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0

이병주 장편소설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이병주 장편소설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한국 현대소설
이병주 장편소설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by 언덕에서 2012. 9. 6.




이병주 장편소설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소설가·언론인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장편소설로 1968년 4월부터 1970년 3월까지 [월간중앙]에 연재되었다. '관부연락선'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시까지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 사이를 운항하던 연락선을 의미하며,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이라고 부른다. 1905년 9월 산요기선주식회사[山陽汽船株式會社]에 의해 개설되어 한국의 경부철도(京釜鐵道)와 일본의 도카이도[東海道]·산요·규슈[九州] 철도 간에 여객· 수하물·속달취급화물의 연대운수를 개시하였다. 처음으로 취항한 것은 1680t급의 이키마루[壹岐丸]로 1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그 뒤 7000t급의 곤고마루[金剛丸]·고안마루[興安丸] 등과 3000t급의 도쿠주마루[德壽丸]·쇼케이마루[昌慶丸] 등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까지 취항하였으며, 운항 소요시간도 7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다. 현재는 부관페리가 취항하여 한일 간의 중요한 해상교통로가 되고 있다.

장편소설 『관부연락선』은 위의 관부연락선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1940년 초부터 한국전쟁까지를 시간적인 배경으로 하는 좌. 우 이데올로기를 다루었다. 주인공 유태림의 후배이자 친구인 이형식이, 진주를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을 교차시키면서, 유태림의 수기와 자신의 회상을 섞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해방 전후 경남지방 좌익지식층들의 활동상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부산항 1부두에 정박한 관부연락선의 모습. 선박 뒷편에 영도 봉래산이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태림은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대학생이다. 그는 학병으로 가기 전에, 일본인 E와 원주신(元周臣)이란 사람을 조사하는 과정을 ‘관부연락선’이라는 수기로 적어 둔다. 그러던 중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전선에서 일본 병사 노릇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이형식의 소개로 좌익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C(경남 진주로 추정) 고장의 중학교 교사가 된다. 좌와 우의 불화와 투쟁이 본격화되자 그는 그곳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면서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러나 시대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질 뿐이다. 유학생의 낭만은 이내 전화에 휩쓸린다. 태평양전쟁 말기 유태림은 학병에 징집되어 중국전선으로 끌려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국선에 올랐지만 그가 도착한 조국은 전쟁이 임박한 극심한 이념대립의 공간이었다. 고향에서 교편을 잡은 유태림은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 청년 학생을 이끄는 한편 분단의 모순을 성찰하며 나라 만들기를 위한 사상논쟁에서도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고향의 청년을 지켜내는 지사의 풍모를 잃지 않은 그였지만, 끝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는 좌우 쌍방으로부터 시달림을 받다가 종국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부대에 강제 납치되어 행방불명됨으로써 실종자가 되고 만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다가 그는 이 같은 처지를, 자신의 수기를 통해 “‘운명. 운명…… 그 이름 아래서 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써, 역사적 운명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말로는, 한 젊은이의 비극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휩쓸려간 당대 인텔리들의 비극적인 모습의 일단을 보여준다.

소설가, 언론인 이병주(李炳注. 1921∼1992)





나림 이병주(1921 ~ 1992)는 44세의 나이로 뒤늦게 문단에 나왔지만 그 뒤로 1백 권이 넘는 책을 펴낸 한국문단의 가장 정력적인 ‘직업작가’로 손꼽혀 왔다. 그는 해방 전. 후사에 정통해서 이를 소재로 한 이데올로기 성향이 짙은 작품을 썼다.

그는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성을 묘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추구했다. 특히 그는 짙은 농도의 화려한 문체로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다양한 체험을 녹여냄으로써 일반대중은 물론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인기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192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일본 명치대 문예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불문과를 중퇴한 그는 진주농대와 해인대 교수를 거쳤고 1955년부터 부산 [국제신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문단 데뷔작은 1965년 [세대]지에 발표한 중편 <소설 알렉산드리아>인데 이 작품은 곧 그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 작품들로는 장편 『관부연락선』, <산하>, <지리산> 등이 있으며, 한국전쟁을 다룬 중편 <예낭풍물지>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스스로 꼽기도 했다. 타계 직전에는 <소설 제5공화국>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 중의 하나인 <지리산>은 일제말기부터 해방, 6ㆍ25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를 배경으로 역사의 그늘에 묻혀 버렸던 빨치산 등 비극의 주인공들을 소설 속에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고 있으나, 문단 일각에서는 그의 보수적 시각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술과 풍류를 즐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보다 인간적인 것, 인간의 안에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와 정치 비판, 이념, 역사 등을 소재로 광범위한 대중을 사로잡는 작가로 관심을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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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연락선』은 동경 유학생 시절에 유태림이 관부연락선에 대한 조사를 벌이면서 직접 작성한 기록과, 해방공간에서 교사생활을 함께 한 해설자 이 선생이 유태림의 삶을 관찰한 기록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기록이 교차하며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의 장이 이선생인 ‘나’의 기록이면 다음 장은 유태림인 ‘나’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작가가 시종일관 이 소설을 통해 추구한 중심적인 메시지는, 그 자신이 소설의 본문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당시의 답답한 정세 속에서 가능한 한 양심적이며 학구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 진지한 한국청년의 모습”이다. 능력과 의욕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 하기로는 유태림이나 우익의 이광열, 좌익의 박창학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공간의 좌우익 갈등 속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옳았으며, 신탁통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으며, 좌우익 양쪽 모두의 권력에서 적대시될 때 어떻게 처신해야 옳았겠는가를 작가가 질문하는 셈인데, 거기에 이론 없이 적절한 답변은 주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다만 이를 당대 젊은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삶의 마감-유태림의 실종 및 다른 인물들의 죽음을 통해 제시할 뿐이다.

우리 역사에는 너무도 많은 유태림이 있으며 그들의 아픔과 비극이 오늘날 우리 삶의 뿌리에 맞닿아 있다. 이 명료한 사실을 구체적 실상으로 확인하게 해 준 것은, 오로지 이 작가의 공로이다. 그것은 또한 이미 30여 년 전에 소설의 얼굴로 등장한 이 역사적 격랑의 기록을, 오늘날 우리가 다시 찾아 읽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관부연락선 : 부관연락선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국제 여객선으로, 광복 이전에는 관부연락선이라 불렸다. 1905년 일본의 국책 해운회사인 산요기선주식회사가 개설하였으며, 일본의 철도망과 한반도의 경부선·경의선, 만주의 철도 및 시베리아철도까지 연결되는 국제 교통망의 핵심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관부연락선은 일본의 대륙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수많은 한국인이 징용과 강제노동을 위해 일본으로 끌려갔고, 생활 터전을 잃은 농민들도 북해도 탄광 등으로 향하기 위해 이 배를 이용해야 했다. 최초의 연락선은 1,680톤급 이키마루였으며, 이후 3,000톤급 쇼케이마루·도쿠주마루·쇼토쿠마루가 운항되었다. 1935년부터는 만주와 중국 방면 진출 확대에 따라 7,000톤급 공고마루와 고안마루가 투입되어 운항 시간이 7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군사 수송에 동원되다가 미군의 공격으로 대부분 침몰하였고, 1945년 3월부터 운항이 중단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1964년 여객선 아리랑호가 처음 부산과 일본을 오갔으며, 1970년부터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페리가 정기 운항을 시작하여 한일 간 해상 교통의 역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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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연락선> 요약 및 평론

1. 작품 개요 및 배경

<관부연락선>은 이병주가 1968년 <세대>지에 연재한 장편소설로,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8·15 광복,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제목인 '관부연락선'은 시모노세키(관)와 부산(부)을 오가던 배로, 식민지 조선인들에게는 수탈과 유랑, 그리고 이념적 혼란을 상징하는 공간적·비유적 매개체다. 작가는 지식인 청년 유태수를 중심으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이념적 갈등, 그리고 시대의 폭력 속에 파멸해 가는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2.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유학생인 유태수의 삶에서 출발한다. 유태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식민지 민중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시대의 어둠을 목도하고, 관부연락선을 통해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식민지 지식인이 느끼는 근본적인 번민을 경험한다.

광복이 찾아오지만, 조선 반도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 해방 공간은 좌우익의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분열되고, 미군정과 소련의 영향력 아래 정치적 파행이 거듭된다. 유태수는 어떠한 이념적 극단에도 선뜻 몸을 담그지 못한 채, 이상주의적 열망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 과정에서 유태수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념적 투쟁에 매진하는 인물, 시대의 변화에 편승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인물, 그리고 시대의 톱니바퀴에 치여 사멸해 가는 순수한 인물들이 교차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극단적인 폭력과 혼란은 최고조에 달한다. 전쟁과 이념적 광풍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유태수는 자신이 지켜온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지적 고뇌가 현실의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감한다. 결국 그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며 시대를 관통한 지식인의 서사를 마무리한다.

3. 작품 평론: 격동의 역사와 지식인의 비극적 방황

가. 식민지와 해방 공간의 역사적 실재성

<관부연락선>은 이병주 문학의 정수인 '역사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작가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허구의 서사를 정교하게 결합하여, 단순한 시대적 배경을 넘어 역사 그 자체가 인물들의 운명을 규정하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관부연락선이라는 공간은 식민지 민중이 삶의 터전을 떠나 유랑해야 했던 비극의 통로이자, 해방 후에도 이념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지식인의 은유로 기능한다.

나. 이념의 광풍과 지식인의 무력함

소설은 좌우 대립이라는 해방 공간의 비극을 다루면서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는 시각을 유지한다. 유태수라는 인물은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해방 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질문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 회의와 중간자적 입장은 극단적인 이념 투쟁의 장에서 '배신' 혹은 '무능'으로 치부된다. 작가는 유태수의 비극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광기 앞에서 개인의 지성과 도덕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냉엄하게 고찰한다.

다. 문체와 서사적 특징

이병주 특유의 현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는 작품 전체에 지적인 중후함을 부여한다. 인물들의 대화와 내면 독백에는 철학적·문학적 담론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시대의 비극을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심도 있는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다만, 이러한 관념적인 담론과 다소 과도한 사건 전개가 때로는 서사의 긴장감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4. 결론 및 종합 평가

<관부연락선>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대참사의 시대를 살아낸 조선 지식인에 대한 비가(悲歌)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짓눌린 개인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이념이란 무엇이며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단면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이병주 문학의 금자탑이자, 한국 현대 역사소설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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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 1,000단어 요약·평론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은 일제 말기와 해방 공간을 살아간 조선인 지식인의 정신사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병주는 일본 유학과 학병 동원이라는 경험을 직접 겪은 작가였고, 『관부연락선』은 그러한 세대 경험을 가장 본격적으로 문학화한 초기 대표작이다. 이병주는 1941년 메이지대학 문예과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진학했으나 학병으로 동원되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면서 동시에 상당히 강한 자전적·증언문학적 성격을 가진다. 실제 연구에서도 『관부연락선』은 역사·이데올로기·학병체험·지식인 문제를 다룬 기록·증언문학으로 오랫동안 읽혀왔다.

1. 제목 ‘관부연락선’의 의미

관부연락선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오가던 정기 연락선이었다. 식민지기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병주에게 그것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관부연락선은 <식민지 조선인이 제국 일본으로 들어가는 통로>이고, 동시에 조선인이 자신의 식민지적 처지를 몸으로 체험하는 장소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고 선전했음에도 조선인은 도항 과정에서 별도의 통제와 차별을 받아야 했다. 소설에서 연락선은 이러한 제국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제목은 매우 적절하다.

<관부연락선은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지만 동시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경계를 드러내는 배이다.>

그리고 더 깊게 보면 이 배는 한 시대 전체를 상징한다. 조선의 젊은이들은 일본에 공부하러 가고, 취직하러 가고, 때로는 강제로 동원되면서 이 바다를 건넜다. 일본은 그들에게 문명과 학문과 근대성을 제공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나라를 식민지화한 제국이었다. 바로 이 모순이 『관부연락선』의 출발점이다.

2. 줄거리 — 유태림과 사라진 조선 청년

중심인물은 유태림이다.

소설은 대체로 두 시간대를 교차한다. 하나는 일제 말기 일본 유학생 시절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 후 혼란기이다.

일본 유학생 유태림은 관부연락선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다는 한 조선 청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그 청년이 누구였으며 왜 죽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조사 과정에서 이 청년이 친일 정치인 송병준을 처단하려고 시모노세키까지 갔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한 탐정소설적 수수께끼가 아니다.

유태림이 죽은 청년을 찾는 것은 결국 <식민지 조선인인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이다.

왜 어떤 사람은 일본에 협력했고, 어떤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으며,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가?

실패할 것이 뻔한 독립운동은 무의미한 행동이었는가?

식민지 체제 속에서 공부하고 살아남으려 한 사람은 친일인가?

일본 문학과 문화를 좋아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들이 유태림의 지적 탐색을 통해 계속 제기된다.

특히 의병장 이인영 등에 관한 기록을 읽으면서 유태림은 역사책 몇 줄 뒤에 숨어 있는 인간들의 고통을 발견한다. 이때 이병주의 중요한 역사관이 드러난다. 역사는 승자와 사건을 기록하지만, 문학은 그 사건 아래 짓눌린 개인의 삶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일본 유학생의 모순된 식민지 경험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일본을 단순히 ‘악의 제국’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태림에게 일본은 억압자인 동시에 지식의 세계이다.

일본에서 그는 책을 읽고 서양철학과 문학을 접하며 근대적 지식인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 지식의 공간을 만들어준 일본은 동시에 그의 나라를 지배하고 자신을 제국의 전쟁에 동원하려 한다.

여기서 『관부연락선』은 해방 후의 단순한 민족주의 도식과 상당한 거리를 둔다.

<조선인=피해자, 일본인=가해자>

라는 구도만으로 식민지 경험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에 들어가 보면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그는 일본을 미워하면서 일본어로 사고하고, 일본 책을 읽고, 일본 학교에서 지식을 얻는다. 제국에 저항하려 하지만 제국이 만든 제도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내면화된 식민지성>이 이병주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4. 해방 — 자유가 왔지만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1945년 해방이 찾아오지만 소설은 그것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좌익과 우익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사람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요구받는다. 어제까지 일본 제국 아래서 하나의 억압을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 서로를 ‘좌익’, ‘우익’, ‘친일파’, ‘반동’, ‘빨갱이’로 규정하며 공격하기 시작한다.

유태림은 어느 한 진영에도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않는다.

그는 해방 후 교사가 되어 좌우로 갈라지는 학생들을 중재하고 균형을 지키려 하지만, 시대는 그러한 중간자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여운형 암살을 계기로 단독정부 수립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행방불명된다.

이 점에서 유태림의 생애는 비극적이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고, 해방 후에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는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지만 인간은 아직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중요한 역설이다.

5. 이병주의 ‘회색’ 사상

이병주 문학을 이해하는 핵심어 가운데 하나가 ‘회색’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회색분자’라는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였다. 좌도 우도 아닌 사람,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 기회주의자를 가리켰다.

그러나 이병주의 회색은 조금 다르다.

유태림은 진리가 어느 한 이데올로기에 독점되어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공산주의에도 진실이 있을 수 있고 자유주의에도 진실이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체제도 인간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연구도 유태림의 중립주의를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양 진영의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유지하려는 지식인의 의지로 해석한다. 동시에 그것은 해방 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식민적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이 중립주의의 승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한다.

유태림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이병주의 냉정한 통찰은 여기에 있다.

<역사가 반드시 가장 현명한 사람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극단의 시대에는 가장 균형 잡힌 사람이 가장 위험해질 수도 있다.

6. 유태림이라는 인물

유태림을 단순히 작가의 대변자로만 보면 작품의 깊이를 놓치게 된다.

그는 상당히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다. 연구자들은 그의 의식에서 ‘중간자 의식’, ‘원죄의식’, ‘불행의식’, 심지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굿보이 콤플렉스’를 지적해 왔다.

이것은 중요하다.

그가 중립을 추구하는 것은 단지 철학적 선택만은 아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일본과 조선 사이, 좌와 우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한다.

따라서 유태림은 ‘영웅’이라기보다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평범하면서도 진지한 지식인>이다.

그 점 때문에 오늘날 읽어도 상당히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7. 『관부연락선』의 가장 뛰어난 점 — 역사를 인간에게 되돌려준다

이병주는 역사에 매우 관심이 많은 소설가지만 역사를 숭배하지 않는다.

거대한 역사적 명분보다 그 속에서 살아간 인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민족, 독립, 혁명, 사회주의, 자유민주주의 같은 말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거대한 명분 때문에 실제 인간이 희생될 때 작가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그 역사를 살아야 했던 개인에게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이병주의 유명한 문학관, 즉 역사에서 기록되지 못한 것을 문학이 기록해야 한다는 태도가 『관부연락선』에서 이미 뚜렷하게 나타난다. 작품이 의병과 독립운동을 다루면서도 영웅담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책에 몇 줄로 남는 사건 뒤에 수많은 개인의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복원하려 한다.

8. 한계도 있다

오늘날 독자가 읽을 때 『관부연락선』에는 분명 어려움도 있다.

첫째, 지적 담론이 많다. 인물들이 행동하기보다 역사와 철학, 정치와 문학에 관해 토론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래서 현대 장편소설의 속도감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둘째, 유태림은 ‘생활인’이라기보다 지식인의 전형에 가깝다. 식민지 시대 노동자, 농민, 여성의 경험보다는 남성 지식인의 고민이 중심이다.

셋째, 이병주의 ‘회색’ 또는 중립주의는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를 상대화하다 보면 실제 권력관계의 비대칭까지 희석할 위험이 있다. 식민지 지배자인 일본과 피지배자인 조선을 지나치게 인간적 비극이라는 차원에서 함께 바라보면 식민지배 책임이 약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위험을 인정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작품의 장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9. 식민지 체험의 기록으로 읽으면 특히 흥미롭다

『관부연락선』은 식민지 시대를 <후대의 역사학자가 재구성한 세계>가 아니라 <그 시대에 청년이었던 사람이 기억한 세계>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병주는 1921년생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고 일본어로 서양문학을 읽었으며 학병 동원의 압력을 직접 경험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으면 1930~40년대 조선인 청년에게 일본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였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자>이면서
<교육과 지식의 중심지>였고,

일본어는

<지배자의 언어>이면서
<자신이 책을 읽고 사고하는 언어>이기도 했다.

바로 이 모순 때문에 『관부연락선』은 단순한 항일문학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10. 종합평가

『관부연락선』은 결국 <한 조선 지식인이 두 개의 압도적인 역사 사이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는가>를 그린 소설이다.

첫 번째 압력은 일본 제국주의였고, 두 번째 압력은 해방 후 좌우 이데올로기였다.

유태림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자신을 맡기지 않고 자기 머리로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에는 역사가 너무 폭력적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진정한 비극은 유태림이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인간이 살아갈 공간을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관부연락선』은 단순한 식민지 회고소설이 아니다. 이병주가 이후 『지리산』 등에서 계속 탐구하게 되는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개인은 어떻게 정신적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 출발점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관부연락선』의 유태림과 『지리산』의 박태영은 학병세대의 서로 다른 궤적을 보여주는 짝을 이루는 인물로 해석된다.

나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식민지 경험의 복잡성을 보존했다는 것>에서 찾는다.

후대 사람은 식민지 시대를 ‘항일 대 친일’이라는 선명한 두 색깔로 정리하기 쉽다. 그러나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간 사람에게 현실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배우고, 일본인 친구를 만나고,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관부연락선』은 바로 그 <회색지대의 인간>을 기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오늘날 오히려 더 중요한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판단하는 것과 역사를 살아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한 줄 평가>

『관부연락선』은 일본 식민지배와 해방 후 좌우 대립이라는 두 거대한 역사 사이에서 자기 정신의 독립을 지키려 했던 조선인 지식인의 실패를 통해, “역사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이 역사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이병주의 대표적인 지식인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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