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1)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업데이트 2019.10.05
연재를 시작하며
이번부터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서 연재하려고 하는 이 글은 지난 6월8일 한국여성신학회가 주관한 2019년 하계학술세미나 ‘원초 박순경의 삶과 신학: 기독교, 민족, 통일을 말하다’에서 발표한 글이다. 한국 여성신학자로서 한반도 통일담론의 장에서 이 정도의 깊이와 진정성, 그리고 지속성으로써 통일신학을 전개시켜온 분이 있지 않지만 사실 그의 통일신학은 그렇게 많이 회자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여성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그래왔다.
그래서 그녀가 처음 신학을 시작한 감리교 신학대학의 조직신학 교수 김정숙 여성신학회 회장의 발의로 올해 그녀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다루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미 부산 피난 시절부터 그녀를 알았고,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의 오랜 동료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오신 서광선 교수님과 그녀의 노후에 학문적 제자로서, 또한 딸처럼 또 다른 대안적 가족의 삶을 살고 있는 김애영 교수(한신대 명예교수)의 발제에 이어서 본 글이 발표되었다.
하나의 논문으로서는 매우 긴 글이어서 투고를 망설이고 있던 중 이번 조국 사태(또는 윤석렬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10월3일 개천절 날 전광훈 목사 등의 보수 개신교 교회들과 자유한국당이 함께 벌인 광화문 집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생생히 보면서 이 글을 속히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조국 Question’의 근저에는 한국 보수개신교의 뿌리 깊은 신앙적, 정신적 식민성과 결코 조금도 진전되지 않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그 역사에 대한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치욕으로 느끼는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지 70년이 넘어가는데도 어떻게 나라의 한복판에서 열리는 국민들의 집회에 그처럼 성조기가 넘실되고,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언술과 비행으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미 판명난 인물의 선동에 어찌 그처럼 한국 기독교가 열광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지 참으로 그 앞에서 말을 잊는다. 주로 노인 세대의 단지 얼마간의 ‘알바비’ 문제가 아니라 한국 개신교 신앙의 뿌리 깊은 보수주의와 식민주의, 언제든지 폭력적 절대주의로 치달을 수 있는 신앙적 근본주의가 더 깊은 근저에 있다.
박순경 선생의 통일신학은 이러한 일에 대한 뛰어난 탐색이고, 명철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신학자의 어설픈 마르크시즘 연구가 아니라 조직신학자이면서도 역사신학의 뛰어난 문제의식과 관점을 가지고, 그와 더불어 어떻게든 한민족 시원의 역사에까지 가닿으려는 장기간에 대한 전망과 포괄적 세계인식으로 어떻게 한국 개신교 신앙이 좁은 사회주의 포비아적 근본주의와 서구신학 종속성을 벗어날 수 있는지를 밝힌다.
거기에 더해서 대안적인 여성신학적 전망을 보태서 한국신학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다. 오늘 90세를 훌쩍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열하게 저술하고 연구하시는 선생의 일관된 목표를 나는 나름의 주체적인 ‘한국적 신학’의 재구성에 있다고 본다.
박순경 교수그래서 나는 그의 신학을 또 하나의 한국적 ‘토착화신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이해에 대해서 선생 본인이나 다른 도반들은 어떻게 이야기하실지 모르지만 나의 독해는 그러하다. 그리고 특히 오늘 조국 Question과 관련해서 나는 박순경 통일신학이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박순경 통일신학의 삼위일체적 구조
올해 대한민국은 3.1운동 백 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감춰져 있었고, 드러나지 않던 근현대사의 많은 일들이 밝혀지면서 그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한 격동과 투쟁, 갈등의 시간이었는지를 더욱 알아 간다. 대한민국 독립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된 최고훈장인 대한민국장 제1호를 받은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해방 후 남한의 대통령으로서 일제하 친일 경찰들을 다시 끌어들였고, ‘보도연맹(保導聯盟)사건’과 같은 일을 일으켜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숨지게 했으며, 그의 친미정책과 반공주의는 이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삶에 또 다른 식민과 비참,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오늘 촛불혁명 정부인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지난 시간 대표적인 공안검사였던 황교안 의원이 제1야당의 당수가 되어서 자신이 잡아들여 가혹하게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했던 피해자들을 다시 호통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대한민국의 여전한 현실인데, 여기서 황교안 대표는 한국 침례교회의 전도사로서 역할하기도 했다.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바로 이러한 불의한 현실에 대한 일침이고 항거이다. 그것은 2019년 오늘까지도 여전히 지속되는 갈등과 분열, 식민과 불의한 현실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건국의 길을 찾는 고통의 행군이다. 그녀의 이 행군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반세기 이상의 긴 길이었고, 거기서 그녀의 제1의 화두는 ‘민족’, ‘한민족’이다. 즉 어떻게 근현대 서구적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던 한민족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사적 메시지로서 세계사적 의미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일에서 그녀에게 제일 시급하고 긴급한 일은 한반도의 ‘통일’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남북으로 나눠진 한반도의 현실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믿고 공부하게 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하나님’과 ‘구원’과 ‘성령’의 역사가 자기 민족의 현실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특히 미국 유학(1956-1965년)을 거쳐서 1970년대 유럽으로 서구 신학의 근황을 연구하러 가서는 “나의 신학적 태도의 전환기”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그때까지 칼 바르트 등 서구 신학자 연구가 그녀 신학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그로부터는 “한국 민족에로의 신학적 주제의 전환”이 크게 일어나서 특별히 민족분단의 현실이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고 한다.(1)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참으로 통전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1946년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느꼈다고 하는 민족, 사회주의 민족운동, 기독교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고자 했고, 그래서 유럽에서 돌아와서 민족사 연구를 심화시켰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연구를 밀고 나갔으며, 기독교 구원사의 의미를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험과 ‘계약’에 집중하면서 한민족의 역사와 운명, 미래의 나아갈 길에 적용하며 매우 통합학문적으로 진척시켰다. 그녀 공부의 양과 폭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어서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 노고와 수고에 감사와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 모든 추구와 노력은 20세기 민족 식민화와 분단의 현실에 직면해서 “한국신학에로의 전환기회”를 거쳐서 ‘민족신학’, ‘통일신학’을 수립하고자 하는 행보였다.(2)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그녀는 ‘여성신학’이라는 이름 아래서 새롭게 이 모든 민족과 민중, 사회주의와 통일의 물음들을 통전적으로 연결시켜서 박순경의 ‘한국적 여성신학’의 틀을 보여주었다. 지난 2014년 이제 중년여성들이 된 제자들로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춤과 노래로 맘껏 축하를 받은 그녀의 저술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편』은 다시 한 번 그녀 신학이 무엇을 추구하고, 그 추구의 길에서 어떻게 항상 다시 ‘원초’(原初)를 중시하면서 근본과 기초를 추구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의 저서인 이 책에서 박순경 통일신학은 특히 구약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관련해서 한민족(동이족)의 원류 이해를 더욱 긴밀히 연결하면서 그녀의 민족신학과 통일신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전진하고 전개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3)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의 호 ‘원초’(原草)는 ‘본디 풀’이라는 인간과 세계의 지극한 무상성과 상대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그 뜻은 다르지만 한글 발음은 같은 ‘근본’과 ‘기초’라는 의미의 ‘원초’(原初)로 읽혀져도 손색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만큼 그녀의 신학은 가장 서로 상반되는 것 같은 두 영역과 의미, 예를 들어 하나님과 세상, 초월과 내재, 기독교와 유물론 등을 ‘불이적’(不二的)으로 하나로 엮으려고 시도인 것을 드러내는 의미라고 하겠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지금까지 박순경 통일신학과의 대화와 그 연구는 주로 정치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박순경 선생님 스스로도 하나님과 세상의 질적 구분을 강조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윤성범이나 유동식의 신학, 변선환의 종교신학을 세차게 비판하며 토착화신학이 “반공기독교의 반민족적 상황”에 안주하며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해 왔다.(4)
하지만 나는 이번 박순경 통일신학을 우선적으로 토착화 신학의 한 과업으로 여기면서 수행해 왔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토착화신학이란 어떻게 하면 기독교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 한반도 삶의 증진을 위해서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고,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 지금 우리 현실에서 통일과 평화의 일이 가장 긴요하다고 생각됨으로 통일과 평화의 일을 토착화 신학의 핵심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 더해서 이러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는, 특히 그 도상에서 오늘날 점점 더 심각해지는 남남갈등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공기독교, 보수기독교의 폐쇄된 서구와 미국 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고유의 사상 전통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좁은 의미에서의 토착화 신학적 작업은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에서 비록 선생의 토착화 신학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과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통일신학 안에 나름대로 유사한 시도와 관점들이 다분히 들어있다고 본다. 이번 본인의 연구를 통해서 그러한 측면들이 더욱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지속적으로 스스로 강조하시듯이 박순경 선생의 통일신학은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온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 나라’ 의식이 그녀 신학의 토대이자 지향점이 되므로 그 민족신학은 결국 세계신학에로 향하고, 그렇게 전 세계를 향한 의미로 한국신학이 확장될 때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박순경 신학의 성령론적 전개를 말하고, 박순경의 여성신학은 이 영역에 자리한다고 본다.
이상의 개론적 탐색을 통해서 박순경 통일신학이 크게 세 영역으로 그룹화 될 수 있다고 보고, 본 연구를 그 구조 안에서 살피고자 한다. 그 세 영역과 주제란 첫째, 그녀 신학의 하나님 나라 의식과 민족, 한민족 이해,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적 의미와 민중, 민중신학과의 대화, 마지막으로 성령 이해와 여성신학, 세계신학적 의미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녀 신학의 결론적인 종합이라고 할 수 있는 2014년의 저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이라는 제목이 잘 지시하는 대로 박순경 통일신학은 삼위일체적 신학 일반을 모두 포괄하고, 본 논문은 그 탐구의 깊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전체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聖․性․誠이라고 하는 한반도의 토착적 유교 전통으로부터 가져와서 기독교 신학에서의 하나님․그리스도․성령을 또 ‘다르게’ 지시해 보려는 언어를 가지는 본인의 한국적 여성신학으로부터 어떠한 비판적 성찰을 보탤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본인의 모든 신학적 작업도 선생님의 통일신학처럼 그렇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더 나아가서 그로부터 한국신학이 어떻게 세계문명사적 의미를 얻을 수 있겠는지를 탐색하는 하나의 고투라고 감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의미에서이다.
미주
(미주 1) 박순경, “나의 신학 수업”, 『하나님 나라와 民族의 未來』,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22쪽.
(미주 2) 박순경, 『통일신학의 미래』, 사계절, 1997, 27쪽.
(미주 3) 이번 3.1운동 백주년을 맞이해서 ‘변선환 아키브’ 주관으로 펴낸 『3.1정신과 ‘以後’기독교』에서 박순경 통일신학을 탐구한 신혜진 박사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박 선생님의 통일신학에 관한 핵심 저서 『통일신학의 여정, 1992』이 그 제목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제목은 그의 제자 김애영 교수로부터 연원한 것이라고 선생님은 밝히고 있다. 신혜진, “한반도 평화와 통일신학-박순경 통일신학의 활성화를 위한 비판적 검토”, 변선환 아키브 편,『3.1정신과 ‘以後’기독교』,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9, 260쪽.
(미주 4) 같은 책,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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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과 기독교
박순경 (지은이)동연출판사2023


책소개
우리 민족사와 민족 분단, 교회 분열과 일치 문제, 여성의 의의와 각성, 민족과 세계 평화, 하나님 나라와 온 피조물의 기도라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1940년대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민족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고난과 민족 분단 상황과 기독교와의 관련성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같은 국제적인 화해 분위기가 생겼고, 비록 위장 평화 선언이었으나 자주ㆍ평화ㆍ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원초는 더 이상 민족 분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일의 과제를 미뤄둘 수 없다는 자각과 더불어 한국 신학으로의 전환을 결심하고 한국 신학의 일환으로서 통일 신학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목차
개정판을 펴내며
머리말
여는 글
이 민족의 기도를 들으소서
1부 ׀ 한민족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I. 민족의 역사적 의미와 문제
II. 서양 자본주의 ․ 식민주의와 기독교 선교
III. 항일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의의와 문제
IV. 민족 분단과 분단을 넘어서는 길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I. 글머리에
II.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III.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미래
한민족의 신학
I. 역사와 신학의 주체로서의 한민족
II. 서구 신학 전통과 한민족의 신학
III. 한민족의 신학의 성서적 근거
IV. 한민족의 민중 의식의 대두와 민족 분단
V. 민족 분단을 넘어서는 복음과 선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I. 여성신학의 의의와 방법
II. 하나님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III. 교회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IV. 인간의 여성신학적 해석
V.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한국에 있어서의 복음주의와 교회 성장
2부 ׀ 기독교와 세계
기독교와 타 종교
II. 하나님의 계시와 종교의 구별
III. 예수 그리스도의 통일성 문제
IV. 신학의 토착화와 상황화 문제
V. 역사와 인간성의 구원 문제
종교와 여성
I. 여성학의 과제와 방법
II. 종교와 여성해방
III. 기독교와 여성해방
제3세계 신학과 방법론에 대한 고찰
I. 제3세계 신학의 대두
II. 제3세계 신학의 방법론적 주제들
III. 성령과 제3세계 신학
교회 연합과 민족통일
I.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직제위원회의 동향
II. 교회 연합과 민족통일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이 책의 머리말에서 원초가 밝히고 있듯이 원초는 1940년대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민족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고난과 민족 분단 상황이 기독교의 관련성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원초가 한민족 혹은 조선 민족을 한국 신학의 주제로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은 우리의 근현대 민족사에서 전개된 항일 민족운동과 1945년 이래의 민족 분단 상황을 극복하려는 통일운동에 있다는 사실을 통일신학 관련 논문들에서 밝히고 있다.
_ 김애영, <개정판을 펴내며> 중에서 접기
한국 기독교는 현재 민족이 당면한 문제 상황의 요인들, 민족과 교회의 우매함과 세계열강들의 지배 세력의 정체를 인식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은 분단된 세계의 어느 한 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양편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가능성을 증언할 수 있는 자유를 행사해야 하며, 이러한 복음 인식은 지금까지의 교회의 전통적인 적대감, 북한과 소련에 대한 적대감을 넘어서게 하는, 그래서 교회 자체의 과오를 승인하게 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첩경이다.
“1부_ 한국 민족과 기독교의 문제” 중에서 접기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근대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임이 좋다는 말과 모순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와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선교사들의 거의 전반적인 생각이 바로 서양 근대 문명의 지배 세력에 입각한 것이었다. 일본의 잔학성을 목격하게 된 헐버트는 한국의 자주독립을 역설했으나 아직도 일본의 잔학성과 결탁한 미국의 문제를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는 교육에 의해서만 일본의 경멸을 말살할 수 있으니, 교육을 위한 미국의 독지가는 없느냐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역시 교육 선교의 문제점, 즉 처음부터 한국 민족의 자주독립에 위배되는 전제와 세계적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1부_ 한국 민족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중에서 접기
역사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은 역사에 ‘오시는 자’(The One Who is Coming)로서 표현되며, 종말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사 밖으로부터, 즉 모든 역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로부터 역사를 심판하고 구원하시는 자로서 ‘오시는 자’이다. 종말적으로 역사를 심판하고 구원하시는 자는 역사 내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자이며, 그렇게 도출된 역사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20세기의 종말론은 역사 밖으로부터 혹은 미래로부터 역사로 오시는 자, 역사에서 행위하시는 자로서 하나님을 말한다. 블로흐(Ernst Bloch)는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예언자적 역사 신앙을 ‘희망의 원리’(das Prinzip der Hoffnung)로서 재해석하면서 마르크스의 역사 이해와 종말론적 미래 비전의 원리와 일치시킨다.
“1부_ 한민족의 신학” 중에서 접기
그리스도교이든 타 종교이든 무신론ㆍ반종교적 세계이든 다 역사의 문제 상황과 곤경에 이미 함께 처해 있다. 그리스도교는 오늘의 세계의 문제 상황을 초래한 서양 주역들에게 봉사해 왔으므로 그리스도교 안에 구원이 있을리 없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이 문제 상황 극복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새롭게 수행할 때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役事)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저 무신론ㆍ반종교적 역사 혁명론은 역사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실패에 대한 치유책으로 수긍되어야 한다.
“2부_ 기독교와 타 종교” 중에서 접기
인간학으로서의 여성학은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것이므로 독자적인 이론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여성학은 현재 문제 제기의 단계에 있는 셈이다. 여성학의 영역은 독자성을 가져야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문제들을 분석해내고, 이것들을 새롭게 형성해야 하는 과제를 가진다. 종교, 문화, 사상, 사회, 경제, 정치, 교육, 이 모든 영역 역시 지금까지 남성에 의해서 대변되고 형성되어왔으므로 여성학적으로 재검토되고 재형성되어야 한다. 이 모든 영역이 인간의 자기실현을 위한 점에서 보면 남성 지배의 문제, 즉 왜곡된 인간성의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성의 문제 제기에 비추어 재구성 재조명되어야 한다.
“2부_ 종교와 여성”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순경 (지은이)
감리교신학교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에모리대 신학부(B.D.), 드류대 대학원에서 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후 목원대 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아시아교회협의회(CCA) 신학위원회 위원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직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통일운동에 헌신하였다.
저서로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통일신학의 여정』, 『통일신학의 미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 편)』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민족통일과 기독교>,<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총 14종 (모두보기)
박순경(지은이)의 말
머리말
1972년 남북공동 성명이 발표되자,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 발표되었든지 간에 이것을 계기로 해서 나는 저 민족 문제들을 한국 신학의 필연적인 주제들로서 재반성하기 시작했다. 한국 신학의 주제로서의 한민족은 물론 그러한 특정한 주제들 이상이며, 종교와 문화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민족사 전체에서 파악되어야 하지만, 민족사 전체의 의의는 오늘의 민족적인 삶의 문제 상황, 특히 분단 상황의 극복이라는 방향에서부터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신학은 저 특정한 민족 문제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한국 신학의 방향이 열리고 방법론이 형성되리라고 생각한다. 『민족통일과 기독교』라는 이 책에 그러한 한국 신학적 작업의 일부분이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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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사회의 문제점, 모순구조의 핵심은 ‘민족 분단’이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와 사명은 민족 분단을 해소하는 것, 민족 통일의 문제이다. 한국 여성의 인권과 평등의 문제점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민족 모순과 기독교의 관련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기치로 ‘통일 신학’을 주창한 사람은 1986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한국의 강단에 서 있던 중견 여성 신학자 원초 박순경이다.
원초는 이 책에서 우리 민족사와 민족 분단, 교회 분열과 일치 문제, 여성의 의의와 각성, 민족과 세계 평화, 하나님 나라와 온 피조물의 기도라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1940년대에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한민족과 기독교의 관련성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피억압 식민지 민족의 고난과 민족 분단 상황과 기독교와의 관련성 문제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같은 국제적인 화해 분위기가 생겼고, 비록 위장 평화 선언이었으나 자주ㆍ평화ㆍ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원초는 더 이상 민족 분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일의 과제를 미뤄둘 수 없다는 자각과 더불어 한국 신학으로의 전환을 결심하고 한국 신학의 일환으로서 통일 신학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고, 여전히 한국 사회 안에서는 이념 갈등을 지속하고 있으며, 소위 강대국들의 이해 다툼에 속절없이 이용당하고 있다. 또한 일부 수구세력이나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분단의 고착화를 활용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또 오도하여 이념 장사에 전념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통일이 아닌 평화 공존이나 한반도 중립화 방안 등으로 대체하자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한편 그 제안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지만 여전히 그 모든 문제의 화두를 ‘통일’이라는 것으로 대표하여 집약할 수 있다.
초판이 출간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여전히 이 책의 개정판을 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원초 박순경의 사후 3주기와 탄신 100주년을 맞아 다시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의 출간이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접기
박순경의 삶과 사상에 대한 요약 및 비판적 평론이다. 텍스트 바깥을 향한 요약과 평론 서술에는 <해라>체를 적용한다.
I. 박순경의 생애와 신학적 궤적 요약
<1. 생애적 배경과 존재사건>
박순경(호: 原草)은 해방 전후 극심한 개인적 실존의 위기(부모의 별세와 병마) 및 민족사적 격동기 속에서 신학을 시작했다
<2. 한국신학·통일신학으로의 대전환>
1970년대 유럽 유학을 거치며 박순경은 서구 신학자 연구 중심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분단 극복'이라는 구체적 역사 현실로 신학적 주제를 급선회했다
<3. 통일신학의 핵심 구조: 민족·민중·여성>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삼위일체론적이고 통전적인 성격을 띤다
<하나님 나라와 민족 구원사>: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진 민족들의 기원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특수성을 세계 구원사로 승화시킨 성서적 통찰을 원용하여, 제국주의 식민 지배와 분단의 멍에를 짊어진 한민족의 고난을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사를 증언하는 주체로 정초한다
. <그리스도와 제3의 길>: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 결탁한 반공기독교를 통렬히 비판하며,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인간학과 마르크스주의 역사변혁론을 '기독교의 역사적 실패에 대한 치유책'으로 전유한다
. 이를 통해 좌우와 동서 대립을 종말론적으로 초월하는 '화해와 사회평등의 제3의 길'을 모색한다 . <성령과 여성·시원(始原)의 결합>: 3·1운동에서 발현된 '민족·민중·여성'의 삼차원적 주체성을 포괄하며 남성 중심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여성신학을 전개한다
. 만년의 저작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2014)에서는 창세기 창조설화와 동이족(東夷族)의 고대 문명론(환국, 삼일신고 등)을 대비·연결시키며 한민족의 원초적 시원성을 재해석하는 급진적 시도를 감행했다 .
II. 비판적 평론: 세계인의 시각에서 본 사상사적 의의와 한계
박순경의 신학은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가 가장 폭력적으로 내면화된 한국 사회와 개신교계를 향해 던진 심대한 파열구였다. 서구 신학의 맹목적 추종과 미국 패권주의에 종속된 근본주의 반공 기독교를 향해 철저한 역사적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그녀의 지적 투쟁은 한국 지성사에서 보기 드문 치열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근대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지구공동체 및 현대 학문적 객관성의 견지에서 볼 때, 그녀의 통일신학은 다음과 같은 사상사적 긴장과 한계를 노정한다.
<1. 서구 중심주의 탈피의 역설: 또 다른 특수주의적 민족신화로의 편향>
박순경은 서구 기독교가 복음을 서양 근대 자본주의 문명과 동일시한 오만을 해체하려 했다
<2. 시원주의(始原主義) 탐구와 유사역사학 수용의 학문적 취약성>
후기 저작에서 박순경은 민족의 시원을 기독교 창조론과 접목하기 위해 동이족 중심의 고대사 담론과 위서(僞書) 논쟁의 중심에 선 텍스트들(<환단고기> 등)을 적극적으로 원용했다
<3. 초월적 유일신론과 유물론적 인간학 사이의 본질적 모순>
박순경은 칼 바르트적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엄격히 견지하면서도
<4. 종합적 평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제국주의 지배와 분단, 이념 대립으로 찢긴 한반도 역사의 심연에서 종교적 언어를 안일한 도피처가 아닌 치열한 해방의 무기로 벼려낸 기념비적 작업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물리적 폭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분단 모순의 철폐를 외친 그녀의 실천적 용기는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적 면모를 지닌다
박순경의 삶과 사상 — 민족·분단·통일을 신학의 중심에 놓은 여성신학자
박순경(1923–2020)의 신학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식민지 경험, 민족분단, 전쟁, 독재, 반공주의, 여성의 억압이라는 한국인의 구체적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묻는 작업이었다. 첨부 자료 역시 박순경을 한국 토착화신학의 한 계보에 놓으면서도, 단순한 전통문화와 기독교의 접목보다는 <민족·분단·통일>을 중심으로 토착화신학을 새롭게 구성한 인물로 평가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1. 서구 신학을 배웠지만 한국 현실로 돌아오다
박순경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드루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활동했고 아시아교회협의회(CCA) 등 국제 에큐메니컬 운동에도 참여했다. 대표 저서로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통일신학의 미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등이 소개되어 있다. 2023년에 탄생 100주년과 사후 3주기를 기념하는 개정판이 나온 사실에서도 한국 신학사에서 그녀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출발점이 처음부터 민족신학이나 통일신학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순경은 본래 서구 신학을 본격적으로 훈련받은 조직신학자였다. 바르트, 몰트만, 블로흐 등의 사상과 종말론, 하나님의 나라, 삼위일체론 같은 고전적 조직신학의 문제를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1960~70년대의 정치 현실, 특히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 그리고 남북분단이라는 문제를 경험하면서 그의 신학에는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조직신학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박순경의 사상은 <서구 신학을 버리고 한국적인 것으로 돌아간 신학>이라기보다, 서구 신학의 자원을 가지고 한국의 역사에 다시 질문한 신학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2.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분단’이었다
박순경에게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는 민족분단이었다.
분단은 단순히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의식과 인간관계와 종교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했고, 남한 사회에서는 반공주의가 국가 정당성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박순경은 특히 기독교가 여기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국 개신교가 반공주의를 사실상 신앙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북한과 공산주의를 절대악으로 규정한다면, 기독교가 화해의 종교가 아니라 분단을 정당화하는 종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료에서도 3·1운동 이후의 역사와 미국, 일본, 냉전체제, 남북분단을 함께 보면서 한국교회와 민족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이 반복해서 강조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따라서 <통일>은 박순경에게 정치학의 한 주제가 아니었다.
통일은 신학의 문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화해와 구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3. ‘민족’을 신학적 주체로 세우다
박순경 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개념은 <민족>이다.
서구 신학에서는 개인, 교회, 인류가 신학의 주요 주체로 등장하지만, 박순경은 한국과 같은 식민지·분단 경험을 가진 사회에서는 <민족> 역시 신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녀가 말하는 민족은 혈통을 숭배하는 인종주의적 민족 개념과는 다르다. 일제 식민지배, 해방, 분단, 한국전쟁, 독재를 경험한 역사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녀는 한국 민족사를 단순한 세속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역사>로 본다. 그렇다고 민족 자체를 신성화하지 않는다. 민족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민족보다 크다.
이 점이 박순경 민족신학의 긴장을 이룬다.
민족은 중요하지만 민족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자료에서도 박순경이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사>라는 관점에서 읽으려 했으며, 제1세계와 제2·3세계의 역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까지 함께 놓고 한국의 분단을 해석했다고 설명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4. 하나님의 나라와 통일
박순경에게 민족통일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통일보다 더 큰 지평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여기에서 그녀의 조직신학적 배경이 드러난다. 박순경이 정치운동의 언어만을 사용했다면 통일은 민족국가의 완성으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민족국가도 절대화할 수 없도록 만드는 초월적 기준이다.
남한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며 북한도 아니다. 통일국가조차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은 단순한 국가통합을 넘어
<적대 → 화해>
<분단 → 공동체>
<억압 → 해방>
<죽음 → 생명>
이라는 종말론적 운동의 역사적 표현이 된다.
이 점에서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과 연결된다. 첨부 자료에서도 그녀가 블로흐와 몰트만을 통하여 미래, 희망, 하나님 나라를 역사변혁과 연결시켰음을 보여준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5. 민중신학과 가까우면서도 다른 신학
박순경은 1970~80년대 민중신학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들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다.
민중신학이 <민중은 누구인가?>, <억압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는가?>를 중심 질문으로 삼았다면, 박순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단된 민족 전체의 해방과 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
그래서 박순경에게는
민중 → 민족 → 통일 → 하나님의 나라
라는 확대 과정이 나타난다.
민중의 해방을 민족의 화해에서 떼어낼 수 없고, 민족통일 역시 세계적 평화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를 단순한 <통일운동가>가 아니라 조직신학자로 남게 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6. 여성신학 — 민족해방만으로 충분한가
박순경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여성신학이다.
한국의 민주화·민중·민족운동에는 하나의 약점이 있었다. 민족해방을 말하는 남성 운동가들이 가정과 교회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일 수 있다는 문제이다.
박순경에게 여성해방은 민족해방의 부수적 과제가 아니었다.
여성이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국 여성신학이 서구 여성신학을 단순히 번역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한국 여성의 경험은 식민지, 전쟁, 분단, 가부장제, 경제적 억압 등이 중첩된 역사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해방 + 민족해방 + 통일>
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첨부 자료의 목차가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를 별도의 큰 부분으로 두고 <여성신학의 의의와 방법>, <하나님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교회론의 여성신학적 해석>, <민중과 여성신학>을 함께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7. 왜 ‘토착화신학’인가
박순경을 토착화신학자로 보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전형적인 토착화신학이라 하면 흔히 유교·불교·도교·무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떠올린다. 변선환, 윤성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박순경의 관심은 조금 다르다.
그녀에게 한국적인 것은 반드시 단군이나 무교 같은 전통종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민지 경험도 한국적 현실이고, 분단도 한국적 현실이며, 한국전쟁과 반공주의와 민주화운동도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이다.>
따라서 박순경의 토착화는 <문화적 토착화>보다 <역사적 토착화>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이 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기독교가 한국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를 묻기 때문이다.
첨부 글 역시 바로 이런 의미에서 박순경의 통일신학을 <한국 토착화신학>으로 해석한다. 한국 토착화신학으로서의 박순경 통일신학
평론 — 박순경 신학의 강점과 한계
박순경 신학의 가장 큰 공헌은 한국 기독교가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신학 한복판에 들여놓았다는 데 있다.
<분단된 나라에서 통일을 말하지 않는 신학이 과연 한국 신학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 교회는 개인의 구원, 천국, 축복을 매우 많이 이야기했지만 일제강점기, 분단, 전쟁, 독재, 냉전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신앙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충분히 신학적으로 성찰하지 않았다. 박순경은 바로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특히 그녀의 장점은 통일을 감상적 민족주의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초월적 지평 속에 놓으려 했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남한·북한 어느 국가도 절대화할 수 없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첫째, <민족>이라는 범주가 지나치게 커질 위험이다. 계급·세대·지역·젠더의 갈등을 모두 민족분단이라는 하나의 틀로 설명하면 한국 사회 내부의 다양한 갈등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질 수 있다.
둘째, 민족사를 <구원사>로 해석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강한 주장이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너무 직접적으로 읽어내면 특정한 정치적 해석에 신적 권위를 부여할 위험도 생긴다.
셋째, 냉전체제와 미국의 역할, 남한의 반공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북한체제 내부의 국가폭력과 권위주의까지 동일하게 충분히 분석해야 통일신학의 비판적 균형이 완성된다. 박순경 신학을 오늘 다시 읽는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박순경의 핵심 문제제기는 남는다.
박순경이 남긴 질문
박순경은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진 신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신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매우 분명했다.
한국에서 하나님을 말하려면 한국인의 실제 역사를 말해야 한다. 식민지를 말해야 하고, 전쟁을 말해야 하며, 분단을 말해야 한다. 민중과 여성을 말해야 하고, 남과 북의 화해를 말해야 한다.
그래서 박순경의 신학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요약할 수 있다.
서구 조직신학 → 한국 역사 → 민중 → 민족 → 여성 → 통일 → 하나님의 나라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점이다. 민족도 통일도 그 자체가 절대적 목적은 아니다. 인간을 갈라놓는 적대와 억압을 넘어서는 더 큰 화해의 지평이 최종 기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순경은 <민족주의 신학자>라기보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종말론적 지평에서 해석하려 한 한국의 조직신학자>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박순경과 변선환·이정배·이은선을 비교할 때 특히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봅니다. 변선환이 <종교간 대화>, 이정배가 <생태·문명전환>, 이은선이 <여성·관계·유교>를 통해 한국 신학을 재구성했다면, 박순경에게 결정적인 출발점은 <민족분단과 통일>입니다. 이 네 사람을 함께 놓으면 한국 토착화신학이 단순히 ‘한국 문화와 기독교의 만남’이 아니라 <종교·역사·생태·여성·민족>으로 계속 확장되어 온 과정이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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