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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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평화 지향적 국가가 될 수 있는가?]
저는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지금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1988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일환으로 1970-80년대에 이민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최초로 일시적 '귀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입국 비자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냉전 시대의 적국인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으로 이민 간 이들은 "사회주의 조국 배신자"로 여겨져 한 번 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곤 했는데, 냉전이 점차 해소돼 이런 '귀환'이 가능해진 겁니다. 그 때에 이렇게 '귀환'해서 만나게 된 사람은 어머니 친구의 친척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소련을 떠나 이스라엘로 간 그는,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강변하고, 그를 만나러 온 다수의 소련 유대인들에게도 "조국 이스라엘"로의 "귀국" (aliyah)을 권고했습니다. "나는 소련 군대에서도 복무해보고 이스라엘 군대에서도 복무해 봤는데, 전자에서는 흑빵과 죽을 먹었지만, 후자에서는 바나나까지 거의 매일 식탁에 오르더라"와 같은 말은 주요 논거 중의 하나였습니다. 전부 수입품인 바나나는 그 당시 소련에서 귀중품이었던 만큼 이런 논거가 통하기도 했던 시대이었죠. 한데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스라엘 군 복무해본 그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경멸이었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을 지칭했을 때에는 "저 오랑캐", "저 야만인"이라는 말을 계속 썼습니다. 40대 후반의 얌전한 엔지니어 아저씨가 이런 인종주의적 표현을 써대는 게 솔직히 상당한 위화감을 낳기만 했습니다.
그 뒤에 소련은 망국을 향해 가게 되고 수많은 친척과 친구, 지인 등이 이스라엘로 이민 갔습니다. 실로 아주 다양한 구성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암 전문의 의학 박사와 힌디어 강사가 있었는가 하면 허벌라이프 장사, 즉 다단계 판매를 하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이스라엘에서 잘 정착돼 이스라엘 사회의 안정한 중상층으로 편입되었는가 하면, 일부는 표류를 했으며, 한 명은 아예 러시아로 재이민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종족적 러시아인 부인과 함께 이스라엘로 간 그는, 그의 부인이 이스라엘 사회 편입에 계속 실패하는 걸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해 다시 상트-페테르부르그로 오고 말았습니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이 언급만 되면 "초강경" 발언이 계속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던 거죠. 팔레스타인 사람만도 아니었습니다. 베타 이스라엘, 즉 피부색이 흑색인 에티오피아 출신의 유대인들도 그들에게 의해서 종종 경멸적으로 언급되곤 했습니다. 대체로 교육, 교양 수준이 높고, 구소련에서 주로 지식인층 출신이었던 이들이 이렇게 수준 낮은 인종주의적 언어를 쓰는 것은 저로서 미스테리이었습니다. 이 미스테리는, 201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에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본 것은 그야말로 "여러 소사회로 이루어진 위계질서"의 사회이었습니다. 초종교적 유대인 (하레딤)과 아랍권 출신의 유대인 (미츠라힘), 서유럽 출신의 아슈케나짐과 1990년대 초반 이전의 "옛" 동구권 이민자와 최근의 동구권 유대인 이민자...이들 사이에 물론 교통이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인간 관계는 주로 하나의 출신 지역을 가진 커뮤니티 안에서 이루어지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데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 관계는, 여러 유대인 커뮤니티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더 멀고 멀었던 것 같았습니다. 유대인 전체에 비해 아랍인들의 상대적 가난은 눈에 띄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는 빈곤율은 20%이하이었지만, 아랍인 중에서는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한데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아랍인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았던 것은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공사장 등 고난도 저임금의 직장에서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누가 봐도 확실히 수직화돼 있는 여러 커뮤니티들의 '서열'로 보였습니다. 소련 출신의 1990년대 이후 이민자들은 "옛" 동구권 이민자나 구미권 출신의 유대인을 우러러봤지만, 본인들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미츠라힘이나 베타 이스라엘 등을 안하무인 격으로 대해도 된다고 종종 생각했습니다. 한데 서로 불평등하고 많이 다른 이 여러 커뮤니티들을 하나로 묶는 건 바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적대적 타자의 이미지였습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적대적 타자화는, 불평등한 수직적 공동체인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죠. 마치 한국의 그 누명 높은 1990년대 이전의 "레드 콤플렉스"처럼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과연 언젠가 평화 지향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평화주의자인 저는,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살 길이 '평화와 공생'이라고 봅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끝없는 타자에 대한 적대성 배양과 억압, 살육 등은 인간다운 삶도 아니며 유대민족의 "우리나라"에 대한 숙원과도 사이가 너무나 멀기 때문입니다. 핍박 받는 민족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해방"을 원했던 19세기말-20세기 초중반의 그 수많은 유대인 좌파 운동가 등은, "우리나라 만들기"를 생각할 때에 대개 타자들을 억압하고 정기적으로 학살을 벌이는 군국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데....이스라엘 수출의 구성을 보면 12%는 무기이며, 40%는 주로 군수복합체와 관계가 많은 기업들이 생산해내는 하이테크 제품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경제에서는 무기 생산과 군-민 양쪽에서 이용이 가능한 하이테크, IT 제품 생산은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선박처럼 "주력 부문"입니다. 군대는 다양한 이질적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를 통합시켜 주는 주된 메커니즘이고, 팔레스타인인과 관련된 "안보 의식", 그리고 그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적대 의식 등은 사회 결속의 기제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는 과연 그 체질을 평화 지향적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상상하기조차 힘든 "환골탈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평화 지향적 시민들은, 단순히 이번 학살의 정지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평화 본위의 "재건국" 수준의 사회 개혁을 요구해야 할 겁니다. 그런 "재건국" 아니면 이스라엘은 오늘날과 같은 학살 주범이 아닌, 정상 국가로 다시 태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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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평화 지향적 국가가 될 수 있는가?
저는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지금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1988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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