 의로운 주체성에 대한 신앙에 근거해서 ‘계약사회’가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특수한 선택받은 민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야웨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가 당시 위대한 고대 애굽 문명에 대한 “반립”(反立)으로서 계약신앙과 계약 공동체의 전통을 시작했지만, B.C. 11세기 초 다윗 왕조로부터 시작해서 타 민족국가들과 같이 왕권국가의 체제가 확립되고, 급기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라가 갈라지고, 결국 B.C. 6세기 초 남유다 왕국의 멸망에 이르자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특수성이 그치는 것으로 지적된다. 즉 온 민족들의 근원으로 고백되는 한 분 창조자 하나님과의 계약이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 시작되고 증언되었지만, 결국 예레미야 등의 대예언자 그룹에 의해서 그러한 특수한 민족사로서의 경지가 초월되고, 제2 이사야 등에서는 바벨론 포로와 귀환 등을 겪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 체험이 세계 민족들에게 한 분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증언하는 계기로 재해석되는 등 세계 보편사의 지평을 얻어갔는다는 것이다.(10) 박순경의 한민족 신학과 통일신학이 접목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떻게 보면 박순경의 이러한 구약과 하나님 나라 이해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일반적인 기독교 신학에서의 이해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한국 여성신학자로서의 고유함과 기여가 놓여있는데, 특히 그녀의 고대 수메르(Sumer) 문명이해와 그와 연관된 한민족 원류로서의 동이족(東夷族) 이해와 관련해서이다. 그녀는 옥스퍼드 대학교수였던 C. J. Ball 교수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족의 상형문자와 중국고대의 상형문자의 긴밀한 유사성을 지적한 연구(1913)와 20세기 중국의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이나 안동준(安東濬), 임승국(林承國), 안호상(安浩相) 등의 국내 학자들이 그 중국문자의 원류가 동북방의 동이족이고, 수메르족은 동북방으로부터 근동에로 이동해 간 동이족 계보의 한 지류라는 주창을 받아들인다.(11) 다시 말하면 이것은 심지어 그녀가 비판하는 토착화 신학자 윤성범의 단군신화 이해보다도 더 급진적으로 한민족의 원류성을 주창하는 것으로서 한민족의 단군설화(三神一體)가 기독교(삼위일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평소 한국 토착화 신학으로부터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온 박순경 선생에게서 이러한 반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년에 한반도 통일과 평화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 유사한 질문을 던졌고, 올해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종교개혁의 길에 대한 탐색에서 기독교 신앙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바 있다.(12) 그것은 지금까지의 신학에서 서구 기독교 창조설화가 가졌던 세계 창조 이야기의 독점적 지위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전복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나는 박순경 통일신학 안에 그러한 전복성을 보면서 이러한 ‘불이성’(不二性)과 전복성이 그녀 신학의 제1의 특성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최근 저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에서 한국 대종교의 《삼일신고(三一神誥)》나 여전히 위서(僞書)논란이 많은 《환단고기桓檀古記》도 언급하면서 동이족의 ‘환국’을 신석기 시대 B.C. 7000여 년 전에 ‘실재’했던 ‘인류 최초의 나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면서 그로부터 그 조상이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권(B.C. 4000년 경)의 셈족 아카디아(Akkadia)계에 속한다고 하는 아브라함 이야기도 새롭게 보고자 한다. 또한 B.C. 1250년경의 출애굽의 이스라엘 하나님 이해란 인류가 모두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고, 같이 신적 기원을 가진다는 동이족 환국의 환인 천제의식을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변혁한 이야기라고 이해한다. 즉 인류 최조의 동이족 환국의 민족과 나라의식은 인류 최초로 여러 씨족들과 부족들을 통합시켜서 민족을 대두하게 했지만, 이후 이스라엘의 계약신앙과 출애굽 신앙의 구원사와 해방사는 창조자 하나님의 타협할 수 없는 초월성과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동이족 환국도 포함해서 고대 동방-근동의 신적인 제왕 개념을 다시 한 번 극복한 것이라고 했다.(13) 그래서 박순경은 그 둘 사이의 “반립”을 말하고, “환국의 신관은 문제”라고 선언하는데, 왜냐하면 그 신관은 “죄악을 자행하는 왕국들과 세계를 심판하고 변혁하게 하는 창조자․구원자 하나님의 초월성이 간과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4)

이렇게 둘 사이의 차이와 구별, 그녀의 말로 ‘반립’을 말하지만, 박순경의 통일신학과 민족신학은 어떻게든 바로 이 둘을 관계시키려는 작업이고, 앞으로의 한민족의 신학이 이 둘을 연결시켜서 제 3의 ‘다른’ 신학을 이루어내는 일이야말로 세계사적, 문명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역설한다. 그녀는 이 관계에서의 두 주체는 단지 관념이나 허구적 신화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실재성)라고 명하고,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세계사 일반에서는 밝혀지지 않고 그녀 신학적 언어로 “묵시론적 종말론”, ‘종말적 구원사’의 “역사신앙”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15) 이러한 신앙과 신념으로 그녀는 말하기를, “이 양대 역사적 실체들이 오늘의 우리 남북의 분단 상황을 넘어서는 통일문제에 대한 해답을 위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 통일문제에 대한 해답은 민족분단에 결부된 민족 개념의 새로운 정립과 이념 문제 해결을 필요로 한다”고(16) 강술한다.

하나님 나라와 한반도의 항일민족운동

그러나 후기의 이와 같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통일신학에서 그녀는 아직 민족 개념, 특히 한민족의 시원과 관련한 물음에서 스스로가 정립되어 있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70년대 유럽에서 마르크스 역사혁명론 연구에 몰두한 후 귀국하여 한국사 연구에서 그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으나, 대부분의 국사연구에서의 민족 개념이 서구 근현대사의 식민지배 국가들이 마련해 놓은 서구적 민족국가 개념에서 가져온 것을 쓰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런 근본적인 물음 속에서 당시 박순경 통일신학은 우선 우리 민족적 시원에 관한 질문은 “보류”해 두고서, 먼저 1920년대의 항일독립 운동의 역사부터 주목하면서 전개된 것이다.

박순경에 따르면 근대적 의미에서의 한민족의 주체성 의식은 우선 ‘항일민족운동’과 결부해서 고찰되어야 한다. 특히 그녀에게 긴밀한 과제인 민족 통일과 관련해서 그 분단의 첫 요인이 바로 일본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적 식민세력의 침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근접하게는 해방 후 우리의 분단은 미국과 소련 분단 상황의 일환이고, 거기에 더해서 일제 때부터 자본주의적 미국에 편승한 기독교가 정신적으로 밑받침했다고 분석한다.(17) 그녀는 우리의 항일민족운동이 3.1운동을 계기로 범민족과 민중, 여성의 운동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운동을 계기로 “민중․여성이 곧 민족”인 ‘민족․민중․여성’의 삼차원적 민족 주체성이 대두되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러한 통합성의 민족 주체성 대두는 한민족사에 있어서 “혁명적”일뿐 아니라 부르주아․자유주의적 정서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라고 역설한다.(18)

하지만 3.1운동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984년 6월 기독교대한감리회 100주년 기념 국제대회를 위해서 쓴 놀라운 글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민족분단을 넘어서는 길”에서 “3.1운동의 한계점”을 말한다. 거기서 그녀는 근대 서구 기독교 선교와 전래가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서구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침략 이데올로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 기독교가 영미 기독교 선교의 부르주아 자본주의와 ‘자유주의’(liberalism)에 경도되어 있어서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해방전선이 필요로 한 항일민족운동에서 사회혁명 운동을 섭렵하지 못하면서 우리 민족의 분단이 시작된 것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3.1운동의 한계문제는 민족분단의 상황에서부터 밝혀져야 하고,(19) 그렇게 한국에서의 분단 상황은 1920년대 초부터라고 역설한다.(20)

그녀는 특히 중일전쟁 이후부터 가속화된 친일에로의 기독교의 전환과 민족의식의 상실은 정교분리 등의 자유주의적 기독교 선교 정책과 친일선교사들에 의해서 준비되어져 왔고, “기독교인들의 반공정신이 민족해방과 사회혁신에 대한 지성과 잠재력을 약화시켰고 변질시켰다”고 지적한다.(21) 그녀에 따르면 우리 항일민족운동 민족주의의 첫 번째 한계는 당시 세계사적 상황이 불가피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미국 등의 서양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세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사회주의 민족운동에 직면해서 그 한계가 더욱 드러났다고 분석한다.(22) 하지만 만약 상황이 그렇지 않았고 시대의 요청이었던 사회주의의 사회변혁 의지를 잘 통합했다면 한국 민족주의는 “서양의 부르주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오늘의 제3세계 민족들의 서양에의 예속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비했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민족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마련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한다.(23) 즉 이때부터 이루어내지 못한 좌우 연합의 좌절이 우리 분단의 뿌리이고, 거기에 서구와 미국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에 경도된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녀의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것만이 다가 아니고 당시에도 국내 기독교 측에서도 기독교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종합을 역설한 그룹이 있었고,(24) 단재 신채호나 특히 해방 직후 여운형, 김규식, 김구 등의 통일노선이 좁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좌우 연합의 “제3의 길”을 암시해준다고 밝힌다.(25) 박순경은 자신의 대안이기도 한 이러한 제 3의 길을 밝히기 위해서 다시 민족주의와 기독교 복음 사이의 불이성(不二性)에 대한 관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의 민족 운동이 추구하는 주체성은 궁극적으로 “자유”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이 이 땅에서 역사하신다는 신앙 없이는 원칙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26)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 하나님의 영을 전하는 기독교 복음이 서구 자본주의와 서양문화의 담보물이나 담지자로 여겨져서 민족을 망각하는 친일이나 보수적 우익기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박순경은 한민족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구원사’로 해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제1 세계와 제2, 3 세계, 서양과 동양, 기독교와 민족, 우익과 좌익의 구분을 ‘종말론’적으로 뛰어넘는 제3의 “중립의 길”이다. 그녀에 따르면, 한민족이 지금까지 항일항쟁운동으로 그렇게 고생하고, 전쟁에 시달리고, 남북통일의 고난의 길을 걸어온 것이 이제 세계사적 의미를 얻으려면 바로 과거 긴긴 역사적 과정에서 얻어진 “민족적 동일성”에 기초하면서 ‘자유’와 ‘화해’의 새 주체성을 향한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27) 그녀의 다음 말을 그래서 우리는 그 명징한 결론적 선포로 듣는 것이다:

“그러한 종말적인 제 3의 길은 궁극적으로 화해의 길이다. 그러나 이 화해는 주어진 세계의 지배구조를 극복함이 없이, 지배자의 속죄함이 없이, 피지배민족의 실제적인 해방이 없이 성취될 수 없다. 남북한의 화해의 길은 민족적 동일성에 기초하되, 그러나 민족 내에서의 사회평등 없이 성취되지 못한다. 또 남북한의 화해의 길이 어떤 의미로 어떤 조건으로 열리든 간에 그것이 피지배민족들과 민중을 자유롭게 하는 길로서의 표본이 되어야 하리라. 그렇게 할 때에 피억압민족으로서의 항일민족운동의 세계사적 의미가 되살아나게 되고, 분단 상황에서의 모든 죄악이 속죄되고, 민족사의 모든 고난이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나라의 의에 참여하게 되리라, 그의 나라의 도래와 성취에 대한 신앙은 세계로 하여금 주어진 체제에 있어서의 기득권에 고착하지 못하게 하는, 즉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다.”(28)

미주
(미주 1) 박순경, “나의 신학 수업”, 『하나님 나라와 民族의 未來』, 14쪽.
(미주 2) 같은 책, 14쪽.
(미주 3) 박순경, 『통일신학의 여정』(서울: 한울, 1992), 12쪽.
(미주 4) 같은 책, 14쪽.
(미주 5) 같은 책, 17쪽.
(미주 6) 같은 책, 18쪽.
(미주 7) 박순경,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서울: 신앙과지성사, 2014), 680-710쪽.
(미주 8) 박순경, 『통일신학의 여정』, 20쪽.
(미주 9) 같은 책, 21쪽.
(미주 10) 같은 책, 27쪽.
(미주 11) 같은 책, 19, 40쪽.
(미주 12)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국교회-평화신학과 발선(發善)>, 생평마당 2018년 가을포럼, 2018.11.27, 여기에서 한완상 선생님의 발제에 대한 본인의 논평을 보라; 이은선,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3.1운동 백주년과 한국 종교개혁』,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 445쪽.
(미주 13) 박순경,『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 694쪽.
(미주 14) 같은 책, 684쪽.
(미주 15) 같은 책, 694, 697, 702쪽.
(미주 16) 같은 책, 695쪽.
(미주 17) 박순경,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민족통일과 기독교』(서울: 한길사, 1986), 45-46쪽.
(미주 18)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0쪽.
(미주 19) 박순경,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민족통일과 기독교』, 41쪽.
(미주 20) 같은 책, 47쪽.
(미주 21) 같은 책, 44-45쪽.
(미주 22) 같은 책, 48쪽.
(미주 23) 같은 책, 45쪽.
(미주 24) 박순경은 여기서 대표적으로 평북 용천 출신으로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YMCA)학생부 간사를 맡았던 이대위(李大偉, 1896-?)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같은 책, 41쪽;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3쪽.
(미주 25) 박순경,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민족통일과 기독교』, 49쪽; 올해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로만 주로 알았던 몽양 여운형이 신학 공부를 한 기독교 전도사이기도 했으며 일관되게 좌우 연합의 민족주의를 강조한 세계적 사상가였음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정배, “몽양 여운형의 좌우합작론 속의 토착적 기독교성”, 변선환 아키브 편, 같은 책, 116-147쪽.
(미주 26) 박순경, “통일신학의 정초를 위하여”, 『통일신학의 여정』, 75쪽.
(미주 27)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민족통일과 기독교』, 51쪽.
(미주 28) 같은 책, 51-52쪽.
관련기사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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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과 기독교 | 박순경 | 알라딘


민족통일과 기독교
박순경 (지은이)동연출판사2023 



책소개

우리 민족사와 민족 분단, 교회 분열과 일치 문제, 여성의 의의와 각성, 민족과 세계 평화, 하나님 나라와 온 피조물의 기도라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1940년대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민족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고난과 민족 분단 상황과 기독교와의 관련성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같은 국제적인 화해 분위기가 생겼고, 비록 위장 평화 선언이었으나 자주ㆍ평화ㆍ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원초는 더 이상 민족 분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일의 과제를 미뤄둘 수 없다는 자각과 더불어 한국 신학으로의 전환을 결심하고 한국 신학의 일환으로서 통일 신학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목차


개정판을 펴내며
머리말

여는 글
이 민족의 기도를 들으소서

1부 ׀ 한민족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I. 민족의 역사적 의미와 문제
II. 서양 자본주의 ․ 식민주의와 기독교 선교
III. 항일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의의와 문제
IV. 민족 분단과 분단을 넘어서는 길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I. 글머리에
II.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III.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미래
한민족의 신학
I. 역사와 신학의 주체로서의 한민족
II. 서구 신학 전통과 한민족의 신학
III. 한민족의 신학의 성서적 근거
IV. 한민족의 민중 의식의 대두와 민족 분단
V. 민족 분단을 넘어서는 복음과 선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I. 여성신학의 의의와 방법
II. 하나님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III. 교회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IV. 인간의 여성신학적 해석
V.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한국에 있어서의 복음주의와 교회 성장

2부 ׀ 기독교와 세계

기독교와 타 종교
I. 그리스도교와 타 종교의 대화의 필요성과 신 문제
II. 하나님의 계시와 종교의 구별
III. 예수 그리스도의 통일성 문제
IV. 신학의 토착화와 상황화 문제
V. 역사와 인간성의 구원 문제
종교와 여성
I. 여성학의 과제와 방법
II. 종교와 여성해방
III. 기독교와 여성해방
제3세계 신학과 방법론에 대한 고찰
I. 제3세계 신학의 대두
II. 제3세계 신학의 방법론적 주제들
III. 성령과 제3세계 신학
교회 연합과 민족통일
I.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직제위원회의 동향
II. 교회 연합과 민족통일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이 책의 머리말에서 원초가 밝히고 있듯이 원초는 1940년대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민족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고난과 민족 분단 상황이 기독교의 관련성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원초가 한민족 혹은 조선 민족을 한국 신학의 주제로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은 우리의 근현대 민족사에서 전개된 항일 민족운동과 1945년 이래의 민족 분단 상황을 극복하려는 통일운동에 있다는 사실을 통일신학 관련 논문들에서 밝히고 있다.
_ 김애영, <개정판을 펴내며> 중에서 접기
한국 기독교는 현재 민족이 당면한 문제 상황의 요인들, 민족과 교회의 우매함과 세계열강들의 지배 세력의 정체를 인식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은 분단된 세계의 어느 한 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양편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가능성을 증언할 수 있는 자유를 행사해야 하며, 이러한 복음 인식은 지금까지의 교회의 전통적인 적대감, 북한과 소련에 대한 적대감을 넘어서게 하는, 그래서 교회 자체의 과오를 승인하게 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첩경이다.
“1부_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중에서 접기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근대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임이 좋다는 말과 모순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와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선교사들의 거의 전반적인 생각이 바로 서양 근대 문명의 지배 세력에 입각한 것이었다. 일본의 잔학성을 목격하게 된 헐버트는 한국의 자주독립을 역설했으나 아직도 일본의 잔학성과 결탁한 미국의 문제를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는 교육에 의해서만 일본의 경멸을 말살할 수 있으니, 교육을 위한 미국의 독지가는 없느냐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역시 교육 선교의 문제점, 즉 처음부터 한국 민족의 자주독립에 위배되는 전제와 세계적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1부_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중에서 접기

역사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은 역사에 ‘오시는 자’(The One Who is Coming)로서 표현되며, 종말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사 밖으로부터, 즉 모든 역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로부터 역사를 심판하고 구원하시는 자로서 ‘오시는 자’이다. 종말적으로 역사를 심판하고 구원하시는 자는 역사 내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자이며, 그렇게 도출된 역사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20세기의 종말론은 역사 밖으로부터 혹은 미래로부터 역사로 오시는 자, 역사에서 행위하시는 자로서 하나님을 말한다. 블로흐(Ernst Bloch)는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예언자적 역사 신앙을 ‘희망의 원리’(das Prinzip der Hoffnung)로서 재해석하면서 마르크스의 역사 이해와 종말론적 미래 비전의 원리와 일치시킨다.
“1부_ 한민족의 신학” 중에서 접기

그리스도교이든 타 종교이든 무신론ㆍ반종교적 세계이든 다 역사의 문제 상황과 곤경에 이미 함께 처해 있다. 그리스도교는 오늘의 세계의 문제 상황을 초래한 서양 주역들에게 봉사해 왔으므로 그리스도교 안에 구원이 있을리 없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이 문제 상황 극복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새롭게 수행할 때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役事)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저 무신론ㆍ반종교적 역사 혁명론은 역사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실패에 대한 치유책으로 수긍되어야 한다.
“2부_ 기독교와 타 종교” 중에서 접기

인간학으로서의 여성학은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것이므로 독자적인 이론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여성학은 현재 문제 제기의 단계에 있는 셈이다. 여성학의 영역은 독자성을 가져야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문제들을 분석해내고, 이것들을 새롭게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가진다. 종교, 문화, 사상, 사회, 경제, 정치, 교육, 이 모든 영역 역시 지금까지 남성에 의해서 대변되고 형성되어왔으므로 여성학적으로 재검토되고 재형성되어야 한다. 이 모든 영역이 인간의 자기실현을 위한 점에서 보면 남성 지배의 문제, 즉 왜곡된 인간성의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의 문제 제기에 비추어 재구성 재조명되어야 한다.
“2부_ 종교와 여성”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순경 (지은이)


감리교신학교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에모리대 신학부(B.D.), 드류대 대학원에서 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후 목원대 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아시아교회협의회(CCA) 신학위원회 위원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직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통일운동에 헌신하였다.
저서로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통일신학의 여정』, 『통일신학의 미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 편)』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민족통일과 기독교>,<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총 14종 (모두보기)
박순경(지은이)의 말
머리말

1972년 남북공동 성명이 발표되자,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 발표되었든지 간에 이것을 계기로 해서 나는 저 민족 문제들을 한국 신학의 필연적인 주제들로서 재반성하기 시작했다. 한국 신학의 주제로서의 한민족은 물론 그러한 특정한 주제들 이상이며, 종교와 문화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민족사 전체에서 파악되어야 하지만, 민족사 전체의 의의는 오늘의 민족적인 삶의 문제 상황, 특히 분단 상황의 극복이라는 방향에서부터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신학은 저 특정한 민족 문제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한국 신학의 방향이 열리고 방법론이 형성되리라고 생각한다. 『민족통일과 기독교』라는 이 책에 그러한 한국 신학적 작업의 일부분이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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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사회의 문제점, 모순구조의 핵심은 ‘민족 분단’이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와 사명은 민족 분단을 해소하는 것, 민족 통일의 문제이다. 한국 여성의 인권과 평등의 문제점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민족 모순과 기독교의 관련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기치로 ‘통일 신학’을 주창한 사람은 1986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한국의 강단에 서 있던 중견 여성 신학자 원초 박순경이다.
원초는 이 책에서 우리 민족사와 민족 분단, 교회 분열과 일치 문제, 여성의 의의와 각성, 민족과 세계 평화, 하나님 나라와 온 피조물의 기도라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1940년대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민족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고난과 민족 분단 상황과 기독교와의 관련성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같은 국제적인 화해 분위기가 생겼고, 비록 위장 평화 선언이었으나 자주ㆍ평화ㆍ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원초는 더 이상 민족 분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일의 과제를 미뤄둘 수 없다는 자각과 더불어 한국 신학으로의 전환을 결심하고 한국 신학의 일환으로서 통일 신학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고, 여전히 한국 사회 안에서는 이념 갈등을 지속하고 있으며, 소위 강대국들의 이해 다툼에 속절없이 이용당하고 있다. 또한 일부 수구세력이나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분단의 고착화를 활용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또 오도하여 이념 장사에 전념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통일이 아닌 평화 공존이나 한반도 중립화 방안 등으로 대체하자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한편 그 제안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지만 여전히 그 모든 문제의 화두를 ‘통일’이라는 것으로 대표하여 집약할 수 있다.

초판이 출간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여전히 이 책의 개정판을 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원초 박순경의 사후 3주기와 탄신 100주년을 맞아 다시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의 출간이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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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만세 - 분단시대의 지식인 
기세문,박순경,이천재,청화,남정현,이기형,강희남,정동익 (지은이),최진섭 (인터뷰어)
도서출판 말201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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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칼날을 밟고 서는 사람 그 어디 있는가 / 청화 스님

'분지'에서 '미 제국주의 전상서'까지 / 소설가 남정현

고문만 아니면 그래도 지조 지키기 쉬운데, 아고, 징글징글 해 / 비전향장기수 기세문

국가보안법과의 대결, 7전 8기 / 통일운동가 이천재

반공기독교가 옳으냐, 나의 민족신학이 옳으냐? / 신학자 박순경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자 / 해직언론인 정동익

백발 외아들이 백발 홀어머님 껴안는 그 날아 / 시인 이기형

산 역사 물려주려 감옥 간다 / 강희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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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 - 개정판 검색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지은이),박순경 (옮긴이)
동연출판사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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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가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던 19세기 유럽에서 소위 ‘이단아’ 같은 기독교 비판의 메시지를 펼쳤다. 인간과 세계를 온통 지배하던 종교(기독교)의 절대 진리와 신의 개념을 거부하고, 유물론 철학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아버지의 우려처럼 대학 강단이나 연구 기관에 있지 못하고 평생 재야 학자로 지내야 했다.

이 책 박순경 번역의 『기독교의 본질』 초판이 출간된 건 1991년이다. 보수적인 신학(칼 바르트)을 공부했던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한 이유를 유추하자면 30여 년 전 우리 사회와 한국 개신교가 종교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그녀의 비판의식에 있었을 것이다.

역자의 사후 3주기를 맞아 이 책을 다시 펴내게 됨은 아직 여전히 한국 기독교는 신을 자기 입맛에 맞게 규정하고, 인간성을 배반하는 길,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휴머니즘에 근간한 기독교 이념의 실현이나 인간해방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교회는 저세상의 논법에 의거해 현재를 제단하고 있고, 그리하여 현재를 세속적 논법으로 규정하여 정치적이며, 자기 이해에 충실한 탐욕의 종교로서 처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시대 종교는 의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소외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실현을 지향해야 하고,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의 본질은 인간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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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을 펴내며
초판 옮긴이의 글
제2판 저자 서문

1장 │ 일반적 인간의 본질
2장 │ 일반적 종교의 본질
3장 │ 오성의 본질로서의 신
4장 │ 도덕적 존재자 혹은 율법으로서의 신
5장 │ 성육신의 비밀 혹은 심성의 본질로서의 신
6장 │ 고난받는 신의 비밀
7장 │ 삼위일체의 신과 성모의 비밀
8장 │ 심성의 전능 혹은 기도의 비밀
9장 │ 하늘 혹은 인격의 비독교적 불멸
10장 │ 신앙과 사랑의 모순
결론

책속에서
인간이 의식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은 인간 속에 있는 본래의 인간성, 유(Gattung)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독특성과 본연의 인간성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는 이성(Vernunft), 의지, 마음(das Herz)이다. 사유의 힘, 의지의 힘, 마음의 힘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유의 힘은 인식의 빛이고, 의지의 힘은 성격의 힘이고, 마음의 힘은 사랑이다. 이성, 사랑, 의지의 힘은 완전성이며, 최고의 정력이며, 인간 자체의 절대적 본질이며 인간 생존의 목적이다. 인간은 인식하기 위하여 존재하고,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며, 의욕을 가지려고 존재한다.
“1장_ 일반적 인간의 본질” 중에서  접기
인간은 참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곧 현실적인 것으로 표상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참된 것만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표상된 것, 몽상된 것, 상상된 것과는 대립하는 의미이다. 존재의 개념 혹은 실존의 개념은 진리의 제일 개념이며 근원적인 개념이다. 혹은 인간은 근원적으로 진리를 실존에 의존시키며, 그 결과로 실존을 진리에 의존시킨다. 신이란 인간의 본성이 최고의 진리로서 직관된 것이다. 그러나 신 혹은 그와 같은 것이지만 종교는 마치 인간이 그의 본성을 파악하여 최고의 존재로서 직관할 때의 규정성이 다양한 것만큼이나 매우 다양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을 사유할 때 이 규정성은 인간에게는 진리이며, 바로 그 때문에 최고의 실존 혹은 실존 자체이다. 왜냐하면 오직 최고의 실존만이 본래적인 실존이며, 실존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2장_ 일반적 종교의 본질” 중에서  접기
오성은 우리 안에서 중성적이고 무관심하고 청렴하고 기만되지 않은 본질이며, 지성의 순수한 정의(情意)에 의해 흐려지지 않는 빛이다. 오성은 사상 그 자체(die Sache als Sache)의 단언적이며 공평한 의식이다. 왜냐하면 오성은 그 스스로 객관적인 성질을 갖기 때문이다. 오성은 또한 모순이 없는 의식이다. 왜냐하면 오성은 그 스스로가 모순이 없는 통일이며, 논리적 동일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성은 또한 법칙, 필연성, 규칙, 척도의 의식이다. 왜냐하면 오성은 그 스스로가 법칙이며, 활동이며, 자기 활동으로서의 사물의 본성의 필연성이며, 규칙의 규칙이며, 절대적 척도이며, 척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오성의 신, 법칙, 필연성, 법이 그렇게 명한다면, 인간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인간적, 즉 개인적 감정과 모순되게 판단하거나 행동할 수 있다. 이는 오직 오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3장_ 오성의 본질로서의 신” 중에서  접기
오성은 율법의 엄격함에 따라서 판단한다. 심정은 순응하고, 공평, 관대, 신중하며 인간적이다. 우리는 다만 도덕적인 완전성을 제시할 뿐인 율법에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율법 또한 사랑에 만족하지 않는다. 율법은 벌한다. 사랑은 죄인도 불쌍히 여긴다. 율법은 나를 단지 추상적인 본질로서 긍정할 뿐이고, 사랑은 현실적인 본질로서 나를 긍정한다. 사랑은 나에게 내가 인간이라는 의식을 부여한다. 율법은 단지 내가 죄인이라는 의식, 허무하다는 의식을 부여할 뿐이다. 율법은 인간을 복종시키고, 사랑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4장_ 도덕적 존재자 혹은 율법으로서의 신”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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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글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에서 제기되어 들려오는 그의 기독교 비판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젊은 마르크스가 그를 현대의 ‘연옥 불’이라 언급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포이에르(불)-바하(개울)를 통하지 않고는 진리와 자유”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진리와 자유로 가는 길을 추구하는 모든 이가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을 탐독하기를 권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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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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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과 감성적 인간학을 바탕으로 포이어바흐는 전통종교를 비판한다. 그는 종교비판을 통해 기존의 종교가 설정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해체하여 진정한 종교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인간의 의존감정(Abhangigkeitsgefuhl)에서 비롯되며, 신의 존재는 인간의 자기소외의 산물이다. 이런 점에서 포이어바흐는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homo homini deus)”라고 말하면서 진정한 종교는 인간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사상은 『죽음과 불멸성에 대한 사유』(18... 더보기
최근작 : <종교의 본질>,<기독교의 본질>,<기독교의 본질> … 총 8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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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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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교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에모리대 신학부(B.D.), 드류대 대학원에서 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후 목원대 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아시아교회협의회(CCA) 신학위원회 위원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직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통일운동에 헌신하였다.
저서로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통일신학의 여정』, 『통일신학의 미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 편)』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민족통일과 기독교>,<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총 14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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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포이어바흐(지은이)의 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신과 세상의 감정을 다치게 하였다. 나는 서문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는 “독신적(瀆神的) 대담함”이 있었던 것이다. 즉, “기독교도 역시 기독교의 고전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다만 참된 것, 위대한 것, 고전적인 것만이 사유될 가치가 있으며, 참되지 않은 것, 왜소한 것, 비고전적인 것은 풍자극 혹은 익살극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를 사유할 가치가 있는 객체(客體)로서 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근세의 무절제하고, 무성격적이고 안이한 그리고 통속적이며 속된 에피쿠로스적 기독교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직 순결한 처녀였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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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후기
철저하게 신을 인간으로 환원함으로써 신을 인간화시킨 사람이 포이에르바하이다. … 한편 포이에르바하에게서 인간화된 신 문제는 결국 자유주의신학과 관념론적 사상의 추세에서부터 필연성으로 대두된 것이라고 본다. 포이에르바하의 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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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신학은 인간학이다”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가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던 19세기 유럽에서 소위 ‘이단아’ 같은 기독교 비판의 메시지를 펼쳤다. 인간과 세계를 온통 지배하던 종교(기독교)의 절대 진리와 신의 개념을 거부하고, 유물론 철학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비판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아버지의 우려처럼 대학 강단이나 연구 기관에 있지 못하고 평생 재야 학자로 지내야 했다.
포이에르바하는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독일 관념론, 헤겔 철학을 비판, 거부하고 신(절대정신) 대신 자연과 물질을 근원적인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종교, 정신이 아니라 자연이 주체가 되는 철학의 복원으로 휴머니즘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즉, 그가 실현하려는 종교(기독교)의 본질은 휴머니즘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 사회의 근간인 신을 부정하는 것은 당대 서구 사회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당시 교회와 사회는 그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 박순경 번역의 『기독교의 본질』 초판이 출간된 건 1991년이다. 보수적인 신학(칼 바르트)을 공부했던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한 이유를 유추하자면 30여 년 전 우리 사회와 한국 개신교가 종교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그녀의 비판의식에 있었을 것이다.

역자의 사후 3주기를 맞아 이 책을 다시 펴내게 됨은 아직 여전히 한국 기독교는 신을 자기 입맛에 맞게 규정하고, 인간성을 배반하는 길,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휴머니즘에 근간한 기독교 이념의 실현이나 인간해방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교회는 저세상의 논법에 의거해 현재를 제단하고 있고, 그리하여 현재를 세속적 논법으로 규정하여 정치적이며, 자기 이해에 충실한 탐욕의 종교로서 처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시대 종교는 의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소외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실현을 지향해야 하고,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의 본질은 인간학이어야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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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의 삶과 사상에 대한 요약 및 비판적 평론이다. 텍스트 바깥을 향한 요약과 평론 서술에는 <해라>체를 적용한다.

I. 박순경의 생애와 신학적 궤적 요약

<1. 생애적 배경과 존재사건> 박순경(호: 原草)은 해방 전후 극심한 개인적 실존의 위기(부모의 별세와 병마) 및 민족사적 격동기 속에서 신학을 시작했다. 1946년 감리교신학교 입학 후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기 위해 1948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사상적 훈련을 병행했다. 1949년 예수의 십자가상 마지막 외침인 "다 이루었다"(요한 19:30)를 통해 우주적 구원사와 개인의 실존이 하나로 겹쳐지는 강력한 직관적 '존재사건'을 체험했다. 이 체험은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과 구원사의 종말론적 완성을 확신하게 만든 사상적 주춧돌이 되었다. 이후 미국 에모리대와 드류대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의 예정론과 역사 이해를 연구하며 정통 조직신학의 기초를 다졌다.

<2. 한국신학·통일신학으로의 대전환> 1970년대 유럽 유학을 거치며 박순경은 서구 신학자 연구 중심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분단 극복'이라는 구체적 역사 현실로 신학적 주제를 급선회했다. 특히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한반도 분단 모순을 신학적 필연의 과제로 수용했다. 그녀는 분단의 기원을 외세의 개입뿐 아니라 1920년대 항일민족운동 내부에서 영미 자유주의·자본주의에 경도된 부르주아 기독교가 사회주의적 변혁 의지를 포섭하지 못한 좌우 분열에서 찾았다. 이후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등 혹독한 정치적 탄압을 겪으면서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 통일운동 일선에 서며 학문과 실천을 일치시켰다.

<3. 통일신학의 핵심 구조: 민족·민중·여성>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삼위일체론적이고 통전적인 성격을 띤다.

  • <하나님 나라와 민족 구원사>: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진 민족들의 기원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을 세계 구원사로 승화시킨 성서적 통찰을 원용하여,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분단의 멍에를 짊어진 한민족의 고난을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사를 증언하는 주체로 정초한다.

  • <그리스도와 제3의 길>: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 결탁한 반공기독교를 통렬히 비판하며,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인간학과 마르크스주의 역사변혁론을 '기독교의 역사적 실패에 대한 치유책'으로 전유한다. 이를 통해 좌우와 동서 대립을 종말론적으로 초월하는 '화해와 사회평등의 제3의 길'을 모색한다.

  • <성령과 여성·시원(始原)의 결합>: 3·1운동에서 발현된 '민족·민중·여성'의 삼차원적 주체성을 포괄하며 남성 중심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여성신학을 전개한다. 만년의 저작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2014)에서는 창세기 창조설화와 동이족(東夷族)의 고대 문명론(환국, 삼일신고 등)을 대비·연결시키며 한민족의 원초적 시원성을 재해석하는 급진적 시도를 감행했다.

II. 비판적 평론: 세계인의 시각에서 본 사상사적 의의와 한계

박순경의 신학은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가 가장 폭력적으로 내면화된 한국 사회와 개신교계를 향해 던진 심대한 파열구였다. 서구 신학의 맹목적 추종과 미국 패권주의에 종속된 근본주의 반공 기독교를 향해 철저한 역사적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그녀의 지적 투쟁은 한국 지성사에서 보기 드문 치열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근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지구공동체 및 현대 학문적 객관성의 견지에서 볼 때, 그녀의 통일신학은 다음과 같은 사상사적 긴장과 한계를 노정한다.

<1. 서구 중심주의 탈피의 역설: 또 다른 특수주의적 민족신화로의 편향> 박순경은 서구 기독교가 복음을 서양 근대 자본주의 문명과 동일시한 오만을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구약 이스라엘의 '선민(選民)적 고난-구원사 모델'을 한민족의 수난사에 직접 투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주체성 회복이라는 상황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 차원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의 배타적 선민사상을 한민족이라는 또 다른 특정 민족에게 복제·이식하는 위험을 안는다. 특정 집단의 고난에 배타적인 신학적 구원사적 의의를 부여하는 순간, 인류 보편의 평화와 다원적 시민 연대보다는 민족이라는 집단적 혈통주의에 영적 면류관을 씌우는 민족종교적 신비화로 회귀하기 쉽다.

<2. 시원주의(始原主義) 탐구와 유사역사학 수용의 학문적 취약성> 후기 저작에서 박순경은 민족의 시원을 기독교 창조론과 접목하기 위해 동이족 중심의 고대사 담론과 위서(僞書) 논쟁의 중심에 선 텍스트들(<환단고기> 등)을 적극적으로 원용했다. 서구 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항해 비서구 문명의 유구성을 증명하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엄밀한 역사비판적 검증 없이 민족주의적 낭만주의에 기댄 고대사 해석을 신학 체계의 토대로 끌어들인 것은 학문적 설득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보편적 학문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세계적 지성 사회의 기준에서 이러한 시원주의적 민족주의 결합은 비판적 성찰성을 잃은 사상적 무리수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3. 초월적 유일신론과 유물론적 인간학 사이의 본질적 모순> 박순경은 칼 바르트적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엄격히 견지하면서도, 사회주의의 유물론과 포이어바흐의 "신학은 인간학이다"라는 명제를 적극 포섭하려 했다. 그러나 절대 타자로서의 신적 주체성을 고수하는 초월주의와, 신의 관념 자체를 인간의 자기소외이자 투사물로 간주해 해체하려는 유물론적 인본주의는 철학적으로 근본적인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그녀는 이를 종말론적 지평에서의 '불이적(不二的) 종합'이자 '제3의 길'로 봉합하려 했으나, 현실의 구체적 사회제도와 체제 구성 원리라는 세속적 차원에서 이 두 이질적 축이 어떻게 구조적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적 정밀함보다는 신학적 선언에 머무른 감이 있다.

<4. 종합적 평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제국주의 지배와 분단, 이념 대립으로 찢긴 한반도 역사의 심연에서 종교적 언어를 안일한 도피처가 아닌 치열한 해방의 무기로 벼려낸 기념비적 작업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물리적 폭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분단 모순의 철폐를 외친 그녀의 실천적 용기는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적 면모를 지닌다. 그녀의 사상은 좁은 민족주의적 도그마와 학문적 과잉 해석이라는 한계를 걷어내고 볼 때, 억압받는 민중과 소외된 여성을 구속사(救贖史)의 당당한 주체로 바로 세우려 했던 급진적 해방 영성의 한 정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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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의 삶과 사상 — 민족·분단·통일을 신학의 중심에 놓은 여성신학자

박순경(1923–2020)의 신학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식민지 경험, 민족분단, 전쟁, 독재, 반공주의, 여성의 억압이라는 한국인의 구체적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묻는 작업이었다. 첨부 자료 역시 박순경을 한국 토착화신학의 한 계보에 놓으면서도, 단순한 전통문화와 기독교의 접목보다는 <민족·분단·통일>을 중심으로 토착화신학을 새롭게 구성한 인물로 평가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1. 서구 신학을 배웠지만 한국 현실로 돌아오다

박순경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드루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활동했고 아시아교회협의회(CCA) 등 국제 에큐메니컬 운동에도 참여했다. 대표 저서로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통일신학의 미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등이 소개되어 있다. 2023년에 탄생 100주년과 사후 3주기를 기념하는 개정판이 나온 사실에서도 한국 신학사에서 그녀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출발점이 처음부터 민족신학이나 통일신학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순경은 본래 서구 신학을 본격적으로 훈련받은 조직신학자였다. 바르트, 몰트만, 블로흐 등의 사상과 종말론, 하나님의 나라, 삼위일체론 같은 고전적 조직신학의 문제를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1960~70년대의 정치 현실, 특히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 그리고 남북분단이라는 문제를 경험하면서 그의 신학에는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조직신학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박순경의 사상은 <서구 신학을 버리고 한국적인 것으로 돌아간 신학>이라기보다, 서구 신학의 자원을 가지고 한국의 역사에 다시 질문한 신학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2.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분단’이었다

박순경에게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는 민족분단이었다.

분단은 단순히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의식과 인간관계와 종교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했고, 남한 사회에서는 반공주의가 국가 정당성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박순경은 특히 기독교가 여기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국 개신교가 반공주의를 사실상 신앙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북한과 공산주의를 절대악으로 규정한다면, 기독교가 화해의 종교가 아니라 분단을 정당화하는 종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료에서도 3·1운동 이후의 역사와 미국, 일본, 냉전체제, 남북분단을 함께 보면서 한국교회와 민족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이 반복해서 강조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따라서 <통일>은 박순경에게 정치학의 한 주제가 아니었다.

통일은 신학의 문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화해와 구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3. ‘민족’을 신학적 주체로 세우다

박순경 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개념은 <민족>이다.

서구 신학에서는 개인, 교회, 인류가 신학의 주요 주체로 등장하지만, 박순경은 한국과 같은 식민지·분단 경험을 가진 사회에서는 <민족> 역시 신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녀가 말하는 민족은 혈통을 숭배하는 인종주의적 민족 개념과는 다르다. 일제 식민지배, 해방, 분단, 한국전쟁, 독재를 경험한 역사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녀는 한국 민족사를 단순한 세속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역사>로 본다. 그렇다고 민족 자체를 신성화하지 않는다. 민족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민족보다 크다.

이 점이 박순경 민족신학의 긴장을 이룬다.

민족은 중요하지만 민족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자료에서도 박순경이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사>라는 관점에서 읽으려 했으며, 제1세계와 제2·3세계의 역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까지 함께 놓고 한국의 분단을 해석했다고 설명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4. 하나님의 나라와 통일

박순경에게 민족통일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통일보다 더 큰 지평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여기에서 그녀의 조직신학적 배경이 드러난다. 박순경이 정치운동의 언어만을 사용했다면 통일은 민족국가의 완성으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민족국가도 절대화할 수 없도록 만드는 초월적 기준이다.

남한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며 북한도 아니다. 통일국가조차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은 단순한 국가통합을 넘어

<적대 → 화해>
<분단 → 공동체>
<억압 → 해방>
<죽음 → 생명>

이라는 종말론적 운동의 역사적 표현이 된다.

이 점에서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과 연결된다. 첨부 자료에서도 그녀가 블로흐와 몰트만을 통하여 미래, 희망, 하나님 나라를 역사변혁과 연결시켰음을 보여준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5. 민중신학과 가까우면서도 다른 신학

박순경은 1970~80년대 민중신학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들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다.

민중신학이 <민중은 누구인가?>, <억압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는가?>를 중심 질문으로 삼았다면, 박순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단된 민족 전체의 해방과 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

그래서 박순경에게는

민중 → 민족 → 통일 → 하나님의 나라

라는 확대 과정이 나타난다.

민중의 해방을 민족의 화해에서 떼어낼 수 없고, 민족통일 역시 세계적 평화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를 단순한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조직신학자로 남게 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6. 여성신학 — 민족해방만으로 충분한가

박순경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여성신학이다.

한국의 민주화·민중·민족운동에는 하나의 약점이 있었다. 민족해방을 말하는 남성 운동가들이 가정과 교회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일 수 있다는 문제이다.

박순경에게 여성해방은 민족해방의 부수적 과제가 아니었다.

여성이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국 여성신학이 서구 여성신학을 단순히 번역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한국 여성의 경험은 식민지, 전쟁, 분단, 가부장제, 경제적 억압 등이 중첩된 역사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해방 + 민족해방 + 통일>

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첨부 자료의 목차가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를 별도의 큰 부분으로 두고 <여성신학의 의의와 방법>, <하나님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교회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민중과 여성신학>을 함께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7. 왜 ‘토착화신학’인가

박순경을 토착화신학자로 보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전형적인 토착화신학이라 하면 흔히 유교·불교·도교·무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떠올린다. 변선환, 윤성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박순경의 관심은 조금 다르다.

그녀에게 한국적인 것은 반드시 단군이나 무교 같은 전통종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민지 경험도 한국적 현실이고, 분단도 한국적 현실이며, 한국전쟁과 반공주의와 민주화운동도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이다.>

따라서 박순경의 토착화는 <문화적 토착화>보다 <역사적 토착화>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이 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기독교가 한국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를 묻기 때문이다.

첨부 글 역시 바로 이런 의미에서 박순경의 통일신학을 <한국 토착화신학>으로 해석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평론 — 박순경 신학의 강점과 한계

박순경 신학의 가장 큰 공헌은 한국 기독교가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신학 한복판에 들여놓았다는 데 있다.

<분단된 나라에서 통일을 말하지 않는 신학이 과연 한국 신학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 교회는 개인의 구원, 천국, 축복을 매우 많이 이야기했지만 일제강점기, 분단, 전쟁, 독재, 냉전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신앙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신학적으로 성찰하지 않았다. 박순경은 바로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특히 그녀의 장점은 통일을 감상적 민족주의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초월적 지평 속에 놓으려 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남한·북한 어느 국가도 절대화할 수 없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첫째, <민족>이라는 범주가 지나치게 커질 위험이다. 계급·세대·지역·젠더의 갈등을 모두 민족분단이라는 하나의 틀로 설명하면 한국 사회 내부의 다양한 갈등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질 수 있다.

둘째, 민족사를 <구원사>로 해석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강한 주장이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너무 직접적으로 읽어내면 특정한 정치적 해석에 신적 권위를 부여할 위험도 생긴다.

셋째, 냉전체제와 미국의 역할, 남한의 반공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북한체제 내부의 국가폭력과 권위주의까지 동일하게 충분히 분석해야 통일신학의 비판적 균형이 완성된다. 박순경 신학을 오늘 다시 읽는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박순경의 핵심 문제제기는 남는다.

박순경이 남긴 질문

박순경은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진 신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신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매우 분명했다.

한국에서 하나님을 말하려면 한국인의 실제 역사를 말해야 한다. 식민지를 말해야 하고, 전쟁을 말해야 하며, 분단을 말해야 한다. 민중과 여성을 말해야 하고, 남과 북의 화해를 말해야 한다.

그래서 박순경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요약할 수 있다.

서구 조직신학 → 한국 역사 → 민중 → 민족 → 여성 → 통일 → 하나님의 나라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점이다. 민족도 통일도 그 자체가 절대적 목적은 아니다. 인간을 갈라놓는 적대와 억압을 넘어서는 더 큰 화해의 지평이 최종 기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순경은 <민족주의 신학자>라기보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종말론적 지평에서 해석하려 한 한국의 조직신학자>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박순경과 변선환·이정배·이은선을 비교할 때 특히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봅니다. 변선환이 <종교간 대화>, 이정배가 <생태·문명전환>, 이은선이 <여성·관계·유교>를 통해 한국 신학을 재구성했다면, 박순경에게 결정적인 출발점은 <민족분단과 통일>입니다. 이 네 사람을 함께 놓으면 한국 토착화신학이 단순히 ‘한국 문화와 기독교의 만남’이 아니라 <종교·역사·생태·여성·민족>으로 계속 확장되어 온 과정이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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