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별세···韓 군사독재·日 헌법개정 비판한 지식인
입력 : 2023.03.13 김종목 기자
일본 우익의 표적 되고도 소신 발언·실천 계속
“아직 한국인들에게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
일 두번째로 노벨 문학상 수상 등 빛나는 업적

오에 겐자부로.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일본 전후 세대 대표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지난 3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일본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온 그는 일본 원전, 헌법 개정, 과거사 문제를 비판해온 진보 문인이다. 일본의 전쟁 중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촉구했고, 한국 전두환 군부의 쿠데타 비판에도 나섰다. 그는 일본 우익의 주요 표적이 되고도 소신 발언과 실천을 이어나갔다.
일본 출판사 고단샤가 별세 소식을 13일 발표했다. 고단샤는 발행인 명의로 이날 성명을 내고 “3월3일 이른 시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이미 가족들이 치렀다”고 발표했다고 프랑스 매체 웨스트프랑스와 일본 교도통신 등이 전했다. 발행인은 추후 추도식을 열 것이라고 했다.
오에는 1935년 1월31일 시코쿠 에히메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불문과에 진학해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서구 스타일의 글을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1957년 <죽은 자의 사치>로 처음 주목을 받았다. “국민학교 5학년 때 패전을 맞이한 오에가 전후의 현실을 폐쇄된 시대, 감금된 상황으로 수용한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23세 때인 1958년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당시 두번째 최연소 수상자였다.
1960년 결혼해 3년 뒤인 1963년 장애인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기른 경험을 토대로 1964년에 낸 장편이 <개인적인 체험>이다. 장애인의 출생을 주제로 인권을 유린당한 전후 세대의 문제를 파헤친 이 작품은 신초샤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아들 히카리를 하루하루 돌보며 살아갔다. 스페인 언론인 사비 아옌과 인터뷰하면서 “작가로서 나는, 내 아들의 삶을 통해 보는 세상을 묘사했다. 나한테는 내 아들 히카리가 현실을 여과하는 렌즈였던 셈”이라고 했다. 사비 아옌은 아들과의 관계를 반영한 오에의 책엔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서로를 위하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겼다”고 했다. 히카리는 지금 일본의 유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엔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수상) 이후 26년 만에 일본인으로서는 두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침묵의 외침> 등을 두고 “시적인 힘으로 생과 신화를 응축시켜 오늘날 인간이 처한 조화롭지 못한 모습을 그가 창조해낸 상상의 세계 속에서 밀도 있게 그렸다”고 평했다.
오에는 그해 10월 일왕이 수여하는 일본문화훈장을 거부하기도 했다. 거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해 7월 도쿄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전전의 천황제, 지배구조, 지역과 가족의 종적 인간관계라는 수직의 올가미는 현재도 살아 있다”고 비판한 데서 거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 침략 문제와 헌법 개정에 비판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는 1994년 12월 진행된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일본 헌법의) ‘영구평화’ 포기는 아시아인과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보다 더 높은 권위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듬해인 1995년 한국을 찾았을 때도 “일본에서 헌법 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절대 반대’한다. 일본은 인류 전체가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명백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20년 뒤인 2015년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 참석해서도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치 않을 만큼 막대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는데도 아직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군부 독재도 비판했다. 오에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는 와다 하루키 등 15명과 함께 군부 쿠데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1975년엔 김지하 시인 탄압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 문제를 두고는 실천적 지식인의 행보를 걸었다. 2011년 사카모토 류이치 등 일본 문화계 저명인사들과 함께 원전 철폐를 요구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였다. 앞서 2004년 반전 시민단체인 ‘헌법 9조 협회’를 만들어 일본 정부에 전쟁을 포기하는 내용의 평화헌법 조항 유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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