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4

알라딘: 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김경재 2001

알라딘: 김재준 평전

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김경재 (지은이)삼인2001-09-01
 
양장본240쪽 
책소개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1901~1987)의 평전. 신학자이자 목회자, 교육가, 문필가였고, 1970, 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의 첨병에서 현실참여적 진보적 기독교를 이끌었던 그에 대한 최초의 평전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01년 선보였다.

김재준 목사는 현재까지도 한국 개신교의 진보적 흐름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현 한신대학교의 전신인 조선신학교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장,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며 사회운동가로도 일했다.

한신대 김경재 교수가 쓴 평전은 연대기적으로 김재준 목사의 일생을 따라간다. 저자는 특히 김목사의 신학의 핵심을 '성육신(成肉身) 신앙'과 '대승적 기독교 신앙'으로 정의내린다.

'대승적 신앙'이라 함은 이전의 소승적인 전통 기독교에 대항하여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성육신 신앙'이란 실천신앙, 생활신앙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 문자무오설과 경직된 교리신앙을 비판했으며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분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목차
머리말

경흥 산골 마을에서 자란 늦깎이 청년
자연 환경, 가족 혈통, 시대 상황
유가 가풍, 서당 교육, 선비 기질
3.1 만세 사건 이후, 탈향

성 프랜시스와 예수의 심장에 귀기울이고
기독교로의 개종과 서울 고학 3년
성 프랜시스의 청빈과 예수의 심장에 접하고
아오야마, 프린스턴, 웨스턴 신학부 유학

섭리 손에 붙잡힌 상수리나무 그루터기 하나
1930년대 조선 사회와 조선 기독교의 상황
숭인상업과 은진중학 교사 시절
조선신학교 설립 과정에 부름 받고

조선 교회의 주체성 자각과 선교사 시대의 종언
조선신학교의 건교 정신과 하늘의 소명
해방 공간, 그 혼돈과 어둠으로부터 질서와 빛을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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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경흥 산골 마을에서 자란 늦깎이 청년
자연 환경, 가족 혈통, 시대 상황
유가 가풍, 서당 교육, 선비 기질
3.1 만세 사건 이후, 탈향

성 프랜시스와 예수의 심장에 귀기울이고
기독교로의 개종과 서울 고학 3년
성 프랜시스의 청빈과 예수의 심장에 접하고
아오야마, 프린스턴, 웨스턴 신학부 유학

섭리 손에 붙잡힌 상수리나무 그루터기 하나
1930년대 조선 사회와 조선 기독교의 상황
숭인상업과 은진중학 교사 시절
조선신학교 설립 과정에 부름 받고

조선 교회의 주체성 자각과 선교사 시대의 종언
조선신학교의 건교 정신과 하늘의 소명
해방 공간, 그 혼돈과 어둠으로부터 질서와 빛을
경동교회, 선린형제단, "기독교의 건국 이념"

복음의 자유혼과 프로테스탄트 개혁 정신
6.25 전쟁과 한국 장로교의 분열
한국신학대학과 기독교장로회
복음의 자유혼은 우상 숭배를 거절한다

성육신 신앙은 역사의 소금과 누룩
4.19와 5.16의 충격 속에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
성육신 신앙은 현실 변혁을 지향한다

북미주 대자연 속에서 풍류객의 진리 증언
'제3일'과 말씀의 인간화
교회는 하늘 기관, 그러나 교회주의를 경계하라
목사는 시인의 마음을 지녀야
통일 한국을 위한 화해와 평화 신학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며 고토를 걷다
인간의 신비와 하나님의 형상
성속의 변증법과 기이한 꿈 이야기들
동양 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의 문제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와 대승 기독교론

에필로그: 김재준 목사의 초상화들

장공 김재준 목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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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지은이) 

한신대를 졸업한 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고려대 대학원에서 현대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미국 듀북 대학 신학원과 클레아몬트 대학원 종교학과를 거쳐,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에서 문화신학·종교 신학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한국문화신학회 회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삭개오작은교회 원로목사, 한신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폴 틸리히 신학 연구』, 『해석학과 종교신학』, 『이름 없는 하느님』, 『김재준 평전』,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등이 있다.

최근작 : <틸리히 신학 되새김>,<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생> … 총 28종 (모두보기)

평점분포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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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도인의 사명은 무엇인가-장공 김재준의 삶을 읽으며 새창으로 보기
장공, 김재준.

 

구구만리 비어 있는 드넓은 하늘. 그것이 김재준이 지닌 호이다. 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이런 '장공(長空).

 

노자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비움은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음이고,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음은 바로 이 비어있음 때문인데... 얼마나 비어있느냐에 따라 그릇의 크기가 달라지니.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그 비어있음의 크기로 늦게 이루어지나니... 늦게 이루어진다고 무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

 

김재준. 그는 늦되어 기독교에 입문했다. 정식 학교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 그가 동향 사람인 송창근의 권유로 서울에 유학을 하고, 그 때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다. 나이 20이 넘어서야.

 

그때부터 일본 유학, 그리고 미국 유학을 거쳐 신학 공부를 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기독교에 종사한다.

 

처음부터 목회 활동을 하지는 않고, 또 그는 평양 중심의 보수주의 정통기독교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목회 활동을 한다.

 

이 때 만난 제자 중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강원룡 목사이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강원룡 목사는 김재준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

 

교사 생활을 접고 그가 한 일은 신학교를 세우는 일. 그 신학교가 지금의 한국신학대학교(일명 한신대)이니... 그는 우리나라 진보 기독교의 대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혹한 시기에 한신대는 우리나라의 등불이 되는 인재들을 많이 길러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특정 교파에 치우치지 않고 진정한 종교인의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대학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의 업적은 한신대 설립과 유지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는 보수주의 정통기독교(이 말이 좀 우습다. 모든 종교는 다 정통 아닌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 그들에게 파문도 당하고 했지만,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옳은 길 앞에서 탄압과 시련은 그 길이 더욱 옳음을 알려주는 징표이기도 하리라. 하여 그는 편협되지 않은 기독교를 전파하기에 힘썼고, 이런 결과로 사회 문제에도 깊게 관여하게 되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종교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이 결코 낮지 않음을, 하늘의 삶이 그들에게 내려왔음을 알려주고, 그들의 삶이 하늘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김재준은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 독재로 치닫는 정권의 모습. 이런 사회의 모습을 고치기 위해 그는 앞으로 나섰다.

 

종교인이라고 뒤로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내면세계에 갇히지 않고, 또 신의 품 속으로만 들어가 다른 문제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모습을 지니지 않고,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서게 된다.

 

암흑같은 시절에 김재준은 한 줄기 빛처럼 우리나라에 존재했고, 그런 존재가 우리 사회가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기독교에 매몰되어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밀어내지 않고, 다른 종교도 포용하는 너른 품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욱 빛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장공(長空)이다. 큰 비움. 그 비움으로 모든 것을 채워넣을 수 있는 사람.

 

이런 김재준의 삶을 출생부터 죽음까지 평전으로 엮어냈다. 이 평전 하나로 김재준의 삶이나 사상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종교인이 있었다는 사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함석헌만큼 김재준도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니, 그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요즘 파격적인 행보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그냥 교황이니까 그러려니 하지 말고 그런 교황의 모습이 파격이 아니라 당연히 지니고 해야할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미 교황의 그런 모습은 우리나라에 김재준을 통하여 발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전의 작가는 김재준의 기독교를 '대승적 기독교'라고 한다.

 

지금 시대. 다시 이러한 '대승적 기독교'를 실천하는 기독교인을, 아니 그러한 종교인들을 필요로 한다. 

 

덧글

 

소소한 오타. 그러나 잘못하면 착각해서 날짜를 놓칠 수 있는 것들

 

116쪽. 1960년 4월 20일 이승만은 대통력직 사임을 발표했다. -> 문맥에서 찾아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책은 날짜 하나하나에도 조심해야 한다. 20일은 26일의 오타.

  130여 명의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 4.19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은 사망자가 186명이라고 한다.(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60년대 1권) 또 이 때 희생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이라고 보면 130여 명이라고 하기보다는 180여 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150쪽. 그리고 1973년 3월 12일 김재준은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른다. ->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1973년은 1974년의 오타다.

 

188쪽. '소화'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고, '히틀러'는 훨씬 아래다. 라고 김재준의 글이 인용되어 있는데, 소화는 일본 천황이었던 히로히토. 그는 1901년생이 맞으니 동갑이고, 히틀러에 대한 얘기인데... 히틀러는 1889년에 태어나 1945년에 죽었으니, 김재준보다는 한참 선배다. 그러니 이 인용문은 나는 '소화'가 동갑이고 '히틀러'보다 한참 아래다. 로 바뀌어야 하는데... 김재준이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인용을 하면서 단어가 빠진 것인지... 김재준이 착각을 해서 그의 글에 이대로 썼다면 편집자나 평전 작가가 주를 통해서 바로잡아야 했을테고... 편집 과정에서 단어가 빠졌다면...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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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4-03-3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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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그리스도인, 김재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책이란 좋은 것이다. 김재준 하면 막연히 기독교 장로회의 설립자 정도 밖에는 몰랐던 나에게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생애와 신앙, 그리고 덤으로 한국 현대 기독교사의 큰 흐름까지 알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일일이 발품을 팔면서 알아보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서도 다 알 수 없는 것을, 단 하루 만에 책 한 권으로 다 읽어치우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이 책의 저자인 김경재 교수(한신대 교수)는 전교(傳敎) 초기 한국 기독교를 제1세대(1880-1900), 제2세대(1900-1920), 제3세대(1930년대)로 시대 구분한다. 1세대에서 2세대까지만 해도 한국 기독교는 복음적 신앙, 민족적 신앙, 토착적 신앙을 거지고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1920년대 후반기부터,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부터 한국 개신교 교회는 침체와 신앙의 경직화, 그리고 방향 감각 상실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생동감을 잃고 교권주의, 율법주의, 사이비 신비주의로 병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 교회의 위기 시대는 창조적 소수자의 활동기이기도 했다. 감리교 이용도의 교회 부흥 운동, 김교신, 함석헌 등의 무교회주의 운동, 그리고 최태용을 중심으로 한 주체적 민족 기독교 복음교회 운동 등이 일어난 것이다.

김교신, 함석헌 등과 동갑이었던 김재준(모두 1901년생)은 이 무렵에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김재준이 본격적으로 역할을 맡게 된 것은 1939-1940년의 조선신학교(지금의 한신대학교) 설립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부터였다.

1930년대 이후 장로교 내에서는 교권 문제와 신학 문제로 두 개의 흐름이 분열 대립하고 있었는데, 교권으로 말하면 서북 교권과 기호 교권의 대립이요, 신학 노선으로 말하면 근본주의적 보수 신학과 진보주의적 개혁파 신학의 대립이었다. 조선신학교는 후자, 즉 기호 교권 및 진보주의 신학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장로교의 교파 분열에 대한 구구한 사연을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다만 김재준이 설정한 신앙 노선이, 피선교국 한국의 교회나 신학 교육을, 보호받고 지도받아야 하는 평생 미성년자 취급하는 외국 선교사들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서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점은 일본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입장과도 다르지 않다. 우치무라는 철저한 자립정신이야말로 기독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외국 선교사들이 진정으로 일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원한다면 먼저 일본의 기독교가 재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경재 교수는 한국 보수주의 교회에서 교리로 세뇌당한 교인들이 불교 법당에 안치된 불상을 우상이라고 이해하면서 훼불 사건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진짜 우상은 바로 그런 극단적 신도가 신봉하는 잘못된 ‘교리주의적 기독교’일 따름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은 구약 시대처럼 이방 신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절하는 유치한 가시적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좌지우지하면서 끌고 다니고 조종하는 돈, 권력, 종교, 국가, 세계관, 경전, 근본주의적 교리, 섹스, 대중문화 등이야말로 현대인의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재준이 일생 추구한 목표는, ‘복음의 자유’를 다시 회복해 교권주의나 율법주의나 국가지상주의 등에 노예가 되어 있거나 어떤 이념이나 조직 체계에 종속되어버린 인간을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의 자유인’으로 복권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김재준의 신앙적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기독교가 이웃 종교들에 대해 갖는 태도를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배타주의적 입장은 글자 그대로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취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만이 참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대화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그들을 심판하고 개종시키는 길만이 옳다고 확신하므로 종교간 충돌의 불씨를 항상 안고 있다.

둘째 포용주의적 입장은 기독교를 가장 우월한 영적 종교라고 확신하면서도, 다른 종교들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각자 자기 몫을 견지해 왔다고 판단하여 다른 종교의 전통을 존중한다. 물론 이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난 ‘생명의 복음’이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지닌 온전한 종교라고 고백한다.

셋째 다원주의적 태도는 세계의 다양한 고등 종교들은 인류가 처한 자연적, 역사적 전통 속에서 ‘진리 그 자체’가 다양하게 나타난 결과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우열을 판단하기보다는 각각의 종교의 위대성을 인정하고 서로 배우며 협동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이 세 가지 중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김재준이 이 세 가지 입장 중에서 포용주의적 입장에 선 분이었다고 평가한다. 김재준의 포용주의적 입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재준은 “우리 한국인은 유교, 불교 등 기독교 아닌 타종교를 받아들인 이후만 하더라도 약 1,500년의 긴 역사를 이룩해왔다”고 지적하고, 우리나라에 온 초대 선교사들이 너무 고자세였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하나의 공백(空白)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한국 문화에 무엇인가 있었다 해도 그것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악의의 소산이라 하여 일망타진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불당의 불상이나 유교의 제사를 단순한 우상숭배로 치부하여 그 박멸을 기도했고, 그것은 결국 커다란 ‘거침돌’이 되어 한국인의 복음 이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김재준은 하나님만이 절대자이시고 그 외의 어떤 것일지라도 절대화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전(성경), 신조, 교리, 교직 등은 결코 그 자체로서 절대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이시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 그 자체도 절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재준의 입장은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한 다음 말과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진리’보다 ‘기독교’를 더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기독교’보다는 자신의 ‘교파’나 ‘교회’를 더 사랑하는데 이르게 되고, 마침내 모든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끝맺게 된다.”

김재준은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책을 읽었으며, 심지어 식사 중에도 책을 읽었다고 전한다. 졸업식장에서도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할 정도였다.

“여러분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책을 읽으십시오. 교역자가 가난해서 책 살 돈이 없으면 며칠 굶어서라도 책을 사서 읽어야 합니다.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을 몸에 지니고 다니십시오.”

김재준은 말년에 그리스도가 그와 평생 동행했노라고 고백했다. 수호천사가 그를 옹위하면서 때론 꿈으로, 때론 지혜로 그를 돕고 인도했다고 김재준 본인은 물론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자 및 신도들도 믿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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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2005-11-1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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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김재준 목사님은 경동교회를 설립하시고 한신대학교 이전의 조선신학교 설립부터 까지 많은 예언자적 활동을 하신 우리시대에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수 없는 정의의 참 예언자 였다. 나는 김재준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새 역사 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국 기독교장로회’ 라는교단은 총회에서 학교를 만든 타교단과는 달리 학교로부터 교단이 나왔다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준 목사님은 10살이되기전에 4서를 통독할만큼 동양사상에 능통했다. 내가 이러한 점에 집중하는것은 다석 유영모 ,신천 함석헌 선생님과 같이 이분들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받아들이되, 동양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인 으로서 주체적이며 생명적인 복음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선비기질은 30~50년대 신학논쟁과 교권주의자들과 투쟁 , 또는 선교사들의 우월감과 회유에 타협이나 굴복이아닌 소신있는 전진의 밑 바탕이 되었다고 할수있다.

 

신학이 일정한 틀에 갖혀 자유로운 학문과 신앙이 없었던 6.25 후 전쟁이 끝난 시대에 캐나다 선교부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겟느냐 했을때 그는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 양성을’ 도와 장학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독노회 안에서는 교권투쟁과 교리 논쟁 싸움 만이 있었을뿐이었다. 이때에 부산에서 한국신학대생의 교역자 임명거부와 , 김재준목사파문, 한국신학대 총회직영신학교 인허취소 를 받게된다. 민족의 분단가운데서 사랑과 창조적 사상진리로 민족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낙담한 젊은이들에게 내일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함에도 근시안적 교권싸움으로 세월을 허송한것이다. 이때에 장로교 산하 진보파 교회 지도자들은 마침내 원상 복구나 화해가 불가능함을 알고, 1955년 제38회 호헌 총회를 열교 진보적 ‘한국 기독교 장로회’ 를 만들었다. 이사건은 장로교에서 나온 청년들과 여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각성과 이들중심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루터와 캘빈이 성서만의 원리를 종교 개혁의 모토 중 하나로 내세웠을때부터, ‘성서 해석의 차이아 다양성’이라는것을 피할수 없었던 만큼 이미 교파 분열사는 예고된 일이기도했다. 하지만 성서의 문자가 우리의 신도 아니요 교리가 우리의 신이 아니다. 김재준 목사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기독교 교리에 충성하는 또 하나의 종교 교리적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 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장로교의 분열은 분명히 불행한 일이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분열의 과정을 통하여 창조적 소수를 불러 일으키시고 그 안에서 새역사를 쓰시기를 원하셨다. 김재준은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적 본질을 자유로 생각했다. 우리도 마땅히 앞으로 더욱더 이자유를 찾기위해 애써야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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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 2006-12-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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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크리스쳔, 민주주의자, 그리고 시대의 예언자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와 대승 기독교론  

   지성인과 지도자들이 '예'할 때와 '아니오'할 때를 놓치지 않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결단력, 모험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P.127)

   소승적 기독교는 구원이란 개인 영혼의 구원이라고 보는 데 반하여, 대승적 기독교는 몸으로서의 전인적 개인이요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소승적 기독교는 구원을 '역사로부터의 구원'개념으로 이해하지만, 대승적 기독교는 '역사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소승적 기독교는 종말에 현존한는 우주 대자연이 파국으로 끝날 것이라고 믿지만, 대승적 기독교는 영광스럽게 변화할 것으로 믿는다. 소승적 기독교는 타종교와 한국 전통 문화가 하나님과 관련 없이 이교적인 것이라고 배타하지만, 대승적 기독교는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경륜과 손 안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포용한다. (P.204)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여 구만 리 창공을 날아오른 자유인이 되고, 하늘 씨앗을 땅 속에 심은 성육신적 영성으로 영글어져,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지 200년 만에 대승적 기독교 시대를 연 선구자라고. (P.229)  

   종교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은 종교를 너무 쉽게 갖게 되는 사회가 된 것같다. 하지만, 종교인은 많으나, 종교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한는 종교인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개인의 삶이 영역을 넘어서는 지역과 국가와 세계, 그리고 우주적 문제에 대해서 결단을 회피하는 모습은 엿볼 수 있다.  

   내가 이분을 존경하는 이유는 2가지이다. 내가 본받고 싶은 점도 당연히 2가지이다. 그 하나는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함으로써 기독교가 포괄하고 대화할 수 있는 지평을 넓혀 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신자로써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귀중한 모범이 되었다는 점이다. 감히 말히 한 민족의 대제사장다운 면모를 보여준 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장교인 뿐만 아니라, 민족, 역사,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을 원하는 기독교라면 꼭 한번 읽어 바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선지자로서 그 분이 역사속에서 밝힌 횃불은 내 마음 속에 촛불만큼 연약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에 불을 지피는 나에게 큰 격려와 용기가 되었다. 아무리 종교가 세속화되고, 세상이 각박해져도 한 시대에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희망스럽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나 자문해 보게 된다.  

   '크리스천'은 김재준의 '영'이고, '한국 민족'은 그의 '혼'이며, '민주인'은 그의 '사회적 몸'이라는 자의식이었다.(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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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etheus 2009-03-30 공감(1) 댓글(0)

장공 김재준을 만나다.

경동교회 그리고 장공

난 경동교회에 다닌다. 경동교회에 다니게 된 이유는 몇 차례 밝힌 적이 있었지만(http://blog.aladin.co.kr/hendrix/1801079) 사회에서 유리되지 않은, 그리고 복음주의에서 가장 멀게 떨어져 있는 그런 교회를 찾고 싶어서였다. 난 하나님(하느님)에 관심이 있었지, 성서의 말과 혼합된 보수적 인식을 강요하는 그런 신앙을 갖고 싶지 않았고, 경동교회는 그나마 나에게 해답을 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강원용 목사님의 설교가 나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곤 했다.

점차 교회 안의 모임들에 참여하게 되면서, 교회 안에 '장공 채플관'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난 '장공'이라는 말이, 무슨 장로회의 공동체 공간 뭐 이쯤 되는 말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 알게 된 사실로는 '장공 김재준'에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김재준 목사가 경동교회를 창립한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또 지나고 나서, 교회 도서실에서 <김재준 평전>을 발견하게 되었고, 2부 예배에 지각하여 들어가기 애매한, 좀 시간이 뜨는 그 때에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엔 힘에 부쳤고, 그냥 다시 서가에 꽂아두고 나중을 기약했다.

최근 신학에, 내 신앙에, 또 성서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이현주 목사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민중신학에, 다른 접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경동교회, 내가 다니는 교회가 갖고 있는 신학적 뿌리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되었고, 다시금 <김재준 평전>을 집게 되었다.

이 책을 쓴 김경재 목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김재준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장공 김재준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거나, 다소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다소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김재준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면서 일생을 살았는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집필했다.(p.4)  
 
 

장공 김재준 그의 삶과 신학

유교적 가풍에서 자라나 한학을 공부하고, 민족의 독립이라는 것에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한 김재준에게 하나님이 영접한다.

 
 
 청년 김재준이 겪은 거듭남의 체험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도 아니었고, 단순히 전통 권위에 대한 수용도 아니었다. 단순한 종교적 감정의 과잉 흥분도 아니었으며, 도덕적 양심의 지상 명령에 대한 윤리적 숙명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 이상의 사건이었다. 진리의 영이시요 사랑의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성령으로 청년 김재준의 마음을 직접 방문해 주신 사건이었다.(pp.27-28)

 
 

평생 벗이었던 송창근과의 만남과 김익두 목사 설교의 감화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p.26).

나같은 모태 신앙을 갖고 있는 이에게 기독교는 일상이었지만, 식민지 하에서 신음하며 하루 하루가 고되었던 청년에게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특별한 것이었으리라.

20대에 교회에 빠지게 되는 대다수의 젊은이가 그렇듯, 그에게도 '감상적이요, 낭만적이며 타계적 신앙의 흔적마저도'(p.31) 보였겠지만, 김재준은 이를 실존적 문제로 받아들였고, 그러한 고민을 김재준은 흔히 보이는 뜨거운 '성령의 감화감동 충만'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학문 탐구를 통해서 해결하기로 결심했고 유학을 가게 된다.

그의 공부과정이 특이한 것은, 그가 처음 접했던 신학이 마침 유럽에서 불어오던 '신(新)신학'의 조류였다는 것일 테고, 그 다음에 접한 신학이 극단적인 보수신학이었던 프린스턴 신학원의 그것이었고, 마지막으로 접한 것이 그 것의 중간지점의 신학이었다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여서, 정치적으로는 군국주의 식민통치가 강행되기는 했지만 동시에 일본 지성인 사회에 자유주의 사상 기풍이 팽배하기도 하던 때였다. 아오야마학원 신학부 교수들 중에는 미국 유니온 신학교나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학문적으로는 자유로운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p.33)

청년 김재준은 아오야마학원의 학문적 자유 풍토를 감사히 여겼다. 인간의 창조적인 작업은 자유로운 정신 풍토에서만 창출되는 것이요, 그러므로 모든 학원, 특히 대학의 학풍은 '자유'여야 한다는 것을 그의 평생 신조로 간직하게 되었던 것이다.(p.33)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는 요즘의 신학 학풍과는 전혀 다른 보수 신학의 총 본산으로, 전투적 근본주의신학의 총사 그레샴 매첸 박사가 가르치고 있었다.(p.39)

 
 
이런 양자의 극단적 학풍의 신학을 통해서 장공 김재준이 갖게 된 입장이라는 것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것은 크게 한국기독교의 상황에서 실천으로 펼쳐지게 된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왔을 때, 한국 기독교는 현재도 갖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은 교권주의, 율법주의, 사이비 신비주의라 칭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1)관료화된 교회사회는 평안함을 교회에서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고, 2)율법주의는 도덕적 도그마들로 민중의 일상에 더 강한 억압을 가하고 있었고, 그 근본에 '문자적 무오영감설'(성서의 문자하나 하나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영감 그대로를 표현한다는 것)가 있었다. 그것은 지성과의 절단을 유발했다. 3)사이비 신비주의는 복음의 예언자적 사명과 정의와 사랑을 핵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잃어버리고, 자아 망실의 황홀감과 신접 현상을 능사로 하여 몰역사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종교로 기독교를 변질시켜 버린거다.(p.48)

지금의 교회가 "성령부흥회"를 통해서 계속 뜨겁게 교인들을 불러내고, 또 한편으로 성경의 권위와 목사의 권위가 뒤범벅이 되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교회 안에서의 계파 싸움과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씨앗이 이미 1930년대 장공이 다녀올 때부터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맞서서 여러가지 대안들 또한 탄생했다. 감리교의 이용도의 '교회부흥운동', 김교신과 함석헌의 '성서조선' 발행, 최태용의 '주체적 민족 기독교복음교회운동' 등의 종교자정운동이 시작되었다.(p.49)

이러한 상황에서 성서를 보던 시각도, 기존의 미국 선교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근본주의적 교리적 이해' 뿐만 아니라, 김재준을 필두로 하는 '진보주의적 역사 이해', 정경옥의 '자유주의적 실존적 이해' 또한 가능해 지기 시작했다(p.49).

지금을 돌아보건데, 오히려 이 때가 더 탄력적인 기독교의 이해가 발달했다고 느껴질 정도다. 근본주의가 더 판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과거로의 퇴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김재준의 이러한 이해는 한신대학의 모태인 조선신학교를 통해서 발흥하기 시작하였고, 기독교 장로회도 탄생되었고, 여러가지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진보적 신학이 펼쳐질 수 있는 배경으로 힘을 제공하였다. 또 '실천적 신앙' 즉 야고보적 전통의 경동교회의 초석도 김재준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또한 김재준은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써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김재준의 삶을 만들어 낸 것은 앞서 언급한 그의 신학적 이해에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건 김경재의 말을 빌면 크게 '성육신신앙'과 '대승적 기독교론'이라고 구분할 수 있겠다.

우선 성육신신앙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적 분별력, 진선미를 증대시키고 추구하려는 선한 의지, 사랑과 정의와 자유가 숨쉬는 대동적 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선한 성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품성 속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은 단순한 동물적 충동만이 아니라 자유 의지를 남용하여 타인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면서 쾌감을 느끼려는 오만과 죄성이 동시에 공존한다(pp.140~141).

그러나 집단과 집단관계, 예를 들면 노사관계, 정당 관계, 사회계층 관계, 국가 관계, 이익단체들간의 관계는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도덕적, 종교적 설교로 그 갈등이나 대립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p.141)

 
 
그리고 이러한 집단 이기심은 민주주의적 정치제도를 통해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라인홀트 니버의 영향을 크게 받은 생각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지고 "크리스찬은 한국 역사를 그리스도 역사로 변질시켜 진정한 자유와 정의와 화평으로 성격화한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육체가 아니라 성육신으로 부활한 예수가 말했던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선포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것은 세속 역사를 하나님 나라 역사로 변질시키는 운동"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세속'에서 '하나님 나라'에의 전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p.143)

둘째, 대승적 기독교라 할 수 있다.

 
 
 대승적 기독교는 몸으로서의 전인적 구원이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소승적 기독교는 구원을 '역사로부터의 구원'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대승적 기독교는 '역사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추구한다.(p.204)

 
 
이는 기본적으로 타 종교에 대한 포용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인데, 적대적 바탕에서 '전인적' 구원은 가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포용'의 인식은 '역사'에 대한 이해 그 섭리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에큐메니컬 교회의 지평이 그런 축에 있으리라.

마치 이는 '똘레랑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입장은 강고히 지키되, 인정해야 할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것. 다만 참을 수 없는 것은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적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참여도 이러한 토대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니버의 생각과 같은 사회윤리적 견해가 더해졌을 때, 그에게 독재체제와 '반민주적' 해악은 도전해야 할 실천적 문제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난해한 숙제같은 지점들이 좀 있는데, 예를 들면 장공은 적극적으로 '억압받는 자' 혹은 '눌린자' 민중의 이야기를 뽑아내지 않고, 윤리적 차원의 문제에서 접근을 멈추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민중신학에 있어서 안병무의 작업들이 한발 더 나아간 전개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더 살펴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기실 이러한 김재준의 생각을 정리는 해봤으되, 사실 정확히 이해했다 말할 수 없고,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것들을 생활에서 어떻게 펼쳐낼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장담할 수는 없다. 아직 나에게는 더 많은 성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 생활에서 최소한의 실천을 지금보다는 많이 만들어 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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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drix 200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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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김재준 목사의 신학사상과 그의 기독교영성
북뉴스 | 2016.10.03

장공 김재준 목사의 신학사상과 그의 기독교영성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김경재/삼인

한신대 명예교수인 김경재 목사가 장공 김재준 목사의 저서에서 말과 글을 가려 뽑고 그 뜻을 지금 이 시대의 신앙인들과 다시 되새기며 장공 사상의 진면목을 함께 공부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쓴 책이다. 장공 김재준은 1952년, 당시 기존 보수 기독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혀 교단에서 파면된 바 있다. 축자영감설을 부정하는 등 근본주의 신학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장공을 저자는 조선시대의 실학자에 비유한다. 이를테면 장공은 기독교 실학자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 위기의 본질은 '생활과 신앙의 분리'에 있으며, 그 분리의 원인은 기독교신앙을 오해하고 있어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공의 신앙과 사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카메라의 줌렌즈처럼 피사체를 확대 축소하듯이 초점을 맞춰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재준 목사의 글과 말, 거기에 해설을 더해 전 22강에 걸쳐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되짚는다. 장공 김재준 목사의 신학사상과 그의 기독교영성에 대한 입문서라할 수 있다.


 

저자 김경재

 

전남 광주에서 출생했다. 광주서중, 광주고를 졸업하고, 1959년 한국신학대학 김재준 목사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한신대 졸업 후 연세대 신학대학원과 고려대 대학원에서 현대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미국 듀북 대학교 신학원과 클레아몬트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연구했다.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와 동아시아 종교의 만남」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직, (사)함석헌 기념사업회 부설기관 '씨알사상 연구소' 소장직, 그리고 비상근으로서 (재)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서 30여 년간 봉직하고 정년은퇴 했으며(2005), 현재 명예교수로서 삭개오 작은교회 원로목사, (사)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직책을 맡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폴 틸리히 신학연구』, 『문화신학 담론』, 『해석학과 종교신학』, 『이름 없는 하느님』,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함석헌 종교시 탐구』 등이 있다. 아호는 숨밭이며, 숨밭아카이브(www.soombat.org)에서 다양한 논저들을 접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제1강 생활신앙

제2강 기독교의 특징

제3강 성경의 목적영감론

제4강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

제5강 신앙, 그 청년성과 모험정신

제6강. ‘하나님 형상론’ : 인간 존엄성과 자유와 사랑

제7강 성령: 하나님의 영, 하늘 어머니의 사랑

제8강 중생: 품성도야가 아닌 인간혁명

제9강 예수를 믿는다는 뜻

제10강 십자가의 대속성과 혁명성

제11강 교회론(1) : 땅위의 하늘기관

제12강 교회론(2) : 인간혁명의 도장

제13강 교회론(3) : 세상변혁의 전진기지

제14강 교회론(4) : 교회당과 교회, 콩깍지와 콩알

제15강 하나님의 나라(신국)와 하늘나라(천국)

제16강 하나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의 상호변증법

제17강 하나님의 나라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제18강 교회, 국가, 그리고 정치

제19강 장공의 기이한 꿈 이야기: 물질주의적 뇌환원주의를 넘어

제20강 복음과 역사적 종교들

제21강 장공의 좌우명 : 성실성과 단순성과 비움의 미학

제22강 새벽날개 타고 : 이곳과 그곳

장공 김재준 목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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