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재론 (2) 박유하, 순한 버전의 정대협
이승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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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음악]
안녕하십니까. 이승만 TV의 주익종입니다. 지난 시간에 박유아 교수가
2013년에 위안부에 관한 책을 낸 후 겪은 11년의 송사 법정 싸움에
관해 다뤘습니다. 박신은 정대업 패권에 도전한 이로서 큰 고초를 겪은 반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주도하는 성과도 얻었습니다. 일례로 위안부 문제라고 하면 정대
외에는 이제 박유아 씨를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유아
씨의 위안부 담부로는 어떤 것인지 그것은 합당한 근거를
가진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가 큰 고초를 겪었으니
그가 위안부 문제로 사기극을 버린 정대엽으니 그의 불론이 옳다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박유아 씨의론을 살펴봅니다.
오늘 강의의 제목은 박유와 순한 버전의 정대업입니다.
제목을 의야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박유아 씨가
위안부 운동 단체의 공격에 맞서 얼마나 잘 싸웠는지를 설명했으니까요.
하지만 박씨의 위안부론 자체를 검토해 보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 시작합니다. 먼저 박유아 씨의 위안 부론을 다시
한번 요약합니다. 박신은 관원에 의한 강제 연행은 없었으나 업자가 사기,
유괴, 납치, 인신 매매 등 불법으로 위안부를 동원하는게 일반적이었다고
봤습니다. 박신은 위안부가 피해자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박신은 위안소에서
업자가 일본군에게서 돈을 받고 위안부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하게
강요했으니 그것은 매춘 행위이면서 또 위안부가 원치 않는 반복적 성행위를
해야 했으니 그것은 간간 행위였다고도 했습니다. 박신은 위안부가 매춘적
간관, 간간적 매춘을 당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위안소는
지옥이었다고도 했습니다.이 이 지옥은 일본군이 설치한 것이기에 일본
정부에는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박신은 위안부에
대한 가해 주체를 일본군 하나에서 일본군과 업자로 이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 정부가 불법적 수단에 의한 동원을 조장 장려한 것은 아니었고 일본 정부가 당시 법을
위반한 건 아니었기에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일본의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며 자신의 방안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가능한
방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신은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기존에
제1, 제2의 목소리와는 다른 제3의 목소리라고 자처했습니다. 강제 연행
성의 서사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정대이 제1의 목소리라면
위안소는 공창과 마찬가지 매춘 없어였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것이 일본 우익의 제2의 목소리이고 바위와 자신은 그 둘과
다른 제3의 목소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박씨 스스로 제3의 목소리라
자처한이 위안부로는 기존 운동 단체의 견해 제1의 견해와 얼마나 다를까요?
박씨 역시 위안부의 피해자성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박씨의 견해는 위안부를 계약에 의해 매춘해 나선 것으로 보는 일본 우익의
위안부 견해와는 전혀 다릅니다. 반면 박씨의이 견해는 정대협의 그것과
범주적으로 같습니다. 박신은 업자가 불법적인 동원 행태를 보이고 또
위안소에서 위안부에게 성적 위안을 강요하고 가혹 행위를 했다고 보는
점에서 업자의 책임도 강조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늘날 업자에게
실제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 위안소를 설치해서 이용하고 감독한
일본군 일본 정부의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도의적 책임이라고 합니다. 묻는 책임의 종류만 다를뿐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한다는 점에서 박씨의
견해는 정대과 같습니다. 정대업이 일본군과 경찰 관리에 의한 강제
연행, 소녀동원, 강간소로서의 위안 소호를 주장하는 반면 박신은 업자에
의한 불법적인 모집 소녀 아닌 성인의 동원 강관적 매춘을 주장합니다.이 이
점에서 박씨의 견해는 정대업 위안부설의 완화된 버전, 순환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씨는 순환 버전의 정대업이라는 것입니다.
박씨도 자신이 정대업과 같은 집안 위에서 있다고 봤습니다. 자, 어떤
사람이 남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남이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하면 일단 설득하려는게 일차적 반응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박신은 자신을 고발한 윤동 단체 그와 제유한 지식인들과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2017년 1월 형사 일심 승소 후에 박시의 지지자들이
함께 편낸 책의 제목은 대화를 위해서였습니다.
누구와의 대화이겠습니까? 일본이나 한국의 우파와의 대화는 아니겠죠. 정대업과 그지지
지식인들과의 대화죠. 약간의 견해차로 생각했으므로 박신은
소송 사태를 대화로 풀고 싶었습니다. 박신은 최근 주관조선 인터뷰에서도
엄청난 오해가 있었고 그 오해를 10년간 풀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11년의 송사 중 그는 왜 운동 단체가 자신의 진위를 몰라 줄까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송사가 끝난 지금도 그는 정대엽 나눔의 집 등이 지난날 자신을 오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이 점에서 저는 박씨가 참으로 나이부하다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운동 단체는 박씨를 오해한게 아니라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운동 단체와 박씨에게는 공통점이 있지만 박씨와 같은 수준의 도덕적
책임 추궁 사제와 위로금 지급 요구를 하면 아시아 여성 기금의 활동으로
위안부 문제는 진작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정대업은 그런 걸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정대업은 전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인정, 책임자 처벌,
배상금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죠. 특히 박근혜 아의 합의 과정에서는 요구 수준을 대폭 낮춰서
교섭에 동의했다가 막상 한일 위안부 합의가 나오자 입장을 뒤집어서 그
합의를 거어차는 술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아니 정대협 그리고 현재의
정의원은 실제로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습니다. 위한부 문제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또 악화시키는 것이 그 진짜 목표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2015년에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 하면서도 일본에 대하여 위안부 문제로 교섭을 전혀하지
않은 것도 바로 똑같은 행태입니다. 박시의 견해대로 한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은 정대협에게 정말 큰 일입니다. 일본 정부를 계속 공격하고
한일 관계를 계속 악화시킬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의
도덕적 책임을 묻자고 한 박시견가 널리 퍼질 경우 대일 강경론을
주장하는 운동 단체의 설자리는 매우 좁아집니다. 정대업은 박릇이
위협당합니다. 정대업은 그런 상황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대업은
박씨에게 민영사 소송을 걸어서 꼼짝달상 못하게 족쇄를 채우려
했습니다. 박씨의 11년 송사는 박씨의 표현대로 진보, 좌익이죠.
좌잉 내부의 싸움이었습니다. 같은 진영의 주도권 싸움이 훨씬 더 격렬한
법입니다. 자, 저는 박씨의 위한 근본적으로 정대협 쪽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박씨의 위한 브론은 타당할까요? 그것은 얼마나 합당한 근거에 입각했을까요?
우선 박씨가 위안부 책을 쓰면서 이용한 핵심 자료는 위안부
증언록입니다. 박시의 제국의 위안부 책은 주로 위안부 증언록에서의
인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동원 방식, 위안소에서의 생활,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 등에 대해선 모두 위안부 증언록을 인용했습니다. 또
박신은 나아가 정대과는 다른 이야기를 구성할 목적으로 새로 위안부 증언
체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박씨가 사료 비판 없이 위안부
증언록을 사실로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역사 연구에서는 증언 구슬을 사료
비판 검증 없이 그대로 쓸 수는 없습니다. 증언이나 구술은 기억의
퇴허로 인해 부정확하며 또 그 체력 과정에서 얼마든지 오염 편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언 체록의 목적이 위안부 피해 보상이라면
증언에서 피해자성이 강조될수록 보상이 커질 것이므로 인터뷰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인터뷰 답변을 하는 사람. 두 사람 모두 피해자성을
과장하고 심지어는 날조할 유인이 있습니다. 증원의 부정학성과 오염
편집은 정신대로 갔다가 유안부가 되었다는 이들의 증언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은진, 박순희, 강덕경 세 사람 예를 들겠습니다.
1932년생인 김은진은 서울광위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일본인 교장 교사의 권유에 따라 정신대를 지원해서 도야마현의
변기 공장인 후지코시 공장으로 갔는데 시모노 새끼에서 군트럭을 타고
후지코시 공장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자 3,
40명이 남았는데 그 정신대원들이 아오머리 현에서 위안부가 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순이도 합천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학교 선생님의 말을 따라서 정신대로 갔는데 아침에 15호새끼에서 트럭에
타서 저녁 때 도야마 현의 군부대 같은 곳에 도착했으며 거기서 보름
훈련을 받고는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강덕경의 학적부에는 그녀가 확실히
정신대로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의 후지코시 공장에 갔음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일본 도야마 현의 후지코시 공장에서 일하다가 배고픔과 중로동을
못 견디고 탈출했는데 얼마 못 가서 헌병회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했고 그
헌병이 데리고 간 부대뒤 천막집에서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고 부대를 따라서
이동한 곳에서 위안부 일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증언은 사실과 너무 다릅니다. 우선 김은진과 박순희는 처음에 시원노
새끼에서 군트럭을 타고 후지코시 공장으로 갔다고 말했지만 30명이
넘는 실제 후지코시 여자 정신대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신대 소녀들은 시모노
새끼부터 도야마까지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뒤에 볼 강덕경도 시모노
새끼에서 후지구시 공장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특히 박순이는 시모노 새끼에서 트럭을 타고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이건 더욱 말이 안 됩니다.
자, 지금 화면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왼편의 시모노 새끼에서 오른편
상단에 도야마시까지는 850km가 넘습니다. 서울 부산에 두 배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두 도시 사이에 고속도로가 없었기에 아침에 자동차로
시모노 새끼를 출발해서 저녁 때 도야마에 도착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시모노 새끼로부터 도야마시까지는 고속도로 11시간이
걸립니다. 당시에는 20시간 이상 넘게 걸렸을 것인데 아무리 짐작
취급을 하더라도 사람을 트럭 짐칸에 태워서 그렇게 갈 수는 없습니다. 또
김은진은 공장이 폭격을 받았다고 증언했지만 도야마 지역이 공습을 받은
것은 폐전 직전인 1945년 8월 3일이었습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도야마는 우리의 동해 일본으로서는 일본이죠.이 이 동해에 접한 도시로서
미군 폭격의 순서가 아주 뒤였습니다. 원차폭탄이 떨어진 8월 6일에 3일
전에야 처음 폭격을 받았고 그때도 후지코시 공장은 폭격을 면에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사망자도 없었습니다. 김은진은 공장이 파괴돼서
더 일할 수도 없고 또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부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러한 정황이
없습니다. 또 박순희는 도야마에 도착하자 곧바로 훈련 같은 것을 바꿔놓은 위안부가 되었다고 말했지만
1944년에는 도야마 현에 군부대가 없었습니다. 군부대도 없는데 무슨
위안소요? 위안부입니까? 군부대가 없었다는 거는 일본의 위안부
운동가들이 있어요. 후곡가에 사는 위안부 운동가 부부가 쓴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강덕경의 증언 역시 믿을 수 없습니다. 강덕경은
후지코시 공장에서 도망나왔다가 일봉군 헌병에게 붙잡혀 간당하고 위안부가
되었다고 했는데 일본 내에 있는 군인이 여성을 납치해서 강관한 다음 부대뒤 위안소로
데려가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
스마랑 사건을 제외하고는 한 부대가 납치한 여인들로 위안소를 만든 경우는
없습니다. 더욱이 일본 내 주든부대가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더욱 없습니다.
강덕경을 심층 인터뷰하고 그 사실 관계를 추적한 도이 도시쿠이라고 하는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이 사람은 그녀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곳이 니가다 현 나가노시 마스시로의
군용 지하호 건설 현장이었음을 밝혔습니다. 바로 지금 보시는 화면 지도의
오른편에 있는 곳입니다.이 저널리스트는 도야마 인근 지역 중에서
강덕경이 창기 생활을 했을 만한 곳을 찾았고이 나간호시에 일본군의 본토
결전에 대비한 군용 지하호 건설 현장이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군인과 노무자가 대거 상조했을 테니 그곳에 새로 매춘 업소가 생겼으리라고
출론한 것입니다.이 이 일본 전널리스트가 강덕을 데리고 그곳에 가니 강덕이 맞다고 자신이 있었던
곳이라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에도
자동차로 네시간 거리인 도야마에서 나간까지 가게 됐는지 그녀가 정말로
일본군 헌병에 납치되었는지 그녀가 있던 곳이 일본군 위안소였는지는이
일본인 저널리스트도 밝히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강덕경이 사실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연합군과의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은 오지 나가노에 역시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을 리 없습니다. 그녀는 군시설 공사 현장에 군인과
노무자가 이용하는 육각에 있었던 것인데 어떤 경의로 후지고 총알공장에서 나간호의 지하호 건설
현장에 가게 되었을까요? 그녀만 답할 수 있었던 질문입니다.
이상 새 증언을 검토해 보면 정신대로 갔다가 위한부가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증언을
믿을 수 없는 가장 전형적인 예는 이용수입니다. 그녀는 1992년에 TV에 출연해서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 끌려서 낯선 남자를 따라갔다고 증언했고 같은
내용이 1993년 발관된 증언집에 실렸는데 2007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일본군 병사가 칼 같은 것으로 위협해서 끌려갔다고 전혀 달리
증언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할까요? 이런데도 위안부 증언을 검증 없이
그대로 사실로 간주해서 이용해도 되겠습니까? 사실과 거짓이 뒤범벅된이
위안부 증언을 근거로 해서 구성된 것이 박유아 씨의 위안부론입니다.
여성이 업자의 거짓말, 사기, 육계의 납치 등으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박씨의
견해는 이처럼 별 근거 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자신이 업자의 거짓말, 사기, 유계 납체에 의해서 혹은 관언에 붙잡혀서
위안부가 되었다는 위안부들의 증언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위안부 중에서 얼마나 그런 증언을 했는지부터 어 살펴보죠.
제가 제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에서 정대업의 증원록 모두
여덟건이나 돼요.이 여덟건에 수록된 103명 위한부의 위안부가 된 경로를
분류해 본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위안부 계약이란 부모가 위안소업자에게
돈을 받고 딸을 넘겨 준 것이고 친권의 위임 양도란 부모가 수양딸,
민며느리 등으로 딸을 남에게 줬는데 그 수양 부모가 수양 딸을 위한수
업자에게 넘긴 것을 말합니다. 반면 유인과 납치는 부모나 친권자의 동의
없이 낯선 남자가 여성을 유하거나 유인하거나 납체한 것을 말합니다.
전체 103명 중 유인과 약취 등 불법적인 수단 때문에 위안부가
되었다고 증언한이가 전체의 과반인 57%였습니다.
박시도 위안부 전원이 불법적인 수단 때문에 위안부가 되었다고 쓰지는 않았습니다만이
과반이 유인과 약취에 해당되고 또이 유인과 약치의 주체는 업자이니
그녀는 업자의 불법 행위로 위안부가 되었다고 요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103명 중 쉬운 아홉명이라는 과반이 유인 약치 때문에 위안부가 되었다는
증언을 사실로 간조하는게 옳를까요? 각 증언의 진위, 참과 거짓 여부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증언을 사실로 보기 어려운
점을 두 가지 들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일제 시대를 육치
폭력이 판친 불법이 만연한 사회이겠거니 시대이겠거니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 어린 16세 이하의 여성을 17세인 것처럼 서류
호적 등본을 위조해서 술집에 작부로 취업시킨 경우가 있었는데 그 경우도
경찰에 적발되어 처벌 받았습니다. 남의 딸을 유인하거나 납체한 것이
적발되면 당연히 처벌받았습니다. 불법을 저질러도 멀쩡한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위안부가 되는 과정에 엄격한 절차
때문에 사기치고 유괴하거나 납치한 여성을 위안부로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위안소는 전쟁터에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려면 조선의
한구에서 배를 타고 중국이나 동남아 등의 한구에 도착해서 일본 영사관의
심사를 거친 후에 전선으로 가야 했습니다. 또 위안소에 도착해서는 군
관리 부서에 등록하고 엄격한 관리 감독을 받아야 했습니다. 조선에서의
추항 심사, 해외 점령지 한구에서의 영서관 심사, 전선 군병참부서의
등록 이런 것들을 모두 거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위안부로 도항할 때는
일정 서류를 반드시 갖춰야 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신분 증명서, 임시작부
영업 허가원, 승낙서, 인감 증명서, 호적등번, 조사서 등을 갖춰야
했고요. 또 사진도 필요했습니다. 신분 증명서는 본적과 현 주소,
직업, 성명, 생년월일 등과 도항 목적 이유를 적은 것으로서 거주지
경찰서장이 발급하는 것입니다. 임시작부 영업 허가원은 그 위안부 여성에 대하여 위안부 영업 허가를 해
달라고 업주가 어 예를 들어서 상하의 일본 총 영사관에 제출하는
서류입니다. 승낙선은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은데 호주 친권자가 위안부 여성이
위안소에서 일할 것을 승락하는 서류인데 화면처럼 위안부 여성의 이름
본적 현주서를 쳤고 그 여성이 위안소 작부로 일할 것을 승락한다고 호주
친권자와 여성이 날인하는 것입니다. 모든 서류회는 위안부 본인과 호주
친권자 업주의 도장을 날인하고 위안부 본인의 호적 등본으로 위안부와 호주
친권자가 실제로 부모 자식 관계임을 보이고 인감 증명서로 그 도장이 호주
친권자의 실제 인감임을 증명했습니다.이 서류들은 한마디로 호주 친권자가
자신의 의사로 딸을 위함부로 일하게 업주에게 넘겨 주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육의 납치 폭력이 끼어들 여지가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여성을 육에 납치한 자가 조선의 어느 경찰서에서
신분 증명서를 발급받을 것이며 여성의 호적등번, 부모의 인감 증명서 등을
어떻게 뗄 수 있겠습니까?이 모든 서류를 다 위조했다는 것입니까?
위안부 증언자의 과반이 자신은 육계 납치 폭력 때문에 위안부가 되었다고
했지만이는 제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전쟁터의 위한소에서는 군이 관리를
했습니다. 군의 병찬 부서는이 관련 서류들을 접수하고 여성을 검진하고
여성의 영업 실적과 채무 변동 상황을 정기적으로 체크했습니다. 여성이 처음
위수에 도착하면 군위간의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이 육의 납치 폭력
때문에 강제로 끌려왔다면 얼마든지 그 경의를 알릴 수 있고 그럴 경우
일본군은 시정 조치를 했습니다. 박유아 씨는 이렇게 여성이 어떤 절차를 거쳐서 위안소에 갔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박신은 정대업 증언만 읽었을뿐 관련 제도와 그 제도의
운영에 관한 사료를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박씨의 치명적인
과오입니다. 박씨는 위안소와 위안부가 뭔지 제대로 모르면서 책을 쓴
것입니다. 위안부 여성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화면에 그림을 보시죠. 자, 왼편에
일본군이 있습니다. 전쟁터에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 결정을 내리고 업자를
선정해서 위안소를 만들려고 지시합니다.이 업자는 자신이 직접
조선 일본 대만 등지로 가던가 아니면 조선 등의 모집업자에게 연락해서
여성을 모집합니다. 잘 사는 집의 딸이 위안부가 될 일은 없지요. 가난한 집 당시 농촌의 흔한 가난한
집의 딸이 위안부 후보입니다. 오집업자가 가난한 집에 가서 부모를 만나서 딸의 위안부 취업을
이야기합니다. 1,000원 지금으로 치면 1억 원쯤 되는 돈인데 그 돈을
전차금으로 주면서 딸을 데려가서 2년 정도 위안부를 시키겠다고 하고 또
쉽게 돈을 벌어서 그 빛을 갚을 수 있다고 감원 이솔로 부모를 엽니다.
가난한 부모는 대게 넘어갑니다. 거기에 넘어간 부모가 딸을 넘겨 줍니다. 여기서 딸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가부장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업자는 앞서 언급한 동의 서류를 부모에게서
받아서 옵니다. 위안소 업주와 빈곤 과정 부모 간의이 행위는 일종의
상거래 계약 관계인데 그렇다고 여성을 사업하는 이신 매매는 아닙니다. 이신 매매라면 여성에 대한
소유권이 업자에게 넘어가겠죠. 하지만 그렇게 된게 아닙니다. 업자가 여성을
데려가는 대신 2년 정도 일을 시켜서 원금을 갚게 하고 또 여성 자신이
추가로 돈을 벌게 하는 것입니다.이를 연계 본공제의 계약노동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인 용어입니다. 성산업에서 형성된 계약인바
선금을 받고 나중에 일을 해서 그 빚을 갚는 계약제입니다.
일본군이내는 이용 요금을 업주와 위안부 간의 반반으로 나누고 위안부는
자신이 받은 그 반 중에서 빚을 갚습니다. 열심히 하면 빨리 빚을 갚고 그러면 요금 중 자신이 받는
몫이 60%로 커질 수 있고 이제는 제법 돈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이 이
구조를 이해하면 여성이 위안소 업자를 따라서 전장의 위안소에 가서 위안부
생활을 하는 전 과정이 잘 이해되고 설명됩니다. 박신은 이런 매춘 시장에서의 계약에
무지한 상태에서 단지 증언만 보고서 업자의 폭력, 사기, 인신 매매가
만연했다고 책했었습니다. 그리고는 2022년에 나온 일본 도쿄 대노무라
마사루 교수의 논문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에도 그 논문 자료를 제출하고 또 책에서도이 논문을 소개했습니다.
도노무라 마사루는 제1 조선인사 연구로 박사기를 받고 현재는 도쿄
대회에 재직한 연구자입니다. 그는 그 후 조선인 전시 노무동원에 관한 책을
썼고 2020년도에 들어와서는 위안부 문제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편을 썼는데 그중에 첫 편인 2022년 위안부 논문의 제목은
창기등 주선업과 위안부의 요원 확보 일본 내지와 조선의 비교입니다.
여기서 주선업이란 창기를 공장 포주에게 소개하는 업종을 말합니다.
흔히 무엇무엇을 주선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여성을 조달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일본은 작부 창기를 소개해 주는 업자를 별도로 구분하고
경찰의 허가를 받은 업자만이 소개업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도노무라는
일본과 조선을 비교해서 주선업자가 위안부를 어떻게 확보해서 위안소
업주에게 제공했는지를 밝힌 것입니다. 그의 문제 의식은 조선에선 왜 위안부
동원 때 육계, 약취, 납치, 사기 등 불법이 만연했던가입니다.
그는 정대업 증언에 나오는 육계, 약치, 납치, 사기 등의 불법적
행위를 사실이라고 보고 그 원인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그의 핵심 아이디어는 조선의 매춘 시장이 덜 발달해서 무어가 주선업자가
판을 쳤고 그래서 불법적인 위안부 조달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이
화면의 그림은 도노문화가 본 일본과 조선의 매춘 시장입니다. 공창 그림을
일본의 경우 크게 그리고 조선의 경우 작게 그렸는데 그만큼 일본의 시장이
크다는 것입니다. 인구도 일본이 많지만 동일 인구 대비
매춘 시장 규모가 일본이 조선의 다섯배 정도 됩니다. 조선에선 그만큼
매춘 산업, 성산업이 덜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도노문화는 조선의 경우
공창 규모가 작은 대신 경찰에 등록되지 않은 사창이 공창보다도 좀
더 컸다고 봅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사창이 공창의 1분의 불과했다고
합니다. 자, 중일 전쟁 후에 일본군 위안소가 대거 설치되어 군안부에 대한
대량 수요가 생겼습니다. 이러자 기존 매춘부 시장이 이미 큰 일본에서는
공창에서 매춘 경험 여성을 쉽게 조달해서 위안소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매춘부 시장이 작은 조선에서는 농촌에서 미경험자 여성을
데려갔고 그때 경찰 관리를 받지 않는 사창의 모집업자가
전차금도 안 주고 불법적인 방법 즉 사기 6의 납치등의 방법으로 여성을
끌어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도노무라는 업자에 의한 것인데 위안부의 폭력적
연행 그 증언을 사실이라고 보고 그것은 조선의 사창 규모가 커서 검찰
감시를 안 받은 모집업자가 불법을 자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은 박유아 씨의 견해와 들어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도노무라의
이런 주장은 그냥 한번 생각해 본 것 네피셜에 불과합니다. 조선내 사창
규모가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사창이 뭡니까? 경찰이
파악하지 못하는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매춘업수 아닙니까? 그것이 공창 대비
얼마나 되는지 경찰이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특정 지역을
관하는 경찰이 지역 내 공창에 대비해서 사창 규모를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전국적인 집개치라는 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노무라는 경찰관계 잡지에 한 마디 나오는 걸 갖고서 조선에선
사창이 공창보다 컸다고 하고 그래서 사창의 모집 업자가 위안부 모집을
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엄연이 공창이 있는데 거기에
종사하는 모집업자, 주선업자들은 그냥 놀았겠습니까? 군위안부 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큰
돈벌리 기회가 새로 생겼는데 그 좋은 기회를 공창의 모집 주산업자들은 그냥
구경만 했다는 것입니까? 당연히 기존 공창의 모집업자, 주선업자들이 대거
참여했을 것입니다. 또 위안소 업주는 군이 선정하는데 그 업주가 공창의
기존 모집 주선업자들은 젖혀놓고 사창의 모집 주선업자들을 통해서 여성을 모았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공창의 모집 주선업자들은 알려져 있어요.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알려지지도 않은 사창의 모집
주선업자들에게 군이 기억코 접근해서 여성을 모았다는게 말이 안 되죠.
조선에서 기존 예창기 시장 대비로 새로 생긴 위안부 수요가 크긴 했습니다. 그러니 기존 공창의 예창기
작부 즉 창기 생활 경험이 있는 여성들만으로
위안부를 채울 순 없었고요. 그래서 농촌과 도시의 미경험 여성도 모집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여성들이 폭력 납치 육계 사기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이는 이는 폭력 납치 사기 운한 위안부 증언은 그냥 사실이다.
이렇게 보고 예창기 시장의 작동 방식을 그에 꾀어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근거 없는이 도노무라만의 생각 뇌피셜인 것입니다. 도노문화는
박유아 씨와 똑같이 업자의 폭력 납치 6의 사기에 관한 증언을 출발점 삼아
억지 논리를 구성한 것인데 박신은 자신의 결를 뒷받침하는 논문이 나왔다고 반색했습니다. 무지와 무식의
소치고 도노무라의 논문은 박씨의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없습니다.
자 박유아 씨의 불론을 한마디로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저는 박씨가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식민지기에 조선 위안부 여성이 당한
피해를 마음 아파한 것 즉 페미니스트 위안부 피해론 위안부 피해자론이라고
봅니다. 박신은 여성이 업자위에 강제로 위안소로 끌려가서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받았다고 하는 것 즉 매춘적 강간 간간적 매춘을 문제에 삼습니다.
하지만이 매춘적 간간이란 성립할 수 없는 말입니다.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해야 했다는 의미에서 간간이란 말을 붙인 거 같은데 매춘이면 매춘이고
간간이면 간간이지 매춘적 간간이란 말이 안 됩니다. 소면 소고 돼지면
돼지지. 소적 돼지, 돼지적 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도 매춘이 음에서
횡행합니다. 거기서 일하는 여성이 생판 처음 보는 남자와도 기꺼이 성행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대가로 돈을 받기 때문이죠. 위안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전착을 받았으니 자신이 일을 해서 갚아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처음 보는 일본군 병사와도 성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게 간간입니까?
박씨의 매춘적 간간적 매춘이란 용어는 말장난일 뿐입니다. 게다가 앞서 본
위험부 계약 업자가 가난한 여성의 집에 가서 부모 친권자에게 거액 전차금을 넘겨 주고 여성을 데려간
거래는 당시로서는 완전히 합법이었습니다. 오늘날은 부모라고 해도 자신의 딸을
매친 없어에 넘기고 돈을 받으면 당연히 처벌 받습니다. 부모라 해도 자신의 딸에 대한 처분권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이전에는 조선에서도 또 일본에서도 가부장가
확보하였고 부모가 딸을 심지어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매친없소에 넘겨
주고 돈을 받기도 했고 그건 합법이었습니다. 그때는 여성의 권리가
매우 취약해서 예를 들어 다른 케이스지만 부잣집 출신의 여성이 자기
소유의 재산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팔고 또 사고 이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은 남편의 동의. 남편이 죽어서 아들이 호주 상석을 했다면 아들의
동의가 있어야 재산을 처분하거나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로 업자에게 넘겨져서 위안소에서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것은 후대히 우리가 보기에 마음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당시의 합법이었고 오늘날의 여성 인권 페미니즘의 기준으로 그
과거를 단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이면 조선 시대의 관비 관 기생의
인권도 거론하고 그 피해도 추적해야 할 것입니다. 일제하에 있던 국내
공창의 매춘부는 내몰라라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만 피해자 운훈하면서
관심을 쏟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위선의 극치입니다. 당시 국내 공창에
매춘 여성을 기억하고 그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박씨 역시
위안부 피해만 거론할 뿐입니다. 위안소는 국내의 공창과 마찬가지의
매춘업소였습니다. 위안부는 매춘부였습니다. 위안소가 전체 매춘업소의 한 작은
범주였던 것처럼 위안부는 전체 매춘부의 작은 한 범주였습니다.
위안부 동원과 위안부 생활은 국내 공창으로의 창기 모집과 창기 생활이
합법이었던 것처럼 완전히 합법이었습니다. 다만 일본군이 여성을 전쟁토로 끌고
다니며 대상으로 삼은 것은 훗날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한 나라의 군대가 전쟁을 하러 다니면서 여성 위안대를 데리고 다닌
거 회개한 일입니다.이는 이는 오늘날의 일본 정부, 일본인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더욱이 폐전 위기 속 일본군이 무너질 때 일본군이 위안부의 무사 기환을
책임질 수 없었던 것. 이것도 큰 과입니다. 실제로 연합군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위안부도 여럿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도의적 사죄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일본은 그의 합당한 사과 위로금 지급을 했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국에 마구세워진 소녀상도 철거해야
합니다. 끝으로 박씨가 우파 역사학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사을
달겠습니다. 박씨는 한국의 우파 역사학자 이용훈 교수 팀과는 단절적인
선을 긋고 논평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박씨가 고소를 당했을 때
이용훈 교수도 그를 지지하는 성명소에 이름을 올렸는데 나중에 박씨가
빼달라고 했답니다. 박신은 자신의 송사를 다룬 11년이란 책에서 저희
이용훈 교수 그룹을 거의 거명하지 않았고 사실상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없는 존재로 여겼습니다.이는 박씨가 이영훈 교수 그룹을 자신과는
대척 지점에 있는 일본 우익과 같은 존재로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박신은
2026년 1월 초 주관 조선가의 인터뷰에서 이영운둥 뉴라이트의 주장을
일정 평가하지만 뉴라이트도 위안부 운동 단체처럼 현재의 정치를 위해
역사를 이용한다고 표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대업이야 물론 반일 정치를 위해서 역사를 악용한 단체입니다. 정말 최고
최악의 역사 정치 집단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뉴라이트가 정치를
위해서 역사를 지어낸 게, 역사를 날조한게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역사적 자료에 입각한 사실만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이용훈 교수
그룹이 뉴라이트 활동을 해서 무슨 이득을 취했습니까? 박유아씨 자기만
옳다는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아직도 일본 국민의 사조의
의식이 중요하다 한국이 그동안 버린 사기급과 행패로
일본 국민에 그나마 있던 사제 의식마저 달아난 상태입니다. 이제
와서 일본 국민에게 또 위안부 문제로 사하라 하면 일본 국민이
받아들이겠습니까? 박해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견해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박씨와
같은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견해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이영훈 교수는 박시와는 다른 박해를 받았습니다. 언론의 조롱과 매도,
폭행 협박은 오히려 훨씬 더 심했습니다. 누가 받은 박해가 더 큰가를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 누가
더 확실한 사료에 입각해서 역사의 진실을 밝혔는가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이 점에서 박씨의 위함부론은 정대업 패권을 깨는 데서는 한 역할을
했지만 그 위안부론 자체는 정대업의 순한 버전일뿐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이 한 세대 동안 한 나라를 소용도리에 빠뜨렸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박유아 씨에 대한 저의
두 번의 방송은 이러한 성찰의 일환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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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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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m1v
1 month ago
이승만TV 교수님들 존경합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이겨내며 역사를 지키려는 그 정신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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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q6y6r
1 month ago
박유하씨의 책을 읽고 ,찜찜했는데 ㅡ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ㅡ!!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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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m9344
1 month ago
학문적 주장은 무죄이고 일반인이 주장하면 모욕죄라서 진실보다 감정상해죄를 더 중요시 여기는 한국재판부 ㅋ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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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우파-o9y
1 month ago
전적으로 공감 합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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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A
1 month ago
오늘 수업은 정말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익종교수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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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ocus0210
1 month ago (edited)
박유하의 견해와 위안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영상을 보지 않았으면 박유하가 위안부에 대한 정확한 사실로 좌파의 공격을 받은 줄 잘못 알뻔 했습니다. 영상 만드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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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k3k
1 month ago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고...흑백 논리로 딱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 사항을 면밀히 팩트로 설명해 주셔서 너므 좋습니다. 박씨 같은 사람을 한마디로 회색분자라고 하죠. 작은 영웅인 줄 알았는데.. 실망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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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래기
1 month ago
'돈', '피해자를 이용한 좌파주의자들의 대중선동' '피해자를 이용한 자신의 경제적 이득' 등등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건 되려 좌파 여성단체,정치꾼,학생운동권 이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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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p6w
1 day ago
박유하 교수님씨의 위안부론을 적극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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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kim3936
1 month ago
정대협을 비롯한 북한의 실체를 잘 모르는 순진한 박유하 교수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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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y-r2s
1 month ago
이 영상을 보고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네요.
위안부 문제 결코 쉽지 않은 논제군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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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gabond7199
3 weeks ago
박유한 교수 참 순진함.
Reply
@keeyongchoi8738
1 month ago
빚ㅡ 비즐ㅇ, 비슬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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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wjdalsz
1 month ago
박유하씨는 그냥 자신들의 '편'이 순수한 존재들이라고 착각하고 의미 없는 헛짓을 한거군요. 애초에 말씀대로 그들이 원하는건 '해결'이 아닌데 말이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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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_d_kim
1 month ago
박유하, 역시네요. 핵심을 찌르는 비판 감사합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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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inkim
1 month ago
위안부는 세계 어느 전쟁에도 다 있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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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도요다다이쥬-x9h
1 month ago
딱 제가 하고픈말이었네요 ㅋㅋ 그냥 정대협 2중대였는데 그걸 또 마음에 안든다고 고소고발하고 그냥 세상은 요지경 ㅋㅋㅋㅋㅋ 사실 공부하면 할수록 위안부 증언한사람들 알고보면 강제로 끌려간게아님. 제일 안좋은경우가 돈많이번다고 위안부모집책한테 속아서간거가 제일 악질적이지 그렇다고 강제성은 없었죠. 나중에 말이 점점바뀌어서 강제로 일본군이 끌려갔다라고 바뀐다던지 그랬지만요. 예를들어서 문옥x같은경우엔 위안부들 취미가 보석모으기와 집사기라고 할정도로 당시 엄청난 수익을 올렸습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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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옹고집-y5s
1 month ago
박유하 정도가 저런 수준의 탄압을 받는데......이승만 tv이야말로....소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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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1neverdie
1 month ago
박유하교수 고발사건이 일어난지가 한참 오래인데 이런 견해를 진작부터 가지고 계셨으면서 박유하교수를 지지하고 지금에 와서야 비판하는 의견을 올렸다는점을 봤을때 학문의 중립성은 이영훈tv가 가장 잘 지켜왔던것같네요. 정대협같은 정치집단이 없었다면 진작에 학문적 토론의 장에서 이런 의견이 나왔을텐데 참 씁쓸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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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K-x3d
1 month ago
주박사님의 엄밀한 사료검증에 의한 박유하 비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문학전공자의 페미니즘적 역사관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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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gi42
1 month ago
정대협이 자신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다며 설득하려 한다는 자체가 좋게 말하면 순진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별차이 없다는 말이지요. 정대협은 진실의 추구가 목적이 아닌 자신들이 짜맞추어 놓은 구도를 진실로 만드려는 집단입니다. 이런 집단을 오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는건 어불성설이죠. 마치 북한더러 북한식사회주의는 대체로 옳으나 이런부분은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는게 더 올바르다는식의 절충론을 주장하며 자신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하는것과 다를바 없는 논리이죠. 일본과의 대립된 사안에 관해 이런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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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ply
@koei88kr
4 days ago
박유하는 좌파에 페미니즘임 그런데도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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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주-m1g
1 month ago (edited)
옳습니다. 박교수는 나이브했습니다. 정대협의 의도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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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daishi1007
1 month ago
朴裕河氏の『帝国の慰安婦』を読んだ時に感じた違和感を言語化してくだ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日本では、「言論/表現/学問の自由」という範疇では彼女を支持する人は多いのですが、既に「慰安婦問題」の専門家とは見なされていません。日本では、彼女の事を好きなメディア... 例えば『毎日新聞』(韓国で言えば『京郷新聞』辺りに該当?)が寄稿文を掲載していますが、何が言いたいのか良く分からない内容です。たとえ批判の応酬になったとしても、真実を知りたい人達の間で「客観的な事実」で争う方が余程建設的だと思いますが、彼女は自分を「高見」に置いて、第1の声と第二の声に「対話」を求める事しか言いません。
前述の通り、日本では「慰安婦問題」に関して彼女の主張に耳を傾ける人は皆無に等しいので無視しても良いのですが、韓国では彼女程度の主張が受け入れ易いのではないかと危惧しておりま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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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hlee4781
1 month ago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서 점령자들이 행한 행위에 대해 역사 책임을 진 경우가 있는가? 징기스칸이 점령지에서 행한 할인,방화, 강탈,부녀자 포로 등 온갖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나? 과거는 지났다. 위안부 문제는 정말 창피한 치욕이니 조용히 역사에 묻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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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i88kr
4 days ago (edited)
해괴한 일 아님.
아베의 발언대로 위안부 같은 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음 (한국에서 망언이라 하는데)
군인들은 전쟁 하면 점령지 현지 여자들은 강간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걸 막기 위한 것.
강간 약탈을 하면 현지 민심이 이반 되고 군기가 해이 해지고 성병문제도 있음.
군대가 가는 데 이런 성산업자들이 따라 가는 것 종군 하는 것은 세계역사에서 아주 비일 비재했던 일
이영훈 교수가 말했듯 세종도 국경 근처에 군인들을 위해 기생을 보냄
프랑스 외인부대인가는 아마 지금도 있을껄
Reply
@변재득
1 month ago (edited)
나도 소설하나 써볼까 가령 부모가 돈을받고 위안부로 팔려갔던지 생계를위해 어쩔수없이 위안부가 되었지만 해방후엔 수치심에 침묵하고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껴 위안부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그게다 보상금까지 탈수있다는 말과 더욱더 거짓말을 하면 자신의 부모가 돈을받고 팔아먹은 천하의 몹쓸 사람이란것과 생계를위해 매춘을 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묻어버릴수있고 보상금까지 탈수있게 해준다니 이보다 더좋을수가 있을까 이러한 조건에 처하면 악을쓰고 더보태어 거짓말을 할수있었을거다 이게 사람의 본성이다 물론 그렇지못한 사람도 있을거고 그런 사람들은 나타나지못하고 침묵속에 삶을 살아갔을거다 마지막으로 위안부를 기리는? 소녀상을 전국에 걸쳐 많은 사람이 왕래하느곳에 섷치한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다음에 역사가 밝혀지고 진실을 알게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수없을거란 생각에 쓴웃음이 나온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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