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ung-joong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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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세계
~ '세계 그레이트 게임'으로 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1. 2023년 국제정세를 '신냉전'의 틀로 조명하는 게 유행이지만 이는 제한적 설명력만을 지닌다. 21세기 세계는,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경제를 포함해서, 너무나 긴밀하게 상호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냉전의 개념틀은 일면적이다.
2. 지금의 세계를 2차세계대전 이후 정립된 '얄타체제'의 해체과정으로 보는 관점도 흥미롭다.
이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특권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독립국가들의 주권(영토주권 등)을 동시에 존중한다는 타협책 위에 건설된 전후 얄타 체제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가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공공연한 대만 침공 시도가 얄타체제 붕괴의 증거로 예시된다.
3. 얄타체제 해체론을 신냉전론과 교차시켜 오늘의 현실을 조명하는 것은 흥미로운 사유실험이다.
하지만 나는 신냉전론과 얄타체제 해체론에 더해 제3의 입론인 '세계 그레이트 게임' 패러다임을 추가해야 21세기 천하대란을 더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4. 한국 시민으로서 나는 21세기 한반도의 현실을 제4차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으로 분석한 바 있다.
- (7세기 삼국통일은 1차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
- 16세기 임진왜란은 2차 그레이트게임,
- 20세기 6-25전쟁은 3차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이다).
나는 그레이트 게임 입론을 몇년 동안 여러 기회(칼럼과 강연 등)에 펼쳤었다.
5. 21세기의 세계 그레이트 게임이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중동에서도 동시다발로 펼쳐지고 있는게 지금 상황이라고 나는 본다.
그게 우크라이나 전쟁이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여러 목표가 중첩되어 있지만,
- 임박한 이스라엘과 사우디 수교를 저지해
- 팔레스타인(특히 하마스 정권)이 아랍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걸 막고
- 미국이 중동 그레이트 게임의 승자로 떠오르는 걸 저지하려는 행보다.
6.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하마스 정권의 이슬람 신정 독재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시오니즘 독재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마스의 반인륜적 민간인 대량살해와 납치는, 부패혐의와 사법 쿠데타 시도로 이스라엘 민주주의를 존망의 위기에 밀어넣은 네타냐후에게 기사회생의 묘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게 하마스의 잔학 행위가 겨냥하고 있는 지점이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면 침공을 유도해 잔혹한 시가전 와중에 인질들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이스라엘군 포화에 대량살육 당하는 현장을 세계에 생중계하겠다는 의도다. 그 결과는 21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비화해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 전체의 천하대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7. 세계는 지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하는 걸 사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 이게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하마스 정권의 막가파식 무차별 테러를 강력히 규탄해야 한다. 이스라엘을 물리적으로 말살하겠다는 하마스의 과격 근본주의도 비판받아야 한다.
이와 동시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말려 죽이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봉쇄정책에다 서안 지구의 온건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력화시키면서 그 땅을 유태 정착촌으로 먹어들어가고 있는 극우 네타냐후 정권의 불법적 '국가 테러리즘'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8. 이것은 단순한 양비론이 아니다.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극단(極端)과 극단의 폭력적 충돌을 막아야만 인륜적 이성과 상식이 비로소 존속 가능하다는 원칙론일 뿐이다.
9. '신(神)조차 울고 간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거의 유일무이한 현실적 출구는 1993년 오슬로 협정의 '두 국가 해법'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스라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미국이든 그 누구든 오슬로 협정을 무효화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하며, 오슬로 협정에 보탬이 되는 움직임에 강력 찬성한다.
10. 하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오슬로 협정은 거의 사문화(死文化)의 길로 폭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륜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나마 붙들어야 한다.
인간은, 절망의 구렁텅이 한가운데서도, 희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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