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함 Daham Chong
1] Intro to Daham Chong
Bridging the Sound of the Country’s Language and the Letters of the Middle Kingdom

Conspicuous in early Chosŏn historical accounts is the dynasty’s preoccupation with language. First, the ruling house showed obsessive devotion to learning the spoken and written language of the “Middle Kingdom” from Ming (1368-1644). At the same time, Hanliwen (漢吏文)—the language of diplomatic protocol in use since Yuan (1297-1368)—was an active component of study. Second, Chosŏn‘s vernacular alphabet systematized by King Sejong 世宗 (Kr. Hunmin chŏngŭm 訓民正音) was also an important development of the early fifteenth century.
Because of the dominant nationalist discourses on “National Language,” however, the central question—why the period saw such attention to learning Chinese language and at the same time attempting to create Chosŏn’s own vernacular alphabet—has not been answered by scholars keen to understand the two language issues as polar opposites and to cast them as an inherent contradiction impossible to explain.

In a colloquium presentation at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on Wednesday, November 6, 2019, at 4:30 p.m., historian Daham Chong will argue that it becomes possible to answer that ultimate question only if we stop thinking of the two features of “Sinicization” and “Desinicization” in Chosŏn as contradictions and instead de-construct the imaginary discursive demarcation line between them as an “invention of tradition” and start re-thinking of them as inseparably translative faces of a single coin.
Based on this approach, Chong will provide a post-colonialist critique on how the historical context of language issues in early Chosŏn has been bi-polarized as Korean (national) language versus Chinese (foreign) language confronting each other within the nationalist narratives of South Korean historiography. He will then offer new trans-national (trans-lingual) interpretations of Sejong’s Hunmin chŏngŭm promulgation within the context of late fourteenth- and early fifteenth-century East Asia.
DAHAM CHONG is an associate professor of history at Sangmyung University in Seoul and currently a visiting scholar at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Chong earned his Ph.D. in Korean history at Korea University.
- He has been rewriting early Chosŏn history as highlighted within the nationalist narrative of South Korean historiography by using postcolonial and transnational approaches.
- He has been reinterpreting the major projects of King Sejong in the fifteenth Century, including the Hunmin chŏngŭm vernacular alphabet, by rethinking their inseparable and translative relationship to Yuan, Ming, Jurchens, and Japan.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is located at 1881 East-West Road on the University of Hawai‘i Mānoa campus. Center events are free and open to the public. For further information, including information regarding access for the handicapped, telephone the Center for Korean Studies at (808) 956-7041. This presentation is supported by the Core University Program for Korean Studies through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Korean Studies Promotion Service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AKS-2015-OLU-2250005). The University of Hawai‘i is an equal opportunity/affirmative action institution.
===
2] Facebook article
Facebook
1. 한글날이 내게는 매번 버겁게 견딜 수밖에 없는 그런 날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존경하는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원문으로 똑바로 읽지 않으면 졸업 못 할 줄 알라는 엄명을 받고 대도관을 유배지 삼아 하루 종일 눈 빠지게 실록을 읽은 죄 밖에 없는데, 정말로 그렇게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석사학위 청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실록의 기사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세종이 한자가 아니라 우리 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중시했는가를 그토록 강조해 온 기존 국어국문학계와 국사학계의 통설과, 조선왕조실록에 풍부하게 전하고 있는 많은 사료들이 의미하고 있는 바의 사이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을 직접 발견하고부터는, 그 때의 충격과 깨달음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어 버렸다. 그 이후로 한글날은 내게 매년 감내해야하는 고통스러운 정기행사 같은 것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다행히 연구를 통해서 내가 감내하고 있던 것들을, 순전히 고통만은 아닌, 다른 의미 있는 무언가로 조금씩 바꾸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훈민정음이 제정되었던 15세기 초중반 세종대의 역사적 맥락을 횡단경계적(transnational) 관점으로 살핀 내 논문(「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 漢吏文, 訓民正音」)이 2008년 완성되어 모교의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를 거쳐 그 이듬해에 한 학술지에 게재된 직후부터는, 이전부터 감내하던 고통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좀 다른 고통과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내 논문에 대한 이영훈(李榮薰) 선생님의 관심으로부터 초래된 것이었다. 이 논문이 게재된 직후부터 나와 일면식도 없는 이영훈(李榮薰) 선생님이 내 이 논문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의 지인 분들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이영훈 선생님의 내 논문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겐 매우 고민스럽고 괴로운 경험이었다(이영훈 선생님의 내 연구에 대한 관심을 내게 전해주신 분 중에는, 이미 내가 전부터 이런 연구로 민족주의적 관점을 지닌 연구자들의 반발 때문에 고생하는 상태인 것을 잘 아시는 입장에서, 이영훈 선생님 같은 다른 전공의 저명한 학자들에게도 내가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니 힘내서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내게 연락을 주셨던 선생님들도 계시다. 그런 선생님들의 격려에 대해서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고, 내 성정 상 앞으로도 그 분들의 뜻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이런 소식을 전해주신 다른 선생님들 때문이 아니라, 전해 듣게 된 내 논문에 대한 이영훈 선생님의 이해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나는 그 분이 상대적으로 젊은 시절 쓰신 논문들은 조선시대 경제사 연구에서 기존의 연구들이 착목하지 못한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그 동안 조선시대를 연구한 한국사학의 주류(그 분이 자주 쓰시는 표현을 빌리면)가 경제사 연구를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새로운 연구성과를 내 놓아도, 조선시대를 다루는 한국사학의 주류가 그를 대체로 배제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도, 오늘날 그가 뉴라이트 입장의 far-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歷史修正主義)로 완전히 돌아서게 만드는 데 일정한 영향을 분명히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새로운 논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다른 논문을 통해 그 논문을 자세히 인용하며 조목조목 분석하며 비판만 해도 생산적인 논쟁이 될 일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인용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방향으로 끌고 갔던 것이 일을 이렇게 키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 선생님이 내 논문들에 대해 평가하고 인용하는 것은, 내게 더욱 더 중요한 차원의 일이었기 때문에, 나름 학계의 거물인 그런 분이 나 같은 사람의 연구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 보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지인 분들을 통해 한 다리 건너서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날엔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 입장에서의 조선시대사 연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이 내 연구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고, 결국 내 연구를 탈맥락화시켜 어떤 부분만을 어떤 입장에서 중시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시는 것인지를, 대략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 선생님 아니면 경제사학회에서 기획한 어느 학회에서 그 분 자신이 내 연구를 칭찬했다는 바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후배로부터, 선생님이 나를 “한국사” 연구자가 아닌 국어국문학 연구자라 알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그분이 주류 “한국사학” 연구를 혐오하는 수준에서 비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것이 그분으로 하여금 나를 한국사 전공자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이영훈 선생님이 정규재 tv라는 극우 인터넷 유튜브 매체와 함께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로 만들어 공개한 동영상 강의에서, 내 소속과 실명과 논문(이 때부터는 내가 2009년 게재한 논문이 아니라 2013년 쓴 논문을 인용하는데, 대체로 그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을 거론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내가 겪는 고통은 더 심해졌다. 내 논문에 대한 그 분의 맥락 없는 이해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그의 책에 중요한 논지 중 하나로 인쇄되어 나온 후로, 내 괴로움은 더욱 더 배가되었다. 그 와중에 어렵게 얻은 하와이 대학에서의 연구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당시에는 대응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0년 연구년에서 돌아와 그 책을 직접 살펴보니
내가 “제 논문에서 훈민정음 서문에 “중국”이라는 텍스트가 그냥 쓰인 것이 아니라 조선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한 쌍으로 설정되는데 필요한 중요한 ‘비교’의 대상으로 쓰였다는 점과 그렇게 서문이 쓰일 수밖에 없던 사정을 세종대를 중심으로 한 중심으로 15세기 조선사회의 언어/문자생활의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 이유는, 논문에 다 쓰여 있는 것처럼, 단순히 당시에 중국의 언어와 문자가 중요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2009년과 2013년에 썼던 훈민정음에 대한 논문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내가 15세기 당시 훈민정음 제정의 역사적 맥락과 이를 연구한 20세기 후반 한국사 및 국어국문학 연구의 사학사적 맥락에 대해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와 트랜스내셔널 스터디의 관점에 입각한 연구를 시도했던 이유는,
그래서 내 논문들은 먼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성역”처럼 인식되고 있는 훈민정음 제정에 대한 학설은,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내가 15세기 언어와 문자 체계를 매개로 중화와 조선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연동되면서 이른바 “중화중심주의”라는 질서를 함께 구성하고 유지했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훈민정음이 제정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제시하면서,
그래서 나는 “동양사 연구자”는 아니지만 내 논문에서 기회가 되는대로,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훈민정음 제정의 역사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다룬 내 두 개의 논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민국가가 자신의 가장 고유하고 오래된 정체성/전통의 핵심으로 정의해 온 훈민정음과 같은 것조차도,
2. 게다가 2000년대 초반 이성시 선생님과 임지현 선생님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사 연구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가 기획되어 진행되던 단계 때부터, 그 기획에 서구중심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관점에 입각한 매우 전형적인 근대화서사를 드러내는 것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영훈 선생님이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한국 역사학계에서 문제시되던 사정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2006년 이후로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그 논문의 일부를 이루는 세종대 훈민정음 제정의 문제를 연구해 오면서, 나는 대학원 안팎에서 온갖 비아냥과 원색적인 비난과 모욕적인 일들을 겪어왔다(몇 년 전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의 한명으로 그 국제학술회의를 주관한 국사편찬위원회와 중국 측 기관의 초청을 받아 발표를 하다가 중국 학자들도 아니고 함께 동행했던 한국인 역사학자들 때문에 겪었던 황당한 일들은 이미 예전에 포스팅으로 공유한 바 있고, 그런 일들은 아직도 겪는다).
3. 2000년대 초반, 세종이 했다고 하는 일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에 대한 비판을 처음 시작한 역사학자는 내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학계에서 버티고 있는 동안, 그리 많지 않았던 소중한 연대감을 경험하게 해 주신 분이라, 고마움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있다. 내가 굳이 그 선생님의 존함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 분이 그렇게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나를 도와주신 댓가를 오랜 동안 치르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선생님께 오랜 동안 연락드리지 못했던 점에 울컥하는 방향으로 조금 이야기가 샜지만, 여하튼 원래 이 선생님의 연구를 언급해서 정말 하려고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이 선생님께서 시도한 연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연구들은, 전공자들이 아니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 한국사학계 내부에서 어렵사리 세종대에 대한 통설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 제시된 새로운 연구들이 아직 학계 밖까지 공유되지 못하는 이러한 복잡한 사정 속에서,
2010년 한글날 특집 역사스페셜 이후로 미디어로부터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고사하고 있는 내가, 근래 몇 년간 학계 외부의 일반인 독자들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이런 저런 연락을 자주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연구에 관심이 있고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는 일반인 독자분들이 보내오는 그 메일들에서 결국 보이는 이런 저런 내용까지 모두 감내하는 것은, 내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런 메일을 읽어야 하는 날이면, 그 기나긴 밤 내내 감내해야할 고통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내가 아래 사진으로 제시한 논문을 꼭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데에는, 이러한 이유들이 있었다.
4. 내가 전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논문에서 일본군 종군 조선인 “위안부”(이러한 호칭에 대해서는 근래에 여러 비판들이 제시되고 있어 해당 주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해 온 사람은 아닌 내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조심스럽기 때문에, 일단 이 호칭의 사용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만큼은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인용부호로만 처리한다) 문제와 관련된 비평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세종대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세종대의 일들을 연구한 근대국민국가 역사학의 연구성과에 대해서 비판하는 논문을 쓰면서, 이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저자가 조선시대의 소위 “기생”을 다룬 내용과 그 관점을 확인하고 나서는, 도저히 그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고 논문을 마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위안부” 관련 주제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의 관점에서, 또한 그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된 페미니스트 스터디로부터 여러 영감을 받아 온 입장에서, 나는 이영훈 선생님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기생”을 다루는 내용과 관점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비판을 이 논문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글을 쓰고 난 이후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와 같은 이영훈 선생님의 조선시대 “기생” 해석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보다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한국인 연구자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좌파”라며 자랑스럽게 도배를 해 놓은 sns에다가, 그와 같은 이영훈 선생님의 “기생(또는 관비나 관기)”에 대한 해석이 마치 남성 통치권력이 여성에 가한 착취를 사회경제적인 시각으로 통찰력 있게 분석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식으로 정신 나간 평가를 해 놓은 따위의 포스팅들을 보게 된 이후로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비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 Harvard대학의 Mark Ramseyer 교수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으켰던 물의에 대해 비평하는 논문들도 역사비평의 같은 호에 기획으로 실렸는데, 마침 시의적절하게 전부터 알고 있었던 Jimin Kim 선생님의 논문과 함께 실려서 주제 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도,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5. 아마 내가 훈민정음의 제정과 그 이후 훈민정음으로 쓰인 용비어천가 등에 대해 연구한 내용들을 미리 책으로 묶어서 낼 수 있었더라면, 굳이 지금까지 마음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할 만큼 여러 이유로 혹사당하는 상태에서 이런 일들을 겪으며 모두 개인적 차원으로만 환원시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었다. 세종대와 관련해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제시된 여러 연구들이 있는데, 하필 앞으로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러한 세종시대에 대한 재해석 논의가, 오래된 식민주의 역사학의 조선사 해석이 끼쳐왔던 해악을 다시 소환하려는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다행스럽게도 세종대를 다룬 통설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바람직한 관점에서 세종대를 재해석해보려는 내 기획이 역사비평의 도움으로 장기연재로 구체화된 것이고, 내 글은 이 기획연재를 시작하는 논문으로 실리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내가 하고 있는 연구들로 인해서, 그리고 나의 연구들을 탈맥락화시켜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적 입장을 탈정치화시키며 역사적 “진실”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영훈 선생님으로 인해서, 내가 짊어져야 했던 많은 걱정과 고민들을, 이제 이 논문과 함께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움도 많이 남는 논문이지만, 공이 되든 과가 되든 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내가 지니고 가야할 것이 될 것이고, 그렇게 남은 숙제들은 내가 앞으로 해 나갈 연구에서 중요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동안 가슴 한 구석 늘 답답했던 마음과 불면의 밤들도 이제 안녕.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와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 입각해서 진행해 온 내 문제의식을 식민주의적 관점과 유사하다고 매도했던 주장들과 “혐의”도 이젠 안녕. 앞으로 조선시대사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정말 중요하기만 한 세종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을 꼭 그렇게 뉴라이트적 관점에서 해야겠다는 주장들도 모두 안녕. 뭐 혹시라도 또 만나게 된다면, 그 땐 좀 덜 무서운 표정으로 웃으며 맞이하기로ㅋ.
3] 역사비평 논문

Daham Chong
Sangmyung University, History, Faculty Member |
Korean Studies
+29
Address: 7 Hongji-Dong, Chongno-Gu, Seoul, South Korea, 110-743
Sangmyung University, Department of History(역사콘텐츠학과)
58 Followers | 24 Following | 1,445Total Views
FOLLOW
MESSAGE
PAPERS

trans-temporal and trans-spatial context of 사대, 교린, and 소중화 as the historical discourses(정다함-일부만).pdf
한국사학보(고려사학회), 2011
The Trans-temporal and Trans-spatial Contexts of “Sadae", “Kyorin", and “Sojunghwa" as the Histo...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20 Views

' 한국사' 상의 조선시대상(Imagining the Choson Period and the Construction of “ Korean History(kuksa)”
사이間SAI 8호,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INAKOS), 2010
국문초록 ‘한국사’ 상의 조선시대상 - 조선전기를 중심으로 정다함 현재의 ‘한국사’ 혹은 ‘국사’의 체계 속에서, 조선전기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68 Views

A Study on the Slave Army ‘Changyongdae(壯勇隊)’ in Early Chosŏn
한국사학보 24, Aug, 2006
A Study on the Slave Army ‘Changyongdae(壯勇隊)’ in Early Chosŏn Daham Chŏng This article is to gi...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48 Views

Invention of Early Joseon’s identity as a “Lesser Middle Kingdom(小中華)” and the comparative narrativization on “others” in Songs of Flying Dragons(龍飛御天歌)”
한국사학보 57, Nov 2014
Invention of Early Joseon’s identity as a “Lesser Middle Kingdom(小中華)” and the comparative narrat...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63 Views

Making Chosŏn's own Tributaries: Dynamics between the Ming-centered World Order and a Chosŏn-centered Regional Order in East Asian Peripher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15 No. 1, Feb 29, 2010
Making Chosŏn's own Tributaries: Dynamics between the Ming-centered World Order and a Chosŏn-ce...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56 Views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동방학지 141, Mar 31, 2008
Creating Chosŏn's suzerainty over Jurchen and Tsushima and the dispatch of Kyŏngchagwan(敬差官) ...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69 Views

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 漢吏文, 訓民正音(Language between “Empire” and “Vassal” in East Asian Context)
한국사학보 36, Aug 31, 2009
Conspicuous in early Chosŏn historical accounts is the dynasty’s preoccupation with language. Fir... more
---
Save to LibraryDownload
303 Views
오늘은 “한글날”이다. 삶과 학문의 발걸음이 이끄는 방향을 마다한 적 없이 걷다보니, 역사학자(歷史學者)로는 보기 드물게, 세종대(世宗代)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제정과 그로 인해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편찬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같은 텍스트에 대해 여러 편의 논문들을 쓴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거의 20년 동안 나는 많은 일들을 겪어 왔는데, 그렇게 아주 오랜 동안 혼자서 감내해오던 일들을, 아래 사진의 논문을 통해 얼마간이나마 털어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런 연구들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지만, 일단 이렇게 숨 한 번 돌리고 이미 해야 했었는데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연구와 집필의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또 앞으로는 괴로움 없이 별 일 없는 “한글날” 보낼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담아, 오랜 동안 웬만해서는 하지 않던 “한글날” posting을, 이렇게 한 번 올려 본다. 오랜 동안 감내해왔던 일들에 대한 글이라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널리 양해해주시길.
1. 한글날이 내게는 매번 버겁게 견딜 수밖에 없는 그런 날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존경하는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원문으로 똑바로 읽지 않으면 졸업 못 할 줄 알라는 엄명을 받고 대도관을 유배지 삼아 하루 종일 눈 빠지게 실록을 읽은 죄 밖에 없는데, 정말로 그렇게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석사학위 청구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실록의 기사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세종이 한자가 아니라 우리 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중시했는가를 그토록 강조해 온 기존 국어국문학계와 국사학계의 통설과, 조선왕조실록에 풍부하게 전하고 있는 많은 사료들이 의미하고 있는 바의 사이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을 직접 발견하고부터는, 그 때의 충격과 깨달음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어 버렸다. 그 이후로 한글날은 내게 매년 감내해야하는 고통스러운 정기행사 같은 것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다행히 연구를 통해서 내가 감내하고 있던 것들을, 순전히 고통만은 아닌, 다른 의미 있는 무언가로 조금씩 바꾸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훈민정음이 제정되었던 15세기 초중반 세종대의 역사적 맥락을 횡단경계적(transnational) 관점으로 살핀 내 논문(「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 漢吏文, 訓民正音」)이 2008년 완성되어 모교의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를 거쳐 그 이듬해에 한 학술지에 게재된 직후부터는, 이전부터 감내하던 고통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좀 다른 고통과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내 논문에 대한 이영훈(李榮薰) 선생님의 관심으로부터 초래된 것이었다. 이 논문이 게재된 직후부터 나와 일면식도 없는 이영훈(李榮薰) 선생님이 내 이 논문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의 지인 분들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이영훈 선생님의 내 논문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겐 매우 고민스럽고 괴로운 경험이었다(이영훈 선생님의 내 연구에 대한 관심을 내게 전해주신 분 중에는, 이미 내가 전부터 이런 연구로 민족주의적 관점을 지닌 연구자들의 반발 때문에 고생하는 상태인 것을 잘 아시는 입장에서, 이영훈 선생님 같은 다른 전공의 저명한 학자들에게도 내가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니 힘내서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내게 연락을 주셨던 선생님들도 계시다. 그런 선생님들의 격려에 대해서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고, 내 성정 상 앞으로도 그 분들의 뜻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이런 소식을 전해주신 다른 선생님들 때문이 아니라, 전해 듣게 된 내 논문에 대한 이영훈 선생님의 이해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나는 그 분이 상대적으로 젊은 시절 쓰신 논문들은 조선시대 경제사 연구에서 기존의 연구들이 착목하지 못한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그 동안 조선시대를 연구한 한국사학의 주류(그 분이 자주 쓰시는 표현을 빌리면)가 경제사 연구를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새로운 연구성과를 내 놓아도, 조선시대를 다루는 한국사학의 주류가 그를 대체로 배제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도, 오늘날 그가 뉴라이트 입장의 far-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歷史修正主義)로 완전히 돌아서게 만드는 데 일정한 영향을 분명히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새로운 논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다른 논문을 통해 그 논문을 자세히 인용하며 조목조목 분석하며 비판만 해도 생산적인 논쟁이 될 일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인용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방향으로 끌고 갔던 것이 일을 이렇게 키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 선생님이 내 논문들에 대해 평가하고 인용하는 것은, 내게 더욱 더 중요한 차원의 일이었기 때문에, 나름 학계의 거물인 그런 분이 나 같은 사람의 연구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 보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지인 분들을 통해 한 다리 건너서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날엔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 입장에서의 조선시대사 연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이 내 연구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고, 결국 내 연구를 탈맥락화시켜 어떤 부분만을 어떤 입장에서 중시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시는 것인지를, 대략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 선생님 아니면 경제사학회에서 기획한 어느 학회에서 그 분 자신이 내 연구를 칭찬했다는 바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후배로부터, 선생님이 나를 “한국사” 연구자가 아닌 국어국문학 연구자라 알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그분이 주류 “한국사학” 연구를 혐오하는 수준에서 비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것이 그분으로 하여금 나를 한국사 전공자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이영훈 선생님이 정규재 tv라는 극우 인터넷 유튜브 매체와 함께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로 만들어 공개한 동영상 강의에서, 내 소속과 실명과 논문(이 때부터는 내가 2009년 게재한 논문이 아니라 2013년 쓴 논문을 인용하는데, 대체로 그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을 거론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내가 겪는 고통은 더 심해졌다. 내 논문에 대한 그 분의 맥락 없는 이해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그의 책에 중요한 논지 중 하나로 인쇄되어 나온 후로, 내 괴로움은 더욱 더 배가되었다. 그 와중에 어렵게 얻은 하와이 대학에서의 연구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당시에는 대응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0년 연구년에서 돌아와 그 책을 직접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 내가 15세기 훈민정음이 제정된 역사적 맥락을 당대의 글로벌한 맥락 속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 처음으로 언어와 문자의 차원에서 “중화중심주의”의 질서가 유지되고 강화되는 현상을 원말명초의 상황 속에서 착목하고,
- 그러한 현상과 조선에서의 언어/문자 생활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불가분의 관계성(중국과 조선이 한쌍으로만 존재해야만 하는)에 대해 분석했던 것을,
- 그 분은 오로지 당시에 “중국”이 동아시아의 가장 문명국이므로 조선에서는 사대할 수밖에 없어서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단순화시켜 서술하기 위해, 인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 논문에서 훈민정음 서문에 “중국”이라는 텍스트가 그냥 쓰인 것이 아니라 조선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한 쌍으로 설정되는데 필요한 중요한 ‘비교’의 대상으로 쓰였다는 점과 그렇게 서문이 쓰일 수밖에 없던 사정을 세종대를 중심으로 한 중심으로 15세기 조선사회의 언어/문자생활의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 이유는, 논문에 다 쓰여 있는 것처럼, 단순히 당시에 중국의 언어와 문자가 중요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논문은 근대국민국가가 해당 국가 국민들 모두에게 그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라고 믿도록 설파해 온 그것이, 어떻게 다른 정체성들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그 정체성이라는 것을 지니게 되는지를(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야기하려는 논문입니다”라고 수백 번을 이야기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정말 내게 중요한 소수의 반응들을 제외하고,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결국 중국의 언어와 문자가 그렇게 중요했다는 이야기군요”라는 말이 고통스러워서, 나는 지금까지 많은 심적 갈등을 겪어왔고, 알고 지냈던 많은 분들과의 관계가 끊기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2009년과 2013년에 썼던 훈민정음에 대한 논문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내가 15세기 당시 훈민정음 제정의 역사적 맥락과 이를 연구한 20세기 후반 한국사 및 국어국문학 연구의 사학사적 맥락에 대해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와 트랜스내셔널 스터디의 관점에 입각한 연구를 시도했던 이유는,
- 근대 이후의 “국사학(한국사)”과 “국어국문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훈민정음에 대한 연구의 내용을 객관적 차원에서
- 실증된 “진리”와 “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밝히고,
- 이를 통해 근대국민국가의 민족주의적 관점과 근대화 서사에 입각한 역사 연구와 서술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그런 동기에서 내 논문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과거라고 믿어져 온 것(훈민정음)이 temporal/spatial의 서로 연동된 두 차원에서 모두 현재와 linear하게 계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내 논문들은 먼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성역”처럼 인식되고 있는 훈민정음 제정에 대한 학설은,
1] “객관적”/“과학적”으로 실증된 “진실”이나 “진리”가 아니라,
조선이 유럽과 일본과 미국 등의 타자들과 조우하게 되는 근대국민국가 만들기라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훈민정음 제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서구적 근대성”이 외부로부터 도래하기 이전에 이미 “한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의 전통(정체성) 속에서 이미 근대성의 맹아와 같은 것이 스스로의 힘으로 싹트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학문적 기획의 결과물이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치중한다.
2] 다음으로 내 논문들은, 그런 비판적 분석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민국가가 자신만의 고유한 근대성의 기원으로 설정한 훈민정음이라는 것도 결국, 그것이 제정되던 시점인 15세기 중반 그 시기에도 이미, 조선이라는 사회가 원나라나 명나라와 같은 타자들과 만나며 한자로 쓰인 유교의 “보편적” 가치들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공유하게 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 자신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전통)과 그 정체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구하는 데 필요한 표음문자의 필요성을 비로소 중요하게 인식하게 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15세기의 사료들을 통해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내가 15세기 언어와 문자 체계를 매개로 중화와 조선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연동되면서 이른바 “중화중심주의”라는 질서를 함께 구성하고 유지했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훈민정음이 제정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제시하면서,
나는 시종일관
- 그 질서를 “통치권력”(매우 광역적으로 작동하는)으로 지칭함으로써 비판적 관점을 유지했지,
- 그 질서를 근대지향적이고 발전적이고 이상적인 어떤 것으로 본질화하려는 서술은 의도적으로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했었다.
- 한자로 쓰인 “중화중심주의”라는 질서의 가치들을 “보편”이라고 설정하며
- 조선이라는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로 여긴 것은
- 조선의 지배층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고 썼지,
- 내 스스로 이른바 “중화중심주의”라는 것을 당시 조선 지배층도 반드시 받아들였어야 마땅한 이상적인 “보편”으로 생각한다고 쓴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동양사 연구자”는 아니지만 내 논문에서 기회가 되는대로,
이러한 “중화중심주의”의 “조공책봉질서”를 동아시아의 이상적인 global한 네트워크로 정의하는 하마시타 타케시(浜下武志) 선생님의 연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언급해왔고,
마찬가지 입장에서 최근 David C. Kang의 연구도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제점들은 비단 최근에만 노정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것으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것이다.
얼마 전 Si X Wang 선생이 내 연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그의 한 facebook posting에서 밝히며 나를 tag해서 나도 그 포스팅을 공유한 바 있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내가 이른바 朝貢冊封體制와 관련하여
“정벌(征伐)이라고 정의(定義)되는 유교적(儒敎的) 전쟁(戰爭)의 model과
그 戰爭을 構成하는 여러 ritual들이 지닌 象徵的/政治的/軍事的 의미(意味)를 分析하는 論文들을 썼던 것은, 바로 그런 기존 연구들의 심각한 문제점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훈민정음 제정의 역사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다룬 내 두 개의 논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민국가가 자신의 가장 고유하고 오래된 정체성/전통의 핵심으로 정의해 온 훈민정음과 같은 것조차도,
결국은 조선이 자신과는 다르다고 인식했던 타자들과 조우하고, 이를 통해 한자로 쓰인 유교사회의 가치들을 광범위하게 공유하며, 결국은 불가분의 관계로 서로 연동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그 필요성이 중요하게 인식되며 만들어지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보여줌으로써, 연구자들과 독자들로 하여금 거세지는 지구화의 물결 속에 더욱 심화되고 있는 근대국민국가 중심의 역사 연구/서술의 모순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국경을 넘는 시민사회의 연대와 공존을 추구하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쓴 것이다.
내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며 써 놓은 논문들을, 이영훈 선생님은 극우 youtube 매체의 동영상강의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라는 책에서, 당시 보잘 것 없는 조선이 “중국”에 지성사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인용해 왔던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런 주장마저도
- 결국은 과거 일본 식민주의 역사학의 소위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입장과
- 현재의 중국을 혐오하는 입장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것과,
- 동시에 그런 주장을 그간 민족주의적이고 일국사적 관점에 입각해 온 “주류” “한국사학”의 역사 왜곡으로부터 역사를 구하기 위한 “진실”과 “진리” 추구로 정의하기 위해 ‘탈정치화의 정치’라는 수법이 또 다시 쓰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래의 사진으로 제시한 이 논문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에는, 이러한 이유들이 있었다.
2. 게다가 2000년대 초반 이성시 선생님과 임지현 선생님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사 연구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가 기획되어 진행되던 단계 때부터, 그 기획에 서구중심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관점에 입각한 매우 전형적인 근대화서사를 드러내는 것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영훈 선생님이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한국 역사학계에서 문제시되던 사정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런 새로운 학문 기획에 이영훈이라는 학자가 참여했다는 사정이, 크게는 postcolonial studies와 transnational한 관점을 표방하며 그간 한국사 연구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비판했던 특정 그룹의 연구자들을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라 호도하고 폄하하는 근거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작게는 내 연구들도 그런 맥락 속에서,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다분히 postcolonial studies나 transnational studies에 반감을 지닌 학자들에 의해, 오해받고 비난받아 왔었다.
---
사실 2006년 이후로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그 논문의 일부를 이루는 세종대 훈민정음 제정의 문제를 연구해 오면서, 나는 대학원 안팎에서 온갖 비아냥과 원색적인 비난과 모욕적인 일들을 겪어왔다(몇 년 전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의 한명으로 그 국제학술회의를 주관한 국사편찬위원회와 중국 측 기관의 초청을 받아 발표를 하다가 중국 학자들도 아니고 함께 동행했던 한국인 역사학자들 때문에 겪었던 황당한 일들은 이미 예전에 포스팅으로 공유한 바 있고, 그런 일들은 아직도 겪는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내가 내 연구를 통해 분명하게 이바지한 학문적 공헌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평가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내가 원했던 것은 이러저러한 부분에서 만큼은 이 연구들이 학계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독창적인 연구성과라는 최소한의 평가와 그에 따르는 비판과 토론 그리고 후속 연구로 이어지는 생산적인 학술논쟁 뿐이다),
세종과 훈민정음과 관련 연구(용비어천가 관련 연구도 포함해서)를 해 오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인데,
-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닌 세종 시기와 훈민정음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그 책의 내용을 보아도 제대로 연대기 자료들을 원본으로 면밀하게 통독해 본 적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 뉴라이트적 입장의 인사로 이미 공고해진 자신의 명망을 기반으로 해서,
- 그 위에 내 논문을 인용해서 얹어 놓는 아주 편한 방법만으로,
- 그 분이 자신이 원했던 시끌시끌한 이슈 만들기 효과와 인지도를 챙기고 있다는 점도,
내 입장에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이 논문을 반드시 써야만 했던 데에는, 2000년대 초반 이후로 거의 20년에 걸쳐 한국 사회 전반과 한국 역사학계를 관통하고 있는, 이러한 복잡한 이유들이 있었다.
3. 2000년대 초반, 세종이 했다고 하는 일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에 대한 비판을 처음 시작한 역사학자는 내가 아니다.
내가 그 선생님의 실명을 여기서 밝히기는 어렵지만, 그 어려운 일을 2000년대 초반의 시점에 이미 하셨던 다른 선생님이 계시다.
2008년 봄 박사학위 청구논문 심사가 진행되던 시점에 나는, 조선 전기 조선과 그 이웃들의 관계를 서술하는 데(특히 세종대를 정점으로)
오랜 동안 정설로 사용해 온 “교린”이라는 용어가, 15세기 당시 사료 속에서 자주 쓰이던 용어도 아닐 뿐더러, 실은 근대 이후 민족주의적 관점(자국중심주의적)에서 조선시대 대외관계사를 다시 쓰기 위해 재정의된 학술 용어이자 언설이라 주장한 논문을 한국사학계에 발표한 상태였다.
특히 이 논문에서 나는, 해방 이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된 한국사 연구는 이 학설을 통해 세습적 희생자의식(임지현 선생님이 지적한 바 있는)에 기반한 민족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조선왕조를 선량한 피해자로 설정함으로써
조선시대와 직결되는 근대화 실패의 원인을 이른바 “외세” 식민주의의 책임으로만 규정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14세기 말부터 15세기 내내 조선왕실이 압록강 두만강 연안의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있던 여진족 지역사회들과 대마도 등에 매우 공격적으로 수직적 상하관계를 강요하고 그 관계의 영속화를 시도했던 사정이 지금까지 은폐되고 자세히 연구되지 못했던 것이니,
앞으로 이 부분을 성찰적으로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미 한국사학계에서 미운 털이 박힌 상태로 “찍혀” 있던 상황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타 학교의 박사과정생이, 세종이 재위기간에 행했던 주요 업적들에 대해 여러 이유들을 들며 통설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내용까지 구구절절 써서 보내드린 메일만 보고도 흔쾌히 내 박사학위논문 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직을 수락해주셨던 그분이,
바로 2000년대 초반 세종이 했다고 하는 일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의 물고를 튼 학자이다.
내가 지금까지 학계에서 버티고 있는 동안, 그리 많지 않았던 소중한 연대감을 경험하게 해 주신 분이라, 고마움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있다. 내가 굳이 그 선생님의 존함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 분이 그렇게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나를 도와주신 댓가를 오랜 동안 치르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역사 연구의 관점은 2007년-8년 무렵과 비교해서도 꽤나 달라져서 그 분의 시각과는 많은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지만, 그분의 논문을 처음 읽고 받은 영감이 이후 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므로, 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분의 논문을 인용했는데, 그 선생님 주위의 다른 분들은 아마도 그런 내 논문을 보고 그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왜 정다함이 박사학위논문 심사위원으로 들어가 그런 박사학위 청구논문을 통과시켜 주어서, 계속 저런 논문들만 쓸 수 있도록 만들었냐는 식의 핀잔을 주곤 했던 것 같다.
오래 전 학술회의에 불러주셔서 가서 토론도 하고 발표도 했었는데, 이제 당신 논문은 좀 그만 인용하라고 하셔서, 나는 선생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불만 섞인 목소리까지 들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 이후로는 죄송하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로 낙담하고 괴로워하느라 아직 단독 저서가 없지만, 내 책이 나오면 내 지도교수님과 함께 꼭 가장 먼저 전해드리려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선생님께 오랜 동안 연락드리지 못했던 점에 울컥하는 방향으로 조금 이야기가 샜지만, 여하튼 원래 이 선생님의 연구를 언급해서 정말 하려고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이 선생님께서 시도한 연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영훈 선생님이 세종이라는 특정한 관련 주제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에 비판을 제기하기 15년도 전에, 이미 한국과학사 내지 한국사연구 내부에서, 세종대와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 선생님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 나는 2008년 이후로 세종이 했던 여러 프로젝트와 관련된 통설을 비판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들을 발표해 왔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 이영훈 선생님이 자기 전공도 아닌 세종대에 대해 내 연구를 인용하며 마치 자신이 세종대를 민족주의적 관점 위주로 해석해왔던 한국사학의 연구성과를 제대로 비판하는 역사학자인양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미 한국과학사 연구와 한국사 연구 내부에서, 한참 전에 세종대와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연구들은, 전공자들이 아니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어렵게 시도된 새로운 연구들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여기엔 많은 복잡한 이유들이 있고 그 이유들을 모두 여기에서 자세히 언급할 수도 없지만, 내가 볼 때 이러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사연구라는 분과학문 자체가 소수의 학회와 학술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그런 연구들을 시의적절하게 제대로 review하고 그 분과학문의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생산적인 논쟁으로 이끄는 능력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는 점인 듯하다.
내 입장에서, 이러한 사정과 곧바로 연결되는 지점이라 더 심각한 문제라 느꼈던 것은,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어떤 역사학자도 뉴라이트적 역사인식에 기반한 이영훈의 이러한 조선시대 해석(세종대를 포함)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문을 통한 비판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 한국사학계 내부에서 어렵사리 세종대에 대한 통설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며 제시된 새로운 연구들이 아직 학계 밖까지 공유되지 못하는 이러한 복잡한 사정 속에서,
이영훈 선생님은 자신이 인용해 온 내 연구가 자신의 관점을 오히려 비판하는 역사인식론에 기반한 연구라는 것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내 연구의 특정한 부분만을 탈맥락화시켜 마치 자신의 주장과 합치하는 것처럼 인용하는 방법으로, 자신이야말로 기존 한국사연구의 민족주의적 해석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대표적 역사학자인양 그 입지를 강화해가고 있는 점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internet에 기반한 youtube라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면 낡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지식도 마치 새 것처럼 “재미디어화”되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기회에 편승한 덕이 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학계 내부의 사정을 잘 알 리 없는 인터넷 상의 한국사 분야 독자들 사이에서, 이영훈 선생님은 마치 기존 한국사 연구의 민족주의적 해석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며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는 역사학자의 “양심”을 대표하는 존재인 것처럼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한글날 특집 역사스페셜 이후로 미디어로부터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고사하고 있는 내가, 근래 몇 년간 학계 외부의 일반인 독자들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이런 저런 연락을 자주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내 논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분의 유튜브 강의동영상과 책을 통해, 내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면서 내게 연락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분의 세종 비판이 youtube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학계의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꽤나 징후적인 것으로 인식해야 할 일이다.
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연구에 관심이 있고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는 일반인 독자분들이 보내오는 그 메일들에서 결국 보이는 이런 저런 내용까지 모두 감내하는 것은, 내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런 메일을 읽어야 하는 날이면, 그 기나긴 밤 내내 감내해야할 고통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내가 아래 사진으로 제시한 논문을 꼭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데에는, 이러한 이유들이 있었다.
4. 내가 전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논문에서 일본군 종군 조선인 “위안부”(이러한 호칭에 대해서는 근래에 여러 비판들이 제시되고 있어 해당 주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해 온 사람은 아닌 내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조심스럽기 때문에, 일단 이 호칭의 사용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만큼은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인용부호로만 처리한다) 문제와 관련된 비평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세종대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세종대의 일들을 연구한 근대국민국가 역사학의 연구성과에 대해서 비판하는 논문을 쓰면서, 이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저자가 조선시대의 소위 “기생”을 다룬 내용과 그 관점을 확인하고 나서는, 도저히 그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고 논문을 마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위안부” 관련 주제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의 관점에서, 또한 그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된 페미니스트 스터디로부터 여러 영감을 받아 온 입장에서, 나는 이영훈 선생님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기생”을 다루는 내용과 관점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비판을 이 논문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글을 쓰고 난 이후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와 같은 이영훈 선생님의 조선시대 “기생” 해석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보다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한국인 연구자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좌파”라며 자랑스럽게 도배를 해 놓은 sns에다가, 그와 같은 이영훈 선생님의 “기생(또는 관비나 관기)”에 대한 해석이 마치 남성 통치권력이 여성에 가한 착취를 사회경제적인 시각으로 통찰력 있게 분석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식으로 정신 나간 평가를 해 놓은 따위의 포스팅들을 보게 된 이후로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비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 Harvard대학의 Mark Ramseyer 교수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으켰던 물의에 대해 비평하는 논문들도 역사비평의 같은 호에 기획으로 실렸는데, 마침 시의적절하게 전부터 알고 있었던 Jimin Kim 선생님의 논문과 함께 실려서 주제 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도,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5. 아마 내가 훈민정음의 제정과 그 이후 훈민정음으로 쓰인 용비어천가 등에 대해 연구한 내용들을 미리 책으로 묶어서 낼 수 있었더라면, 굳이 지금까지 마음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할 만큼 여러 이유로 혹사당하는 상태에서 이런 일들을 겪으며 모두 개인적 차원으로만 환원시켜 감내해야만 하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었다. 세종대와 관련해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제시된 여러 연구들이 있는데, 하필 앞으로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러한 세종시대에 대한 재해석 논의가, 오래된 식민주의 역사학의 조선사 해석이 끼쳐왔던 해악을 다시 소환하려는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다행스럽게도 세종대를 다룬 통설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바람직한 관점에서 세종대를 재해석해보려는 내 기획이 역사비평의 도움으로 장기연재로 구체화된 것이고, 내 글은 이 기획연재를 시작하는 논문으로 실리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내가 하고 있는 연구들로 인해서, 그리고 나의 연구들을 탈맥락화시켜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적 입장을 탈정치화시키며 역사적 “진실”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영훈 선생님으로 인해서, 내가 짊어져야 했던 많은 걱정과 고민들을, 이제 이 논문과 함께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움도 많이 남는 논문이지만, 공이 되든 과가 되든 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내가 지니고 가야할 것이 될 것이고, 그렇게 남은 숙제들은 내가 앞으로 해 나갈 연구에서 중요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동안 가슴 한 구석 늘 답답했던 마음과 불면의 밤들도 이제 안녕.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와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 입각해서 진행해 온 내 문제의식을 식민주의적 관점과 유사하다고 매도했던 주장들과 “혐의”도 이젠 안녕. 앞으로 조선시대사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정말 중요하기만 한 세종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을 꼭 그렇게 뉴라이트적 관점에서 해야겠다는 주장들도 모두 안녕. 뭐 혹시라도 또 만나게 된다면, 그 땐 좀 덜 무서운 표정으로 웃으며 맞이하기로ㅋ.
====
====
3] 역사비평 논문
세종 성군 논란을 통해 본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확산과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문제
The Rise of South Korean New-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 on King Sejong
The Rise of South Korean New-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 on King Sejong
and the Issues of Post-Coloniality in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South Korean economic historian Yi Yŏng-hun’s arguments on King Sejong in a youtube media lecture in 2016 and its publication into a book called Sejong ŭn kwayŏn sŏnggun in’ga in 2018, has triggered controversial disputes, across the popular internet media space, over King Sejong and his rule which have enjoyed its most iconic status as the all time favorite national hero or saint king within the context of South Korean nationalism.
정다함, 세종 성군 논란을 통해 본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확산과...
역사비평 2021년 여름호(통권 제135호)
230 - 268(39 pages)

====
South Korean economic historian Yi Yŏng-hun’s arguments on King Sejong in a youtube media lecture in 2016 and its publication into a book called Sejong ŭn kwayŏn sŏnggun in’ga in 2018, has triggered controversial disputes, across the popular internet media space, over King Sejong and his rule which have enjoyed its most iconic status as the all time favorite national hero or saint king within the context of South Korean nationalism.
Based on a post colonial and a transnational approach, this paper first examines the perspective and the logic of Yi’s main arguments on King Sejong and his rule.
Then, this paper will continue to provide critical analysis that Yi’s argument is not only to debunk Sejong myth built by the main streams of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in South Korea, but also to expand the narrow horizon of South Korean New-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 that only include hundred years of history from late 19th to late 20th century into wide open several hundred years of Choson dynasty history all the way up to King Sejong’s reign in early 15th century.
Then, this paper will ultimately aim to show how Yi’s reinterpretation will end up only supporting Japanese far right historical revisionism’s arguments
on perennial controversial issues between Korea and Japan, including “comfort women” that originate back from Japanese colonialism in early 20th century.
And Finally I will talk about some crucial points on the issues of post-coloniality exposed by the controversies of Yi’s arguments in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here in South Korean academia, and I will also talk about what the Korean historians studying Chosŏn history should critically examine to cope with far-right historical revisionism in this age of new media.#Hunmin chŏng’ŭm#Historical revisionism#Comfort Women#Post-coloniality#Yi Yŏng-hun#public history#post-colonial studies
참고문헌 (0)
참고문헌 (0)
====
4] List of publications
Daham Chong
Sangmyung University, History, Faculty Member |
Korean Studies
+29
Address: 7 Hongji-Dong, Chongno-Gu, Seoul, South Korea, 110-743
Sangmyung University, Department of History(역사콘텐츠학과)
58 Followers | 24 Following | 1,445Total Views
FOLLOW
MESSAGE
PAPERS
trans-temporal and trans-spatial context of 사대, 교린, and 소중화 as the historical discourses(정다함-일부만).pdf
한국사학보(고려사학회), 2011
The Trans-temporal and Trans-spatial Contexts of “Sadae", “Kyorin", and “Sojunghwa" as the Histo...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20 Views
' 한국사' 상의 조선시대상(Imagining the Choson Period and the Construction of “ Korean History(kuksa)”
사이間SAI 8호,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INAKOS), 2010
국문초록 ‘한국사’ 상의 조선시대상 - 조선전기를 중심으로 정다함 현재의 ‘한국사’ 혹은 ‘국사’의 체계 속에서, 조선전기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68 Views
A Study on the Slave Army ‘Changyongdae(壯勇隊)’ in Early Chosŏn
한국사학보 24, Aug, 2006
A Study on the Slave Army ‘Changyongdae(壯勇隊)’ in Early Chosŏn Daham Chŏng This article is to gi...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48 Views
Invention of Early Joseon’s identity as a “Lesser Middle Kingdom(小中華)” and the comparative narrativization on “others” in Songs of Flying Dragons(龍飛御天歌)”
한국사학보 57, Nov 2014
Invention of Early Joseon’s identity as a “Lesser Middle Kingdom(小中華)” and the comparative narrat...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63 Views
Making Chosŏn's own Tributaries: Dynamics between the Ming-centered World Order and a Chosŏn-centered Regional Order in East Asian Peripher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15 No. 1, Feb 29, 2010
Making Chosŏn's own Tributaries: Dynamics between the Ming-centered World Order and a Chosŏn-ce...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156 Views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동방학지 141, Mar 31, 2008
Creating Chosŏn's suzerainty over Jurchen and Tsushima and the dispatch of Kyŏngchagwan(敬差官) ... more
Save to LibraryDownload
69 Views
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 漢吏文, 訓民正音(Language between “Empire” and “Vassal” in East Asian Context)
한국사학보 36, Aug 31, 2009
Conspicuous in early Chosŏn historical accounts is the dynasty’s preoccupation with language. Fir... more
---
Save to LibraryDownload
303 Views
===
Languages of Sinographic Cosmopolis and Chosŏn’s Vernacular Alphabet
Daham Chong
History
2013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A Trans-national Reading of Early Chosŏn’s Attempt to Attack Liaodong Area and Taejo Yi sŏng’gye’s Motivation
Daham Chong
History
2017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The political and religious concepts of disease and medicine in 15th century Chosŏn Korea
Daham Chong
Medicine
2009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Creating Chosŏn's suzerainty over Jurchen and Tsushima and the dispatch of Ky?ngchagwan(敬差官)
Daham Chong
2008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The Logic of Zhengfa: Warfare, Calendar, Clock, and Firearm Weapon in 15th-Century Chosŏn
Daham Chong
Engineering
2011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The Rise of South Korean New-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 on King Sejong and the Issues of Post-Coloniality in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Daham Chong
History
31 May 2021
View via Publisher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How have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become entertainment : Popularization of Korean history after 2000 and the problems of TV media
Daham Chong
History
31 December 2018
View via Publisher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Language between Empire and Vassal in East Asian Context -Sinocentric Standard Languages and Chosŏn’s vernacular Alphabet-
Daham Chong
Art
2009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A Crossroad of among the “Middle Kingdom”, the “Lesser Middle Kingdom”, and the “Barbarians”: Rethinking the Jurchen Leader Möngke Temür(童猛哥帖木兒)’s “Tributary Visit(入朝)” to Ming in 1405 and…
Daham Chong
History
1 August 2016
View via Publisher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Confucian Narrativization of Heaven’s Mandate Represented in Songs of Flying Dragons(龍飛御天歌)
Daham Chong
Art
2015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1
2
Stay Connected With Semantic Scholar
===
Languages of Sinographic Cosmopolis and Chosŏn’s Vernacular Alphabet
Daham Chong
History
2013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A Trans-national Reading of Early Chosŏn’s Attempt to Attack Liaodong Area and Taejo Yi sŏng’gye’s Motivation
Daham Chong
History
2017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The political and religious concepts of disease and medicine in 15th century Chosŏn Korea
Daham Chong
Medicine
2009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Creating Chosŏn's suzerainty over Jurchen and Tsushima and the dispatch of Ky?ngchagwan(敬差官)
Daham Chong
2008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The Logic of Zhengfa: Warfare, Calendar, Clock, and Firearm Weapon in 15th-Century Chosŏn
Daham Chong
Engineering
2011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The Rise of South Korean New-Right Revisionist Historiography on King Sejong and the Issues of Post-Coloniality in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Daham Chong
History
31 May 2021
View via Publisher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How have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become entertainment : Popularization of Korean history after 2000 and the problems of TV media
Daham Chong
History
31 December 2018
View via Publisher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Language between Empire and Vassal in East Asian Context -Sinocentric Standard Languages and Chosŏn’s vernacular Alphabet-
Daham Chong
Art
2009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A Crossroad of among the “Middle Kingdom”, the “Lesser Middle Kingdom”, and the “Barbarians”: Rethinking the Jurchen Leader Möngke Temür(童猛哥帖木兒)’s “Tributary Visit(入朝)” to Ming in 1405 and…
Daham Chong
History
1 August 2016
View via Publisher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Confucian Narrativization of Heaven’s Mandate Represented in Songs of Flying Dragons(龍飛御天歌)
Daham Chong
Art
2015
Save
Alert
Cite
Research Feed
1
2
Stay Connected With Semantic Scholar
===
5] Korean book with his article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임지현,정선태,박노자,황병주,이나영,이영재,와타나베 나오키,정다함,홍양희,오웬 밀러,이진경,윤성호,손희주 (지은이),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책과함께2011-07-01
책소개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60주년을 반(反)기념하기 위해 2008년 8월 국제학술회의 'Modern Korea at the Crossroads between Empire and Nation'을 개최하였다. 이 책은 국제학술회의의 성과물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임지현을 비롯해 박노자, 황병주 등 12명의 전문학자들이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서 근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한 것이다.
한국의 근대를 성찰할 때에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은 국가권력의 장으로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근대 담론을 읽는 두 가지 키워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틀 안에서 그동안 제국주의의 피해자로만 인식해왔던 시각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에 내재된 제국주의의 속성을 밝히고 제국과 식민지가 주고받는 상호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12편의 개별 글들을 묶어 총 3부로 구성하였다. 1부 '제국을 욕망하는 역사적 상상'에서는 제국을 욕망하는 식민지인들의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정하게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2부 '반식민과 탈식민의 경계에서'는 식민과 탈식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담은 5편의 글을 묶었다. 3부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미국과 한국의 비교를 통해 탈식민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고 있다.
--
목차
‘반(反)기념’의 역사학을 위해
1부 제국을 욕망하는 역사적 상상
근대계몽기 ‘국민’ 담론과 ‘문명국가’의 상상: 《태극학보》를 중심으로 _정선태
민족의 위대성과 타민족의 정복: 안확의 민족담론 _박노자
황군의 사랑, 왜 병사가 아니라 그녀가 죽는가: 〈조선해협〉, 기다림의 멜로드라마 _이영재
근대 한국의 역사 서술과 타자화된 여진족 _정다함
2부 반식민과 탈식민의 경계에서
식민지 시기 ‘현모양처’론과 ‘신여성’ _홍양희
식민지 조선의 ‘만주’ 담론과 정치적 무의식: 문학평론가 임화의 1940년대 전반의 논의를 중심으로 _와타나베 나오키
해방공간과 전석담의 역사 인식: 근대 국민국가로의 이행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_오웬 밀러
박정희 체제 근대화 담론의 식민성 _황병주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의 기지촌 ‘여성’ 읽기 _이나영
3부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이주노동자 운동과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_이진경
누가 민족문학을 두려워하랴: 트랜스내셔널리즘 시대의 민족문학론 _윤성호
해외동포를 겨냥한 초국가적 정책: 문화 정체성 형성, 세계화,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포’라는 개념 _손희주
찾아보기
==========
접기
책속에서
P. 6 식민지 희생자 의식에서 비롯된 궁정 역사학
궁정 역사학의 국가주의적 코드는 기실 새로울 것도 없다. 국가적 정통성을 뒷받침해온 근대 역사학 주류의 부끄러운 역사에서 그것은 별반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 국가주의적 역사 해석이 위로부터 강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헤게모니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경우, 우리 모두 식민주의의 희생자였다는 널리 퍼져 있는 역사(무)의식과 접목되면서 국가주의적 역사 해석의 헤게모니적 효과는 더욱 증폭되어 왔다. 남이나 북이나 또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권력의 논리가 해방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행사해왔다.〈‘반(反)기념’의 역사학을 위해〉중에서
P. 37 전 국가적 차원에서의 ‘국민 만들기’
국가권력의 온존을 위해서 국가 안보를 과장하다 보면 개인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소지가 높다는 점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는다. 다만, ‘국가’를 초월적 정당성을 지닌 조직으로 상정하고, 여기에서 이탈하는 개인들을 ‘비국민’으로 가차 없이 배제하는 지적 메커니즘만이 작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자연스럽게’ 동일시되는 지점에서 근대사상의 굴절 또는 왜곡을 목격할 수 있거니와, 이는《태극학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응진을 비롯한 많은 필자들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기독교도 예외 없이 ‘국민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동원된다. 기독교 사상의 한국적 변용의 일례라 할 수 있다.
〈근대계몽기 ‘국민’ 담론과 ‘문명국가’의 상상〉중에서
P. 57 조선인 민족성에 대한 논의
안확은 ‘조선인 민족성’의 일곱 가지 “근본적 특성” 가운데 하나로 “평화 낙천”을 언급했다. 조선인을 멸시하는 일본인들이 들먹이는 ‘겁나(怯懦)’를 그는 “평화”라는 긍정적 측면으로 대체, 승화시킨 것이다. 그에게는 “술과 웃음, 농담, 호탕함”을 수반했던 농민들의 “낙천적 평화로움”은 ‘싸움’이나 ‘흥정’ 등 자기 의사 관철의 적극적인 방편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가 본 조선인들은 “쾌활하고 활동적이고 매우 간섭적”이었다. 즉 타인의 일을 소극적으로 방관하지 않고 늘 만류, 조언 등의 형태로 “쾌활하게” 말려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활발하고, 호탕하고, 만사에 적극적인 조선인들이 죽음에 대해서도 특별한 공포가 없고 죽은 자와 산 자가 같은 세상에서 공생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안확이 본 조선인의 “평화적 낙천 정신”이었다.〈민족의 위대성과 타민족의 정복〉중에서
P. 143-144 ‘교린’이라는 틀 속에 숨겨진 민족주의의 욕망
근대 한국사학의 ‘교린’이라는 틀은, 여진에 대해 ‘가해자’일 수 있는 조선을 선의의 ‘피해자’로 묘사함으로써 조선이 근대화 과정 속에서 피해자였다는 입장을 계속 주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고, 동시에 문화적으로는 조선이 훨씬 앞선 문화를 전파해줌으로써 이들이 선진문명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한 점에서 ‘교린’이라는 학문적 틀은, 근대 한국사학이 고구려, 고려를 ‘제국’으로 파악하면서 여진을 타자화했던 시각과 겉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조선 전기의 조선-여진 관계를 ‘교린’이라는 틀로 이해하려는 시각은, 겉으로는 조선을 외침의 ‘피해자’로 묘사해오면서도 그 불투명한 내부에 조선이 15세기에 여진에 대해 추구했던 정책들의 침략적 속성을 은폐하려는, 민족주의의 위선과 욕망을 숨기고 있는 학문적 틀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근대 한국의 역사 서술과 타자화된 여진족〉중에서
P. 199 현모양처론의 전통적 재현
현모양처 논리가 전개되는 보다 중요한 방식은 조선 민족의 발전이라는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는 민족개량론자인 이광수의 처, 허영숙의 글에 가장 잘 드러난다. 직업이 의사인 그녀는 조선의 대표적 신여성이자 현모양처론자였다. 허영숙은 민족의 개량, 발전, 자립이라는 측면에서 현모양처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의 논리 구조는 다음과 같다. 조선을 다시 세우고 그 조선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 민족을 구성하는 분자인 각개의 여성과 남성, 그 국민이 힘이 있게 되어야한다. 민족의 힘은 그 민족의 육체적 건강과 지능과 덕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이를 향상시키는 것이 민족의 힘을 기르는 첩경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아동기에 그 기초가 만들어진다. 바로 여기에서 자녀 양육자이자 교육자인 어머니의 중요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식민지 시기 ‘현모양처’론과 ‘신여성’〉중에서
===
저자 및 역자소개
임지현 (지은이)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 유럽 지성사·폴란드 근현대사·지구사 연구자. 전 세계의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 연구자들과 함께 초국가적 역사의 관점에서 일국사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현재는 역사에서 기억으로 관심을 이동하여 인문한국 프로젝트인 ‘지구적 기억의 연대와 소통: 식민주의, 전쟁, 제노사이드’를 주도하며 기억의 연대를 통한 동아시아의 역사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100편이 넘는 논문을 국내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폴란드, 프랑스 등지의 저명 저널과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최... 더보기
최근작 :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기억 전쟁>,<촛불 너머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 총 32종 (모두보기)
정선태 (지은이)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에서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 옮긴 책으로 『가네코 후미코』, 『쇼와 육군』 등이 있다.
최근작 :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백석 번역시 선집>,<1898, 문명의 전환> … 총 38종 (모두보기)
박노자 (Vladimir Tikhonov) (지은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한국 고대사와 불교사 등을 연구했고 지금은 근대사, 특히 공산주의 운동사에 몰입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1·2) 『우승열패의 신화』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이 있다.
최근작 :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001년판)>,<전환의 시대>,<한국지성과의 통일대담> … 총 87종 (모두보기)
인터뷰 : 이중의 타자, 박노자 교수와의 e-만남 - 2002.07.31
황병주 (지은이)
역사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 한국 현대사 전공. 『1970, 박정희 모더니즘』, 『백 년 동안의 진보』를 함께 썼고, 주요 연구로는 「1960년대 지식인의 68운동 담론」, 「해방 공간 한민당의 ‘냉전 자유주의’와 사유재산 담론」, 「1950~60년대 엘리트 지식인의 빈곤 담론」, 「해방 이후 우익정치의 계보학과 주체 형성」 등이 있다.
최근작 :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4월혁명의 주체들>,<간첩 시대> … 총 19종 (모두보기)
이나영 (지은이)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College Park)에서 여성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George Mason University 여성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운영이사, 여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유네스코 등재 자문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총무.
주요 논문으로 “한국사회의 중층적 젠더 불평등: ‘평등 신화’와 불변하는 여성들의 위치성”, “The Korean Women’s Movement of Japanese Militar... 더보기
최근작 : <2015 위안부 합의 이대로는 안 된다>,<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조국 근대화의 젠더정치> … 총 4종 (모두보기)
이영재 (지은이)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월간지 <KINO> 기자로 일했으며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국일본의 조선영화>(현실문화연구, 2008), <帝國日本の朝鮮映畵>(三元社, 2013), <トランスナショナルアクション映畵>(東京大學出版會, 2016), East Asian Cinemas1939-2018(Kyoto University Press and T... 더보기
최근작 : <아시아적 신체>,<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제국 일본의 조선영화> … 총 3종 (모두보기)
와타나베 나오키 (渡邊直紀) (지은이)
일본 무사시대학 교수. 전공은 한국 근현대문학. 1965년 도쿄 출생.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에 일본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1994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1998년 여름에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 초빙전임강사를 거쳐서 2005년부터 무사시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2011년에 UC San Diego에서, 2018년에 고려대학교에서 각각 Visiting scholar를 역임했다. 2017년 2월에 「임화 문학론 연구」로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한국을 중심으... 더보기
최근작 : <임화문학 비평>,<전쟁과 극장>,<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 총 5종 (모두보기)
==
정다함 (지은이)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주요 논저로는
- 〈조선 초기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藩屛 인식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동방학지》141),
- 〈麗末鮮初의 동아시아 질서와 朝鮮에서의 漢語, 漢吏文, 訓民正音〉(《한국사학보》36),
- 〈‘事大’와 ‘交隣’과 ‘小中華’라는 틀의 초시간적인 그리고 초공간적인 맥락〉(《한국사학보》42) 등이 있다.
최근작 :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
홍양희 (지은이)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가족사와 젠더사/여성사이다. 2018년 현재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풍속집: 제국의 경찰이 본 조선풍속』(역서, 민속원, 2011), 『고아, 족보 없는 자: 근대, 국민국가, 개인』(편저, 책과함께, 2014), 『성(聖/性)스러운 국민: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근대 국가의 법과 과학』(편저, 서해문집, 2017), 「식민지시기 ‘의학’ ‘지식’과 조선의 ‘전통’: 쿠도(工藤武城)의 “婦人科學”적 지... 더보기
최근작 : <일제의 식민지배와 재조일본인 엘리트>,<트랜스내셔널 지구공동체를 향하여>,<‘성’스러운 국민> … 총 11종 (모두보기)
오웬 밀러 (지은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Robinson College, Cambridge University)의 연구 펠로우(Research Fellow). 주요 논저로는 〈시전-국가 간 거래와 19세기 후반 조선의 경제 위기-면주전 상인을 중심으로〉(《조선후기 재정과 시장》), “Marxism and East Asian History: From Eurocentrism and Nationalism to marxist Universalism”(Marxism 21, Vol. 7, No. 3), Selected Writings of Han Yongun:... 더보기
최근작 :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이진경 (지은이)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문학학과 한국문학과 비교문학 전공 부교수. 『서비스 이코노미』를 썼다. 식민지시대 민족주의 문화와 정치, 포스트식민시대 한국의 군사주의와 개발, 젠더와 민족의 재현, 한국의 아시아인 노동-이주,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등을 연구한다.
최근작 :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서비스 이코노미>,<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 총 4종 (모두보기)
윤성호 (지은이)
서울대학교 영문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다. 첫 저서 『언더독의 글쓰기: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지형학』으로 2012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미국’이라는 복잡다단한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고 미국문화의 핵심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작 : <Transgressive Spatial Imagination in the 20th-Century American Novel>,<언더독의 글쓰기>,<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 총 3종 (모두보기)
손희주 (지은이)
서강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주요 논저로는 “Casting Diaspora: Cultural Production and Korean Identity Construction”, “Cultural Identity, Diasporic Art, and Segyehwa: Yong Soon Min and Nathalie Lemoine” 등이 있다. 현재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작 :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RICH: Research Institute of Comparative History and Culture)는 '제국과 민족', '자본과 노동', '독재와 민주주의', '근대와 탈근대'등 한국 사회의 이론적 쟁점과 현실적 이슈들을 비교사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연구소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그 거울에 비추어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특수'로 자리매김하는 유럽중심주의적 비교사의 틀을 넘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서구의 역사를 '얽혀 ... 더보기
최근작 : <기억과 전쟁> … 총 6종 (모두보기)
====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라는 이 책의 제목은 식민지 지배의 경험이 식민자와 피식민자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또 어떻게 상호 영향을 주었는가를 모색한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제국이 식민지를 만들고 지배한 측면도 있지만, 제국 자체가 식민지 지배라는 제국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제국과 민족, 식민자와 피식민자는 상호적이다. 제국으로부터 식민지로의 문화적 전이, 제국과 식민지의 공모성, 피식민지인들에 의한 ‘공모의 전유’, 주변부 민족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인식론적 공모관계 등 제국과 식민지가 주고받는 상호 관계는 근대의 세계사적 전개라는 큰 맥락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기획 의도
‘반(反)기념’의 역사학을 위해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60주년을 ‘반(反)기념’하기 위해 2008년 8월 8일부터 8월 9일까지 국제학술회의 ‘Modern Korea at the Crossroads between Empire and Nation’을 개최하였다. 이 책은 국제학술회의의 성과물을 수정ㆍ보완한 것으로 임지현을 비롯해 박노자, 황병주 등 12명의 전문학자들이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서 근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한 것이다. ‘반기념’이라는 것은 ‘과거를 잊어버리자’, 혹은 ‘기념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국가 권력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데에만 치중했던 궁정역사학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해방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국가를 강화하려는 논리가 팽배했다. 식민지의 기억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면서 동시에 해방 이후 한반도에 탈식민적 권력의 자산으로 작동해왔다. 임지현은 이런 식민주의의 희생자 의식에는 제국에 대한 동경이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제국의 힘에 대한 동경과 힘이 없어 제국이 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회환이 희생자 의식의 밑바닥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제국을 욕망하는 식민지인들의 시선에 대한 일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새로이 고찰 시도
한국의 근대를 성찰할 때에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은 국가권력의 장으로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다. 이 책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에서는 한국의 근대 담론을 읽는 두 가지 키워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틀 안에서 그동안 제국주의의 피해자로만 인식해왔던 시각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에 내재된 제국주의의 속성을 밝히고 제국과 식민지가 주고받는 상호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다만 임지현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여전히 식민지에서 제국으로 전이된 문화적 작용이 누락된 채 제국에서 식민지로의 일방적 문화 전이가 주요 분석 대상이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지향하면서도 대체로 한반도에 집중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연구 프로젝트의 생산기지로 꼽히는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서 근대 한국을 바라보고 식민지의 과거와 탈식민의 현재에 대해 고찰하려고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학술서라 할 것이다.
주요 내용
문화적으로 전이된 제국을 향한 욕망
이 책은 12편의 개별 글들을 묶어 총 3부로 구성하고 있다. 1부 ‘제국을 욕망하는 역사적 상상’에서는 제국을 욕망하는 식민지인들의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정하게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정선태는《태극학보》를 중심으로 근대계몽기 국가와 국민이 상상되는 방식을 추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로의 문화적 전이뿐만 아니라 개발독재 시대의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지는 식민과 탈식민을 잇는 문화적 전이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박노자는 청일전쟁의 승리에 도취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가 고안한 ‘무사도’가 양계초의《음빙실문집》을 거쳐 안확의 고구려 ‘무사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영재는 징병재 선전영화〈조선해협〉에서 남성의 출정이 애인과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일로 묘사되고 있는 등 국가의 부름이 남녀 모두에게 국민에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정다함은 식민지기 제국에 대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보다는 ‘타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정작 자신들은 침략을 모르는 평화로운 민족’이라는 역사 서사와 결합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며 조선-여진 관계를 중심으로 이를 고찰한다.
식민과 탈식민의 연속성에 문제제기
2부 ‘반식민과 탈식민의 경계에서’는 식민과 탈식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담은 5편의 글을 묶었다. 홍양희는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라는 역사적 조건에서 현모양처 여성상이 전통적 여성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과 원인에 대해 분석한다. 와타나베 나오키는 문학평론가 임화의 이식문화론을 통해 한국 문학이 자율적으로 발전해왔다기보다 외국 문학의 모방과 의식의 제작 주체로서의 조선의 이중성을 분석한다. 오웬 밀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조차도 민족주의와 서구 중심주의의 인식론적 공모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적 관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황병주는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의 근대화 담론에 내재된 선진성에 대한 열망과 후진국 콤플렉스에 대해 고찰한다. 이나영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의 기지촌 여성의 호명 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젠더를 매개로 한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암묵적 동조관계가 해방 이후 기지촌 여성을 재구성하는 데 작동했는가에 대해 추적한다.
탈식민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제시
3부 ‘트랜스내셔널 코리아’는 미국과 한국의 비교를 통해 탈식민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고 있다. 이진경은 미국과 한국이 모두 인종주의적 위계질서에 따라 차등화되고 불평등한 노동력 수급 정책을 유지하면서 그 불평등의 구조를 문화적 영역에 한정해서 해결하려는 ‘인종차별적 국가의 다문화주의’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윤성호는 한국 민족문학, 특히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을 미국의 트랜스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손희주는 점차 인종이 다양화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학계 담론이나 언론 등에서는 민족국가의 단일성과 민족문화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한국이 세계화를 지향하는 초국가적인 맥락 속에서 동포라는 개념이 민족국가라는 이데올로기하에서 국가적 개발과 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접기
===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