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은 상관인 육참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10.26사태와 관련 꼭 연행 조사해야 했나?>
ㅡ "서울의 봄" 영화에선 전두광(전두환)이 정상호(정승화)를 왜 긴급 체포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ㅡ
1. 지척거리 총성에도 나 몰라라라?
10.26 사태 당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나' 동)에서 박정희 주재 연회 일정(오후 6시경)이 있으면서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 저녁하면서 시국 얘기 나누자고 궁정동('가' 동)으로 6시30분까지 오라고 했다. (오후 4시 30분경)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 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과 저녁(6시35분경)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정승화는 부근에서 박 대통령이 만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김재규가 7시10분경 잠시 방문, 알려줌)에서
20여 발의 총성(7시40분경)이 들렸음에도 그 경위와 범인을 확인하지 않았다.
김재규가 시해후 정승화 식사장소로 뛰어 들어왔을 때,
피 묻은 와이셔츠에 맨발이었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에서 화약 냄새가 났을 터임에도 경위도 알아보지 않았다.
정승화는 김재규의 비서인 박홍주가 그에게 새 옷과 구두를 내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2. 육본으로 동행하면서 김재규와 의논
그리고 정승화는 김재규의 차를 같이 타고 육군본부(B2 지하벙크)로 향했다.(7시50분)
차 안에서 김재규가 준 껌을 먹지 않을 정도로 의심하면서도 그와 행동을 같이 했다.
육본으로 가는 승용차 속에서 계엄선포 시의 병력 이동 및 배치계획을 김재규와 의논했고
육본에서 임의로 비상소집, 병력이동, 배치 등을 지시한 후 김재규에게 이를 보고했다.
3. 육본 도착한후 경호실 병력이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지 못하게 막고 청와대 포위
8시 5분경에 육군 B-2 벙커에 도착한 정승화는 청와대 경호실차장 이재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현장으로 경호병력 출동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수경사령관인 전성각 육군 소장에게 명령을 내려 수경사 병력을 장악하고 청와대를 원거리에서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정승화는 군수뇌부를 호출했다.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 만인 8시40분 합참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공군총장, 해군총장 등이 도착하자 김재규가 나섰다.
“대통령이 유고이니 이 사실을 3일간 비밀에 부치고 즉각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정승화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처리에만 몰두했다.
정승화 덕분에 누구에게도 김재규가 범인인 것이 알려지지 않은 채 4시간이 흘렀다.
정승화는 박정희가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박정희가 죽었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다.
4. 김계원이 범인을 밝히자 노재현 국방장관이 정승화에게 김재규를 체포하라고 지시
밤 11시40분이 되어서야 김계원 비서실장이 정승화, 노재현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임을 알렸다.
김계원은 김재규의 범행을 진즉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노재현은 정승화와 체포 계획을 논의했고 수사는 보안사가 해야 된다고 결정했다.
노재현은 정승화에게 김재규를 체포할 것을 명령하고,
정승화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지시해 김재규를 중구 정동 소재 보안사 안가(수사 분실이 아닌)에 ‘정중히 모실 것’을 지시했다.
자정 무렵 군사정보과장 오일랑 중령과 김진기 헌병감은 전두환의 지시를 받아 차량으로 김재규를 압송하는데 성공했다.
27일 0시 30분의 일이다.
보안사 안가에서 수사관들은 김재규의 언행으로부터 김재규가 대통령 살해범이라는 확신을 얻었고 이는 즉시 전두환에게 보고됐다.
전두환은 정승화에게 “대통령 살해범은 김재규입니다. 구속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하자 정승화는 전두환의 말에 동의해 김재규를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전두환이 새벽 1시 30분에 김재규를 체포하였다.
27일 새벽 3시 국무회의를 마쳤고 4시 10분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계엄사령관에는 정승화 육참총장이 임명됐다.
근데 국무위원 중 누구도 그가 김재규의 요청으로 사건 현장 인근에 있었던 사실은 알지 못했다.
5. 전두환은 시해현장에 정승화가 있었다고 보고받고 의심
보안사령부 수사과장 이학봉은 27일 아침 김재규에 대한 심문결과를 수사관들로부터 보고받았다.
수사관들은 시해현장에는 김계원 실장뿐 아니라 정승화 총장도 있었다고 보고하면서 두 사람을 연행해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오전 11시 이학봉 수사과장은 전두환에게 수사보고를 했다.
이학봉 중령은 김계원, 정승화 두 사람을 구속하여 수사해야겠다고 건의했다.
처음엔 전두환이 그렇게 했다가 김계원 실장은 구속 수사하라. 그러나 정승화는 어제 계엄사령관이 됐으니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극비리에 내사를 더 해봐라고 지시했다.
이학봉 중령이 전두환 소장에게 정승화 총장에 대한 수사필요성의 이유로 적시한 내용은 이러했다.
'육군총장이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시신수습과 범인색출을 한 흔적이 없다, 청와대를 포위시켰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때 전두환은 정승화 총장이 시해 사건 현장 부근에 김재규의 초대로 와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김재규가 단독범인지 여부가 불투명한 시점에서 전두환 소장과 합수부 수사관들은 일단 정승화를 공범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었다.
정승화 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지 불과 7시간이 흐른 시점에 전두환과 합동수사본부에 이런 의심을 받고 있었다.
6. 김재규가 정승화와 연계성 흘려..
또한 김재규는 압송된 후 "정승화는 내 심복이다. 왜 그날 저녁 남산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갔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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