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책이다. 책의 내용이 무가치하거나 유해하다는
뜻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저자가 이
책에 담긴 글들을 쓰는 일은 없었을 테다. 이 책은, 2014년 6월 피소부터 2025년 7월 모든 재판 절차가 승소
로 종결되기까지 11년 동안, 저자를 기소한 검찰을 비롯해, 가처분 심리―민사 1심―형사 1심―항소심―상
고심―파기환송심―민사항소심으로 이어진 재판 절차에 따라 바뀐 일곱 개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 답변서,
진술서 등의 서면과 재판 진행과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문 등을 모아 엮은 두툼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당초 저자를 향한 부당한 고소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고 그 사건이 없었다면 태어날 까닭이 없는
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건 꽤나 ‘지루한’ 일이다.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서로 다른 ‘수신자’를 향해 몇 번이고 거듭
해서 되풀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법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되
풀이해야 하는 저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읽기도 이리 지겨운데, 쓰는 사람은 오죽했
을까’ 저자의 고통이 갈피마다 전해지니 읽는 일도 덩달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책에 담긴 내용의 대부분은 딱히 새로울 것도 없이 이미 내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읽었던 내용을
재확인시켜줄 따름이었다. 여전히 적잖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저자는 재판 과정 내내 “설사 저자가 피소
된 내용을 책으로 썼다 해도 그것은 학문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고 그저 “저자는 피소
된 바와 같이(적어도 그런 의미로) 말한 적이 없다”고 다퉜을 뿐이기 때문이다.(최종 승소 판결도 정확히 이 쟁
점에서 저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저자가 이 글들을 쓰면서 경험했던 고통이야말로, 한창 원숙기에 접어들
어 더 깊고 넓은 사유와 통찰로 나아가야 할 성실한 연구자의 일상적 시간을 무려 10년이나 다른 일 다 제쳐
둔 채 오로지 “한 번 했던 얘기를 무한반복”하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작업에 꽁꽁 가두어둔 이 시대의 ‘야만’
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음악도 풍경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절망과 스트레스”에 지치지 않고 이 ‘야만’에 굴복하지 않으려 치열하게 맞선 저자의 ‘분투’를 증거하기도 한
다. 그러니 분노해야 마땅할 ‘야만’에 눈 감고 외면하지 않으려면, 갈채받아 마땅할 ‘분투’를 남의 일인 양 ‘강 건
너 불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고작 읽기로라도 저자의 고통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피소 두 달 전 열린 심포지엄 발제문의 한 대목은 그 뒤 10년 동안 벌어질, 또는 최종 판결 이후에도 끝나지 않
고 있는 사태를 예언이라도 하듯 예리하게 짚어낸다. “하나의 생각만이 존중되는 사회, 국가에 그 목소리를 대
표시키는 사회는 ‘다른’ 목소리를 가차없이 억압하고 배제하며 스스로를 국가화합니다.” 이것이 저자가 《제국
의 위안부》를 쓴 까닭이고, 그 책으로 인해 겪은(또는 지금도 겪고 있는) 수난의 핵심적 본질이다. ‘투사’가 아
닌 저자가 이 지루한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도 바로 거기에 있었을 테다. 저자는 “옳지 않
은 생각이 옳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을 장악하는 상황을 그저 방관할 수는 없었다. ‘다른 생각’의 복종과 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상대에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고 쓰고 있다.
뱀발을 붙이자면, 여기서 ‘옳지 않은 생각’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싸잡아 가리킨 것으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자로서의 시간을 10년이나 빼앗긴 저자가 그렇게 말
할 리가 있는가. 당연히 ‘자신(들)만의 생각이 옳고, 그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죄악’이라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하다.
“제가 싸우고 있는 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 차이나 사상 문제를 넘어 비열함과 허위의식입니다.”라는 저자
의 지적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2026-03-09
책]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책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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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책
똥개
: 박유하, 《11년: 꽃다발과 화살》
인천투데이, 202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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