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재론 (1) 박유하의 11년
이승만TV
5,442 views Jan 26, 2026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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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안녕하십니까. 주익종입니다. 2026년 세해들어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합
소녀상 자리에서는 정의 기역 연대 정의원의 수요 집회에 맞서서
위안부법 폐지 국민동의 김병원 대표 등이 소녀상 철고 요구 집회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6일 SNS에서
그것을 이런 얼빠진 사자 명예 훼손입니다라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콕 찍어 비난한 매우
이상한 행동이었습니다. 김병원 대표는 근래 서울 소초고와
무학요고 내 소녀상 철패도 요구했는데 정근식 서울 교육감이 9일 김병원
대표와 그 회원들을 아동 복지법 위반 정보 통신망상의 음란물 유포 사자
명예 훼손 등 혐의로 서울 경찰청에 고발했습니다.
대통령이 공개에 비난한 데다가 교육감이 고발까지 했기 때문에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는데 김병원 씨와 단체 일동은 그의 국권이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2025년에는
박유화 교수에 대한 11년에 걸친 소송 사태가 그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여러 민형사 재판의 경과를 박교수가 정리한 11년이란 제목의 책이 연말에
발간되었습니다. 바로 화면의 왼편 책입니다.이 이 책에는 박교수가
2013년 화면 오른편의 위안부책 제국의 위안부를 낸 후 11년간 겪은
험란한 송사가 기록되어 있고 그것은 최근 10년 한국의 사법사, 정신사,
지성사의 한 흑역사이기도 합니다. 지난 30여년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중대 외교 문제였습니다. 바울로이 문제에 관해 운동 단체와
다른 견해를 말하는 사람은 민형사 처벌과 사회적 매장에 미협을
당했습니다. 그처럼 중대한 문제라 하면서도 근래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고 형사 처벌의 협박만 난무합니다.이
이 문제에 관한 한국의 지식 사회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기능 부전
상태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박교수의 11년 송사를 복귀함으로써
위한부 문제에 관한 논의의 단초를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이 11년 책과 그
발단이 된 제국의 위안부 책을 토대로 해서 박유아 교수 소송 사태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방송의 제목은 위안부 문제 제론 1 박유아의
11년입니다. 먼저 제국의 위안부 발관에서 소송에
이르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박유아 씨의 제국의 위안부를 보겠는데요.이
책은 2013년 7월에 발간되었는데 그 지음은 위안부 운동의 절정
국면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일본 정부의 사과 위로금 지급을 거부한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에 약층 정대업은 2000년대에 국내외에서 더욱 공세에
나섰습니다. 정대업은 2011년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소회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라는 헌재 판결을 이끌어냈고 서울 종로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했으며 해외에서는 1억 명 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지고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에 대한 한국 위안부 운동 세력의 압박이 강해지자 일본에서는 반환
감정, 혐한이 급증하였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간격론이 득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유아 씨는 한국의 위안부 이해에 문제가 있고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바뀌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 출관했습니다. 한국의 위안부 이해란 바로 운동
단체인 정대협의 위안부 이해인데 한마디로 강제 연행 성노의 설입니다.
일본 관원 군인이 조선인 소녀를 강제 연행해서 위안소에서
성노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강제 연행 주장에 대해선 2000년대 초부터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영훈 교수와 그 은사인 안병직 교수가 강제 연행에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비판해 왔는데 박유아 씨도 제국의 위안부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군과 경찰에 의한 강제 연행이 아니라 업자의 사기, 납치, 이신매 등으로
여성이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신은 정대업이 편엔 위안부 측원록을
상세히 검토했는데 위안부가 되는 방식은 매우 다양했으나 대게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업자의 감원에 속아서 혹은 약간의 돈에 업자에게 넘겨져
또는 업자에게 납치되어 위안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박신은 위안소에서 위안부를 관리하고 일을
시킨 것은 업주이며 그때 업주가 위한부들을 가혹하게 다루고
폭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박신은 위안부 문제에서 업주의 책임을 새로
강조하였습니다. 또 박신은 위안소에서 업자가 일본군에게서 돈을 받고 위안부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하게 했으니 그것은 매춘행위이면서 또 위안부가 원치 않는 반복적
성행위를 해야 했으니 그것은 간간 행위였다고도 했습니다.
위안부가 당한 일은 매춘적 강간, 간관적 매춘이었다. 한마디로
성폭력이었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박씨는 책에서 위안부가
일본국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음도 지적했습니다. 가혹한 생활 속에서도 위안부는 병사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관계를 맺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투에
나가면서 무섭다고 우는 군인들도 있었는데 그때 위안부가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위로해 주었으며 정말 살아서 다시 오면 서로 반가워하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위안부에게 단골인 군인들도 있었고 사랑한다.
결혼하자는 말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위안부와 군인 사이에는 인정이
싹뜨기도 했다 했습니다. 이로부터 박신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동지적 관계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논란이 벌어진
부분이고 박씨도이 말에 진의를 해명하느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박신은 동지적 관계에 대해서 피해자이면서도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을 지적한 것이라 해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박신은 기존의 위안부사, 즉 일본군에 의한 일방적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배격했습니다. 이것은 정대협의 위안부 서사의 흠집을
낸 당시로선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강제연은행 성노회와 다른 이야기를 했다간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박시보다 10년쯤 전인 2004년 9월 이영훈 교수는 과거 문제와
관련한 TV 토론에 나가서 공창과 미군 위안부를 언급했다가
위안부가 공창이란 말이냐고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또 이영훈 교수가 2008년 3월 대한교과서 한국 근현 대사를 발관했을
때에는 위안부 동원을 취업사기로 표현했다고 해서 MBC 등 언론에
집중 비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정대협의 강제은행 성의 서서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섣нь을지고 불에 뛰어드는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습니다.
결국 박씨의 책은 1년 가까이 지나서 갑자기 문제가 되었습니다.
2014년 6월 나눔의 집 거주 위안부 할머니 아홉명은 박씨를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 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습니다.
아울러 할머니들은 위안무부 1인당 3천만 원씩 2억 7천만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 그리고 체계 출판 판매 금지 및 위한부 적분
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소는 실상 제3자의
고발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실제 고소의 기획과 추진은 지원 단체
측인 나눔매집 소장과 운동과 변호사가 주도했다는 것인데
박유와 교수가 재판과 얻은 여러 단정하고 있고 저는 박씨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운동 단체는 위안부에게서 매출의 측면을 지적하고 관원 대신 업자에
의한 동원을 지적한 것을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소녀상이 상정하는 바 순진무구한 조선
처녀 소녀가 일본 관원에 강제로 끌려갔어야 했는데 박씨가 그건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대 윤미양도 박유아 고소를
검토했습니다. 고소 달전인 2014년 2월 정대혁 대표 윤미양은 일본의 한 강연에서
제국의 위한부 책이 정대업을 정면에서 편매하기 위해 쓰여진 책 같으며 명예
훼손으로 소송을 걸고 책 판매를 금지하는 가처분 소송을 내려고
했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정대엽은 소송을 내면 오히려 책이
유명해지는 부작용을 우려해 고발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경기도 광조
퇴촌의 위안부 거주 시설인 나눔의 집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박씨가
나눔의 집을 방문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접촉하고 인터뷰하자
나눔의 집측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박씨의 생각이 전염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나눔의집 소장은 박씨의 위안부 할머니 면담을 불러하고
최봉태라는 대일 과거사 문제 전문 변호사와 함께 박씨에게 송사를
걸었습니다. 고소의 진짜 이유는 박유아 씨가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에
성가신 장애물이 된 것이었습니다. 박씨는 피소 두 달 전인 2014년
4월 말 위한부문 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주제에 심포지움을 열었습니다. 그날 회의 사진의 왼편에
박유아 교수가 있고 그리고 오른편에 일본의 와다 하루끼 도쿄대 명예
교수가 있습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일본에서 정대업을 지원한 연구자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와는 입장을 달리해서 아시아 여성기금의 전무
이사로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바 있고 박유아 교수를 지지했습니다.
강제연은행 성의 서사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정대업이 제1의
목소리라면 위안소는 공창과 마찬가지에 매춘 없어졌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것이 일본 우익의 제2 목소리이고 박유와 자신은 그
둘과도 다른 이야기 제3의 목소리를 낸다는 뜻이었습니다.
박신은 위안부를 동원해서 관리한 직접적인 주체는 업자였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보상과 사를 요구할 법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위안부 여성이
위안소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한 책임은 일본 제국에 있으니 일본에 대해선
도의적 책임 추근과 위로금 요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한국에는
전쟁 범죄로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정대업 패권의 단일 대우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딴 소리를 하는
박씨가 등장한 것입니다.이 박시로 인해 정대 단일 대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 위안부 운동 단체가 박씨에게 소를 제기한 진짜 이유였습니다.
이후 박시에게는 수많은 좌파 인사들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2015년 2월 러시아 출신으로
기화한 한국 사학자 박로자는 박시가 위한부분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를 일본 국가보다 업자에게 돌림으로써 일본 정부를 면책시켜 주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제일교포학자 석경식 제율교 간첩 사건으로 처벌받은 서승
서준식의 동생입니다.이 석영식 그리고 제일 조선인사 연구자인
정용환 등은 책까지 내면서 박시를 비판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법학자, 여성학자, 사학자 등 많은 이들이 박실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까지 비난해
가세했는데요. 2015년 2월 15일 이씨는 페이스북에 박시셔서 논란을 다른
기사를 공유하면서이 여자 아직도 교수직 유지하고
있는가요?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 숨쉬게 되었을까? 유
청산해야 할 친일의 잔재들이라고 썼습니다. 역사에 대해서 좀 성찰을 해보자는 책
몇 번 쓴 것이 이렇게까지 욕먹을 잃을까요? 이재명으로선이 여자라고
했으니 예의를 갖춘 것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재명 시장 휘화의
성남시 도서관들은 박유아 씨의 도서에 19금 딱지를 붙여 개가식 서가에서
뺏서 성인이라도 사실상 연람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승만학당이낸 반일 종족주의 책에 대해서도 하주시 도서관이 관점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책이니 다른 책도 참고하라고 안내 스티커를 붙인 일이
있습니다만 좌액을 비판한 데에 대해선 현대판
분석 행위라 할 일들이 버젓이 벌어졌습니다. 재판의 경과를 보겠습니다.
화면 표이 형사 재판, 가운데 열이 민사 재판,
그리고 오른쪽 열이 책판 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입니다. 연도별로 각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형사와 민사 두 건이 같이
진행되었으나 형사 일신 판결 후에는 형사 재판만 진행되었습니다.
15년 2월 하순 소송 중 가장 먼저 책에 34곳을 삭제해야 출판할 수
있다는 가처분 신청 결정이 나왔습니다. 6월 중순 박시와 출판사 측은
삭제라는 34곳을 동그라미로 표시해서 위안부 책을 다시
냈습니다. 형사 소송에서는 검찰이 2015년 11월 박시를 출판물에서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위안부 명예훼선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역사 평론서를 냈더니 형사 기소가 된 일이었습니다.
16년 1월에는 민사 소송에서 원고위안부 1인당 1천만 원 총
9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박유아 피고 폐소 판결이 나왔습니다.
박신은 항소했으나 민사 소송 몽고측에 손해 배상금 9천만 원 압류 및 추신 명령 신청에
따라 결국 박신은 급여 차을 막는 대신 일심 판결 금액의 절반인
4,500만 원을 법원에 공탁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소송 초기에는
박씨가 일방적으로 몰리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7년 1월
검찰 기소 후 1년 2개월 만에 형사 일심의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판결 요지는 설사 틀린 의견이라 해도 학문의 장에서 논내야 하므로 법원은
그 의견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심 재판부는 박유아의 견해가 틀린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일심 무죄 판결이 나오자 형사 소송
원고에 뒤늦게 참여했던 전 위안부 이용 씨가 재판부에 항의하고 박씨에게
친일판연이라고 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합니다. 형사 일신 판결에 대하여 검찰과 박씨
모두 항소했습니다. 검찰은 출판물이 아닌 일반 명예 훼손으로 받고 재판을
이어갔습니다. 17년 6월 항소심 이심공판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후 문재인이 집권한 때였습니다.
박씨가 느끼기에 이심재판정 분위기가 자신에게 호위적이지 않았다 했는데
세상이 이미 좌익 패권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일 겁니다. 10월 말
이심재판부는 일심과 달리 1천만 원 벌금형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박씨가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 훼손을 했다는 것인데 재판부의 판결
논리가 황당합니다. 박씨의 책은 한국 사회의 위안부 인식과는 다른 자발적 매춘부라는
인식을 갖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이 이 자발적 매친부로는 UN 보고서나
고노다마에 비추어 명백한 허위이다. 박신은 허위임을 알고서도 또 고의로
자발적 매춘부서를 체계에 썼으므로 명예 훼손 유죄다. 자, 국제 사회의
인식이 가장 올바른 인식인데 그의 위배되는 걸 박씨가 알면서도 그
위배되는 허위 사실을 책에 썼으니 유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안부 UN 보고서가
엉터리라는 것은 일본의 연구자 하타 이쿠이코에 의해 이미 밝혀졌습니다.
설사 다수의 견해가 사실에 기초했다 해도 그와 다른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지 그것이 형사 처벌되어야 한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이 이 한심한
이심 판결은 기세 등등하던 촛불 정권의 위세 적폐 청산의 광교에
휩쓸린 그의 부안에 동안 판결이었습니다.
2017년 11월 박시와 검찰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이후 대법원의
심리는 오랫동안 지연되었습니다. 화면의 표를 보시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가 비어 있습니다.이 이 제품과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려 가까이 지난 2023년 10월
26일에야 대법원은 무죄의 취지에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전체 맥락상 박세 책이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자발적 매춘 부론을
주장하려 한게 아니며 강제로 끌려간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일본 제국
일본군을 비판한 것이었기에 위한부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박씨의 책은 허위 사실 적시가 아닌 학문적 주장
의견을 낸 것이니 명예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법원이 너무나 오랫동안
판결을 미루었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6년 동안이 문제를 계속 검토하지는
않았겠지요. 국민 감정상 예민한 문재인이 결정을 안 내리고 그냥
던져둔 것입니다. 판결을 무작정 미룬이 사법적 방치는
달리 보면 미결 상태의 처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책 한권 쓴 일로 형사 처벌 위기에
있는데 6년이나 방치해 놓으면 박신은 그 세월 동안 계속 납덩이에 눌려
있는 것 아닙니까? 박신은 일본문학 연구자인데 이렇게 소송이 걸린 상태에서는 본연의 연구 활동, 특히
정년을 앞두고 자신의 연구를 결산하는 저술 활동은 불가능합니다.
본래 해야 할 일은 못하고 자신을 형사 처벌과 민사 배상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활동에 힘을 쏟아야 했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니 6년간의 방치는 미결 상태의 처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최고 법원이라는 대법원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고 눈치나 보았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처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파기
환송 판결이 나오자이 4월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고 이대
검사가 상고하지 않아 박시의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러자 형사 판결를 기다리느라
오랫동안 나오지 않던 손해 배상 민사 이심에서도 그 이음에 2025년 1월
박시의 승소 판결이 나왔고 7월에는 도서 출판 금지 가처분에 취소 결정이
내려져서 박시의 송사가 1달락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국의 위안부책이
원본 그대로 다시 출판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뒤늦게라도 박씨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요인은 무엇일까요? 박신은 재판 복기록인 11년이란
책에서 자신의 경해를 지지하는 역사학 연구논문 두 편이 그 사이에 새로
일본에서 나온 것 옛 민주당계열 유력 정치인 이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이
유력 정치인을 포함해서 국내와 일본에서 여러명 인사가 구명 탄원서를 제출한
것 등을 들었습니다.이 이 때문에 대법원이 이신법원과는
견해를 달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박씨의 설명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아전 인수격 해석입니다. 물론 박신은 정말
부지런하게 쓰고 또 쓰고 사람들을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그런지지 않는
활동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신 판결이 나온
2017년과 대부원 판결이 나온 2023년 사이에는
문제와 관련해 큰 일들이 벌어졌고 그것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 사회
여론의 향방을 바꾸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첫째는 좌익 정권의
오락가락 대일 과거사 외교입니다. 대법원 재판 기관의 대부분은 문재인
집권계에 해당합니다. 촛불 시위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짓권한 문재인 정권은 초기에 대일
과거 문제에서 아주 기세 등등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박근혜 아베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는 테스크 포스를 만들어서
그를 부실 합의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곤 한일 위안부 합의의 실천
기구인 화해 치유재단 전 위안부들에게 1억 원씩 지급하는 조직이죠. 이
화회 치유 재단을 해산시켰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백지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2018년 10월 이른바 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자 일본 기업에 대해
강제 집행 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수수 반관했으며 그의 연말에는 동해상에서 한국군함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사격 전단계로서 레이저를 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방국간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청구권 협정 체제를
흔들어대자 결국 일본은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중요자의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였습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다시는
일본에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마치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반일 선동을
하였고 그로 인해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정확히 그때 이원 규정에 이끄는 이승만 팀이 이승만 TV 유튜브 방송과 반일 종족주의 책에서
한국의 좌익이 일제야 수탈, 위안부, 노무동원, 독도 등에 관한 가짜 역사
이야기를 지원해서 반위를 조장해 왔음을 비판했습니다. 이영훈 교수 팀은 광적인 반일주의에
맞서면서 온갖 공격을 당했습니다만 그로 인해 반일주의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이영훈 교장은 정대업의 강제행 성노예설이 잘못된
것임을 조목조목 밝혔습니다. 의원, 김병원 씨 등은 용감하게도
정대업, 정의원의 수요 집회 현장에서 반대 맞불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이 핵폭기 의사가 있는 것처럼 미국을 속여 한국, 미국
북한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했으나이 속임수는 곧 탈로가 났습니다. 김정은이 하노이까지 열차를
타고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하노이 노딜이 벌어졌습니다.9년
여름 북한은 살문 소대가리 운훈하며 문재인에 대해 불같이 화를 했습니다.
그 후 문재인 정권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평화 쇼를 해볼
요량으로 아베수상에게 접근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자기가 사실상
무효화했던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유효하다고 밝히는가 하면 징용 배상 판결에 강제
집행도 멈췄습니다.이는 한국 좌익의대 과거사 문제 제기에
아무런 진정성이 없음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피해자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쳐 놓고는 뒤늦게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유효하다고 뒤집었으니까요.
좌파 정권에 이랬다 저랬다 대일 과거사 외견은 과거사 문제가 진짜로
문제인지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2020년 유안부
운동 단체의 신뢰성이 뿌리채에 흔들리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정대엽
그 후신인 정의원을 이끈 윤미양 그 해에 국회의원 배치까지 달았습니다.이
이 윤미양과 위안부 할머니의 대표격인 이용수 간의 갈등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윤미양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갈 후원금을 혁령하여
편치했음을 이용수가 폭로했습니다. 윤미양은 후원금 행령 정대협 정의원의
회계 부정으로 징역형 집행회를 선고받았습니다.
때마침 나눔의집 대표 역시 횡령과 회계 부정으로 2년 6개월에 징역형
실령을 살았습니다. 이용수 역시 계속 말을 바꾼 증언으로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위안부 운동은 그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이와 함께 그들이 주장한 강제 연행
성의 소사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2017년부터 2021년 사이에 문재인 정권의 오락가락 반일
정책, 위안부 운동 단체들의 금전 횡령 및 회계부정, 그리고 우파
역사학자들의 대일 과거사 문제 규명.이 이 세 사건이 위한부 문제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더 이상 정대업 리의 강제연행 성로의
피해 서사는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에서의 박유아 씨 무죄 판결
그리고 유석춘 교수 일심 무죄 판결은 바로이 흐름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6년간이나 눈치를 보던 대법원도 이런 지형 변화 속에서 박유하 무죄 쪽으로
키운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박유아 씨의 법정 투쟁도 유석춘 교수의
투쟁과 함께이 과정에서 일조를 했습니다만 박시의 법정 투쟁의 결과로 판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이 주로
박유아 씨의 투쟁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만 박씨가 엄청난 투쟁력을
보여 준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학문상 문제로 소송이 걸리면 그에
관해 가장 잘 변호할 수 있는 사람은 학자 본인입니다. 제국의 위원부 책의 내용과 그 논의
맥락에 관해 가장 잘 아는이는 저자 박씨입니다. 변호사는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결론에 포인트를 잡을뿐 아니겠습니까? 박신은 여러 건의 공판과 관련해
법원에 수많은 의견설를 냈습니다. 그리고 국내외에서 여러 지지자
동조자들을 모아서 성명서 발표, 심포지온 개최, 항의 시위 등을
했습니다. 박씨에 대해선 정대업과 나눔의 집 등 운동 단체가 눈의로
여겨서 소송을 했고 그래서 소송은 형식상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소였지만
실제로는 나눔의 집의 고발이었습니다. 이것을 국내외 다수의 좌액 연구자들이
지원해서 박유아 씨를 비판 비난하는 책도 여러 건 발견됐고 논문도 여러
편 나왔습니다. 또 페이스북 등 SNS에서의 비난 글도 많았습니다.
박씨는 자신에 대한 좌익학자들의 비판 비난에 대해 대부분 반론을 편합니다.
그러니 쓰고 또 쓰고 또 썼습니다. 수많은 글이 생산되었습니다.
먼저 형사 일신 무죄 판결이 나온 후인 2017년 6월 박시를 지지하는
일본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공동 조작집 대화를 위해서가 나왔습니다.
지금 화면 윗줄에 맨 왼쪽에 있는 책입니다. 아마도 자신을 고발하여
처벌하려 한무부 운동 그룹가에 대화를 희망한다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운동 그룹은 박씨와 대화할 생각이 없었고 박시는 그의
11월 20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박신은 이드메인 2018년 6월에
법정 투쟁 기록으로서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1일이란
책과 여성학자들을 비판한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하다를 냈습니다.
화면 윗줄에 가운데와 오른쪽에 있는 책입니다. 20년 8월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인터뷰한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화면 아래쪽에 맨
왼편에 있는 책이고요. 2022년 8월에는 위안부 직용공 문제를 다룬
역사와 마주하기를 출관했습니다. 아래편 줄에 가운데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모든 재판이 종료된
2025년의 12월에는 재판 과정을 총 결산한 11년 꽃다발과 화살을
냈습니다.이 이 방송 맨 처음에 보여 드린 책이고 지금 화면에서는 둘째 줄
맨 오른편에 있는 책입니다.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한 이들의 도움을 꽃다발로
자신을 비난하고 처벌을 요구했던 사람들의 공격을 화살로 표현한 것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남의 글을 잃지도 않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 쉬없이 글을 써서 발론하고 자신을 방어한 박씨에 대해선
경의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초인적인 노력이요 버티기라고 하겠습니다.
박효아 씨의 법정 투쟁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지지자 네트워크입니다.
압도적 파워의 고소인측과 싸우는 과정에서 박신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내의 지식인 정치인 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수많은 이들에게
일일히 감사를 표했는데 제가 이름을 아는 몇 명만 거론한다면 일본에서는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5해 겐잡으로 작가 대표적 비편가이자
사상과 가라타니 고진 저명 좌파 역사학자인
와다 하루기 도쿄 대명예 교수 고노다마를 낸 고노요의 전 관방장관
무라마다 다마의 무라야마 도미치 전수상 와카미아 요시부미 아사이신문 전추필
좌파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우에노치즈코 도쿄 대명예 교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을 낸 한국학자 오구라기조대교수
위안부 문제 연구자 아산노 도요미 교수 도노무라 마사로 도쿄대 교수
제일 한국인 학자인 이승엽 불교대 교수 등이 글을 도았습니다. 입니다. 한국의 원로문학 평론과 김우창,
소설가 장정일, 국문학자인 김철 연세대 명예 교수, 라종일
전주영대사, 역사학자 윤혜동, 김벼 작가, 김재은 변호사 등도 글을
도았습니다. 그밖에도 박실를 도운 이들 중에는 제가 이름을 모르는이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법정 싸움을 해 나간 것도 박시에 뛰어난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끝으로 박유아 교수 재판과 관련하여 한국 지식인의 민낯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박시를 비난하며 형사 처벌을 주장해 온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을
가진이 농객들은 저희 이용훈 교수 팀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비난과 처벌 요구를 반복해
왔습니다.이 이 점에 관해 좀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이 제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이 이 좌익 지식인들은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는 저희들을 일제를 찬양한 역사
부정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유안부가 군대로 영장된 공창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역시 위안부 명예를 훼손했다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 사건에 대해서 얼마든지 견해가 다룰 수 있는데 다른 견해를 밝히면
처벌해야 한다니이 지점에서 저에게는 학문적 이견을 사법 권력으로 봉쇄하려
했던 역사적 사례들 예를 들어 진시왕의 분석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 체제에 사상 통제가 연상됩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지식인과 논쟁할 자신이 없으니 처벌하라는 그들을 과연
지식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대학 교수와 언론인 연구서의
연구위원 등 분명 지식인의 외양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적
사실의 검증이나 실적 연구를 통해 서로 다른 해석을 놓고 논쟁하려
하기보다 특정한 도덕적 정치적 서사를 정답으로 설정한 뒤 그의 어긋나는
영과 발언을 친일 반민족 역사 부정이라는 낙인으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이나 제도적 배제를 통해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태는 반대파를 처용하는 사화와 당쟁을 일삼던 조선 양반들의
행태와 닮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조선시대 양반의 전통을 개승한 한국형
지식인 혹은 후조선 지식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이
한국형 지식인 중 연세대 법학 교수인 이철로 씨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그는 법 사회학 분야를 담당한 연세대 로스쿨 교수입니다. 그는 이영훈 교수
팀이 2019년 반일 종족주의를 냈을 때 지금 보시는 것처럼 한국일보에
반일 종족주의 책이 선동 가득한 해괴한 책이며 저자들 스스로 학문적
목숨을 끊었다 자살을 했다고 조롱한 바 있습니다. 한때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공동 저작 해방 전호사의 제인식 1, 2권에 같이 글을 씻기도
했던이가 잘 아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사용한 언사가 몹이 거칠고
산납습니다. 그는 2021년 8월 25일 한국일보에 유석춘을 위한 결론이란 글을 기고해서
유석춘 교수와 같이 수업에서의 견해 표명으로 형사 처벌 위협을 받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유석춘을 포함한 유라이트계열의
역사 서술 그리고 위안부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박유와의 언서를
격렬히 비판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강도로 이들의 말할 자유,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려 한다.이 말 자체로 보면 타인의 견해를 존중할
줄 아는 지식인 같이 보입니다. 유석춘과 박유아에게 말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직접 그의 논평을들은 바 있는
저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영훈 교수와 저 등이 정성드렸쓴 책을 선동 가득한 회개한
책이며 저희가 학문적 자사를 했다고 조롱하였습니다. 타인의 견해를 듣고
동의할 수 없으면 근거를 들어서 타인을 비판하면 되지 해안 책 학문적
자살 운은으로 조롱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랬던 사람이 2021년에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말할 자유를 추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용훈
교수와 저에게도 말할 자유를 주자고 하면서 정장 말을 하면 심하게 피난하고 조롱합니다.
이철로 씨의 진인은 이영훈 교수팀에 대해선 형사 처벌하기보다는
조롱 폭원에 말폭탄을 던지자 않는 것일까요?이 이 점에서 저는 그의
자유옹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박유아 교수 재판 사태를 리뷰하면서 좌익 학자들의 박유아
비판서를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연구도 안 하면서
양심적 지식인인 채하는 위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상 박유하교수의 11년에 걸친한 투쟁 경과를 살펴왔습니다. 비록 그가
정엽과 다른 위안부론을 펼쳤다가 11년에 걸쳐 혹독한 송사를
겪었는데요. 하지만 그가 승소했다고 해서 그의부로는 사실에 입각한 합당한
견해일까요? 한국 대법원이 무죄를 확인해 준 그의 위안부로는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둔 것일까요? 다음 시간에는 이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65 Comments
Sejin Lifeforce 生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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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konkim3092
1 month ago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박 유하 교수, 이 영훈 교장등 많은분들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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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j7s
1 month ago
뭉치자/한일국민
뭉치자/한일교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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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zabethkim3740
1 month ago
역사의 진실 추구 이승만 tv 감사합니다.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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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o3r
1 month ago
박유하 교수님의 용기와 정의감에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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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天肖
1 month ago
알차고 진실한 역사강의에 경의를,,,, 감사합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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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조-v7e
1 month ago
박유화교수님 밥벌이와 정치 수단으로 전략한 역사를 바로잡을 이 시대 용기있는 지성 입니다 고맙습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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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holee6223
1 month ago
올바른 가르침과 말씀 감사합니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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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y-r2s
1 month ago (edited)
박유학 교수님 이영훈 교수님 같은 용기 있는 분들이 이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네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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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m1v
1 month ago
정말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 속상합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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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p6w
1 month ago
박유하 교수님 역사관 적극 지지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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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산인
1 month ago (edited)
우리역사를 정확히 알아야함
뼈아픈 역사도 우리역사입니다
왜곡만이 우선이 아닙니다
왜곡의 부끄러움을 알아야합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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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손-f2c
1 month ago
진짜 지식인들이 미약하게나마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또 한편으론 분노합니다. 이땅의 지식인들은 왜 이렇게 가짜들이 많을까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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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m1v
1 month ago
박유하교수님! 이영훈교수님! 사랑합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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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o5b
1 month ago
되지도 않는 동상만들어 모자,목도리 쑈해대며 난리치는게 비정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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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p7w-a5l
1 month ago
박유하교수도 대단한 투쟁력을 가진 분이고, 이승만학당 교수님들도 엄청난 분들입니다. 진실이 오히려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진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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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동-i4r
1 month ago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의 소리 방송에 응원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위안부 팔이로 돈을 착복한 더러운 짐승들의 만행에 대한 심판이 절실할 때입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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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k9w
1 month ago
거짓으로 쌓는 탑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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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y3s
1 month ago
박유하 교수님 화이팅입니다.진실은 숨길 수 없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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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ell3544
1 month ago
이철우...이 자가 이종찬의 아들로 좌파 멘토군요.ㅎ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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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lee2349
1 month ago
잘받아 듣습니다 교수님.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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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y5s
1 month ago
저런 사법부가 찢재명을 대통령까지 만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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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래기
1 month ago
우리도 도서 구입을 통해 박교수님의 투쟁의 노고를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어릴적 들은 이야기의 충격에 지금도 먹먹하다. '누가 총뿌리 들이 대고 끌고 가 ...지 힘들다고 딸내미 팔아먹은 것들이지...' 냉정한 직시를 통해 과거를 스스로 단죄해야 더 낳은 역사를 맞이할 수 있다. 과거 세대를 비난 공격하자는 것이 아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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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A
1 month ago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박유하 교수님이 어떤 세월을 보내셨을지 짐작도 안가네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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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순-z2g
1 month ago
오랬만입니다 교수님 수고하십시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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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o3r
1 month ago
이철우 교수는 용어의 희롱자라고 생각합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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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래기
1 month ago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재발간 돼야 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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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5026
1 month ago
이데올로기와 돈에 눈먼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뼈져리게 느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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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steve9532
1 month ago
감사합니다 잘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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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micho8608
1 month ago
주익종 교수님 감사합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한 대한민국 재건을 이룰 강력한 네트워크 연대가 절실합니다. 거짓과 선동에 대항한 박유하 교수의 끈질긴 투쟁에 경의를 표합니다. 동네 도서관에 관련 서적들의 비치를 신청하겠습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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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unkwon5504
1 month ago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 는 이미 사문화 된지 오래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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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김미경-j7s
1 month ago
역사를바로알자
감사를드립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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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ud3ok7mm2x
1 month ago
감사합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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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봉식-i5v
1 month ago
감사합니다. 역사 공부잘하고갑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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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yi1412
1 month ago
모든 문제의 출발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출발한다. 좌익들은 모든 문제를 헌재로 가져간다. 헌재는 자기들이 무슨 신이라도 된듯이 모든 문제에 대해 간섭하고 판단한다. 그리고나서 좌익들은 법원이나 행정부로 가져간다. 모든 과거사 사건이 똑같다. 좌익정부가 들어서면 헌재 사건이 급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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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wagner324
1 month ago (edited)
잘못알려진 위안부 역사뿐 아니라 한국전체 왜곡된 역사을 고집하는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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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inkim
1 month ago
세계 어느 전쟁에서 위안부가 없은 경우가 있는가.
그래서 위안부는 어느 나라도 문제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만 유난히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서 위안부를 문제 삼고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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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턱스튜디오
1 month ago
앗싸 댓글 1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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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akim1414
1 month ago
인신매매, 자원, 부모가 팔아넘기기도 했음. 미얀마 위안소에서는 일군에게 프로포즈 받은 경우도 있고 생활이 사치스러웠다고 미군 보고서에 나와있고 할머니들의 주장도 처음과 다름. 일본 조선총독부 담댱자가 아베에게 항의메일을 보냈음. 일본 정부가 성매매 여성을 모집단 일 없다고 왜 정부가 나서서 사과를 하냐는 내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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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럽
1 month ago
나는 이런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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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인-y2g
1 month ago
일본제국의 범죄가 밉다면 그보다 수십년 최근에 발생한 공산집단의 죄악상에 대해 말한마디없이 종북 찬양에 세뇌된 그 집단의 뇌는 무엇인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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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rbear3886
1 month ago
위안부가 공창 형태라는 것에 반대한다는데 그럼 뭐라는 건데요? 형식은 공창이 맞는 거 같은데 그것을 달리 뭐라고 하는지 들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피해자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공창도 본인이 원해서 간 게 아니면 피해자는 피해자죠 뭐 사실 공창을 누가 원해서 가겠습니까 그 시절엔 혼인도 원해서 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요 특히 못 사는 집은 초경만 끝나도 시집 보내고 그랬다고 들었고 소설이긴 하지만 그런 책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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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kim6166
1 month ago
주선생님 박유하씨로 지칭하시는것보다 교수로 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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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ug7ug
2 weeks ago
학문적 자유를 넓게 인정받은것일뿐
이 사람의 주장이 맞다는것도 아닌데 풉😂
요즘 앱스타인 파일에 비유하면
앱스타인 탓하면 성착취에 가담한 유명 셀럽들의 죄가 가벼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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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diamond1787
1 month ago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당시 쌀 15가마 주고 일본으로 밀항하셨다네요 ,,가고싶어도 안보내주니 ,,징용으로 돈벌어오는 사람들 많았다하더군요 , 해서 돈써서 일본 밀항가서 돈벌어 왔다고 ,작은아버지는 돈많이 벌어왔는데 동생 결혼할때 집도안사줬다고 술만 잡수시면 서로 다투시던 것도 보고 자랐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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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Joda600
1 month ago
소녀상은 100년전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보단, 청량리 588, 인천 옐로하우스, Red House등에 설치하는것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할거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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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Kim-jd5gl
1 month ago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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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kim8976
1 month ago
주익종 박사님, 이승만 학당에 감사드립니다.
광고는 다 봅니다.
광고..., 2:30초, 1:02초...
수고 많으십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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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wagner324
1 month ago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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