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4

일제강정기잡지에내재된식민지조선인식

 * 일제강정기잡지에내재된식민지조선인식

‒ 모던일본조선 (モダン日本 朝鮮版) 과 재조일본인의조선인식을 중심으로‒

1)

조경식**

happyset80@gmail.com

<目次>

1. 들어가며    3.1 재조일본인과 내 일체(内鮮一体) 인식

2. 모던일본 조 판 의 출간배경    3.2 조 체험과 기생 찬

3. 모던일본 조 판 에 내재 조 인식 4. 마치며

主題語: 모던일본조선 (Modern Japanese Joseon Version), 재조일본인(The Japanese residents in Joseon), 조선(Tourist Joseon), 내선일체(Naeseon Ilche), 모리타요시오(Morita Yoshio)

1. 들어가며

1876년강화도조약을계기로개항된세도시, 부산・원산・인천을통해조선으로도항하여 정착한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들은일본의패 무렵에는그숫자가 70만명에이를정도로 증가하게된다. 식민지의리직종을제외하고, 부분의경우는사업으로크게한건올리고 자하는소 , 히토하타구미(一旗組)라고불리던자들로서조선에서의일확천 을꿈꾸며 도항한이들이었다. 기재조일본인들의단기 체류의성격상이들의문화생활을뒷받침 할만한컨텐츠의개발은미비하 으나, 경성에통감부(統監府)가설치되어일제의식민지화 가본격화되기시작한 1905년이후부터는상황이변하게된다. 즉식민지배의첨병이될 언론계, 의료계, 종교계, 교원, 공무원등의문직인텔리계층에의해조선지역은일상 인 생활공간화를염두에둔장기체류의장소로서변모하게되고, 잡지, 신문등의출 물은 붐을이루게된다. 재조일본인들은이와같은잡지나신문을통해조선의정보를공유하고, 멀리떨어져있는본국의문화를간 체험하며자신들의정체성을지속시켜나가고자의도하

 

* 본논문은앙 학교에서발표한석사논문의내용 일부를수정・첨삭하여작성하 다. ** 고려 학교일어문학과박사과정

을것이다. 본고에서다루고자하는일본잡지 모던일본조선 (モダン日本 朝鮮版) 은 1939년과 1940년에임시증간호로발행된잡지인데, 이 까지의잡지들과는다른성격을 지니고있다. 잡지가간행되기직 에일어난일 쟁(中日戰爭)의향으로일본의심 이국으로옮겨가고, 내지(内地) 일본인들이 ‘센코(朝鮮っ子)’ )라는차별 언어로 재조일본인들을구분짓는상황에서속에서모던일본조선 에는재조일본인들이선 하고자하는조선의모습이분명히드러나있는것이다. 잡지를구성하는내용의상당수가 재조일본인출신필자들의로이루어져있는것에서이와같은의도는일정부분확인되 는바이다.

총 700여페이지의분량으로구성된모던일본조선 은잡지곳곳에조선의풍경과조선 여인을등장시키는등의시각 측면과, 수필, 콩트, 좌담회, 견학기, 소설등다양한카테고리 로일본인독자들에게어필하여큰성공을거두게된다. 잡지를통해담아내고자의도한 것들이내지의일본인들에게큰반향을일으켰다고볼수있는데, 그내용을분석함으로써 재조일본인들이조선을어떻게바라보고있었고, 장차어떤장소로만들어가고자했는지 확인해볼수있을것이다. 기일본어잡지 )의문란연구가이미선행된바있지만, 일 쟁이후일제강 기말기의인쇄물에투 되는재조일본인들의욕망에한살펴볼수있는 텍스트로서의가치는충분하다고사료된다.  

일제강 기말기의재조일본인들이내지일본인들을향해표 하고자했던것이무엇이었 는지, 서기재는잡지조선(観光朝鮮) 의연구를통해밝힌바있다. 모던일본조선 과 비슷한시기에출 된잡지 조선(観光朝鮮) 을연구한서기재는 “기존의정보의 성과를뛰어넘는조선에 한새로운이미지를부여하려는사명을띠고있었다.” )라고밝히며 재조일본인의욕망에주목한바있다. 동시기에출 되어화제가된모던일본조선 역시 당 일본인의욕망이투 된텍스트로서어떻게조선을포장하며, 선 하고자했는지살펴보 겠다.

2. 모던일본조선 의출간배경

모던일본조선 의내용을분석하기에앞서, 먼 살펴볼부분은재조일본인의존재이 다. 특히조선에서태어나일본이패 한 1945년무렵까지 곳생활해왔던재조일본인 2세들은스스로를 ‘반일본인・반조선인’ )이라고표 하기도할만큼복잡한의식구조를형성 하게된다. 내지일본인들한재조일본인 2세를바라보며, “통의식이결여되고, 경박・나태 한생활을하는등문화 결함에가장잘노출된집단”으로인식하 고, 재조일본인 2세들은 “스스로를결여 존재로인식하거나, 한편으로외지(조선) 자체의고유한의미를확인하면서

‘센코(朝鮮っ子)’로서자신을정하는” 태도를나타내게된다. ) 그 지만재조일본인들의 이러한체념 내지정태도는어디까지나내선일체의주도 입장에근거한형태로서 잡지를통해나타나기도한다. 실제로재조일본인 2세출신의사상가모리타요시오(森田芳夫) 는 ‘일본민족순 론’, ‘본토 심론’ 등을국체론의주 (主敵)으로인식하고, 재조일본인이라 는정체성을심에둔내선일체론을이론화하며조선을종속된형태로치시키기도하

다. ) 와같이재조일본인들이스스로의목소리를내며강 기말기로치닫는일 쟁 직후, 1939년에모던일본조선 이간행된다. 이잡지는조선의문학과잡다한이야기거리 가함께실리는 ‘종합문화잡지’로서의면모를보이는데, 시사 이고정치 인성격의논설과 수필도다수실려있었다. 잡지에서특히 에띄는것은 <사진1>과같은조선여인을곳곳에 서소재로서사용하고있는부분이다.

 

<사진1>

비슷한시기에간행된잡지조선(観光朝鮮) 에서이와유사하게자주노출되는조선 여인의이미지에해서기재는 ‘설명되는상이아닌보이는상 소유하는상’ )으로 분석한바있다. 잡지의주독자층이본국의일본인 재조일본인등의식민지배자 고, 일 쟁이후고조되어가던군국주의 분 기속에서내선일체를추진하던정치 입장이 잡지의이미지를통해서도나타나고있다고보아도무리한해석은아닐것이다. 외팽창 의길로어들고있었던일본은안정 물자공 지로서요해진조선과의내선일체, 일시 동인(一視同仁)을강조하는한편, 잡지등을통해조선의외요성과 지로서의이 을선 함으로써조선경 의안정화를꾀하는하나의수단으로활용할수있었다. 동시에 조선에서뿌리내리고있던재조일본인들은 (내지일본인에서의)외지인으로서정체성을 새롭게정립하고존재감을드러내기해, 당시의정세에부합하는조선련기사들을모던 일본조선 과같은잡지에게재하 다. 뒤에서는모던일본조선 의기사를통해재조일 본인들이어떻게조선을경험하고내면화했는지살펴보겠다.  

3. 모던일본조선 에내재된조선인식

모던일본(モダン日本) 은문 춘추사(文芸春秋社)가 1930년에창간한잡지 고, 모 던일본조선 은임시증간호로간행되어재 1939년, 1940년의본만해지고있다. 잡지 는좌담회 정치・경제논설, 소설, 수필, 시등의문학작품등으로구성되어있다.

3.1 재조일본인과내선일체(内鮮一体) 인식

1939년은최의조선 이었던만큼, 총독부언론계고 직종사자에해당하는재조일 본인들의 이 에띄게게재되어있다. 그 당시조선총독미나미지로(南次郎)와경성일보 사부사장미타라이타쓰오(御手洗辰雄)의 일부를살펴보겠다. 

이번지나사변(일 쟁)을계기로 ‘조선’의모(全貌)는다시없이요하다는것을실감 하며 국민의앞에드러났다. 비약하는조선의 2천3백만민 은혼연일체가되어흥아(興亜) 국책 달성에매진하고있다. 이런시기에이르러 ‘조선 ’을간행함은시의에한것이고, 내선일체

(内鮮一体)의실익을얻음에도기여함이많을것이라믿는다.8) 내선양민족은이미나뉘어생존할수없는상황에이르다. 내선양민족뿐만아니라동아시아 의 민족은하나의공동운명체로서합작하고 력하지않으면살아남을수없는시 가되었다. (략)이 동체의 심이되는것은말할것도없이일본인것이다. 조선은완한 일본국민을 생성(生成)하여이동양동체의심석이될운명에있다. 재의작은차별, 제각각앞의 작은이해때문에에 심지를켜고, 불공평함을외치고불만을호소하는자는시간의힘이라는 함을모르는근시안 이고어리석은자이다.9)

에서미나미지로는이번조선 의출간이일본의륙진출과한련이있음을 언 하고, 외지조선의총독으로서국제정세속에서큰목소리를낼수있는기회가왔으며, 조선의지정학 존재감이높아지기를기 하고있다. 특히조선민이국책달성에매진하고 있다는표 을통해, 주독자층에해당하는일본인들에게조선에서의내선일체가순조롭게 진행되고있음을달하고있다. 심지어조선 의간행을통해내선일체의실익을얻을수 있을것이라는그의기 는, 잡지가지향하고있는바를분명히보여주는부분에해당한다. 

 

8) 南次郎(1939)「朝鮮版へのことば」 モダン日本 朝鮮版 、p.72

9) 御手洗辰雄(1939)「内鮮一体論」 モダン日本 朝鮮版 、p.77

당시조선은강제합병이후 30여년이나지났지만, ‘여 히내지일본인들에게있어서는강 산과기생정도밖에는떠오르지않는’ ) ‘외지’의치에놓여있었다. 그 지만일본의외 팽창을계기로커져가는조선에 한심을 극으로수용하고자하는의지는잡지곳곳에 나타나고있다.

그리고의에서미타라이타쓰오(御手洗辰雄)는내선일체(内鮮一体), 일시동인(一視同仁)의정신을강조하며조선인에한차별철폐를주장하는듯하지만, 실상조선인에서일본 인으로의완 한환을제로을남기고있다. 특히, 그심에있는것은일본인임을 분명히밝히고있는데, 쓴이역시재조일본인의입장으로서조선에서의지배 치를 강조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당시 ‘쵸센가에리(朝鮮帰り), 만슈가에리(満州帰り), 쇼쿠민 치가에리(植民地帰り)’ ) 등의차별 언어로내지인들과구분을당하고있었던재조일본인 들의입장에서는, 조선에서의지배 치는곧그들의존재감에한확인으로이어졌을 것으로추측해볼수도있을것이다. 미타라이는조선이 ‘동양력체의심 석’이고, ‘내선 은하나의공동운명체’임을강조하며, 덧붙여재조일본인들이조선의심이됨을명확히 밝힘으로써그들의상을새롭게정립하고자하 다.

모던일본조선 의기사는앞에서본공직자들외에도다양한배경의필진들에의해 구성되어있는데음악가, 학교수, 소설가, 문학평론가등이조선을소재로다양한망의 을남기고있다. 이 당시경성제 교수 던스즈키다 오(鈴木武雄)와가라시마다 시

(辛島驍)가각각쓴 「조선의인식(朝鮮の認識)」과「내지인으로서(内地人として)」는재조일본 인으로서정착하여살아가고있는사람들의생각을가장직 으로표 한수필이라고할 수있다. 먼 , 「조선의인식」에서스즈키는내지인들이 “어째서홋카이도에부임하는것과 같은기분으로조선에건 올수없는지무이상할따름”이라며, 그이유로내지인들에게 있어 “조선행이라고하면그다지비장한흥분을불러일으키지않는것같다” )고진단하지만, 곧다음과같은망을통해조선에한심을구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다른지방으로건 가사는듯한기분이든다면그것은그사람들의인식 부족이고, 조선은그들의흥분을일으키지못할정도로비외지화(非外地化) 되어있다는사실을 인식해주었으면한다.(략) 조선을다짜고짜 ‘식민지’라고생각하는것은이미문제이고, 동아시 아의신질서건설이진행되는이때에유럽의념 이고, 구질서 인사고방식은버려야할 것이다. 도쿄의인텔리계층이오히려어떤감회나흥분도느끼지않고, 홋카이도에부임하는 것과같은가벼운기분으로조선에부임하게될수있으면좋겠다.13)

이이쓰인시 에이미 70만여명의재조일본인들이조선을생활의근거지로삼는등, 

식민지시스템이어느정도고착화된상황에서조선은일본인들로하여 정복욕에근거한 흥분을일으키기어려운외지로인식되었을것이다. 반면 1937년일 쟁이후, 국은륙 진출이라는염원이투 된지역으로서내지일본인들에게큰심을불러일으키게된다. 자연히인 , 물 자원이국으로흘러들어가는상황속에서, 재조일본인들로서는다시 조선지역의요성을강조해야할상황에이르게되었음을알수있다. 스즈키는이어서 “륙의각민족을비교해보면, 조선민족만큼정신으로내지인에근해있는쪽은없다”라 고지 하고, 일본과의한경제계의결과 “엔(円) 블럭의선구는조선이고, 내선통화등 가(内鮮通貨等価)의계는러일 쟁이래의오랜역사를가지고있다”14)라고이야기한다. 재의조선지역이일본인들에게감정 흥분을자극하지는못할지라도물 , 경제 으로 가장큰이익을남겨주고있음을스즈키는강조하는데, 이는식민지를바라보는다른차원의 시각을구하고있는것으로볼수있다. 이 게재조일본인들이조선에더욱깊이뿌리를 내리고강한지배권을확립하기해서는무엇보다조선을새롭게바라 과동시에, 앞의 에서확인되듯이 ‘다짜고짜식민지라고생각’하는 ‘구질서 인사고방식’을버려야함을 스즈키는밝히고있다. 

경성제 교수직에있었던가라시마다 시는수필「내지인으로서」에서좀더직 으로 재조일본인과조선에한심을구하고있는데, 다음내용에서그일단을확인해볼 수있다.

그 심은언제나조선인에 한문제와동향이며, 이곳에이미오랫동안함께살고있는내지인 (재조일본인)에한생활 , 사상 인심이무나도다는것이한탄스럽다.(략) 풍속과 언어가다른사람들과함께살아온사람들에게있어서, 그들만의뭔가생활 감개, 사색, 혹은 신앙이라고할만한것들은자연스럽게생겨날따름이라고생각한다. 지 은이미이땅에서 태어난아들들이 학을졸업하고, 마찬가지로이풍토에서자라난딸들을아내로맞이하여자녀 를낳고있다. 이은이들사이에서도이땅의특이한생활이남겨 무엇인가가있게마련이라고 생각된다.15)

 

13) 鈴木武雄(1939) 앞의책, pp.169-170

14) 鈴木武雄(1939) 앞의책, p.169

15) 辛島驍(1939)「内地人として」 モダン日本 朝鮮版 、pp.170-171

다양한기록에서나타나고있지만, 당시재조일본인들을바라보는내지인들의시각에는

일정부분편견이자리잡고있었고, 한편으로는많은일본인들이조선에서부를쌓아사회 지 를높이며조선에서의삶에의미를부여하고자하다. 가라시마는을통해 극 으로 그들의존재감을드러내고, 한발더나아가조선에서태어난재조일본인 2세에해의 내용과같은언 도하고있다. 당시일본사회에서이들 2세 들은 1세 들의성공을등에 업은나태한문제아들로여겨졌던을고려해볼때, ) 재조일본인들에한새로운시각을 구하고있는것으로보이는부분이라고할수있다. 즉내지인들에게비 의 상이되었던 재조일본인 2세들을조선이라는배경을바탕으로다시바라보게끔환기하며, 가라시마는 “부모와자식 2에걸친조선생활의감정은이땅의문학어딘가에표 되지않을리가 없다”  )라며내지인들의심을구하고있는것이다. 3.2 조선체험과기생 찬

잡지는일본인뿐만아니라조선의작가, 문학평론가들의도수록하고있는데, 이들은 조선의일상 인풍경을디테일하게비교 가감없이소개함으로써 심과흥미를유발하고 있다. 그 작가김래성(金来成)의수필 「종로의종(鍾路の吊鐘)」 일부를살펴보겠다. 

한낮에도이종루안은어둑어둑한데, 주황색격자문사이로안을엿보면바깥의소란함과반 로, 이한왠지기분나쁠정도로텅비어쥐죽은듯조용한것이다. 명과암, 소란과정 의 교류 , 이런곳에서우리들은언제나어슴푸 하게떠오르는괴이한기(霊気)를느끼게되는 것이다.(략) 오히려이텅비고어두침침한종루안에서은은히올라오는섬뜩한냄새와왠지 요괴를연상시키는일종의이상한환 을즐기는요령을알고있다. 이두께 1척에이르는거 한 종의철 안에는묘령의미인의피와살과가뒤섞여있다는설조차있다고한다.18)

잡지에실린수필에는의여행잡지에실려도어색하지않을정도의장성이돋보 이는 이확인되는데, 일본인이보기에이국 일수있는조선의정경을 와같이실감나고 흥미롭게묘사하고있다. 김래성의「종로의종」은잡지의독자층이재조일본인뿐만아니라 내지인들도있음을감안한듯, 종로를신주쿠주변에비교하며빌딩숲속에자리잡은고풍스 러운종루와 종을설명한다. 특히와같이 종의외양을괴기가느껴지는기이한물(霊

物)로묘사하고, 여인의피와살과가종의철에섞여있다는 설을인용함으로써일본인 독자들의색다른호기심을자아내고있다. 당시경성은이미도쿄에버 갈정도로도시화 되어 “흥분을일으키지못할정도로비외지화(非外地化) 되어있다”19)고도여겨졌지만, 미스 터리소설풍의서술로조선에한간 체험의흥미를이끌어내고있는것으로볼수있을 것이다. 

그리고잡지는일 되게조선의경치와기생에해언 하는데, 특히강산일 의풍경 과기생에한설명이자주반복된다. 이는당시일본인들이가장큰심을가지고있던 소재에주목하여편집한결과로보이는데, 먼 하마모토히로시(濱本浩)의소설「여수(旅愁)」 에서조선을방문한주인공은다음과같은감상을남긴다.

부친의옛참 지가아니라도평양에는가보고싶다. 3천년고도의땅, 동강과기생도매력이 있다고느 다.(략) “아름답군, 조선의아가씨들은.” 나는무의식 에감탄했다. 복장의아름다움 뿐만아니라어렸을때부터허리띠를매지않고, 무릎을꿇고앉지않는그녀들의나 나 뻗은 몸매의아름다움, 게다가자연스러운화장과타고난우아한풍격은비에젖은해당화나황혼의 뒤뜰에어렴풋이핀배꽃의정취를떠올리게하 다.20)

잡지의편집자가 “조선이라면강산과기생정도외에는일반에게잘알려져있지않다”고 남겼던것처럼, 소설의작가는조선을설명하는소재로서당시조선여성들의복장, 자세 등을자세히설명하고있는데, 독자들의호기심을자극하기해그모습을상당히미화하고 있음을확인할수있다. 당시일확천 과제국주의 욕망으로조선에오고자했던이들은 주로남성이었기때문에, 조선여성에한성 타지는이들에게직 으로조선을어필 할수있던수단 하나 을것이라는것은쉽게상상할수있는바이다. 이와같은욕망은 가토다 오(加藤武雄)의소설「평양(平壌)」에서주인공일행이평양기생들에게고름과비녀 의명칭을묻고, “간소하고조화로워아름답다. 조선부인의복장은정말좋다고생각한다”21) 는등정 인반응을남기며독자로하여 호기심을자극하는등의많은부분에서확인되 고있다. 앞의소설들외에도 명한화가도고세이지(東郷青児) 한조선의기생을찬하는 단문을잡지에남기고있다. 이단문에서도고가묘사하는조선기생들의모습은극찬에 가까운형태로나타나고있고, 그것에더해 ‘박설 월(朴雪中月)’이라는실존의기생에게남기 는답문형식이라는독특함을보여 다. 당시재조일본인들이기생을소재로조선을 극으

 

19) 鈴木武雄(1939) 앞의책, p.169

20) 濱本浩(1939)「旅愁」 モダン日本 朝鮮版 、pp.41-42

21) 加藤武雄(1939)「平壌」 モダン日本 朝鮮版 、p.63

로소개하며내지의심을불러일으켰음은도고의다음과같은을통해서도확인할수 있다.

는그뛰어난기생들이가진태도와자태의우아함을통해서조선본래의고고한문화를느끼고, 2천년의지극히높은차원의술을느끼지만,(략) 내지에서도훨씬이 에는게이샤가 여성의문화 표답게여겨진시 가있었습니다. 그러나조선기생이가지고있는우월함은 더욱결이곱고, 이지 인것이라고는생각하는데어떠할지.(략) 내가말한기생의본질 인 것을자각해주는것이, 조선의우수함을내지인에게알릴수있는가장간단한방법이라고는 생각할따름입니다. 내지의여행자는조선에와먼 기생에해이야기하게될것입니다. 그런 내지인에게고려백자의감을느끼게하고, 세계에서비할데가없는오랜문화를느끼게하는 것이자네들의태도하나로가능하다고는단언하여말할수있습니다.22)

도고는심지어 ‘ 교양을갖추지않은채, 아름다움을꾸미고, 객석에나타나는 다른 무리’라고지칭한기생을 ‘속한작부(下等な酌婦)’에비유하며기생의기 을은연 에밝 히기도한다. ‘속한작부’와는비되며, 상기의에서언 하는 ‘조선의우수함을내지인 에게알릴수있는’ 섬세하고이지 인기생이라는틀자체가잡지를읽는일본인독자들에게 큰호기심을불러일으킨다고볼수있을것이다. 잡지를통해그려지는조선의경치와기생의 이미지는체로정일변도로소개되고있는데, 이는당시국으로옮겨가던내지의심 을다시돌리고자의도했던잡지의체 인방향과일치되어일 된지향성을나타내고 있다. 

4. 마치며

이상으로모던일본조선 의내용을통해잡지의간행주체들이조선을어떻게인식하고, 

내지를향해알려내고자했는지살펴보았다. 잡지는기존조선의이미지에새로운활기를 부여하려는내용으로가득차있는데, 이는철 히상화된조선의이미지에다름아니었다. 특히잡지반에걸쳐가장반복 으로언 되는것은조선의경치와기생에한극찬에 가까운표 으로, 당시일본인들이가진조선에한인식이얼마나피상 으로편향되어 있는지알수있다. 잡지는주독자층인 ‘내지’의일본인들에게가장자극 으로이입될수

 

22) 東郷青児(1940)「朴雪中月へ」 モダン日本 朝鮮版 、p.176

있는, 이런이미지를반복으로되풀이하며, ‘외지’ 조선을극으로포장해나간다. 잡지를 통해달되는조선의이미지는다른식민지에비해일본인이살기좋은고도로내선일체가 정착된지역이자, 일확천 을꿈꿀수있는기회의땅이며, 아름다운환경과기생이존재하는 곳으로표 될뿐이다. 이것은조선인이바라보는조선은생략된, 단지내지를향한시의 욕망이만들어낸, 상화된 ‘외지’ 조선과다를바없었음을확인할수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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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 2018년 12월 11일 심사개시일 : 2019년 01월 17일 1차수정일 : 2019년 02월 01일 2차수정일 : 2019년 02월 10일 게재확정일 : 2019년 02월 15일

 

 <要旨>

일제강 기 잡지에 내재된 식민지 조선인식 - 모던일본 조선 (モダン日本 朝鮮版) 과 재조일본인의 조선인식을 심으로-

조경식

조선에서일본어잡지 신문이유통되기시작한것은 1876년이후 지만, 시의불안정한상황으로인해다양한 종류의잡지들이출 될수는없었다. 그러나조선에서일본에의한통감정치가실시되는 1905년이후부터는일본에서 건 온인텔리계층을심으로다양한정보의교환에한필요성이제기되었다. 결국조선이강제병합되는 1910년 이후부터, 한반도(韓半島) , 조선공론(朝鮮公論) , 조선(朝鮮) 등의잡지를통해재조일본인들은조선의정보를공유하 고, 멀리떨어져있는내지의문화를간 체험하며자신들의정체성을지속시켜나가게된다. 그리고 1937년일 쟁을 후하여,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이가속화되는상황에서발간된모던일본조선 (モダン日本 朝鮮版) 은재조일본인들 에의해철 히 상화된조선의이미지를담고있다. 본연구에서는모던일본조선 의기사분석을통해재조일본인들 이어떻게조선을인식하고있었고, 내지일본을향해어떻게외지인으로서의존재감을높이고자했는지악하고자 하 다. 잡지는형 인 교양지의외양을띠고있으며, 동시에내선일체의주장을뒷받침하는정서가일 되게 통하고있다. 신화를주제로한반도와열도의공동문화권설정을주장하기도하고, 조선과내지의다른도시를동등하게 하기를 구하며내선일체의정신을강변하기도한다. 무엇보다도조선의경치와기생에한극찬을통해, 당시일본인 들이가진조선에 한인식이얼마나편향되어있는지확인할수있다. 잡지에서소개하는조선은일본인우의내선일체 가고도로체화된살기좋은지역이자, 일확천 을꿈꿀수있는기회의땅이며, 아름다운환경과기생이존재하는곳으로 표 될뿐이다. 재조일본인들의상을높이는수단으로서그들의욕망이투 된, 잘통제되어정돈된아름다운모습으로 그려지며, 다가올시 의추치로서설명된다.  모던일본조선 의바탕에는재조일본인들의이와같은욕구가 내재되어있음을확인할수있었다.  

Recognition of the Colonial Joseon in the Magazine of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Cho, Kyung-Sik

Japanese magazines and newspapers began to circulate in Joseon after 1876, when three major ports in Japan were opened. But, due to the unstable situation during the war, various kinds of magazines could not be published. However, since 1905, when the Japanese colonial rule was implemented in the Joseon Dynasty, intellectual class including civil servants and teachers from Japan felt the need to have their own means of exchanging information. Through major Japanese magazines such as Joseon , 

Joseon Public Opinion , Japanese in Joseon shared the information of the Joseon Dynasty, kept in contact with the culture of the Japanese mainland far away, and try to maintain their identity. And after the Sino – Japanese War in 1937, Tourist Joseon and Modern Japanese Joseon Edition which were published at that time covered the contents similar to the above-mentioned magazines, while adding the perception of Joseon that the Japanese had in mind. These magazines were made up of contents of a new perspective on the image of the original Joseon, which was nothing more than an image of Joseon which was subjectively interpreted by Japanese living in Joseon. The magazine emphasizes the political and economic significance of Joseon at all times, praises its beauty, and emphasizes the Naeseon Ilche policy, which is strongly supported by the Japanese  in Joseon. As a means of increasing the status of Japanese in Joseon, Joseon is portrayed as playing a pivotal role in the coming era, depicted in a beautifully controlled, beautifully arranged image of their desires. In the background of Modern Japanese Joseon Version , it is confirmed that Japanese in Joseon had such a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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